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여요전쟁, 고려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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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5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

  • @goindol-eu1yo
    @goindol-eu1yo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흥화진은 산서성 태행산맥에 위치하며,
    통주는 북경 서남부에 존해합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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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운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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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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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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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역사는 사서를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