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씨앗이된 세종대왕의 자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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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 #역사의아이러니 #역사속오늘 #옛날이야기 #1분완성 #조선사 #세종대왕 #양녕대군 #충녕대군 #단종 #계유정난 #왕자의난 #영응대군

Комментарии • 28

  • @물고기의익사
    @물고기의익사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

    태종이 정치가로써는 세종보다 뛰어난듯하네요! 킬방원 하지만 동복형제는 죽이지 않았는데 세조는 동복, 이복 다죽였으니 진정한 킬수양이 맞는듯합니다.

    • @timemaze
      @timemaze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킬수양 ㅎㅎ.댓글 감사합니다 ^^

  • @jesusismylord7364
    @jesusismylord7364 Год назад +3

    권력 싸움에는 부모형제도 없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인가....

    • @timemaze
      @timemaze  Год назад +1

      아마도요? ㅎㅎ

  • @구경꾼-f4f
    @구경꾼-f4f Год назад +4

    달리 생각해보면,,,
    고려 왕족을 그렇게 싸그리 죽였으니, 이성계 후손들이 형제들 사이에서 피바람이 생긴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듯 해요.
    그리고, 그 조선이 망하는것도,,,
    결국 순탄하게 망하지는 못했죠.
    왕족도, 백성들도, 외세에게 개 박살이 났으니,,,,

    • @timemaze
      @timemaze  Год назад +1

      댓글 감사합니다 ^^

  • @꽃나비-n4g
    @꽃나비-n4g Год назад +3

    세종도 이방원이한것처럼다른왕자들다처리했었어야지 그냥두니 저래되지 방심하면안댐

    • @timemaze
      @timemaze  Год назад

      그부분에 대해선 할말이 없으실꺼임 ㅎㅎ

  • @Synk-Mali
    @Synk-Mali Год назад +4

    조선시대 업적을 찍은 군왕은 대부분 자식농사를...

    • @timemaze
      @timemaze  Год назад +1

      지금도 제일 어려운건 자식농사~!!😂😂

  • @hikerfrantz5829
    @hikerfrantz5829 Год назад +8

    조선이 헬조선이 된건 세조 때 부터고, 헬조선이 된 가장 큰 책임은 세종에게 있지. 일단 세종은 왕의 제목이 아님. 학자를 했어야할 인물이고 왕의 모습을 보인건 오히려 양녕이었음. 하지만 이방원은 후대에 자기처럼 피바람 불지 않게 하겠다며 책상물림 세종을 더 임금감으로 여김. 임금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세종은 숙청을 하지 못함. 왕이라면 부지런한 숙청과 토사구팽으로 신하들이나 왕족들이 권력을 가지지 못하게 주기적으로 솎아냄으로서 왕권을 강화시켜야 함. 하지만 세종은 되려 쓰던 인물만 주구장창 씀.
    흔히 말하는 세종이 신하들의 사직을 허용하지 않았던건 얼핏 유머나 재미있는 일화로 보이지만, 실상은 세종의 최대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임. 훗날 계유정난의 빌미가 되는 김종서 역시 북방정벌이라는 쓸모를 다했으면 얼른 삶아서 권신이 되는걸 막았어야 하는데 세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 역시 세자 문종을 세웠으면 다른 대군들은 세를 꺽어 놨어야 하는데 이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음. 이방원은 달랐음. 흔히 세종이 왕이 된 후로 양녕은 조선팔도를 유랑하며 풍류를 즐겼다 하고 효령은 불교 연구에 심취했다 하는데, 실상은 이방원이 양녕과 효령이 세종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양녕이 세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평생을 한곳에 정착하는것을 금지하고 평생을 떠돌며 살게한 것이고, 양녕은 이에 앙심을 품고 훗날 계유정난 때 세조편을 들어 명분을 줌.
    효령 역시 중이나 되라며 절간에 처박은 것임. 세자를 세웠으면 다른 대군들은 이정도로 세를 꺽어놓는게 당연지사임. 하지만 세종과 문종은 그러지 않아 결국 수양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킴. 숙청과 토사구팽이으로 인한 왕권 강화야 말로 왕의 가장 중요한 덕목, 어쩌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는것 이상으로 중요한 덕목인데 세종은 학문연구에만 몰두한 나머지 이걸 등한시했음. 이게 바로 성군이라 추앙받는 세종에게 헬조선의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이유임. 그럼 세조 때 왜 지옥문이 열렸느냐? 바로 이 역시 세조가 공신숙청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임. 이방원은 왕자의 난 때 자신을 돕고 자신을 임금으로 만들어준 공신들을 아주 철두철미하게 숙청했음. 말년에 곁에 남아있는 공신이 거의 없었을 정도임. 그렇기에 공신들이 세종의 왕권에 위협이 되지 않았음.
    반면에 세조는 즉위 후 사육신의 일을 겪으며 반정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쌓여 공신들을 키워 자신의 방패막이로 썼음. 게다가 공신들을 숙청하기도 전에 천벌을 받아 문둥병에 걸려 사지가 썩어 죽으니 이후부터 조선은 세조의 공신들이 좌지우지 하는 공신천하가 됨. 그 공신들이 당파를 만들어 세력을 만드니 그것이 바로 훈구파요, 그 훈구파의 전횡에 맞서 일어난 것이 바로 유교 탈레반 사림파임. 안동김씨 천하 이전에 헬조선을 뜨겁게 달군 당파싸움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임. 또한 세조가 찬탈을 하고 사육신을 죽인 일로 바른 선비들은 조정을 욕하고 침뱉으며 초야로 들어가버렸고, 조정에는 그저 유교에 미친자 아니면 간신배들만 득실거렸음. 세조 역시 자신에 반대하는 선비들을 죽이거나 무시했음. 이방원이 자신과 세종을 반대한 황희를 거두어 중용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임.
    또한 세조 때 부터 조선은 발전을 멈추고 퇴보하기 시작하는데, 조선은 일제시대 이전에 단 한번도 조선보다 500년 이전인 고려의 경제를 따라잡아 본적이 없음. 반란을 두려워 한 세조에 의해 무기의 발전도 멈추어 태종 때 만들어진 천자총동 현자총통 신기전 판옥선 거북선이 200년 후 임진왜란 때에도 여전히 주력병기임. 자그만치 200년 동안 나라 병기에 발전이 없음. 세종이 한글을 통해 백성들을 수준을 끌어올리려 했던것도 세조가 한글을 금지 시키며 헛수고가 됨. 이후 한글은 천대받아 사장된 글자 취급 받다가 해방 이후 주시경 선생을 통해 거의 재탄생되어 겨우 오늘날의 한글이 됨.

  • @jonesonpapa7516
    @jonesonpapa7516 Год назад

    않은 > 앉은 / 듬쁨 > 듬뿍

  • @윌리스-o3p
    @윌리스-o3p Год назад +1

    웬 뽕짝

    • @timemaze
      @timemaze  Год назад +1

      뽕짝 아니에요~😂그런데 님 글을 읽은 후로 저도 배경음악에서 뽕끼가 느껴지네요..배경음악이 더 좋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