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급은 지역라이벌 최욱진 장사(진주)가 결승서 이만기장사(마산)를 이겨 초대한라장사로 등극함! 초대 천하장사 결승서 다시 만나 이만기 장사가 예상을 깨고 우승함! 한라장사 1, 2, 3회 연속으로 최욱진 장사가 우승한것으로 앎! 그러나 최욱진 장사가 부상으로 일찍 은퇴하면서 그 이후 한라급도 이만기 장사가 접수함. 두 선수의 라이벌 관계가 오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음!
이규황 아나운서로 알고있어요! 특히 70년대 아마 고교, 대학, 실업 야구중계 방송을 이호헌 해설위원과 함께 오래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당시 한라급은 최욱진 장사(진주)가 이만기 장사(마산)를 이겨 초대 장사였고 다시 만난 천하장사에서는 이만기 장사가 이겨 초대천하장사였었죠! 저당시 대세는 최욱진장사 였으나 이만기 장사가 혜성같이 나타나 씨름무대를 주름잡았죠! 최욱진 장사는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빠른 운퇴를한것으로 압니다! 두선수가 오래 라이벌로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입니다!
내 나이 칠십이 넘었는데 마산의 김성률 큰장사 라는 최고의 씨름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천하장사가 아니라 김성률장사에게는 큰장사라고 불렸습니다. KBS의 대통령배를 십년 연속으로 우승했습니다.대통령배는 KBS TV에서 중계방송도 했지요.그때도 씨름은 인기가 있었습니다.몸무게도 키도 다른선수들 보다 크지도 않았고 키가 이만기보다 작았을 것입니다. 기술이 좋았습니다.마산상고 고등학교 때부터 전국씨름계를 휩쓸었습니다.마산에는 쟁쟁한 장사들이 많았습니다.이만기의 스승인 황경수코치도 마산상고출신으로 작은 체급에 밑씨름과 손기술이 좋았습니다.옛날 남성도 파출소앞 사거리에 옆에 있던 제일은행 마산지점옆에 은행담장안에 작은 운동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전국씨름대회인지가 열리는 것을 봤는데 그때 키와 체격이 작은 황경수선수를 본 것 같습니다.마산상고 본운동장에는 야구장이 있었고 그 옆에 모래로 된 씨름판에서 상고생뿐 아니라 성인들이 매일 씨름연습들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본운동장 옆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축구장이 있었고 그 뒤에는 체육관겸 실내운동장이 있었고 그 앞에는 농구장이 있었습니다.김성률장사 이전부터 마산씨름은 쟁쟁한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진짜 해설이랑 캐스터 사이는 서로 호흡 맞추면서 사이좋게 가야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저떄는 예능도 아니었는데 자기 말끊는거 거슬리다고 ' 가만히 계세요 ' 이렇게 정색을 때려버리고 거기에 다른말 못하고 ' 예 ' 이렇게 반응하는거 자체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ㅈㄴ 웃긴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뭔 시트콤보는 기분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최욱진 팬입니다. 최욱진을 보기 위해서 여기 왔습니다. (물론 이만기도 좋아합니다.) 아마 최욱진은 이만기보다 한살 많을겁니다.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진정한 강자가 최욱진입니다. 이만기의 뒤집기만큼 최욱진의 뒤집기도 예술이죠.... 이후로 결국 신체적 열세와 허리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지만 참 기억에 남는 선수입니다. 언듯 들려오는 소문에 진주에서 선생님을 하다가 50이란 젊은 나이에 타계하였다 들었습니다. 최욱진 당신은 대한민국의 작은 고추... 멋진 사나입니다.
무슨 지금 아파트 시세를 예전이랑 맞춰서 15억이라고 합니까ㅎ 당시 아파트의 가치 더군다나 잠실의 아파트 가치는 매물이나 수요도 없었을뿐더러 지금 잠실의 아파트 급이 아녔습니다ㅎ 저당시 1500만원이면 현재 약 3억~3억5천 정도의 가치이지요. 당시 돈의 가치는 당시의 물가를 보시거나 서민들의 월급기준 정도로 계산하시는게 더 객관적일듯 합니다. 지나가려다 이런 괴담 못봐서 한 자 적고 갑니다.
확인해 보니 당시 강남쪽 반포 잠실 아파트시세는 1981년 6월 기준 한신공영이 정책발표후(주택 분양 활성화 정책) 눈치보기하다 신반포 15차 냉큼 올린금액인 평당 138만원에 분양했네요(비싼가격) 적당히 보아도 100정도는 하였단 말이겠군요. 그리고 1대 천하장사 대회는 1983년도에 치뤄졌네요. 1981년 기준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24만원이었습니다. 2년뒤인 1983년은 조금더 올랐겠지요^^
명절때 온가족이 모여 보던 유일한 경기 씨름
그때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만기님 참 잘 생기셨다 씨름선수들중 최고의 미남이시다
ㅋㆍ좀명
근육도 젤 멋있었죠 ㅎㅎ 배나온 씨름선수 아닌 몸매도 짱 !!
,
괜히 천하 장사가 아님.. 몸 어후... 괴물이네 완전
아지매 귀여웤ㅋㅋ
고등학교때 체육선생님이 최욱진장사(선생님)이였습니다. 그당시 타학년의 체육선생님이 정말 존경스러운 선수였던 분이다 했을땐 저흰 그냥 아무거도 모르고 아무생각 없었는데 너무 멋지네요 정말
이사람죽었나여?
@@빵빵해요-g4f 2011년 진주남중에서 씨름부장으로 학생들 지도하던중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별세하셨다 하네요. 51세로 아직 한창인 나이인데 안타깝게 가셨네요.
이만기 장사와는 5전 2승 3패로 매우 치열한 경기를 치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v2u 헐 ㅠ
몰랐네요 ..
최욱진하면 기술씨름의 대명사였는데.. 그분은 명성에 비해 이상하게 잘 조명되지가 않더라고요
타계하셨구나 ㅠ
지금봐도 저때 정말 대단했음 기술씨름의 전성기였고 정말 레전드선수들이 군웅할거하던시기 그중에 이만기선수가 독보적 존재로 우뚝섬
역시 대한민국 씨름천하장사. 이만기 장사님. 항상건강하세요
이만기씨우는모습을보니눈물이나요~~장한이만끼씨
그 당시 최고의 선수였음
레전드 선수
미남에 씨름도 잘했던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 선수
1:11
그러씁니당 관중드릴ㅇ!
가만히계세요~
네~!
진행자가 해설자보고 가만히 있으래 ㅋㅋㅋ
다시 봐도 이만기 참 잘 생겼당
한라급대회였나부터 예비 출전자였다 한명 빠져서 출전했는데 준우승하고 그성적으로 천하장사 출전까지 하게 되고 우승까지 했었던 진짜 드라마였던대회.
한라급은 지역라이벌 최욱진 장사(진주)가 결승서 이만기장사(마산)를 이겨 초대한라장사로 등극함! 초대 천하장사 결승서 다시 만나 이만기 장사가 예상을 깨고 우승함! 한라장사 1, 2, 3회 연속으로 최욱진 장사가 우승한것으로 앎! 그러나 최욱진 장사가 부상으로 일찍 은퇴하면서 그 이후 한라급도 이만기 장사가 접수함. 두 선수의 라이벌 관계가 오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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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덕에 씨름이 당시 최고인기였던건 맞는듯 작은 체구가 큰체구를 쓰러뜨리는데 통쾌함을 느꼇을듯
이만기와 더불어 최욱진 손상주 이승삼 이기수 이런 분들이 기술씨름으로 씨름의 묘미를 한껏 올려주었죠
이만기라는선수가
한국씨름을
중흥시킨거라
생각합니다
기술씨름의시작입니다!
이만기 명불허전이다
레전드
실력, 외모, 매너.... 만기 형님 최고입니다 ㅎㅎ
이만기님 이기고나서 온갖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듯 우시네요ㅠ
옛날 군복 입으신 분이 뛰어나와 얼싸안으시는데 누굴까요. 그러고보니 저땐 군복이 흐릿한 카키색이었죠^^
최욱진선수도 정말 대단했어요 기술과 힘
나는 선수들 보다 해설하시는분이 궁금하다 너무나도 정확한해설 상세한설명 요즘에는 보기힘들다
옛날에는 라디오로 청취자도 많이 있기때문에 듣는 사람한테도 잘 전달해야되서 그런거 아닐까요 ㅎ?
@@Apistogrammas 듣고보니 그런거 같습니다 ^^
이규황 아나운서로 알고있어요! 특히 70년대 아마 고교, 대학, 실업 야구중계 방송을 이호헌 해설위원과 함께 오래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당시 한라급은 최욱진 장사(진주)가 이만기 장사(마산)를 이겨 초대 장사였고 다시 만난 천하장사에서는 이만기 장사가 이겨 초대천하장사였었죠! 저당시 대세는 최욱진장사 였으나 이만기 장사가 혜성같이 나타나 씨름무대를 주름잡았죠! 최욱진 장사는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빠른 운퇴를한것으로 압니다! 두선수가 오래 라이벌로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입니다!
진짜 미남!!! 장군감인데 심지어 재밌는 분! 진짜 잘생겼다. 천하장사는 진짜 다르다
두분다 기술이좋아서 큰선수들 다이기고올라왔었음 대단함
실력도매너도
요즘은중후한멋까지~
최고예요
와 씨름을 하는데 무슨 무술을 보는 느낌이네 온갖기술이 다들어가는데 피하고 막고 와.....진짜 저때 씨름 재밌었겠다
역시 이만기 씨름의기술 이만기화이팅
내 나이 칠십이 넘었는데 마산의 김성률 큰장사 라는 최고의 씨름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천하장사가 아니라 김성률장사에게는 큰장사라고 불렸습니다. KBS의 대통령배를 십년 연속으로 우승했습니다.대통령배는 KBS TV에서 중계방송도 했지요.그때도 씨름은 인기가 있었습니다.몸무게도 키도 다른선수들 보다 크지도 않았고 키가 이만기보다 작았을 것입니다. 기술이 좋았습니다.마산상고 고등학교 때부터 전국씨름계를 휩쓸었습니다.마산에는 쟁쟁한 장사들이 많았습니다.이만기의 스승인 황경수코치도 마산상고출신으로 작은 체급에 밑씨름과 손기술이 좋았습니다.옛날 남성도 파출소앞 사거리에 옆에 있던 제일은행 마산지점옆에 은행담장안에 작은 운동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전국씨름대회인지가 열리는 것을 봤는데 그때 키와 체격이 작은 황경수선수를 본 것 같습니다.마산상고 본운동장에는 야구장이 있었고 그 옆에 모래로 된 씨름판에서 상고생뿐 아니라 성인들이 매일 씨름연습들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본운동장 옆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축구장이 있었고 그 뒤에는 체육관겸 실내운동장이 있었고 그 앞에는 농구장이 있었습니다.김성률장사 이전부터 마산씨름은 쟁쟁한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김성률장사가 죽고나서 김성률배전국장사씨름대회가생겻죠 거기에제가 즁학교때 금메달땃던게생각나네요
천하장사 이전에 큰장사라는 호칭이 있었다는게 신기하고 재밌네요. 왠지 천하장사보다 좀 더 입에 붙는 듯 하네요
그래서 어쩌라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큰장사 너무 정감 있네요.
@@romaldocristianoon5012 깝죽대냐
이만기씨씨를~~짱~~존경합니다
진짜 이만기 우월 유전자 ㄷ ㄷ ㄷ ㄷ
정말 이만기 ! 최고였죠. 감사합니다.
이만기 아저씨 젊은 시절 보고 설레네 ㅋㅋㅋㅋ존웃
14:57 그 운을 10번이나.... 해드신.... 교수님 ㅋㅋㅋ
한라체급으로 천하장사 10회 제패기록은 누구도 깨기 어려울 것 ! ,.
이만기장사님 근육 정말 멋지다
군대 않갈려고 찌랄 한거지
이때 기억나요. 초 1때. 그땐 온 가족이 모여서 씨름봤어요. 정말 인기종목이었죠.
서로 무릎꿇기 신경전이 없이 깔끔하게 경기 하네요.
흥미진진 하고 감동이네요.
그건 승부욕을 떠나 강호동이 싸가지가 없던것같아요 보면 고자질하고 삐지고 화내고 도망가고 중도 포기하고 지저분한게 너무 많아요 이만기랑 비교할게 아님
@@flamejj ㅋㅋㅋ
맞아요~
부러 그렇게 했다 하죠
@@flamejj 비교불가임 강호동으로 씨름판이 넘어오면서 관중수가 확 줄어듬
이만기 결승화면과 비교하면 체감됨
이만기 장사 너무 순수하고 살짝 부끄럼도 있는거 같고 멋지네요 최고의 미남
이만기 교수님 씨름 현역시절 프로씨름 인기 너무 좋았었는데 일본쓰모 선수들 경제적으로 뒷받침 되서 성황 우리 대한민국 민속씨름 다시 인기 츠포츠 전성기 오기를 기원합니다
아직도 생각나네 ㅎㅎㅎㅎㅎㅎ 천하장사 만~~~만~~~~세~~~~☆
이만기씨...우리어머니 제자 라고하던데... ㅎㅎㅎ 맨날 운동하느라 뒤에서 잤다고... 어머니가 화학선생님이셨어요 마산고 ^^ 반갑습니다
이만기는 마산상고 출신인데요?
@@agarizomdakchiza2327 마산중을 잘못 쓰신듯 하네요
저시절 그리운 의령고항이생각나네요 ♥만기보면 그시절이촣아네요
진짜 ᆢ
울아빠가 너무너무 좋아하고ᆢ
의령도 정겹고ᆢ
진짜 ᆢ
최고에 레전드 ᆢ
울아빠ᆢ 보고싶다 ㆍ
이만기ᆢ
얼마나 좋아했는데 ᆢ
장딴지 최고봉 이만기
눈빛과 미소가 멋집니다.
힘과 매너까지
씨름계의 마이클조던 인물좋고 기술좋고
3:37 이만기 교수님 저당시에 오른쪽다리가 얼마나 튼튼했던겨...저각도로 체중을 실어 던지는데 버틴다고? 나였으면 십자인대 다 터졌겠는데;;;; ㄷㄷㄷㄷㄷㄷ
다리힘도 좋고 허리힘은 또 어찌나 좋은지 버티고나서 튕겨오르네....
탄력이 장난 아닌듯
와~~이만기 잘생겼다
1:10 ???:가만히 계세요
ㅋㅋㅋㅋ 그만큼 순진했던 시절이죠 ㅋㅋㅋ
@@kde9655 1:12
@@kde9655 1:10 여기부터 보셔야 들림
LOL, I missed this when I watched this. Not just now but when I watched it live almost 40 years ago. Rudeness was not a problem back then ;)
이 개미같은 소리를 어떻게
들었냐? 그낭
이만기 교수님 선수시절 개인전 에서 한번도 우승 한적이 없었다 그런데 민속 프로씨름 출범 하고 천하장사 10번 세상에 우연이 얻어지는건 없군요 노력을 해야 열매를 맺는 진리 고맙습니다
김연경 선수 성장과정과 비슷하네요
인고의 세월이 성공의 동력으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댓가겠지요
선수 시절이 아니라 아마 시절이라고 해야죠. 프로는 선수 시절 아닌가요?
대학시절에 우승한적없다햇어요
잘생겼었네
명절 때 씨름시간 기다렸던 기억이 새록합니다
재밋었고 이만기 씨름 타고 났어요
만기님.얼굴,몸매 존잘이시네
옛날엔 정말 미남이었는건 알고있었는데
종아리가 저때는 지금처럼 굵지않았군요
참 재밌었던 80년대..ㅋㅋㅋㅋ
이만기 홀릭♡
씨름의 부활을 기도합니다 ❤
6:15 여기 진짜 명승부네요 두선수 다 중심이동을 몇번이나 하는건지 ㄷㄷㄷ
이만기 허기기술은 거의 신급이였죠. 만기만기 이만기형님 !!영원한 한국씨름역사의 레전드 !!~♥
조각미남 고경철도 생각나네요
인물도 좋네요
힘과 기술을 모든 갖춘 씨름판의 마이클 조던, 이만기가 없었다면 80년대 씨름이 프로 야구와 맞먹는 인기를 누렸을까?
고향 후배 이만기 80년대 최고
의 선수 였어요 의령군 출신
진정한천하장사 이만기씨 훈남이셨네요 지금도멋지시고요ㅎ
최욱진 장사 정말 잘했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목포 부동산 건축 해주세요. 제주도 516도로 확장 도로 만들어 주세요.
젊은시절 이만기선수 정말 멋지네요 ㅎㅎ
그 당시 4강에서 모든 전문가들이 이준희가 이긴다고, 아나운서까지도 그렇게 얘기 할 정도였는데, 이만기가 이겨서 전부 멘붕이였었지....... ㅋㅋ
설명을 들어보니 넘 재밌어요.이만기 ㅎㅎ만만세.
잘생겼다 머리 숱도 엄청 풍성하셨네여
겨털
자털
똥털
우거짐
기억납니다. 정말 이만기 ! 최고였죠
최고 좋아하네 군대 않갈라고 몸무게 늘린것은ㅅ
찌랄하네 군대 않갈라고 몸무게 늘린것은ㅅ
최고 조지랄 운이 좋았을 뿐이보 나중에 강호동, 이태현, 남동하, 이태현 만났으면 개 족이다
그 당시 이만기가 좀 했지 왜? 힘이 좋았으까 남들은 기술이 좋아 이겼다 하지만 씨름은 힘이 좋아야 함
힘이 없으면 기술 않먹힘. 강호동, 남동하 에게 이만기는 힘이 딸려 백전백패 임. 씨름은 힘이 뒷 받침 되야 함. 이안기가 말하는 ''씨름은 기술이죠'' 하는 광고는 허구일 뿐 임. '' 잘 무야 힘이나고 기술 걸리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장사는
바로 이만기 천하장사
천하장사 만만세
이만기 오라버니
오래오래 건강하쇼잉~~
김해인제대 학생들 건강하고
대한민국 씨름 다시 부활하자
2:05 여기 우측 쯤 당시 풋풋하게 연애 하던 저희 어머니 아버지 계십니다 ㅋㅋ
어우 머리숱 멋집니다 사자갈퀴머리 간지.. 출렁출렁~~~ 승리포스
잘생겼다,
최욱진 장사도 대단 하네요
헐 금성전자랜지 우리집에 있었는데! ㅠㅠ 그립다......
헐 저기 비디오랑 티비도 우리집꺼네... ㅠㅠ 옛날생각나네...
4:45 모래판의 여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므찌닷 이만기 원조상남자
아버지가 아마추어 씨름대회에서 서울대표로 나가셨다 2등 하셨어요. 아빠가 힘쎈게 딸은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나요 쌀 포대도 안 들어주던 힘쎈 울아빠가 보고싶어요.
아이고 ㅎㅎ 만감이 교차하는 리플이네요
이당시때는 해설자들도 상남자들 뿐이였나?ㅋㅋ
"가만히 계세요" "예" ㅋㅋ
역동의 80년대 대한민국 답다ㅋㅋㅋ
진짜 해설이랑 캐스터 사이는 서로 호흡 맞추면서 사이좋게 가야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저떄는 예능도 아니었는데 자기 말끊는거 거슬리다고 ' 가만히 계세요 ' 이렇게 정색을 때려버리고 거기에 다른말 못하고 ' 예 '
이렇게 반응하는거 자체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ㅈㄴ 웃긴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뭔 시트콤보는 기분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in4037 그런 분들에게서 그런 사고방식의 분들에게서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후손들을 키우지...그냥 역사의 한부분 이라고 생각하면 편함.
조선시대에 짚신 고무신 신다가 현대에 운동화로 바뀐것처럼 모든게 같을순없지
@@jh-rt7zz 님 지건마렵네요;
별걸가지고 다 따지네
꼰대마인드!!!
꼰대가 아니라 맞는데 ㅋㅋ 익스트림 시대답네
우워~~호미걸이 고급기술
우리 아버지 생각난다.
어떤 대회였는지 해설자 멘트가 갑자기 생각 나는데 선수 소개 하면서 여기 최욱진 장사는 이만기 장사를 2:0 으로 여러번 이겼습니다...이렇게 말하길래 깜짝 놀랬던 기억이 나네...근데, 직접 본거로는 황영호가 이만기에 더 강하지 않았나 싶기도
프로씨름 전, 아마 시절 얘기하는거 아닌가요?
지금 봐도 참 꽃미남이시네.. 만화를 찢고 나온듯한 외모...
난 최욱진 팬입니다. 최욱진을 보기 위해서 여기 왔습니다. (물론 이만기도 좋아합니다.)
아마 최욱진은 이만기보다 한살 많을겁니다.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진정한 강자가 최욱진입니다.
이만기의 뒤집기만큼 최욱진의 뒤집기도 예술이죠....
이후로 결국 신체적 열세와 허리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지만 참 기억에 남는 선수입니다.
언듯 들려오는 소문에 진주에서 선생님을 하다가 50이란 젊은 나이에 타계하였다 들었습니다.
최욱진 당신은 대한민국의 작은 고추... 멋진 사나입니다.
ps. 그 거대한 이봉걸에게 뒤집기를 시도하는 그대는 참 멋있었습니다.
여기 최욱진 팬 한명 추가입니다.아마 이경기가 제 고등학교떄일겁니다.우리동네 친구들과 보면서 모두 최욱진응원했었던게 기억 나네요..작은 신체를 기술로 승화시킨 작은 거인이었죠..이만기선수도 그떄당시 기술이 화려했었습니다.그때가 그립네요..^^
생각보다 클수도 있어요
뒤집기 기술 멋저요
1:31 그당시
약관 18- ㅎ ㄷ ㅇ ㅜㅜㅜㅜ
다시봐도 명승부입니다 옛날씨름이 그립다 바둑도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트로이카 시대가 그립듯이
바둑은 트로이카가 아니라 서명인 포함해서 4인방이었죠~
해설... 지립니다....
할라급이 백두급 넘어선게
일단 말이 안됨..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체급은 넘사벽
진짜 젊었을 떄 존나 잘생기셨네요
결국 노력이 있었기에 결실을 맺은 것이군요
이만기 천하장사님은
영원한 천하장사 입니다
텔레비젼ㅋㅋㅋ 박물관가면 구경할수있을려나?ㅜ 그립다ㅜ
원래 씨름이란게 왼손잡이에게 유리한 운동임. 강호동이도 그렇고 이만기도 왼손덕으로 1등 좀 했지요. 심지어 전라도쪽에서는 초장에 샅바를 반대로 메자고도 몇번 이야기 했지요
명언이네요
최욱진 정말 멋있는 선수.
작은키로도 정상에 있었지.
뒤집기 기술은 마술과 같았지.
지금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돌아가셨음
@@위왕조맹덕 ㅠ
몆년전 타계해습니다ᆢ경남 진주ᆢ중학교 교사밑 감독으르 재직하다가ᆢ
최욱진 장사 몇년전 심장근색으르 고인이 됬습니다ᆢ
최욱진 최고 ...
14:00 “해볼만하다”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 다 나옴
존나 멋었다
아만기 찬하장사 최고의스타 만능텔렌트이십니다
행님 헤어가 범죄와의 전쟁이네예😄😄
상금이 어마어마 했군요. 지금 가치로 치면 15억도 훨씬 넘는금액으로 보이는데요.
그 당시 잠실 아파트가 500 만원이 채 안되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와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마어마 하네요 !
좋은 비유 감사합니다 ~
무슨 지금 아파트 시세를 예전이랑 맞춰서 15억이라고 합니까ㅎ 당시 아파트의 가치 더군다나 잠실의 아파트 가치는 매물이나 수요도 없었을뿐더러 지금 잠실의 아파트 급이 아녔습니다ㅎ
저당시 1500만원이면 현재 약 3억~3억5천 정도의 가치이지요. 당시 돈의 가치는 당시의 물가를 보시거나 서민들의 월급기준 정도로 계산하시는게 더 객관적일듯 합니다.
지나가려다 이런 괴담 못봐서 한 자 적고 갑니다.
확인해 보니 당시 강남쪽 반포 잠실 아파트시세는 1981년 6월 기준 한신공영이 정책발표후(주택 분양 활성화 정책) 눈치보기하다 신반포 15차 냉큼 올린금액인 평당 138만원에 분양했네요(비싼가격)
적당히 보아도 100정도는 하였단 말이겠군요.
그리고 1대 천하장사 대회는 1983년도에 치뤄졌네요.
1981년 기준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24만원이었습니다. 2년뒤인 1983년은 조금더 올랐겠지요^^
ㅋㅋ이걸 이렇게 비교하네
요세 유튜브덕에 씨름 명경기 정주행중...
씨름의 묘미는 서로 한판씩 주고받는것 1회 천하장사 생각이 납니다 이만기 장사 형님 휴가 나와서 우승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