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원 선수 뵈니까 정말 양반이신 것 같아요. ㅎㅎ 송유석 선수 연습생인 줄 몰랐어요. 제가 기억하는 과거의 방수원, 송유석 선수 둘다 해태 에이스로 알고 있었어요. 언제인가는 모르겠지만 송유석 선수가 해태 1선발이었던 적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김성한 선수보다 한참 어리셨네요. ㅎㅎㅎ
82년도 개막전 선발투수가 방수원 투수였던 이유가 당시 유남호 투수코치가 훗날 인터뷰에서 "창단 때 해태 투수가 6명 (김성한 이상윤 김용남 강만식 신태중 방수원)이었는데 신태중은 빠른 구속이었으나 제구가 믿음이 가질 않았고, 강만식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변화구가 빼어난 방수원을 낙점했다." 고 합니다. 이후에 82년도 4월 8일 강원도 춘천공지천에서 삼미를 상대로 본인의 첫승을 거뒀습니다. 공교롭게도 방수원 투수와 삼미슈퍼스타즈와는 관계가 많이 있네요. 첫승도 삼미, KBO 최초의 노히트노런도 삼미였었으니..
영화화 하기에 요소가 충분하다. * 어렸을 적 동생분을 잃어버리다. * 논두렁에서 야구를 시작하다. * 518과 선동열에게 슬라이더 마구를 전수하다. *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적인 첫 선발투수 * 김응룡감독과의 에피스드 * 동생분과의 극적상봉 *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노히트노런 ※정말 영화같은 인생을 사신 듯^^
당시에 선수들 싸인볼을 바구니에 담아 돌아다니며 팔았었다고 하는데 김성한 김일권 전설 싸인볼은 인기가 많았고 방수원 선수의 싸인볼은 한개도 없었댑니다. 방수원 선수의 호투가 계속되자 관중석에서도 그의 싸인볼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방수원선수의 싸인볼로 가득 담긴 바구니가 관중석에 등장했고 순식간에 팔렸다고 하는데.. 여기서 재미있는건 방수원 선수는 마운드에서 경기를 계속 진행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 싸인볼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요? 최근 허구연총재분이 말씀하신대로 싸인볼 만드는 전문 직원을 따로 두고있었을지.. ㅋㅋㅋㅋ
인천 토박이라 삼미 였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들 전라도 분들을 싫어 했었는지 가슴이 아파요 성장해서 대학시절 가장 친하게 가까이 지낸 친구가 순하고 의리 있는 순천 출신 순둥이 ××× 였는데.. .. 또 학과 특성상 호남 친구들이 60%도 넘었는데 후배들도 호남녀석들이 제일 예의 바르고 반듯반듯 했던 기억이네요 다 30년 전쯤 기억들이나 다 불쌍한 인간들... 쓰레기 같은 선입견 으로 호남 분들 잘 대해주지 못한점 마치 빚진 마음 입니다 결론은 사람은 고향이 문제가 아니지요 .. 정말 정말로 사람 나름입니다 이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얄밉고 꼴보기 싫었었는데 이제 낮익은 분들 얼굴 보니 참 정겹습니다 송유석 선수 호남형으로 잘생겼어요 ㅎㅎ 방수원 선생님 인격이 참 훌륭하신 분 같습니다..고국을 방분하면 전라남도 꼭 가볼예정입니다. 지난번 고국 방문땐 전라북도 까지만 다녀왔습니다 전라도 사투리가 그렇게 정겨울수가 없네요 정말 정감 있어요 전라도 사랑합니다 💜
송유석.
해태.기아가 아닌
타이거스 야구를 계속 지킬 전설 입니다.
단장으로 강추합니다
방수원선수님 인성이 정말 좋아 보입니다
방수원 송유석 선수
팬이었습니다
너무너무 반갑고 고맙습니다
자주 뵙고 싶어요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방수원선생님 말씀 재밌게 잘 하시내요.
해박 하시고. 노히트노런 처럼 건강하시고 자주자주 뵙으면 합니다.
캐나다에서 살고있습니다
한번 해태팬이면 영원한 해태죠
반갑고 기쁘네요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20대초같아
기뻐요 계속웃게되어 감사해요
고등학교때 길을걷다가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 목소리 피차는 방수원.😊
방수원 선생님과 김응룡감독사이 있었던 일을 들으니 울컥했네요.... 감사해요... 화이팅 건강하세요
방수원 전설님 건강하세요 어릴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송유석전설님도 넘 멋져요 전설님들덕분에 어린시절이 행복했어요!!
송유석 투수님 힘찬 창던지기 투구폼 정말 화끈해서 시원 시원 했네요!건강하시고.
이런시간에 자주 뵙으면 합니다.
어렸을때 야구장이나 TV로만 경기를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두분께서 옛날 얘기를 해주시니 눈물이 나네요
한시절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시고 우상이셨던 옛 전설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행복하세요
축복합니다^^
혹성탈출이 당시 별명이었던 방수원 선수. 강속구 투수가 아니어서 선발 나온다고 하면 짜증났었는데. ㅎ 정말 변화구의 제왕이셨어요. 제 어린 시절 추억의 한 부분이네요. 건강하십쇼!!!!
이티,혹성탈출,기타 등등 별명도 많았지요 허나 그게 모두 다 애칭이었지요 링컨대통령 말씀 ㅡ 40대이후는 자기자신이 자기 얼굴 용모를 책임져야 한다 방수원선수 홧팅 인간승리
방수원 광주일고 선동열선배 고교 졸업후 대구 영남대 김종모 원민구 .당시 멤버 였지 .특히 대건고 출신 원민구 삼성원태인 아버지는 카리스마 쩔었어 완전 깜상 햇빛에 타서 ㅋ ㅋ
방수원 선수님
차분하면서
말씀도 잘하시네요
방수원 전설 그냥 노히트노런의 투수인줄로만 알았는데
그렇게 애달픈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당신들이 진정한 프로고 전설입니다
와우 방수원전설님 오랜만에 보네요
방수원전설 노히트노런 기록 당시 무등경기장 직관했습니다…. 경기 끝나고 기록인즐 알았고, 노히트노런도 그 이전엔 몰랐습니다(초등학생이라서요)
건강하십쇼~~
송유석 선수는 젊을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인상이좋고,
더 잘 생겨졌네요..!!
정말 야구게획을 긋는 전설들 존경합니다. 현제 좋은세상에서 야구를 볼수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방수원 선수 뵈니까 정말 양반이신 것 같아요. ㅎㅎ
송유석 선수 연습생인 줄 몰랐어요.
제가 기억하는 과거의 방수원, 송유석 선수 둘다 해태 에이스로 알고 있었어요.
언제인가는 모르겠지만 송유석 선수가 해태 1선발이었던 적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김성한 선수보다 한참 어리셨네요. ㅎㅎㅎ
오늘도 반가운두분!
또뵙게되어 좋아요^^♡
😊 저에게는 두 분이 진정한 에이스 이십니다!!! 뵈어서 너무도 감사하고 좋았고 옛 생각나며 행복했습니다. 제 맘 속 깊은 에이스 두 분!!! 몰랐던 힘드셨던 이야기 들으니 넘 가슴 아프네요. 앞으로는 좋은 일 가득하시고 꽃길만 걸으세요~~~
타팀팬이지만 재밌게 보고 갑니다!
울컥하는 이야기들이 많네요. ㅠㅠ
방수원 선수 기아 타이거즈 감독 추천 합니다
인생공부가 따로 없네요~~ 그 어려웠던 시절을 잘 버티고 견뎌오신 방수원전설!! 송유석전설!!께 경의를 표합니다.앞으로의 여생이 만사형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1:38:15
그옛날 어린이날 큰형이랑 야구장가서
방수원(혹성탈출)선수 노히트노런 경기를 봤는데 아직도 기억남
그게 kbo리그 최초라니 세월이유수같군요
먹고사는 것에 문제가 됐다, 울컥하네요.
송유석선수 기아타이거즈 단장으로 추천합니다
김응룡감독님. 영상보시면 송유석 전설한테 100달러 송금 부탁드립니다.
대구 사람 삼성 라이온즈 팬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송유석씨는 그때보다 인물이 훨씬 나은것 같고 방수원씨는 그때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배영만 목사님 같아요.
미안합니다.
첨 가슴 뭉쿨한 인생 야구이네요...
마당쇠 송!
정말 반갑습니다. 좀처럼 무너지지않는 무쇠 창던지기폼!
잘 지내시지요?
82년도 개막전 선발투수가 방수원 투수였던 이유가
당시 유남호 투수코치가 훗날 인터뷰에서 "창단 때 해태 투수가 6명 (김성한 이상윤 김용남 강만식 신태중 방수원)이었는데 신태중은 빠른 구속이었으나 제구가 믿음이 가질 않았고, 강만식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변화구가 빼어난 방수원을 낙점했다." 고 합니다.
이후에 82년도 4월 8일 강원도 춘천공지천에서 삼미를 상대로 본인의 첫승을 거뒀습니다. 공교롭게도 방수원 투수와 삼미슈퍼스타즈와는 관계가 많이 있네요. 첫승도 삼미, KBO 최초의 노히트노런도 삼미였었으니..
영화화 하기에 요소가 충분하다.
* 어렸을 적 동생분을 잃어버리다.
* 논두렁에서 야구를 시작하다.
* 518과 선동열에게 슬라이더 마구를 전수하다.
*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적인 첫 선발투수
* 김응룡감독과의 에피스드
* 동생분과의 극적상봉
*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노히트노런
※정말 영화같은 인생을 사신 듯^^
영화제목 인생 노히트 노런
마지막 영상은
잠실구장에서 만원 관중에서 동생 만나는걸로 엔딩 잡으면 눈물날듯.
참고로 5.18민주화운동까지 에피소드 넣으면 거의 제2의 여명의 눈동자 나오실듯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네.ㅎ
송유석은 단골 메인이네😊
두분 말씀 듣다 보니 차영화선수님 생각도 납니다
대구에서 객지생활
희망이었 습니다
당시에 선수들 싸인볼을 바구니에 담아 돌아다니며 팔았었다고 하는데 김성한 김일권 전설 싸인볼은 인기가 많았고 방수원 선수의 싸인볼은 한개도 없었댑니다.
방수원 선수의 호투가 계속되자 관중석에서도 그의 싸인볼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방수원선수의 싸인볼로 가득 담긴 바구니가 관중석에 등장했고 순식간에 팔렸다고 하는데..
여기서 재미있는건 방수원 선수는 마운드에서 경기를 계속 진행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 싸인볼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요?
최근 허구연총재분이 말씀하신대로 싸인볼 만드는 전문 직원을 따로 두고있었을지.. ㅋㅋㅋㅋ
방수원선수는 공을 기다리는 타자가 기다리다 지겨워서 한숨을 쉴 그순간에 스트라이크.
날라오다가 아이스께기도 사먹고 , 컵라면도 먹고 날라오니 타이밍을 못맞춘 것이지
아 그때도 선발 중간 마무리 왔다갔다 했네 이걸보면 서정환감독때였나?윤석민 한시즌 3개보직이 이해되네
와..야구에 이런 애환이 있는지 몰맀어요..
대 타이거즈
한대화 방수원
송유석 : 아이고
송유석. 그래 힘들었는가.안 내가 알아쓰면 보내고 내가 디신할 것인데.
김응룡 욕은 안 나오드라.
방수원이 말을 잘 못했지.
딴데 보내 잘라 했어야지.
그때 광주시민 전남도민을 살륙 도륙한 전두환을 존경한 윤석열이가 광주에 간다고 하네요.. 그놈이 이 영상을 봤으면..
11개 ㅎㄷ
그 놈에게 별 기대를....
ReADYACTION
인천 토박이라 삼미 였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들 전라도 분들을 싫어 했었는지 가슴이 아파요 성장해서 대학시절 가장 친하게 가까이 지낸 친구가 순하고 의리 있는 순천 출신 순둥이 ××× 였는데.. .. 또 학과 특성상 호남 친구들이 60%도 넘었는데 후배들도 호남녀석들이 제일 예의 바르고 반듯반듯 했던 기억이네요 다 30년 전쯤 기억들이나 다 불쌍한 인간들... 쓰레기 같은 선입견 으로 호남 분들 잘 대해주지 못한점 마치 빚진 마음 입니다 결론은 사람은 고향이 문제가 아니지요 .. 정말 정말로 사람 나름입니다 이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얄밉고 꼴보기 싫었었는데 이제 낮익은 분들 얼굴 보니 참 정겹습니다 송유석 선수 호남형으로 잘생겼어요 ㅎㅎ 방수원 선생님 인격이 참 훌륭하신 분 같습니다..고국을 방분하면 전라남도 꼭 가볼예정입니다. 지난번 고국 방문땐 전라북도 까지만 다녀왔습니다 전라도 사투리가 그렇게 정겨울수가 없네요 정말 정감 있어요 전라도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