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인당 1년 평균 소득이 2~3천 달러 하던 당시에 카라얀은 하루에 그 돈을 벌었다고도 합니다. 카라얀처럼 수십년간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끈 사람은 각각 50년간 자신들의 오케스트라를 장악한 빌렘 멩겔베르크나 예프게니 므라빈스키가 있죠. 사실 그 시기에는 많은 지휘자들이 거의 종신급 상임으로 활동 했습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죽을때까지 맡았던 조지 셀도 24년 동안, 건강문제로 퇴임한 라파엘 쿠벨릭도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18년간 지휘했죠. 그 외에도 사례가 많습니다. 카라얀은 자신의 재임기 23년째(1978~79년) 전후로 척추수술 등의 문제로 건강이 악화되자 몇몇 동료, 후배 지휘자들에게 후임을 제안 했지만 그들이 거절하는 바람에 불발 된 적이 있지요. 종종 카라얀이 독선적이라고 생각되는 때가 많지만 카라얀은 베를린 필 단원들과의 독선적인 행동에서 불화가 있었던 것일 뿐 동료 지휘자나 대부분의 음악가들과는 관계가 무난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도 80년대에 들어서서 급격히 사이가 나빠진 것이지 사이가 그 전에는 좋았습니다. 그 시기에 번스타인이 카라얀을 만난 사석에서 "베를린 필이 카라얀 당신 말을 안듣는 걸 보면 베를린 필은 별로다" 라고 해서 카라얀을 기쁘게 한 일도 있죠.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카라얀의 집을 방문 했을때도 대처가 카라얀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겠다라고 하자 카라얀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대답했다죠. 녹음 현장에서도 카를 뵘 같이 매우 밀접한 관계의 선후배에게서 들었던 농담이나 일화를 언급한 적도 많지요. 카라얀은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지만 그는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일찍이 녹음 산업, 영상 산업에 눈을 뜨고 남들 보다 더 빠르게 뛰고 도전적인 정신으로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그것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위상을 세계 최고급으로 끌여 올렸으며 자신의 인기를 독보적으로 구축했다는데서 와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그저 남보다 더 뛰어나고 더 인기가 많고 더 재산이 많았을 뿐 그는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누구든지 원만하게 지내며 동료 선,후배 지휘자들과 서로 조언을 해 왔으며 자신이 믿고 함께하는 연주자나 성악가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단원들이나 레이블사 녹음장에서도 서슴없이 아재개그나 농담을 하는 평범한 성격의 지휘자였답니다.
몇번씩 다녀왔습니다. 거기는 와세다 대학 동아리 오케스트라가 자주 와서 성묘할 곳이기도 유명하죠. 동아리 초보오케스트라 지만, 카라얀이 79년에 지도했고 지금도 빈필 악우협회 홀과 베를린 필 홀에서 정기연주회를 할정도 군요. 그의 묘지는 1986년에 아내에게 말한 뜻을 에리에테가 따른겁니다. 잘츠브르그 시청에서는 그를 위해 성대한 묘지를 제공한다고 했으나,(1989.7.16 곧바로 비서에게 연락이 옴) 남편 뜻을 따르기 위해 동네 성당에 작게 모신거죠. 당시 SONY 회장이 그의 묘지 뜻까지 직접 들어 기록에 있습니다. 절대로 지자체들이 제공할 묘지등은 받아드리지 말고 모두 거절해라. 동네 성당에 묻여라. 너가 그렇게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1986아내와의 대화를 SONY회장이 들음) 일본에서는 대대적으로 그렇게 보도되었죠. 그가 사망하는 순간도 SONY회장과 있었다는 것도 한국에서 알려져 있지 않더라구요. 거의 나치당출신이니 독재니 이런 부분에만 관심이 있어서인지. 아쉽습니다. 레코딩의 판매 이유는 단순 녹음이 아니고 편집 과정까지 그가 개입해 사운드를 그가 다 손을 대서 소리가 좋다는 소문이 난부분이 공헌이 큽니다. 그의 당시 PD나 디렉터들이 Karajan과 같이 음향 조정하는 추억을 말하더군요. Karajan는 친일가 이기도 했지요. 일본 공연시는 미국보다도 많은 일본전국투어를 했었죠. 시골농가주택까지 빌려 하루 지내고 일본역사와 근대 /근세 역사에도 아주 밝았습니다. 유일 일본공연시 기부도 했었고 대단했습니다. 일본체류시 거의 3주이상 있었습니다. 그의 묘지는 카라얀의 뜻대로 이뤄진것이니 그점 아시면 도움될듯합니다. (참고로 저는 재일교포입니다.88년 중학생때 일본공연에 카라얀 비창을 들었습니다. )
카라얀이 Anif에서 태어 났다고요? 누가 그래요?? 카라얀 생가는 잘츠부르크 시내 한가운데 Markartplatz에 있습니다 . 은행 옆 , 영상의 동상이 있는 집입니다. 음악가를 숭상 하시는 것은 좋은데 과장이 심하시네요. 아니프는 카라얀의 저택이 있던 잘츠부르크 근교 마을입니다. 살던 동네 교회 묘지에 묻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한국과 달리 오스트리아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사람도 묘지를 크기 쓰지 않습니다 .
@@classicalmusictraveller3007 답글 고맙습니다. 제가 알기에 그리고 공식적으로 카라얀의 출생은 잘츠부르크인데요. 말씀하신 아니프(Anif)는 잘츠부르크 주의 잘츠부르크 옆에 있는 독립적인 조그만 동네(Gemeinde)이구요. 결과적으로는 잘츠부르크 시는 아니지요. 아시다시피 카라얀생가도 질츠부르크 시내 자허호텔(Sacher Hotel Salzburg) 옆에 있지요. 물론 묘지는 아니프에 있구요. 저는 그 점을 말씀드린겁니다. 혹 제가 잘못 알았다면 말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미국 1인당 1년 평균 소득이 2~3천 달러 하던 당시에 카라얀은 하루에 그 돈을 벌었다고도 합니다.
카라얀처럼 수십년간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끈 사람은 각각 50년간 자신들의 오케스트라를 장악한 빌렘 멩겔베르크나 예프게니 므라빈스키가 있죠. 사실 그 시기에는 많은 지휘자들이 거의 종신급 상임으로 활동 했습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죽을때까지 맡았던 조지 셀도 24년 동안, 건강문제로 퇴임한 라파엘 쿠벨릭도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18년간 지휘했죠. 그 외에도 사례가 많습니다.
카라얀은 자신의 재임기 23년째(1978~79년) 전후로 척추수술 등의 문제로 건강이 악화되자 몇몇 동료, 후배 지휘자들에게 후임을 제안 했지만 그들이 거절하는 바람에 불발 된 적이 있지요.
종종 카라얀이 독선적이라고 생각되는 때가 많지만 카라얀은 베를린 필 단원들과의 독선적인 행동에서 불화가 있었던 것일 뿐 동료 지휘자나 대부분의 음악가들과는 관계가 무난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도 80년대에 들어서서 급격히 사이가 나빠진 것이지 사이가 그 전에는 좋았습니다. 그 시기에 번스타인이 카라얀을 만난 사석에서 "베를린 필이 카라얀 당신 말을 안듣는 걸 보면 베를린 필은 별로다" 라고 해서 카라얀을 기쁘게 한 일도 있죠.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카라얀의 집을 방문 했을때도 대처가 카라얀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겠다라고 하자 카라얀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대답했다죠.
녹음 현장에서도 카를 뵘 같이 매우 밀접한 관계의 선후배에게서 들었던 농담이나 일화를 언급한 적도 많지요. 카라얀은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지만 그는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일찍이 녹음 산업, 영상 산업에 눈을 뜨고 남들 보다 더 빠르게 뛰고 도전적인 정신으로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그것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위상을 세계 최고급으로 끌여 올렸으며 자신의 인기를 독보적으로 구축했다는데서 와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그저 남보다 더 뛰어나고 더 인기가 많고 더 재산이 많았을 뿐 그는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누구든지 원만하게 지내며 동료 선,후배 지휘자들과 서로 조언을 해 왔으며 자신이 믿고 함께하는 연주자나 성악가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단원들이나 레이블사 녹음장에서도 서슴없이 아재개그나 농담을 하는 평범한 성격의 지휘자였답니다.
좋은내용의 글 감사합니다.
전설의 카라얀.정말 멋지고 대단한 지휘자며 음악가였습니다.
초등학교때 피아노 학원에 사진이 걸려있던 기억이 납니다. 알고보니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시더라고요
이런 엄청난 역사에남을 대 음악가가 젊은 조수미에게 격찬과 감탄을했다는게 놀랍습니다
조수미씨는 충분히 칭찬받을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클래식에서 행복하세요.
그러나 조수미 선생님이 카라얀에게 인정 받은 수많은 음악가들 중 한 명이라는것을 간과해선 안되겠죠.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관심 감사합니다^^
제가 여행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잘츠부르크 가보고 싶습니다
네,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몇번씩 다녀왔습니다. 거기는 와세다 대학 동아리 오케스트라가 자주 와서 성묘할 곳이기도 유명하죠. 동아리 초보오케스트라 지만, 카라얀이 79년에 지도했고
지금도 빈필 악우협회 홀과 베를린 필 홀에서 정기연주회를 할정도 군요.
그의 묘지는 1986년에 아내에게 말한 뜻을 에리에테가 따른겁니다. 잘츠브르그 시청에서는 그를 위해 성대한 묘지를 제공한다고 했으나,(1989.7.16 곧바로 비서에게 연락이 옴)
남편 뜻을 따르기 위해 동네 성당에 작게 모신거죠. 당시 SONY 회장이 그의 묘지 뜻까지 직접 들어 기록에 있습니다.
절대로 지자체들이 제공할 묘지등은 받아드리지 말고 모두 거절해라. 동네 성당에 묻여라. 너가 그렇게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1986아내와의 대화를 SONY회장이 들음)
일본에서는 대대적으로 그렇게 보도되었죠.
그가 사망하는 순간도 SONY회장과 있었다는 것도 한국에서 알려져 있지 않더라구요. 거의 나치당출신이니 독재니 이런 부분에만 관심이 있어서인지. 아쉽습니다.
레코딩의 판매 이유는 단순 녹음이 아니고 편집 과정까지 그가 개입해 사운드를 그가 다 손을 대서 소리가 좋다는 소문이 난부분이 공헌이 큽니다.
그의 당시 PD나 디렉터들이 Karajan과 같이 음향 조정하는 추억을 말하더군요.
Karajan는 친일가 이기도 했지요. 일본 공연시는 미국보다도 많은 일본전국투어를 했었죠. 시골농가주택까지 빌려 하루 지내고 일본역사와 근대 /근세 역사에도 아주 밝았습니다.
유일 일본공연시 기부도 했었고 대단했습니다. 일본체류시 거의 3주이상 있었습니다.
그의 묘지는 카라얀의 뜻대로 이뤄진것이니 그점 아시면 도움될듯합니다. (참고로 저는 재일교포입니다.88년 중학생때 일본공연에 카라얀 비창을 들었습니다. )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새롭게 알게되는 내용도 있네요..
관심 감사합니다!
천년에 한 번 등장할까마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귀하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잘츠부르크에 갔을때 카라얀의 교회도 방문했을텐데 안타깝네요..
다음에 기회되면 다녀오세요^^
카라얀이 Anif에서 태어 났다고요? 누가 그래요?? 카라얀 생가는 잘츠부르크 시내 한가운데 Markartplatz에 있습니다 . 은행 옆 , 영상의 동상이 있는 집입니다. 음악가를 숭상 하시는 것은 좋은데 과장이 심하시네요. 아니프는 카라얀의 저택이 있던 잘츠부르크 근교 마을입니다. 살던 동네 교회 묘지에 묻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한국과 달리 오스트리아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사람도 묘지를 크기 쓰지 않습니다 .
잘 봤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이나 생각에는 이의가 없으나 다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할 듯 합니다.
가능하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나 간혹 틀린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고, 같이 공감할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귀하의 진정어린 관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classicalmusictraveller3007 답글 고맙습니다. 제가 알기에 그리고 공식적으로 카라얀의 출생은 잘츠부르크인데요. 말씀하신 아니프(Anif)는 잘츠부르크 주의 잘츠부르크 옆에 있는 독립적인 조그만 동네(Gemeinde)이구요. 결과적으로는 잘츠부르크 시는 아니지요. 아시다시피 카라얀생가도 질츠부르크 시내 자허호텔(Sacher Hotel Salzburg) 옆에 있지요. 물론 묘지는 아니프에 있구요. 저는 그 점을 말씀드린겁니다. 혹 제가 잘못 알았다면 말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가지가 눈에 띄네요.
30년 이상 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사람은 없다고 하셨는데, 소련의 레닌그라드 필을 에브게니 므라빈스키가 1938년도부터 1988년 사망할때까지 50년간 지휘했죠.
앞으로도 좋은 영상 많이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빌렘 멩겔베르크도 콘세르토헤보우를 50년간 지휘했죠!
사후에 밝혀진 재산도 엄청났져..
참 세상을 순진하게 보시는 분입니다 . ?? 카라얀의 생가는 시내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아니프는 그의 저택이 있던 마을입니다 . 잘츠부르크의 부자들은 시내에 살지 않죠 . 무턱대고 왜곡된 정보를 보내시는군요
죽자고 달려들 일일거까지야 ㅎㅎ
저가 가보기로는 교회앞뜰에 전 본걸로 알고있어요
노모씨가 얘기한 것같은 아주 작은 비석이네요. 정작 노모씨는 엄청난 돌더미밑에 있다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