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 몰아내자던 국민들은 어째서 노태우를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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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30 мар 2024
  • #노태우 #6공화국 #삼김시대
    박정희 16년, 전두환 8년. 두 명의 군인 출신의 대통령이 도합 24년의 임기를 지내게 되었고,
    1987년 일련의 사건으로 더 이상의 독재와 간접선거는 안된다며,
    전국의 국민들이 호헌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들고일어나게 됩니다.
    한 달간 진행된 항쟁으로 경찰은 67만 발의 최루탄을 소모하며 더 이상 진압 불가능한 상태까지 치달았고, 이에 전두환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 국민이 어렵게 성사시킨 대통령 직선제에서 또다시 군인 출신의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버립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외세에 의해 아주 갑작스럽고, 급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조선의 패망과 일제 치하 속 한반도의 국민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무엇이고, 투표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그래서인지 매우 오랜 기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선거는 불안정한 민주주의의 과도적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60년 4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4번째 대선에서 부정선거에 개입했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일으킨 4.19 혁명이 성공하며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윤보선이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사실상 정권이 무력화되며, 윤보선은 임기를 2년도 채우지 못하고 하야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작된 박정희의 군부 시대는, 통일주체 국민회의라는 초법 기구를 설립하고 헌법까지 개정해가며 무려 16년이나 지속되게 됩니다.
    하지만 절대 권력이라 불리던 박정희조차 1979년 10월 26일.
    최측근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게 되었고, 어수선한 정국을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 최규하가 제10대 대통령에 선출되게 됩니다.
    이때 전두환은 12.12쿠데타와 5.17내란으로 군과 정권을 장악한 뒤 최규하를 압박하였고,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최규하는 대통령에 취임된 지 8개월 만에 스스로 대통령직을 내려놓게 됩니다.
    최규하가 떠나며 대통령직이 공석이 되어버렸고, 전두환은 이때를 노려 극소수의 인원만 참여하는 간접선거를 통해 11대, 12대 대통령을 역임하게 됩니다.
    첫 번째 대통령이 선출된 1948년부터 1980년까지.
    32년이란 기간 동안 총 5명의 인물이 대통령직을 역임하였고,
    그중 2명의 군부 출신이 무려 24년을 재임하였습니다.
    국민들은 군부독재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고, 1987년 일련의 사건들로 하여금
    최대 500만 명이 동참한, 건국 이례 최대의 민주운동, 6월 항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간선제를 폐지,
    같은 해 12월에 진행되는 13대 대통령 선거부터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직선제로 헌법을 개정하게 됩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은 당연하게도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 정의당의 노태우를 지지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야권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당시 야권에서는 이른바 3김이라 불리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대선 후보로 점쳐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김대중과 김영삼은 뜻을 같이해, 새로운 정당인 통일민주당까지 만들어 한 집 살림까지 하고 있는 동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은 자기 자신이 대통령을 해야겠다며, 야당의 막강했던 두 인물이 힘을 합치는 것을 거부하게 됩니다.
    한 지붕 아래 두 인물이, 단일화에 실패하자 갈등은 불가피했고, 이에 김대중은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평화민주당을 창당. 새로운 야당의 대표로서 13대 대선후보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 시기 김종필 총재까지 독자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13대 대선은,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그리고 민주 정의당의 노태우가 4파전의 양상으로 경쟁하게 됩니다.
    이들은 각자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에 강력한 지지기반을 두고, 중립적인 지지기반이었던 서울과 수도권에서 치열한 경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연히 각자의 지역을 대표하는 야권의 경쟁자들 덕분에 표는 분산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집권 여당의 후보였던 노태우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 결과 전체 유권자의 89.2%가 참여한 13대 대선에서, 노태우는 36.6%의 득표율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며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게 됩니다.
    하지만 노태우도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13대 대선은, 제6공화국 역대 최고 수치의 투표율을 기록하는 동시에, 역대 최저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당선된 선거로 기록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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