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 루이 가세도 애플을 나와서 BeOS라는 걸 맹글지요. BeOS도 참 시대를 앞서간 OS였는데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서 아쉬운 제품임. 지금도 있기는 하더군요. BeOS도 차세대 애플의 OS로 후보에 올랐지만 잡스의 NeXtOS가 선택이 되었죠. BeOS도 아깝긴 하지만 역시 잡스형이 애플로 돌아오는 게 맞았다고 생각함.
NeXT의 컴퓨터가 세계 최초의 웹서버가 되죠. 스티브가 애플을 떠나고도 매출이 상승한게 개인용 컴퓨터의 수요 폭발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동 시기에 미국에는 애플 말고도 탠디의 TRS80, 코모도어 pet, c64나 아미가 기타 atari나 TI등도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팔고 있었고 이미 대세는 기술과 규격이 공개된 ibm-pc 호환기종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경쟁 업체들이 다 독자적인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철수하던 시기에도 애플은 살아 남았죠 존 스컬리의 관리와마케팅 능력이 애플을 살려낸거죠, 사람들이 잡스를 쫒아 냈다는 이유로 또 잡스가 복귀후의 이미지를 가지고 존스컬리의 능력과 업적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것 같아요
참고로 NeXT가 세계 최고의 웹서버가 된 이유는 당시 NeXT에 매스매티카 프로그램이 번들로 포함되어 있어서 그랬습니다. 매스매티카 사는 것보다 NeXT 컴퓨타 사는게 더 싸서, 당시의 벨 연구소?에서 NeXT 컴퓨터를 대량으로 도입했고, 덕분에 Web을 개발할 때도 NeXT를 사용했던 거죠. 존 스컬리는 그 외에도 Newton PDA를 만들어내면서 ARM과 '정보탐색기' 개념을 만들어냈고, 해당 기기는 현재의 아이폰이 되었죠.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의 설탕물을 팔면서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을 것인가, 에서 세상을 바꿀 기회를 손에 잡은 것입니다. 또한 존 스컬리는 당시 스티브 잡스를 마지막까지 포용하려고 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배신하고 스컬리를 몰아내려는 계획에 배신감을 느낀 것도 있고요. 후일 스티브 잡스도 당시를 추억하며 그때는 어리고 철없었다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죠. 애플에서 쫓겨난 것이 나를 바꾸게 해 주었고,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도 언급했으니까요. 실제로 애플에서 쫓겨나기 전 스티브 잡스는 부서별 교통정리도 하지 못하고, 규모가 커진 회사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 하고 있었죠. Lisa와 Macintosh 팀의 갈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시고요.
ibm에서 pc를 개발할때 방침이 시장에 있는 부품과 os로 최단기간에 개발을 하자여서, 당시에 싸게 구성할수있는 기성 부품들로 만들었고, os도 8비트 컴퓨터의 표준 이었던 cp/m을 쓰려고 했는데 당시 ibm의 조건이 터무니 없었죠,pc한대당 얼마의 라이센스가 아니라 그냥 통으로 얼마에 라리센스를 달라여서 디지탈리서치가 거부하고 그 틈을 빌게이츠가 파고들어 그럼 자기네는 ms-dos라는 이름으로 소비자 대상으로 별도로 팔수있게 하면 계약을 하겠다해서 성사가 된겁니다. 근데 ibm이 os2 공동 개발때도 똑같이 저 양아치 짓을 해서 마소가 갈라서게된거구요 그거 말고도 ibm의 양아치짓 때문에 ibm과 거래를 끊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많더라구요
세모지님 애청자로써 콘텐츠의 전문성, 유익성, 퀄리티 대비 최근 조회수가 안나오는게 아쉬울따름입니다. 이런 전문적인 채널이 있어야 하는데 혹여나 조회수로 인하해 콘텐츠의 눈높이를 낮춰야하나 않나 고민이 드실거같아 우려가 듭니다 ㅠㅠ KFC매장에 세모지님 영상이 나올때 구독자로써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매번 잘 보구 있으머 늘 응원합니다❤
IBM 5170 혹은 AT라고 불리던 컴퓨터에 폼팩터인 AT 폼팩터는 공개 하드웨어 개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ibm at와 동일규격을 로열티 없이 사용할수 있는 다른 기업들이 AT호환 컴퓨터를 찍어냅니다 이때문에 CPU의 x86아키텍처 즉 인텔cpu 마이크로소프트의 dos를 필두로한 소프트웨어 windows 그리고 훗날 windows nt까지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로써 소비자 시장이 인텔의 x86 이후 AMD64 다른이름 X86-64 라던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가 시장 주축이 되니 IBM은 오픈 폼팩터인 AT를 끝네고 기업 소유의 PS/2라는 폼팩터를 이용한 컴퓨터를 판매하지만 AT PC를 꺽진 못했습니다 이후 현세대 PC는 AT를 개량한 AT X 폼팩터를 사용합니다. ---
원래는 공개하드웨어가 아니라 다른회사와 마찬가지로 독점제품이었는데... 점유율에서 밀리자 서드파티 소프트웨어 개발자 유입을 노리고 공개한거죠.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AT는 후속작이고 공개된 규격은 전작인 "IBM-PC"였습니다. AT, XT가 PC에서 소소한 개선만 있었기에 약간의 착시가 있었지 않나 싶네요. AT, XT는 공개된 규격이 아니었지만, 서드파티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합심하여 PC를 개선해 AT, XT를 따라잡은거죠. 저작권을 피하기 위해 cpu이름인 386, 486을 썼던거구요.
@@elvenisar IBM은 처음부터 다 공개했습니다. 공개하지 않은 건 바이오스였는데, 써드파티 회사들이 바이오스를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카피하는 수준으로 만들어서 호환기종을 내놓았었음. AT기종까지는 그런대로 버텼지만 386부터는 호한기 제조업체가 먼저 치고 나와 IBM은 더 버티지 못하게 된거죠.
IBM 5100->IBM 5110->IBM 5120->IBM System/23 Datamaster->여기서 부터 공개 아키텍처IBM PC IBM 5150 > IBM PC XT IBM 5160 > IBM PC AT IBM 5170 그리고 5150때 부터 몇가지 변형 다른 기업의 생산 등이 있음 폭발적으로 PC 표준화 를 일으킨게 IBM 5170(PC AT)은 맞음
1. 최초의 노트북 컴퓨터는 'Osborne 1'입니다. 운영체제는 CP/M(기술적으로는 우리는 이 OS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이었고 무게는 11kg이 넘어가는 요즘으로 치면 이게 휴대용?이라고 부를법한 물건이지만 그래도 컴퓨터를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까지 올라가면 제록스의 'NoteTaker'가 그 원조구요(1978) 2. 솔직히 저는 학문적, 기술적인 면에서 애플이 어떤 기여를 했는가가 좀 의문스럽습니다. 산재한 기술들을 모아 정리하는데 탁월한건 인정하지만 이들이 최초로라고 할만한게 있는지는 좀 그렇네요. 3. IBM이 비록 개인 시장에서는 밀렸지만, 메인프레임 같이 대형 컴퓨터에서는 여전히 대체품이 없었죠. 그게 처음에는 개인용이라고 무시하던 X86이 성장해 자신들 시장을 침식할 줄은 몰랐고.
마이클 스핀들러가 애플 역사상 최악의 CEO였죠. 그렇게 판매량 쳐박혔는데 지 개인 비지니스 제트기나 사고...-ㅅ- 파워PC는 어찌 보면 지금의 출판/인쇄쪽의 완전 표준이 된 거나 다름없긴 한데 너무 다뤄진게 없다는 것이 아쉽군요. 사실 애플의 몰락과 연명, 그리고 부상에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은 잡스가 아니었으니까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었고 킬러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이었는데...그것들 중 유일하게 애플에서 대성공 한 것은 위지웍이 제대로 된 충판/인쇄쪽의 것이었고 이건 잡스하고는 상관없죠. 되려 여기까지 있어 잡스는 애플의 위험요소를 넘어서서 팀킬하는 못된 X끼였습니다. 툭하면 아이디어 빼내고 인력 빼내는 짓만 하던 양X치 맞아요.
스티브는 리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리사가 계속 늦어지고 그나마 나온게 가격이 안드로메다고 등등 부진의 이유로 리사 프로젝트에서 배제 당하죠 그래서 뭐 할게 엇을까 회사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슬적 끼어든게 제프라스킨이 진행하던 매킨토시 프로젝트 였죠 저기에 궁둥이 들이밀고 어느세 제프라스킨 밀어내고 그 자릴 꿰차고 리사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원들 슬슬 빼내오고 당시에 리사 프로젝트 개발에 사용되던 시제품 리사 컴퓨터를 막무가네로 빼내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사용해버라고(왜 냐면 당시 애플 내부에서 mc68000 cpu 어셈블러와 Pascal컴파일러가 제대로 동작 되던겐 리사가 유일했기 때믄이었죠) 등등 양아치였죠 그래서 이사회에서 회사를 안정시키기 위해 직함을 다 거두어 비린거였죠, 그냥 대주주로 있으라고, 그런데 이번엔 핵심 기술자를 데리고 회사를 나가버린거죠 ㅋㅋㅋㅋ
이번편은 너무 진도가 빠른 거 같아요.. 파워피씨 시절도 윈텔 진영과의 싸움이 정말 치열했는데... 5300 노트북 하나만 달랑 실패작으로 설명하고 넘어간 거는 아쉽네요. 파워피씨 시절에도 주옥같은 제품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라서 깊이 다루지 않은 것이라고 이해함... ㅋ
영상 애니메이션에 너무 좋은데요. 중요하고 핵심적 재미 있는 사실이 빠진데가 있거나 하여 재미가 부족합니다. 1. 넥스트 컴퓨터는 소프트웨어가 없어 망했습니다. 하드웨어가 망하니까 할수 없이 OS만 살리려고 인텔용 넥스트스텝을 개발 했습니다만 완전 망했죠. 2. 객체지향 운영체제 역시 제록스 팔로 알토 연구소에서 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방문 했을 당시 본 3가지 신 기술이 GUI 와 인터넷 기술. 그리고 객체지향 운영체제 이죠. 3. 객체지향 운영체재가 뭔지 설명 했으면 시청자께 더 알찬 내용이 되었을 텐데… 객체지향 이란 ‘개체 지향’이란 뜻으로 , 소프트웨어 설계를 모듈식으로 만든다는 거죠. API 가 바로 이런 겁니다. 4. CPU 아키텍처란 명령어 자체가 다른 것을 말합니다. RISC 나 CISC 등 명령 체계죠. 이게 다르면 소프트웨어 호환이 안 됩니다. 5. 펩시콜라 사장 이었던 존 스컬리의 애플 재직시절 가장 중요한 개발품은 세계 최초 PDA였던 ’뉴튼‘이었죠 이것이 아이폰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지금 ARM 프로세서 에 투자한 이유도 이때문 입니다. 내용에 독자가 지식이 될만한 내용이 없다보니 그냥 누구나 다 아는 …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그 점을 보완 하세요.
너무 재밌게 잘 보고있습니다
재밌어요^^
선생님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보다 영상 먼저 챙기세요..
정말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편도 얼렁 올려주세요
영상퀄이.. 바로 구독했네요 ㄷㄷ
쟝 루이 가세도 애플을 나와서 BeOS라는 걸 맹글지요.
BeOS도 참 시대를 앞서간 OS였는데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서 아쉬운 제품임.
지금도 있기는 하더군요.
BeOS도 차세대 애플의 OS로 후보에 올랐지만 잡스의 NeXtOS가 선택이 되었죠.
BeOS도 아깝긴 하지만 역시 잡스형이 애플로 돌아오는 게 맞았다고 생각함.
재밋어요 ㅎ
NeXT의 컴퓨터가 세계 최초의 웹서버가 되죠.
스티브가 애플을 떠나고도 매출이 상승한게 개인용 컴퓨터의 수요 폭발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동 시기에 미국에는 애플 말고도 탠디의 TRS80, 코모도어 pet, c64나 아미가 기타 atari나 TI등도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팔고 있었고
이미 대세는 기술과 규격이 공개된 ibm-pc 호환기종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경쟁 업체들이 다 독자적인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철수하던 시기에도 애플은 살아 남았죠
존 스컬리의 관리와마케팅 능력이 애플을 살려낸거죠, 사람들이 잡스를 쫒아 냈다는 이유로 또 잡스가 복귀후의 이미지를 가지고 존스컬리의 능력과 업적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것 같아요
참고로 NeXT가 세계 최고의 웹서버가 된 이유는 당시 NeXT에 매스매티카 프로그램이 번들로 포함되어 있어서 그랬습니다. 매스매티카 사는 것보다 NeXT 컴퓨타 사는게 더 싸서, 당시의 벨 연구소?에서 NeXT 컴퓨터를 대량으로 도입했고, 덕분에 Web을 개발할 때도 NeXT를 사용했던 거죠. 존 스컬리는 그 외에도 Newton PDA를 만들어내면서 ARM과 '정보탐색기' 개념을 만들어냈고, 해당 기기는 현재의 아이폰이 되었죠.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의 설탕물을 팔면서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을 것인가, 에서 세상을 바꿀 기회를 손에 잡은 것입니다. 또한 존 스컬리는 당시 스티브 잡스를 마지막까지 포용하려고 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배신하고 스컬리를 몰아내려는 계획에 배신감을 느낀 것도 있고요. 후일 스티브 잡스도 당시를 추억하며 그때는 어리고 철없었다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죠. 애플에서 쫓겨난 것이 나를 바꾸게 해 주었고,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도 언급했으니까요. 실제로 애플에서 쫓겨나기 전 스티브 잡스는 부서별 교통정리도 하지 못하고, 규모가 커진 회사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 하고 있었죠. Lisa와 Macintosh 팀의 갈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시고요.
잘 봤습니다
진짜 알고리즘타길 기원해요 ㅠㅠ
6:08 MS가 IBM에만 특권을 줘서 독점공급한게 아니라 오히려 IBM에 하청을 받아 MS-DOS를 공급했던 거 아니었나요?
근데 늬앙스를 보면 마치 MS가 갑 위치에서 IBM에게만 특혜를 주다가 풀은것 처럼 들리네요
ibm에서 pc를 개발할때 방침이 시장에 있는 부품과 os로 최단기간에 개발을 하자여서, 당시에 싸게 구성할수있는 기성 부품들로 만들었고, os도 8비트 컴퓨터의 표준 이었던 cp/m을 쓰려고 했는데
당시 ibm의 조건이 터무니 없었죠,pc한대당 얼마의 라이센스가 아니라 그냥 통으로 얼마에 라리센스를 달라여서 디지탈리서치가 거부하고 그 틈을 빌게이츠가 파고들어 그럼 자기네는 ms-dos라는 이름으로 소비자 대상으로 별도로 팔수있게 하면 계약을 하겠다해서 성사가 된겁니다.
근데 ibm이 os2 공동 개발때도 똑같이 저 양아치 짓을 해서 마소가 갈라서게된거구요
그거 말고도 ibm의 양아치짓 때문에 ibm과 거래를 끊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많더라구요
맥 os가 애플 시절 제록스에 외면당한 os기술보고 스티브가 각색해서 만들고 그걸 빌게츠가 카피한걸 아는데
여기선 스티브가 os기초를 만들거 말씀하시는데 잘 못된 정보 아닌가요?
세모지님 애청자로써
콘텐츠의 전문성, 유익성, 퀄리티 대비
최근 조회수가 안나오는게 아쉬울따름입니다.
이런 전문적인 채널이 있어야 하는데 혹여나 조회수로 인하해 콘텐츠의 눈높이를 낮춰야하나 않나 고민이 드실거같아 우려가 듭니다 ㅠㅠ
KFC매장에 세모지님 영상이 나올때
구독자로써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매번 잘 보구 있으머 늘 응원합니다❤
IBM 5170 혹은 AT라고 불리던 컴퓨터에 폼팩터인 AT 폼팩터는 공개 하드웨어 개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ibm at와 동일규격을 로열티 없이 사용할수 있는 다른 기업들이 AT호환 컴퓨터를 찍어냅니다
이때문에 CPU의 x86아키텍처 즉 인텔cpu 마이크로소프트의 dos를 필두로한 소프트웨어 windows 그리고 훗날 windows nt까지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로써 소비자 시장이 인텔의 x86 이후 AMD64 다른이름 X86-64 라던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가 시장 주축이 되니 IBM은 오픈 폼팩터인 AT를 끝네고 기업 소유의 PS/2라는 폼팩터를 이용한 컴퓨터를
판매하지만 AT PC를 꺽진 못했습니다
이후 현세대 PC는 AT를 개량한 AT X 폼팩터를 사용합니다.
---
그쵸..
저당시 AT 이후 호환기 업체들의 세상이었음.
특히 컴팩이라는 회사는 정말 빠르게 386, 486등 품질 좋고 빠른 제품을 내놓음으로써 앞서나갔었죠.
원래는 공개하드웨어가 아니라 다른회사와 마찬가지로 독점제품이었는데... 점유율에서 밀리자 서드파티 소프트웨어 개발자 유입을 노리고 공개한거죠.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AT는 후속작이고 공개된 규격은 전작인 "IBM-PC"였습니다. AT, XT가 PC에서 소소한 개선만 있었기에 약간의 착시가 있었지 않나 싶네요. AT, XT는 공개된 규격이 아니었지만, 서드파티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합심하여 PC를 개선해 AT, XT를 따라잡은거죠. 저작권을 피하기 위해 cpu이름인 386, 486을 썼던거구요.
@@elvenisar IBM은 처음부터 다 공개했습니다. 공개하지 않은 건 바이오스였는데, 써드파티 회사들이 바이오스를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카피하는 수준으로 만들어서 호환기종을 내놓았었음. AT기종까지는 그런대로 버텼지만 386부터는 호한기 제조업체가 먼저 치고 나와 IBM은 더 버티지 못하게 된거죠.
IBM 5150부터 즉 IBM PC 는하드웨어 오픈 이었습니다
그전 ibm의 5100 ~ IBM System/23 Datamaster 까진 독자 아키텍처를 이용 당연히 공개는 안됐음
IBM 5100->IBM 5110->IBM 5120->IBM System/23 Datamaster->여기서 부터 공개 아키텍처IBM PC IBM 5150 > IBM PC XT IBM 5160 > IBM PC AT IBM 5170 그리고 5150때 부터 몇가지 변형
다른 기업의 생산 등이 있음 폭발적으로 PC 표준화 를 일으킨게 IBM 5170(PC AT)은 맞음
애플 시리즈가 흥미진진한 것은 스티브 쟙스가 있기 때문이죠~~^^
👍😊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편 해야겠네요... ㅋ
한때 일시적이나마 스티브가 자리를 빈 사이에 애플이 IBM에게 퍼스컴 점유율1위를 내어준 적이 있었죠
IBM계열 조립PC에겐 상당히 오랜기간 내줬죠.. 아직도 퍼스컴 점유율을 못 따라잡고 있구요..!!
와씨 역사책 보는 기분이야
잡스는 왜 오브젝티브c를 ios에 까지 가져온걸까...
직설적으로 개재밌네
1. 최초의 노트북 컴퓨터는 'Osborne 1'입니다. 운영체제는 CP/M(기술적으로는 우리는 이 OS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이었고 무게는 11kg이 넘어가는 요즘으로 치면 이게 휴대용?이라고 부를법한 물건이지만 그래도 컴퓨터를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까지 올라가면 제록스의 'NoteTaker'가 그 원조구요(1978)
2. 솔직히 저는 학문적, 기술적인 면에서 애플이 어떤 기여를 했는가가 좀 의문스럽습니다. 산재한 기술들을 모아 정리하는데 탁월한건 인정하지만 이들이 최초로라고 할만한게 있는지는 좀 그렇네요.
3. IBM이 비록 개인 시장에서는 밀렸지만, 메인프레임 같이 대형 컴퓨터에서는 여전히 대체품이 없었죠. 그게 처음에는 개인용이라고 무시하던 X86이 성장해 자신들 시장을 침식할 줄은 몰랐고.
애플도 지금의 모토로라나 IBM과 같은 신세가 될 뻔 했었구나..
마이클 스핀들러가 애플 역사상 최악의 CEO였죠. 그렇게 판매량 쳐박혔는데 지 개인 비지니스 제트기나 사고...-ㅅ-
파워PC는 어찌 보면 지금의 출판/인쇄쪽의 완전 표준이 된 거나 다름없긴 한데 너무 다뤄진게 없다는 것이 아쉽군요.
사실 애플의 몰락과 연명, 그리고 부상에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은 잡스가 아니었으니까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었고 킬러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이었는데...그것들 중 유일하게 애플에서 대성공 한 것은 위지웍이 제대로 된 충판/인쇄쪽의 것이었고 이건 잡스하고는 상관없죠. 되려 여기까지 있어 잡스는 애플의 위험요소를 넘어서서 팀킬하는 못된 X끼였습니다. 툭하면 아이디어 빼내고 인력 빼내는 짓만 하던 양X치 맞아요.
스티브는 리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리사가 계속 늦어지고 그나마 나온게 가격이 안드로메다고 등등 부진의 이유로 리사 프로젝트에서 배제 당하죠
그래서 뭐 할게 엇을까 회사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슬적 끼어든게 제프라스킨이 진행하던 매킨토시 프로젝트 였죠
저기에 궁둥이 들이밀고 어느세 제프라스킨 밀어내고 그 자릴 꿰차고 리사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원들 슬슬 빼내오고
당시에 리사 프로젝트 개발에 사용되던 시제품 리사 컴퓨터를 막무가네로 빼내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사용해버라고(왜 냐면 당시 애플 내부에서 mc68000 cpu 어셈블러와 Pascal컴파일러가 제대로 동작 되던겐 리사가 유일했기 때믄이었죠)
등등 양아치였죠
그래서 이사회에서 회사를 안정시키기 위해 직함을 다 거두어 비린거였죠, 그냥 대주주로 있으라고, 그런데 이번엔 핵심 기술자를 데리고 회사를 나가버린거죠 ㅋㅋㅋㅋ
이번편은 너무 진도가 빠른 거 같아요..
파워피씨 시절도 윈텔 진영과의 싸움이 정말 치열했는데...
5300 노트북 하나만 달랑 실패작으로 설명하고 넘어간 거는 아쉽네요.
파워피씨 시절에도 주옥같은 제품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라서 깊이 다루지 않은 것이라고 이해함... ㅋ
파워PC 7000은 제가 볼 때 명작이라 봅니다. 디자인도 좋았고 이거저거 잘 썼었어요.
영상 애니메이션에 너무 좋은데요.
중요하고 핵심적 재미 있는 사실이 빠진데가 있거나 하여 재미가 부족합니다.
1. 넥스트 컴퓨터는 소프트웨어가 없어 망했습니다. 하드웨어가 망하니까 할수 없이 OS만 살리려고 인텔용 넥스트스텝을 개발 했습니다만 완전 망했죠.
2. 객체지향 운영체제 역시 제록스 팔로 알토 연구소에서 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방문 했을 당시 본 3가지 신 기술이 GUI 와 인터넷 기술. 그리고 객체지향 운영체제 이죠.
3. 객체지향 운영체재가 뭔지 설명 했으면 시청자께 더 알찬 내용이 되었을 텐데…
객체지향 이란 ‘개체 지향’이란 뜻으로 , 소프트웨어 설계를 모듈식으로 만든다는 거죠. API 가 바로 이런 겁니다.
4. CPU 아키텍처란 명령어 자체가 다른 것을 말합니다. RISC 나 CISC 등 명령 체계죠. 이게 다르면 소프트웨어 호환이 안 됩니다.
5. 펩시콜라 사장 이었던 존 스컬리의 애플 재직시절 가장 중요한 개발품은 세계 최초 PDA였던 ’뉴튼‘이었죠 이것이 아이폰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지금 ARM 프로세서 에 투자한 이유도 이때문 입니다.
내용에 독자가 지식이 될만한 내용이 없다보니
그냥 누구나 다 아는 …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그 점을 보완 하세요.
내용 보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잘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티브가 똑똑하긴하다 회사로고 짓는데 몇억을 투자해서 지은걸로 이해못하는 직원들 있다곤 하지만 결국 애플로고 밥벌어먹고있다고 표현할만큼 애플로고가 이뻐서 젊은세대들한테 인기가 엄청많지 ㅋㅋ 성능은 다른회사랑비슷해도 기계를 잘모르는 소비자들에겐 디자인이 중요하단걸 이미 어린나이에 간파한거지 이건희도 기술보단 디자인이에 중점을 맞춰야한다고 나이먹고 말한건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