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향교가 유교 교육의 기존 본질에서 벗어나 출세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는 점 등의 원인이 있습니다. (서원의 기능 참조)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관학은 점차 쇠미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관학이 부진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성균관과 향교가 유교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 출세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유교교육과 학문연구의 주축을 담당해야 할 관학이 단지 개인의 출세를 위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교관들의 질적 저하 현상도 심각한 양상으 나타났다. 이러한 관학의 부진현상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으로 세조(世祖)의 집정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단종(端宗)을 폐위(廢位)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자신의 즉위를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집현전(集賢殿)을 폐지하고 불교를 궁궐 깊숙이 끌어들였다. 이로 말미암아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중시하는 유교의 많은 학자들이 관계에서 물러나 초야(草野)에 묻히고자 하였으며, 무예(武藝)를 중시한 세조의 정책에 따라 학교에 대한 관심도 점차 퇴색해 갔다.
관학이 침체한 원인은 무엇인가요
성균관, 향교가 유교 교육의 기존 본질에서 벗어나 출세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는 점 등의 원인이 있습니다.
(서원의 기능 참조)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관학은 점차 쇠미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관학이 부진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성균관과 향교가 유교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 출세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유교교육과 학문연구의 주축을 담당해야 할 관학이 단지 개인의 출세를 위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교관들의 질적 저하 현상도 심각한 양상으 나타났다. 이러한 관학의 부진현상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으로 세조(世祖)의 집정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단종(端宗)을 폐위(廢位)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자신의 즉위를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집현전(集賢殿)을 폐지하고 불교를 궁궐 깊숙이 끌어들였다. 이로 말미암아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중시하는 유교의 많은 학자들이 관계에서 물러나 초야(草野)에 묻히고자 하였으며, 무예(武藝)를 중시한 세조의 정책에 따라 학교에 대한 관심도 점차 퇴색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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