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월인천강지곡도 만드신분. 최초의 순한글(한자어 단어는 작은 크기의 글자로 병기) 책. 곡을 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훈민정음 반포전에 만든 것임. 아들 수양대군이 만든 월인석보는 한자어 단어에 대해 한자를 먼저쓰고 한글을 작게 병기한 것에 비해 월인천강지곡은 한자어 단어에 대해 언문(훈민정음)로 먼저쓰고 한자를 작게 병기한 책. 그리고 세종은 정간보라는 악보도 만들어내신분... 세종은 소리의 모든 분야에 천재적인분.. 발음기관를 본떠 상형으로 훈민정음 자음을 만들고 모음도 천지인과 음양오행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모음도 입모양을 최대한 반영하여 발음을 배치함. 특히 기본음 천지인(•,ㅡ,ㅣ)은 발음시 혀모양을 최대한 반영하여 발음배치. 1.훈민정음 통하여 우리말표현, 외국어 발음표기, 자연의 음소리 표기. 2. 정간보를 통하여 음악의 표기법인 악보를 독창적으로 만듦. 서양의 오선지에 음표 그리는 것과 다른 독창적인 악보로 우리 음악이 기록될 수 있었던 것. 세종은 소리뿐 아니라 농업은 물론 모든 과학기술에도 관심을가지고 여러 사람들을 등용하여 진흥하였지만 세종만이 할수 있었던 것은 소리에 대한 것임. "훈민정음 창제와 정간보 창제"
원래 제례악은 여자는 못하도록 되어있었다. 지금의 제례악은 여자도 참가할수있다. 이것이 전통의 발전이자, 진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무가 굽어 자랐다고, 쓸모없다고, 잘라버리면, 숲에 자랄수 있는 나무는 없을것이다. 잘못된 전통은 왜 잘못된것인지 깨닿고,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도록 관리해주는것이 진정 전통을 사랑하는 정신이라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에도 비록 황제에서 이왕으로 격하되기는 했지만, 왕과 왕실이 존재했기 때문에, 대한제국 시기에 황실 업무를 담당하던 궁내부 대신 조선총독부는 이왕직을 두었습니다. 이왕직 산하에 종래의 장악원을 계승한 아악부가 존재하여 광복 직전까지 종묘·문묘 제향에 제례악을 연주하였고, 아악생 양성·아악 방송·악서 및 악보 편찬·악기 제작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이왕직 아악부의 전통은 현 국립국악원이 이어받고 있습니다. -위키백과-
화가난 펌프 평화적으로 합병되지 않았습니다만... 을사늑약 등등의 조약을 보신다면, 일본제국에게만 유리하게 되어있고 실제로 “합병” 이후로 수많은 우리 국민들이 잔혹하게 착취되었습니다 ..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과 올바른 사고를 가지셨으면 좋겠네요 ..
@@wj8671 500년이나 유지된 왕조는 세계적으로도 드뭅니다. 크고 작은 국난을 겪었고 그 오랜 시간을 버텨온 것만으로도 조선왕조는 나름대로의 저력을 가진 국가임이 틀림없습니다. 다만 국가와 국민이 아닌 왕실의 안위, 왕권에 집착한 고종의 무능함으로 조선왕조는 멸망합니다. 그러나 이는 세도정치 시기와 더불어 고종에서 끝을 맺는 개별 정권들의 연쇄적인 쇠락함에서 비롯될 뿐 큰 틀에서 볼 때 조선왕조가 '찬란'했다는 말이 과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얼마나 깊은 역사적 지식을 가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조선왕조가 '찬란?ㅋ'라는 한마디로 평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궐 밖에 있었대요 장악원의 관사는 성종의 특명으로 태상시(太常寺) 동쪽 수십 보 떨어진 곳에 민가를 철거하고 세워졌는데, 위치는 한성부 서부 소속의 여경방에 있었다. 새 청사에 장악원의 당상관(堂上官)과 낭청(郎廳)들이 일할 곳과 악공 및 악생들이 연습할 장소가 구별되어 마련되었고, 여러 종류의 악기들을 보관할 건물과 정조(正朝)나 동지(冬至) 때 문무백관들이 음악에 맞추어 조하의식(朝賀儀式)을 연습할 수 있는 넓은 뜰도 갖추었다. 임진왜란 때 이 청사가 불타버렸기 때문에, 선조 말기에 새로운 청사가 명동의 구 내무부청사 자리에 건립되었다. 새 청사의 대지는 1만 평이었고, 그 위에 수백 칸의 건물이 세워졌으므로 장악원의 음악활동이 모두 그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300여 년 동안 사용된 이 건물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대의 전진기지로 징발되어, 그 뒤 장악원의 후예들은 정국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뚜렷한 청사도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04년 당시의 교방사는 조동에 있는 개인집으로 옮겼다가 서울역 뒤 서학현(西學峴: 지금의 중림동)에 있는 장혜원 자리로 청사를 옮겼다. 경술국치 직후 당시 아악대는 1911년 장혜원의 자리에서 당주동에 있었던 봉상시(奉常寺)의 주고(酒庫)를 수리해 임시로 옮겼다. 그곳에서 아악대는 이왕직아악부로 개칭되었고,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의 제1·2기생들을 모집해 양성했다. 그 뒤 이왕직아악부는 1926년 1월 창덕궁 앞 운니동의 구 은사수산장(恩賜授産場: 왕실에서 돈을 주어 세웠던 공장)의 불탄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겼다.
@@김도율-z8l 궐 밖에 있었대요 장악원의 관사는 성종의 특명으로 태상시(太常寺) 동쪽 수십 보 떨어진 곳에 민가를 철거하고 세워졌는데, 위치는 한성부 서부 소속의 여경방에 있었다. 새 청사에 장악원의 당상관(堂上官)과 낭청(郎廳)들이 일할 곳과 악공 및 악생들이 연습할 장소가 구별되어 마련되었고, 여러 종류의 악기들을 보관할 건물과 정조(正朝)나 동지(冬至) 때 문무백관들이 음악에 맞추어 조하의식(朝賀儀式)을 연습할 수 있는 넓은 뜰도 갖추었다. 임진왜란 때 이 청사가 불타버렸기 때문에, 선조 말기에 새로운 청사가 명동의 구 내무부청사 자리에 건립되었다. 새 청사의 대지는 1만 평이었고, 그 위에 수백 칸의 건물이 세워졌으므로 장악원의 음악활동이 모두 그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300여 년 동안 사용된 이 건물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대의 전진기지로 징발되어, 그 뒤 장악원의 후예들은 정국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뚜렷한 청사도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04년 당시의 교방사는 조동에 있는 개인집으로 옮겼다가 서울역 뒤 서학현(西學峴: 지금의 중림동)에 있는 장혜원 자리로 청사를 옮겼다. 경술국치 직후 당시 아악대는 1911년 장혜원의 자리에서 당주동에 있었던 봉상시(奉常寺)의 주고(酒庫)를 수리해 임시로 옮겼다. 그곳에서 아악대는 이왕직아악부로 개칭되었고,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의 제1·2기생들을 모집해 양성했다. 그 뒤 이왕직아악부는 1926년 1월 창덕궁 앞 운니동의 구 은사수산장(恩賜授産場: 왕실에서 돈을 주어 세웠던 공장)의 불탄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겼다.
Hello, I am an elementary school student living in South Korea.Let me introduce Jongmyo Jeryeak in Korea.Jongmyo Jeryeak is a music play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t Jongmyo Shrine to perform ancestral rites to kings and queens, and is used for the largest and most important ancestral rites in Joseon with instrumental music, dance, and songs
Oh! Yeah!! I'm so surprised that this song is so clear, like a milk! It's clarity, exclusive music progression is so amazing! Yall know that the freaking and hard of practice made the music sooo perfect!! OMG I'm so impressed and it REALLY moved my heart...ToT
옛부터 궁중예악은 황제국이 갖춰야할 필수품으로 여겼죠. 예악의 음이 고르지 못하면 나라에 큰 횡액이 닥친다고 믿었을 정도로 중요시했어요. 중국에는 이런 전통 궁중예악이나 쳬계적인 궁중예법이 없어요. 왕실 조정이 한반도로 이주하면서 모두 가져왔기 때문이에요. 과연 누가 진정한 황제국이었을까요?
이런 국악은 음원으로 듣는거랑 실황으로 듣는게 백만배쯤 차이나요. 실제로 들으면 거칠거칠한 소리를 피부로 느낄 수 있죠. 종의 울림도 먼데서 들리듯 황홀하고요.
음악 수행 공부하려고 온 1인이요..ㅠㅠ
야뭉이 1인추가요
야뭉이 저듀ㅠㅠㅠ
여기 1인 추가요
야뭉이 저도....ㅎ
저도요..
새로운 국악장르로 젊은층도 같이 즐길 수 있는 국악을 일으키는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이런 전통을 지키는것 또한 너무 중요한것같다 나도 예전엔 학교에서 배우는것들로 그저 어려운 국악만을 생각했지만 조금씩 관심이 가고 들을수록 깊이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정말 신비롭고 귀하다 소중하다
나이먹고 철이드니 이런 공연이 경건해서 좋아요.
자극적이고 빠른 세상속에 살다 이런 공연을 보니
뭔가 깨달음을 주는것 같아요.
절도있고 성경신이 녹아있는 움직임
저두여^^
예전엔 왜 몰랐을까... 우리 것이 이렇게나 좋다는걸...ㅜㅜ 20대 때 친구가 종묘제례악 보러가자고 했을때 잉?? 했었는데.. 30대 후반 되어서야 직접 검색해서 들으러 오네요...
ㅋㅋㅋ 앞서가는 친구네요
전 10대때 들으러 오네요
9:07 희문
11:43 기명
15:17 아헌 악작
15:44 소무
18:27 독경
20:02 영관
워낙 서양음악에 익숙해져있어서 그런지 우리 것인데 낯설고 신비롭다
자연 다큐나 자연을 주제로 한 감성적인 영화에 삽입곡으로 쓰일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해외에서 찬사 받았다기에 외국인의 시선에서 참신하게 들어보려 노력해봤는데 정말 태고적 신비? 신비로운 자연의 소리처럼 들리네요. 앞으로 좀더 관심가져야겠습니다.
장장 거의20분 동안 집중력 잃지 않고 계속 연주하시는 국악연주자분들 대다나시다.
중요한건 다 외워서 한다는 부분입니다^^
장장 거의 20분 동안 온라인클래스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고 듣는 내가 대다나다
초록옷입고 서서 모든 곡의 시작과 끝을 악사들에게 알려주는 박을 치는 사람 대단하지요~
마음이 평온해진다....
뭐랄까.....잔잔한 수면에 물이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그런.......
? 도레미파솔로시죠 프사보니까마음이평온할일은없은듯
임금께 바치는 장송곡이라 개불편한게 정상 아님??
@@tv-in4fe 그건 니가 비정상
@@tv-in4fe 아 그건좀
일단 곡은 전혀 잔잔하지 않은듯
클래식 하는 사람인데 듣다 듣다 들을 음악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저는 국악이 오히려 현대음악처럼 들리네요. 넘나 천재적인 음악.
힘들 때 나를 기다리게 하고 이 음악을 들으면 세종대왕의 작곡이 위대하고 시조 늙은이를 생각하며 들으니 마음이 새로워 진다.
세종장헌대왕님의 애민정신이 살아 숨쉬는 우리의 종묘제례악은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수행평가에요? 댓글 남기는게?
백성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노비종모법으로 많은 백성을 노비로 만들어버리신 킹 세종 존경합니다~
@@UpanddownQ 어? 이거완전...
@@UpanddownQ ㅋㅋㅋㅋ한글 왜 쓰세욬ㅋㅋㅋ?
@@UpanddownQ 팩트)노비종모법 덕에 세조 시기까지 노비의 수는 계속 감소했고, 이는 세조가 일천즉천을 부활시킨 계기가 되었다. 무식하면 입이라도 조심하자.
기억해야 할 부분이라면, 세종대왕은 중세 분이시다..중세에 저 정도의 음악을 만들어 낸 거면 대체 얼마나 많은 공부와 수양을 한걸까? 지금 들어도 경이로운데.
동양의 중세 와 서양의 중세는 많이 다름 서양의 중세는 로마가 망한 직후 야만의 시대 이기 때문에 빗대어 설명 하는 것도 어불성설임
조선은 근세라고도 하죠
세종은 월인천강지곡도 만드신분. 최초의 순한글(한자어 단어는 작은 크기의 글자로 병기) 책. 곡을 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훈민정음 반포전에 만든 것임. 아들 수양대군이 만든 월인석보는 한자어 단어에 대해 한자를 먼저쓰고 한글을 작게 병기한 것에 비해 월인천강지곡은 한자어 단어에 대해 언문(훈민정음)로 먼저쓰고 한자를 작게 병기한 책.
그리고 세종은 정간보라는 악보도 만들어내신분...
세종은 소리의 모든 분야에 천재적인분..
발음기관를 본떠 상형으로 훈민정음 자음을 만들고 모음도 천지인과 음양오행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모음도 입모양을 최대한 반영하여 발음을 배치함. 특히 기본음 천지인(•,ㅡ,ㅣ)은 발음시 혀모양을 최대한 반영하여 발음배치.
1.훈민정음 통하여
우리말표현, 외국어 발음표기, 자연의 음소리 표기.
2. 정간보를 통하여 음악의 표기법인 악보를 독창적으로 만듦. 서양의 오선지에 음표 그리는 것과 다른 독창적인 악보로 우리 음악이 기록될 수 있었던 것.
세종은 소리뿐 아니라 농업은 물론 모든 과학기술에도 관심을가지고 여러 사람들을 등용하여 진흥하였지만
세종만이 할수 있었던 것은 소리에 대한 것임.
"훈민정음 창제와 정간보 창제"
세종대왕은 신하의 입장에서는 바꾸어 말해서 직원을 혹사 시키는 악덕사장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성군 예술인들의 입장에서도 樂聖 그런존재임
절대 음감 세종께서 K팝의 미래를 여셨다!
종묘제례악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종묘에서 제례를 드릴 때 연주하는 음악 악+가+무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
원래 제례악은 여자는 못하도록 되어있었다. 지금의 제례악은 여자도 참가할수있다. 이것이 전통의 발전이자, 진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무가 굽어 자랐다고, 쓸모없다고, 잘라버리면, 숲에 자랄수 있는 나무는 없을것이다. 잘못된 전통은 왜 잘못된것인지 깨닿고,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도록 관리해주는것이 진정 전통을 사랑하는 정신이라 생각한다.
여자가 어딜 끼어들어요. 여자가 제례악에 왜 참여합니까? 이해가 안되네요.
국악은 나이먹을수록 좋아지는듯 진짜신기해
아 너무 멋지다.....우리의 전통음악. 진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일제강점기를 겪고도 명맥을 유지한 게 대단대단
일제 강점기에도 비록 황제에서 이왕으로 격하되기는 했지만, 왕과 왕실이 존재했기 때문에, 대한제국 시기에 황실 업무를 담당하던 궁내부 대신 조선총독부는 이왕직을 두었습니다. 이왕직 산하에 종래의 장악원을 계승한 아악부가 존재하여 광복 직전까지 종묘·문묘 제향에 제례악을 연주하였고, 아악생 양성·아악 방송·악서 및 악보 편찬·악기 제작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이왕직 아악부의 전통은 현 국립국악원이 이어받고 있습니다. -위키백과-
일제강점기를 겪은건 국민들인데
조선이 일본으로 평화적으로 합병이 되었기때문에 저렇게 남아있었던거죠
화가난 펌프 평화적으로 합병되지 않았습니다만... 을사늑약 등등의 조약을 보신다면, 일본제국에게만 유리하게 되어있고 실제로 “합병” 이후로 수많은 우리 국민들이 잔혹하게 착취되었습니다 ..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과 올바른 사고를 가지셨으면 좋겠네요 ..
한일합방때 왕이 도장찍어 주권 넘겼고
일제보다 이조때가 백성들 수탈이 심했는데 먼 소리임
음과 율이 조화를 이루니 어찌 태평성대를 이룰 수 없지 아니한가...? 참으로 아름답구나..
ㅋ
진짜 아름다워요
Music is drug, an escape, 自我陶醉 and nothing more
이러다가 조선 망함 ㅋㅋ
@@가인고하벽초 ㄹㅇㅋㅋ 천년동안 하루종일 처맞음
정말 좋은 음악 잘 듣고 갑니다. 뉴에이지가 아닌 제대로 된 국악이 듣고 싶었는데 정말 만족스럽네요. 기회가 되면 직접 들어 보고 싶습니다
너무 멋지고 좋아요ㅠㅠ 이렇게 우아한 궁중음악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
하늘의 상제와 종묘사직의 신령이시여! 이 강산 이 나라를 보우하소서!
국악을 좋아해서 자주 들으러 오는데
종묘제례악 들을때마다 나만 슬픈가?
묘~하게 슬프단 말이야………..
제사음악인데.. 아무래도 그런거도 다 고려해서 만들었겟죠??
귀신노래니깐 😂😂😂
지루해보일거 같아도 청명한 편경소리, 절고소리, 아쟁 소리가 일품입니다.
절고가 아닌감?
전 무서운데여
@@3303ck 제사에 쓰는 음악이라 그런면도 없지않아 있긴하네요. (암울한 느낌 같은거)
@벤데터 아 그런가요..? 그엏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울리맨 진고입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맨 처음 시작하는 저 소리가 매우 좋네요 고교 음악시간에 한국 전통음악 비교해서 제목 맞추기 시험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전통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생소할 수가 없었네요 그만큼 우리나라 음악을 들을 기회가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요 처음 너무 좋아요 실제로 들음 잊을수 없어요
근엄하고 품위가 넘치는 음악임...
꼭 공연장가서 직접 듣고싶다.
너무 좋아요 여름에 한국 가면 꼭 다시 보고 싶어요
해외 공연 많이 많이 가주셨으면 합니다~~~~~~~
듣고 있으니 너무 좋네요
역시 우리것이 제일 소중해.
처음에는 한번 접해볼까 해서 왔는데 형식적 음악적 아름다움에 경도되어서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들을수록 가치가 느껴지는 우리 음악! 연주자들이 소중해요! 곡 바뀔때. 화면아래 까만여백도 많은데 자막 간단히 넣어주면 감상에 많은 도움될것같습니다
알리려고 유튭에 올리신거니!!!
정말 이 공연은 공연장에서 직접 보시길 바랍니다.
완전 감동!!!!
특히 악장 홍창남님의 노래에 완전 반했습니다.
수시로 마음수양할때 듣습니다 왠지 왕이 된것같기도하고 선비가 되어 부채를 들고 정원을 산책하며 시를 읊는 느낌....
종묘제례악 잘 감상했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
좋아서 들으러 온 1인이요..ㅠㅠ
저도 좋아요
뭔가 동양화속에 들어간 느낌
ㄹㅇ
저도요 ....,,,
찬란했던 조선왕조가 망국의 끝에서 위태롭게 버티는 듯 서글프고 아름답네요. 왠지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요.
찬란?ㅋ
@@wj8671 500년이나 유지된 왕조는 세계적으로도 드뭅니다. 크고 작은 국난을 겪었고 그 오랜 시간을 버텨온 것만으로도 조선왕조는 나름대로의 저력을 가진 국가임이 틀림없습니다. 다만 국가와 국민이 아닌 왕실의 안위, 왕권에 집착한 고종의 무능함으로 조선왕조는 멸망합니다. 그러나 이는 세도정치 시기와 더불어 고종에서 끝을 맺는 개별 정권들의 연쇄적인 쇠락함에서 비롯될 뿐 큰 틀에서 볼 때 조선왕조가 '찬란'했다는 말이 과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얼마나 깊은 역사적 지식을 가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조선왕조가 '찬란?ㅋ'라는 한마디로 평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모과 조선이 50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관례화된 부정 부폐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중,근세 국가중 중앙집권화 국가로서는 중앙정부에 세금이 모이지 않는 결과를 초례했고
따라 국가 주도의 개발 사업과 경제 개발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오모과 동의합니다.
@@hubsch7478500년이란 긴 세월은 겨우 관례화된 부정부패 따위로 유지될 수 있는게 아님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종묘제례악 공연으로 보고 싶어요 ❤❤❤
음악 수업 때문에 들으러 왔는데 노래 좋네요오...
감동.
아름다움이 이런것이오이다.
0:28 시작
8:53 희문
11:42 기명
옛날에 저런건 어디서 연습했을까 궁금
세랑 연습할때 욜라 시끄럽겟네여 ㅋㅋ
악공청
고마워요... 음악 보고서에 쓸 거 하나 더 생김
궐 밖에 있었대요
장악원의 관사는 성종의 특명으로 태상시(太常寺) 동쪽 수십 보 떨어진 곳에 민가를 철거하고 세워졌는데, 위치는 한성부 서부 소속의 여경방에 있었다.
새 청사에 장악원의 당상관(堂上官)과 낭청(郎廳)들이 일할 곳과 악공 및 악생들이 연습할 장소가 구별되어 마련되었고, 여러 종류의 악기들을 보관할 건물과 정조(正朝)나 동지(冬至) 때 문무백관들이 음악에 맞추어 조하의식(朝賀儀式)을 연습할 수 있는 넓은 뜰도 갖추었다.
임진왜란 때 이 청사가 불타버렸기 때문에, 선조 말기에 새로운 청사가 명동의 구 내무부청사 자리에 건립되었다. 새 청사의 대지는 1만 평이었고, 그 위에 수백 칸의 건물이 세워졌으므로 장악원의 음악활동이 모두 그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300여 년 동안 사용된 이 건물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대의 전진기지로 징발되어, 그 뒤 장악원의 후예들은 정국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뚜렷한 청사도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04년 당시의 교방사는 조동에 있는 개인집으로 옮겼다가 서울역 뒤 서학현(西學峴: 지금의 중림동)에 있는 장혜원 자리로 청사를 옮겼다.
경술국치 직후 당시 아악대는 1911년 장혜원의 자리에서 당주동에 있었던 봉상시(奉常寺)의 주고(酒庫)를 수리해 임시로 옮겼다. 그곳에서 아악대는 이왕직아악부로 개칭되었고,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의 제1·2기생들을 모집해 양성했다. 그 뒤 이왕직아악부는 1926년 1월 창덕궁 앞 운니동의 구 은사수산장(恩賜授産場: 왕실에서 돈을 주어 세웠던 공장)의 불탄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겼다.
@@김도율-z8l 궐 밖에 있었대요
장악원의 관사는 성종의 특명으로 태상시(太常寺) 동쪽 수십 보 떨어진 곳에 민가를 철거하고 세워졌는데, 위치는 한성부 서부 소속의 여경방에 있었다.
새 청사에 장악원의 당상관(堂上官)과 낭청(郎廳)들이 일할 곳과 악공 및 악생들이 연습할 장소가 구별되어 마련되었고, 여러 종류의 악기들을 보관할 건물과 정조(正朝)나 동지(冬至) 때 문무백관들이 음악에 맞추어 조하의식(朝賀儀式)을 연습할 수 있는 넓은 뜰도 갖추었다.
임진왜란 때 이 청사가 불타버렸기 때문에, 선조 말기에 새로운 청사가 명동의 구 내무부청사 자리에 건립되었다. 새 청사의 대지는 1만 평이었고, 그 위에 수백 칸의 건물이 세워졌으므로 장악원의 음악활동이 모두 그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300여 년 동안 사용된 이 건물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대의 전진기지로 징발되어, 그 뒤 장악원의 후예들은 정국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뚜렷한 청사도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04년 당시의 교방사는 조동에 있는 개인집으로 옮겼다가 서울역 뒤 서학현(西學峴: 지금의 중림동)에 있는 장혜원 자리로 청사를 옮겼다.
경술국치 직후 당시 아악대는 1911년 장혜원의 자리에서 당주동에 있었던 봉상시(奉常寺)의 주고(酒庫)를 수리해 임시로 옮겼다. 그곳에서 아악대는 이왕직아악부로 개칭되었고,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의 제1·2기생들을 모집해 양성했다. 그 뒤 이왕직아악부는 1926년 1월 창덕궁 앞 운니동의 구 은사수산장(恩賜授産場: 왕실에서 돈을 주어 세웠던 공장)의 불탄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겼다.
너무 좋다 국악 ㅠㅠㅠ
격이 다르구나 정말 좋네요
작곡가 천재일 듯
천재시죠 훈민정음도 만들고 장영실에게 과학기구도 만들게 하였으니
오케스트라를 갖출만큼 위대한나라였다
가슴이 찡하니 ---
감격스럽네요
실전 없이 이어진 우리 음악.. 자랑스럽습니다.
조상의 사원 의식은 엄숙한 리듬과 선율을 통해 우아하며, 우아한 악기와 다칭과 같은 고유 한 악기와 조화를 이룹니다. 독특한 선율은 차임이나 차임과 같은 깨끗한 음색의 악기 소리와 일치합니다.
음악 수행 공부 중입니다
걍 경건함, 근엄함에 모든걸 쏟아부은 느낌
누가 들어도 의식음악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던 국악
우리 음악은(정악. 산조. 시나위) 마음을 비운체 집중해서 수 백 번을 듣고.나서야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Hello, I am an elementary school student living in South Korea.Let me introduce Jongmyo Jeryeak in Korea.Jongmyo Jeryeak is a music play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t Jongmyo Shrine to perform ancestral rites to kings and queens, and is used for the largest and most important ancestral rites in Joseon with instrumental music, dance, and songs
에구~기특해라🥰
천상계의 신선이 듣는 음악 같음
ㅇㅈ…
부드럽고 온화하고 기풍있고 절제되며혼이살아있고 때론박력있고 무엇보다도 살아움직이는 저! 선율^^...
역쉬조선 궁중음악 최고!
넘 조아요
음악 수행 숙제하러 왔다...
오오.....
편안하다. 마음을 되찾았도다.
엄숙하면서도 고요한.. 그런 느낌
속도 2배로 했는데도 똑같아서 핸드폰 고장난 줄 ㅋㅋ
오홓포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로 바뀐게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흫ㅎㅎㅎ ㅎㅎㅎㅎ
ㅋㅋㄹㅃㅃ
올해도 어김없이 음악 수행하러 왔습니다 ㅎㅎ
언제나 들어도 예술 판소리보다 이걸 대표적으로 내세우면 좋겠어요
맞아요.
진심 공감해요
인정합니다
Wau, great~. How people have preserved this world treasure until now..
ㅈㄹㄴ
Wau가 아닌 Wow입니다
Oh! Yeah!! I'm so surprised that this song is so clear, like a milk! It's clarity, exclusive music progression is so amazing! Yall know that the freaking and hard of practice made the music sooo perfect!! OMG I'm so impressed and it REALLY moved my heart...ToT
우리꺼 넘보지마시오!
쇤베르크 조상중에 한국인이 있었던게 분명하다! 무조음악 화이팅
오늘따라 너무 듣고싶어서 찾아왔어요..
뭔가 해쳐나가려는 얼
을 느낄수 있는듯 합니다.
음악이라기보다 음악적 행위에 가까운듯 하네요
국악 참 좋다...
조선왕조실록 읽는데 브금이 이정돈 깔려야지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돌 들으며 읽으셈
조선왕조실록이 감미로울거임
@@구독하면프사주움 종묘제례악이 상왕 제사에 쓰이는음악인데요..
@@구독하면프사주움 아이돌을 어떻게 들어요?
Hape Gold 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 이름 같은데욥
조선이 우습게 보이지만 절대 헛으로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 음악 음 하나 하나 춤 하나 하나에 다 뜻이 있을 겁니다.
궁궐 담벼락 아궁이에까지 다 뜻이 있어요.
뜻은 있죠~ 근데 실용적이지 않아서 문제
시대가 문제죠 저때는 저것이 실용적인것이고 고급스러운것입니다 요즘시대에서 실용을 찾으면 안되죠 그렇게치면 재즈나 블루스는 지금 실용적인가요?
@@뚜껑빌런노상욱 블루투스는 실용적인데? 줄꼬일 일도 없고 정보통신기술의 산물 아니가!
@@opppgi406 혹시 난독이세요?
@@뚜껑빌런노상욱 시대가 문제가 아니죠 똑같은 시대인데 왜 주변나라 중 조선만 약했을까요^^ 무능한 조선왕족때문이죠
1:56 오른쪽 우리가 수업들을 때 표정
앀ㅋㅋㅋㅋ쌉공감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ㅆㅇ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첨엔 듣기 좀 그랬는데 자꾸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 ㅋㅋㅋㅋㅋ
옛부터 궁중예악은 황제국이 갖춰야할 필수품으로 여겼죠.
예악의 음이 고르지 못하면 나라에 큰 횡액이 닥친다고 믿었을 정도로 중요시했어요.
중국에는 이런 전통 궁중예악이나 쳬계적인 궁중예법이 없어요.
왕실 조정이 한반도로 이주하면서 모두 가져왔기 때문이에요.
과연 누가 진정한 황제국이었을까요?
느림의 미학
차분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우리는 언젠가 부터 느린걸 참지 못하는거 같다.
가끔은 차분함을 느림을 느끼길
지켜주셔서감사합니다
나만 이런노래 자주듣나..
고맙습니다
조선시대의 왕이 된 것 같아요.
평화..감동
행곡함
구석탱이 서계신 분들이 제일 고역일듯
내내 서있으면서 하는 일은 얼마 없는데 그 일이 또 중요한...
수행 시팔
감사합니다ㅜ
전통 오케스트라 . 멋쥐다
ruclips.net/video/H73xy4nQYtY/видео.html종묘제례악 중 '희문' 악보 포함된 영상입니다!
서양도 고대에는 합주곡 딱딱햇는데 그걸 발전시켯는데 우린 아직 머물러 있는 느낌
저절로 엄숙함이😮
이게 진짜 국악이지. 요즘 사람들은 음계부터 12음계인 서양 음악에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은 걸로 좀 편곡해주면 국악인 줄 앎. 퓨전국악을 빙자한 서양음악을 국악으로 아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면 진짜 국악은 멸망을 면치 못할 것
이노래너무좋아헤헤헹
우리가 몰랐던 우리 음악 이야기에서 종묘제레약 QR코드 카메라로 찍은사람 조용히 손들고가라
손이요
✋
손...
나요
✋
이거 2024년에 본사람?
좋아요나 박아
ㅠㅠㅡ
난 8월에 왔다 엄청 덥구너
역사 공부 할때 듣습니대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고수임..
어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종묘제례악 공연보고 오늘 유튭으로 다시보네요.
방송부 아침방송에서 국악이랑 동요 빼고 다 틀지 말래서 열받았는데 이거 틀면 되겠네요😂
그냥 듣게된다
우리의 전통음악 악기가 세계에 알렸으면 좋겠다. 외국의 한국소개 영상에서 중국음악이 나오는거 보고
짜증났는데
세종이 하루만에 작곡한 음악임 ㄷㄷ
광고가 재밌게느껴진건 처음이군요오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