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제가 언제나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댓글을 통하여 이야기하실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만 더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달아주세요. 서로 몰랐던 부분들을 매너있는 토론을 통하여 채워나가는 건 정말 좋은 현상이지만, 상대방이 그 사실을 모른다고 깔보고 무시하고 욕설하고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있는게 아닙니다. 말그대로 기본적인 교과서 내용만 아는 분들도 있고, 따로 전문서적을 통하여 지식을 더 쌓은 분들도 있겠죠. 너무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남을 대하지 마시고, 댓글을 달기전에 한번만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시바스 음.. 몇가지 조금 다른의견이있습니다 말하신대로 미국은 필리핀과 하와이 둘중하나를 올줄 알고있었습니다만 필리핀에 무게를두어서 하와이를 기습당한건데요 증거로 필리핀주둔 미군에 경계령 및 항모 배치를 꺼려했습니다 이유로는 일본의 남중국해에서의 대규모 기동훈련 영국군이 가까움 결정적으로 항모의 운용거리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로는 독일이 채무때문에 전쟁에 뛰어들었다라는 말이 많은데요 저 돈가지고노는 유명한사진의 배경은 미국 대공황시기입니다 이때는 어느나라 할것없이 힘들었고 잘못된 경제정책이 가속시킨것뿐입니다 그러나 30년대들어서 독일경제가 호황이라 사실 빚갚는데는 문제가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년 앞당겨 다 갚을수있었죠 그 예로 빚변제를 하면서도 막대한 군대를 양성 및 기술개발을했죠 돈도없이 타국에서 몰래 기술개발은 불가능하죠 그리고 독일에게 전쟁배상금이 가장 큰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프랑스는 그 돈으로 마지노선을 지었고 영국은 식민지정비에 상당수를 썼으며 단치히사건때 남은 대다수의 빚을 탕감시켜줬습니다 지적이 아니라 의견정도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이브 가끔이지만 재밌게보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방송 부탁드립니다
A A 채무를 갚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는 없는거 같습니다. 오해하신거 같습니다. 채무를 완화해주고 독일이 회복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동안에 쌓인 독일국민들의 연합국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우경화가 가속되었고 그게 겉잡을 수 없어져 히틀러가 성공하고 결국 전쟁의 시한폭탄이 되어버렸다는 나비효과 비슷한 얘기지, 채무를 갚기위해 독일이 전쟁을 터트렸다는 내용으로 해석하신건 좀 비약이신듯 합니다.
00~10년대는 민족주의, 국수주의 팽창주의등 여러가지것들이 맞물려 갈등이 커져가고 10년 중반에 예견된 전쟁이 터지죠. 2~30년대에는 프랑스 영국 개새끼가 돈 손해본거 갚으라고 독일을 팔아재끼려고 하니까 다같이 빡쳐서 히틀니를 새우고, 아프리카 중동엔 영프가 독립약속 안지켜서 개빡쳐하던중이었죠. 결론, 영프개새끼, 히틀러는 악의 화신.
진주만을 방어하던 미국은 진주만의 얕은수심과 함대간 포격전에 의한 전투를 상정했으면서 상륙에 대비하였는데 진주만을 최전방으로 보지 않고 후방으로 본것도 있긴있음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면 필리핀이 좀 고생하고 진주만에서 꿀빨다 후방지원해주면 된다는 안일한 안보의식도 있었고 게다가 일본의 열등한 인종들이 배운 군사교육은 미국보다 한수낮을것이라는 근자감도 있었음 많은것들이 맞물려 일어난전쟁입
김승환 웃긴게 아마 독일이나 다른 열강들이 했으면 조금 흠칫했을텐데 일본이 하니까 뭐~옐로우몽키따위가!!!선전포고도 없이 기습공격을?뻐킹 쟆!!ㅋㅋㅋㅋㅋㅋㅋ더군다나 당시 미국인들은 지금의 미국인들보다 체격적으로는 불리해도 대공황을 깡따구로 극복해낸분들이라 정신력면에서 차원이 달랐죠.ㅋㅋㅋ하필이면 미국역대 정신력이 가장 출중한세대가 이세대 ㅋㅋㅋㅋ근데 그 줄어든 체격이 일본보다 커 ㅋㅋㅋㅋ
지현준 글쎄요.전혀요.진주만 이후 일본군의 남방공세에서 연합군이 줄줄히 패배하고 필리핀,과다카날,웨이크등등을 일방적으로 뺏기기만하자 워싱턴의 분위기는 암울했고 일본과의 협상도 고민했을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독일이 소련한테 진주만처럼 선전포고 없이 기습뿐만 아니라 거기서 한술더떠 불가침 조약까지깨고 침략했는데 결국 어떻게 됬는지 보세요...
추축국:나치독일,일본,비시프랑스,이탈리아,헝가리,불가리아,루마니아,핀란드(공동교전국),태국,이라크,유고슬라비아,자유 인도 연합국:영국,미국.중국,프랑스(자유프랑스),소련,폴란드,노르웨이,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인도등등 중립국:스위스,스웨덴등등 밑에 중립국이라고 얘네도 잘못이 있다는 말도 안돼는소리 하시는분이 있던데 국가는 자기의 국익과 국민을 우선시해야되는게 맞습니다....
핀란드랑 자유인도같은 경우는 압제자(핀란드의 경우 소련, 자유인도의 경우 대영제국)에 맞서 싸우기 위한 방편으로 추축을 선택한거라 비난하기 어렵죠.. 까놓고 말해서 나치 독일이랑 일본 제국이 워낙 악의 축처럼 굴어서 그렇지, 연합국이라고 깨끗한 나라는 별로 없었음. 그나마 미국 정도?
Dove Sniper 더 무서운걸 아십니까? 만약 현재도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가 동맹을 유지하고 서로 공격하지 않고 세계를 지배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일본은 한국의 역사를 바꾸다 못해 아예 원래부터 일본의 식민지엿다며 역사를 조작하고 한국인도 자신을 일본인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한구긴 글쎄요 현재는 1939년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일본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때 동맹을 맺은 이유는 자원 확보와 식민지 확보였는데 미국 대공황이 원인이었죠 현재는 셋이서 동맹을 맺을 명분이 없고 맺는다 하더라도 일본과 독일은 정식적인 군대가 없습니다 둘 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죠 셋이서 세계정복을 한다 하더라도 일본이 그 당시처럼 아시아권에서 가장 근대화가 빨라 강대국이 돼 있는 것도 아니고 독일이 그 당시처럼 과학, 군사 등 미국과 소련보다도 강하지도 않고 이탈리아는.. 네.. 뭐.. 예나 지금이 나죠 그리고 유엔이라는 세계 평화 기구가 있기 때문에 현대에서 제국주의란 것이 가능할 수가 없어요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나 러시아 중국 북한이 더 설득력 높겠네요
윤형최 말년가서는 베르사유조약 배상금도 엄청줄고해서 별로 베르사유때매 전쟁일어난건아님. 오히려 대공황이 주된이유지. 대공황없었으면 나치도없고 일본폭주도없고 영국도 빛질일 없고 프랑스도 동남아영향력 유지할테니까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한국은 식민지확정이고 중국도 계속 뜯기는 호구나라역할일듯.
지현준 나치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 귀축형님들에 의해서 장애우 집시 유색인종들이 자손을 못낳아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생학은 독일 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등도 휩쓸고 있었지요. 애초의 우생학 발원지가 영국... 그들은 나치의 장애우 집시학살이 터져 비난여론이 고조된 후에야 강제불임수술 정책을 슬그머니 포기하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덜 잔혹하다 뿐, 본질은 똑같은 인간들.
우연히 영상을 보았는데 러일전쟁 부분에 심각한 이견이 있는데 매우 중요하고 큰 부분이라 말씀드립니다. 러일전쟁 및 한반도 정세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과거 냉전 시절 한쪽 당사자인 러시아, 즉 소련의 연구문서를 공유할 수 없어 대부분 일본 측 자료와 주장에 의존하여 진행되었고 그 결과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 한국내 연구에도 반영되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무려 러일전쟁 개전의 이유를 부동항이니 남하정책이니 용암포 사건이니 따위로 변명하는 것이죠. 2019년에 이를 기반으로한 주장을 개진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문제는 러시아 개방 이후 모스크바의 러시아 문서 보관소 개방이 이뤄지며 이 시기 러시아 정세에 대한 상당한 연구가 진척이 되었단 것이죠. 결론 적으로 말씀 드리면 러시아의 경우 한반도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만주가 더 중요했고 중국에 집중한 이유 조차 유럽, 중앙아시아에서 이탈되며 차선책으로 잠시 집중한 기간을 가졌을 뿐이죠 때문에 유럽에서 비스마르크 체제가 끝나고 1907년 영국과의 협정이 타결되자 발칸에 개입하며 이후 근 100년 넘게 극동에 아예 관심자체를 끊어 버린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1.러시아가 일본에 대한해협의 안전을 요구한 이유는 요동의 여순항 확보 이후 사실상 그 대한해협이 바로 러시아의 부동항이기 때문입니다. 블라디보스톡과 여순항을 이어주는 유일한 해로이고 더불어 여기가 통제 될 시 블라디보스톡이 사실상 봉쇄되는 효과를 가져오기에 대한해협의 안전보장이 가장 중요한 극동정책이 됩니다. 이는 반대로 대한해협만 확보가 된다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반도를 점령할 어떤 이유도 없단 이야기가 됩니다. 한반도는 3면이 바다인 지형으로 전통적으로 해군력이 열악한 러시아가 방어를 할 수 없는 국가입니다. 때문에 이를 확보가 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나온 정책이 한반도 중립화 정책이죠. 니시-로젠 협정으로 한반도에서 러시아 일본 양국의 전면 철수를 주장하였고 실제 그것이 실현되어 개항이래 한반도에서 외세가 완전히 사라진 기간이 7년간 존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대한제국 시기입니다. 중요한 포인트가 러시아가 이런 요구를 제시한 시기가 바로 아관파천 기간입니다. 즉 한반도의 국왕과 정부가 러시아 공사관에 인질을 자청하고 러시아가 한반도 정치세력을 완전히 장악했던 그때 러시아가 요구한 것이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세력확대가 아니라 중립화였단 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러시아는 그 목적이 만주와 중국 시장이었고 한반도는 이를 달성하는데 대한해협의 안전 및 만주의 전략 방어 말고는 하등의 필요성이 없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한반도의 정부는 극단적인 경우 괴뢰정부를 세우거나 친 러시아 성향의 정부 또는 중립국이 세워지면 될 뿐이지 식민지화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지역입니다. 방어가 안되거든요. 39도선 분할 계획은 이런 니시-로젠 협정으로 한반도에서 축출이 된 일본이 한반도의 기존 이권을 상실하자 영일동맹까지 맺으며 사실상 대러 전쟁을 시작한 후 러시아에서 만주 방어의 최소한의 개념으로 38도선 이상 일본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타협안일 뿐입니다. 일본은 개항 이래 한반도 식민지화에 국가의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고무라 외상의 발언) 러시아의 간섭으로 한반도 식민지화가 불가능해진 그 시점에서 이미 전쟁 준비를 시작해 국가 예산의 7할 국가수입품의 8할을 군수산업으로 대체하며 전시경제체제로 이미 전환 중이었고 1902년 영일동맹의 체결로 사실상 러일전쟁이 개전된 상황에서 애초 1903년 협상에서 나온 39도선 제안이던 뭘 하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지연 외교협정일 뿐입니다. 개전 전야 만주철병에 대한 압박을 해소하고자 로젠공사가 일본에 제시한 제스처일 뿐이거든요 러일전쟁 연구자들 특히 일본측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한 한국인 연구자들이 종종 이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실수를 하는데 마치 히틀러의 체코 합병안과 협상과정이 어떤 큰 의미를 지닌다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1902년 영일동맹으로 사실상 영국이 개입하며 러시아와 일본은 개전상태였고 이는 니콜라이2세의 문서에도 언급된 대표적 사안입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영국에 축출되었듯 또 다시 극동에서 축출되는 상황을 의미하며 실제 영국의 해군력을 감당할 여력이 안되었기에 만주철병 등으로 최대한 전쟁을 막고자 분투했지만 이런 외교적 양보를 국가위신 실추라 여긴 강경파가 1903년을 기점으로 득세를 하게 되고 어차피 일본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이때 러시아가 한반도를 사전에 완전 병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러시아에서 나온게 그 이유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면 러시아는 당시 시점에 극동에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영미와 일본을 이용해 만주 문호개방을 진행 한 이유였고 실제 전쟁도 허세만 날리며 지연외교를 지속하는 러시아를 두고 일본이 전쟁 준비가 끝나자 1904년 선제공격으로 러시아를 기습하며 개전이 되었죠. 당연히 러시아 강경파는 이후 실각했습니다. .
2.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지원한 이유는 만주를 상실할 위협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이미 러시아가 만주를 폐쇄하였고 중국시장의 위협받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영국에 밀려 난 후 유일하게 남겨진 중국시장 집중하게 되며 러청은행 설립 및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단축을 위해 동청철도 건설에 착수했고 이 동청철도 보호를 위해 만주에 출병하며 사실상 이미 만주를 장악한 상태였죠. 이는 만주상권에만 국환 된게 아니라 만주를 기반으로 친러성향의 청나라 정부와 연합하며 중국 시장에 침투하는 목표 때문입니다. 당연히 전통적으로 중국시장에서 우위를 가진 영,미가 이를 용납 할수 없었고 만주철병과 러시아 축출을 위해 일본을 이용하는 수순을 밟게 된 것 뿐이죠. 일본의 제스쳐는 한반도를 식민지화 한 후 만주을 개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개입으로 러시아가 1차 만주철병을 했음에도 협의된 2차 만주철병을 거부하고 강경파가 득세한 이야기는 위에 했습니다. 이는 유럽문제를 함께 봐야 하는데 러시아 제국의 외국인 투자의 상당부분을 담당한 프랑스 자본과 함께 프랑스의 견제를 위해 진행 된 독일자본 투자에 큰 의존하여 독일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가진 러시아의 경제, 외교 상황이 배경되었기에 중국내 독일 식민지와 연결하는 중국침투 문제, 러청은행 운영 및 만주 경영이 가능했지만 독일과의 외교가 점차 악화 되며 러시아 역시 사실상 만주경영 및 중국시장 진출이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 깨닫게 되던 때가 1900년 초반입니다. 1902년 영일동맹으로 사실상 개전상태가 되고 만주의 안전 보장이 불가능 해짐은 물론 극동지역의 장기적 방어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강경파가 주로 주장한게 이권의 확보를 통해 단기간 최대 이익을 극동에서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매파가 니콜라이2세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요인도 이런 이권의 확보가 주요했습니다. 그게 소위 압록강 벌채사업 이권과 연계한 용암포 점령 사건의 발단입니다. 만주와 중국 시장에 비하면 비교조차 안되는 이권이지만 투자비 회수차원에서 이조차 집착하는 단계이 이른것이죠. 1907년 영러 협상으로 50년에 걸친 영국의 대러시아 견제정책이 끝나고 (THE GREAT GAME)독일과의 외교단절괴 영프러 연합이 결성되기 전까지 진행 된 배경입니다. 일본은 이런 유럽국가들의 이익관계 속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적 사활을 걸었던 한반도 식민지화를 위해 영리하게 행동한 것 뿐이죠. 실제는 러일전쟁 이후 남만주에 진출한 일본은 과거 러시아와 동일하게 만주상권을 바로 폐쇄해 버렸고 중국침략의 야욕을 바로 드러내며 영미와 외교적 적대관계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게 구체화 된게 1차대전 이후 군축협상이고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적대 관계입니다.반대로 러시아는 극동에서 아무런 이권도 없이 축출 된 것 말고는 배상금 하나 없이 러일전쟁을 정리했고 다만 전쟁군비로 경제난이 벌어지며 1905년 혁명까지 발발한 상황에서 독일자본이 빠져나가고 유일하게 남겨진 프랑스 자본 및 미국 자본에 의존해 국가를 운영하며 1차대전까지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1907년 영러 협상 이후 사실상 극동정책을 폐기한 러시아가 바로 이어서 일본과의 만주협상을 진행하며 북만주에서 러시아가 최대 이권을 얻도록 즉 극동에서 지연철수를 하는 일본과의 협상이 진행 되었을 때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일빈에 온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한게 안중근 의사죠. 당시 일본이 북만주에서 양보한 댓가는 한반도의 병탄이었습니다. 이를 진행한게 러시아 온건파인 이토히로부미였죠 (흔히 일본 우익들이 이토히로부미는 한반도 병탄을 할 맘이 없는 온건파였다란 주장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사살되기 직전 이토히로부미와 일본 천황입회하 내각회의 결정사항이 한반도 합병 결정이고 그 문서가 현재 전해집니다 그 결정을 기반으로 러시아 협상에 나간거죠) 쓰다보니 장문이 되었는데 한국인들의 경우 구한말의 한반도 정치 외교를 보며 청나라나 러시아나 일본이나 전부 같은 목적으로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려 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 하다 보니 벌어진 일인데 실제로는 한반도를 식민지화 할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실행한 국가는 오직 일본이 유일합니다. 청나라는 그런 능력이 없었고 러시아도 한반도가 목표가 된 적이 없으며 그것을 유지할 능력도 없었도 다만 두 국가의 공통점이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를 하는데 가장 큰 방해물이었단 것이고 일본은 그 때마다 국가적 사활을 걸고 총력전으로 이들과 전쟁에 임하며 결국 한반도를 식민지화 했습니다. 러일전쟁에 대한 국내 서술이 특히 그러합니다. 영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주장 된 러시아남하정책?을 무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기막힌 경우가 있질 않나(같은 이유로 문제가 제기 되어 이젠 교과서에서 삭제되었습니다), 러시아의 극동정책 유럽 외교문제 그리고 여순항의 존재는는 싸그리 무시한채 러시아가 부동항 때문에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려했다는 괴상한 주장에서 부터, 심지어 러일전쟁의 개전 이유조차 무려 용암포를 러시아가 점령하여 러시아 때문에 개전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논리가 맞다면 중일전쟁은 노구교사건을 일으킨 중국 때문에 벌어진 일이 되는 것이죠...39도선 분할 안도 1902년 영일동맹의 체결로 사실상 해상이 봉쇄된 군사 비대칭 상황이 된 상황과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일본이 개전 타이밍을 계산하던 시기에 벌어진 협상입니다. 이전에 러시아에서 단 한번도 상정 된바 없는 러시아의 한반도 선제점령 계획이 강경파로 부터 쏟아지던 시기죠. 사실상 전쟁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단순히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를 나눠먹으려 했다라고 결론짓는 것는 실제 역사도 아니거 자칫 큰 오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해 이런 댓글을 남깁니다
이토에 관한건 빠져 있네여.. 당시 일본에서 거의 1인자라고 불러도 될 만큼의 권력을 가졌었고.. 온건파였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피격으로 이토가 사망하게 되고 급진파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이 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토가 안죽었으면 일본은 어떻게 됬을지는 ..
미국은 당시 진주만 공습에 대한 첩보를 이미 알고있었고, 무기를 팔아 엄청난 돈을 번 미국이 정식적으로 참전할 이유가 필요했는데 그래서 알고도 막지 않았다 이렇게 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등학교때 선생님과 사학과 교수님께서 그렇다 라고 확실은 못하지만 미국은 충분히 그랬을것이다 라는 추측이 매우 강하다고 하셨습니다.
진주만 피습 유도론의 경우 미국의 첩보력, 항모 등 주요함들의 부재로 나름 설득력 있게 호소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참고해봐야 할 것은, 첩보들 중에 하나가 진주만 공습이었던 것이지요. 뜬금없는 진주만 기습보다는 당시 전장인 동남아 지역의 분쟁이나 유럽 전선의의 첩보들이 더 유용하게 비춰졌을 것 같습니다.
시대의 흐름이죠. 어짜피 종전 후 거대식민지를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을겁니다. 누가 이겼건 간에 제국주의는 금새 끝장났을겁니다. 다만 영국이 제일 타격이 커보이는건 역시 영국이 어처구니 없을정도로 식민지가 많았기 때문이겠죠. 물론 제국주의는 거의 사라졌지만, 다만 유사제국주의는 아직도 판치고 있죠 ㅋㅋㅋ
어뢰방지 시설은 1차세계대전당시 쓸모없다고 판단되서 제거한거로 알고 소련대신 미국친거는 당시 일본군이 육군은 소련 해군은 미국을 쳐야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있고 몇년전에 노몬한에서 소련군한테 대판깨지고 더불어 중일전쟁으로인한 믹구의 경제제재로 인해 전쟁수행이 어려워지자 자원을 가진 약한 서방의 식민지를 공격하자고 해서 미국을 기습공격한거에요
진주만 공습 당시때 일본군은 진주만의 얕은 해변을 공격하기 위해 기막힌 생각을 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어뢰 주변에 나무로 감싸고 있는 것이였다. 그로 인하여 얕은 진주만의 수심을 재빠르게 올라와서 미군함을 침몰 시킬수 있었던 것이였다. 무엇보다 해군 공군의 독특한 전술 이였는데 바다 근처까지 낮게 날라와서 배 근처까지 접근한 다음에 재빠르게 어뢰를 투입하고 순식간에 날라가는 전술을 짜는 능력을 보여 줬습니다.
미국이 방심한 이유는 "설마 하와이까지 공격을 오겠어?"라는 이유가 큽니다, 공격을 하더라도 동남에이 있는 식민지정도나 공격할 줄 알았죠. 미국이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보급의 문제때문이었고 실제로 미국을 공격하는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와이를 공격까지 하고 점령까지 한다면 중간 중간 모항이 있는것도 아니였고 그 거리를 막무가내로 보급작전을 실행한다면 이미 중일전쟁에서조차 일본이 감당하기 힘든 자원을 쏟아붓고있는 일본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소모가 발생하니까요. 그런데 짜잔~ 절대란 없군요.
일본이 북진을 포기한 이유는 중일전쟁으로 인해서 이미 국방비가 gdp의 70프로에 육박해 있었고 소련의 침공에 대비해 구축한 귀한 기갑부대도 만주에 있었으나 그 부대 조차도 시베리아의 소련군이 들어온다면 방어를 장담못하는 수준이였기에 애초부터 포기한겁니다 그리고 미국의 눈치를 봐서 시베리아를 공격안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눈치를 볼 군부였으면 애초에 동남아공격을 안하죠..
공식적인것은 아니나 비공식적으로 에스빠냐는 훗날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 독소전쟁을 일으킬때 그 댓가로 자국병력4만명이 참전하게되며, 이들은 독일군내에서 유일한 독일군 스파니엔 사단인 제250보병사단이된다. 독일육군 제18군예하 소속 250보병사단이다. (Deutschen18armee korps 250 Division Infantrie Blau)독일군에서 정예중 최정예 사단이자 오로지 이 부대에서는 부대장병들이 모두 '에스빠냐'인들이었다.독일군에서 전투력뛰어나서 독일국방부 입장에서는 이들은 보배같은 존제였다고한다. '독일제 18군 예하 250보병사단(푸른사단)정보를 알고싶으면 인터넷에 자세한 설명을 찾아보면된다. 에스빠냐 내전당시 파시스트정권인 프랑꼬 정권을 독일이 지원하였고 파리강화조약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큼 소련에서 독일공군을 양성했으며(사실 천적의 뱃속에서 독일공군이 잉태됨), 전투 조종사들은 평상시에 항공사(루프트 한자)에서 근무하면서 항공기 조종경험을 쌓았다. 독일은 공군이외에 육군병력을 파병해 비밀리에 제건된 군대의 전투경험을 쌓게 되는 기회가 바로 에스빠냐 내전입니다.
일부로 그물을 설치 안했음,,,왜?태평양전쟁에 참전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고자...왜? 태평양전쟁에 참전하려했나?향후 세계패권을 거머쥐려면 지역패권자들을 굴복시켜야 한다는걸 알기에 아시아의 지역패권자인 일본을 꺾어야 했고, 그들을 꺾으려면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데 명분이 필요했음..
진주만 공습때 일본의 주목표는 미국 주력함대 격퇴였는데 때 마침 주력함대가 이유는 까먹었는데 부재중 이였죠 그래서 냅다 공격 병사들은 이겼다고 좋아했지만 장교들은 "허허허.....주옥됬네..." 이런 상태였죠ㅋ 미국의 주력함대를 격파하여 협상을 시도하려 했거든요 그렇게 전쟁 일어나고 영혼까지 개털렸죠
여러분, 제가 언제나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댓글을 통하여 이야기하실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만 더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달아주세요. 서로 몰랐던 부분들을 매너있는 토론을 통하여 채워나가는 건 정말 좋은 현상이지만, 상대방이 그 사실을 모른다고 깔보고 무시하고 욕설하고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있는게 아닙니다. 말그대로 기본적인 교과서 내용만 아는 분들도 있고, 따로 전문서적을 통하여 지식을 더 쌓은 분들도 있겠죠. 너무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남을 대하지 마시고, 댓글을 달기전에 한번만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시바스 음.. 몇가지 조금 다른의견이있습니다
말하신대로 미국은 필리핀과 하와이 둘중하나를 올줄 알고있었습니다만 필리핀에 무게를두어서 하와이를 기습당한건데요 증거로 필리핀주둔 미군에 경계령 및 항모 배치를 꺼려했습니다 이유로는 일본의 남중국해에서의 대규모 기동훈련 영국군이 가까움 결정적으로 항모의 운용거리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로는 독일이 채무때문에 전쟁에 뛰어들었다라는 말이 많은데요 저 돈가지고노는 유명한사진의 배경은 미국 대공황시기입니다 이때는 어느나라 할것없이 힘들었고 잘못된 경제정책이 가속시킨것뿐입니다 그러나 30년대들어서 독일경제가 호황이라 사실 빚갚는데는 문제가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년 앞당겨 다 갚을수있었죠 그 예로 빚변제를 하면서도 막대한 군대를 양성 및 기술개발을했죠 돈도없이 타국에서 몰래 기술개발은 불가능하죠 그리고 독일에게 전쟁배상금이 가장 큰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프랑스는 그 돈으로 마지노선을 지었고 영국은 식민지정비에 상당수를 썼으며 단치히사건때 남은 대다수의 빚을 탕감시켜줬습니다
지적이 아니라 의견정도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이브 가끔이지만 재밌게보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방송 부탁드립니다
1차대전 이후 관련 역사 컨텐츠는 시바스님 영상이 젤 나은듯. 오랜만입니다 화이팅.
A A 채무를 갚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는 없는거 같습니다. 오해하신거 같습니다. 채무를 완화해주고 독일이 회복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동안에 쌓인 독일국민들의 연합국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우경화가 가속되었고 그게 겉잡을 수 없어져 히틀러가 성공하고 결국 전쟁의 시한폭탄이 되어버렸다는 나비효과 비슷한 얘기지, 채무를 갚기위해 독일이 전쟁을 터트렸다는 내용으로 해석하신건 좀 비약이신듯 합니다.
그이탈리아전함의 이름이 '줄리오 체사레'입니당ㅎ
경민상 요즘 월드오브워쉽에서 많이 보이는 그친구 ㅋㅋ
해석 .1920~30 유럽은 개판이였다
개판도 그런 개판이 옶지 ㄹㅇ
충격과 공포. 혼돈 파괴 망가!
지금도 개판인듯한데
최데가 뭐냐 부끄럽지도 않냐?
00~10년대는 민족주의, 국수주의 팽창주의등 여러가지것들이 맞물려 갈등이 커져가고 10년 중반에 예견된 전쟁이 터지죠.
2~30년대에는 프랑스 영국 개새끼가 돈 손해본거 갚으라고 독일을 팔아재끼려고 하니까 다같이 빡쳐서 히틀니를 새우고,
아프리카 중동엔 영프가 독립약속 안지켜서 개빡쳐하던중이었죠.
결론, 영프개새끼, 히틀러는 악의 화신.
베르사유조약보다 더 심각한조약이있었죠 바로 트리아농 조약입니다 헝가리의기반시설과산업이 다붕괴되어버리고 70%영토와60%에달하는 인구를 잃어버릴정도입니다 그래도 배상금은 헝가리땅을 오홍홍좋아용하면서 먹은 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가 분담해서 내게됩니다
안돼 우리의 오헝제국이... ㅠ
진주만을 방어하던 미국은 진주만의 얕은수심과 함대간 포격전에 의한 전투를 상정했으면서 상륙에 대비하였는데 진주만을 최전방으로 보지 않고 후방으로 본것도 있긴있음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면 필리핀이 좀 고생하고 진주만에서 꿀빨다 후방지원해주면 된다는 안일한 안보의식도 있었고 게다가 일본의 열등한 인종들이 배운 군사교육은 미국보다 한수낮을것이라는 근자감도 있었음 많은것들이 맞물려 일어난전쟁입
그리고 일본은 내가 점령하고 뻐기면 미국이 지쳐서 요구를 들어주겠지하며 진주만 쳤다가 자존심을 건드려서 모가지 댕강
오팽귄 미국이 전쟁을 해서 인명피해가 나면 반전주의가 득세할거라는 계산이었던듯 한데 아니었음
김승환 영국도 똑같은 생각하면서 행복회로 돌리다 말레이ᆞ싱가포르 전투때 탈탈털림
김승환 웃긴게 아마 독일이나 다른 열강들이 했으면 조금 흠칫했을텐데 일본이 하니까 뭐~옐로우몽키따위가!!!선전포고도 없이 기습공격을?뻐킹 쟆!!ㅋㅋㅋㅋㅋㅋㅋ더군다나 당시 미국인들은 지금의 미국인들보다 체격적으로는 불리해도 대공황을 깡따구로 극복해낸분들이라 정신력면에서 차원이 달랐죠.ㅋㅋㅋ하필이면 미국역대 정신력이 가장 출중한세대가 이세대 ㅋㅋㅋㅋ근데 그 줄어든 체격이 일본보다 커 ㅋㅋㅋㅋ
지현준 글쎄요.전혀요.진주만 이후 일본군의 남방공세에서 연합군이 줄줄히 패배하고 필리핀,과다카날,웨이크등등을 일방적으로 뺏기기만하자 워싱턴의 분위기는 암울했고 일본과의 협상도 고민했을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독일이 소련한테 진주만처럼 선전포고 없이 기습뿐만 아니라 거기서 한술더떠 불가침 조약까지깨고 침략했는데 결국 어떻게 됬는지 보세요...
4:36 초 쯤에 나오는 지도는 뭐라고 검색해야 볼 수 있나요?
그리고 미국은 일본이 비행기로 배를 들이박을지 몰랐겠지
이현규 그리고 칼빼들고 돌격하는것도 예상하지 못했겠죠
김태운 그리고 유인어뢰가 있을줄도 몰랐겠죠
그리고 일본은 미드웨이에서 개털릴줄 몰랐겠지
애초에 미드웨이는 뭐...일본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죠. 연합함대도 미국군의 생산력이 너무 좋아서 빠르게 결판을 내고자 한 것인데...현시창
Ins J 첨엔 베테랑 파일럿들이 들이박으니까 성공했지만 전쟁중에 간신히 비행술만 배운 파일럿이 아군함 적군함 구별해서 정확히 갑판에 들이받는다는게...
끊어 읽는게 약간 어색하시긴 하지만 그래도 유익한 영상이었네요 ㅎㅎ
수심이 얕은이 맞지 않나요? 얇다는 두께에
관련?
시바스님 원래 말 되게 빨랐을듯 ㅋㅋ
평소같으면 그냥 확확 읽고 넘어갈텐데, 못 알아듣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그냥 봇처럼 읽었습니다. ㄲㄲ
누구나 언어능력이 다 같진 않겠죠 ㅎㅎㅎ 배려차원 보기 좋네요 ㅎㅎ
추축국:나치독일,일본,비시프랑스,이탈리아,헝가리,불가리아,루마니아,핀란드(공동교전국),태국,이라크,유고슬라비아,자유 인도
연합국:영국,미국.중국,프랑스(자유프랑스),소련,폴란드,노르웨이,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인도등등
중립국:스위스,스웨덴등등
밑에 중립국이라고 얘네도 잘못이 있다는 말도 안돼는소리 하시는분이 있던데 국가는 자기의 국익과 국민을 우선시해야되는게 맞습니다....
스웨덴은 독일에게 직접 군대 주둔을 허용하고 철까지 지원해서 연합국한테 욕먹었습니다
서정훈 노르웨이처럼 철저하게 밟히는걸 본 스웨덴 입장에서는 어짤수 없는 선택이였죠. 그때당시 사브 그리펜 같은 뽕빨나는 전투기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고... 슈르스트뢰밍 마시쪙!! 웅햣햣
제가 볼때는 지켜줄 여력도 없으면서 욕만 하던 연합국이 더 염치가 없는 듯 보임. 그러니까 슈르스트뢰밍 마시쪙!!! 어흠...
핀란드랑 자유인도같은 경우는 압제자(핀란드의 경우 소련, 자유인도의 경우 대영제국)에 맞서 싸우기 위한 방편으로 추축을 선택한거라 비난하기 어렵죠.. 까놓고 말해서 나치 독일이랑 일본 제국이 워낙 악의 축처럼 굴어서 그렇지, 연합국이라고 깨끗한 나라는 별로 없었음. 그나마 미국 정도?
Simon 둘다 공동전선이라서 애매해서 추축에 넣었습니당
이렇게 본다면 히틀러라는 사람이 나올수 있게 한건 연합국의 책임도 어느정도 있는거네요.
실리콘 심지어는 당시 미국 유대인 금융자본 세력들이 미국 은행에 상당한 부담을 주면서까지 엄청난 거액을 히틀러에게 독일에서 집권할수 있도록 지원해줌. 심지어는 독일 내 쿠데타 지원 논의까지 오고감.. 결과적으로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 끔살 ㄱㅅㄱㅅ
일단 유대계 미국인들의 히틀러 자금 지원은 팩트이므로 이론의 여지는 없을겁니다.
영국도 동남아 중동에서 엄청난 양의 학살을 감행함 물론 미국 프랑스 포함
실리콘 근데 연합국이 베르사유 조약을 강요한건 1차대전때 제정 독일에게 얻어맞아서임. 고로 히틀러가 탄생한건 독일 때문임.
실리콘 어디서 들었는데 1차세계대전때 영국군이 히틀러를 죽일수있었는데 병사들의 약속? 때문에 그냥 돌려보냈다 하던데
6:13에 나왔던 포는 일본이 러시아의 한 고지를 공격할 때 쓴 포 맞죠?
1차세계대전 연합국의 원수가 이런말을 했죠 이조약은 20년간의 평화에 불과하다 우리는 너무많은것을 요구하고있다. 라구요
당시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반응은 국가별로 달랐죠.
이건 너무약하다.
-프랑스
이딴게 조약이냐?
-영국
조국을 죽이는 이딴 조약에 서명할수 없다.
-독일(이후 대표단은 단체로 사표)
....
-미국(회담장을 나가버림)
레닌이 공개한식민지 분배문서는 어떻게 어디서 확인이 가능한가요?
국어책 읽기 ㅋㅋㅋㅋ 하지만 바스님은 도덕책
좀비맘 띄어쓰기 장인
풋사과향 음? 뉀?
시바스님 꿀잼에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헌데 진지하게 세계대전 전개 과정을 시리즈로 올려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중간중간에 이번 영상처럼 잘 알려지지 않거나 하는 사건도 같이 올리시면 재미 있을 것 같아서요.
넵, 고려해보겠습니당
자료 자세히 조사한건 좋은데 너무 끊어읽으시다보니 답답하네요 ㄷㄷ
이런거 많이 올려주세요!!
나레이션 하실때 중간중간 목소리톤을 살짝 올리시는데 그거 신경써주셨으면 좋겠어요 ㅠㅠ
말을 이어서 해야하는 부분에서 말끝을 올리며 끊어버리니 소리가 어색할 수 밖에...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거를 멍청하다고 비웃는 인간들 있는데 당시 일본 미국 선제공격 안하면 무조건 망할수 밖에 없었음 미국이 대일 석유 금수조치 때문에 일본은 중국이랑 전쟁하는데 필요한 자원이 고갈되고 있었고 자원 고갈되면 일본 아무리 무기 성능 좋아도 중국 못이김
일본은 1차세계대전의 독일을 보면서 고립된 환경에서의 장기전이 가능해야한다는걸 알았고, 결국 이를 중국으로 해결하고자함. 그런데 중국의 저항력이 상상초월이었고, 연합국의 무기지원으로 개망
인력을 무시했다간 큰 코 다칩니다
독-소전 당시
'소련12개 사단을 없애면 다른 12개 사단이 나타난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님 아무리 저항이 쎄더라도 국민이 1천명이면 금방 학살 하는게 국민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신병도 계속 나오니 어떻게든 버티지 나라도 크고
가장 큰 원인은 "일본인은 본래 초식동물이니 길가의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말하던 당시 버마전선의 사령관이 개트롤해서 망한 것인데
.. ㅋㅋ
대한민국 독립 스파이 '무다구치 렌야'
애초에 추축국에 가담할생각자체를 안했어야죠
00:47 얇은-얕은
모르고있던 내용도 알게되었고 유익한 영상 이었습니다.
1차대전은 끝날때부터 2차대전의 불씨를 남겨놓았다 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네요 (베르사유 조약)
패전국한테 대우가 넘 ㅈ같아서 벌어진...
베르사유 조약은 나중에 연합국이 엄청 깍아 주었고 2차세계대전의 원인은 세계 경제 대공황 입니다
4분 33초에 있는 지도 출처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게임 공략 볼려고 들어왔는데 유익한 역사이야기도 듣네요 감사합니다
여담으로 진주만 공격당시 미군은 이미 레이더로 확인까지 했지만 같은 날 지원오기로한 편대로 오인해 요격기가 출발하지 않았죠(물론 대공사격 준비도...)
시바스님 목소리 녹는다
2차 세계대전은 영국과 프랑스가 자초한 일...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내용이 짧아서 자세히는 몰랐는데 이 영상은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셔서 보기 편하긴 하네요
애초에 교과서에서 세계대전을 그렇게 자세히 다루질 않으니...
이런 영상은 참 올바릅니다.
목소리 톤은 좋으신데 글 읽는 말투나 억양이 많이 개선시킬 부분인듯요. 잘 봤어요
강한나라들만 유리한 조약을 만들어 지들끼리 잘해보겠다는거네/./... 무섭다
Dove Sniper 글쎄요 그 당시에는 그랬지만
지금에 오면서 그 조약들을 기반으로 약소국에게 이익이 되는 조약과 기구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추축국이 승리했다면
21세기에서도 제국주의가 유지되었겠죠
최성주 .. 추축국이 이겼으면 우리 아직 독립 못했을수도 있겠네요. 무섭다
Dove Sniper 더 무서운걸 아십니까? 만약 현재도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가 동맹을 유지하고 서로 공격하지 않고 세계를 지배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일본은 한국의 역사를 바꾸다 못해 아예 원래부터 일본의 식민지엿다며 역사를 조작하고 한국인도 자신을 일본인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한구긴 글쎄요 현재는 1939년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일본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때 동맹을 맺은 이유는 자원 확보와 식민지 확보였는데 미국 대공황이 원인이었죠 현재는 셋이서 동맹을 맺을 명분이 없고 맺는다 하더라도 일본과 독일은 정식적인 군대가 없습니다 둘 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죠 셋이서 세계정복을 한다 하더라도 일본이 그 당시처럼 아시아권에서 가장 근대화가 빨라 강대국이 돼 있는 것도 아니고 독일이 그 당시처럼 과학, 군사 등 미국과 소련보다도 강하지도 않고 이탈리아는.. 네.. 뭐.. 예나 지금이 나죠 그리고 유엔이라는 세계 평화 기구가 있기 때문에 현대에서 제국주의란 것이 가능할 수가 없어요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나 러시아 중국 북한이 더 설득력 높겠네요
최성주 음 그렇겟군요...제 의견이 살짝 부족하군요
진짜 독일이 저렇게 힘들었는데 히틀러가 그렇게 일으켜 세운거 보면 히틀러는 진짜 대단한 인물 아니냐 솔직히 2차 세계대전에다가 유대인 학살같은 미친짓만 안했으면 진짜 존경할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알고있기는 했지만 연합국들도 참 나쁨
chang bin Yu 베르사유 조약이 가혹하지 않았더라면 나치독일이 탄생 했을까요...?
독일이 패해서 독일이 한 쓰레기짓이 많이 들어나는거지 독일이 승리했으면 처칠이 지금의 히틀러의 비난을 받을거라는 말도 많더라구요...
Tea Hyen Lee 근데 히틀러는 개새끼맞음. ㅇㅇ 아마 추축국이이겼으면 유대인 집시뿐만아니라 장애인 유색인은 유럽에서 사라졌을듯. 그나마 유색인중에는 일본인 일본식민지령 황인정도는 살아남겠지만...
윤형최 말년가서는 베르사유조약 배상금도 엄청줄고해서 별로 베르사유때매 전쟁일어난건아님. 오히려 대공황이 주된이유지. 대공황없었으면 나치도없고 일본폭주도없고 영국도 빛질일 없고 프랑스도 동남아영향력 유지할테니까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한국은 식민지확정이고 중국도 계속 뜯기는 호구나라역할일듯.
지현준 나치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 귀축형님들에 의해서 장애우 집시 유색인종들이 자손을 못낳아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생학은 독일 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등도 휩쓸고 있었지요. 애초의 우생학 발원지가 영국... 그들은 나치의 장애우 집시학살이 터져 비난여론이 고조된 후에야 강제불임수술 정책을 슬그머니 포기하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덜 잔혹하다 뿐, 본질은 똑같은 인간들.
우연히 영상을 보았는데 러일전쟁 부분에 심각한 이견이 있는데 매우 중요하고 큰 부분이라 말씀드립니다. 러일전쟁 및 한반도 정세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과거 냉전 시절 한쪽 당사자인 러시아, 즉 소련의 연구문서를 공유할 수 없어 대부분 일본 측 자료와 주장에 의존하여 진행되었고 그 결과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 한국내 연구에도 반영되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무려 러일전쟁 개전의 이유를 부동항이니 남하정책이니 용암포 사건이니 따위로 변명하는 것이죠. 2019년에 이를 기반으로한 주장을 개진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문제는 러시아 개방 이후 모스크바의 러시아 문서 보관소 개방이 이뤄지며 이 시기 러시아 정세에 대한 상당한 연구가 진척이 되었단 것이죠. 결론 적으로 말씀 드리면 러시아의 경우 한반도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만주가 더 중요했고 중국에 집중한 이유 조차 유럽, 중앙아시아에서 이탈되며 차선책으로 잠시 집중한 기간을 가졌을 뿐이죠 때문에 유럽에서 비스마르크 체제가 끝나고 1907년 영국과의 협정이 타결되자 발칸에 개입하며 이후 근 100년 넘게 극동에 아예 관심자체를 끊어 버린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1.러시아가 일본에 대한해협의 안전을 요구한 이유는 요동의 여순항 확보 이후 사실상 그 대한해협이 바로 러시아의 부동항이기 때문입니다. 블라디보스톡과 여순항을 이어주는 유일한 해로이고 더불어 여기가 통제 될 시 블라디보스톡이 사실상 봉쇄되는 효과를 가져오기에 대한해협의 안전보장이 가장 중요한 극동정책이 됩니다. 이는 반대로 대한해협만 확보가 된다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반도를 점령할 어떤 이유도 없단 이야기가 됩니다. 한반도는 3면이 바다인 지형으로 전통적으로 해군력이 열악한 러시아가 방어를 할 수 없는 국가입니다. 때문에 이를 확보가 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나온 정책이 한반도 중립화 정책이죠. 니시-로젠 협정으로 한반도에서 러시아 일본 양국의 전면 철수를 주장하였고 실제 그것이 실현되어 개항이래 한반도에서 외세가 완전히 사라진 기간이 7년간 존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대한제국 시기입니다. 중요한 포인트가 러시아가 이런 요구를 제시한 시기가 바로 아관파천 기간입니다. 즉 한반도의 국왕과 정부가 러시아 공사관에 인질을 자청하고 러시아가 한반도 정치세력을 완전히 장악했던 그때 러시아가 요구한 것이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세력확대가 아니라 중립화였단 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러시아는 그 목적이 만주와 중국 시장이었고 한반도는 이를 달성하는데 대한해협의 안전 및 만주의 전략 방어 말고는 하등의 필요성이 없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한반도의 정부는 극단적인 경우 괴뢰정부를 세우거나 친 러시아 성향의 정부 또는 중립국이 세워지면 될 뿐이지 식민지화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지역입니다. 방어가 안되거든요. 39도선 분할 계획은 이런 니시-로젠 협정으로 한반도에서 축출이 된 일본이 한반도의 기존 이권을 상실하자 영일동맹까지 맺으며 사실상 대러 전쟁을 시작한 후 러시아에서 만주 방어의 최소한의 개념으로 38도선 이상 일본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타협안일 뿐입니다. 일본은 개항 이래 한반도 식민지화에 국가의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고무라 외상의 발언) 러시아의 간섭으로 한반도 식민지화가 불가능해진 그 시점에서 이미 전쟁 준비를 시작해 국가 예산의 7할 국가수입품의 8할을 군수산업으로 대체하며 전시경제체제로 이미 전환 중이었고 1902년 영일동맹의 체결로 사실상 러일전쟁이 개전된 상황에서 애초 1903년 협상에서 나온 39도선 제안이던 뭘 하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지연 외교협정일 뿐입니다. 개전 전야 만주철병에 대한 압박을 해소하고자 로젠공사가 일본에 제시한 제스처일 뿐이거든요 러일전쟁 연구자들 특히 일본측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한 한국인 연구자들이 종종 이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실수를 하는데 마치 히틀러의 체코 합병안과 협상과정이 어떤 큰 의미를 지닌다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1902년 영일동맹으로 사실상 영국이 개입하며 러시아와 일본은 개전상태였고 이는 니콜라이2세의 문서에도 언급된 대표적 사안입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영국에 축출되었듯 또 다시 극동에서 축출되는 상황을 의미하며 실제 영국의 해군력을 감당할 여력이 안되었기에 만주철병 등으로 최대한 전쟁을 막고자 분투했지만 이런 외교적 양보를 국가위신 실추라 여긴 강경파가 1903년을 기점으로 득세를 하게 되고 어차피 일본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이때 러시아가 한반도를 사전에 완전 병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러시아에서 나온게 그 이유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면 러시아는 당시 시점에 극동에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영미와 일본을 이용해 만주 문호개방을 진행 한 이유였고 실제 전쟁도 허세만 날리며 지연외교를 지속하는 러시아를 두고 일본이 전쟁 준비가 끝나자 1904년 선제공격으로 러시아를 기습하며 개전이 되었죠. 당연히 러시아 강경파는 이후 실각했습니다. .
2.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지원한 이유는 만주를 상실할 위협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이미 러시아가 만주를 폐쇄하였고 중국시장의 위협받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영국에 밀려 난 후 유일하게 남겨진 중국시장 집중하게 되며 러청은행 설립 및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단축을 위해 동청철도 건설에 착수했고 이 동청철도 보호를 위해 만주에 출병하며 사실상 이미 만주를 장악한 상태였죠. 이는 만주상권에만 국환 된게 아니라 만주를 기반으로 친러성향의 청나라 정부와 연합하며 중국 시장에 침투하는 목표 때문입니다. 당연히 전통적으로 중국시장에서 우위를 가진 영,미가 이를 용납 할수 없었고 만주철병과 러시아 축출을 위해 일본을 이용하는 수순을 밟게 된 것 뿐이죠. 일본의 제스쳐는 한반도를 식민지화 한 후 만주을 개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개입으로 러시아가 1차 만주철병을 했음에도 협의된 2차 만주철병을 거부하고 강경파가 득세한 이야기는 위에 했습니다. 이는 유럽문제를 함께 봐야 하는데 러시아 제국의 외국인 투자의 상당부분을 담당한 프랑스 자본과 함께 프랑스의 견제를 위해 진행 된 독일자본 투자에 큰 의존하여 독일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가진 러시아의 경제, 외교 상황이 배경되었기에 중국내 독일 식민지와 연결하는 중국침투 문제, 러청은행 운영 및 만주 경영이 가능했지만 독일과의 외교가 점차 악화 되며 러시아 역시 사실상 만주경영 및 중국시장 진출이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 깨닫게 되던 때가 1900년 초반입니다. 1902년 영일동맹으로 사실상 개전상태가 되고 만주의 안전 보장이 불가능 해짐은 물론 극동지역의 장기적 방어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강경파가 주로 주장한게 이권의 확보를 통해 단기간 최대 이익을 극동에서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매파가 니콜라이2세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요인도 이런 이권의 확보가 주요했습니다. 그게 소위 압록강 벌채사업 이권과 연계한 용암포 점령 사건의 발단입니다. 만주와 중국 시장에 비하면 비교조차 안되는 이권이지만 투자비 회수차원에서 이조차 집착하는 단계이 이른것이죠. 1907년 영러 협상으로 50년에 걸친 영국의 대러시아 견제정책이 끝나고 (THE GREAT GAME)독일과의 외교단절괴 영프러 연합이 결성되기 전까지 진행 된 배경입니다. 일본은 이런 유럽국가들의 이익관계 속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적 사활을 걸었던 한반도 식민지화를 위해 영리하게 행동한 것 뿐이죠. 실제는 러일전쟁 이후 남만주에 진출한 일본은 과거 러시아와 동일하게 만주상권을 바로 폐쇄해 버렸고 중국침략의 야욕을 바로 드러내며 영미와 외교적 적대관계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게 구체화 된게 1차대전 이후 군축협상이고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적대 관계입니다.반대로 러시아는 극동에서 아무런 이권도 없이 축출 된 것 말고는 배상금 하나 없이 러일전쟁을 정리했고 다만 전쟁군비로 경제난이 벌어지며 1905년 혁명까지 발발한 상황에서 독일자본이 빠져나가고 유일하게 남겨진 프랑스 자본 및 미국 자본에 의존해 국가를 운영하며 1차대전까지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1907년 영러 협상 이후 사실상 극동정책을 폐기한 러시아가 바로 이어서 일본과의 만주협상을 진행하며 북만주에서 러시아가 최대 이권을 얻도록 즉 극동에서 지연철수를 하는 일본과의 협상이 진행 되었을 때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일빈에 온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한게 안중근 의사죠. 당시 일본이 북만주에서 양보한 댓가는 한반도의 병탄이었습니다. 이를 진행한게 러시아 온건파인 이토히로부미였죠 (흔히 일본 우익들이 이토히로부미는 한반도 병탄을 할 맘이 없는 온건파였다란 주장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사살되기 직전 이토히로부미와 일본 천황입회하 내각회의 결정사항이 한반도 합병 결정이고 그 문서가 현재 전해집니다 그 결정을 기반으로 러시아 협상에 나간거죠) 쓰다보니 장문이 되었는데 한국인들의 경우 구한말의 한반도 정치 외교를 보며 청나라나 러시아나 일본이나 전부 같은 목적으로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려 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 하다 보니 벌어진 일인데 실제로는 한반도를 식민지화 할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실행한 국가는 오직 일본이 유일합니다. 청나라는 그런 능력이 없었고 러시아도 한반도가 목표가 된 적이 없으며 그것을 유지할 능력도 없었도 다만 두 국가의 공통점이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를 하는데 가장 큰 방해물이었단 것이고 일본은 그 때마다 국가적 사활을 걸고 총력전으로 이들과 전쟁에 임하며 결국 한반도를 식민지화 했습니다. 러일전쟁에 대한 국내 서술이 특히 그러합니다. 영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주장 된 러시아남하정책?을 무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기막힌 경우가 있질 않나(같은 이유로 문제가 제기 되어 이젠 교과서에서 삭제되었습니다), 러시아의 극동정책 유럽 외교문제 그리고 여순항의 존재는는 싸그리 무시한채 러시아가 부동항 때문에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려했다는 괴상한 주장에서 부터, 심지어 러일전쟁의 개전 이유조차 무려 용암포를 러시아가 점령하여 러시아 때문에 개전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논리가 맞다면 중일전쟁은 노구교사건을 일으킨 중국 때문에 벌어진 일이 되는 것이죠...39도선 분할 안도 1902년 영일동맹의 체결로 사실상 해상이 봉쇄된 군사 비대칭 상황이 된 상황과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일본이 개전 타이밍을 계산하던 시기에 벌어진 협상입니다. 이전에 러시아에서 단 한번도 상정 된바 없는 러시아의 한반도 선제점령 계획이 강경파로 부터 쏟아지던 시기죠. 사실상 전쟁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단순히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를 나눠먹으려 했다라고 결론짓는 것는 실제 역사도 아니거 자칫 큰 오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해 이런 댓글을 남깁니다
진주만습격때 미국병력들은 다 다른곳에있었고 수송선하고 근무하던 일부병력만 피해본걸로 아는뎅...아니라면 정확한게 뭔지 알랴주세여 스승님들ㅠ
지구 Earth25 진주만 함선이랑 군사시설들 다 박살냈는데 보급시설은 남아서 미국에 왕창 쌓여있던 비행기랑 함선가지고 개털어버렸습니다
!! 전함들(물론 쓸모도 별로없던 구식 석탄 전함들..) 엄청 쳐맞았는데, 수송선만이라니요오옷!!
25노트는 커녕 20노트도 안나오는 미국의 구식전함들은 함대기동전에 동원되기는 무리였지요. 대부분 연안방어용이나 아니면 다 이겨먹은 전쟁에 꼽사리 따라가서 지상포격 지원하는 것밖에는 무쓸모. (한마디로 일본은 거의 쓸모 없는 짓만 하고 어그로만 왕창 끈 셈임)
다만 진주만의 그 낮은 수심덕에 격침된 전함들도 다시 인양하여 수리하였죠.
함대를 완전히 박살내야 하는데.. 이탈리아 전함들도 그냥 수리해서 다시 사용하는거 보면 수심이 중요한듯
독일이 비스마르크급 2번함인 티르피츠를 그 방법으로 고쳐쓰다가 지진폭탄으로 훅 가버렸죠
그건 일본이 수리시설을 파괴시키지않아서..
다크공명 유일하게 못건진 애리조나함위에는 영상의 흰건물이 지어졌죠
그리고 일본의 큰실수가 산업시설,기름 저장탱크등 중요시설보다는 함선만 공격했고 결과적으론 미국은 큰피해는 없었죠 파손된배도 금방 수리했고
이토에 관한건 빠져 있네여..
당시 일본에서 거의 1인자라고 불러도 될 만큼의 권력을 가졌었고.. 온건파였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피격으로 이토가 사망하게 되고 급진파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이 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토가 안죽었으면 일본은 어떻게 됬을지는 ..
이토가 안죽엇다면 일본은 전쟁을 진행하지 않앗을겁니다. 그러나 확실한것은 전쟁을 치르지 않앗다면 일본은 한반도를 현재까지도 유지할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적으로 독립이 되지 않거나 한참뒤에야 독립이 될것이라 생각됩니다
은~ 에~ 질질 끄는 말투 바꾸시는게 더 편하게 들릴것같습니다
잘 봤습니다 얇은 수심->얕은 수심인 것 같습니다
진주만 기습이 먹힌 가장 큰 이유는 레이더병이 수상한 비행기들이 포착된다고 보고했는데 그 보고를 받은놈이 레이더 오작동일꺼라며 무시하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게 가장 큰 문제였음
ㅋㅋㅋㅋㅋ 톤이 특이하세요, 뭔가 ㅋㅋㅋ
미국은 당시 진주만 공습에 대한 첩보를 이미 알고있었고, 무기를 팔아 엄청난 돈을 번 미국이 정식적으로 참전할 이유가 필요했는데 그래서 알고도 막지 않았다 이렇게 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등학교때 선생님과 사학과 교수님께서 그렇다 라고 확실은 못하지만 미국은 충분히 그랬을것이다 라는 추측이 매우 강하다고 하셨습니다.
진주만 피습 유도론의 경우 미국의 첩보력, 항모 등 주요함들의 부재로 나름 설득력 있게 호소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참고해봐야 할 것은, 첩보들 중에 하나가 진주만 공습이었던 것이지요. 뜬금없는 진주만 기습보다는 당시 전장인 동남아 지역의 분쟁이나 유럽 전선의의 첩보들이 더 유용하게 비춰졌을 것 같습니다.
사실 2차세계대전 최대 패전국은 영국입니다 ㅋㅋ 겉만 놓고보면 승전국인데 식민지 다뺏김 ~~
J 44 바로 옆집 아일랜드도 독립시켜주고 캐나다랑 남아프리카 연방도 거의 반 독립국이나 다름 없었으니 이미 식민지는 대부분 상실한 상태나 다름없었죠
시대의 흐름이죠. 어짜피 종전 후 거대식민지를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을겁니다. 누가 이겼건 간에 제국주의는 금새 끝장났을겁니다. 다만 영국이 제일 타격이 커보이는건 역시 영국이 어처구니 없을정도로 식민지가 많았기 때문이겠죠. 물론 제국주의는 거의 사라졌지만, 다만 유사제국주의는 아직도 판치고 있죠 ㅋㅋㅋ
냉전, 신냉전. 진영논리. 어쩌고 보면 잠복상태로 들어간 병균처럼, 형태만 바꾼 제국주의라고 볼수 있겠군요.
HMS Prince of wales 안녕 너무 오랫만이다 우리 마지막으로 함께한 때가 언제였지?
1941년쯤인가?
솔직히 일본도 나치도아닌 17 18 19 20세기 세계대전과 전쟁과 식민지관련문제보면 영국이 가장쓰레기짓많이함
얇은이 아니라 얕은 수심이라 말하시는게 더 자연스러울것 같습니다. 얇은은 두께 얕은은 깊이를 뜻해서요.
저만 1머전 때 미군과 영국군이 쓰던 저 헬멧 멋지나요
저는 독일군 쪽이라서....
물론 멋있긴하지만
어뢰방지 시설은 1차세계대전당시 쓸모없다고 판단되서 제거한거로 알고 소련대신 미국친거는 당시 일본군이 육군은 소련 해군은 미국을 쳐야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있고 몇년전에 노몬한에서 소련군한테 대판깨지고 더불어 중일전쟁으로인한 믹구의 경제제재로 인해 전쟁수행이 어려워지자 자원을 가진 약한 서방의 식민지를 공격하자고 해서 미국을 기습공격한거에요
구독누르고 갑니다
프리즌 아키텍트 5화는 언제나와욜?
곧 나옵니당 ㅎㅎ
학교들은 이 영상을 온클에 써야한다
잘 봤습니다 ㅎ 말을 조금만 빠르게하면 좋을 것같아요 ! 1.5배로 봐도 빠르지가 않아요
민족자결주의 내용 자세히 고1때 나와요 교과서에서도 정확하게 알려줌
수심은 '얇다'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얕다'라고 하셔야 합니다
이런 깨알 영상 좋아용
수심12미터인데 그물설치하면 배는 어떻게다님요
어뢰 방지용 그물은 1차세계대전때 나온 물건으로 쓰면 함선이 움직일수가 없어 나중가면 그냥 안쓰게되서 있긴 하지만 왜 쓰냐는 물건이 되엇지요
이야 ㄹㅇ 대단하시다
이런거 너무 좋아
그리고 미국은 민족 자결주의를 발표하고도 친미국가들의 식민지 지배를 철저히 방관;;
이집트 인도 한국 남아공 콩고 중아공 등등...
확실히 민족 자결주의는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주장이었지요
미국이 진주만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이 선전 포고 없이 기습 공격을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첫 공격 직후 몇시간이 흐른 뒤에야 선전 포고를 했다고 하네요.
진주만 공습 당시때 일본군은 진주만의 얕은 해변을 공격하기 위해 기막힌 생각을 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어뢰 주변에 나무로 감싸고 있는 것이였다. 그로 인하여 얕은 진주만의 수심을 재빠르게 올라와서 미군함을 침몰 시킬수 있었던 것이였다. 무엇보다 해군 공군의 독특한 전술 이였는데 바다 근처까지 낮게 날라와서 배 근처까지 접근한 다음에 재빠르게 어뢰를 투입하고 순식간에 날라가는 전술을 짜는 능력을 보여 줬습니다.
제일 궁금했던점은 러일전쟁당시에
영국과 일본이 임시동맹국이라고 하던데 그말이 사실이던가요?
당시 러시아의 남하저지하기위해 동맹맺은거라
연합국:이놈은 독일의 동맹이야.. 전략을 보자..
일본:반자이이이이!!!!!~~~~~~~~
연합국:시불 뭐여
일본: 전쟁은 지지만 정신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돌격!!!
1개 빼먹으심 독일이 패전한 전투는 노르망디 해전이 아니라 모스크바 공방전때문이라고
CK G 노르망디로 급소를 찔럿고 바그라티온으로 숨통을 끊었다
늘새로워
짜릿해!
시바스가 최고야
미국이 방심한 이유는 "설마 하와이까지 공격을 오겠어?"라는 이유가 큽니다, 공격을 하더라도 동남에이 있는 식민지정도나 공격할 줄 알았죠.
미국이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보급의 문제때문이었고 실제로 미국을 공격하는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와이를 공격까지 하고 점령까지 한다면 중간 중간 모항이 있는것도 아니였고 그 거리를 막무가내로 보급작전을 실행한다면 이미 중일전쟁에서조차 일본이 감당하기 힘든 자원을 쏟아붓고있는 일본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소모가 발생하니까요.
그런데 짜잔~ 절대란 없군요.
일본이 북진을 포기한 이유는 중일전쟁으로 인해서 이미 국방비가 gdp의 70프로에 육박해 있었고 소련의 침공에 대비해 구축한 귀한 기갑부대도 만주에 있었으나 그 부대 조차도 시베리아의 소련군이 들어온다면 방어를 장담못하는 수준이였기에 애초부터 포기한겁니다 그리고 미국의 눈치를 봐서 시베리아를 공격안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눈치를 볼 군부였으면 애초에 동남아공격을 안하죠..
마지막명언보다가쓰러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베네수엘라하고 스페인이 독일에게 자원병을 파견했나요?
스폐인은 나중에 아예 추축국을 가입해서 참전 했으니 그랬갰죠 베네수엘라도 호이4에서 추축국에 계속 자원병 보내는거 보면 자원병 보냈갰죠?
베네수엘라는 모르겠지만 스페인은 독일 슬쩍 지원해주긴 했습니다. 물론 프랑코랑 수염쟁이랑 사이가 안좋아서 본격적인 참전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그냥 간접적인 지원
스페인은 추축국 가입을 하지 않았고 가입하려는걸 오히려 독일측에서 막았죠 그대신 자원병은 막지 않았지만
공식적인것은 아니나 비공식적으로 에스빠냐는 훗날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 독소전쟁을 일으킬때 그 댓가로 자국병력4만명이 참전하게되며, 이들은 독일군내에서 유일한 독일군 스파니엔 사단인 제250보병사단이된다. 독일육군 제18군예하 소속 250보병사단이다.
(Deutschen18armee korps 250 Division Infantrie Blau)독일군에서 정예중 최정예 사단이자 오로지
이 부대에서는 부대장병들이 모두 '에스빠냐'인들이었다.독일군에서 전투력뛰어나서 독일국방부 입장에서는 이들은 보배같은 존제였다고한다. '독일제 18군 예하 250보병사단(푸른사단)정보를 알고싶으면 인터넷에 자세한 설명을 찾아보면된다.
에스빠냐 내전당시 파시스트정권인 프랑꼬 정권을 독일이 지원하였고 파리강화조약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큼 소련에서 독일공군을 양성했으며(사실 천적의 뱃속에서 독일공군이 잉태됨), 전투 조종사들은 평상시에 항공사(루프트 한자)에서 근무하면서 항공기 조종경험을 쌓았다.
독일은 공군이외에 육군병력을 파병해 비밀리에 제건된 군대의 전투경험을 쌓게 되는 기회가 바로 에스빠냐 내전입니다.
내용은 재미있고 워딩도 좋으신데 다만 너무 느리네요
저거 역사쌤이 죄다 가르쳐준거네....쌤이 재밌게 가르쳐준다면서 비유도 적절히 잘 하면서 갈치더니 꿀잼이던데
좋은 선생님이군요. 보통은 이런 부연설명은 귀찮아서 안하거든요
오로지 대입만이 중요한게... 문제죠 ㅋㅋ
거 어느나라를 벤치마킹 해서 이꼴이 됐는지..
솔직히 1차는 연합국하고 협상국 둘다 나쁜쪽이라하기 애매해서 2차 독일의 나치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1차대전은 거의 거론하지않죠
얕다를 몰라서 수심이 얇다니...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하지 않으셨나요...?
현재진행형'전세계악의축은중국이다2020년12월현재생물무기바이러스로1억명감염'2백만명사망!
얇은 수심보단 얕은 수심이 더 나을거 같습니다
공감 ...유투버들 국어 교육부터 다시 받아얄듯...
1차 끝나고 배상금 저대로 가면 전쟁 다시 일어날 거라고 말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더라?
진주만은 일부로 미국이 전쟁 명분을 얻으려고 당했다는 얘기도 있던걸로 기억합니다
시바스님 초심잡으신겁니까? ㅋㅋㅋㅋㅋㅋ
일부로 그물을 설치 안했음,,,왜?태평양전쟁에 참전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고자...왜? 태평양전쟁에 참전하려했나?향후 세계패권을 거머쥐려면 지역패권자들을 굴복시켜야 한다는걸 알기에 아시아의 지역패권자인 일본을 꺾어야 했고, 그들을 꺾으려면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데 명분이 필요했음..
그물을 설치안한게
명분 제조가 아니라
애초에 설치할필요가 없을정도로 앝아서 그럼
영상에도 나왔듯
어뢰가 땅에 쳐박힐 정도인데
안일하게 대처한거지
너무 많이 끊어읽으시는것 같아요ㅜ 좀 답답한 감이 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의해 써진다.. 이말이 맞군요 (식민지 냠냠
강아지제국
우리나라는 삼국사기 보면 답나옴
그래서 하고싶은말이?
독일:우린 기술력으로 승부한다(이때 독일전차와 비행기가 최고였습)
러시아:대량생산이 우선(그러다가 티거에게 아작남)
미국:우린 전략승부
영국:우리들만에 최신 전투기와 방어선
프랑스:마지노선만 믿...왜 뒤에서 오는건데ㅠ
이탈리아:무솔리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
일본:천황폐하를 위해!!(가미카제)
핵폭발엔딩...
음.. 수심은 얕다는 표현을 써야해요. 얕다 깊다 , 얇다 두껍다
가장 불쌍한 나라는 핀란드임 그저 카렐리아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4분11초에 101중전차대대임?
솔찍히 히틀러가 잘했다는 부분도 있지만 유대인학살과 전쟁 중 학살때문에 단점때문에 장점이 안보임
뭔가 개 슬픈얘기인데 국어책이나 구연동화같아서 실감이 안난다...
진주만 공습때 일본의 주목표는 미국 주력함대 격퇴였는데 때 마침 주력함대가 이유는 까먹었는데 부재중 이였죠 그래서 냅다 공격 병사들은 이겼다고 좋아했지만 장교들은 "허허허.....주옥됬네..." 이런 상태였죠ㅋ 미국의 주력함대를 격파하여 협상을 시도하려 했거든요
그렇게 전쟁 일어나고 영혼까지 개털렸죠
민족자결주의 관련된 내용은 학교에서 들었던 내용이네요 ㅎㅎ;
미국이 알고있는데 대응못한 이유는 당시 원래들어오기로한 미국전투기들이있어 레이더에 잡혔는데도 그냥 보고만있었죠 자국거인줄알고
근데....민족자결주의때문에 독립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다른 열강에게 식민지화 되버려요..ㅠㅠ
2차대전에 미국이 가장 돈을 많이 벌어지 미국은 좋은국가도 아닌 치졸한 사업가 임
민족자결주의는 교과서에 나와있습니다.
뭐... 첨보는분도 계시겠지만
일본도 소련이랑 예전에 한판 싸웠는데 할인골에서 처참히 졌음 그때 전투 토대로 전세계로 일본은 전차 화력이 약하다는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쩌러 ㄷㄷ 제로센
1차 세계대전 연합국이 잘못했눼
역사에서 전함들은 너무 어이없게 죽는 일이 많은 것 같음
(사례를 안다면 적어도 됨)
도미나가 교지가 공군 전부 가미카제에 때려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