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사는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후향적 연구를 통해 말할 수 있는거죠. 당시대 살던 사람들의 생각은 현재사는 우리와 다를 수 밖엔 없습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조선의 모든 민중이 동학세력을 지지한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동학농민군을 반란군 , 조선 왕조 체제 전복을 목표로 한 역도로 여긴 민중들도 다수 존재했습니다. 단순히 기득권자들만 동학농민군을 역도로 본게 아닙니다. 일제에 순응했다면 누릴 부귀영화와 기득권 포기하고 독립운동에 모든것을 바쳤던 안중근 의사도, 감옥에서 저술했던 안응칠 역사에서 동학농민운동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운명이 위태로워 졌다고 비판합니다. 동학농민군의 태생적 한계, 좋게 표현해서 아래에서 부터의 개혁 의지표출 이고 냉정히 말하자면 특정 종교에 기반 한 무지랭이 민중들의 통제 안되는 분노표출로 인해, 동학농민군이 예상도 못했던 결과들(고종의 요청으로 청,일군의 조선 출병 및 주들)이 초래됐고, 이로 인해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며 조선 멸망이 비가역적인 상태로 이어지게됩니다. 딱 현재 중동지역의 이슬람 반군, 탈레반 알카에다 isis 수준이었던것.
[청정심(평기허심) 박치우]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역사는 겨레의 정신이다 바른 정신을 가져야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바른 역사를 가져야 겨레가 바르게 살아간다 한겨레의 말과 글과 역사는 반드시 공부해야 하고 평생 공부해야 한다
안중근의사님은 일제의 행동을 반대하신거죠 좀 까내리려하지마세요 동학은 대부분 백성들이 먹고 살기힘드니 고종민비를 끌어내리자였고 안중근님은 반란은 허용하지않으나 동양의 한중일이 힘을 합쳐 동양의평화를 이루고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하자는 사상이였지만 일본은 정복하고자 했기때문에 일제에 맞서싸우신걸 동학과 안중근의사님을 비교 선상에 두지마세요
어떤 역사학자들은 실학/서학이 성공했다면 우리나라 근대화의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라고 하던데,, 차라리 그 가설이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이 되네요. 동도서이 (동양의 정신/서양의 기술) 이라는 말을 가지고 예를 들면. 실학/서학이 서도서이의 노선에 있었고, 서구와 접점이 지속되었다면 증기기관등의 산업혁명시대에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물론 가능성의 문제이지만... 19세기 개혁 운동은 동도서이를 표방했었고, 한계가 있었고... 동학운동은 개화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연관을 지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학에 반대하여 일어난 동학은 서구 문물을 배척했고 굳이 표현을 한다면 동도동이의 위치에 있는 것 같은데... 최제형/최시우는 무력 운동에는 반대했었고, 전봉준이 단독으로 일을 벌였었는데, 외세에 반하자는 그 애국심에는 공감이 가지만,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나! 라는 마음이 드는 시대인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결국 조선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왕과 양반들이 원인제공자인 것은 맞지만... 메이지 유신과 비교를 하시는 것은 동학보다는 실학운동에 더 비교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의 발전이 늦었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발맞추어 식민지 경쟁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조선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지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님 말에 약간 제 생각을 보태자면, 동학이 성공햇어도 혼란상태가 계속 되엇을꺼 라고 봄. 기존정치체제가 무너지면 대안을 쉽게 찾기가 힘들다고 봄. 조선이 합병되고 나라를 잃고 지식인들이 어떻게 행동햇냐를 보면, 누군 중국 국민당에서 찾고자 한 사람도 잇고, 누군 소련에서 찾고자하는 사람이 잇고, 누군 미국에서, 누군 일본에서, 이처럼 여러체제를 찾아서 흩어졋음. 그것만 봐도 동학이 성공해서 조선체제가 무너졋다고 해도 혼란이 발생해서 결국 조선은 누군가에 빼앗겻을 꺼임. 결국 동학의 의미는 심하게 말하면 정신승리임.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성공한 여러요인중에 가장중요한 이유가 서양문화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엿다는 거라고 봄. 선택적 받아들임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받아들이겟다는 정신이 지식인들이게 일치되지 않앗나 생각함. 무조건적인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겟다는 정신이 일본을 결국 성공하게 만들엇고, 선택적이고 자주적인 방식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겟다는 생각을 한 중국과 조선은 실패햇음. 자주적이라는 말은 듣기는 좋은데, 그게 모든 답은 아니라고 봄. 이제 한국이 선진국이 되니 역사마사지를 할려는 경향이 보임.
@@pollpoll3594 동학이 성공했더라면 미래가 더 나았을 것이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역사에 가설은 없지만, 동학이 성공했더라면 더 어지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차라리 실학/서학이 성공했더라면, 조선의 왕정과 양반사대부들이 조금씩 문을 열었을 수 있었더라면, 더 근대화에 가깝지 않았겠나 저또한 가설일 뿐이지만, 가능성을 놓고 비교를 하면 그렇지 않겠나 하는 겁니다. 조선시대에 왕권이 너무 쎘기에, 실학/서학은 그들의 눈에 도전세력으로 보였기에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았겠지만. 일본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메이지 유신은 당시 천황이라는 허수아비에 막부들의 세력 다툼에서 어느정도의 자기 권리포기가 있었던 상황으로 알고 있는데... 운도 따랐고, 그시대 사람들의 의식도 어느정도 있었고... 일본 역사를 깊히 공부해 보지는 않아서... 아니면 죄송합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 조선은 왕권위주에 포기는 곧 멸망이라는 생각에 개화의 바람이 너무 늦어져 버린 것이 아닌지. 역사 마사지에 저도 그리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민족이라 생각하지만, 민족주의는 실제 상황을 기반으로 해야하지, 가설은 가설일뿐.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나! 라는 우리나라 백성들의 민생고, 애국충정은 높히 기립니다.
동학이 성공했다면 어지러울 수 있으나 1984이후 1945광복 전까지 일본이 빼앗아간 60년정도의 기간이 면 어느정도 안정기가 되었을 수 도 있음 적어도 남북전쟁은 안일어났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만 공산주의가 됐을지 민주주의가 됐을진 모르죠 대부분의 분단국가가 2차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재밌는 말이긴 하네요 실학과 메이지 유신의 비교라 중체서용, 구본신참, 화혼양재 말들은 다르지만 한, 중, 일이 다 본인들 문화 바탕에 서구의 문화를 받는다는 생각은 한결 같은데 결과가 이리 다른건 분명 데지마 섬을 매개로 한 서구의 정보를 빠르게 흡수한 일본의 역량덕이겠죠
늘 흥미진진한 역사이야기, 너무 감사합니다. 심쌤 동영상은 늘 ~~~ 정주행 ❤❤
현재 사는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후향적 연구를 통해 말할 수 있는거죠.
당시대 살던 사람들의 생각은 현재사는 우리와 다를 수 밖엔 없습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조선의 모든 민중이 동학세력을 지지한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동학농민군을 반란군 , 조선 왕조 체제 전복을 목표로 한 역도로 여긴 민중들도 다수 존재했습니다.
단순히 기득권자들만 동학농민군을 역도로 본게 아닙니다. 일제에 순응했다면 누릴 부귀영화와 기득권 포기하고 독립운동에 모든것을 바쳤던 안중근 의사도, 감옥에서 저술했던 안응칠 역사에서 동학농민운동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운명이 위태로워 졌다고 비판합니다.
동학농민군의 태생적 한계, 좋게 표현해서 아래에서 부터의 개혁 의지표출 이고 냉정히 말하자면 특정 종교에 기반 한 무지랭이 민중들의 통제 안되는 분노표출로 인해, 동학농민군이 예상도 못했던 결과들(고종의 요청으로 청,일군의 조선 출병 및 주들)이 초래됐고, 이로 인해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며 조선 멸망이 비가역적인 상태로 이어지게됩니다.
딱 현재 중동지역의 이슬람 반군, 탈레반 알카에다 isis 수준이었던것.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대사는 "심용환" 선생님!!
[청정심(평기허심) 박치우]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역사는 겨레의 정신이다
바른 정신을 가져야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바른 역사를 가져야 겨레가 바르게 살아간다
한겨레의 말과 글과 역사는 반드시 공부해야 하고 평생 공부해야 한다
정치개혁, 경제개혁, 근대화 그 무엇도 목표하지 않았음
2차봉기때 동학농민운동을 도와주는 관군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관군도 멍청해 일본군이 왕을잡아놨는데 일본군편들어서 동학농민운동 학살하내 에휴.....ㅠㅠ
동학농민혁명은 김개남 장군의 주장 처럼 전주 점령하고 한양으로 가서 이씨왕가를 끝장내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 했어야 했습니다
근왕파 전봉준이 아니라 혁명파 김개남이 동학을 완성시켰어야 했는데 아쉬운 혁명이죠
근데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바로 부강해진건 아니긴하죠
A.D 1877년 세이난 전쟁을 벌여 내전을 치른거 보면 일본도 이때까진 문제가 많았죠
그저 이런 문제투성이 일본에게도 속수무책으로 일방적 불공정 조약을 체결한 조선도 참............에휴
가나다님이 얘기한 부분은 평민 출신 김개남포에서 나온 현상입니다이걸 동학혁명 전체에서 일어난 걸로 볼 순 없습니다이건 팩트입니다
안중근 의사도 동학 토벌 한거 아시죠?
맞아! 근데 이얘기하면 친일파로 몰림. 사실이라도 하면 안되는 역사가 우리나라에는 있음
박근혜, 김정일에 편지 공개…“위원장님의 건강을 기원”
안중근의사님은 일제의 행동을 반대하신거죠 좀 까내리려하지마세요 동학은 대부분 백성들이 먹고 살기힘드니 고종민비를 끌어내리자였고 안중근님은 반란은 허용하지않으나 동양의 한중일이 힘을 합쳐 동양의평화를 이루고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하자는 사상이였지만 일본은 정복하고자 했기때문에 일제에 맞서싸우신걸 동학과 안중근의사님을 비교 선상에 두지마세요
동시에 그 안중근의 아버지도 동학을 진압해도
그 동학인이였던 김구를 숨겨주고 보호한건 왜 언급하지 않은지 몰라요들
동학운동 중에서 잔혹하게 주민들을 학살하고 ㄱ간한 사례들도 많은데, 이것들에 대해서도 다뤘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뭐든지 명암이 다 있으니깐요.
6.25때 한국군에 의한 신천 대학살도 있지요.
이게 맞지. 그저 성역화해서 국뽕으로 역사 배우는 것보다 다각화로 배워야함
그리고 전봉준 친척 전정훈은 백도교 라는 사이비 종교를 만들죠
이용민의 동학 농민운동!!! 최..최용민인가???
1894년 갑오 동학혁명을 근왕주의 한계로 보는 건 전형적인 근대주의식 역사 해석으로 봅니다전봉준 장군도 명사들에 의한 합의법으로 정치 체제를 지향했습니다단순한 근왕주의로 보는 건 역사에 대한 무지라고 봅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광화문광장에
왕이나 장군이 아니라, 전봉준과 김구의
동상이 세워지는날이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한국인의 위상일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김구 ㅋㅋㅋㅋㅋ
런승만 풍맞은 늙다리나
만주국 거기다 빨고 동포를 때려잡는 매국노 선엽쨩과 바크정희짜응
군인의 신분을 망각한 권력의 도야지 두환이 보단
김구가 낫지 않나요?
뭘 좀 빌드업 하실려는거 같은데 동학농민운동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가 아닌 기존의 질서로 회복하자입니다 지도자 전봉준도 근왕을 외쳤구요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유리한 근거만 제시하는 제2의 황현필이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메이지 유신도 근왕이 기치인데 이것도 기존 질서로 복귀인가요? 근왕을 내 걸었어도 당시 기득권에 저항하려고 했던 개혁적 성격이 분명한 운동이었죠
오호 논쟁 나오나요~~
뭔 뚱단지 같은 소리하고 있네요. 기본 질서 구축이고 아래로 부터의 만민평등을 기초로 신분에 상관 없이 평등한 기회를 가지고 기존 사회를 개혁 하자를 토대로 일어난 운동을 어디서 이상한 영상들이나 쳐보고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네요.
메이지유신도 천황복귀가 핵심사안인데 그럼 그것도 구질서 복귀인지는 잘모르겠네요
@@갓동-h1m 메이지 유신은 막부를 타도하기 위해서, 천황제를 이용했다 봄이 정확하지 않을까요?
이후 토막파의 행적을 보았을때 말입니다. 그에 비해 동학은 토막파와 같은 선진서구문물에 대한 인식도 없었습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실학/서학이 성공했다면 우리나라 근대화의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라고 하던데,,
차라리 그 가설이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이 되네요.
동도서이 (동양의 정신/서양의 기술) 이라는 말을 가지고 예를 들면.
실학/서학이 서도서이의 노선에 있었고, 서구와 접점이 지속되었다면 증기기관등의 산업혁명시대에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물론 가능성의 문제이지만...
19세기 개혁 운동은 동도서이를 표방했었고, 한계가 있었고...
동학운동은 개화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연관을 지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학에 반대하여 일어난 동학은 서구 문물을 배척했고 굳이 표현을 한다면 동도동이의 위치에 있는 것 같은데...
최제형/최시우는 무력 운동에는 반대했었고, 전봉준이 단독으로 일을 벌였었는데,
외세에 반하자는 그 애국심에는 공감이 가지만,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나! 라는 마음이 드는 시대인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결국 조선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왕과 양반들이 원인제공자인 것은 맞지만...
메이지 유신과 비교를 하시는 것은 동학보다는 실학운동에 더 비교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의 발전이 늦었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발맞추어 식민지 경쟁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조선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지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님 말에 약간 제 생각을 보태자면,
동학이 성공햇어도 혼란상태가 계속 되엇을꺼 라고 봄.
기존정치체제가 무너지면 대안을 쉽게 찾기가 힘들다고 봄.
조선이 합병되고 나라를 잃고 지식인들이 어떻게 행동햇냐를 보면,
누군 중국 국민당에서 찾고자 한 사람도 잇고, 누군 소련에서 찾고자하는 사람이 잇고, 누군 미국에서, 누군 일본에서,
이처럼 여러체제를 찾아서 흩어졋음. 그것만 봐도 동학이 성공해서 조선체제가 무너졋다고 해도 혼란이 발생해서 결국
조선은 누군가에 빼앗겻을 꺼임. 결국 동학의 의미는 심하게 말하면 정신승리임.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성공한 여러요인중에 가장중요한 이유가 서양문화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엿다는 거라고 봄.
선택적 받아들임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받아들이겟다는 정신이 지식인들이게 일치되지 않앗나 생각함.
무조건적인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겟다는 정신이 일본을 결국 성공하게 만들엇고,
선택적이고 자주적인 방식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겟다는 생각을 한 중국과 조선은 실패햇음.
자주적이라는 말은 듣기는 좋은데, 그게 모든 답은 아니라고 봄.
이제 한국이 선진국이 되니 역사마사지를 할려는 경향이 보임.
@@pollpoll3594
동학이 성공했더라면 미래가 더 나았을 것이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역사에 가설은 없지만, 동학이 성공했더라면 더 어지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차라리 실학/서학이 성공했더라면, 조선의 왕정과 양반사대부들이 조금씩 문을 열었을 수 있었더라면,
더 근대화에 가깝지 않았겠나 저또한 가설일 뿐이지만, 가능성을 놓고 비교를 하면 그렇지 않겠나 하는 겁니다.
조선시대에 왕권이 너무 쎘기에, 실학/서학은 그들의 눈에 도전세력으로 보였기에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았겠지만.
일본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메이지 유신은 당시 천황이라는 허수아비에 막부들의 세력 다툼에서 어느정도의 자기 권리포기가 있었던 상황으로 알고 있는데... 운도 따랐고, 그시대 사람들의 의식도 어느정도 있었고...
일본 역사를 깊히 공부해 보지는 않아서... 아니면 죄송합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 조선은 왕권위주에 포기는 곧 멸망이라는 생각에 개화의 바람이 너무 늦어져 버린 것이 아닌지.
역사 마사지에 저도 그리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민족이라 생각하지만,
민족주의는 실제 상황을 기반으로 해야하지, 가설은 가설일뿐.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나! 라는 우리나라 백성들의 민생고, 애국충정은 높히 기립니다.
동학이 성공했다면 어지러울 수 있으나 1984이후 1945광복 전까지 일본이 빼앗아간 60년정도의 기간이 면 어느정도 안정기가 되었을 수 도 있음 적어도 남북전쟁은 안일어났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만 공산주의가 됐을지 민주주의가 됐을진 모르죠 대부분의 분단국가가 2차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user-ml7vm3lc1y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가 있을까요?
동학이 성공했다 한들 주변 국가와의 국력차이는 그대로인데...
전세계적으로 식민지를 두고 경쟁했던 제국주의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동학이 성공했다 한들...
제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재밌는 말이긴 하네요
실학과 메이지 유신의 비교라
중체서용, 구본신참, 화혼양재
말들은 다르지만 한, 중, 일이 다 본인들 문화 바탕에 서구의 문화를 받는다는 생각은 한결 같은데
결과가 이리 다른건 분명 데지마 섬을 매개로 한 서구의 정보를 빠르게 흡수한 일본의 역량덕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