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 선생의 역사학 강의. 쏙쏙 들어오고 재미도 있고요. 지금 한국의 역사는 역사가 아닙니다. 설민석 선생도 꾸며진 교과서와 선생들 한테서 배워 온 그런 학창시절이었으리란 판단. 그레이스는 설선생 처럼 전문적으로 공부 하지는 못 하였지만, 한국 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아주 아주 오래 전 부터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시 공부 연구해서 한국 본디 역사학자로 이름을 새기시는 것이 어떠 하실까요?? 아주 많이 똑똑하시고 머리도 좋으신듯 해서~~ 그냥 영상 강의 선생으로만 남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 같아서 드리는 말씀 이었습니다. 그럼. 그레이스 애르.
# 조선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고려: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옛날 고려 전성기에 동서 여진(女眞)의 무리와 거란(契丹)·발해(渤海)의 인민들이 계속 투항 귀순해 온 것은 모두가 위엄과 덕망(威德)의 소치였으며, 역대의 군왕도 그 성의를 권장해 받아들였기 때문에, 능히 양계(兩界)의 땅을 확장시키고 나아가서는 옛날 숙신(肅愼)의 봉강(封疆)까지 회복하였던 것입니다.『세종실록 73권, 세종 18년 윤6월 19일 계미 2번째기사』 "임금이 말하기를... 해주(海州)는 여러 해 연거푸 흉년이 들어서 사람들의 사망율이 대개 5분의 1이나 되온즉, 그런 일(인육을 먹은 일)이 비록 사실이 아닐지라도... 고려(高麗) 5백 년 동안에 진실로 이러한 일이 없었는데... 마음에 심히 부끄럽다..."『세종실록 119권, 세종 30년 1월 16일 계묘 1번째기사』 "임금이 말하기를, 고려(高麗) 때에는 밥을 먹이는 중[僧]이 3만 명이었으니, 당시에[고려]는 나라가 부유(富裕)해서 그렇게 했던가? 지금이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성종실록 67권, 성종 7년 5월 12일 갑인 5번째기사』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산에는 나무만 있고 물에는 돌만 있을 뿐이라서 중원(中原)에 비하면 1도(道)에도 미치지 못한다..."『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첫번째 기사』 "이런 때에 안으로 스스로를 강화하면서 밖으로 견제하는 계책을 써서 한결같이 고려(高麗)에서 했던 것과 같이 한다면 거의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나라의 인심을 살펴보면 안으로 일을 힘쓰지 않고 밖으로 큰소리 치는 것만 일삼고 있다... 고려에서 했던 것에는 너무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부질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끝내는 반드시 큰소리 때문에 나라일을 망칠 것이다"『광해군일기[중초본] 166권, 광해 13년 6월 6일 병자 4번째기사』 "이양이 상소하기를... 고려(高麗)의 군제(軍制)는 6위(六衛)와 8령(八領)으로 되어 있었는데, 1령이 각각 1천 인이니, 도하(서울)의 군대만 모두 합쳐 4만 8천 명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훈국(訓局)을 새로 설치한 뒤로 5영(五營)의 군대를 제외하면 곧 오합지졸(烏合之卒)이니, 이것으로 적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11월 2일 경자 5번째기사』 "생각해보면 고려에서 나라를 세운 이래 물력의 풍부함은 우리 조선이 거의 미치지 못할 바이다. 석물을 세운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다[고려]를 보고 나면 다른 물[조선]은 시시하게 보인다더니 정릉의 석물을 보고 나니 길가의 소소한 석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흠영, 조선 후기 선비 유만주의 일기』 "고려는 송악에 도읍하여 거의 5백 년이 지나서 망하였다. 그런데 [고려의]그 전성 시대에는 군신이 서로 화합하여 태평 성대를 이룩하였으니, 비단 성지나 궁궐, 누대가 그 위엄을 중하게 드러내 보이고 유람의 장소를 풍부히 제공했던 것뿐만이 아니었다. 공경대부(높은 벼슬아치)나 호민부상(세력이 있고 부유한 상인)들의 정원과 저택들은 자하동을 에워싸고 남산을 임하여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게다가 승사와 탑묘들이 기려함을 서로 다투어 금벽색의 고운 단청이 서로 휘황찬란하였다. 그러다가 우리 태조(이성계)가 일어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자, 수년도 안 되어서 왕씨들의 겹겹으로 경영해 놓은 높은 대사와 깊은 오지들이 쓸어버린 듯이 다 없어져서, 동으로 만든 낙타상이 가시덤불 속에 묻히고 서리가 눈에 그득한 것이 지금까지 80여 년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 유민으로서 그 당시에 어렸던 사람들은 이제 늙어 꼬부라졌고, 당시에 장성했던 사람들은 벌써 묘목이 한 아름이 되었으니, 또 누구에게서 그 지난날의 번화했던 시절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 부귀영화를 쌓는 데는 500년도 모자랐으나, 모든 것이 허물어질 적에는 하루도 안 걸렸으니, 아아! 왕씨의 도읍은 바로 오늘날의 ‘은감’이 라고 할 만하도다!"『점필재집 제2권』
조선의 군왕이었던 선조가 직접 말하는 고려와 조선의 국력 및 경제력 차이. "내 오늘의 일을 살펴보건대 우리 나라는 무략이 강하지 못하고, 조종조의 일로 말하여도 일찍이 한 번도 싸워서 승리한 적이 있지 않다. 우리 나라의 무략은 고려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알 수 없거니와 문치(文治)의 소치로 그렇게 된 것인가. 문장(文章)으로 말하더라도 우리 나라 2백 년 이래 여대(麗代)의 문장에 미치지 못한다. 이것으로 보면 문장과 무략이 모두 고려 때만 못한 셈이다. 장수에 있어서도 고려 때에 미치지 못한다. 고려말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 정세운(鄭世雲)은 20만의 군사로 천수문(天壽門) 밖에 결진하여 포휘하고 공격함으로써 끝내 대첩을 거두었다. 우리 나라에서야 어디에서 20만의 군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는 사람의 수효가 전조보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공사천(公私賤)은 날로 번성하는데 반해 군졸의 액수는 날로 감축되기 때문이니, 호령과 군정 또한 전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일찍이 사의(私意)로 헤아려 보건대 송(宋)나라 조정과 너무도 비슷하다. 자고로 국세가 이와 같으면 반드시 이적(夷狄)의 화를 받는 법인데 우리 나라의 일이 실로 염려된다. 무략만 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재집(宰執)들 중에도 병법을 아는 사람이 없고 신진 문사들은 전연 무사(武事)를 모르고 있다. 내가 조신(朝臣)들을 경홀히 여기는 마음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산에는 나무만 있고 물에는 돌만 있을 뿐이라서 중원(중국)에 비하면 1도(道)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원의 1도는 극히 부성(富盛)하여 우리 나라의 물력으로는 미칠 수가 없다. 왜국(일본) 역시 우리 나라처럼 가난하지는 않다. 그런데 왜국은 몇 개의 도로 나뉘었는지 모르겠다." [선조실록 선조38년 9월 28일]
정리해드림 삼국시대 국가중 고구려: 과학도 여러모로 전성기 이후에 매우 발전 되고 있었고, 경제도 돌아갈 만큼은 돌아갔으며 살기 좋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모두 귀족의 권리였다. 백성은 살기 힘들었다고 한다. 백제: 서민들에게 종교가 흔히 전파되었고, 무역으로 서민도 어지간히 먹고살만큼은 잘살았다. 돈이 남아돌아서, 왜군 용병을 대량으로 사기도함 백제는 문화가 발전하여, 관광도 많이 오긴 했다함. 경제도 좋았던 나라지만 귀족이 권력에 눈멀고,왕이 잘못 할때마다,힘들었다고함. 신라: 아주 못 살던 나라였지만 통일 이후 급속도로 과학과 문화, 종교가 발전되며 잘살려고 하는 순간 왕조 무너짐. 남북국시대중 발해: 성왕때 절정기를 맺어, 일반 서민도 잘살았음. 문학과 문화, 과학도 많이 발전했다고 함. 후백제: 백제의 대다수특징을 나타내는 하나로, 초반에만 강하다 망함. 고려:철저한귀족제. 국가가 운영하는 사업은 중기 쯤에 민영사업이 실행되려다 몽골이 쳐들어와 그침 무역은 아주 성행하여, 그걸로 먹고삼. 몇몇 귀족만 잘살지 백성은 고생하는 나라. 조선: 여러모로제일 아쉬운 점이 많은나라. 민본주의여서, 초기에는 백성을 위해 정치하다가, 중기쯤 부정부패되었지만 전란 이후로 서민들이 부유해지며,문화와 과학이 발전하고,엄청난 혁명의 준비를 하려던 순간, 왕과 귀족의 잘못된 정치로써 망하게 된 왕조. 훗날 사람들에게 (시스템은 훌륭했지만 관리들이 타락한 나라)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설민석 선생님의 강의는 정말 귀에 쏙쏙 들어와요.
제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한국사는 설민석 선생님의 강의로 흥미와 교육을 잡을듯 해요
설민석님은 우리 역사를 깨우치게하는사람이심.
존경합니다
짱 심심할때 마다 보고 있어요
Jinny_USA 전 진지할때도 봄니다😄
@@올림피그 ㅣ4ㅍ
귀에 쏙쏙 들어온다 역시 설쌤
설민석님,존경합니다!!!!!!!!!!!
강의의 신이다
제가 한국사를 잘 몰랐는데 이렀게 강의를해주시니 영광이네요.ㅎㅎ앞으로도 영상 올려주세요
잘시청했읍니다 감사감사
2강 연속으로 볼수 있게 링크 걸어주시면 좋을거 같아요~~^^ㅂ
퇴근하고 집에 운동삼아 걸어갈때 듣는 강의 재밌다
유익합니다.
very good
설민석 선생님 ^^ 오늘도 잘 듣고 갑니다 ❤
설민석 선생의 역사학 강의.
쏙쏙 들어오고 재미도 있고요.
지금 한국의 역사는 역사가 아닙니다.
설민석 선생도 꾸며진 교과서와 선생들 한테서 배워 온
그런 학창시절이었으리란 판단.
그레이스는 설선생 처럼 전문적으로 공부 하지는 못 하였지만,
한국 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아주 아주 오래 전 부터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시 공부 연구해서 한국 본디 역사학자로 이름을 새기시는 것이 어떠 하실까요??
아주 많이 똑똑하시고 머리도 좋으신듯 해서~~
그냥 영상 강의 선생으로만 남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 같아서 드리는 말씀 이었습니다.
그럼.
그레이스 애르.
설민석 선생님 오늘도 잘 듣고 갑니다ㅎㅎ 항상 즐겁게 역사배우고갑니다ㅎㅎㅎ
사극에 근엄한 표정으로 상투튼 사람들 정수리가 텅텅 비어있었다니..ㅋㅋㅋ
백호친다고 말하지요
ㅋㅋ
ᄎᄌᄋ 탈모가 조선시대의 역병이었다는군요..
2강 못찾겠네요ㅜ 설민석쌤 강의 완전 반해서 자주 보고있어요.
우리역사가 반만년인 만큼 고조선, 고백신 시절도 강의 많이 부탁드려요!
고백신이 뭔가요?
@@Tyran-rex 고구려 백제 신라 한마디로 삼국시대요
@@woong_jae
글쿤요.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백성 살기 힘든거의 표시를 ㅡ_ㅡ; 이거에서 이야~~~했습니다 굿입니다 ㅎㅎㅎ
설민석의 한국사 책 덕분에 재미있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재밌네
완전 멋져요 .
사회에 대해서 궁금할때 더욱 쉽게 이해가 갈 수 있겠습니다.
다시봐도 넘 재밌어~
쌤.쫄지마!!!
우리역사를 대중화 시키는데
큰공을 세우신건
팩트.
응원합니다
설쌤 옛날처럼 영화로 보는 강의도 해주세요 지금 군함도 나왔는데 군함도에 속해있는 내용도 강의해주세요ㅎㅎ 옛날처럼 재미있게 듣고 싶어요ㅠ
지리수업까지~
뜬끔 예전에 석지리선생님 생각남
벌세울때 곤충채집- 팔 벌리고 앞문 뒷문에 수업시간 내내 딱 붙어 있던-이 생각나네요
2강 3강 .. 계속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이로그 대신에 보고있어요
내가 고려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는데... 지금 태어난게 한이다... 저 시대 미인의 기준이 지금의 나잖아...ㅠ
son bohee 전..그럼미남?ㅋㅋㅋ
렘드 Live TV 미남의기준은 언급안되었는데요?
문제인식 농담이겠죠 뭐 ㅋㅋ
고망 그.정도는 알죠 ㅎㅎ
..
설민석 선생님 발음 지린다.... 자막이 거의 안틀림
재밌게 봤습니다~
설샘은 그림도 잘그려~♡.♡
설민석쌤 멋지다!
응원합니다. 다시 나오세요
강사님 그림을 너무재밋게 그리시네~ㅋㅋㅋㅋ
응원합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역사를 배우고 그대로 재미있게 강의하시네요
설쌤짱
완벽합니다
설민석 강사 신라 고려 백제역사좀 방송좀해주세요
역사의 재미는 설민석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림 귀엽네ㅋㅋㅋ
노래방노래해방 사람 귀엽게 그리시네요 ㅋㅋㅋㅋ
# 조선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고려: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옛날 고려 전성기에 동서 여진(女眞)의 무리와 거란(契丹)·발해(渤海)의 인민들이 계속 투항 귀순해 온 것은 모두가 위엄과 덕망(威德)의 소치였으며, 역대의 군왕도 그 성의를 권장해 받아들였기 때문에, 능히 양계(兩界)의 땅을 확장시키고 나아가서는 옛날 숙신(肅愼)의 봉강(封疆)까지 회복하였던 것입니다.『세종실록 73권, 세종 18년 윤6월 19일 계미 2번째기사』
"임금이 말하기를... 해주(海州)는 여러 해 연거푸 흉년이 들어서 사람들의 사망율이 대개 5분의 1이나 되온즉, 그런 일(인육을 먹은 일)이 비록 사실이 아닐지라도... 고려(高麗) 5백 년 동안에 진실로 이러한 일이 없었는데... 마음에 심히 부끄럽다..."『세종실록 119권, 세종 30년 1월 16일 계묘 1번째기사』
"임금이 말하기를, 고려(高麗) 때에는 밥을 먹이는 중[僧]이 3만 명이었으니, 당시에[고려]는 나라가 부유(富裕)해서 그렇게 했던가? 지금이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성종실록 67권, 성종 7년 5월 12일 갑인 5번째기사』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산에는 나무만 있고 물에는 돌만 있을 뿐이라서 중원(中原)에 비하면 1도(道)에도 미치지 못한다..."『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첫번째 기사』
"이런 때에 안으로 스스로를 강화하면서 밖으로 견제하는 계책을 써서 한결같이 고려(高麗)에서 했던 것과 같이 한다면 거의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나라의 인심을 살펴보면 안으로 일을 힘쓰지 않고 밖으로 큰소리 치는 것만 일삼고 있다... 고려에서 했던 것에는 너무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부질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끝내는 반드시 큰소리 때문에 나라일을 망칠 것이다"『광해군일기[중초본] 166권, 광해 13년 6월 6일 병자 4번째기사』
"이양이 상소하기를... 고려(高麗)의 군제(軍制)는 6위(六衛)와 8령(八領)으로 되어 있었는데, 1령이 각각 1천 인이니, 도하(서울)의 군대만 모두 합쳐 4만 8천 명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훈국(訓局)을 새로 설치한 뒤로 5영(五營)의 군대를 제외하면 곧 오합지졸(烏合之卒)이니, 이것으로 적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11월 2일 경자 5번째기사』
"생각해보면 고려에서 나라를 세운 이래 물력의 풍부함은 우리 조선이 거의 미치지 못할 바이다. 석물을 세운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다[고려]를 보고 나면 다른 물[조선]은 시시하게 보인다더니 정릉의 석물을 보고 나니 길가의 소소한 석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흠영, 조선 후기 선비 유만주의 일기』
"고려는 송악에 도읍하여 거의 5백 년이 지나서 망하였다. 그런데 [고려의]그 전성 시대에는 군신이 서로 화합하여 태평 성대를 이룩하였으니, 비단 성지나 궁궐, 누대가 그 위엄을 중하게 드러내 보이고 유람의 장소를 풍부히 제공했던 것뿐만이 아니었다. 공경대부(높은 벼슬아치)나 호민부상(세력이 있고 부유한 상인)들의 정원과 저택들은 자하동을 에워싸고 남산을 임하여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게다가 승사와 탑묘들이 기려함을 서로 다투어 금벽색의 고운 단청이 서로 휘황찬란하였다.
그러다가 우리 태조(이성계)가 일어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자, 수년도 안 되어서 왕씨들의 겹겹으로 경영해 놓은 높은 대사와 깊은 오지들이 쓸어버린 듯이 다 없어져서, 동으로 만든 낙타상이 가시덤불 속에 묻히고 서리가 눈에 그득한 것이 지금까지 80여 년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 유민으로서 그 당시에 어렸던 사람들은 이제 늙어 꼬부라졌고, 당시에 장성했던 사람들은 벌써 묘목이 한 아름이 되었으니, 또 누구에게서 그 지난날의 번화했던 시절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 부귀영화를 쌓는 데는 500년도 모자랐으나, 모든 것이 허물어질 적에는 하루도 안 걸렸으니, 아아! 왕씨의 도읍은 바로 오늘날의 ‘은감’이 라고 할 만하도다!"『점필재집 제2권』
설쌤 강의 직접 가셔 듣고싶어요 ㅠ^ㅠ
저도
난 역사가 왜케 잼있지ㅜㅜ
]
나도 인정
저두용 ㅠ
나도 인정
유툽보는게 재밌는거겠지 공부도 안하면서
소청(민원/청원)->괘서(게시글/댓글)->민란(촛불집회) ??
6:00 너무 귀여우시다
설쌤같은분을 학창시절만났다면 국사 선생님으로 진로변경햇을듯♡
조선의 군왕이었던 선조가 직접 말하는 고려와 조선의 국력 및 경제력 차이.
"내 오늘의 일을 살펴보건대 우리 나라는 무략이 강하지 못하고, 조종조의 일로 말하여도 일찍이 한 번도 싸워서 승리한 적이 있지 않다. 우리 나라의 무략은 고려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알 수 없거니와 문치(文治)의 소치로 그렇게 된 것인가. 문장(文章)으로 말하더라도 우리 나라 2백 년 이래 여대(麗代)의 문장에 미치지 못한다. 이것으로 보면 문장과 무략이 모두 고려 때만 못한 셈이다. 장수에 있어서도 고려 때에 미치지 못한다. 고려말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 정세운(鄭世雲)은 20만의 군사로 천수문(天壽門) 밖에 결진하여 포휘하고 공격함으로써 끝내 대첩을 거두었다. 우리 나라에서야 어디에서 20만의 군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는 사람의 수효가 전조보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공사천(公私賤)은 날로 번성하는데 반해 군졸의 액수는 날로 감축되기 때문이니, 호령과 군정 또한 전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일찍이 사의(私意)로 헤아려 보건대 송(宋)나라 조정과 너무도 비슷하다. 자고로 국세가 이와 같으면 반드시 이적(夷狄)의 화를 받는 법인데 우리 나라의 일이 실로 염려된다. 무략만 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재집(宰執)들 중에도 병법을 아는 사람이 없고 신진 문사들은 전연 무사(武事)를 모르고 있다. 내가 조신(朝臣)들을 경홀히 여기는 마음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산에는 나무만 있고 물에는 돌만 있을 뿐이라서 중원(중국)에 비하면 1도(道)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원의 1도는 극히 부성(富盛)하여 우리 나라의 물력으로는 미칠 수가 없다. 왜국(일본) 역시 우리 나라처럼 가난하지는 않다. 그런데 왜국은 몇 개의 도로 나뉘었는지 모르겠다."
[선조실록 선조38년 9월 28일]
헐 저모든것들이 몽골풍이라니 놀랍네요..! 근데 한라산에 불지른건 참안타깝네요 ..
원래 재산분쟁은 민사소송이지만 관복을 입고 소송을 걸면 행정소송으로 바뀝니다.
좋아요가 999개여서 안누를 수가 없다 ..
고려가 참 살기 힘들었을 것같아
거란에 여진에 몽골에 왜구에 ㅡ
미친듯이 맞고 살았던 고려시대 ㅡ
한반도는 안 힘든 적이 없음 ㅋㅋ
삼국 시대 때는 서로 털고 고구려는 후기때 중국이 털고 ㅠㅜ 발해는 왠지 모르지만 망했고 고려는 계속 털리고 조선은 답이 없고 ㅋㅋㅋ
그나마 고구려, 고려가 살기 편하지 않았나 싶음
박님아 아주힘들었죠. 건국된10세기에는 거란족의요나라가 11세기는 여진족의금나라가 12세기는 몽골제국,원나라가 13세기에는 원나라반란군 홍건적이 남쪽으로 일본해적집단이 쳐들어왔죠
700년대초 부터 800년대 초까지 약 100년간의 통일신라 시절이 그나마 제일 평화롭고 살기 좋지 않았을까요? 800년대 중반부터 나라의 국력이 약해지고 800년대 후반엔 완전 분열이 되었지요
역사공부싫어하는 중딩 아들 재밌게 들려줘요 감사~
전땡땡 쌤이랑 동갑이시라니 믿기지가않아......
머리가운데를 미는것을 백호치기라고 합니다.(지나가던 조선왕조실톡팬)
님들 이영상 자막 키고 봐보세요 설민석 선생님 발음이 좋으셔서 어느정도 뜸 ㅋㅋㅋ
명강의 감사드리며
그림을 작게그리시어 안보이는
관계로 짜증이납니다
0:06 민트초코요?
뭔소리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막도 민초라고 하는데..
3번연속 1위다!!
저렇게 여성의 지위가 높았는데 조선 후기에 여성혐오를...ㅠㅜ
유교가 폐해가 크네요
뭔 여성혐오야 또 ㅋㅋ
그림이 너무 귀여워용
솔직히 고려때 남녀평등이 진정한 남녀평등인것같다
놀곰 제가볼땐 그 시기에 남녀평등은 선진국이었을듯
가스터 지금은 어후
@@obbayassalrido1937 남자가 힘들지
그래도 그때 여자는 관직에 나갈수 없었다고 하던데;;
냥냥 냥냥 뭐 그래도 이정도면 조선보다 나은 것 같지 않아요?
세종이 노비를 40프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인데 여러분들은 어찌생각하나요?
2강이 없나요?ㅠ
찬양하라 갓민석!!!
이성계가 흙수저는 아니였음 화령에서 나름 나가는 명문가 였음 방원은 급제하고 원래 유능한집안
이제는...
여지껏 터진거 빚좀 갚아줍시다!
고구려때도 데릴사위 뿐만 아니라 결혼 할 때 딸을 파는 거 같이 안 보일려고 예물 대신에 술과 고기만 보냈다고 그랬는데 지금은...
관복이랑 소송이 무슨관계인가요? 관복을 입어야만 소송을 할수잇나요!? 궁금해요 ㅜ ㅜ
고려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고 하는 게 참 슬프다 뭐 여성 지위가 바닥이었던 조선 기준이니 어쩌겠냐만은 하고 싶은 일도 못하는데 그냥 할 말 다하고 돈 똑같이 받는다고 놀라워할 일이라니..
그림귀욤ㅋ
이거 2강은 안만들었나요?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저 초등5학년인데 강의 재밋내요
저도 초5인데 강의b
고려때 민란이왜안일어났을까.. 정말궁금하네요~ 북한이랑비슷한점이있을까요?😥
2020년에 기말고사때문에 보러온사람 100% 몇명있다 ㄹㅇ
고려말과 조선말중에 어느때가 백성들의 삶이 더
참혹했을까~?
정답!!조선말!!!(왜냐?일제강점기 때문에)
내 친구중에 개복치라고 있는데 ㅋㅋㅋ 몽골풍이었군 ㅋㅋㅋㅋ
개복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아니 설민석쌤이 나보다 그림 잘그려ㅋ
1:22
몽골에도 사죄와 배상을 요구합시다
뭐냐 왜 한국사가 재밌는거냐 어째서지
2강이 많아서 어떤건지 모르겠어요.
❣️
정리해드림
삼국시대 국가중 고구려: 과학도 여러모로 전성기 이후에 매우 발전 되고 있었고, 경제도 돌아갈 만큼은 돌아갔으며 살기 좋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모두 귀족의 권리였다. 백성은 살기 힘들었다고 한다.
백제: 서민들에게 종교가 흔히 전파되었고, 무역으로 서민도 어지간히 먹고살만큼은 잘살았다. 돈이 남아돌아서, 왜군 용병을 대량으로 사기도함
백제는 문화가 발전하여, 관광도 많이 오긴 했다함. 경제도 좋았던 나라지만 귀족이 권력에 눈멀고,왕이 잘못 할때마다,힘들었다고함.
신라: 아주 못 살던 나라였지만 통일 이후 급속도로 과학과 문화, 종교가 발전되며 잘살려고 하는 순간 왕조 무너짐.
남북국시대중 발해: 성왕때 절정기를 맺어, 일반 서민도 잘살았음. 문학과 문화, 과학도 많이 발전했다고 함.
후백제: 백제의 대다수특징을 나타내는 하나로, 초반에만 강하다 망함.
고려:철저한귀족제. 국가가 운영하는 사업은 중기 쯤에 민영사업이 실행되려다 몽골이 쳐들어와 그침 무역은 아주 성행하여, 그걸로 먹고삼.
몇몇 귀족만 잘살지 백성은 고생하는 나라.
조선: 여러모로제일 아쉬운 점이 많은나라. 민본주의여서, 초기에는 백성을 위해 정치하다가, 중기쯤 부정부패되었지만 전란 이후로
서민들이 부유해지며,문화와 과학이 발전하고,엄청난 혁명의 준비를 하려던 순간, 왕과 귀족의 잘못된 정치로써 망하게 된 왕조.
훗날 사람들에게 (시스템은 훌륭했지만 관리들이 타락한 나라)라고 인식한다.
설민석이도 지금야당민주당관점에서 역사를해석한다
한국의 역사는 최소 7000년이 넘는다
김승환 ? 선사시대까지 포함한거 아님
? 고조선이 B.C. 2333년에 건국됐으니 현재 4351년(즉 반만년) 아닌가요?
선사시대가 역사인가......
ㅋㅋㅋ 기황후 보고 뒤로 자빠짐 ㅋㅋㅋ
이 강의 단꿈 교양강의인가요!?
재밌어요 ㅠㅠ
9:01 남자와 여자 완전 같다는 = 보다 남자≧여자가 맞는거 같은데
3일전 무엇
쌤 여전히 그림 잘그리시네용 근데. 차분해지셨네요. 메가스터디때..그때배웟어용!ㅜㅜ1등급 받앗는데 아직도 생생해요
원형탈모들은 좋았겠다
탈모를 가릴 수 있었잖아
한사군은요?
나도 옛날시대때에는 미인이겠다..
얼굴이 달덩이..
나도 시대를 잘 못타고 나온듯..
근로정신대와 종군위안부의 차이를 알고십습니다.
대충은 알지만 자세한 차이를 배워본적도 없고 자료를 일부러 찾아봐도 자세한 차이를 다룬자료도 잘없습니다.
아픈역사일수록 외면되고 잊혀지는게 안타깝습니다.
조선후기에 적장자만 제사를 지냈다고 하셨는데
그럼 다른 아들들은 참석도 못한건가요? 아님 참석은 할수있던건가요??
채성 아마도 불가피한 상황은 걍 큰딸이 지내는 걸로 압니다. 저도 확실치는 않군요.
제 질문은 그게 아니었는데요;;
아들 없으면 누가 지내냐고 물어본게 아니라
아들이 여럿 있을경우에 큰아들 말고 다른 아들들도 그 제사에 참석을 했는지를 물어본거였어요
채성 아마 참석은 가능할걸요.....?
ㅡ ㅡ 몰랐습니다;;
자막틀고 소리꺼도 다보임 ㄷㄷ..
어떻게잘해요
연지라고 하니까 딸기우유에 들어간
연지벌레가 생각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