저는 1971년 생 49세의 남성 입니다. 1985년 제가 15살로 중 3때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일본전 에서 2연승으로 우리 나라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축구 본선 진출 후 계속 지역 예선에서 탈락 해 오다가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을 해서 온 국민이 감격과 환호로 뒤덮였죠. 당시 폐결핵으로 투병 중이셨던 저희 아버님 께선 86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우리 나라의 1,2차 예선과 최종 예선 전(全) 경기를 다 보셨구요. 우리 나라의 본선 진출을 간절히 염원 하셨습니다. 일본 과의 최종 예선 2차전 홈 경기 날 11월의 쌀쌀한 날씨에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시고 벽에 기대 앉으셔서 심한 기침 속에서도 우리의 승리를 기원 하시며 우리 나라 축구 국가 대표 팀을 열렬하게 응원 하신 겁니다. 드디어 허정무 선수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 해서 본선 진출이 확정 되는 순간, 저희 아버님 께선 이불을 내려 놓으시고 만세를 여러번 부르시고 두 주먹을 불끈 쥐시며 매우 기뻐 하시고 통쾌해 하시고 감격 스러워 하셨습니다. 사실 저희 아버님 께선 제가 7살 때 열린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때부터 월드컵 지역 예선을 제가 처음으로 보기 시작 했는데, 그 때 부터 우리 나라의 월드컵 축구 본선 진출을 염원 하신 겁니다. 86 월드컵 축구 본선 진출이 확정 되던 날, 저희 아버님 께선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그간 내 소원이 우리 나라가 월드컵 본선 진출 하는 것을 보는 것이었는데, 드디어 오늘 내 소원이 이루어 졌다고 하시며 잘 싸워준 우리 선수들이 장하고 대견하고 기특하고 예쁘다고 하시며, 감격 해 하셨습니다. 아버님 께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 본선에서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보신 뒤, 더는 월드컵 축구 대회를 못보시고 병환이 악화 되셔서 1989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북 황해도 봉산이 고향으로 이산 가족 이시고, 실향민 이시고 반공 포로 출신 이신 아버님은 1924년 생이시고, 6.25때 우리 나라에 오셔서 1963년 40세에 늦게 결혼 하시고 저희 1남 3녀를 두셨는데요. 제가 아버님 연세 48세에 태어난 늦둥이 외아들 이고 막내 입니다.생전에 축구를 무척 좋아 하셨던 아버님 이셨는데요, 저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 축구를 매우 좋아 합니다. 86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는, 저희 아버님 께서 보신 우리 나라 선수들이 뛴 처음 이자, 마지막 대회여서, 저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를 생각 하면, 아버님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일본 전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우리 나라의 월드컵 축구 대회 본선 진출 이어서 저에게는 잊을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의 4강 진출의 감동과 함께, 저에게 큰 감동으로 남아있는 1985년에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일본 전 승리의 감동 입니다.
1981년 청소년월드컵때 이탈리아 상대로 맹활약했었던거부터 저기서 넣은 골 때문에 유벤투스에서 영입을 하려고 했는데 당시 한국의 뭣같은 병역법때문에 갈수 없었던겁니다.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한국서 그 종목에서 5년 이상을 의무적으로 종사해야지만 됐었던.
86시절만 해도 요즘처럼 FIFA랭킹으로 기준으로 그룹을 나누어 조추첨을 하던 시기가 아니라 바로 전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그룹을 나눠버렸음... 결국 개최국(멕시코) 및 82대회 1-4위 4팀(이탈리,서독,폴란드,프랑스)과 브라질이 1그룹이 되어버렸고 82대회 4강에 실패한 축구강국들이 2그룹 한국 이라크 캐나다등 월드컵 뉴비들이 대부분 3그룹 그리고 나머지 고만고만했던(?) 벨기에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불가리가 같은 국가들이 4그룹이었는데 결국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가 한조가 되는 엽기적인 죽음의 조편성이 나왔던것임... 24개국 본선시절이라 일단 뭐 참가 자체가 바늘구멍이었고 나름 검증된 강팀들만 나왔던 대회 퀄러티도 상당히 높았던 시절
그 당시에 골키퍼에 대해 말이 많았지요. 최종 예선 때까지 잘 해왔던 포철의 조병득을 쓰지 않고 왜 갑자기 본선에선 어설픈 오연교 골키퍼를 선발로 내세웠는 지 지금도 이해가 안갑니다. 90 이태리 월드컵 때는 주전 김풍주를 안쓰고 후보 최인영 골키퍼를 선발로 쓰더라구요. 그 이유가 진짜 부상 때문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조병득키퍼도 안정적인키퍼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김풍주키퍼는 무릎부상이 심각했었구요. 최인영키퍼는 순발력과 선방력이 최강이었으나 판단력,집중력에서 문제였다고합니다. 실제로 최인영키퍼는 90,94WC에서 수차례 세이브를 했으나 벨기에전 실수, 그리고 클린스만의 빗맞은슛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면서 낙인찍히고말죠.
원래는 1981년 청소년 월드컵 대표(최순호 감독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2골 2도움의 원맨쇼를 보이며 4:1로 이탈리아를 격파한 대회)까지 했었던 최인영 골키퍼가 뽑히기로 했는데, 부상으로 낙마해서 오연교 골키퍼가 대신 뽑혔다고 하죠. 그리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예선에서 1골만 내주며 무패신화를 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김풍주 골키퍼가 월드컵 본선 벨기에와의 경기를 앞두고 부상을 입는 바람에 최인영 골키퍼가 모든 경기에 나섰다고 하구요.
저때 일본과 최종예선 2차전 잠실경기 이기고 본선진출확정후. 사상초유 정규방송 중단하고 선수들 바로 스튜디오로 오게 해서 긴급편성한거 선명하게 기억난다. 당시 중1이었는데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본선 이탈리아전을 새벽3시에 했는데 최순호의 저 골! 당시의 그 짜릿한 통쾌함을 잊을수가 없다.
사실 86도 본선진출과정이 상당히 험난했는데 당시 1차 동아시아 조별예선 시작하자마자 최약체 네팔에 2:0 신승 후 말레이시아에 0:1로 지는 대 참사가 벌어졌음 (이 시점에선 사실상 탈락이라고 봤음) 이때문에 당시 문정식 감독이 경질되고 심지어 월드컵팀 해체 후 박종환의 올림픽 대표팀이 나머지 예선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극단적 조치까지 축구협회에서 검토했을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이후 기적적으로 최약체 네팔이 말레이시아와 비기는 이변이 일어났고 이에 희망을 이어가게 된 한국대표팀도 문정식 감독 경질 후 김정남 감독 김호곤 코치 체제로 개편하고 선수들을 대대적으로 교체하며 극적인 반전을 일으켰음 이후 홈경기에서 네팔과 말레이시아를 대파하고 동아시아 예선 4강 토너먼트에서 인도네시아를 홈 원정에서 2연승 후 일본과의 동아시아 예선 결승에서 2연승 하며 극적으로 32년만에 본선진출 이후 2018까지 무려 9회 연속 진출 기록중(진행형)
86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서 어웨이 경기에서 말레이시아에 1:0으로 패배 이때 패배한 책임을 지고 문정식 감독 사퇴 김정남감독 부임 인터뷰 나오는 조민국선수가 85년당시. 당시 럭키금성(현 FC서울)팀과 계약금 8천만원....언론발표 엄청난 금액이었죠......경기결과는 조민국의 헤딩슛을 포함 2:0으로 말레이시아를 이겨 한국 동남북 아시아 예선 준결승 진출 아시아는 팃켓이 두장이라서..... 동남북 아시아와 중동국가 위주인 서남아시아 예선전으로 나누어서 개최 인도네시아와 홈앤드 워웨이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에서 인도네시아에 2:0승 자카르타에서 4:1승 한국 동남북 아시아 예선 최종결승 진출 홍콩을 물리치고 올라온 일본과 홈앤드워웨이 1985년10월 26일 일본 도오쿄 국립경기장 한국 이태호 정용환의 골로 2:1승 1985년11월3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한국 허정무의 골로 1:0 승 한국 1954년 스위스월드컵진출후 32년만에 월드컵 진출 서남아시아는 이라크가 진출 아르헨티나 1차전 새벽에 술한잔 하면서.. 그런데 한국 골기퍼의 아쉬운점도 조금은 있었죠 일단 대진운이 않좋았구요 그래도 4꼴이나 넣은게.....승점도 1점 얻고 아르헨티나 3:1 불가리아 1:1 이탈리아 3:2 이탈리아전을 간단하게 이탈리아 알토베리선수가 한국전에 얻은 PK는 슬로비디오를 보니. 완전 시뮬레이션이 었죠. 당시만 해도 축구의 변방 한국이 많이 불리했습니다. 그런데 이자식들은 2002년16강 전에서도 토티가 시도했다가 이번엔 제대로 당했죠 토티의 퇴장... 이탈리아 축구는 좀 더티합니다 패하면 핑계도 많구요
아직도 한국 축구에 조광래만한 패셔가 없다. 영상에도 나오지만 패스들이 그림 같다. 최순호는 패스능력, 시야, 킥력, 드리블, 모든 면에서 골게터보다는 자신이 원했던 공격형미들로 성장했으면 더 큰 선수가 되었을 거고, 그런 면에서 박주영도 비슷하다. 한국 축구에서 부상으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은퇴한 가장 아까운 선수 3명을 꼽으라면 김석원, 김병수, 백승철 선수이다. 김석원의 드리블, 김병수의 패스, 백승철의 슈팅. 아직까지 한국 축구는 조광래만한 패셔가 없고 김석원만한 드리블러가 없다. 그들을 넘어서는 선수들은 앞으로 청주fck에서 나올 거다.
우리에겐 차범근이 있었던 시기...세계 최고 차범근이있는데...라고 생각했던 시기...그러나 축구는 11명이 하는 거지 월클 한 명으로 안 된다는건...30년 가까이 지나 알아졌네요...그때 차 감독님 참 피곤했을꺼고...그때가 시발점이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 축구가 있는거죠...
일본하고 1차전때 2골 다 어시스트 한 최순호 선수를 볼하고 상관없이 깊숙히 태클해서 부상입힌 거 생각나네요. 전반 마지막 10분동안 처절하게 최순호 선수 치료하고 선수교체도 못하고 10명으로 버티고 난 후에 후반에는 최순호 선수 절뚝거리면서 사력을 다해서 뛰시고 결국 결승골도 어시스트 하신 투혼을 발휘. 그 당시 이태리 유벤투스에서도 탐낼만큼 세계적 클래스 였던 최순호 선수가 있었기에 1986 월드컵 진출, 그리고 월드컵에서의 활약도 가능했던 듯요. 이태리 전에서의 골은 그 월드컵에 나온 골 중 멋진 골 몇위에 랭크 될 정도였던걸로 기억.
24개국이 월드컵 진출하던 1994년까지 한국이 월드컵 출전도 하고 조 3위를 해도 16강 진출 할 수 있었으나 1998년부터 32개국씩 출전하면서 무조건 조 2위를 해야 16강 진출하게 되고(32개국 출전하는건 일본같이 24개국때는 못하다가 32개국 되면서 출전가능해진 나라한테나 좋은거지 우리나라는 24개국때도 월드컵 출전은 했으니 도리어 나쁘게 됨) 16강 진출이 어려워짐. 1986년 불가리아랑 1-1 비긴거 1994년 월드컵때 볼리비아랑 0-0 비긴게 참 아쉬웠었음. 이 두 경기에서 이겼으면 그 두 대회 다 16강 진출할 수 있었다는
현재 아시아 2장이라면 일본 이란이 올라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한국은 맨날 이란에 밀려 2위로 올라가는데 옛날처럼 한조에 몰아서 하면 한국은 간당간당하죠. 이번에 쉽게 카타르 월드컵에 진출한 것은 한국 조에서 이란이 아랍팀들을 다 잡아주고 아랍팀들끼리는 서로 무승부 행진을 많이 한 덕입니다. 이게 한국팀에게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죠. uae가 무승부가 아닌 승리가 많았다면 한국은 막판까지 쫄리는 승부였죠.
54년 월드컵 첫출전이후 58년에는 FIFA 월드컵 참가 신청서를 분실했고 60년대에는 유고슬라비아 랑 북한에 밀려서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었고 70년대에서 82년까지는 호주 중동팀들에게 밀려 월드컵진출에 실패했었다. 사실 70년대에 갈수도 있었다. 70년 예선때 임국찬 선수가 패널티킥을 실축하는 바람에 못갔었다. 넣었으면 갈수도 있었지만 그때 비난을 많이 받아 미국이민을 떠났다. 선수도 사람인데 못넣고 싶어 못넣은것도 아닌데 왜 비난을 할까? 시대가 그래서인가. 그리고 그당시에는 아시아가 1~2장 정도의 티켓만 주어졌었다.
뛰긴했는데 당시 거의 유일하게 네임드라 집중마크당했고 그 덕(?)에 다른 선수들이 공격전개가 그나마 원할했죠ㅋ다만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차범근 선수가 아시아예선은 안나가고 미국 전지훈련에서 바로 합류한거라서요 ㅎ 그리고 참고로 월드컵은 3경기 전경기 풀타임 출전한거로 알고있습니다.
저는 1971년 생 49세의 남성 입니다. 1985년 제가 15살로 중 3때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일본전 에서 2연승으로 우리 나라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축구 본선 진출 후 계속 지역 예선에서 탈락 해 오다가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을 해서 온 국민이 감격과 환호로 뒤덮였죠. 당시 폐결핵으로 투병 중이셨던 저희 아버님 께선 86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우리 나라의 1,2차 예선과 최종 예선 전(全) 경기를 다 보셨구요. 우리 나라의 본선 진출을 간절히 염원 하셨습니다. 일본 과의 최종 예선 2차전 홈 경기 날 11월의 쌀쌀한 날씨에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시고 벽에 기대 앉으셔서 심한 기침 속에서도 우리의 승리를 기원 하시며 우리 나라 축구 국가 대표 팀을 열렬하게 응원 하신 겁니다. 드디어 허정무 선수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 해서 본선 진출이 확정 되는 순간, 저희 아버님 께선 이불을 내려 놓으시고 만세를 여러번 부르시고 두 주먹을 불끈 쥐시며 매우 기뻐 하시고 통쾌해 하시고 감격 스러워 하셨습니다. 사실 저희 아버님 께선 제가 7살 때 열린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때부터 월드컵 지역 예선을 제가 처음으로 보기 시작 했는데, 그 때 부터 우리 나라의 월드컵 축구 본선 진출을 염원 하신 겁니다. 86 월드컵 축구 본선 진출이 확정 되던 날, 저희 아버님 께선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그간 내 소원이 우리 나라가 월드컵 본선 진출 하는 것을 보는 것이었는데, 드디어 오늘 내 소원이 이루어 졌다고 하시며 잘 싸워준 우리 선수들이 장하고 대견하고 기특하고 예쁘다고 하시며, 감격 해 하셨습니다. 아버님 께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 본선에서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보신 뒤, 더는 월드컵 축구 대회를 못보시고 병환이 악화 되셔서 1989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북 황해도 봉산이 고향으로 이산 가족 이시고, 실향민 이시고 반공 포로 출신 이신 아버님은 1924년 생이시고, 6.25때 우리 나라에 오셔서 1963년 40세에 늦게 결혼 하시고 저희 1남 3녀를 두셨는데요. 제가 아버님 연세 48세에 태어난 늦둥이 외아들 이고 막내 입니다.생전에 축구를 무척 좋아 하셨던 아버님 이셨는데요, 저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 축구를 매우 좋아 합니다. 86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는, 저희 아버님 께서 보신 우리 나라 선수들이 뛴 처음 이자, 마지막 대회여서, 저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를 생각 하면, 아버님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일본 전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우리 나라의 월드컵 축구 대회 본선 진출 이어서 저에게는 잊을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의 4강 진출의 감동과 함께, 저에게 큰 감동으로 남아있는 1985년에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 대회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일본 전 승리의 감동 입니다.
뭔말이 길어 안읽어
이렇게 길게 쓴다고 누가 읽어주나
Te felicito amigo, tuviste un gran padre y un hermoso recuerdo que deja compartir una copa mundial de futbol, saludo cordial desde Colombia 🇨🇴
이야 그나저나 이때 중계 캐스터 정말 뭐랄까
지금 중계하는 사람들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영혼이 실린 감동적이고 열정적인 중계를 하네
언제 봐도 심장이 뛰게하는 중계다 드디어~~ 슈웃 고오올인
최순호는 당시에도 세계 정상급 레벨인데 시대를 잘 못 만난 선수죠. 유벤투스에서 영입하려고 5년을 공들였다는 얘기도 있고. 아르헨티티나 전 측면에서 휘접고 다니는 것민 봐도 탈 아시아급 선수 였음.
1981년 청소년월드컵때 이탈리아 상대로 맹활약했었던거부터 저기서 넣은 골 때문에 유벤투스에서 영입을 하려고 했는데 당시 한국의 뭣같은 병역법때문에 갈수 없었던겁니다.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한국서 그 종목에서 5년 이상을 의무적으로 종사해야지만 됐었던.
박주영만큼 예리하고 기성용 만큼 정확하고 손흥민 만큼 빨랐던 선수였죠
인정~
86시절만 해도 요즘처럼 FIFA랭킹으로 기준으로 그룹을 나누어 조추첨을 하던 시기가 아니라 바로 전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그룹을 나눠버렸음... 결국 개최국(멕시코) 및 82대회 1-4위 4팀(이탈리,서독,폴란드,프랑스)과 브라질이 1그룹이 되어버렸고 82대회 4강에 실패한 축구강국들이 2그룹 한국 이라크 캐나다등 월드컵 뉴비들이 대부분 3그룹 그리고 나머지 고만고만했던(?) 벨기에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불가리가 같은 국가들이 4그룹이었는데 결국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가 한조가 되는 엽기적인 죽음의 조편성이 나왔던것임... 24개국 본선시절이라 일단 뭐 참가 자체가 바늘구멍이었고 나름 검증된 강팀들만 나왔던 대회 퀄러티도 상당히 높았던 시절
멋지다..86월드컵하고94월드컵이잘했음..김정남 김호감독.
후반전 스코어가 2-2였는데 4골이 나왔는데 추가시간이 30초...86월드컵때는 진짜 시간을 너무 짜게 줬구나...
저 시대에 아르헨 이탈리아 상대로 저 정도면 진짜 잘한건데 조 추첨 ㅈ 같네 ㅋㅋㅋㅋ
디펜딩 챔피언이랑 그해 챔피언이랑 같은조. ㅎㄷㄷ
86월드컵 아르헨은 전설 마라도나가..ㅎㄷㄷ;; 그것도 역대급 포퍼먼스를 선보이며 날라다니고 있을때ㅋㅋ
그대회 아르헨티나가 2시드로 내려가는 바람에 한마디로 지옥의 조가 되었음.
아쉽지만 진짜 졌잘싸다..
초 6학년때인데 저때 개막전이 새벽 3시로 기억합니다
우리나라는 장마비가 엄청 왔었구요
5시에 경기가 끝나고 비가오는데 축구공들고
근처 공원가서 슛연습했었죠
축구선수가 될거라며....ㅎ
4:49 최순호 돌파 ㅎㄷㄷ 하네
저당시 최순호 너무 패스 안해서 ㅋㅋ 뭐라했었는데
멋진 골로 보답해서 미친듯이 좋았었죠~~^^
우리나라 진짜 개잘햇네
평생 처음 본 월드컵 예선전이 1982년이였고 쿠웨이트에게 져서 탈락했었죠. 86년 월드컵 팀 멤버 정말 좋았습니다. 최순호, 허정무, 박경훈, 조병득, 조광래, 정용환 등. 본선에서 합류한 차범근 선수까지 에이스들 전력은 역대 대표팀 최강이였다고 봅니다.
필드 플레이는 나쁘지 않은데 저때는 국대골키퍼 수준이 너무 미달인듯 그리고 현재 국대가 이탈 국대 만나서 저정도 공격력 뿜을수 있을까 ??
골키퍼가 잘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그 당시에 골키퍼에 대해 말이 많았지요. 최종 예선 때까지 잘 해왔던 포철의 조병득을 쓰지 않고 왜 갑자기 본선에선 어설픈 오연교 골키퍼를 선발로 내세웠는 지 지금도 이해가 안갑니다.
90 이태리 월드컵 때는 주전 김풍주를 안쓰고 후보 최인영 골키퍼를 선발로 쓰더라구요.
그 이유가 진짜 부상 때문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울산갈매기 최인영은 두 대회에서 죽을 썼구먼...오죽하면 94년 독일전에 후반교체시켜버리고 대학생 이운재를 썼을까
조병득키퍼도 안정적인키퍼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김풍주키퍼는 무릎부상이 심각했었구요. 최인영키퍼는 순발력과 선방력이 최강이었으나 판단력,집중력에서 문제였다고합니다.
실제로 최인영키퍼는 90,94WC에서 수차례 세이브를 했으나 벨기에전 실수, 그리고 클린스만의 빗맞은슛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면서 낙인찍히고말죠.
최인영이 제일 못함
저때 기억합니다. 일본을 꺾고 32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랐을때 특집 방송까지 할 정도였죠.
78우승국 아르헨 82우승국 이태리 86우승국 아르헨 90월드컵개최지 이태리
불가리아도 강팀이었음
@@varpukivs 유럽예선 8위로 진출했죠
게다가 아르헨은 90월드컵 준우승하고 개최국 이태리는 3위를하죠
저때 골키퍼가 너무 못했음. 조병득 골키퍼가 부상당하는 바람에 사실상 벤치멤버였던 오연교 골키퍼가 나왔음
도대체 왜 잡아야 될 공을 펀칭을 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펀칭을 하려면 멀리 쳐내기라도 하던지... 공격수 한테 갖다주는 펀칭이라니... 오연교 골키퍼는 국대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조병득 키퍼는 부상도 아니었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미스테리..
원래는 1981년 청소년 월드컵 대표(최순호 감독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2골 2도움의 원맨쇼를 보이며 4:1로 이탈리아를 격파한 대회)까지 했었던 최인영 골키퍼가 뽑히기로 했는데, 부상으로 낙마해서 오연교 골키퍼가 대신 뽑혔다고 하죠.
그리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예선에서 1골만 내주며 무패신화를 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김풍주 골키퍼가 월드컵 본선 벨기에와의 경기를 앞두고 부상을 입는 바람에 최인영 골키퍼가 모든 경기에 나섰다고 하구요.
저때 일본과 최종예선 2차전 잠실경기 이기고 본선진출확정후. 사상초유 정규방송 중단하고 선수들 바로 스튜디오로 오게 해서 긴급편성한거 선명하게 기억난다. 당시 중1이었는데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본선 이탈리아전을 새벽3시에 했는데 최순호의 저 골! 당시의 그 짜릿한 통쾌함을 잊을수가 없다.
스튜디오로 모셔와서 허참이 사회 봤던 거 아직도 기억납니다.
사실 86도 본선진출과정이 상당히 험난했는데 당시 1차 동아시아 조별예선 시작하자마자 최약체 네팔에 2:0 신승 후 말레이시아에 0:1로 지는 대 참사가 벌어졌음
(이 시점에선 사실상 탈락이라고 봤음)
이때문에 당시 문정식 감독이 경질되고 심지어 월드컵팀 해체 후 박종환의 올림픽 대표팀이 나머지 예선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극단적 조치까지 축구협회에서
검토했을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이후 기적적으로 최약체 네팔이 말레이시아와 비기는 이변이 일어났고 이에 희망을 이어가게 된
한국대표팀도 문정식 감독 경질 후 김정남 감독 김호곤 코치 체제로 개편하고 선수들을 대대적으로 교체하며 극적인 반전을 일으켰음
이후 홈경기에서 네팔과 말레이시아를 대파하고
동아시아 예선 4강 토너먼트에서 인도네시아를 홈 원정에서 2연승 후
일본과의 동아시아 예선 결승에서 2연승 하며 극적으로 32년만에 본선진출 이후 2018까지 무려 9회 연속 진출 기록중(진행형)
말레이시아에게 실점하는 그순간에 말레이지아 선수들 약10분정도 기습공격으로 정신없이 밀어붙여 조마조마~
그리고 본선진출 못했을땐 꼭 말레이지아대표팀이 우리팀 발목잡았고~
아니 처음 출전해서 아르헨티나, 전대회 우승팀 이탈리아랑 한조였으면 내가 봐도 벅차기는
해요.....
하지만 🇮🇹 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세계가 주목할 만 했습니다.......
한국은 그때 충분히 인상 깊었어요 ....
0:09 잠실주경기장 이후 첫 만원관중. 말련 어웨이경기에서 슈팅수40대1 경기에서 종료 직전 1슈티으로 0대1 패하고 1달후 홈경기. 첫골 박창선 페널티킥 성공 순간 중2였던 나는 7만관중의 함성에 그 순간 축구에 매료되고만다.
오연교가 86월드컵을 혼자 말아 잡수셨네
차범근.허정무.최순호.김종부.김주성.이태호.김용세.박창선.정용환.조민국.조광래.조병득.. 자세히 곱씹어보면 드림팀이었다. 첫경기 전반전에서 너무 얼어붙은것 빼고는 놀랄만큼 잘했었다.
86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서 어웨이 경기에서 말레이시아에 1:0으로 패배
이때 패배한 책임을 지고 문정식 감독 사퇴
김정남감독 부임
인터뷰 나오는
조민국선수가 85년당시. 당시 럭키금성(현 FC서울)팀과 계약금 8천만원....언론발표 엄청난 금액이었죠......경기결과는 조민국의 헤딩슛을 포함 2:0으로 말레이시아를 이겨 한국 동남북 아시아 예선 준결승 진출
아시아는 팃켓이 두장이라서.....
동남북 아시아와 중동국가 위주인 서남아시아 예선전으로 나누어서 개최
인도네시아와 홈앤드 워웨이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에서 인도네시아에 2:0승
자카르타에서 4:1승
한국 동남북 아시아 예선 최종결승 진출
홍콩을 물리치고 올라온 일본과 홈앤드워웨이
1985년10월 26일 일본 도오쿄 국립경기장
한국 이태호 정용환의 골로 2:1승
1985년11월3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한국 허정무의 골로 1:0 승
한국 1954년 스위스월드컵진출후 32년만에 월드컵 진출
서남아시아는 이라크가 진출
아르헨티나 1차전 새벽에 술한잔 하면서..
그런데 한국 골기퍼의 아쉬운점도 조금은 있었죠
일단 대진운이 않좋았구요
그래도 4꼴이나 넣은게.....승점도 1점 얻고
아르헨티나 3:1
불가리아 1:1
이탈리아 3:2
이탈리아전을 간단하게
이탈리아 알토베리선수가 한국전에 얻은 PK는 슬로비디오를 보니. 완전 시뮬레이션이 었죠.
당시만 해도 축구의 변방 한국이 많이 불리했습니다.
그런데 이자식들은 2002년16강 전에서도 토티가 시도했다가 이번엔 제대로 당했죠
토티의 퇴장...
이탈리아 축구는 좀 더티합니다
패하면 핑계도 많구요
아직도 한국 축구에 조광래만한 패셔가 없다.
영상에도 나오지만 패스들이 그림 같다.
최순호는 패스능력, 시야, 킥력, 드리블, 모든 면에서 골게터보다는
자신이 원했던 공격형미들로 성장했으면 더 큰 선수가 되었을 거고,
그런 면에서 박주영도 비슷하다.
한국 축구에서 부상으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은퇴한 가장 아까운
선수 3명을 꼽으라면 김석원, 김병수, 백승철 선수이다.
김석원의 드리블, 김병수의 패스, 백승철의 슈팅.
아직까지 한국 축구는 조광래만한 패셔가 없고 김석원만한 드리블러가 없다.
그들을 넘어서는 선수들은 앞으로 청주fck에서 나올 거다.
와 김석원을 기억하시네
저도 동감입니다
벤슨앤헤지스...담배광고를 대놓고 했던 시절 ㄷㄷ
서울에서 축구 경기 개최 되었어요...
저당시 7실점중 골키퍼 에러가 거의5실점이네~오연교 최인영 골키퍼 수준미달이다
그래도 허정무는 월드컵에서 골도 넣고 감독으로 승리도 경험하고...박지성이나 안정환이 대표팀감독 해서 월드컵에서 승을 획득하지 않는 이상 아마 그가 유일무이할듯.
저~~당시에도 골키퍼가 저걸 왜 못막어했는데
지금 보아도 마찬가지네요. 역시 지금 조현우.김승대가 잘합니다,
규
김승대 ㅋㅋㅋㅋ
86월드컵에 이운재 김병지급의 골키퍼가 있었다면 8강갔을듯
국뽕 작작좀
16강 정도는 가능했을거 같아요ㅎ
조병득 골키퍼가 출전할 수 없어서 아쉬웠죠.
우리에겐 차범근이 있었던 시기...세계 최고 차범근이있는데...라고 생각했던 시기...그러나 축구는 11명이 하는 거지 월클 한 명으로 안 된다는건...30년 가까이 지나 알아졌네요...그때 차 감독님 참 피곤했을꺼고...그때가 시발점이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 축구가 있는거죠...
4:56 한국 월드컵 사상 첫 골이 사실 중심 이동이 뒤로 쏠리면서 빚맞은듯한 행운의 골 ㅎㅎㅎ 그래도 당해 우승팀에게 1-3이면 처녀출전 첫 경기치곤 엄청 준수한 성적이란걸 그 땐 잘 인지를 못 했던거 같음.
처녀출전은 아님 54년 월드컵 나갔음
82 스페인월드컵 우승 이탈리아
86 멕시코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
한마디로 지난 대회 챔피언이랑 이번 대회 챔피언이 모두 한국이랑 같은 조.
지금 봐도 조편성 진짜 좆같이 짜놨네ㅅㅂ
86년 멕시코월드컵 지역최조예선 한일전 풀영상 없을까요? 보고 싶습니다
이거 풀버젼 어디갔음? kbs야 제발 다시 업로드 해줘 ㅠㅠ
5:20 이 골은 골키퍼 각잡고 있었어도 막기 힘들었을 듯...
지금은 당연한 골키퍼 코치도 없던 시절... 정말 골키퍼 실수가 너무 많아서 아쉬운 경기 많았음^^
허정무 감독님 사랑합니다 💜
일본하고 1차전때 2골 다 어시스트 한 최순호 선수를 볼하고 상관없이 깊숙히 태클해서 부상입힌 거 생각나네요. 전반 마지막 10분동안 처절하게 최순호 선수 치료하고 선수교체도 못하고 10명으로 버티고 난 후에 후반에는 최순호 선수 절뚝거리면서 사력을 다해서 뛰시고 결국 결승골도 어시스트 하신 투혼을 발휘. 그 당시 이태리 유벤투스에서도 탐낼만큼 세계적 클래스 였던 최순호 선수가 있었기에 1986 월드컵 진출, 그리고 월드컵에서의 활약도 가능했던 듯요. 이태리 전에서의 골은 그 월드컵에 나온 골 중 멋진 골 몇위에 랭크 될 정도였던걸로 기억.
24개국이 월드컵 진출하던 1994년까지 한국이 월드컵 출전도 하고 조 3위를 해도 16강 진출 할 수 있었으나 1998년부터 32개국씩 출전하면서 무조건 조 2위를 해야 16강 진출하게 되고(32개국 출전하는건 일본같이 24개국때는 못하다가 32개국 되면서 출전가능해진 나라한테나 좋은거지 우리나라는 24개국때도 월드컵 출전은 했으니 도리어 나쁘게 됨) 16강 진출이 어려워짐. 1986년 불가리아랑 1-1 비긴거 1994년 월드컵때 볼리비아랑 0-0 비긴게 참 아쉬웠었음. 이 두 경기에서 이겼으면 그 두 대회 다 16강 진출할 수 있었다는
현재 아시아 2장이라면 일본 이란이 올라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한국은 맨날 이란에 밀려 2위로 올라가는데 옛날처럼 한조에 몰아서 하면 한국은 간당간당하죠. 이번에 쉽게 카타르 월드컵에 진출한 것은 한국 조에서 이란이 아랍팀들을 다 잡아주고 아랍팀들끼리는 서로 무승부 행진을 많이 한 덕입니다. 이게 한국팀에게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죠. uae가 무승부가 아닌 승리가 많았다면 한국은 막판까지 쫄리는 승부였죠.
5:00 한골 넣고 좋아하는 ... 참 ... 그냥 지나가려다 ... 위로해주는 ...
우리나라 월드컵 축구 본선사상 첫 골입니다.
2:27 어릴때 일이지만 최순호가 골 넣은 허정무에게 안 가고 혼자서 손 들고 자기 좀 봐달라고 한 애잔한 장면은 잊을수가.. (사실 0.7골을 넣은 멋진 슛이었지만 허정무랑 같이 좀 뒹굴지 ㅎㅎ)
당시 최순호는 다리부상이었음...잘 뛰지도 못할정도..그래도 출전강행시킴...
저 골대 맞히는 킥을 한 직후 다리에 쥐가 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리에서 골 세레머니를 했다고 ㅎㅎ
음 저때도 아시아티켓은 2장이였음
누가 한장이래
86년도에 한국 이라크가 나감
역사잼 동아시아 한장 중동 한장
1982때가 한장. 그이전에는 한장도 아니었음. 0.5장.. 1위를 해야 타대륙 팀과 플레이오프 자격이 주어졌음.
86월드컵은 불가리아 전이 아쉬움
이탈리아 전도 잘했으나
엄연한 실력차이 나서 질만 했음.
아르헨티나 전도 골을 적게 먹었다 생각
수비가 너무 느슨 겁먹어진 경기임 .
골장면만 보면 저때가 더 잘하는거같네
이때 애기때인데...서울에서 이기고 장하다 대한건아 노래 나오면서 태극기.들고 트랙 도는 퍼포먼스 보고 국뽕에 지렸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골키퍼 역량이 문제가 좀 있네요. 2010년의 그 분처럼.. 그것만 제외하면 진짜 잘했당ㅎ
54년 월드컵 첫출전이후 58년에는 FIFA 월드컵 참가 신청서를 분실했고 60년대에는 유고슬라비아 랑 북한에 밀려서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었고 70년대에서 82년까지는 호주 중동팀들에게 밀려 월드컵진출에 실패했었다. 사실 70년대에 갈수도 있었다. 70년 예선때 임국찬 선수가 패널티킥을 실축하는 바람에 못갔었다. 넣었으면 갈수도 있었지만 그때 비난을 많이 받아 미국이민을 떠났다. 선수도 사람인데 못넣고 싶어 못넣은것도 아닌데 왜 비난을 할까? 시대가 그래서인가. 그리고 그당시에는 아시아가 1~2장 정도의 티켓만 주어졌었다.
역시 월드컵은 24개국 체제로 해야됩니다. 경기질이 달라요. ㅎㅎ지금 아시아에 월드컵 티켓 달랑 2장이면...재미있는데...
ㅋㅋㅋ 수비진과 키퍼는 증말 월드 클래스다.
이 중에 몇 명이 현재 축협의 쓰레기 짓을 하는 사람들이네.
징역 기야지
원종관 캐스터는 이미 고인임
최순호 감독님!!
저때 차범근 합류는 손흥민급 임팩트 있었겠네...
정작 예선전땐 밍기적 출전 안하다 진출 후 무임승차 본선에서 정작 거의 한거없이 팀 조직력만 무너짐 나이도 많았고 결국 최악의 합류
32년만에 월드컵 진출... 풀영상 없을까요?
ruclips.net/video/y0ed49SZiEQ/видео.html
최순호 감독님은 1981년 청소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격침시킨 활약 및 이 월드컵에서의 골 때문에 이탈리아 세리에A의 명문구단 유벤투스에서 영입시도를 했었다는데 당시의 한국의 뭣같은 병역법 때문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죠 쩝
저 무식한 피지컬 트레이닝 저런 훈현을 받고도 저렇게 잘했다는게 기적이지
허정무 감독님!!
말레이시아에게 0-1로 졌던 게 기억이 나네요
8만관중 코로나 이후로 이렇게 많이 모일수가 있을까 돈 네고 자발적으로 암표도 많았다고 하는데
최순호 선수..
아마 대한민국에서 차붐
과 대등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듯 한 실력ㆍ
국가나 축구협회에서 거시적
인 문제로 다루어서 외국에
진출시겼으면 큰 인물이 될
선수였는데ㆍ출신 연고를
따지는 노털들 때문에 흙속
의 진주를 모르고ᆢ
1990년 월드컵 까지는 아시아 티켓 달랑 한장밖에 없었음..하필 86년 월드컵 같은조에 당시 우승국 아르헨티나, 지난대회 우승국 이탈리아가 있었음
ㄴㄴ 94년 월드컵까지 아시아티켓은 2장이었습니다.
아니오....
78년까지는 세계16개국출전 .. 아시아는 1장
82년 스페인월드컵부터 24개국 출전
아시아는 2장
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32개국출전
아시아는 3.5장
2002년부터 2018년까지는 아시아는 4.5장
94년까진 우리나라 골키퍼 수준이 좀 딸렸던건 사실!
저 때 붐근 차 있나?
예 차붐 출전했습니다
98 프랑스 월드컵때는
진짜 처참했지 에휴
썸네일 이범호
김종부가 넣었나?..수비수발 맞고들어간것같은데. .
이운재나 조현우였다면....8강도 가능했을 전력이었다.
썸네일 이범호 인줄
오연교나 최인영이나 노답이었네
이새끼야 너 축구보는눈이 80년대냐
이범호인줄
저땐 오연교 골키퍼 때문에 망한대회
이때차범근 안뛰었나지금 차범근이없노
뛰긴했는데 당시 거의 유일하게 네임드라 집중마크당했고 그 덕(?)에 다른 선수들이 공격전개가 그나마 원할했죠ㅋ다만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차범근 선수가 아시아예선은 안나가고 미국 전지훈련에서 바로 합류한거라서요 ㅎ 그리고 참고로 월드컵은 3경기 전경기 풀타임 출전한거로 알고있습니다.
@@Niri_0 원래 차붐은 저때 나이도 30대 초중반이라서 월드컵 안나가고 후배들에게 양보하려고 월드컵 예선부터 안나갔었는데 주변사람들의 권유로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존재감 제로
Soy el único Pendjo que habla, español? Jajaj
인도도 엄청 강호였지
골키퍼가 굉장히 약한 시절. ,
오연교 진짜 못하네
한궈
허정무 감독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