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라 망평현(望平縣) 해구(海口)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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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6 янв 2025
  • 《요사》 지리지 동경도에서 기술한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의 사극(四極) 가운데에서 「망평현(望平縣) 해구(海口)」의 위치와 성격을 규명(糾明)한 연구입니다
    #고대사 #고려 #고려강역 #고려영토 #거란 #요나라 #동경도 #동경요양부 #망평현 #망평현해구 #海口

Комментарии • 10

  • @정광준-x2s
    @정광준-x2s 2 года назад

    잘봤습니다.

    • @mvkuri
      @mvkuri  2 года назад

      고맙습니다

  • @지수신-j6l
    @지수신-j6l 2 года назад

    동경->학주관->요수관 이후 갑자기 의무려산 산중으로 점프한 기록은 단순 오류인건가요?
    여양현을 옮겼다는 기록으로는 점프 현상이 설명되는것같지 않네요.

    • @mvkuri
      @mvkuri  2 года назад +1

      요동행부지의 1190년 2월 갑진일 기사는
      무경총요 북번지리 동경 조 동경~건주 간 이정에서 그 세번째 중간 경유지 여산관이
      건주 직전의 경유지인데 편찬 과정에서 잘못 기술된 것이다 하는 것을 입증하는 우선 근거로 삼은 것이 아닙니다
      1) 무경총요 여산관
      2) 요동행부지 여양 신현
      이 두 개의 기록은
      다른 고찰로서도 요사 지리지의 360 리 망평현 해구가
      현 북진시 여양진~반금시 반산현 일대로 나타나고
      특히 여양진 부근이 그 360 리 지점으로 보이는데
      과연 현 여양진 부근이
      ㅡ 요양시 백탑구에서 360 리
      ㅡ 북진시에서 60 리
      에 해당한다는
      문헌 기록이 있는가 하는 여부에서
      그 문헌 기록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 @mvkuri
      @mvkuri  2 года назад +1

      무경총요 동경 조 동경~건주 경로에서
      여산관이 세번째 경유지로 제시된 것은
      "의무려산 중에 있는"이라는 수식을 통해서
      그 자체로 경유지의 순서가 뒤바뀐 것임이
      드러나는데
      이에 따르면 여산관은 건주 직전의 경유지로서 건주와 50 리 떨어져 있는 것이 됩니다
      북진시~여양진의 동쪽에는 소택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 50 리 떨어진 여산관은
      응당 여양진 방면에서 그 부근에 위치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동행부지의 여양 신현 기사에서
      저자 왕적은 북진시와 여양 신현의 거리가
      60 리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요동행부지 기사만으로도
      현 반금만 북쪽에 연접한 여양진이
      요양시 백탑구에서 360 리에 해당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 더하여서
      무경총요 동경 조 여산관과
      요동행부지 여양 신현
      이 두 기록이 그 거리를 파악하는 데에 상보적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결론 직전에 제시한 지도를 보시면
      여양진의 북동쪽 10~15 리 경에
      여산관을 표시하였습니다

    • @mvkuri
      @mvkuri  2 года назад +1

      11~12 세기 문헌에서
      현 북진시와 요하 사이의 천연 소택지(흔히 요택)는
      허항종의 선화을사봉사금국행정록에서는
      양어무(금 망평현)에서 장의현(요 광주) 이정에서 제시돼 있고
      무경총요 북번지리 거란 지리에서는
      건주 조에서만 "옛 요택의 땅이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건주와 현주 모두 현 북진시에 있었는데
      건주 조에서만 요택을 언급한 까닭은
      건주 관할지에서 소택지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글어스 위성지도에서 지형을 관찰해봐도 어느 정도 그 흔적이 보이는데
      대체로 신민시 남동쪽에서 반산현 북쪽으로
      소택지가 윗머리가 동쪽으로 기운
      비스듬한 형태로 형성돼 있었고
      그 남쪽인
      북진시 동남쪽~반금시 반산현 북쪽이
      그 가로폭이 상대적으로 넓었던 것이죠
      이로 인해서
      이 지역 여행자들은
      반산현에서 여양진 방면으로 돌아서
      의무려산의 동쪽 기슭을 따라서
      북진시에 접근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 @mvkuri
      @mvkuri  2 года назад +1

      무경총요 북번지리 동경 조에서
      동경과 현주(건주)의 거리는
      총 4 개가 제시돼 있습니다
      1) 480 리
      2) 300 리
      3) 420 리
      4) 현주와 동일 위치
      이 가운데에서 420 리만이
      그 중간 경유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는데
      학주관, 요수관 등의 경유 지명을 통해서
      이 420 리 이정이 소택지의 남쪽을 돌아가는 경로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독사방여기요의 요양~광녕위(북진시) 이정 420 리와 일치함이 관찰됩니다

    • @mvkuri
      @mvkuri  2 года назад +1

      각론집 1권은
      요나라 말기로서 동경도의 영역이 완숙된
      도종~천조제 시기의 동경도 영역을 파악하여서 큰 논의를 위한 기본 전제를 갖추는 데에 집중하였습니다
      동경 이치와 영역 문제는
      각론집 2에서 다루게 됩니다

  • @nicolassarah5782
    @nicolassarah5782 2 года назад +2

    형님 잘보고잇슴다 이해는 못해여

    • @mvkuri
      @mvkuri  2 года назад +2

      사라야, 반갑다
      너네 회사식당 밥 잘 나오는 거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