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와 이방원 사이에서 존재감이 희미했던 조선의 두 번째 왕? 개경을 사랑한 왕이자 취미 부자였던 이방과의 속사정 [역사 읽어드립니다 EP.3] | 신병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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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7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 @sapiens_studio
    @sapiens_studio  Год назад +9

    ✨요약 정리✨
    00:00 존재감이 희미했던 정종, 이방과
    01:36 두 번째 아들 이방과, 후계자도 아니었던 그에게 무슨 일이?
    03:26 사병을 공병으로, 사병 혁파가 부른 조선의 피바람
    07:53 어쩔 수 없이 왕이 됐지만 나도 업적은 세워볼게
    09:10 허수아비 (왕) 정종시대 불만을 품은 세력의 등장
    12:17 왕은 정종이지만 국정 실무는 이방원
    13:42 복세편살 정종 왕을 내려놓고 오히려 좋아

  • @낫든할아범-l3s
    @낫든할아범-l3s Год назад +47

    의전은 받지만 책임은 없는 최고의 왕

  • @dltls14746
    @dltls14746 Год назад +59

    조선 왕사 유일하게 편안게 하다 간 왕일지도...

  • @iporeews
    @iporeews Год назад +14

    태종 이방원이 세종에게 왕을 물려주고 둘째형 정종이랑 사냥도 다니고 그렇게 행복해 했다고함. 이방원도 나이먹다보니 만사가 귀찮고 형이랑 놀고싶었던거..ㅋㅋ

  • @han-seung-hee-and-his-frends
    @han-seung-hee-and-his-frends Год назад +9

    반갑습니다.
    역사공부 잘 합니다.

  • @mcintosh.
    @mcintosh. Год назад +1

    동생 덕분에 정종 인생 참 잘 누리고 갔네요..교수님 덕분에 자세하게 공부했습니다!

  • @demian8697
    @demian8697 Год назад +6

    뭐가 얼떨결에야?
    당시 병권을 가지고 있던게 이방과인데, 이방과가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자 했으면
    이방원은 거사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습에 성공했다쳐도
    이방과가 군사를 일으키면 끝난다.
    동생을 죽일수도 없고 아버지를 몰아 낼 수도 없는 진퇴양란의 상황이니 절로 피해버린거지.

  • @top-tier941
    @top-tier941 Год назад +1

    신병주 교수님 최고

  • @kang-life
    @kang-life Год назад +8

    인생은 정종처럼..

  • @wingxxxg-01w8
    @wingxxxg-01w8 Год назад +27

    정종은 야심이 없다는 것보다 정치,파워게임에서 이방원에서 밀렸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종 재위 당시 언제 이방원이 찾아와 자신에게서 왕위를 '되찾고' 끌려져 내려갈까 두려워했단 기록이 있다는걸 봤는데 맞을까요 교수님? 그런 면에서 봤을때 상왕으로 본인이 자발적으로 물러났을땐 정말 홀가분했을거라 생각듭니다.

    • @Niri_0
      @Niri_0 Год назад +16

      본인 서자를 원자로 삼으려다가 이방원의 압박때매 취소한 기록있는거 보면 힘싸움에서 진거 맞음

    • @musicmagazine9861
      @musicmagazine9861 Год назад +1

      정치게임에서 밀렸어도 파워(힘)에서는 그래도 장군으로 지낸던 세월이 많았던지라 밀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애초에 정종은 정치에 큰 관심도 없었고 또 어차피 동생이 알아서 일 처리해주니까 그런 마인드도 있을꺼라 추정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누렸던 것도 맞습니다. 당시 신하들이 그런 정종을 보면 부러워했다는 기록도 있다고해요.

    • @musicmagazine9861
      @musicmagazine9861 Год назад +1

      @@Niri_0 이 부분에 대해서 학자 사이에서 얘기 많이 오고가고 있는데 태조 이성계가 정종을 앞세워서 이방원의 왕위 계승을 방해하려고 했다는 의견으로 좁혀집니다.
      즉, 서자를 원자로 삼은 것은 정종이 원해서가 아니라 태조 이성계가 이렇게 하라라고 배후 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 @옼케발
    @옼케발 Год назад +13

    오죽하면 아무리 사극 세계관이라지만
    동북면 최고무사로 이방과라고 언급할 정도 ㅡ 주인공 라인 빼면 최강자 레벨.

  • @7ob1gj5h
    @7ob1gj5h Год назад +8

    모두가 꿈꾸는 돈 많은 백수로 19년 누리다가 가셨네. 성격 보면 별로 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어서 묘호 없어도 별로 신경 안 썼을 듯ㅋㅋㅋㅋ

  • @kchojang
    @kchojang Год назад +2

    인생은 정종 처럼

  • @user-doggylover
    @user-doggylover Год назад +6

    이성계도 말년에 참 기구한 인생을 사셨네. 한 평생을 전장에서 싸우다가 말년에 자기의 절친인 정몽주와 정도전을 둘 다 잃고 자기 아들들은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는 모습만 보다가 돌아 가신게 참 안타깝네.

    • @musicmagazine9861
      @musicmagazine9861 Год назад +5

      근데 그것도 어떻게보면 태조 이성계가 그런 상황으로 만들어줬기에 이런 상황이 온거죠.
      만약 신덕왕후의 말을 듣지않고 이방과나 혹은 이방원에게 세자로 만들어줬더라면 이방원이 반란을 일으킬 일이 없겠죠.

  • @김민석-r7s7m
    @김민석-r7s7m Год назад +4

    정종이 그냥 순리대로 세자로 책봉되었어도 원자가 없었으니 그 구실로 야심있는 태종에게 왕위를 선양했겠네요.

  • @joyh1280
    @joyh1280 Год назад +4

    인생은 정종처럼... 왕의 업무나 책임은 없으면서 죽을때까지 상왕대접 받으며 사냥놀이, 온천놀이하면서 천수를 누렸지

  • @ねこ-w9e2v
    @ねこ-w9e2v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방과는 정말 효자였음...왕으로서의 자질보다는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이 깊은 분이었음

  • @j.svaraba9193
    @j.svaraba9193 Год назад +1

    👍

  • @hwangsenal
    @hwangsenal Год назад +8

    맘만 먹었으면 방원이고 뭐고 다 족치고 왕 될 수 있었던 무장이었네

    • @d.h.s3978
      @d.h.s3978 Год назад +6

      ㅇㅇ 가능했음 하지만 정치는 무관심이라 안했을뿐

  •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Год назад +7

    생각이 복잡해지는 왕... 그런데요, 전 정종이 개경을 사랑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개경환도... 그게 업적인가요?... 개경으로 환도를 했는데 다시 수도는 한양이 되잖아요... 이방원이 왕이 되고나서 다시 바꾼건가요?...

    • @Niri_0
      @Niri_0 Год назад +3

      집현전 설치한게 정종인데 업적이 개경환도 ㅋㅋ

    • @오준학-g7y
      @오준학-g7y Год назад

      이방원이 올르고 나서 한양으러 천도함

  • @BBrookie83
    @BBrookie83 Год назад

    아...육룡이 나르샤가 용비어천가에서 나온말이구나 몰랐네

  • @정승환-t3b
    @정승환-t3b Год назад

    제대로된 왕이심

  • @피그미-r5u
    @피그미-r5u Год назад +3

    내보기엔 정실소생 대군들이 개꿀이다... 한량처럼 철딱서니없게 살면됨

  • @별사탕오영운
    @별사탕오영운 Год назад +1

  • @살며생각하며-n6k
    @살며생각하며-n6k Год назад +1

    국고 낭비해가면서 개경으로 다시 수도를 옳긴게 업적인가요? 이해가 안되네요.

    • @musicmagazine9861
      @musicmagazine9861 Год назад +3

      정확하게 개경을 옮긴 이유가 있는데 고려에 대한 향수가 있었고, 경복궁에서 형제들끼리 싸움을 났던 곳이기에 싫어했고, 유독 까마귀와 까치에 시달려서 개경으로 수도를 옳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 @이이-h1w6q
    @이이-h1w6q Год назад

    사께

  • @잉가세
    @잉가세 Год назад

    광고 열나 많아

  • @gingerbradpit
    @gingerbradpit Год назад +1

    보이스가 좌측으로 쏠렸습니다

  • @gentlemen4070
    @gentlemen4070 Год назад

    조선왕중 가장 팔자 편한 임금.
    물론 이면에는 자식 문제가 있었지만
    본인은 원없이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감.

  • @박진호-x4d
    @박진호-x4d Год назад +1

    이방원 아버지 죽임

  • @Lee_Joonsik
    @Lee_Joonsik Год назад +1

    이런거 수능같은데서 킬러문제로 내기 좋겠읍니돨🐕

    • @문딩이-r9i
      @문딩이-r9i Год назад

      이런 건 킬러로 나올 수가 없...

  • @Appletree-db2gh
    @Appletree-db2gh Год назад +1

    제가 이해를 잘못했는지, 국가적 이유가 아니라 본인 불편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자원들여 옮긴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천도한게 업적이 맞나요?
    개경으로 옮겨서 얻은 이득이 특별히 뭔지 나오질 않아서 ;;;

    • @musicmagazine9861
      @musicmagazine9861 Год назад

      업적은 아니지만 정종이 개경으로 옮긴 이유가 개경에 대한 향수가 있었고 형제들끼리의 싸움을 봤고 그리고 유독 까마귀와 까치들에게 시달림을 받기도해서 개경으로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