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들이 백제인 빙의해서 자부심 느끼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전라도는 마한도 아니였습니다 여태껏 전라도를 백제라고 속여 왔지만 고고학적 성과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님이 밝혀 지자 요즘에는 전라도를 마한이라고 거짓말 해대던데 참 웃길 따름임 ㅋㅋ 삼국지 동이전 후한서 이와 같이 마한 남쪽과 변진이 왜와 접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고 교차검증이 가능하므로 전라도 지역은 마한이 아니라 왜(倭)였음이 명백함 이건 현대의 고고학적 유물이 입증해 주고 있지 6세기 중반까지 독자 세력을 유지하다가 백제 말기에 간접통치 방식으로 백제에 복속 된 지역이 전라도임 전라도가 왜(倭)라는것. 이게 정확히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숨기고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임 왜(倭) 임을 숨기고 전라도를 마한으로 둔갑 시키는건 지역적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이상 한국의 갈등을 바라지 않는 학자들의 대의적 거짓말이란 것이지
2:03 와 글자 왜 이렇게 뚜렷해 .. 신기하다 ㅠㅠ 요즘 왜 이런 고대사 상고사 다큐 안하는지 ㅠㅠ 얼마나 더 발굴 되서 역사 조각이 맞춰졌는지 궁금하다 ,, 일반 역사 강의도 좋지만 이런 유물 발굴하는 이런 다큐도 많이 나왔으면 ,, 특히 삼국 이전에 부여 예맥 이런곳들 연구하고 추적하는 다큐도 나왔으면 좋겠다 ㅠㅠ 자료가 많이 없고 북한 중국땅이라 어려운거 알지만ㅠㅠ 항상 아쉽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들이 백제인 빙의해서 자부심 느끼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와..근데 백제 군용도검 규두대도 검 진짜 간지나네요 ㄷㄷ 일본 닌자가 쓰는 닌자도 같은 느낌인데 갑옷이 고대시대에 전쟁때 쓰인 엄청 오래된 유물일텐데 새 것처럼 게다가 정교하고 황금이라고 해야되나 글자도 컴퓨터로 인쇄한 것처럼 세련되네요 ㄷㄷ 도검과 갑옷이 발견되는거보면 공산성에 백제 군인들이 주둔했거나 혹은 백제 군인들이 공산성 전쟁하다가 전사해서 그대로 묻힌건가 역시 김부식.... 삼국사기는 신라 신격화로 이뤄진 역사 기록이라서 백제를 비판하려고 어느정도 왜곡했던건가.. 실제론 공산성에서 치열하게 전쟁했었다니..
삼국사기에 대해 공부하면 절대 이런식으로 무식한 음모론 못꺼내지 김부식은 딱히 신라를 좋아한적 없고 삼국사기 자체가 고려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거고 김부식이 만들때도 이미 500년 지난 시점이라 우리나라 역사 책이 없어 중국 책 빼오고(송) 그나마 국내 남아있는 행장록 뒤져서 만든 거임 무슨 신라빠라 그런게 아니고
당이 가죽옻칠 찰갑을 만들어 사용했는가? 출토된 칼과 갑옷의 형태로 봤을때 백제의 갑옷이라고 봐야하고 신라도 당의 연호를 썼고 백제도 당의 연호를 썼을거같다.645년 그당시 당은 동아시아 최강국 고구려를 정벌하던시절이고 백제는 가장 약한 나라였다. 모두 알다시피 당이 승리한 전쟁. 당의 갑옷을 폐기할 이유가 없음. 명문을 좀더 연구해야 되겠지만 지금 10년도 더 지났지만 후속연구결과가 없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들이 백제인 빙의해서 자부심 느끼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전라도는 마한도 아니였습니다 여태껏 전라도를 백제라고 속여 왔지만 고고학적 성과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님이 밝혀 지자 요즘에는 전라도를 마한이라고 거짓말 해대던데 참 웃길 따름임 ㅋㅋ 삼국지 동이전 후한서 이와 같이 마한 남쪽과 변진이 왜와 접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고 교차검증이 가능하므로 전라도 지역은 마한이 아니라 왜(倭)였음이 명백함 이건 현대의 고고학적 유물이 입증해 주고 있지 6세기 중반까지 독자 세력을 유지하다가 백제 말기에 간접통치 방식으로 백제에 복속 된 지역이 전라도임 전라도가 왜(倭)라는것. 이게 정확히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숨기고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임 왜(倭) 임을 숨기고 전라도를 마한으로 둔갑 시키는건 지역적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이상 한국의 갈등을 바라지 않는 학자들의 대의적 거짓말이란 것이지
전체적으로 보니 패전을 앞둔 백제가 어떠한 의식을 위해 수장시킨 갑옷과 칼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옷칠(황칠) 재료 자체가 구하기 힘드니 일개 장수가 입기 힘들 수준이고 , 왕실에서 백제왕이 입거나 의식을 위해 갖추어둔 보물급일거 같습니다. 게다가 칼도 작은 칼 역시 의식용 칼이 아닐까 싶네요. 화려한 손잡이를 보니.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들이 백제인 빙의해서 자부심 느끼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scap4437 마한이 백제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단 건 팩트죠. 애초에 근초고왕이 처음 정복하고, 백제라는 정체성을 갖게 하기도 전에 백제는 경기돌르 상실하고 웅진성으로 도망왔으니 제대로 중앙집권을 하지도 못했고, 멸망할때까지 여러 귀족, 호족세력과 다투다 자멸했죠.
@시끄럽다 "근초고왕때 마한을 정복했을 것이다" 라는건 식민사학의 태두 이병도의 추측에 의한것이고 그 근거는 " 서남쪽 오랑캐를 정벌해 백제에게 주었다" 고 기록한 신공49년조 기사에서 나온것 입니다 마한을 모조리 합병 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고고학적 데이터가 쌓이면서 더이상 4세기에 마한을 모두 정복했다는 주장은 폐기가 되었고 6세기 중반에 백제에 종속 당했다는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입니다 중고등 교과서는 자국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또한 국민 통합을 위한 서술을 의도하는 등의 어느정도 목적성을 가지고 온건하게 제작 된다는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요즘엔 전라도 지역 사학자들도 백제 보다는 마한을 내세우면서 컨텐츠 제작을 하는 추세입니다 전라남도 나주 박물관장은 " 전라도 지역은 마한이 본류이고 백제가 지류다" 라는 인터뷰까지 했었습니다
@@jhya1208 아무리 지방 호족의 분노를 샀다지만 지방 호족들이 나라를 버릴 일은 없었습니다. 신라와는 피로 피를 씻던 적대국 관계였고 골품제로 인해 신라에 귀속되더라도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차라리 나라를 지키고 호족 지위를 유지하는게 호족들 입장에서 유리했습니다.
계백의 결사대는 말 그대로 시간을 벌기위한 특공대였습니다. 황산벌에서 혈전이 벌어지는동안 백제의 주력군은 소정방의 13만 대군에게 기벌포에서 참패하고, 사비성 밖 30리 지점에서 전멸급의 대패를 당하며 와해되어 버렸습니다. 왕자 융과 대좌평 천복등, 백제의 최고 권력층들과 왕족들은 줄줄이 당나라 군중으로 달려가 항복해 버렸습니다. 사비성 사수 총책임자 태는 당나라군대가 들이닥치자 스스로 성문을 열고 항복했습니다. 이 모든게, 예진식인지 예식진인지 뭔지가 의자왕을 묶어서 항복하기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국가의 주전력은 전투두번에 공중분해 되어버리고, 국가 최고위층이라는 인간들은 나라지킬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일신의 안위를 찾아 적진까지 뛰어가서 항복하고, 수도방위 사령관은 전투한번 없이 성문을 열어 적을 맞아들이는데..... 과연 예식진인지 뭔지의 배신행위가 없었다한들 백제가 이때 버틸수 있었을까요...
645년도에 당이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지원해달라는걸 백제가 거절하고 이때 당이랑 사이가 틀어졌다가 재차 관계가 다시 좋아지기 위해 백제가 조공으로 해결보려던걸 당이 거부하면서 사이가 틀어지고 조공으로 넘기려던 저 갑옷과 칼 등을 연못에 던져버린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제일 수긍가는 가설이다. 당에 뇌물로 주려다 틀어지니까 갖다버려! 한게 시각적이나 감정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제일 빨리 느낄수있는 연못속에 던져버렀을수도... 게중에 던진놈이 나중에 건져서 팔아먹을라고 고이 던졌을수도. 아니면 정관19년에 당이 받은 선물을 당나라가 이제는 양국이 물거너 갔으니 도로 갔다주라고 해서 공산성 앞에서 백제왕한테 도로 가져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니까 백제에서 니들이 알아서 처분하라니까 당군이 시각적 효과가 제일큰 연못속에 빠뜨려 버렸을수도.
백제 공예인들이 나라 망하고 대거 일본으로 가면서부터 일본 공예가 많이 발전했죠. 지금도 일본에서는 칠기를 그렇게 고급으로 여기고 있음.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자개장농 보고 고리타분하다고 버리고 있는 상황. 프랑스 애들한테 팔면 몇백만원 벌 수 있는건데 그걸 도로에 버리다니...
@@大신라혼 그렇군요 황옻칠 예를 들어볼까요 중국이라칭하는 지역 패권자가 굳이 우리 황 옻을 가져다가 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과거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우리 입장에서 객관적 3자 시각으로 본다면 황금 갑옷의 원류가 우리가 아니었나 추정도 가능 할 듯 한데 의견이 어떠신지 그리고 각종 선진적 군사용 장갑 무기등은 아시아 동쪽세력이 유난히 발전했는데 굳이 그것을 우리가 가져왔다고 하는 이유? 역사적 확인? 되었을가요? 동쪽세력이라고 내가 표현한 이유정도는 충분히 아시리라 보고 내의견을 올립니다 선생의 의견은 어떠신지?
연호를.... 중국연호를 썼기때문에...... 중국갑옷일 꺼라는..... 중국학자의 논리는..... 타당성이 떨어지는 논리..... 그보다 전에 만들어진........ 칠지도에도.... 중국연호를 썼는데..... 그럼, 칠지도도 중국것인가.....? 당연 아니다. 칠지도 전면과 후면에 그 제작시기,제작과정, 제작목적..... 제작국과 하사받은 (나라)국까지 ......자세히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발견된 유물에 대한....... 중국학자의 중국연호라 ....중국것이라는 논리는 .....어거지의.... 중국 우선주의(동북공정) 논리다.
청동기 시대에 이제 막 발을 들여온 왜나라보다 몇 세기는 앞서 먼저 철기시대를 맞이하고 뒤지게 국지전하면서 발달된 상업과 문화, 인프라, 제련 기술력을 주축으로 성장해온 나라가 원삼국 시대(or 열국시대)였음. 추려서 말하자면, 고구려판 델타포스 '개마무사', 신라하면 바다의 어머니 '교관선', 백제하면 철 좀 가지고 놀아봤다는 동아시아 최고 제련 기술자들이 밀집해있던 지역임.
통수의 나라 백제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공영방송은 역사 다큐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들이 백제인 빙의해서 자부심 느끼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scap4437 마한이 왜 전라도임? 마한 수도는 목지국(현 충청남도 천안)인데.. 댁이 쓴 글 중에 맞는 말이 하나도 없네.. 헛소리는 방구석에서 혼자 하시길~~
이상 지나가는 천안 시민
@@반지반지손반지 혹시 고졸이세요?
@@scap4437 그런거 같음
전라도는 마한도 아니였습니다
여태껏 전라도를 백제라고 속여 왔지만 고고학적 성과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님이 밝혀 지자
요즘에는 전라도를 마한이라고 거짓말 해대던데 참 웃길 따름임 ㅋㅋ
삼국지 동이전
후한서
이와 같이 마한 남쪽과 변진이 왜와 접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고 교차검증이 가능하므로
전라도 지역은 마한이 아니라 왜(倭)였음이 명백함
이건 현대의 고고학적 유물이 입증해 주고 있지
6세기 중반까지 독자 세력을 유지하다가 백제 말기에 간접통치 방식으로 백제에 복속 된 지역이 전라도임
전라도가 왜(倭)라는것.
이게 정확히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숨기고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임
왜(倭) 임을 숨기고 전라도를 마한으로 둔갑 시키는건 지역적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이상 한국의 갈등을 바라지 않는 학자들의 대의적 거짓말이란 것이지
정말 유익한 프로그램이죠 감사히 잘 보고 있답니다~^^
와..황칠 진짜 이쁘네요.. 장인분들 더 대접받아야 명맥을 이어나갈수도 있을텐데
12
고대사 다큐좀 했으면 좋겠다...뭐 십년전꺼만 보고있네;;
대성동고분의 비밀은 진짜 명작인데
1400년을 땅속에 저렇게 묻혀있는데 글씨가 방금 새긴것처럼 선명하고 색도 선명하네요.정말 대단합니다.
당나라인이 썼는 것임.
@@卞默然 ? 그래서요? ㅎㅎㅎㅎ
묻 은 지 얼 마 안 돼 요. 한 반 도. 조 선. 증. 거. 만 들 려 ㅋㅋㅋㅋㅋ
@@임윤식-o1m 조선족이네
진흙등으로 완벽하게 매몰되면 산소가 차단되서 부폐나 변질이 안됩니다...호박보석에 보면 가끔씩 몇천년 몇만년전 모기등이 발견되는게 동일한 이유
2:03 와 글자 왜 이렇게 뚜렷해 .. 신기하다
ㅠㅠ 요즘 왜 이런 고대사 상고사 다큐 안하는지 ㅠㅠ 얼마나 더 발굴 되서 역사 조각이 맞춰졌는지 궁금하다 ,, 일반 역사 강의도 좋지만 이런 유물 발굴하는 이런 다큐도 많이 나왔으면 ,,
특히 삼국 이전에 부여 예맥 이런곳들 연구하고 추적하는 다큐도 나왔으면 좋겠다 ㅠㅠ 자료가 많이 없고 북한 중국땅이라 어려운거 알지만ㅠㅠ 항상 아쉽네
중국은 지금도 시골 땅바닥에 유물이 뒹굴고 있던데..
KBs는 한국의 민족 조상들의노고와 희생정신을 후손들에게 의무적으로 방영ㅅ내야됨꼭 진실되게👏👏👏
1400년 동안 7미터 아래 묻혀있던 갑옷 이야기 재미지네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진지하게 다루니까 좋음 누가 입었는지 왜버려져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알수 없겠지 이런 고퀄 역사다큐 만들어달라!!
멋지다 드라마든 다큐든 훌륭한 문화유산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네요
와... 1400년전 유물이 글자까지 또렷하게 발굴될때 어떤 기분일까... 와...저 시절이 있긴 있었구나 대단하다... 저때도 남과 녀는 사랑하고 아빠 엄마는 자식을 이뻐하고 회사가면 스트레스 받고 인생 욕망도 있고 인간군상 상상하니 넘 신기하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들이 백제인 빙의해서 자부심 느끼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scap4437 삼한때 말하는 거 같은데 6세기?ㅋㅋ
@@scap4437 영화 황산벌 때문에 그런듯 합니다ㅋㅋ
와아... 옻칠 왜 하나 했더만 .. 보존력 미쳤네...
P0ll❤❤❤❤❤❤❤❤❤❤❤❤
귀한역사정보 감사합니다.......^ ^
예전 산사 방문 때 안내자가 단청을 설명하면서 다른 나라의 오방색 중 황색은 그냥 노랑인데 한국의 황색은 금칠이라 더 높은 차원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황칠이었던듯.
고고학적으로 백제의 갑옷이 이런형태였다는 것을 증명할수 없으니까 중국식이다
그럼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기술이 백제에서 아예 생길수 없다는 사고 자체가 오류일 수 있고 오만함을 장착하고 한반도를 무시하는 태도는 거부감부터 든다
대단 했던 백제역사을 오늘에 되새겨 봐야 하겠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대단했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몇번이나 쳐 망하고 여자 조공을 그렇게 하고도 쳐 망한 나라가 대단하긴 했구나. 조선의 전신이라고 평가할만한 나라가 백제지.
@@大신라혼역사수업 시간에 잠이나 퍼질러자는 역알못들이 꼭 이러지 ㅋㅋㅋ
철 좀 가지고 놀았다는 기술자들이 몰려있는 지역이 백제와 가야였는데 ㅋㅋ
니는 어디가서 남들한테 여자 조공하고 '몇번(?)'이나 쳐 망한 백제라고 거들먹거리다가 질타나 당하지마라 ㅋㅋ
😁💜💜💜💜💜💜💜💜💜💜💜💜💜💜❤❤❤❤❤❤❤❤❤❤❤❤❤❤❤
최고방송입니다. 박지원잘보고 배우고갑니다
유투브에서만나요 영웅만오세요
와..근데 백제 군용도검 규두대도 검 진짜 간지나네요 ㄷㄷ 일본 닌자가 쓰는 닌자도 같은 느낌인데
갑옷이 고대시대에 전쟁때 쓰인 엄청 오래된 유물일텐데 새 것처럼 게다가 정교하고 황금이라고 해야되나 글자도 컴퓨터로 인쇄한 것처럼 세련되네요 ㄷㄷ
도검과 갑옷이 발견되는거보면 공산성에 백제 군인들이 주둔했거나 혹은 백제 군인들이 공산성 전쟁하다가 전사해서 그대로 묻힌건가
역시 김부식.... 삼국사기는 신라 신격화로 이뤄진 역사 기록이라서 백제를 비판하려고 어느정도 왜곡했던건가.. 실제론 공산성에서 치열하게 전쟁했었다니..
삼국사기에 대해 공부하면 절대 이런식으로 무식한 음모론 못꺼내지 김부식은 딱히 신라를 좋아한적 없고 삼국사기 자체가 고려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거고 김부식이 만들때도 이미 500년 지난 시점이라 우리나라 역사 책이 없어 중국 책 빼오고(송) 그나마 국내 남아있는 행장록 뒤져서 만든 거임 무슨 신라빠라 그런게 아니고
황칠이 진짜 금빛이네,
그 옛날엔 가구나 그릇에 옻칠을 왜 하나 했더니 이렇게 보존력이 대단하네요
1400년이나 된 글자가 저렇게 선명하다니 놀라워요
바이크로 사월 전국일주를 했는데 공주에 공산성 갔었슴.한참을 천천히 걸어봤는데 진주성에 비함 참 거리도 넓더라. 내려다보는 강도 경치가 좋았슴...공예학과 가구.목공예.출신이라 칠 작품도 해봤는데 정말 대단하다싶다.
저도 이번주 토요일 공주 공산성 갑니다
진주성도 넓죠
공산성에서 백제장수 예식진에 의해 의자왕이 포박되어 당군에게 넘겨질 때 중요유물을 당군에게 넘어가지 않게 저수지에 던져넣은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아니면 예식진이 의자왕이나 중요인물 갑옷을 벗겨서 옷과 칼을 버리고 끌고 갔을 수도
황칠은 송진을 더해야 품질이 향상되죠..어렸을때 황칠하는 과정을 본적있음...
당이 가죽옻칠 찰갑을 만들어 사용했는가? 출토된 칼과 갑옷의 형태로 봤을때 백제의 갑옷이라고 봐야하고 신라도 당의 연호를 썼고 백제도 당의 연호를 썼을거같다.645년 그당시 당은 동아시아 최강국 고구려를 정벌하던시절이고 백제는 가장 약한 나라였다. 모두 알다시피 당이 승리한 전쟁. 당의 갑옷을 폐기할 이유가 없음. 명문을 좀더 연구해야 되겠지만 지금 10년도 더 지났지만 후속연구결과가 없네.
이야...보존상태 최 상 에다가 백제 멸망 당시의 긴박함, 그리고 미스터리한 스토리까지 얽혀있다라..엄청난 유물이군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들이 백제인 빙의해서 자부심 느끼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scap4437 ㅋㅋ 뭐라노
전라도는 마한도 아니였습니다
여태껏 전라도를 백제라고 속여 왔지만 고고학적 성과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님이 밝혀 지자
요즘에는 전라도를 마한이라고 거짓말 해대던데 참 웃길 따름임 ㅋㅋ
삼국지 동이전
후한서
이와 같이 마한 남쪽과 변진이 왜와 접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고 교차검증이 가능하므로
전라도 지역은 마한이 아니라 왜(倭)였음이 명백함
이건 현대의 고고학적 유물이 입증해 주고 있지
6세기 중반까지 독자 세력을 유지하다가 백제 말기에 간접통치 방식으로 백제에 복속 된 지역이 전라도임
전라도가 왜(倭)라는것.
이게 정확히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숨기고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임
왜(倭) 임을 숨기고 전라도를 마한으로 둔갑 시키는건 지역적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이상 한국의 갈등을 바라지 않는 학자들의 대의적 거짓말이란 것이지
전라도는 왜의 멀티였어요. 유전자로나, 유적으로나 증명됨
@@어케했누-h8n 뭔;
지금도 중국땜에 골친데
옛날 우리조상들도 ᆢ
참 피곤한 한민족의 비애
그래서우리가힘길러야되경제도강한국방력국민자존심뭉쳐야되요무시안당해요
@@옥림이-y9r 띄어쓰기 어질어질하네
@@user-vw1mv4ky9c 어르신이 쓰셨나봐요.
멋지네요
글자 선명도에 놀랏다 ...그것도 철도 아닌데 썩지 않은걸 보면
한국의 도예 뿐 만아니라 옻 같은 칠기 문화도 대단한것 같고 재조명 받앗음 한다
kbs를 사랑한다 왜. 역사관련 방송 꾸준히 잘 해서 역사스페셜 다시 부활 했으면 합니다
공감요
대하드라마도
다른 방송사들은 너무 퐌타지요소가 많음
아~진짜 너무신기해~~~~정말 어떻게 글씨가 저렇게 선명하게 남아있냐~~!
마지막 해석은 너무 웃기네요. 해도 해도 너무 막 하는거 아닙니까??ㅋㅋ
오늘은 이 수면제로....
오늘은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겠지..이런게 재밋어...ㅠ
역쉬~~ 역사 스페셜!!! 👍👍👍👍👍
전체적으로 보니 패전을 앞둔 백제가 어떠한 의식을 위해 수장시킨 갑옷과 칼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옷칠(황칠) 재료 자체가 구하기 힘드니 일개 장수가 입기 힘들 수준이고 , 왕실에서 백제왕이 입거나 의식을 위해 갖추어둔 보물급일거 같습니다.
게다가 칼도 작은 칼 역시 의식용 칼이 아닐까 싶네요. 화려한 손잡이를 보니.
삼국시대갑옷은보면 멋있음.. 목가리개도있고 판이랑 찰갑 섞인거 개간지 백제고구려신라보면 틀은 같은데 조금씩다른게 할튼 멋있음..
죄송한데 삼국시대 분이세요??왜케 나대시죠??
그러는 넌. 왜 나대는데?
요즘한국 티비여론들으면!좀처럼.머리깔끔히정리가안되어.역사를 듣는 것이명케하고.자랑스러움으로그즐거움이 오늘을 시자케해줍니다.역사란.우리에게.중요하거든요.
나이가 들었나..어릴땐 죽어도 보기 싫었는데 이젠 재밌어서 찾아보게 되네..ㅋㅋ 에휴 ㅋㅋㅋ
인정ㅋㅋㅋ 역사개싫어했는데 요즘은 찾아봄
원래 재밋는건데 교과서가 노잼으로 써놔서 그런가봐요ㅋㅋ
여러분 어렸을때부터 역사 좋아해서 지금 17살때까지 역사다큐 좋아하고 있습니다. 저도 틀인가 봅니다.
이 영상에서 나오는 내용을 암기해서 시험을 봐야 한다고 하면 또 다를걸요.
@@user-rh9vz1if5m 한국사 범위 극혐 ㅠㅠㅋㅋ
백제군의 규두대도, 환두대도, 칠갑옷 개간지난다. ㄷㄷ
그것뿐인가요?
가야, 백제 찰갑은 오늘날 사무라이 갑옷의 기원이 되었다구요 ㅋㅋㅋㅋ
즉, 사무라이 갑옷은 원래 열국시대를 맞이하며 발전한 백제와 가야의 것이였으니까 우리꺼임.
갑옷을 묻었을 당시 백제인의 비통함 ..
그 심정은 어땠을까..
왠지 연민의 감정이 밀려 오는 .. ㅠ
뭐 봤냐? 당나라 갑옷이니까 공산성 박살내고 돌아가던 당군이 묻었겠지 뭔 백제인의 비통함이 나와?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들이 백제인 빙의해서 자부심 느끼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scap4437 마한이 백제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단 건 팩트죠. 애초에 근초고왕이 처음 정복하고, 백제라는 정체성을 갖게 하기도 전에 백제는 경기돌르 상실하고 웅진성으로 도망왔으니 제대로 중앙집권을 하지도 못했고, 멸망할때까지 여러 귀족, 호족세력과 다투다 자멸했죠.
@@campsite97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복 했다는건 폐기 된 학설입니다.
전라도 지역엔 6세기 까지 백제와는 다른 독자 세력이 있었어요
@시끄럽다 "근초고왕때 마한을 정복했을 것이다" 라는건 식민사학의 태두 이병도의 추측에 의한것이고
그 근거는 " 서남쪽 오랑캐를 정벌해 백제에게 주었다" 고 기록한 신공49년조 기사에서 나온것 입니다
마한을 모조리 합병 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고고학적 데이터가 쌓이면서 더이상 4세기에 마한을 모두 정복했다는 주장은 폐기가 되었고 6세기 중반에 백제에 종속 당했다는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입니다
중고등 교과서는 자국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또한 국민 통합을 위한 서술을 의도하는 등의 어느정도 목적성을 가지고 온건하게 제작 된다는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요즘엔 전라도 지역 사학자들도 백제 보다는 마한을 내세우면서 컨텐츠 제작을 하는 추세입니다
전라남도 나주 박물관장은 " 전라도 지역은 마한이 본류이고 백제가 지류다" 라는 인터뷰까지 했었습니다
매우 흥미롭다.. 그냥 한번 눌렀는데 다 보고 말았다..
조공품이 아니라 새로운 수도 이전할때 의식을 위한 일종 제물? 이런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렇게 손상이 적은거고
중간중간 지나간 조사는 어떤 진척이 있었는지 재조사 내지는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이 생기면 더 깊이가 더해지지 않을까요
고구려도 남생이 당에 투항만안했어도 고구려가 망하지는 않았을거고 백제도 예식진이 당과 내통만 안했어도 백제가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꺼지만...역사란 만일은 없는거니...
확실히 백제가 시간만 더 끌었다면 동맹인 고구려와 왜에서 지원군이 도착했을 수도 있으니 삼국의 역사가 뒤바뀔 수는 있었죠..
의자왕 아들 41명의 아들을 좌평에 임명하는 등으로 인해, 지방 호족들의 분노를 산 상태였죠. 예식진이 아니어도 무너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그나마
조선이있었기에 세종대왕때문에라도 한글이있다는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jhya1208 아무리 지방 호족의 분노를 샀다지만 지방 호족들이 나라를 버릴 일은 없었습니다. 신라와는 피로 피를 씻던 적대국 관계였고 골품제로 인해 신라에 귀속되더라도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차라리 나라를 지키고 호족 지위를 유지하는게 호족들 입장에서 유리했습니다.
계백의 결사대는 말 그대로 시간을 벌기위한 특공대였습니다.
황산벌에서 혈전이 벌어지는동안 백제의 주력군은 소정방의 13만 대군에게 기벌포에서 참패하고, 사비성 밖 30리 지점에서 전멸급의 대패를 당하며 와해되어 버렸습니다.
왕자 융과 대좌평 천복등, 백제의 최고 권력층들과 왕족들은 줄줄이 당나라 군중으로 달려가 항복해 버렸습니다.
사비성 사수 총책임자 태는 당나라군대가 들이닥치자 스스로 성문을 열고 항복했습니다.
이 모든게, 예진식인지 예식진인지 뭔지가 의자왕을 묶어서 항복하기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국가의 주전력은 전투두번에 공중분해 되어버리고, 국가 최고위층이라는 인간들은 나라지킬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일신의 안위를 찾아 적진까지 뛰어가서 항복하고, 수도방위 사령관은 전투한번 없이 성문을 열어 적을 맞아들이는데.....
과연 예식진인지 뭔지의 배신행위가 없었다한들 백제가 이때 버틸수 있었을까요...
아직 우리나라 땅속 깊숙한 곳엔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유물과 잊혀진 역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났다라고 생각하시면 안되요 ㅋㅋㅋㅋ
명광개갑옷은 명품인물 광계토태왕께서 입은 갑옷의 줄임말인가요?
와 처음에 빨간글씨 주칠된 왕무감이라는 글자보고 깜짝 놀랬다...어찌 저리도 선명하냐..
날조니까요 ㅋㅋㅋ
@@수원호랭이-u6v 날조는 일본이 전문인데... 혹시 일본인?
@@GuildJue 네 맞습니다.
날조는 일본과 전라도가 제일 잘하는거죠
@@GuildJue화교놈인듯
백제 역사공부를 합니다. 학교서 이런 동영상 보여주는게 역사시간이 의미가 있을거 같아요. 재미로 보기란 참 안타까운거 같아요.^^;;
정말 간절히 주인을 찾기를 바래봅니다
645년도에 당이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지원해달라는걸 백제가 거절하고 이때 당이랑 사이가 틀어졌다가 재차 관계가 다시 좋아지기 위해 백제가 조공으로 해결보려던걸 당이 거부하면서 사이가 틀어지고 조공으로 넘기려던 저 갑옷과 칼 등을 연못에 던져버린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제일 수긍가는 가설이다.
당에 뇌물로 주려다 틀어지니까 갖다버려! 한게 시각적이나 감정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제일 빨리 느낄수있는 연못속에 던져버렀을수도...
게중에 던진놈이 나중에 건져서 팔아먹을라고 고이 던졌을수도.
아니면 정관19년에 당이 받은 선물을 당나라가 이제는 양국이 물거너 갔으니 도로 갔다주라고 해서 공산성 앞에서 백제왕한테 도로 가져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니까 백제에서 니들이 알아서 처분하라니까 당군이 시각적 효과가 제일큰 연못속에 빠뜨려 버렸을수도.
완도 숲이 그렇게 빽빽하고 울창하더만 거기서 황칠이 났구먼유 ㄷ ㄷ ㄷ
요즘은 왜 이런 다큐 안하는지. 사실 소재도 무궁한게, 예전에 다룬 소재라도 20년정도 흐른 게 태반이니, 그후 학계의 업데이트도 어마할건데...다시 다 다뤄줘도 무방함.
저런 비슷한 갑옷이 일본 어느 지역에 최근에 발견됐다고 작년인가 기사에 난적이 있습니다. 일본 고대도 백제나 가야와 아주 큰 밀접한 관계라는 신빙성이 생기는거죠.
자기 나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나.... 찬란했던 고구려, 백제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없게 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생각보다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찬란한 역사였을 듯.
혹시 모를 단백질 조각은?
05:09 고려중기 전까지는 삼한국가들은 독자연호를 썼으며 백제는 외교관련을 제외하곤 연호를 쓰지 않았다
중국에 물어보면 당연히 중국 꺼라 하겠지
역사스페셜 다시했으면 좋겠다 .. 역사저널 그날은 패널들의 개인적인 발언이 많아 보기좀 껄끄러웠음 역사스페셜 만큼 주관적인 방송은 없는것 같음
그렇게 오랜세월 사용됐는데
그 비밀이 풀리지 않았을까요???
야...글씨가 선명한것도 신기하고 엄청 달필이네요. 역시 삼국시대..
아니 왜 백제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나요????? 황당하네요. 백제가 22담로를 거느렸던 황제국이었는데 서로 무역을 한거지 무슨 조공입니까? 식민사관에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군요.
엔딩음악 개쩐다ㄷㄷ😢😢너무 좋다
백제 공예인들이 나라 망하고 대거 일본으로 가면서부터 일본 공예가 많이 발전했죠. 지금도 일본에서는 칠기를 그렇게 고급으로 여기고 있음.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자개장농 보고 고리타분하다고 버리고 있는 상황. 프랑스 애들한테 팔면 몇백만원 벌 수 있는건데 그걸 도로에 버리다니...
우리집도 옛날에는 자개 장롱 큰거 있었는데 이사할때 낡아서 버린기억이 ...색깔이 영롱하니 신기했었는데 어렷을때 그장롱에 학이며 소나무 등이 사각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
오래된 자계도 닦아주면 다시 번쩍번쩍 해지는데. 아쉽죠..
한지에서 두꺼운 솜, 이제는 돼지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다니 역시 우리 조상들은 가벼운걸 좋아했군요!!!!
두꺼운 솜... 가볍진 안았겠지만. 철갑보단 가볍...겠군요
땀에 젖으면 철갑옷의 2배이상 무게가 나가는 기적의 갑옷이기도 하지.
@@大신라혼 현재 우리는 그당시 옻칠 등 상세한 기법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갑옷을 만들어 전장에 나갔다면 충분한 단점 보완 기술이 있었으리라 추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lkmb4483 충분한 단점을 보완해서 면을 겹쳐서 갑옷을 만들었죠. 땀과 물에 젖으면 무게가 철갑보다 월등히 무거워지는걸 이제 갑옷이라고 입고 나갔으니 전투가 될 일이 있겠습니까?
장수가 입었던 두정갑은 명나라가 입었던 것을 그대로 복제해서 사용을 했던 것이고요.
@@大신라혼 그렇군요 황옻칠 예를 들어볼까요 중국이라칭하는 지역 패권자가 굳이 우리 황 옻을 가져다가 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과거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우리 입장에서 객관적 3자 시각으로 본다면 황금 갑옷의 원류가 우리가 아니었나 추정도 가능 할 듯 한데 의견이 어떠신지
그리고 각종 선진적 군사용 장갑 무기등은 아시아 동쪽세력이 유난히 발전했는데 굳이 그것을 우리가 가져왔다고 하는 이유? 역사적 확인? 되었을가요?
동쪽세력이라고 내가 표현한 이유정도는 충분히 아시리라 보고 내의견을 올립니다
선생의 의견은 어떠신지?
황동향로를 우물속에 급하게 숨긴거 보니 보존이 맞는듯
중국학자란 놈! 어찌 사진만 보고 당나라꺼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 어찌 학자의 태도라 볼 수 있는가? 저 오만방자한 태도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구나!
김정민박사님께 들으면 알듯
1400년 전 코팅 기술이 현대기술보다 좋은듯 ㅋㅋ 이런건 누가 연구 안하나?
한국세라믹연구소
황칠의 비밀이 풀린것도 그리 오래돼지 않았죠
이야..... 저기 나오시는 분들은 더위를 아예 안타시네
역사스페셜 다시부활해야한다
옛날에 게임 천년의 신화 했엇을때 고구려가 젤 쌔긴 했었는데 백제 유닛이 젤 멋있었음.
나무에 칠을 해서 쇠와 버금가는 강도를 만들면 스텔스기도만들수있을지 않을까요?
스텔스기가 쇠와 버금가면 되는겅가요?
기발한 생각이네요
하지만 요즘엔 좋은재료들이 많아서 ᆢ
@@jwk4896 스텔스기 기본재료가 나무에 도장을 해서 음속을 버티게하는거에요
어제 누가 묻은거 아님? 보존상태가 진짜좋네요
쪼매난 땅떵어리이 뭐가 그리 많은지
경주는 재개발을 거의 포기수준이라고 하죠 ㅎ
공주시민인데 신기하네
연호를.... 중국연호를 썼기때문에...... 중국갑옷일 꺼라는..... 중국학자의 논리는..... 타당성이 떨어지는 논리.....
그보다 전에 만들어진........ 칠지도에도.... 중국연호를 썼는데.....
그럼, 칠지도도 중국것인가.....? 당연 아니다.
칠지도 전면과 후면에 그 제작시기,제작과정, 제작목적..... 제작국과 하사받은 (나라)국까지 ......자세히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발견된 유물에 대한.......
중국학자의 중국연호라 ....중국것이라는 논리는 .....어거지의.... 중국 우선주의(동북공정) 논리다.
백제의 의례에 1표! 우물에 무언가를 묻는 것은 인신공양 같은 느낌을 주는데, 아마도 그때 사람들도 그러자 않았을까요? 점령군이 장군의 이름이 새겨진 갑옷과 말갑 등을 우물에 빠뜨리시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스텔스 갑옷의 등장!
역시 kbs~!
공산성.. 초등학생 시절에 맨날 소풍갔던 곳인데.. 무령왕릉이랑.. 교과서에 나오는 무령왕릉이 예전에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좀만 걸어가면 나온다고 말해도 안믿는 친구들 많았는데 ㅋㅋ 그게 20년전이니..
공주 부여는 백제유적살리면 괜찮을거같은데 ㅠ
잘 봅니다^^~
. . 잔인, 잔혹해야 할 땐. .
그리 해야 헌다.
Hwang- Chil, Mugg- Chil, Hoi- Chil(= White Powder paste for walls as make up foundation), Hk- Chil,.... All are Shallow films to cover up temporarily.
혹시 백제의 충신 장수 계백이 아닙니까?
백제망하지않았으면 망할조선시대도 없었고 일본처럼 발전했을텐데
12년도에 방영된 영상을 어떻게들 찾아보시고 댓글이 어제도 달렸대~~
이게 더 신기하고만ㅋㅋㅋ
중국애들은 참... 니껏도 내것 내것은 내것.... 이런 애들 한테는 묻지 말자 뻔함.
당나라에서 진상된 갑옷을 백제 말기에 당의 통수로 의자왕이 열 받아서 연못에 버린거 아닐지..ㅎㅎ 제작 당시엔 사이가 좋다가 몇년 후 전쟁즈음에 버렸을수도. 멀쩧한 걸 그냥 연못에 버렸으니
당나라 장수가 입었던 갑옷이라는게 밝혀졌잖아. 최신정보가 이렇게 떨어져서야. 즉, 주둔하고 있던 당나라 군대를 누군가 쳐서 박살냈다는거지. 누구겠어? 신라지.
@@大신라혼 증거좀
선조들의 기술력 존나 쩔어준다...
청동기 시대에 이제 막 발을 들여온 왜나라보다 몇 세기는 앞서 먼저 철기시대를 맞이하고 뒤지게 국지전하면서 발달된 상업과 문화, 인프라, 제련 기술력을 주축으로 성장해온 나라가 원삼국 시대(or 열국시대)였음.
추려서 말하자면, 고구려판 델타포스 '개마무사', 신라하면 바다의 어머니 '교관선', 백제하면 철 좀 가지고 놀아봤다는 동아시아 최고 제련 기술자들이 밀집해있던 지역임.
당시의 처절한 전투가 어떠했
을지 짐작이 가네요. 인간의 역사는 전쟁으로 얼룩져 있음도
생각하게 하구요.
역사저널 그날같은, 자기들끼리 스튜디오에서 말장난치고, 까부는 그런 프로그램 말고, 역사스페셜 같은, 이런 프로그램도 좀 만들어주세요.
아름답다. 활홀하다.
공주 공산성 정관19년 당태조연호
645년 의자왕시대 사용유무
갑옷 1,000조각 유물 발견하다
백제왕조가 알고 있듯 비겁하게 굴복했다면, 멸망 이후에도 그 오랜 동안 백제 복원운동이 이루어졌으며 후백제라는 이름의 국가가 나올 수 있었겠냐? 고려,신라의 흔적은 드물어도 그 지역에 백제의 기억이 아직도 있는거 보면 백제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였는지 알 수 있다.
니 이름만봐도신라식일텐데 뭔 개소리냐? 김유신 김춘추 을지운덕 흑치성치 부여의자 연개소문 이름은 신라후손일텐데
백제는 멸망하지않고 일본이 백제로 리마스터된걸로 알고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원주민들은 부라쿠민, 아이누족등 아직까지도 차별당하고있는 반면 전국시대보더라도 명문가 당주들은 한자로 풀었을때 네글자이름 즉, 백제식 이름입니다.
ㅋ 그래?
중국 고고학자 뭐야,,, 비슷하면 다 지네거여?!
와우 무슨일이야
중국학자는 오래된건 다 지들거라네
중국은 문명국이다
저런 주장하는 사람만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 바른 말 하면 끌려감..
그 시 대 중 국 이 란. 나 라 는 없 엇 다
우와..
옻칠의 나라.
황칠의 나라.백제.
통수의 나라 백제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이런것 보면 오히려 삼국시대 기술이 조선시대 보다 더 발달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