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아이젠하워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자신은 없었다.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짜와 장소까지 모두 예상했던 유일한 독일군 장군, 에리히 마르크스. ruclips.net/video/ilfCoG1eVw4/видео.html
@@user-no2cu7ti2t 링크를 잘못 달 리가 있겠습니까? 유튜브 측에서 스팸 방지를 위해 쇼츠영상에서는 댓글링크가 잡히지 않게 해버렸답니다! 유튜브 검색 창에 에리히 마르크스 장군이라고 검색 후 맨 위에 나오는 영상 보시면 됩니다! 혹은 이 쇼츠영상에 연관 영상 링크를 걸어뒀습니다. 쇼츠 제목 아래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예상한~ 보이실 겁니다. 에리히 마르크스 장군은 롬멜이 가장 아끼는 부하였습니다. 결국 끔찍하게 전사합니다만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간과 날짜를 맞췄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그의 생일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는 알았던 것이다. 독일군의 전력을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 따르며 이길 수도 없단것을 !!! 그래서 스탈린의 소련군이 계속해서 하루빨리 상륙작전을 시작해서 서부전선을 열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연기하고 망설이고 주저하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매우 정확한 판단이었다. 독일군이 동부전선 소련군과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과 패배로 힘이 빠졌지만 여전히 미군이 상대하기에는 힘든 상대란걸 아이젠하워는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 늦게 노만디 상륙작전을 질질질 끌었다. 소련군과 상대하면서 만신창이가 된 독일군이라고 하더라도 미군은 엄청난 손실과 실패를 겪어야 했다. 그래서 독일본토 진입도 서두르지않았다. 베를린 함락도 소련군에게 내어주었던 것도 베를린 함락에 따르는 엄청난 병력손실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여러가지 면에서 아이젠하워는 확실히 정치가적인 기질이 강한 장군이었다.결국에는 아메리카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솔직히 아이젠하워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자신은 없었다.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짜와 장소까지 모두 예상했던 유일한 독일군 장군, 에리히 마르크스.
ruclips.net/video/ilfCoG1eVw4/видео.html
링크좀 다시 달아주십쇼 저걸 예측한 독일 장군이ㅜ있다니… 보고싶네용
@@user-no2cu7ti2t 링크를 잘못 달 리가 있겠습니까?
유튜브 측에서 스팸 방지를 위해 쇼츠영상에서는 댓글링크가 잡히지 않게 해버렸답니다!
유튜브 검색 창에 에리히 마르크스 장군이라고 검색 후 맨 위에 나오는 영상 보시면 됩니다!
혹은 이 쇼츠영상에 연관 영상 링크를 걸어뒀습니다.
쇼츠 제목 아래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예상한~ 보이실 겁니다.
에리히 마르크스 장군은 롬멜이 가장 아끼는 부하였습니다.
결국 끔찍하게 전사합니다만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간과 날짜를 맞췄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그의 생일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는 알았던 것이다. 독일군의 전력을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 따르며 이길 수도 없단것을 !!! 그래서 스탈린의 소련군이 계속해서 하루빨리 상륙작전을 시작해서 서부전선을 열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연기하고 망설이고 주저하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매우 정확한 판단이었다. 독일군이 동부전선 소련군과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과 패배로 힘이 빠졌지만 여전히 미군이 상대하기에는 힘든 상대란걸 아이젠하워는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 늦게 노만디 상륙작전을 질질질 끌었다. 소련군과 상대하면서 만신창이가 된 독일군이라고 하더라도 미군은 엄청난 손실과 실패를 겪어야 했다. 그래서 독일본토 진입도 서두르지않았다. 베를린 함락도 소련군에게 내어주었던 것도 베를린 함락에 따르는 엄청난 병력손실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여러가지 면에서 아이젠하워는 확실히 정치가적인 기질이 강한 장군이었다.결국에는 아메리카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바다 건너 편에 괴물이 있다, 백만의 적군과 항공기,탱크들,
~제군, 기억하라 적이 쳐들어오는
그 날은 우리에게나 적군에게나
가장 긴 날이 될 것이다. -육군원수
에르빈 롬멜-
몽고메리 간장은 왜 나온거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아이젠하워가 연하군 총사령관이긴 했지만
영국의 몽고메리는 지상군 총사령관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도 회의에 당연히 참석했고 실제로 망설이지말고 작전 속행을 주장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