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2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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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6 фев 2025
- 호세아 3:1~5(향상교회)
성경의 절대적인 대명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입니다.
요한일서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 장로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떠한 능력과 힘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요한 장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는 사랑이다.
요한일서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신 사랑이다.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셋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도 서로 사랑하도록 하는 사랑이다.
요한일서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넷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나님 안에 거하도록 하는 사랑이다.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다섯째,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 날에 담대하게 하는 사랑이다.
요한일서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여섯째, 하나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 사랑이다.
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일곱째, 하나님의 사랑은 형제를 사랑하게 하는 사랑이다.
요한일서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결국 요한 장로의 고백을 통해서 본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인 우리 인생이 죄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힘과 능력을 제공해 주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곧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랑을 받은 존재인 그리스도인’ 즉, 자신의 제자 된 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 성경 전체의 핵심 되는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항상 이 말씀, 이 명령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부담이 되는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여전한 죄성을 가진 우리 인생이 온전히 순종하여 자유함을 누리기에는 힘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 역시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랑하라’는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하고 순종하려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몸부림을 쳐야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영적 간음 상태에 있는 북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꼭 북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게 영적 간음으로 하나님께 범죄하며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게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한번 깨닫고 온전한 순종 곧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소원합니다.
1.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1a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도록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그 말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과 시대가 북이스라엘을 세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입니다. 왕이 된 여로보암은 공개적으로 하나님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우상을 만들어 섬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기도록 부추겼습니다.
열왕기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이러한 행태가 북이스라엘의 왕인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약 15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할 뿐 아니라 더 심각해졌다는 것입니다(열왕기하 14: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 다른 신을 섬기고
여기에서 ‘섬기고’는 ‘얼굴을 돌이켜서 다른 신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영적인 배교와 우상 숭배를 잘 보여줍니다.
2) 건포도 과자를 즐길
건포도 과자는 그 맛과 관련하여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우상 숭배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특히 이것은 앗수르의 풍요의 여신인 아스다롯 신전에 바쳐진 희생의 떡(과자)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서 철저하게 우상을 섬기며 사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닌 우상, 아스다롯에게 얼굴을 향하여 그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어리석은 인생, 그러한 행위를 즐거워하는 영적 간음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아가페’의 사랑을 말씀하는데, 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서 창조주이시며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 여전히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사랑입니다.
2.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1b절 “~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여기에서 ‘음녀가 된 그 여자’는 호세아가 아내로 맞이한 고멜을 가리킵니다. 즉, 호세아의 아내가 되어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멜이 타인을 사랑하여 음란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그녀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상황, 또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여자’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음란한 여인 고멜처럼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의 타락한 모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호세아에게 하신 이 명령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호세아에게 하신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 음란한 여인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호세아를 위한 것이다.
2절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여전히 간음 상태에 있는 고멜,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영적인 간음의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는 자, 곧 호세아를 위한 것이고,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음란한 여인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이뤄진다.
3절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여기에서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는 말씀은 ‘나도 역시 네 편이 되리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영적 간음의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호세아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 고멜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다른 형제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깨달음, 감사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적 상태의 우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 된 우리가 될 때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 심지어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통치하던 북이스라엘이나, 2025년 지금 이 시대는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는 시대’입니다(4절). 다시 말하면 정치적, 종교적인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철저하게 회개하도록 주어진 기회이며, 인내와 시련을 통해 믿음의 연단을 이뤄가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시기를 잘 지내고 나면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5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오늘 우리에게도 명령하십니다.
이 악한 세대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하심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기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갈 때 다시금 이 세대에는 소망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혼돈이 질서로 바뀌고, 공허가 충만으로 바뀌며, 흑암이 빛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부름을 받은 존재,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은 존재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목사님 건강하신 모습~ 영상을 통해 다시 뵙게되어, 사랑의 하나님께 감사감사를 드립니다. 다시금 은혜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