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때 한참 류현진의 7년연속 10승기록 달성 기록과 더불어 무실점 기록과 서재응의 커리어 첫 10승 달성이란거 때문에 시즌 막판 가장 주목 받았던 기억이 나는거 같다 저 당시 기아 선발진이 시즌 막판에 서재응을 중심으로 김진우 윤석민 소사가 단체로 미쳐서 4연속 완투라는 기록도 달성했고 무실점 기록 또한 당시 감독이던 선동열 감독이 보유하고 있었기에 10승 달성엔 실패해도 무실점 기록을 보유한사람이 보고있는 앞에서 기록을 갈아 엎어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던 기록이 아니였나 싶었다 저 기간 한정내로 저때 서재응의 포스는 가히 11윤석민급의 포스를 뿜어 낼 정도로 압도적이였다
메이저리그가 탐 내기 시작한 파이어볼러 그리고 부상과 좌절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스포츠 신문 구석 한 켠에 자리잡은 그라운드에서 사라져간 비운의 선수 이야기를 떠올리겠지만 정교한 제구와 수싸움, 구종의 다양성을 가지고 다시 등장한, 시련을 이겨낸 또다른 명선수의 이야기입니다. 그 선수는 왜 구속보다 제구가 먼저인지 보여주는 투수들의 교본이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 서재응 선수. 메이저리그에서도 또 국내 복귀한 고향팀 기아 타이거즈에서도 투수로서 큰 성공을 상징하는 10승의 문턱에서 번번히 좌절했었지요. 그 사연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너무 속이 상한 속사정이 너무 많았습니다. 1~2점 내로 잘 던지고도 타격이 터지지 않아 승수를 보태지 못하기 일쑤였었고, 선발 투수로 커리어를 이어가나 싶더니, 당시 소속팀의 또 다른 고질병 (뛰어난 선발진에 비해 너무 부실한 불펜의 난조) . 이로 인해 자의반타의반으로, 아니 스스로 마무리나 중간 계투를 자처하기도 했던 시즌 늘 크게 다가왔던 아홉수, 10의 문턱 저도 많이 속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그 속상함을 무덤덤하게 그리고 호쾌한 웃음으로 덮으면서 후배들을 다독였습니다. 해태 시절 혹독한 선후배 관계는 마치 양날의 검이었지요. 후배는 선배가 무서워서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선배는 후배들에게 꾸짖은 본인의 체면 때문에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어릴 적 저는 그런 모습이 자부심이면서도 불만이었습니다. 모순일까요? 장점과 단점이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기에 표현 가능한 모순입니다. 당신이 보여준 선배노릇과 동료애는 어릴 적 딱 제가 바라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후배에게 조언을 주며, 대신 늘 웃음으로 다독이며 스스로 모범이 되어 보여준 리더십. 당신의 리더십을 사랑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서재응 선수의 리더쉽과 관련된 명장면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타이거즈의 아픈 손가락 김진우 선수의 복귀 당시. 팬들은 한편으로는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했지요. 김진우 선수를 아까워하는 팬들은 속상해 하기도 했지요. (구구절절 밝힐 필요 없는) 그 선수의 너무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그러면서도 전에 팀을 떠날 때 보여준 모습은 사실 바람직하지 못했기에 걱정도 했지요. 당시 팬들은 타이거즈의 또다른 아픈 손가락 이대진 선수의 은퇴를 아쉬워했습니다. 김진우 선수는 '미안해서라도' 이대진 선수에게는 꼼짝못한다는 입소문이 있었지요. 우리 서재응 선수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었지요. 팀내 투수 중 최고참으로서 중심을 잡아주었지요. 나이로는 어느 수준 고참이 되어 버린, 하지만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애매한 위치의 김진우 선수와 김진우 선수를 겪었거나 소문을 들어 아는 더 어린 후배 선수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어 김진우 선수가 다시 팀에서 자리 잡도록 모두를 다독여 주었지요. 또 하나 감동했던 장면이 있습니다. "완주야, 고개 들어 고개 들어." 그 시즌도 위에서 말한 아홉수에 시달리던 해였습니다. 2군과 1군을 왔다갔다 하며 이따금 주전 기회를 잡던 윤완주 선수가 선발 유격수로 뛰던 게임. 제구의 예술가 답게 연거푸 내야 땅볼을 유도하던 선발 서재응 선수 그런데........... 수비진이 자꾸 실수를 합니다. 여느 이닝 같으면 가볍게 삼자범퇴로 끝나야 할 경기인데 자꾸 위기가 계속 됩니다. 투수로서는 억울한 1루 주자로 시작하더니, 내야의 범실이 이어지며 주자가 더 쌓입니다. '올치 이제는 끝나겠다. 병살이다' 싶은데 또 실수. 실책은 전염병이라는데 모처럼 기회를 잡은 유격수가 혼자 거푸 실수를 합니다. 당사자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고 얼음 마냥 움츠러들었습니다. 중계를 보는 팬까지 속이 상해 있는데, 웬걸 정작 투수는 웃습니다. 후배를 바라보면서, 기운 내라며 연거푸 양손을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립니다. 그리고 입모양이 읽힙니다. "완주야, 고개 들어. 고개 들어." 당신의 대범함에 또 쾌활함에 짜증을 내던 제가 다 부끄러웠습니다. 실책도 야구의 일부이거늘. 그 이닝, 흐트러지지 않은 마음가짐은 변함 없는 정교한 제구로 이어지며 여전히 동료 야수들을 믿는다는 듯 또다시 내야 땅볼을 유도하고, 그 유격수가 이닝을 끝냅니다. 덕아웃에 뛰어들어가면서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후배에게 기운 내라며 어깨를 툭 쳐주는 선발투수. 어린 시절 제가 딱 바라던 타이거즈의 팀 문화였습니다. 나중에 은퇴하게 되면 팀에 남아서 코치가 되어 주었으면 했던 선수 두 명 (박기남, 서재응)이 함께 뛰는 추억의 영상 너무 반갑네요. 그리고 지도자로서 멋지게 후배들을 조련하는 소식을 접하면, 제 예상이 들어 맞았다는 생각에 괜히 으쓱으쓱 뿌듯해 집니다. 서재응 선수, 아니 서코치님. 고마워요. 계속 우리와 함께 해 주어서. 서재응 선수, 당신을 옛날 이상윤 선수 마냥 사랑합니다. (여담 : 선동열 선수 오기 전에 자이언츠의 최동원, 베어스의 박철순, 라이언즈의 김시진, 김일융 등 다른 팀 에이스들에 맞선, 이제는 아재인 제 첫 에이스가 바로 이상윤 선수였습니다. 팬들의 관심이 이제는 모두 선동열 선수에게 쏠리던 시절에도, 그 어린 소년은 절대적인 에이스의 존재에 뛸듯이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너무들 하네. 그 동안 우리 에이스는 이상윤이었다고" 라고 속상해 하기도 했답니다. 야구팬으로서 제 마음의 첫 번 째 에이스, 이상윤 선수. 서재응 선수를 이상윤 선수만큼 응원했다는 사실은..... 저로선 무한한 애정표현입니다.)
😁😁😁😁😁
10승을 한번도 못해본게 신기함 ㅋㅋㅋㅋㅋㅋ서덕스 이땐 정말 최고였지
3:59 이장면 이제는 다시는 못보겠지..
롯데 손아섭 전력질주 그립다... 4년 64억..
당시 기아 감독이 선동열 이였는데 직접 보는 앞에서 기록을 깨 버렸네
멋지다라고밖에 할말이없는 이젠 재응코치님 앞날을 응원합니다 사랑해요 형님
헐...이걸 몰랐군요. 그렇다면 지금 이닝 무실점 기록은 .... 서재응....인가요 ? ㅎㅎ 타이거즈기록만 기억합니다만, 서재응도 대단한군요.
순수 선발로만 무실점 기록은 서재응 지금 현 기아 1군 코치입니다.
대단한 선수였지ㆍㅋㅋ컨트롤 쥑여주고 완급조절 줙여주고 ㆍ
재밌는 전설의타이거즈
서재응: 2003년 데뷔후 102타자 연속 무볼넷을 기록했는데 이는 1945년 공식 집계 이래 최고 신기록
Control Artist
이때 타선에서 홈런은 안 나와도 투수 보는 맛에 응원했었어요..
나이스 가이~!
저 실력으로 9승이 한계인게 싱기방기 동방신기
저때 한참 류현진의 7년연속 10승기록 달성 기록과 더불어 무실점 기록과 서재응의 커리어 첫 10승 달성이란거 때문에 시즌 막판 가장 주목 받았던 기억이 나는거 같다
저 당시 기아 선발진이 시즌 막판에 서재응을 중심으로 김진우 윤석민 소사가 단체로 미쳐서 4연속 완투라는 기록도 달성했고 무실점 기록 또한 당시 감독이던 선동열 감독이 보유하고 있었기에 10승 달성엔 실패해도 무실점 기록을 보유한사람이 보고있는 앞에서 기록을 갈아 엎어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던 기록이 아니였나 싶었다
저 기간 한정내로 저때 서재응의 포스는 가히 11윤석민급의 포스를 뿜어 낼 정도로 압도적이였다
소사 경기 직관가서 150구째 던진 150km 나온거보고 지렸는데, 완투승까지 했지
역시 투창선수 출신 소사 ㅎㅎ
나이스가이 서재응~~
그당시 무등에서 서덕스 퐈이링~!!!
목청껏 외쳤던 기억이~~ㅎㅎ
이때 소사 앤서니 윤석민 김진우 연속 몇경기 완투승인가도했었죠? 12년도 후반기 대단했엇는데
4경기연속 완투승하고 앤서니차례에서 끊겼어요
역시~ 나이스가이 서재응!!! 타이거즈의 또 한명의 레전드~~
배경음악을 줄이고 현장음을 살리는게 더 보는 맛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잘생겼지 야구잘하지
응원잘하지
그립네요
이 영상에 맹점이 있다. 선동열의 용병술은 기아에서 발휘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음. 5, 8, 8순위를 찍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용병술이 나옴??
궁금한 거 있는데..기아 타이거즈를 화내려고 보시는건가요..? 응원하시려고 보시는건가요
@@like_the_morning_star 588이면 화내실만 하네요 뭐ㅎㅎ
@@저스틴비버-m7y 그건 알지만 이분은 다른 채널, 다른 영상 등등에도 약간 기아에 대해서 잘 아시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부정적인 말들이 많아서요..ㅎ
@@like_the_morning_star 아 글쿤요...
@@like_the_morning_star 진정한 팬이네요
콘트롤 마술사 ~~
재밌다
메이저리그가 탐 내기 시작한 파이어볼러
그리고 부상과 좌절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스포츠 신문 구석 한 켠에 자리잡은
그라운드에서 사라져간 비운의 선수 이야기를 떠올리겠지만
정교한 제구와 수싸움, 구종의 다양성을 가지고 다시 등장한, 시련을 이겨낸
또다른 명선수의 이야기입니다.
그 선수는 왜 구속보다 제구가 먼저인지 보여주는 투수들의 교본이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 서재응 선수.
메이저리그에서도 또 국내 복귀한 고향팀 기아 타이거즈에서도
투수로서 큰 성공을 상징하는 10승의 문턱에서 번번히 좌절했었지요.
그 사연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너무 속이 상한 속사정이 너무 많았습니다.
1~2점 내로 잘 던지고도 타격이 터지지 않아 승수를 보태지 못하기 일쑤였었고,
선발 투수로 커리어를 이어가나 싶더니, 당시 소속팀의 또 다른 고질병
(뛰어난 선발진에 비해 너무 부실한 불펜의 난조) .
이로 인해 자의반타의반으로, 아니 스스로 마무리나 중간 계투를 자처하기도 했던 시즌
늘 크게 다가왔던 아홉수, 10의 문턱
저도 많이 속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그 속상함을 무덤덤하게 그리고 호쾌한 웃음으로 덮으면서
후배들을 다독였습니다.
해태 시절 혹독한 선후배 관계는 마치 양날의 검이었지요.
후배는 선배가 무서워서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선배는 후배들에게 꾸짖은 본인의 체면 때문에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어릴 적 저는 그런 모습이 자부심이면서도 불만이었습니다.
모순일까요?
장점과 단점이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기에 표현 가능한 모순입니다.
당신이 보여준 선배노릇과 동료애는 어릴 적 딱 제가 바라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후배에게 조언을 주며, 대신 늘 웃음으로 다독이며 스스로 모범이 되어
보여준 리더십.
당신의 리더십을 사랑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서재응 선수의 리더쉽과 관련된 명장면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타이거즈의 아픈 손가락 김진우 선수의 복귀 당시.
팬들은 한편으로는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했지요.
김진우 선수를 아까워하는 팬들은 속상해 하기도 했지요.
(구구절절 밝힐 필요 없는) 그 선수의 너무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그러면서도 전에 팀을 떠날 때 보여준 모습은 사실 바람직하지 못했기에
걱정도 했지요.
당시 팬들은 타이거즈의 또다른 아픈 손가락 이대진 선수의 은퇴를 아쉬워했습니다.
김진우 선수는 '미안해서라도' 이대진 선수에게는 꼼짝못한다는 입소문이 있었지요.
우리 서재응 선수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었지요.
팀내 투수 중 최고참으로서 중심을 잡아주었지요.
나이로는 어느 수준 고참이 되어 버린, 하지만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애매한 위치의 김진우 선수와
김진우 선수를 겪었거나 소문을 들어 아는 더 어린 후배 선수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어 김진우 선수가 다시 팀에서 자리 잡도록 모두를 다독여 주었지요.
또 하나 감동했던 장면이 있습니다.
"완주야, 고개 들어 고개 들어."
그 시즌도 위에서 말한 아홉수에 시달리던 해였습니다.
2군과 1군을 왔다갔다 하며 이따금 주전 기회를 잡던 윤완주 선수가 선발 유격수로 뛰던 게임.
제구의 예술가 답게 연거푸 내야 땅볼을 유도하던 선발 서재응 선수
그런데........... 수비진이 자꾸 실수를 합니다.
여느 이닝 같으면 가볍게 삼자범퇴로 끝나야 할 경기인데 자꾸 위기가 계속 됩니다.
투수로서는 억울한 1루 주자로 시작하더니, 내야의 범실이 이어지며 주자가 더 쌓입니다.
'올치 이제는 끝나겠다. 병살이다' 싶은데 또 실수.
실책은 전염병이라는데 모처럼 기회를 잡은 유격수가 혼자 거푸 실수를 합니다.
당사자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고 얼음 마냥 움츠러들었습니다.
중계를 보는 팬까지 속이 상해 있는데, 웬걸 정작 투수는 웃습니다.
후배를 바라보면서, 기운 내라며 연거푸 양손을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립니다.
그리고 입모양이 읽힙니다. "완주야, 고개 들어. 고개 들어."
당신의 대범함에 또 쾌활함에 짜증을 내던 제가 다 부끄러웠습니다.
실책도 야구의 일부이거늘.
그 이닝, 흐트러지지 않은 마음가짐은 변함 없는 정교한 제구로 이어지며
여전히 동료 야수들을 믿는다는 듯 또다시 내야 땅볼을 유도하고,
그 유격수가 이닝을 끝냅니다.
덕아웃에 뛰어들어가면서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후배에게 기운 내라며 어깨를 툭 쳐주는 선발투수.
어린 시절 제가 딱 바라던 타이거즈의 팀 문화였습니다.
나중에 은퇴하게 되면 팀에 남아서 코치가 되어 주었으면 했던 선수 두 명
(박기남, 서재응)이 함께 뛰는 추억의 영상 너무 반갑네요.
그리고 지도자로서 멋지게 후배들을 조련하는 소식을 접하면,
제 예상이 들어 맞았다는 생각에 괜히 으쓱으쓱 뿌듯해 집니다.
서재응 선수, 아니 서코치님.
고마워요. 계속 우리와 함께 해 주어서.
서재응 선수, 당신을 옛날 이상윤 선수 마냥 사랑합니다.
(여담 : 선동열 선수 오기 전에
자이언츠의 최동원, 베어스의 박철순, 라이언즈의 김시진, 김일융 등
다른 팀 에이스들에 맞선, 이제는 아재인 제 첫 에이스가 바로 이상윤 선수였습니다.
팬들의 관심이 이제는 모두 선동열 선수에게 쏠리던 시절에도,
그 어린 소년은 절대적인 에이스의 존재에 뛸듯이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너무들 하네. 그 동안 우리 에이스는 이상윤이었다고" 라고 속상해 하기도 했답니다.
야구팬으로서 제 마음의 첫 번 째 에이스, 이상윤 선수.
서재응 선수를 이상윤 선수만큼 응원했다는 사실은.....
저로선 무한한 애정표현입니다.)
타이거즈 찐팬이시네
이때 이대호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이렇게 좋은 폼으로 2013 wbc를 갔지만.....그 이후.....
응 크보에서 실패한 투수...기아 타이거즈 투수로 뛰었을때 방어율 6점대를 2번 찍었음
은톼 직전 말년에 기록 안 좋은 걸 실패라 하긴 좀 그렇다 ㅎ
요즘엔 저렇게 아트피칭 하는 투수들 안나와 아쉽네요
이때 투수들은 다 잘던졌음 역대 최고 투고타저
서재응이 미국에 가지 않고 대학졸업후 타이거즈에 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영상...
그리고 송승준도 미국가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드네
그래도 선수입장에서는 메쟈갈수있으면 당연히 메쟈 가겠죠 다시는 없을 기회일수도있는데
그래도 메츠시절에 잘하지않았나여?
@@박건우-e4b 그렇죠 근데 부상 여파때매..
그래도 서재응 3점대 180이닝 찍고왔음
송승준은 트리플a에서 부상만 안당했으면 메이저 콜업될 실력이었어여.. 당시에는 95~96마일까지 던지는 피쳐였었고 아무래도 부상으로 크보온 케이스라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