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공감 E606 백창우의 노래하는 강아지똥 추워 100326 HDTV XviD TOP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20 сен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

  • @hanarmor
    @hanarmor 11 лет назад

    참으로 따뜻한 노래네요.

  • @systeck59
    @systeck59 7 лет назад


    .
    .
    .
    ...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시집 『겨울날』 (창작과비평사, 1975)
    ....................... 🌹*/ ......................
    🎧..
    지난 주말 주산지에서의 예기치 않은 별 세례는 실로 장엄하고 화려한 우주적 체험이었다. 해는 지고 삭의 절정기에 든 달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산속에 폭삭 들어앉은 주산지는 오로지 별밖에 볼 일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들어붓기 시작한 별은 이윽고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올려다 본 나뭇가지 사이마다 별들이 걸리고 맺혀 거대한 연작 트리를 보는 듯했다. 모처럼 만난 풍경의 장관이었다. 오래 들여다볼 여가는 없었지만 별 하나에 집중했다. 그 순간 그 별을 쳐다본 사람은 내가 유일했겠으므로 상념은 깊어갔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저녁에’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떠오른 상념을 노래한 이 시가 처음 발표된 건 1969년 11월호였다. 시인은 이 별을 통해 사람의 인연을 생각하고 정답고 소중한 존재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모두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저 별들 하나하나에 머물며 반짝인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서는 저 별들 속에 섞일 것이다. 별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모래알의 개수만큼이나 어질어질하게 많다고 한다. 저렇게 명멸하는 무리 가운데서 우리는 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말에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안타까움을 예견하는 동시에 다시 만나고 싶다는 짙은 소망의 의미가 함께 녹아있다.
    인간이 가끔 성찰할 수 있는 것은 하늘에 달과 별이 있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하다’란 뜻의 영어 ‘consider’가 있다. con은 함께 라는 뜻이며 sider는 star가 변한 말이다. 즉 consider는 별을 보면서 함께 숙고한다, 별을 # 의미이다. 그리고 형용사 considerate는‘지각 있는’ ‘분별 있는’이란 뜻이다. ‘선탠’이나 ‘문텐’처럼 인간에겐 ‘별탠’도 필요한 까닭이다. ‘별탠’은 반드시‘저녁에’ 어둠으로 덥혔을 때라야 볼 수 있다. 그날 밤 나와 마주보기 했던 별도 언제 또 만날지 알 수 없다. 아니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다. 이런 스침의 우연, 하지만 절대적인 운명의 연결망이 바로 인생의 판도가 아니랴.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만남은 곧 헤어짐을 의미하는 ‘회자정리’ 아프지만 빛과 어둠이 교차되는 한 진실이다. 이 시는 흥겨운 창법이 어울린다고 생각진 않는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유심초의 노래가 있고(개인적으로는 이소라 김현철이 부른 ‘그대 안의 블루’의 멜로디가 훨씬 정서적 분위기에 닿아있다고 생각함) 같은 제목을 붙인 수화 김환기의 유명한 그림도 있다. 그는 문인들과의 교류가 깊어 문학과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70년 작품으로 친구 김광섭이 뉴욕에 있는 그에게 부쳐준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목포 앞바다의 섬 안좌도가 고향인 김환기는 화폭에다 애절하고 그리운 고향 모습을 이미지화하여 담았다는 설도 있다. 뉴욕 생활에 권태가 깃들 무렵 ‘저녁에’를 읽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향을 떠올렸던 것이다. 고향 바다 말고도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들을 그려 넣었다. 화가의 아내는 재혼으로 얻은 김향안이다. 경기고녀와 이화여전 영문과를 다녔던 그녀는 이상의 아내였다. 20세 때 26세인 이상과 결혼했으나 이상은 4개월 만에 요절하고 만다. 딸 셋을 둔 김환기와 결혼하면서 변동림이란 본명도 버렸다. 시인과 화가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둔 두 남편들이다. 변동림의 남편 이상과 김향안의 남편 김환기는 빼도 박도 못하는 동서지간이었다.
    미술평론가들은 이 그림의 수많은 사각형의 점들은 이 지구, 더 나아가 우주에 있는 숱한 존재들을 의미하며 그 점들의 모양이 각기 다른 것은 그 존재들이 각각의 개성을 지닌 존재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점들 사이에 간극이 있고 떨어져 있는 것은 지금 현재는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림에는 현대의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단절감과 고립감도 엿보인다. 결국 수화의 이 그림은 물질문명에 밀려서 소외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운 자화상을 그린 것이 아닐까 짐작되는 것이다. 또한 얽히고설킨 수많은 인연들에 대한 그리움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표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 권순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