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이야말로 해석이 어렵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다른 종교서적처럼 쉬운 버젼으로 대중눈높이에 맞춰 왜곡이 훨씬 덜하고), 원전이 훼손되지 않고 수천년 전 것 그대로 나오고 있어서, 정말 좋은 저서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고차원적이며 또한 후세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진리가 담긴 책이라 항상 생각. 도덕경에 대한 여러 저서와 강연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그중 가장 명쾌하고 최고의 해석은 역시 유튜브에서 공개되어 있는 최진석교수의 노자 시리즈입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노자에 대해 조금 덧붙입니다. 노자는 폭풍우 치는 바다와 같은 난세에서 살아남으려면, 짐을 최대한 버리고 가벼운 상태로 흐름, 즉 무위에 맡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힘없이 뭘 하지 않는데 세상에 어떻게 도움이 되느냐에 대해서는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노자는 이에 대해 '목재론 쓸모없는 큰 나무를 베어가지 않으니, 오래 살아 사람들의 그늘이 되어주었다.'라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9:35 겸허:물이 아래에서 흐르듯이 겸손하게 만물을 이롭게 한다. 부쟁:흐르는 과정에서 장애물과 싸우지 않고 옆으로 돌아간다.
도덕경과 태극권은 별 관계 없습니다. 태극권 이론에 태극이 들어가긴 하지만 이건 후대에 들어간 것이고, 태극권의 원래 명칭도 태극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도덕경도 태극 이론과 밀접한 관계는 아닙니다. 또한 도덕경을 잘 읽어 보면 정치 이론서의 원론으로 보는 게 맞다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하는 큰 이론의 원론 정도요. 각론이 없으니 그냥 읽으면 우주 만물의 원리에 대한 내용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사실 우주 만물의 원리(도)에서 정치 원리를 끌어내는 내용입니다.
노자 컨텐츠를 보다보니 대학 다니던 시절에 배우고 까먹고 살던 치국약팽소선 이나 절학무우 피갈회옥 같은 단어가 다시 떠오르네요. 옛날엔 훨씬 더 많은 구절들을 외우고 곱씹으면서 살았던거 같은데 지금은 장자에서 봤던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이 기억에 남아있는걸 보면 확실히 장자의 방식이 사람들에게 더 좋은 접근방식이었던건 맞는것 같습니다.진리를 이야기를 풀어쓴다고 해서 그 화두의 깊이는 작아지지 않고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으니 말이죠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 이렇게 끊어 읽으면 안됨. 해석하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됨.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니..이게 무슨 말인가? 말도 안되는 말로 해석한다. 도가 도비 상도, 명가 명비 상명 : 2자씩 끊어 읽어야 한다. 그러면 해석- 도를 얻어도 그 도를 벗어나서 넘어서야 진정한 도가 되며/ 이름을 얻어도 그 이름을 벗어나서 넘어서야 진정한 이름이 된다. 해석하면 도라는 어떤 이치나 깨달음과 명 즉 이름이나 명성은 다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도나 명이란 어떤 이론이나 주장인 것처럼 실천이 아니라 말뿐인 것이다. 그래서 다음 구절에 천지의 시작에는 명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만물이 있고서야 사람들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노자는 도란 것이 사람들이 만든 이치에 불과하고 명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문구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말이나 주장에 불과한 도(도가)를 얻어도 , 그 도를 벗어나고 넘어서서(도비), 일상에서 실천적으로 구현할 때 진정한 도(상도)가 된다. 또 말 뿐인 허황된 이름을 얻어도(명가) 그 이름을 벗어나서 넘어서서(명비), 일상에서 실전적으로 구현할 때 진정한 이름이 된다(상명).
톨스토이의 동화 을 읽고 마치 노자가 그린 이상국가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런 배경이 있던 거군요. 이미 노자 강의 녹화가 다 끝났겠지만, 현존하는 최고(古)의 판본인 죽간본 소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판본은 현재 널리 알려진 판본과 차이점이 많은데, 유가와 반목하기는커녕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어서, 흔히들 알고 있는 유가와 반목하는 노자 사상이 후대에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이명신-w2e 1) 도덕경이 한문(한자)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면 어떤 글자로 쓴 건 지 말씀해 보시오. 2) 님이 말씀하신 게 내가 쓴 글이랑 무슨 관계인지 밝히시오. (내 글에는 '한문'은커녕 문자 종류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음. 한문으로 썼던 외계 문자로 썼던, 백서본보다 죽간본이 더 오래된 판본이라는 사실과 관계 없음.) 3) '노자'가 한문이라고 한 적 없는데요? '노자'는 사람이죠!
안녕하세요!! 영상은 잘보았습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하여 조금의 부연설명을 덧붙여봅니다.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지만, '도'는 노자가 처음 사용한 개념은 아닙니다. 공자도 '도'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공자와 노자 모두 '도'라는 원리를 개체들 이전에 미리 존재하는 최상의 원리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를 서양고대철학에서의 아르케라고 보기에는 사실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도에는 '관계적 의미'가 많이 깃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도'는 길을 의미하고 개체들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원리의 의미가 더 강하게 들어있습니다. '도'에 관계적인 의미를 담아서 해석하는 것이 동양철학의 전반을 이해하는 것에 매우 큰 도움이 되기에 물질적인 아르케보다는 조화로움을 가능케해주는 최상의 원리의 의미로 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특히 이러한 도의 의미는 장자의 철학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다뤄주실 것 같습니다! + 노자를 회의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는 매우 상세하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이라 제외합니다. +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기에 도를 설명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뉘앙스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한, 영상에서의 '무' 개념은 '없음'보다 '비어있음'의 의미로 이해하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동양철학에서는 전반적으로 '비어있음'의 윤리를 주장하는 부분을 매우 많은 곳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지식을 쌓고 자기자신을 채우라고 얘기하지만, 동양에서는 오히려 지식을 버리고 자기자신을 비우라고 얘기합니다. 가령, 내 마음이 어떠한 감정으로 채워져있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겠죠. 자신을 비워야만 현재 자신의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핵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해하는 것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노자는 '덕스럽지 않은 것이 최고로 덕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급의 덕은 자신을 덕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이니, 유덕한 '척'만 할 뿐,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칭찬 또는 이익을 위한 연출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덕을 강조하는 것은 그 사회에 덕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이미 덕스러운데 덕을 강조하겠습니까? 그렇기에 노자는 덕스럽지 않음이 최고로 덕스럽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유학의 서적에서도 말하듯이 '대동사회'에는 '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는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써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유학자들도 어쩌면 예가 없는 상태(대동사회)를 더 이상적으로본 것은 아닐까요? 상선약수의 진정한 의미를 씹어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게 낭만적이지는 않죠. 노자는 서로의 갈등상황에서 '자신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싸우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갈등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 타겟이 되지 않는 것을 중요시한 것입니다. 노자는 도덕경 36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엇을 접고 싶다면, 먼저 펴주어라", "무엇을 약하게 하고 싶다면, 먼저 강하게 해주어라", "빼앗고 싶다면, 먼저 주어라". 즉, 서로의 갈등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는 것보다, 자신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것. 즉, 약자가 되는 것입니다. + Tip) 철학은 사실 현실과 동떨어져있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동양철학의 깨달음을 직접 삶에 투영하여 이해하는 것은 5분철학 컨텐츠를 보는 것에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또한 노자는 생존에 노골적입니다. 관계에서 자신이 우위를 점하길 원하죠. "빼앗고 싶다면, 먼저 주어라" 뭔가 철학적이고, 모순적이고, 멋있어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도 가집니다. 백성들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먼저 선을 배풀어라.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백성들을 위해 일해라. "굶어죽는 백성을 살려주어라. 그렇다면 그는 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마다않고 전쟁에 나갈 것이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점이 있으니, 백성을 이용하기 위해 백성에게 잘해주는 것임을 들키지 말아라" 노자는 이러한 술수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상선약수의 의미에는 이러한 유리한 포지셔닝이 들어있죠.
@@8stardust 우선 '도'라는 개념을 노자가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정보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노자의 '도'를 우주만물을 탄생시키는 초월적인 어떤 agent로 보기에는 불충분합니다. 물론 노자의 도는 우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노자가 말하는 '도'의 핵심은 아닙니다. 노자 선생께서 가르치려고 했던 본질적인 내용은 '도'에 담긴 우리 인간 관계의 길임을 아시는 것이 중요해보입니다! 그랬을 때, 관계의 원리(도)가 이미 정해져있고 그에 따라 조화로운 관계가 가능하다고 본 면에서 공자와 노자의 도는 같은 맥락을 보입니다. 그리고 공자의 '도'를 고작 인간사회를 다룬 작은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정도 비약이 있어보여요. 어느 철학자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사회'를 다룬 것이 작은 안목인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보이네요. 인간사회에 관한 통찰이 '고작 작은 안목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그랬다면 공자는 세계 4대 성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또한, 공자와 노자의 포인트가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자연'에 영감을 받아 '도'에 관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그러한 '도'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반면, 공자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인간 관계에서 자신만의 '도'를 찾았죠. 공자가 만물의 근원에 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못'하는 '작은 안목'을 가진건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언행을 살펴보면, 공자는 우주의 근원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생도 모르는데,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말한 것과 같이 공자에게 있어서 우주의 근원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화롭고 조화로운 관계의 세상을 원했을 뿐이에요.
예전에는 도가도비상도를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으로 이해를 했었는데, 도올선생님 책을 읽어보니 장님이 코끼리 만진다라는 뜻은 아닌듯 하더라고요. 상 이라는 글이 항상 그러하다. 라는데 영원하다도 아니고 불변한다도 아닌 항상 그러하다 는 아직 이해가 안되는 중입니다.ㅎㅎ;
서양철학자들은 동양 사상에 심취하고, 동양사람들은 서양종교에서 진리를 찾습니다. 그런데 사실 표현방법의 차이에 가깝고 핵심 메시지는 거의 유사합니다. 다른곳에서 답을 찾고자하는건 답을 모르기 때문인거죠. 이를 테면,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했고, 이런 신인합일에서 오는 자유함은 무위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동서양의 과학과 철학 발전의 차이에는 지리 기후 문화 역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도덕경을 콕 집어서 이것때문이다라고 하는 건 오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도가사상이 동양인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 했습니다. 이것은 님의 말대로 도가가 이해하기 어렵고 사변적인 탓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가가 어렵기 때문에 태극권이니 도인이니 하는 민간신앙 정도로 왜곡해서 받아들여왔습니다. 또는 님처럼 단순히 문학으로만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도가를 구운 작은 생선처럼 조심히 음미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늘 소수였습니다. 게다가 한 사상이 자리잡으려면 지배집단의 지지가 필요한데 도가는 이부분에서도 맞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지배집단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인위를 정당화시켜줄 사상인데, 인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무위의 도는 영 무쓸모였고 어떻게 보면 통치자 입장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조선에서도 선비가 도가를 공부한다고 하면 뒷담화의 대상이 됐을만큼 업신여겼습니다. 도가를 향유하는 방식은 자유지만 함부로 탓하는 생각은 도가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덕을 티내려고 하면 도리어 덕이 사라진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어린왕자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ㅎㅎ 외면을 화려하게 치장할수록 속은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도 동서양을 막론한 진리인 것 같네요 어쩌면 이렇게 댓글로 아는 척 한 줄 남기려 하는 것도 스스로의 지식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이것의 해석은 입을 연 사람의 숫자많큼 많은 것 같다 본 뜻은 도를 도라 할 수 있지만 꼭(항상) 도라고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뭐라도 이름 지을 수 있지만 꼭(항상) 그이름 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경 전체를 관통하는 도에 대한 사전정의를 세운 것인데 뭔 말들이 그렇게 많은지... 노자가 지금부터 그냥 도道라고 이름을 정하고 그 도라는 것에 대해 썰을 풀어 보겠다 이런 뜻인데... 해석오류가 너무 너무 많아. 온 갖 양념을 쳐놔서 뭘 요리한지 모르게 되었다. 청천 하늘에 뜬구름 구르는 소리... 서리맞은 풀 쓰러지는 소리들로 가득해... 엄청나. 도대신 "닭"이라고 해도 되지만 그건 이미 의미가 있잖아 그래서, 추상적이면서 그 당시까지 쓰지 않았던, 혹은 흔치않던(내생각) 그럴듯한 도를 쓴 거지. 저걸 도가도비상도(途可途非常途) 라고 했어도 문제될 건 없다는 뜻. 도를 아십니까, 위대한 도인, 도사, 이런 것등의 깨달음으로 인식되는 그런 "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근데, 노자가 도道를 사용한 것은 참으로 멋진 발상이었던 같다...
노자가 한말은 도경중 일부고 이후 범인들이 덕경을 엮어서 만든게 도덕경임, 노자는 생전 한번도 글을 쓰지않았음, 글을 쓴다는건 하나의 욕망의 표현으로 범인들이나 하는짓임, 노자 예수 소크라테스 부처 할라지 등 성인들은 글을 쓰지않았음, 그저 제자나 후손들이 옮겨젂었을뿐, 때문에 위대한 성인들은 저작이 없고 위대한 저작은 지은이가 없는거임,
@@이명신-w2e 백서본과 통행본이 큰 차이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대략 80%가 일치 합니다. 애초에 백서본과 거의 같은 판본이 많은 시간 후에 왕필이 주석을 단 것이 통행본이니까요. 또한 백서본은 통행본 1부인 도경과 통행본 2부인 덕경의 순서가 바뀌어 있어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인데, 왜 덕경 1장이 아니라 도경 1장에 꽂혔나요?
도덕경이야말로 해석이 어렵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다른 종교서적처럼 쉬운 버젼으로 대중눈높이에 맞춰 왜곡이 훨씬 덜하고), 원전이 훼손되지 않고 수천년 전 것 그대로 나오고 있어서, 정말 좋은 저서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고차원적이며 또한 후세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진리가 담긴 책이라 항상 생각. 도덕경에 대한 여러 저서와 강연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그중 가장 명쾌하고 최고의 해석은 역시 유튜브에서 공개되어 있는 최진석교수의 노자 시리즈입니다.
명상하는 사람들중 우주의근원을 느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 사람들이 바로 도를 아는 겁니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하죠.
도 = 존재안의 존재 = 참 나 = 우주의 근원.
근대에 도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대요.
@@8stardust 물론 명상자체는 옳은 것이고 도교에 속하기는 하지만 최진석 교수님의 강의 첫머리에 바로 이런 류의 신비류부터 구분해야 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김기태 선생님의 도덕경 강의도 좋아요
도를 체득한 사람이 안철수 캠프로 가나?
1화 부터 계속 정주행하고 있습니다.
내용 구성 부터 영상 편집, 목소리 까지 전부 훌륭합니다. 명작입니다.
좋은 강의 고맙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노자에 대해 조금 덧붙입니다.
노자는 폭풍우 치는 바다와 같은 난세에서 살아남으려면, 짐을 최대한 버리고 가벼운 상태로 흐름, 즉 무위에 맡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힘없이 뭘 하지 않는데 세상에 어떻게 도움이 되느냐에 대해서는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노자는 이에 대해 '목재론 쓸모없는 큰 나무를 베어가지 않으니, 오래 살아 사람들의 그늘이 되어주었다.'라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9:35 겸허:물이 아래에서 흐르듯이 겸손하게 만물을 이롭게 한다.
부쟁:흐르는 과정에서 장애물과 싸우지 않고 옆으로 돌아간다.
동양 철학까지 재밌다니~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동양철학 파트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오한 철학을 십몇분으로 압축해서 말하는데는 상당 위험한 분실이 있을수 있지만...
여러 노자에 관한 클립중에 단연 돋보입니다.
언어와 실재에 대한 설명이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문제에 대한 거여서 반가왔어요
물에 대한 상선약수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오신 여선생님의 강의에 푹빠져 듣다가 마지막에 무협영화가 등장하며 "니하오~호잇호잇~요녀석 침닦고 공부하거랏~!!!"
강의가 참 재미있습니다~😁
재밌게 봤습니다 저의 최애도서^^
핵심 내용을 압축적으로 잘 담은 군더더기 없는 영상이네요.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잠깐 배운 노자의 사상에 감명받아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했는데...알수록 진리인 것같고 나이들수록 더욱 울림이 커지네요~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좋은말 감사합니다
손미애 교수님 강의 감사합니다😀
2:14 노자 선생님 네일아트 쌈빡하네요
도덕경 읽고 태극권 배우러 가야겠습니다
도덕경과 태극권은 별 관계 없습니다.
태극권 이론에 태극이 들어가긴 하지만
이건 후대에 들어간 것이고,
태극권의 원래 명칭도 태극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도덕경도 태극 이론과 밀접한 관계는 아닙니다.
또한 도덕경을 잘 읽어 보면
정치 이론서의 원론으로 보는 게 맞다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하는 큰 이론의 원론 정도요.
각론이 없으니 그냥 읽으면 우주 만물의 원리에 대한 내용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사실 우주 만물의 원리(도)에서 정치 원리를 끌어내는 내용입니다.
@@이도-j9i 와 진지하시다
5분 뚝딱에서 동양철학 다뤄주셔서 정말 좋습니다! 👍
어려운책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셔서 잘이해할수있었습니다! 영상 최고네요 감사합니다!
노자 컨텐츠를 보다보니 대학 다니던 시절에 배우고 까먹고 살던 치국약팽소선 이나 절학무우 피갈회옥 같은 단어가 다시 떠오르네요. 옛날엔 훨씬 더 많은 구절들을 외우고 곱씹으면서 살았던거 같은데 지금은 장자에서 봤던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이 기억에 남아있는걸 보면 확실히 장자의 방식이 사람들에게 더 좋은 접근방식이었던건 맞는것 같습니다.진리를 이야기를 풀어쓴다고 해서 그 화두의 깊이는 작아지지 않고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으니 말이죠
목소리 안정적이시고 발음도 정확, 성량도 고급스러우시고 ~ 수고 하셨습니다. 공부잘되게 해주시는 능력자 새요
도 = 진리
~ 태초의 빛
빛을 보면서 그빛을 계속해서 보아야 태초의 그 빛으로 나아가리라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들었습니다.
뚝딱철학을 응원합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중국불교 컨텐츠도 얼른 나왔으면 좋겠네요.
이사무애와 사사무애가 어떻게 다른지 혼자 공부하다 한계에 봉착해서요..
명쾌한 설명 기대합니다!
도는 양자역학 같은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으며 관찰하는 순간 결정되어지고 그 실체를 알수가 없다
목소리가 너무 부드럽고 좋으시네요.. 간단한 한자 직역도 조금 보태었으면.. 근현대서구지성들이 도덕경을 평가하였다니..
항산이 없어 예도 잘 못지키는 것이 평범한 소시민인데 이런 고급강의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가의 사상은 심오하고 신비롭지만 이해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왜곡되고 오해받고 사이비를 만들어내기 쉽습니다. 심지어 그 잘못을 노자에게 덮어씌우기도 하죠. 이를 알고 있던 노자는 정말 마지못해서 도덕경을 썼을 겁니다.
말투가 남자분하고 비슷한데 달라서 넘 잼나여 넘 좋아요
심오하고 싶은 의미가 듬뿍 담겨 있는 줄 아랐습니다...
도는 내 마음을 아는 것이고, 덕은 마음과 마음이 사귀는 관계를 다룬 것이죠. 마음, 기운,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도덕경을 해석해야 제대로 보입니다.
나이 50 넘어서야 도덕경이 윤리학이 아님을 배우네요. 무지함이 부끄... 평소 서양철학에만 관심을 두고 동양철학에 무지했는데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동양철학이 더 이어지지 않아 아쉽네요. 다시 관련 동영상이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 이렇게 끊어 읽으면 안됨. 해석하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됨.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니..이게 무슨 말인가? 말도 안되는 말로 해석한다.
도가 도비 상도, 명가 명비 상명 : 2자씩 끊어 읽어야 한다. 그러면 해석- 도를 얻어도 그 도를 벗어나서 넘어서야 진정한 도가 되며/ 이름을 얻어도 그 이름을 벗어나서 넘어서야 진정한 이름이 된다.
해석하면 도라는 어떤 이치나 깨달음과 명 즉 이름이나 명성은 다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도나 명이란 어떤 이론이나 주장인 것처럼 실천이 아니라 말뿐인 것이다.
그래서 다음 구절에 천지의 시작에는 명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만물이 있고서야 사람들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노자는 도란 것이 사람들이 만든 이치에 불과하고 명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문구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말이나 주장에 불과한 도(도가)를 얻어도 , 그 도를 벗어나고 넘어서서(도비), 일상에서 실천적으로 구현할 때 진정한 도(상도)가 된다.
또 말 뿐인 허황된 이름을 얻어도(명가) 그 이름을 벗어나서 넘어서서(명비), 일상에서 실전적으로 구현할 때 진정한 이름이 된다(상명).
사랑이네요
톨스토이의 동화 을 읽고 마치 노자가 그린 이상국가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런 배경이 있던 거군요.
이미 노자 강의 녹화가 다 끝났겠지만, 현존하는 최고(古)의 판본인 죽간본 소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판본은 현재 널리 알려진 판본과 차이점이 많은데,
유가와 반목하기는커녕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어서,
흔히들 알고 있는 유가와 반목하는 노자 사상이
후대에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노자는 한문이 아닙니다. 어느 판본이건 한문으로 해석한 건 다 엉터리입니다.
@@이명신-w2e 1) 도덕경이 한문(한자)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면 어떤 글자로 쓴 건 지 말씀해 보시오.
2) 님이 말씀하신 게 내가 쓴 글이랑 무슨 관계인지 밝히시오.
(내 글에는 '한문'은커녕 문자 종류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음.
한문으로 썼던 외계 문자로 썼던, 백서본보다 죽간본이 더 오래된 판본이라는 사실과 관계 없음.)
3) '노자'가 한문이라고 한 적 없는데요?
'노자'는 사람이죠!
@@이도-j9i 이 판본은~해 줍니다까지 한문으로 해석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한문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차이점을 어떻게 알 수 있죠? 나머지는 귀찮아서 그만하렵니다.
@@이명신-w2e 왜 한문으로 해석한 것은 다 엉터리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궁금해서요 ㅎㅎ
@@수-i8j 노자 도덕경은 연역법, 즉 삼단논법입니다.
뭐, 포사도 뱃속에 20년 이상, 진시황제도 12달만에 나왔다니~ 믿어야하것네요 ^🙌^
안녕하세요!! 영상은 잘보았습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하여 조금의 부연설명을 덧붙여봅니다.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지만, '도'는 노자가 처음 사용한 개념은 아닙니다. 공자도 '도'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공자와 노자 모두 '도'라는 원리를 개체들 이전에 미리 존재하는 최상의 원리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를 서양고대철학에서의 아르케라고 보기에는 사실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도에는 '관계적 의미'가 많이 깃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도'는 길을 의미하고 개체들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원리의 의미가 더 강하게 들어있습니다. '도'에 관계적인 의미를 담아서 해석하는 것이 동양철학의 전반을 이해하는 것에 매우 큰 도움이 되기에 물질적인 아르케보다는 조화로움을 가능케해주는 최상의 원리의 의미로 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특히 이러한 도의 의미는 장자의 철학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다뤄주실 것 같습니다!
+ 노자를 회의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는 매우 상세하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이라 제외합니다.
+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기에 도를 설명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뉘앙스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한, 영상에서의 '무' 개념은 '없음'보다 '비어있음'의 의미로 이해하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동양철학에서는 전반적으로 '비어있음'의 윤리를 주장하는 부분을 매우 많은 곳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지식을 쌓고 자기자신을 채우라고 얘기하지만, 동양에서는 오히려 지식을 버리고 자기자신을 비우라고 얘기합니다. 가령, 내 마음이 어떠한 감정으로 채워져있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겠죠. 자신을 비워야만 현재 자신의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핵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해하는 것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노자는 '덕스럽지 않은 것이 최고로 덕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급의 덕은 자신을 덕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이니, 유덕한 '척'만 할 뿐,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칭찬 또는 이익을 위한 연출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덕을 강조하는 것은 그 사회에 덕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이미 덕스러운데 덕을 강조하겠습니까? 그렇기에 노자는 덕스럽지 않음이 최고로 덕스럽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유학의 서적에서도 말하듯이 '대동사회'에는 '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는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써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유학자들도 어쩌면 예가 없는 상태(대동사회)를 더 이상적으로본 것은 아닐까요?
상선약수의 진정한 의미를 씹어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게 낭만적이지는 않죠. 노자는 서로의 갈등상황에서 '자신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싸우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갈등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 타겟이 되지 않는 것을 중요시한 것입니다. 노자는 도덕경 36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엇을 접고 싶다면, 먼저 펴주어라", "무엇을 약하게 하고 싶다면, 먼저 강하게 해주어라", "빼앗고 싶다면, 먼저 주어라". 즉, 서로의 갈등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는 것보다, 자신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것. 즉, 약자가 되는 것입니다.
+ Tip) 철학은 사실 현실과 동떨어져있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동양철학의 깨달음을 직접 삶에 투영하여 이해하는 것은 5분철학 컨텐츠를 보는 것에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내가 없다는 것은 내가 비어있다는 뜻이겠지요.
또한 노자는 생존에 노골적입니다. 관계에서 자신이 우위를 점하길 원하죠. "빼앗고 싶다면, 먼저 주어라" 뭔가 철학적이고, 모순적이고, 멋있어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도 가집니다.
백성들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먼저 선을 배풀어라.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백성들을 위해 일해라. "굶어죽는 백성을 살려주어라. 그렇다면 그는 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마다않고 전쟁에 나갈 것이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점이 있으니, 백성을 이용하기 위해 백성에게 잘해주는 것임을 들키지 말아라"
노자는 이러한 술수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상선약수의 의미에는 이러한 유리한 포지셔닝이 들어있죠.
공자와 노자는 차원이 다릅니다.
노자는 우주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고,
공자는 고작 인간사회를 다룬 작은 안목에 불과 합니다
@@8stardust 우선 '도'라는 개념을 노자가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정보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노자의 '도'를 우주만물을 탄생시키는 초월적인 어떤 agent로 보기에는 불충분합니다. 물론 노자의 도는 우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노자가 말하는 '도'의 핵심은 아닙니다. 노자 선생께서 가르치려고 했던 본질적인 내용은 '도'에 담긴 우리 인간 관계의 길임을 아시는 것이 중요해보입니다! 그랬을 때, 관계의 원리(도)가 이미 정해져있고 그에 따라 조화로운 관계가 가능하다고 본 면에서 공자와 노자의 도는 같은 맥락을 보입니다.
그리고 공자의 '도'를 고작 인간사회를 다룬 작은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정도 비약이 있어보여요. 어느 철학자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사회'를 다룬 것이 작은 안목인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보이네요. 인간사회에 관한 통찰이 '고작 작은 안목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그랬다면 공자는 세계 4대 성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또한, 공자와 노자의 포인트가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자연'에 영감을 받아 '도'에 관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그러한 '도'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반면, 공자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인간 관계에서 자신만의 '도'를 찾았죠. 공자가 만물의 근원에 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못'하는 '작은 안목'을 가진건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언행을 살펴보면, 공자는 우주의 근원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생도 모르는데,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말한 것과 같이 공자에게 있어서 우주의 근원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화롭고 조화로운 관계의 세상을 원했을 뿐이에요.
메타철학을 해보자면, 도가도 비상도 라는 첫 구절의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하면, "그 이후에 대한 도경에서의 '도'에 대한 설명이 '상도(常道)'이다"라는 명제는 '참'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거짓'일까요?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 철학의 핵심어 중 하나 같으네요.
세상살이에 물처럼 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소룡도 "물이 되게나 친구여" 라고 했었죠.
물속성 노자..
도가도 비상도
도 언어 이름은
여러가지 가능성 중에서
그 상태에 맞는 적절한
한 가지로 고정되는 것
즉 非常상태에서 常상태가 되는 것
동양철학도 재밌네요 ㅋㅋㅋ 제가 알고 있는 노자의 정치철학 일부를 댓글로 쓰자면 인위적인 인프라를 줄이는 쪽이지 아예 없애지는 않는건지 그런 쪽이라고 읽은 기억이 잇어요..
노자나 율곡이나 둘 다 이이다.
큰귀를 가진 자두.
어머니가 도인인데; 70년을 품었으니;
똥배임
나는 존재하지 않다가 태어나서 약간의 일과 사랑을 하고 다시 존재하지 않게 되고 슬퍼하지 않는다.
- 헤르만 그라스만 -
감사합니다. 근데 말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동양철학자가 아니라서 주제랑 맞지않는 글을 써서 눈치가 좀 없을 수 있지만 언젠가 꼭 데이비드 베너타를 다루어 주었으면 합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야기나올 수 밖에 없는 철학자라 생각합니다.
동양사상은 기본적으로 정치철학 아닌가요?
세금과 권력의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요~
심화편으로 곽점초묘죽간 같은 것들과 비교하는 내용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도가도비상도를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으로 이해를 했었는데, 도올선생님 책을 읽어보니 장님이 코끼리 만진다라는 뜻은 아닌듯 하더라고요.
상 이라는 글이 항상 그러하다. 라는데 영원하다도 아니고 불변한다도 아닌 항상 그러하다 는 아직 이해가 안되는 중입니다.ㅎㅎ;
❤❤
서양철학자들은 동양 사상에 심취하고, 동양사람들은 서양종교에서 진리를 찾습니다. 그런데 사실 표현방법의 차이에 가깝고 핵심 메시지는 거의 유사합니다. 다른곳에서 답을 찾고자하는건 답을 모르기 때문인거죠. 이를 테면,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했고, 이런 신인합일에서 오는 자유함은 무위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간에 박사님 목소리 ai인가요?ㅋㅋ
저도 비슷한 작업 많이 해봤는데,
같은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대에 녹음해도
날마다 목소리 톤이나 발성이 다른 게 너무 확 티가 나요. ^^
좋은 강의세요
필영샘이 했어도 원문을 읽으셨을 거고
노자말마따나
일부 거부하시는 분이 있으니
좋은 강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으신거죠
Let It Be
돌아와주십시오!
영화는?
주성치의 쿵푸허슬
@@아비-x9q 감사합니다
이연걸의 태극권이 더 어울릴텐데
오 제 자기전 목소리
도경은 지혜의 경...덕경은 자비의 경... 아닌가요.?
08:10
무위無爲가 혼돈chaos이었다니
놀랍다,
"질서는 인간의 창조물人爲이다"라고 주장하면 누가 믿으려나?
존재하는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수있는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수없는것도 존재할수없다.
따라서 모든 존재의 의미는 존재하지않는다. 고로존재는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불교랑 비슷한데요
@@ShallSetmefree 존재의 끈을 잡으려 하다보니
존재의 끈을 놓치게 되네요.
@@토비의하루 똑똑할 수록 허무함을 잘느끼는 것 같아요. 산다는 건 솔로몬이 말한 것처럼 바람을 잡으려는 일 아닐까 합니다.
@@ShallSetmefree 제대로아시네요 노자 책 끝부분도 그게 아니였을까요? (허무)
노자는 허무를 말하지 않아요. 도 = 우주의 근원을 말하는 거지요. 앎의 상태에서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고작 좁은 인간 사회만을 말하는게 아니에요. 석가모니 처럼 그저 아는 상태..
노자는 아무것도 안한다고 비판받을수도 잇겟죠
저는 기존 김필영 선생님께서 할때보다 집중이 잘 안되는 느낌입니다. 가령 불필요한 한자를 나열하고 뜻이나오올때까지 기다리게 하기 보다는 한자와 뜻을 함께 나열해주거나 유관 비유삽화가 기존 서양철학때처럼 더 높은 빈도로 함께 가미된다면 더 집중될듯합니다
꼭 필요한 한자 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돈을내고 들어야 합니다
집사재 출판사에서 나온 도덕경 추천합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분량도 뻥튀기 돼 있지 않아요.
@@이도-j9i 홍보는 돈 내고 하시오.
@@이명신-w2e 홍보가 기가 막히오.
(노자의 삼단논법하니까, 자기 이론을 여기서 마구 홍보하시던 채동식 씨가 생각나네요. 난 그분 홍보 행위 자체는 딴지 걸지 않았는데. ㅋ)
@@이도-j9i 팁을 하나 줄까요? 노자의 도는 `갈 지`인데 `갈 지`의 원래 뜻이 `발`을 그린 겁니다. 즉 도는 발입니다.
@@이명신-w2e 홍보 얘기하다가 갑자기 웬 다른 소리하십니까?
정말 홍보가 기가 막히네요.
인터넷 발달은 정말 좋다..
노자가 이씨 였군😮
아무리봐도 도덕경 때문에 동양에서 과학과 철학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되는 사변적인 노자. 그냥 도덕경을 시로 문학적으로 받아 들이는게 정신건강에 좋을 듯.
동서양의 과학과 철학 발전의 차이에는 지리 기후 문화 역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도덕경을 콕 집어서 이것때문이다라고 하는 건 오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도가사상이 동양인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 했습니다.
이것은 님의 말대로 도가가 이해하기 어렵고 사변적인 탓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가가 어렵기 때문에 태극권이니 도인이니 하는 민간신앙 정도로 왜곡해서 받아들여왔습니다. 또는 님처럼 단순히 문학으로만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도가를 구운 작은 생선처럼 조심히 음미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늘 소수였습니다.
게다가 한 사상이 자리잡으려면 지배집단의 지지가 필요한데 도가는 이부분에서도 맞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지배집단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인위를 정당화시켜줄 사상인데, 인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무위의 도는 영 무쓸모였고 어떻게 보면 통치자 입장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조선에서도 선비가 도가를 공부한다고 하면 뒷담화의 대상이 됐을만큼 업신여겼습니다.
도가를 향유하는 방식은 자유지만 함부로 탓하는 생각은 도가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아이귀여웡
동양철학들 대부분 사변적이라고 보여지고요.
동양에서 과학과 철학의 발전이 뎌더진 것을 도가에만 전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쨋든 한 부분은 일조했다고 보여집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오호
도레미~
덕을 티내려고 하면 도리어 덕이 사라진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어린왕자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ㅎㅎ 외면을 화려하게 치장할수록 속은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도 동서양을 막론한 진리인 것 같네요
어쩌면 이렇게 댓글로 아는 척 한 줄 남기려 하는 것도 스스로의 지식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도덕경 구절마다 골때리는 바탕이 무엇인지 왜 안 찾는지 그게 이해불가 과연 노자가 가르쳐주는대로 사는게 도인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이것의 해석은 입을 연 사람의 숫자많큼 많은 것 같다
본 뜻은
도를 도라 할 수 있지만 꼭(항상) 도라고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뭐라도 이름 지을 수 있지만 꼭(항상) 그이름 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경 전체를 관통하는 도에 대한 사전정의를 세운 것인데
뭔 말들이 그렇게 많은지...
노자가 지금부터 그냥 도道라고 이름을 정하고
그 도라는 것에 대해 썰을 풀어 보겠다 이런 뜻인데...
해석오류가 너무 너무 많아. 온 갖 양념을 쳐놔서 뭘 요리한지 모르게 되었다.
청천 하늘에 뜬구름 구르는 소리...
서리맞은 풀 쓰러지는 소리들로 가득해... 엄청나.
도대신 "닭"이라고 해도 되지만 그건 이미 의미가 있잖아 그래서,
추상적이면서 그 당시까지 쓰지 않았던, 혹은 흔치않던(내생각) 그럴듯한 도를 쓴 거지.
저걸
도가도비상도(途可途非常途) 라고 했어도 문제될 건 없다는 뜻.
도를 아십니까, 위대한 도인, 도사, 이런 것등의
깨달음으로 인식되는 그런 "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근데, 노자가 도道를 사용한 것은 참으로 멋진 발상이었던 같다...
보지않는 도서정리해드립니다.
공일공 오공구일 이팔공공
노자가 한말은 도경중 일부고 이후 범인들이 덕경을 엮어서 만든게 도덕경임, 노자는 생전 한번도 글을 쓰지않았음, 글을 쓴다는건 하나의 욕망의 표현으로 범인들이나 하는짓임, 노자 예수 소크라테스 부처 할라지 등 성인들은 글을 쓰지않았음, 그저 제자나 후손들이 옮겨젂었을뿐, 때문에 위대한 성인들은 저작이 없고 위대한 저작은 지은이가 없는거임,
최소한 노자 1장은 노자가 쓴듯합니다. 통행본은 엉터리고 백서본이 옳은데 문자로 쓴 기하학입니다. 즉 수학적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명신-w2e 채동식 씨...
죽간본을 무시하십니까?
@@이도-j9i 노자 1장에 관한 한 백서본이 옳다는 겁니다. 사실 도덕경에 변형이 너무 많이 돼서 특히 통행본 텍스트는 무쓸모입니다.
@@이명신-w2e 백서본과 통행본이 큰 차이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대략 80%가 일치 합니다.
애초에 백서본과 거의 같은 판본이 많은 시간 후에 왕필이 주석을 단 것이 통행본이니까요.
또한 백서본은 통행본 1부인 도경과 통행본 2부인 덕경의 순서가 바뀌어 있어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인데, 왜 덕경 1장이 아니라 도경 1장에 꽂혔나요?
@@이도-j9i 도덕경은 노자가 쓴 것에서 100%가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도덕경은 한자지만 기호 논리 체계입니다. 어떤 문제를 증명할 때 기호 하나만 틀려도 다 엉클어지죠? 같은 이치입니다.
ㅋㅋㅋㅋ
큰 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 귀가 컸다고 합니다. 신체는 가지고 있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인 으! 예
‘으’???
이건 좀 아닌것같다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여성분 목소리에 집중이 안됩니다. 그냥 교수님께서 전부 하시면 안되나요?
김필영씨가 안하니까 재미없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