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부분의 글을 읽고, 저도 생각이 많이 나네요. 어릴때 부산 서면근처에서 살았고, 그때는 아주 가난했던 시절 학교 교사의 수준이, 지금과 비교하면 말이 안되는 수준이었지요. 저의 부모님은 제가 학교 다니던 1970년대 국민학교 6년동안 단 한번도 학교에 방문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두분다 시장에서 장사하신다고 바쁘게만 살았지, 돈은 없었던 시절인데, 대놓고 교사가 촌지를 요구하였고, 돈을 갖다주지 않으면 굉장히 불이익을 받곤 했던 시절이 많이 생각나네요. 시험을 쳐서 성적이 잘 나와도, 컨닝했다며 점수를 낮추어서 당시의 시험결과를 받아 왔던 시절도 생각이 납니다. 억울해도 선생님이 무섭기만 했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제이님 부모님의 말씀에 공감이 확 다가오네요.
73년생 남자입니다. 소름끼쳤네요. 오늘 낮에 회사 직원들하고 밥먹다 저 국민하고 2~3학년때 담임이라는 인간이 무식하게 때렸던거 말했더니 저보고 장난꾸러기였냐고 하길래 촌지 얘기를 했줬습니다. 다른 애들은 안맞고 저만 맞았는데 그 애들은 부모님이 학교에도 자주오고 담임한테 돈도 잘 갖다 받치던 사는집 애들이였다구요. 당시는 돈안주면 대놓고 이렇게 때리고 구박하고 하던 선생이라는 인간들이 많았다고 말해줬는데 갑자기 엔딩에 오늘 제가 했던 똑같은 멘트가 흘러나오네요 ㅎㅎ
몽골소도 k~라면이. 맛난걸 안다구요...ㅋ😂 올만에. 엔딩곡과 자막보니 옛날 영상들이. 생각이 나는군요^^ 사실 인간미 느껴지는 엔딩곡과 스토리에 팬이 된지 벌써. 4년정도 되가는거같은데 예전에 s j로 돌아온거같아.방갑워요 요즘 영상도 자주 올라오고....짱!!^^❤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니 국민학교1학년때 담임쌤이 생각나네요. 엄마는 절대 촌지 주지 않겠다고 생각하셨었는데.. 몇번이고 학교 갔다가 돌아온 제가 울면서 선생님이 나만 미워한다고.. 했데요.. 그리고 어느날부터는 선생님이 계속 너희 엄마는 학교에 한번 안오신다나? 하고 계속 물어본다고 엄마 학교 언제와? 했다네요 그 말들은 엄마가 결국엔 학교에 다녀가셨고.. (촌지를 주고 가셨다네요..)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그 후론 선생님이 잘해준다고.. 좋아했다고 ㅠㅠ 엄마가 학교왔다가 돌아가실때 엄마를 배웅하던 빨간 립스틱이 앞니에 묻은 상태로 활짝 웃던 쌤 얼굴.. 나이가 이만큼 먹도록 잊혀지질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진짜 믿지 못할 이야기네요 ㅋㅋㅋㅋ 다음 영상 기다릴게요! 건강 잘 챙기시고 늘 화이팅입니다!
엔딩장면에서 어렸을적 경험한 학교에서의 부당한 대우를 보며 지금은 30살이 넘은 나의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때가 기억이 난다. 늙수구레한 담임이 좀 살만하게 보이는 아이들의 엄마들을 불러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을시키고 무언의 압력을 주자 우리집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엄마들이 촌지를 준 모양이었다. 그때문에 우리 큰아이가 시달리고 집사람이 허구한날 불려다니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해 이사를 가버린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게 흔한 일이라 어디 다불평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던 시절이었다.
50이세요? 헐 개동안 ㅋㅋ 저는45인데 저도 학창시절 미친듯이 맞은 기억이 중학교때 친구랑 노트에 서로 낙서하면서 애기좀 했다고 불려나가서 노트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땀 후들겨맞고 교탁에 있는 미끄허지지말라고 끝에 붙여놓은 고무 뜯어서 채찍처럼 팔뚝 떼리고 발로 걷어차서 교실 끝까지 밀고 옆에 있던 밀대 발로 부셔서 무릎 꿇게 하고 허벅지 위를 밀대로 떼리고 생각해보면 참 다양하세 한순떼렸네요 ㅎㅎ 이름도 아직 기억남 그선생 옆에 고등학교 갔는데 아직도 중학교 선도 선생 했고 있던데 어느날 안보이길래 촌지 너무 쳐먹어서 짤렸다는.. 그시절 진짜 아직도 그놈 얼굴은 기억납니다. 트라우마로 오죽했으면 패닉이 벌레라는 노래를 만들었을까요. 그런 시대에 살았지만 참 성격 조아 보이시고 마음이 좋아 보이셔서 좋습니다^^
우리나라 1970년생이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아이가 태어난 해 라고 하네여. 그리고 그 세대는 많은 경쟁을 거쳤다하네요. 물론 저도 그 세대이긴 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께 제가 관심을 받지 못한것이 부모님의 촌지 였다는 생각이 비로소 드네요. 어느 누구는 제가 공부도 못하거나 미운짓을 했겠지 반문 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가만히 50이 넘은 나이에 그때를 떠올려보면 승재님과 같은 경우가 많았고 더욱이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저로서는 할머니가 선생님 앞에서 육성회비를 제 기간에 내지 못해 머리를 조아리고 선생님의 삿대질이 아직도 선명 합니다. 시골에서 부모님 대신 저를 케어해주시기 위해 오셨던 할머니는 육성회비 내는 것을 미쳐 몰랐을뿐이였고 선생님 호출에 학교에 찾아오신 할머니의 허리굽은 모습에 선생님은 마치 죄인 다루듯 하고 할머니는 행여 나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가셨던....그 다음 부터는 육성회비 내는날이면 어린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위생점검 있는 날이면 손톱이 짧고 비누로 씻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사마귀가 있다는 있으로 자로 손등을 날로 내리치셨던 선생님. 집에 돌아와서 사마귀를 이빨로 물어 뜯고 또 손톱깍이로 피부를 자르면 땀구멍에서 피가 방울방울 솟구쳐 멈추지도 않아 자르고 또 자르고....아직도 선명하네요. 폐지 제출 하는 날이면 한뼘씩 제출 하라던 선생님이 무서워 용돈을 모아 신문지를 사서 냈던 기억이..... 그 이후 어린 마음에 저는 부모님이나 그 누구도 학교에 오지 않게 하였습니다. 소풍때도 운동회때도 하물며 졸업식때도..... 부모님도 선생님께 당하실까봐.... 학교를 다녀오신 이후 할머니께서는 가정통신문을 옆집에 가셔서 항상 묻곤 하셨답니다. 할머니가 육성회비를 못내신 이유는 어쩜 글을 몰라서 그랬을수도 있겠네요. 육성회비라는 단어는 국민학교 입학 한 저로서는 알 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요즘 교권이 흔들린다는 보도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교권이 이러했습니다. 내가 못나서 못살아서 그래서 죄인처럼 조용히 지낼 수 밖에 없고 행여 선생님이 가정방문 한다거나 중고등학교때는 진로상담 하신다고 부모님 모셔오라고 하면 세상 그만한 싫은 소리도 없었습니다. 이상 나의 학창시절....
마지막 부분의 글을 읽고, 저도 생각이 많이 나네요. 어릴때 부산 서면근처에서 살았고, 그때는 아주 가난했던 시절 학교 교사의 수준이, 지금과 비교하면 말이 안되는 수준이었지요. 저의 부모님은 제가 학교 다니던 1970년대 국민학교 6년동안 단 한번도 학교에 방문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두분다 시장에서 장사하신다고 바쁘게만 살았지, 돈은 없었던 시절인데, 대놓고 교사가 촌지를 요구하였고, 돈을 갖다주지 않으면 굉장히 불이익을 받곤 했던 시절이 많이 생각나네요. 시험을 쳐서 성적이 잘 나와도, 컨닝했다며 점수를 낮추어서 당시의 시험결과를 받아 왔던 시절도 생각이 납니다. 억울해도 선생님이 무섭기만 했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제이님 부모님의 말씀에 공감이 확 다가오네요.
73년생 남자입니다.
소름끼쳤네요.
오늘 낮에 회사 직원들하고 밥먹다 저 국민하고 2~3학년때
담임이라는 인간이 무식하게 때렸던거 말했더니 저보고 장난꾸러기였냐고 하길래
촌지 얘기를 했줬습니다.
다른 애들은 안맞고 저만 맞았는데 그 애들은 부모님이 학교에도 자주오고
담임한테 돈도 잘 갖다 받치던 사는집 애들이였다구요.
당시는 돈안주면 대놓고 이렇게 때리고 구박하고 하던 선생이라는 인간들이 많았다고 말해줬는데
갑자기 엔딩에 오늘 제가 했던 똑같은 멘트가 흘러나오네요 ㅎㅎ
선생같지 않은 선생들이 많았던 시대였지요 지금 세대는 상상도 못할 개패듯 패는 매질..... 하지만 정말 정말 존경스러운 스승님들도 많았다는.......
그때와 그전때 선생들 학생 스트레스푸는 목적으로 많이 때림 진짜선생님 같은 선생님들도 있었음 고등학교땐 반항해서 잘안때린 선생님들도 있었음ㅋㅋ
부자동네에 살았던 모양이네 ㅋㅋㅋ
오히려 없이 살던 동네에선 서로 없이 살아서인지 그런거 없었음 ㅋㅋ
참 정도껏 하자 ㅅㅂ
그런 시절이 있었죠.........지금 생각하면....말도 안되는 ... 그런데 지금도 말도 안되는 일들이 또한 많지요............세상은 늘 그런것 같네요....
다시 보니반갑습니다 영상 고맙습니다
매주 영상올라오는것만 기다립니다...항상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엔딩 곡이 항상 정겹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덕분에 대리만족 많이 하네요. 도시는
정말 한국브랜드가 정말 많네요.
몽골... 정말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
안녕하세요 😄 마지막 엔딩곡은 나의 전화기벨소리로 했습니다 오랜시간이 지났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조심해서 여행하세요 부산 남포동에서 응원합니다 ㅎ
반갑습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항상 건강 조심 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 오랜만에 sj스토리님식 에세이로 끝이 나네요.
너무 반가워요. 앞으로도 자주 많이 올려주세요~~
영상 많이많이 올려 주세요 ~ 🙏
영상이 다시 올라오니 반갑네요 ㅎㅎ
하루에 3개씩 업로드해서 2024년 영상도 보고싶네요 ㅋㅋ
앤딩곡과 SJ님의 속마음 글을 오랜만에 접하니 너무좋아요 몽골여행이 험난하네요 도로도 그렇고 도로질서도 그렇고 무대포네요
그래도 한국말하는 몽골분만나서 다행이네요 😊
보고싶었어요🎉
다시보니 반갑구먼~반가워요~ㅋ
오늘도 좋은 영상 잘 봤어요
안전하게 여행하시고 건강하세요
아 진짜 계속 영상 올라오니까 너무 좋아요❤
지구촌 어디를가도 잘생기고 푸근한인상 그리고 타의 모범이되는 인성이 뛰어나셔서
늘 환대받고 안전한 여행을 하시는듯 합니다..
태국 초창기 시절부터 봐왔지만.. 언제 어디서든 안전하고 꿈을 이루는 여행하시길 바람니다.. ^^
참 오랜만이에요! 예상대로 흘러가기만 하는 인생은 아니겠지만, 가시는 길 크고 작은 행복이, 끊임이 없길 바라요. 응원합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엔딩곡이 정감가고 좋습니다.항상 안전운전 안전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형님 마지막에 ..나혼자 그런 환경은 아니었구나..
감사합니다.
저도 비슷한 상처가 ㅎㅎ
한복판에서 라면 먹으려다 한국에사셨던 몽골분만난게 엄청 신기하네요 ㅎㅎ
형 영상 안올라와서 무슨일 생긴줄 알았어요 다행이 별일없으셨구만
영상 재미있게볼게요!
언제들어도 마지막 엔딩곡은 정겨워요
문제의 그 몽골이지만
열심히 볼께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안전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반가우신분이 오셨네요 마음으로 항상응원 드립니다
이 여행의 끝이 기다려 집니다.
행복을 선택하셔서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구요
응원합니다
몽골사람은 한국사람을 진짜 너무좋아한다! 저도 꼭 가보고싶네요^^안전여행!!!
몽골소도 k~라면이. 맛난걸 안다구요...ㅋ😂
올만에. 엔딩곡과 자막보니
옛날 영상들이. 생각이 나는군요^^
사실 인간미 느껴지는 엔딩곡과 스토리에 팬이 된지 벌써. 4년정도 되가는거같은데 예전에 s j로 돌아온거같아.방갑워요
요즘 영상도 자주 올라오고....짱!!^^❤
영상 자주볼수있으면 좋겟습니다.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 볼수있으면 좋겠어요.
다른 여행유튜버들 보면 몽골의 좋은 곳만 가서 그란가 와~ 날것을 보니 아직 편하게 여행갈 곳은 아닌거처럼 느껴져요.
동갑님 어딜가시든 꼭 건강하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시길 기원합니다!!!
몽탄신도시라고하는 몽골
저도 몸골 3번갔었는데
한국에서 일하다가 가신분들이 많아서 한국어 정말 잘합니다
몽골어 몰라도 어려운점이 거의 없었지요^^
형님 영상은 뭔가 계속 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기다리는 만큼 항상 잼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찍어둔 영상들 후딱 보고....
근래에 찍고있는 영상들 보고싶네요..^^*
그리고....대충보고 대충 들은것들로...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댓글좀 안쓸수 없나....
형님 응원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
몽골인구가 347만명 입니다.
그중에 10%가 한국에서 일을하고 자국으로 돌아갔거나 아니면 한국에서 일을 하고있는 사람 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한국의 일머리방식을 배우고, 한국에 살면서 먹었든 음식을 많이 그리워 한다고 하네요.
오늘도 영상 잘봤습니다.😊
사람 인연이라는게 참 ㅎㅎㅎ 평원에서 라면끓여먹다 특별한인연을 만나게 되네요 ㅋㅋㅋ 인생은 알수없어 ~~~
2년전 이즈미르에서 만난 누나여요
다시 출국하셨네요
건강 잘 챙기면서 조심히 여행하셔요~~
저도 곧 남미여행 떠나요~~
형님 라면 후후 부실때 같이 후~~~후 불었습니다
소가 빨간색에 반응하네요 75년생 동기여 부럽부럽~
이 채널분 75년생이에요?
@@수정김-g5s 그럴거에요
라면 하나 드시기 힘드네요. 저번에도 폭설도로에서 라면 쏟아서 못먹었는데 ㅋㅋ 안전운전하세요 ㅎ
참 선생 자격도 없는 인간 많았죠!!
자기 기분 안좋아도 때리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차별대우 ~~밥 먹듯이 학생들 때리던 시절에 저도 학교를 다녔네요!!
진짜 이형은 인복은 타고났어
저 허허벌판에서 한국말하는 현지인이 와서 말걸어주는거 보면 진짜 인복은 최고같아요ㅎ
국민학교때 학교선생님들 모두 초대해 식사대접을 하고 (촌지는 당연했겠지..)
그런애가 반장에 줄곧 우등상을 받았다 그런데
고등학교때 혼자만 떨어지고 재수를 하더라..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니 국민학교1학년때 담임쌤이 생각나네요.
엄마는 절대 촌지 주지 않겠다고 생각하셨었는데.. 몇번이고 학교 갔다가 돌아온 제가 울면서 선생님이 나만 미워한다고.. 했데요.. 그리고 어느날부터는 선생님이 계속 너희 엄마는 학교에 한번 안오신다나? 하고 계속 물어본다고 엄마 학교 언제와? 했다네요
그 말들은 엄마가 결국엔 학교에 다녀가셨고.. (촌지를 주고 가셨다네요..)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그 후론 선생님이 잘해준다고.. 좋아했다고 ㅠㅠ
엄마가 학교왔다가 돌아가실때 엄마를 배웅하던 빨간 립스틱이 앞니에 묻은 상태로 활짝 웃던 쌤 얼굴.. 나이가 이만큼 먹도록 잊혀지질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진짜 믿지 못할 이야기네요 ㅋㅋㅋㅋ
다음 영상 기다릴게요! 건강 잘 챙기시고 늘 화이팅입니다!
엔딩곡 나와서 참 좋았어요~
그런시절마저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정겨운 엔딩~
초원에서 라면 먹방이라니? 맛은 더할나위 없었겠네요.
오랜만에 형님 엔딩 넉두리 감동입니다.. 앞으로 더욱 행복해질 형님 앞날을 기원합니다!
소 보다 자기가 더 놀람 ㅋㅋ 너무 재미있어용 ㅋ
항상 응원합니다.
J님이랑 갑장이고 마산제일여고 출신인데 초딩때 어린 우리들을 성추행했던 쓰레기들도 많았어요
이름도 안까먹고 있어요
이름이 특이했던 선생이라 네이버고 머고 이름 검색도 해봤는데 안나오더군요
엔딩장면에서 어렸을적 경험한 학교에서의 부당한 대우를 보며 지금은 30살이 넘은 나의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때가 기억이 난다. 늙수구레한 담임이 좀 살만하게 보이는 아이들의 엄마들을 불러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을시키고 무언의 압력을 주자 우리집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엄마들이 촌지를 준 모양이었다. 그때문에 우리 큰아이가 시달리고 집사람이 허구한날 불려다니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해 이사를 가버린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게 흔한 일이라 어디 다불평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던 시절이었다.
나도 오십이 넘었지만 그때 그시절은
참 황당하지만 당연했던 일들.
지금의 시대가 어쩌면 더 상상이 안 되는 시기인 것 같네요.
여행 조심해서 다니세요~^^
승요차 어째 갈수록 위태위태하다 어딜가던 건강 안전운전하자규^^!!
시베리아 가면서 라면업을때도 있더만 ㅋㅋ 몽골서 날씨가 좋아서 라면 잘 끓이네 ㅎㅎ 건강하고 안전이 최고,
드뎌오셨네요😂
와 기다리던 분이 영상 올리니 정주행 중 잼있어요
*소가 목이 말랐네…. 몽골도 이렇게 변하고 있고 사람들도 변화되는중…. 다음편이 궁금해짐* 😊
와 형님 앞전 영상 엔딩bgm 요청했는데 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ㅎㅎㅎ
추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문제의 그 몽골인데.... 일단 잘보겠슴다!
배변봉투 이야기 정말 공감 합니다 지금 생각 하면 그때 자격 없는 선생들이 많았습니다 소풍시 선생님 도시락 스폐셜 싸오는 친구 대우가 너무 달랐지요 전 제 도시락도 못가지고 갔는데
이 후렴노래랑 주저리주저리 옛날 얘기하는게 난 왜케 좋을까? ㅋ
항상 안전하소
늘 응원합니다
휴~ 잘보고 갑니다.
우르르르르르를 ㅋㅋ 내배꼽ㅋㅋㅋㅋㅋㅋ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네요,,
애구 라면 땡겨라,,ㅋ
전에 러시아 갈때는 귀여운 고양이가 다가 왔었는데 이번에는 몽골 들판에서 소가 다가 오네요 ㅎㅎ
50이세요? 헐 개동안 ㅋㅋ 저는45인데 저도 학창시절 미친듯이 맞은 기억이 중학교때 친구랑 노트에 서로 낙서하면서 애기좀 했다고 불려나가서 노트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땀 후들겨맞고 교탁에 있는 미끄허지지말라고 끝에 붙여놓은 고무 뜯어서 채찍처럼 팔뚝 떼리고 발로 걷어차서 교실 끝까지 밀고 옆에 있던 밀대 발로 부셔서 무릎 꿇게 하고 허벅지 위를 밀대로 떼리고 생각해보면 참 다양하세 한순떼렸네요 ㅎㅎ 이름도 아직 기억남 그선생 옆에 고등학교 갔는데 아직도 중학교 선도 선생 했고 있던데 어느날 안보이길래 촌지 너무 쳐먹어서 짤렸다는.. 그시절 진짜 아직도 그놈 얼굴은 기억납니다. 트라우마로 오죽했으면 패닉이 벌레라는 노래를 만들었을까요. 그런 시대에 살았지만 참 성격 조아 보이시고 마음이 좋아 보이셔서 좋습니다^^
동갑내기 승재씨 다시보니 반갑네요
어딜 가시든 행운만 있길....화이팅!!!
저와 동갑이신데... 마지막 영상보고.. 예전에 진짜 선생님 자격 없는 분들 많았죠.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엔딩 음악+엔딩 나레이션 중에서,, 엔딩 음악이라도 다시 듣게 되어 좋네요...서서히,,엔딩 나레이션도 다시 살려주세요...
몽골영상 꽤 봐왔는데 도로사정을 볼때
세단으로 여행하기는 쉽지않을듯.
예전엔 참 못된 선생도 많앟던 기억이 저도 있네요.
조만간 곧 행복이천만개가 쏟아질겁니다
대단한 열정에 갈채를보내드리고싶네요~항상건강과무탈을기원합니다~!!!!
😭😭
여기 몽골여행에서 차사고가 났었군요. 영상에서 몽고분이 울란바톨에서 차조심하라는 주의가 웬지 차사고의
퍼즐 조각처럼 들리는군요. 1년전 영상이지만 궁금하고 재미가 기대됩니다.
17:00 그때 그 시절에는 왜그렇게 폭력을 썼는지 우울한 시대였어요😢
아~ 행님~ 진짜!!!
오랫만에 들어보는 엔딩곡 에
정겨움이랑 그리움이
사무치네 😢
어무이~~~😂
드디어 오셨군요
태국 오지 일주 해주세요 ㅎ ㅎㅎ
몽골이 고구리의 후손
고구리->발해->대요->대금->대원->대청
저 역시 기억나는 은사가 별로 없네요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 말이라고 선생님 말이라고
다 옳은건 아니니까 아나라고 생각들땐 참지말고 대항하라고
어릴때부터 교육시켰네요 ㅋㅋㅋㅋ
와 몽고행님 한국분인데 몽고사람이라고 하시는건 아닌가요 너무 유창하시고 뭐가 어떤지 다알고 계시네요 놀란...ㅎ
당신은. 정말 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최고!!!!!
몽골에 승용차를!!!다른 여행유투버보니 울기에서 러시아 넘어갈때 길이 상당히 험하던데,,,,걱정입니다.
옛 지프 라면 장면 생각 나네요 ㅋㅋㅋㅋㅋ
국민학교...세월의 흔적이 ㅎ
들판에서. 라면이라.....맛이 죽여줘게네요^^*
더 길~~~~~게 많~~~~~이요!!!
저도 국민학교 6학년때 담임에게 이유없이 빰을 대여섯대 맞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선생같지 않은 선생들이
꽤 많은 시절이었죠. 부모님에게도 안 맞아 봤는데... 그때 맞은 일이..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1970년생이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아이가 태어난 해 라고 하네여. 그리고 그 세대는 많은 경쟁을 거쳤다하네요.
물론 저도 그 세대이긴 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께 제가 관심을 받지 못한것이 부모님의 촌지 였다는 생각이 비로소 드네요.
어느 누구는 제가 공부도 못하거나 미운짓을 했겠지 반문 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가만히 50이 넘은 나이에 그때를 떠올려보면 승재님과 같은 경우가 많았고 더욱이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저로서는 할머니가 선생님 앞에서 육성회비를 제 기간에 내지 못해 머리를 조아리고 선생님의 삿대질이 아직도 선명 합니다.
시골에서 부모님 대신 저를 케어해주시기 위해 오셨던 할머니는 육성회비 내는 것을 미쳐 몰랐을뿐이였고 선생님 호출에 학교에 찾아오신 할머니의 허리굽은 모습에 선생님은 마치 죄인 다루듯 하고 할머니는 행여 나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가셨던....그 다음 부터는 육성회비 내는날이면 어린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위생점검 있는 날이면 손톱이 짧고 비누로 씻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사마귀가 있다는 있으로 자로 손등을 날로 내리치셨던 선생님.
집에 돌아와서 사마귀를 이빨로 물어 뜯고 또 손톱깍이로 피부를 자르면 땀구멍에서 피가 방울방울 솟구쳐 멈추지도 않아 자르고 또 자르고....아직도 선명하네요.
폐지 제출 하는 날이면 한뼘씩 제출 하라던 선생님이 무서워 용돈을 모아 신문지를 사서 냈던 기억이.....
그 이후 어린 마음에 저는 부모님이나 그 누구도 학교에 오지 않게 하였습니다. 소풍때도 운동회때도 하물며 졸업식때도.....
부모님도 선생님께 당하실까봐....
학교를 다녀오신 이후 할머니께서는 가정통신문을 옆집에 가셔서 항상 묻곤 하셨답니다.
할머니가 육성회비를 못내신 이유는 어쩜 글을 몰라서 그랬을수도 있겠네요. 육성회비라는 단어는 국민학교 입학 한 저로서는 알 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요즘 교권이 흔들린다는 보도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교권이 이러했습니다. 내가 못나서 못살아서 그래서 죄인처럼 조용히 지낼 수 밖에 없고 행여 선생님이 가정방문 한다거나 중고등학교때는 진로상담 하신다고 부모님 모셔오라고 하면 세상 그만한 싫은 소리도 없었습니다.
이상 나의 학창시절....
에허....그래도 잘 헤쳐나오셨습니다 😢
이형의 정체가 궁금함... 오랜동안 잠수타다 또 다시 나타났는데 태국(?) 자막이 새롭게 있네요. 이게 태국 글자인진 모르나... 다른나라 자막 국적의 여자랑 뭔가 있는듯.... 조만간 이자막 국적 여친이 등장할듯.....
ㅋ
11일전 영상 댓글에 근황 적어 놨어요 맞습니다 태국서 좋은 인연 만났데요
이 동생은 마지막 글만 모아서 책으로 내도 되겠네.. 정말
촌지... 저도 똑같은 경험 했어요ㅠㅠ 보이스카웃도 부자집 자녀들의 전유물이었던 시절. 당시 선생들을 절대 은사라 부르지 않고 장례식도 한번도 안갔어요.
❤❤❤
개발 더 하고 조금 더 지나면 자기들도 느끼니깐 질서가 바뀔거라 봅니다.몽골도 성질머리가 우리랑 비슷하니 길도 닦고 교육도 할거고 뭐 차막히는 도로를 매일 겪으면 좋아질 성격도ㅎㅎ...
마지막 멘트가 옛날을 기억나게 합니다.
없던 시절이었지만 나름의 우리네 삶엔 도덕과 양심이 살아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너나 없이 물질만능의 가치가 범람하는 현재와 비교해서.
(도덕,양심 같은 얘기는 꼰대의 가치로 인식되어 버리는..)
영상 감사합니다!
소가 물을 먹고 싶었나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