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이 털어 놓은 '이별의 노래'의 주인공 / '떠나가는 배'와 '이별의 노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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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7

  • @Jpark-m4r
    @Jpark-m4r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이노랠 엄마와 같이 부르던 때가 어제 같은데 정말 세월은 빨리가서
    엄마는 더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제목도 모르고 부르던노래

  • @엄태영-m4p
    @엄태영-m4p Год назад +4

    감사합니다
    좋은 노래, 편히 듣습니다ᆢ

  • @Lee-sv4yi
    @Lee-sv4yi Год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 @최상교-k5v
    @최상교-k5v Год назад +5

    목월의 이별의 노래
    그 사연과 연주
    감상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바라밀-o4o
    @바라밀-o4o 24 дня назад

    박목월이 이름이 지금 생각나지 않는데 아름다은 글을 쓴 여류와 사랑하다가 헤어지면서 쓴 시.
    산비둘기. 탱자나무 울타리 등 간단한 단편작가인데.

  • @이통영-y9v
    @이통영-y9v День назад

    박목월 시인의 교수시절 제자인 여대생과의 사랑의 도피는 아들 박동규 교수께서도 증언한 내용이고
    두사람이 동거했던 제주도 관덕정 부근 여관(마당이 넓은 한옥주택 지금은 사라지고 없음) 주인의 아들(당시 중학생 적어도 2010년경까지는 제주에 생존해 있었음)도 증언한 내용입니다
    그 중학생 아들에 따르면 두사람이 여관에 월세를 얻어 1년 가까이 동거를 하고 여대생이 매끼니마다 직접 밥을 지어 두사람이 같이 식사를 했답니다
    그리고 그 여대생의 생김새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증언을 했는데요 몸집이 갸날픈 미인이라고 합니다
    또 《떠나가는 배》의 작사가인 양중해 시인(전 제주대 국문과 교수)도 작고하시기 전 증언하기를 625가 일어날 무렵
    자신이 제주 제일중 교사 시절 박목월 시인이 제자인 여학생과 제주도로 와서 동거중이었는데 자신이 부두에서 두사람이 이별하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그 피를 토하는 분위기에서 시상이 떠올라 그 시를 쓰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제주 제일중 음악교사로 있던 변훈 선생이 여기에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변훈은 625때 제주도에 피난을 왔다가 제일중 교사로 들어왔는데요 휴전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하신 분입니다
    당시만해도 사회정서상 박시인의 사랑의 도피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제주의 문인들이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박시인과 가까이 할수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남자들이 첩을 줄줄이 거느리고 장관급 공직자들도 부부동반 모임에 첩을 대동하고 나갈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