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가 인생 철학이라서 인내한게 아니라 힘이 부족했기에 처절하게 인내하지 않으면 본인은 물론 가문과 부하들 식구까지 싹 다 몰살당할 상황이여서 인내를 하다보니 그런 이미지가 강해졌죠. 행동력있게 움직여야할 땐 과감하게 움직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자기 윗사람이 죽었을때가 그런데요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죽자마자 처자식과 가신들의 처자식이 스루가에 있어서 다 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마가와에 반기를 들고 오다에 붙었죠.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는 오다의 군단장이였던 다키가와 가즈마사가 패퇴하고 비어있던 구 다케다 영지를(가이, 시나노) 빠르게 흡수합니다. 히데요시가 죽고는 바로 발톱을 드러내서 2년 뒤에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죠. 그리고 자기 수명이 다 해감을 느끼고는 오사카 전투 일으킨 것도 기민하게 움직인 경우겠지요. 이에야스의 아내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조카였기 때문에 자기 가문에 긍지가 강했는데 이마가와 가문을 망가뜨린 오다 노부나가의 딸이 며느리가 되니 매우 미워하여 아들 노부야스에게 여자를 붙여주는등 부부관계가 나빠지도록 계속 부채질 했습니다.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의 본처와 장남을 죽이라는 명령에 놀라서 변명하고자 사카이 타다츠구를 사신으로 보냈는데 이 양반이 변호는 커녕 내용을 인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처자식을 죽일 수 밖에 없었고 이에야스는 이를 기억해두고 있다가 훗날 이에야스가 패자가 된 후 논공행상을 하는데 사카이 타다츠구의 아들에게 영지를 다소 적게 주자 사카이 타다츠구가 영지를 더 내려달라고 하니 "너도 니 아들은 이쁜가보지?" 라고 말하니 사카이 타다츠구가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의 장남을 죽인 것에는 노부야스가 너무 우수해서 기량을 질투해서 죽였다는 말도 있고 노부야스가 이에야스의 아들이 아닌 이마가와 우지자네의 아들로 의심되어 죽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당시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 외에 다른 아들이 있긴 했으나 둘째 유키 히데야스는 어렸는데다 이에야스가 지나치게 미워해서 사실상 없는 자식 취급했고 셋째 히데타다는 너무 어려서 노부야스를 죽이고 이에야스가 급사라도 한다면 이에야스 어린 시절처럼 가문이 흔들릴 수 있는 위기였습니다.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에야스가 등창이 심하게 나서 생사를 헤매었는데 후계자로 내세울 아들들이 너무 어려 모두가 크게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에야스가 목숨을 걸고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간신히 고비를 넘긴 덕에 도쿠가와 가문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는 히데요시 군이 10만이 넘었고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3.5~4만 정도로 지루하게 대치하였는데 대치가 길어지면 최근에 평정한 영지에서 반란이 우려된 히데요시가 초조해하자 후계자인 조카 히데카츠가 별동대를 이끌고 이에야스의 본거지를 치러가려는 것을 이에야스에게 간파당해 요격당한 것이 본 영상의 규모입니다. 전투에서는 이에야스가 압승하였으나 여전히 2배 이상인 8만이 넘는 히데요시의 본군이 남아있다보니 지리멸렬하게 대치만 이어가다 히데요시가 약하고 무능한 오다 노부카츠만을 공략하자 멍청하기로 소문난 노부카츠는 동맹인 이에야스에겐 상의도 하지 않고 히데요시와 강화를 해버리니 이에야스는 퇴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히데요시의 별동대에게 압승을 거두면서 야전에서는 적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무명을 떨치니 이로인해 히데요시가 이에야스에게 쩔쩔 맬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쯤에는 여자가 워낙 일찍 아이를 낳다보니 서른도 못 되어 할머니가 되었고 실제로 여자 나이 서른이면 할머니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에야스에게 시집온 아사히히메의 나이가 40대인지라 가신들 모두 경악을 ㅋㅋㅋㅋ 히데요시의 여동생을 받고도 움직이지 않자 어머니까지 보낸다고 하니 설마 진짜 엄마를 보내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아사히히메가 어머니와 만나자마자 서로 얼싸안고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가 맞구나 이렇게까지 볼모를 보냈는데 설마 해치겠나 하고 이에야스가 상경합니다. 전국의 다이묘들이 모여서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신하가 되는 것을 알리기 전 날 밤에 히데요시가 몰래 이에야스의 처소에 단독으로 찾아와서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당장 암살할 수 있는데도 그 위험을 감수하고 홀로 찾아온 것이니까요.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 내일 자기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기 가오를 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사극 중에 어느 것인지 공명의 갈림길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명장면이 기억이 나는데요,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요청을 수락하여 다음날 히데요시 앞에 엎드려서는 "지금 걸치신 관백 전하의 진바오리를 주십시오", "이 진바오리는 내가 전장에 나가면 항상 걸치는 것이라 줄 수 없다", "제가 관백 전하를 따르기로 한 이상 더 이상 진바오리를 입으실 일은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며 히데요시의 가오를 살려주니 히데요시가 흡족해하며 엎드린 이에야스에게 진바오리를 벗어서 덮어주는데 그 순간에 이에야스가 미워서 일그러지는 히데요시 역 배우의 표정연기가 압권이였습니다. 임진왜란 때에 이에야스는 속으로는 당연히 가기 싫었기에 최근에 안도 받은 칸토의 영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구실로 조선으로 건너가지 않았으나 언제든 관백 전하를 대신해서 넘어가겠다는 의견을 견지했습니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조선에서 군공을 너무 많이 세우거나 조선에서 싸우는 장수들이 이에야스를 따라버리면 도요토미 정권이 위험해지기에 이에야스를 조선으로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5:06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인내‘ 그 자체를 대표하던 이에야스는 자기 처자식까지 쳐죽여가며 때를 기다렸네요 저렇게까지 처절할 수 밖에 없었겠습니다 에효 조선사에서도 야망을 위해 이정도까지 한 인물이 있었을까요 태종도 형제였지 자기 마누라 칼로 베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일본이야기도 재밌네요
히데요시가 치고들어갔는데 이에야스군이 만만치 않아서 어쩌지를 못하다보니 동생과 모친을 보내서 굴종시키는데 성공하죠. 만약 이에야스가 항복하지 않았어도 이에야스 뒤에는 동맹인 간토의 호죠가 있었고 동북 지방에는 다테가 호죠의 동맹이라 반 히데요시에 발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반 히데요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엣츄의 삿사 나리마사와 오다의 둘째 아들 등 반 히데요시에 참가할 다이묘는 많았습니다. 다만 돌아가는 정국이 히데요시에게 유리하고 지금은 싸우기보다는 굴종해서 전력을 보전하는 것이 낫겠고 우세한 사람이 인질을 거듭 보낼 정도니 감히 해치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어 히데요시 휘하로 들어간 것입니다. 실제로 히데요시가 호조를 치러 갈 때 오다 둘째 아들이 도쿠가와와 호조는 기존의 동맹이였으니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지금 히데요시를 물리칠 수 있다고 설득하려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세 가문이 힘을 합치면 보급선이 늘어지고 여기저기서 모여든 히데요시군을 이길 수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히데요시가 감히 그러지 못하도록 오다의 기를 죽인 뒤 호조 정벌 후 오다에게 영지 교체를 명령하여 이를 듣지 않자 영지를 몰수해서 반란의 씨앗을 빼앗아버립니다.
이에야스가 정말 대단한게, 기껏 세력 다 일궈놓았는데 히데요시가 강제로 후호조씨에게서 빼앗은 간8주(관동지방 8주)를 주면서 멀리 쫓아보낸 것을, 황무지를 개간하고 간척사업을 하여 당시 별 볼일 없던 깡촌인 간토를 엄청난 식량+병력 생산지로 만들어서 천하를 뒤집어 엎은 것....... 원래는 가마쿠라로 가고 싶었는데 속이 너무나 뻔히 보였던지라 히데요시가 깡촌인 간토로 쫓아보냈는데, 이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 히데요시는 솔직히 구 후호조 세력에 의한 잇키로 이에야스가 죽기를 내심 바랐는데, 이에야스가 너무 생각 이상으로 내치를 잘 한 나머지 간토를 기반으로 세력을 완전히 확 끌어올려서 결과적으로는 아들 히데요리 대에 이르러 가문을 멸문에 이르게 한 선택이 되고 말았음..... 정말 대단한 관동의 너구리.... 오늘날 일본의 수도가 괜히 도쿄도인게 아님.....
이에야스의 할아버지 기요야스-아버지 히로타다-이에야스... 이 조손 간이 정말 과속 스캔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유럽 모 나라에서는 종종 과속 스캔들 기사가 나오곤 하는데요(심지어 20대 후반에 할아버지 내지 할머니가 되는!!!!) 기요야스가 한국 나이 16세에 아들 히로타다를 얻고, 히로타다는 한국 나이 17세에 아들 이에야스를 얻었다고 합니다. 기요야스는 20대 젊은 나이에 부하의 배신으로 암살당하여, 손자 이에야스가 태어나는 것은 보지 못하고 그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요야스가 더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나이로 32세에 손자 이에야스가 태어난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에야스도 부인 스기야마 고젠(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조카)과의 사이에서 아들 노부야스를, 한국 나이 18세에 두었지만... 노부야스는 후일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죠 ㅜ ㅜ 조선 시대 세조의 차남인 세자(후일의 예종 임금)가 12세 나이에 17세 부인(한명회의 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두었는데.... 부인은 아들을 낳은 후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강보에 싸인 아들도 그 후 오래 못 살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일본 사람들이 한국 10.26 사태 12.12 사태 등에 관심을 많다고 하더라구요. 그 시기를 다룬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들이 수출되고요... 비유하자만 오다 노부나가 - 박정희 대통령 / 아케치 미츠히데 - 김재규 부장 / 도요토미 히데요시 - 전두환(김재규를 제압, 체포함), 노태우..... / 그렇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
김영삼은 사기꾼 정치인인지라... 1950년대부터 정치를 했지요. 온갖 거짓말 치면서... 김대중이는 민주당원 문수룡이 사망하자 조의금 30만원을 걷어서 18만원은 자기가 갖고 12만원만 전달해서 민주당에서 풍파를 일으킵니다(1959). 둘다 형편없는 인물이며... 노태우는 전두환에게 직선제 개헌을 자기가 주장하고 각하가 반대했다는 컨셉으로 해달라고 요청한 황당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직선제는 전두환 결정)
인생에서도 인내심이 최고의 무기....
때를 기다리며 앞날을 준비하는 자... 그러나 존버이미지만 강하다는;;
이 정도로 힘들게 살았던 인물일 줄은 몰랐습니다.
참고, 또 참아야겠습니다. 승리의 그 날을 위하여!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은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남은자는 역사적 기록을 자기입맛대로 바꾸기도 하구요
노부나가나 이에야스가 대권을 잡았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인내하고 기다려라~~^
잘봤어요 덕천가강 너무 위대한 사람이죠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네요~~
인내가 인생 철학이라서 인내한게 아니라 힘이 부족했기에 처절하게 인내하지 않으면 본인은 물론 가문과 부하들 식구까지 싹 다 몰살당할 상황이여서 인내를 하다보니 그런 이미지가 강해졌죠. 행동력있게 움직여야할 땐 과감하게 움직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자기 윗사람이 죽었을때가 그런데요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죽자마자 처자식과 가신들의 처자식이 스루가에 있어서 다 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마가와에 반기를 들고 오다에 붙었죠.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는 오다의 군단장이였던 다키가와 가즈마사가 패퇴하고 비어있던 구 다케다 영지를(가이, 시나노) 빠르게 흡수합니다. 히데요시가 죽고는 바로 발톱을 드러내서 2년 뒤에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죠. 그리고 자기 수명이 다 해감을 느끼고는 오사카 전투 일으킨 것도 기민하게 움직인 경우겠지요.
이에야스의 아내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조카였기 때문에 자기 가문에 긍지가 강했는데 이마가와 가문을 망가뜨린 오다 노부나가의 딸이 며느리가 되니 매우 미워하여 아들 노부야스에게 여자를 붙여주는등 부부관계가 나빠지도록 계속 부채질 했습니다.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의 본처와 장남을 죽이라는 명령에 놀라서 변명하고자 사카이 타다츠구를 사신으로 보냈는데 이 양반이 변호는 커녕 내용을 인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처자식을 죽일 수 밖에 없었고 이에야스는 이를 기억해두고 있다가 훗날 이에야스가 패자가 된 후 논공행상을 하는데 사카이 타다츠구의 아들에게 영지를 다소 적게 주자 사카이 타다츠구가 영지를 더 내려달라고 하니 "너도 니 아들은 이쁜가보지?" 라고 말하니 사카이 타다츠구가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의 장남을 죽인 것에는 노부야스가 너무 우수해서 기량을 질투해서 죽였다는 말도 있고 노부야스가 이에야스의 아들이 아닌 이마가와 우지자네의 아들로 의심되어 죽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당시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 외에 다른 아들이 있긴 했으나 둘째 유키 히데야스는 어렸는데다 이에야스가 지나치게 미워해서 사실상 없는 자식 취급했고 셋째 히데타다는 너무 어려서 노부야스를 죽이고 이에야스가 급사라도 한다면 이에야스 어린 시절처럼 가문이 흔들릴 수 있는 위기였습니다.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에야스가 등창이 심하게 나서 생사를 헤매었는데 후계자로 내세울 아들들이 너무 어려 모두가 크게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에야스가 목숨을 걸고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간신히 고비를 넘긴 덕에 도쿠가와 가문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는 히데요시 군이 10만이 넘었고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3.5~4만 정도로 지루하게 대치하였는데 대치가 길어지면 최근에 평정한 영지에서 반란이 우려된 히데요시가 초조해하자 후계자인 조카 히데카츠가 별동대를 이끌고 이에야스의 본거지를 치러가려는 것을 이에야스에게 간파당해 요격당한 것이 본 영상의 규모입니다. 전투에서는 이에야스가 압승하였으나 여전히 2배 이상인 8만이 넘는 히데요시의 본군이 남아있다보니 지리멸렬하게 대치만 이어가다 히데요시가 약하고 무능한 오다 노부카츠만을 공략하자 멍청하기로 소문난 노부카츠는 동맹인 이에야스에겐 상의도 하지 않고 히데요시와 강화를 해버리니 이에야스는 퇴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히데요시의 별동대에게 압승을 거두면서 야전에서는 적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무명을 떨치니 이로인해 히데요시가 이에야스에게 쩔쩔 맬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쯤에는 여자가 워낙 일찍 아이를 낳다보니 서른도 못 되어 할머니가 되었고 실제로 여자 나이 서른이면 할머니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에야스에게 시집온 아사히히메의 나이가 40대인지라 가신들 모두 경악을 ㅋㅋㅋㅋ 히데요시의 여동생을 받고도 움직이지 않자 어머니까지 보낸다고 하니 설마 진짜 엄마를 보내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아사히히메가 어머니와 만나자마자 서로 얼싸안고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가 맞구나 이렇게까지 볼모를 보냈는데 설마 해치겠나 하고 이에야스가 상경합니다.
전국의 다이묘들이 모여서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신하가 되는 것을 알리기 전 날 밤에 히데요시가 몰래 이에야스의 처소에 단독으로 찾아와서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당장 암살할 수 있는데도 그 위험을 감수하고 홀로 찾아온 것이니까요.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 내일 자기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기 가오를 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사극 중에 어느 것인지 공명의 갈림길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명장면이 기억이 나는데요,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요청을 수락하여 다음날 히데요시 앞에 엎드려서는 "지금 걸치신 관백 전하의 진바오리를 주십시오", "이 진바오리는 내가 전장에 나가면 항상 걸치는 것이라 줄 수 없다", "제가 관백 전하를 따르기로 한 이상 더 이상 진바오리를 입으실 일은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며 히데요시의 가오를 살려주니 히데요시가 흡족해하며 엎드린 이에야스에게 진바오리를 벗어서 덮어주는데 그 순간에 이에야스가 미워서 일그러지는 히데요시 역 배우의 표정연기가 압권이였습니다.
임진왜란 때에 이에야스는 속으로는 당연히 가기 싫었기에 최근에 안도 받은 칸토의 영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구실로 조선으로 건너가지 않았으나 언제든 관백 전하를 대신해서 넘어가겠다는 의견을 견지했습니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조선에서 군공을 너무 많이 세우거나 조선에서 싸우는 장수들이 이에야스를 따라버리면 도요토미 정권이 위험해지기에 이에야스를 조선으로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소설을 한편쓰는군
@@조영제-f3r소설 대망을 본 입장에서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 윗 댓글을 보니 사람분수가 있나봅니다
이게 정답 맞음 , 수고 했어요
@@niceonsonny8236 역사서도 아닌 소설을 진짜라고 믿는거보니 소설 삼국지에서 장비가 장판교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홀로 막았다는 소설도, 관우의 육관돌파, 적벽에서 제갈공명이 서풍을 부른거… 이런 것도 다 믿나보네.
하픙으로 가득한 소설을 읽은거 가지고 마치 일본 역사서라도 읽은듯이 전부 사실이라고 주장하니 내가 할말이…@@niceonsonny8236
진짜 잘 요약하셨네❤
2:18..(어린이에야스)자막:어린 히데요시로 되어있네요.
이예야스의 가장 큰 업적은 백년에 걸친 꾸준한 간척 사업으로 엄청난 농토를 만든거...
일본의 오래된 도읍지 교토 입장에서는, 신생 개척지 에도-도쿄에 대해 시샘을 느낄 법도 한 것 같습니다....
아노 난데스까?
감사합니다.
조조 = 직전신장
이세민 = 풍신수길
사마의 = 덕천가강
삼국통일한 안물은 사마위의 손자 사마염이지만 진나라는 에도막부보다 역사가 짧습니다.
그 이세민을 박살낸게 연개소문-이순신이죠 에도막부로 치면 이에야스?
이세민을 풍신수길에 비교하는건 좀 ㅋㅋ
이세민은 고구려 빼고 싸우는 족족 다 이긴 사람임. 군주로서도 성군이었지만 장수로서도 천책상장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인물이었음.
@@이름없음-w6n 뭐 풍신수길도 말년에 미쳐서 조선출병하기 전까진 승승장구 하긴 함. 모략, 축성, 전략, 기동뿐 아니라 카네가사키전투처럼 전술적 능력도 뛰어났음
@@이름없음-w6n풍신수길이 야전에서 패배한건 코마키나가쿠테 전투 정도인데, 주력부대를 묶어두고 기동부대로 측면공격한 전술 자체를 나쁘게 볼 건 아님. 그걸 때려부신 가강이 특별히 뛰어나다 볼 뿐.
5:06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인내‘ 그 자체를 대표하던 이에야스는 자기 처자식까지 쳐죽여가며 때를 기다렸네요 저렇게까지 처절할 수 밖에 없었겠습니다 에효
조선사에서도 야망을 위해 이정도까지 한 인물이 있었을까요 태종도 형제였지 자기 마누라 칼로 베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일본이야기도 재밌네요
저점매수와 무한존버의 달인
마지막 순간에 미카와의 녹슨 칼... 을 휘둘러 대권을 잡은 미카와의 능구렁이 너구리 이에야스..
만약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전쟁을 했으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문은 아마 멸문지화
히데요시가 치고들어갔는데 이에야스군이 만만치 않아서 어쩌지를 못하다보니 동생과 모친을 보내서 굴종시키는데 성공하죠. 만약 이에야스가 항복하지 않았어도 이에야스 뒤에는 동맹인 간토의 호죠가 있었고 동북 지방에는 다테가 호죠의 동맹이라 반 히데요시에 발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반 히데요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엣츄의 삿사 나리마사와 오다의 둘째 아들 등 반 히데요시에 참가할 다이묘는 많았습니다. 다만 돌아가는 정국이 히데요시에게 유리하고 지금은 싸우기보다는 굴종해서 전력을 보전하는 것이 낫겠고 우세한 사람이 인질을 거듭 보낼 정도니 감히 해치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어 히데요시 휘하로 들어간 것입니다.
실제로 히데요시가 호조를 치러 갈 때 오다 둘째 아들이 도쿠가와와 호조는 기존의 동맹이였으니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지금 히데요시를 물리칠 수 있다고 설득하려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세 가문이 힘을 합치면 보급선이 늘어지고 여기저기서 모여든 히데요시군을 이길 수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히데요시가 감히 그러지 못하도록 오다의 기를 죽인 뒤 호조 정벌 후 오다에게 영지 교체를 명령하여 이를 듣지 않자 영지를 몰수해서 반란의 씨앗을 빼앗아버립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우리 역사로 보면 고래 태조왕건 같은 인물이고 중국사로 보면 한 고조 유방 같은 인물 이라고 봅니다. 인내와 포용력을 가졌고 끝까지 살아 남아서 각각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고 보면요.
크 이에야스
두견새 이야기에서 이에야쓰는 인생사는데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다 ㅋㅋㅋ
새의 이야기는후세사람들이 만들어낸이야기 입니다
근데 인생 대부분을 정말 인내하며 처절하게 살다가 죽을때가 가까운 노년이 되어 승리자가 되는건 좀;; 20대에 10억이 있는게 70대에 1000억이 있는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 선택하라면 차라히 히데요시의 삶을 선택하겠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진짜 일본의 진정한 쇼군이였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손녀 센히메를 유난히 사랑해서
만화책에서도 유명함.
센히메는 겨우 7살에 히데요리와
정략결혼하지만 히데요리는 사망.
2번째 결혼에서는 남편과 아들이 사망.
센히메가 성욕이 강했는데 재혼한 남편 혼다가 미남이라 센히메에 정력을 너무 심하게 뺐겨서 일찍 죽었다나 뭐라나 ㅎㅎ
히데요시가실수한거도큼 이에야스
제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엇는데
너무두려워한나머지 죽을 때까지
못건드린게 이에야스의 숨통을
틔워주었음
나도 기다리면 좋은 기회가 올까요? ㅎㅎ😅
오기는 옴.
다만 기다리는 동안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그 기회를 놓치게 됨.
@@배달의기수-w7e 네^^
이에야스가 정말 대단한게, 기껏 세력 다 일궈놓았는데 히데요시가 강제로 후호조씨에게서 빼앗은 간8주(관동지방 8주)를 주면서 멀리 쫓아보낸 것을, 황무지를 개간하고 간척사업을 하여 당시 별 볼일 없던 깡촌인 간토를 엄청난 식량+병력 생산지로 만들어서 천하를 뒤집어 엎은 것.......
원래는 가마쿠라로 가고 싶었는데 속이 너무나 뻔히 보였던지라 히데요시가 깡촌인 간토로 쫓아보냈는데, 이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
히데요시는 솔직히 구 후호조 세력에 의한 잇키로 이에야스가 죽기를 내심 바랐는데, 이에야스가 너무 생각 이상으로 내치를 잘 한 나머지 간토를 기반으로 세력을 완전히 확 끌어올려서 결과적으로는 아들 히데요리 대에 이르러 가문을 멸문에 이르게 한 선택이 되고 말았음.....
정말 대단한 관동의 너구리....
오늘날 일본의 수도가 괜히 도쿄도인게 아님.....
임진록2 조선의 반격에서는 도쿠가와가 명나라랑 손잡고 조선 상대로 싸운다는 내용이었는데 아는 사람 입장에선 많이 얼탱이 없는 이야기였음 ㅋㅋ
도쿠가와가 명이랑 손을 잡고 조선 상대로 싸운다구요? 진짜 말도 안되네요 ㅋㅋ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거지?
그냥 게임을 잘못만듬 ㅋㅋ
명,도쿠가와 세력 vs 조선,미츠나리 세력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더군요 이순신장군도 살아있다는 설정으로 나옵니다 예전 초딩때는 별 생각없이 즐겼는데 역사를 알고나니 좀 어이가 없는 스토리긴 합니다ㅋㅋ
썸넬이 드라마제목이군요 ㅋㅋㅋ
이에야스가 어떻게 쌔졌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네 있어야 할거 같은데
이에야스인가요...에이스 인가요...
이에야스임
나하고 의견이 같은 사람은 오다 구나 대신 억지로 울게 하는거 보단 아주 자연스럽게 울게 되는상황을 만들어서 주변에서 눈치못채게 해야지
히데요시 방식?
참을 忍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다음에 원균에 트롤 모음집도 부탁드려요
히데요시가 쫓아낸 황무지 간토땅을 개간으로 250만석으로 만든 이에야스는 만석당 300명으로 쳐서 7만 5천의 병력을 동원할수있는 일본 최대 다이묘가 되었다..히데요시도 죽을땐 이에야스에게 굽신거릴수밖에 없었다..결론은 농사가 짱이다
도요새 일화는 일본 소설에서 창작한 대화이며 실제로는 저런 대화 기록이 전무하다는
@@WoonL-xh6qf 그쵸ㅋㅋ 약간씩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인데, 무슨 토크쇼에 함께 출연해서 같은 질문 받아서 그 자리에서 대답한 것처럼 회자되는게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그냥 그 셋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한 비유겠죠
2:17 히데요시요?
이에야스의 할아버지 기요야스-아버지 히로타다-이에야스... 이 조손 간이 정말 과속 스캔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유럽 모 나라에서는 종종 과속 스캔들 기사가 나오곤 하는데요(심지어 20대 후반에 할아버지 내지 할머니가 되는!!!!)
기요야스가 한국 나이 16세에 아들 히로타다를 얻고, 히로타다는 한국 나이 17세에 아들 이에야스를 얻었다고 합니다.
기요야스는 20대 젊은 나이에 부하의 배신으로 암살당하여, 손자 이에야스가 태어나는 것은 보지 못하고 그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요야스가 더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나이로 32세에 손자 이에야스가 태어난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에야스도 부인 스기야마 고젠(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조카)과의 사이에서 아들 노부야스를, 한국 나이 18세에 두었지만... 노부야스는 후일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죠 ㅜ ㅜ
조선 시대 세조의 차남인 세자(후일의 예종 임금)가 12세 나이에 17세 부인(한명회의 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두었는데.... 부인은 아들을 낳은 후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강보에 싸인 아들도 그 후 오래 못 살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다만 2:20초에 어린 이에야스의 삶인데.. 자막이 히데요시로 되어 있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또 이름 실수를 ㅜㅜ
일본 사람들이 한국 10.26 사태 12.12 사태 등에 관심을 많다고 하더라구요. 그 시기를 다룬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들이 수출되고요...
비유하자만 오다 노부나가 - 박정희 대통령 / 아케치 미츠히데 - 김재규 부장 / 도요토미 히데요시 - 전두환(김재규를 제압, 체포함), 노태우..... / 그렇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
한국의 이에야스 김영삼 하나회 숙청함 노태우는 다케다신겐
김영삼은 수감되고 가택연금까지 당함. 대통령되고 나서 대형사고가
일어남.
삼풍백화점,서해 패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IMF구제금융.
김영삼 보다는 3번이나
다통령에 도전한 인내심의
김대중.
김대중의 별명이 인동초로
이후락이 납치해서 사망직전까지
갔던 일도 있음
인동초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고난에 해당되는 인생을 보냄.
감옥에 아들도 수감되고
고문까지 당하며
본인은 납치사건까지 겪음.
4번의 대통령 선거 도전.
김영삼은 사기꾼 정치인인지라... 1950년대부터 정치를 했지요. 온갖 거짓말 치면서...
김대중이는 민주당원 문수룡이 사망하자 조의금 30만원을 걷어서 18만원은 자기가 갖고 12만원만 전달해서 민주당에서 풍파를 일으킵니다(1959).
둘다 형편없는 인물이며... 노태우는 전두환에게 직선제 개헌을 자기가 주장하고 각하가 반대했다는 컨셉으로 해달라고 요청한 황당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직선제는 전두환 결정)
존버는 승리한다.
그 이후로 일본은 경제적으로 엄청 번성하지요
2:17 오타났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버지) 도쿠가와 히로타다는 약간 박쥐같은 인물이었네요
저 시대 때는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변 강한 세력한테 붙을 수 밖에 없었고 주변 강한 세력이 둘이라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며 가문을 보전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히로타다의 기량이 기요야스나 이에야스와는 달리 평범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두견새얘기는 실제 하지도 않은 얘기인데 한 것처럼 영상 만들면 채널명이랑 매치가..
오다 노부나가는 나훈아 닮았네..
이에야스는 이순신 장군한테 고마워해야 함. 조선이 히데요시한테 먹혔으면 히데요시 세력이 더 세져서 일본에 갔을테고 조선에서 징발한 병력과 함께 이에야스 죽이러 갔겠지.
그렇다고 처 자식을 죽이다니...
그럼 자신이 죽을 판인데?
자기만 죽고 끝나는게 아니고 온 가문과 가신들 모두가 몰살인데요
이마가와 가문에 남겨뒀던 가신과 그 가족들은 죽도록 잘도 팽개쳐놓고.
@@3rrtyf 그런데 그렇게 하지않으면 영영 이마가와 가문에 복종, 수탈 당하며 오다를 막는 방패 혹은 최선봉에 서야하니 어쩔 수 없이 희생시킨거죠.
오 1등
용산이 이 방송을 봐야하는데 그깟 5년 금방가버릴것인데 머한다고 전화통 돌려서 명재촉하는건지 이예야스에게 배워야지 에휴
에도막부 시대가 혼란이 없었다고?! 엄청나게 학살 자행하고 탄압한 시대가 에도시대인데!!
에도시대 말기에는 과도한 세금때문에 민란이 일으났는데
주민들은 가톨릭을 믿었고
에도막부의 관군이 강경진압해
학살했습니다.
시마바라의 난.
막말을 제외하고, 전국시대 같은 전국 규모의 내전은 없었음.
에도시대 정도면 전체적으로 봤을때 꽤 길고 안정적인 시기였음
가마쿠라, 무로마치 막부가 정국 장악 제대로 못해서 시작부터 분란에 휩싸인것에 비하면 에도 막부는 거의 중앙집권에 가까운 권력으로 정국을 안정화함...
이에야스의 승리의 이유 : 가장 오래살음 히데요시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도 이에야스에게 기회는 안왔을거임
맞습니다. 이에야스는 자기가 히데요시보다 어리고 히데요시에게 후사가 없으니 장수하면서 후일을 도모했지요. 그래서 취미가 환약 만들기라 허구헌날 약을 만들어서 주변 부하들에게 먹여보곤 했었습니다.
친한파 - 도쿠가와 이에야스
반한파 -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버네도 걍 우움 만들었군 녀깄어요 알아서 내용 잘 추출해서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니까 잘대입해 문제 타개해 가셈요😮 와앜 사리사욕ㄴㄴ 피료없엌!! 오오 개인이 아니고 모두를 위하다니 님이 바로 사극에서 언급하고 찾던 멸종직전의 대인배신듯 참 코맙슴다 😮
ㄷㄷ 내아이디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인데 ㅋㅋㅋㅋㅋㅋ
어떻게 사람이름이 E에"야스"ㅋㅋㅋㅋ
존버끝판왕
아니? 천만에 이긴자는 참는자가 아닌 오래 산 자요
이기고 싶다면 라이벌이 꼴보기 싫은 인간이 죽을때까지 어떻게든 살아있어라 결국은 그것이 이기는거야 푸하하하 😂
이에야스. 왤케 션 스트릭랜드 닮았지? ㅋㅋ
@@hsc9279 나가라
존버의 롤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