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무용가...그당시 전세계를 다니며 한국을 알린 귀한분...170 cm 키에 서구적인 미모와 춤...가히 동양의 이사도라 던칸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개인 삶은 역사의 흐름때문에 복잡하셨을테고... 던칸의 경우는...삶이 순탄치 않았고 머플러를 쓰는것을 좋아해 그것도 긴것을...바람에 자유롭게 휘날리는 그모습이 자기의 춤세계와 닮았다고 생각했을까...그러나 오픈카 바퀴에 머플러가 감기면서 사고사를 당하는 비극이...
김백봉의 남편 안제승(安濟承·1922~1998)과 최승희의 남편 안막(본명 安弼承·1910~미상)은 숙명의 대칭관계였다. 안제승의 형이 최승희의 남편 안막이다. 안막은 일제시대 프롤레타리아 시인이자 평론가로 문필을 날렸던 월북작가다. 그는 1931년 10월 조선공산당 재건공작 사건에 연루돼 작품활동을 못하게 되자 이후 최승희의 매니저로 활동했다. 안제승은 경성제1고보(현 경기중)를 중퇴하고 니혼대 영화과에 입학해 2년간 수학하며 형과 형수의 공연을 도왔다. 요즘으로 치면 공연 스태프로 일했다. 그 시절, 김백봉은 ‘하늘 같았던’ 최승희의 제자였으나 1944년 안제승과 결혼하며 최승희와 동서지간이 됐다. 안제승·김백봉은 1951년 1·4후퇴 당시 월남행을 택한다
또 이승희의 친일활동 부분을 말하자면 일제취하아래 무용수로 활동하기에 압력이 많았다고 한다, 남편 안막은 사회주의활동가였는데 최승희는 친일적 활동을 하면서도 남편 안막을 통해 대한광복운동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뭐 물론 이게 자기변호에 불과할수 있겠지만 스스로의 안위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최승희의 이런 행동은 이해가 가기도한다
신영재 최측근의 증언들이고 실제 제자들증언은 남북이념에 관심자체가 없고 굉장히 이기적이며 북으로 넘어간이유자체도 친일행적이 계속 파해쳐져 남측에서 입지가 점점없어지자 결국 남편의 설득으로 월북을합니다 첨에는 김일성의 비호아래 승승장구하다가 안하무인격 처세로 김일성에게 미움을 받고 숙청을 당햇다는게 현재 가장 유력한 설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인간문화재셧던 공옥진여사가 최승희의 몸종으로 몇년를 보냇는데 굉장히 고생을 햇다고합니다. 그냥 전형적인 나르시스트입니다. 춤으로 남긴 업적은 인정하나, 사람자체는 주변에서 좋은소리를 못듣는 악인이었습니다.
글쎄~~~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여지며... 사실이라 해도 또... 어떤 일부분이거나... 그것마저 와전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시대에 세계 공연을 다니려면...;;) 공짜로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여튼, 그러하다 해도... 최승희는 최승희입니다!!♡
먼 옛날인데도 얼굴 표정 춤사위가 현대를 능가하는 너무 쎄련되어있고 시대를 앞선 여인입니다.
진짜 쩔어요.딱 봐도 레전드 카리스마. 신비롭고 사진들이 옛날건데도 촌스럽지않아요.
당시 무성영화계의 슈퍼스타였던 찰리채플린은 최승희씨를 보고 매료되어 꽃다발을 보냈다고 하네요^^
역시 채플린, 대가는 대가를 알아 봤네요!
귀한 영상!
와우😊🌟
진짜 끼 있는 분 이분에게는 이 표현이 가볍게 느껴지는데 진짜이십니다요♡
무당춤 표정연기며 몸동작은 빨려들게 만드네요ㄷㄷ
야릇하면서 진짜 신들린듯한..
이 영상 문화재로 지정해야 합니다
귀한 영상입니다
딩가딩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보살춤 넘 잘보았습니다
춤도 잘추고 미모도 저시대 미모라고 믿기지 않을..지금 이라도 이미모면 연예인 김태희급 될것같네요.👍대박이네요
에이~~~ 비교불가지요 ㅋ^
마지막 춤 보고 기겁했다 정말 엄청난 예술가다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고 영화배우 로버트 테일러가 연서를 보냈다는 분 ㅡ 한국 무용을 접목하며 대성한
무당춤 출때는 진짜 신들린듯한 표정과 동작..ㄷㄷㄷ
예술이다!!!!!
지금 이분이 있다면 트롯보다 더 대단하게 방송 될듯
와우..
최승희🥰~👍
멋있다.
우아하다.
품격이 넘친다.
위대한 무용가^^
와,
최고다~~**
이건 연습해서 나올수 있는 느낌이 아닌데... 타고 나야함, 똑같은 동작을 해도 왜 다른 사람들은 이런 느낌이 안 나는걸까.
정말 재능이 아까웠던 과거 여성들 참 많다!!
타고난 엄청난 끼
최승희선생님은 전설적인 무용가 입니다
최승희가 월북만 안했어도 무용유산을 많이 남겼을건데 남편의 사상땜에 정말 아까운 인물이다 ㅠㅠ
@@villagecat5539 최악의 코멘트
월북 안했으면 그래도 참수당하지 않았을텐데.. 안타까운 역사인거 같아요
★ 빨갱이 남편 따라 월북했다가 비참한 인생종말 맞은 대표적 사례. 재능이 아까우나, 빨갱이 짓하면 자손대대로 죄값 치름. ★
최승희씨는 안막과 결혼 하지않았이며 이때 남편 가수 이교우씨와 결혼 딸 셋이 있었음
@@권력의그림 월북이 아니고 공연가서 감금 당함, 최승희씨 남편은 이교우씨 자녀는 딸셋, 이권 으로 최승희씨 가짜 남편 만든 사람은 누구?
헐.. 이게 1930년대 일건데 ㅎㄷㄷ
표정이 ..전철안에 노인석에 앉아서가는 할머니들의 촌스런 표정
춤은 걍 자연스러움
이건 또 뭐임??? ㅋ~~~^^
진짜 예술가시다
최승희 무용가...그당시 전세계를 다니며 한국을 알린 귀한분...170 cm 키에 서구적인 미모와 춤...가히 동양의 이사도라 던칸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개인 삶은 역사의 흐름때문에 복잡하셨을테고...
던칸의 경우는...삶이 순탄치 않았고 머플러를 쓰는것을 좋아해 그것도 긴것을...바람에 자유롭게 휘날리는 그모습이 자기의 춤세계와 닮았다고 생각했을까...그러나 오픈카 바퀴에 머플러가 감기면서 사고사를 당하는 비극이...
Dear friends: Could I ask for the NAME of the music from 30 seconds-48 seconds and, if possible the composer as well. Thank you so much!
최승희 뿐만 아니라 승무론 당대에 제일 가던 한명숙 선생은????
유난이 손이길군요
춤추는사람들 손길이 긴것좋아함
수건춤중간에 석굴암의 벽조 음이나오고
부채춤은 무당춤 음이나오는..
마지막에 탈춤기본 음이나오넵
뒤에 깔린 음악이 조선음악이 맞나요??
영상에 나오는 무당춤 음악 제목이 무엇인가요?
지금 국악하시는 분들 분발해야 할듯 창의력이 백년전이 앞서는듯
최고의 무희
춤의 전설...
김백봉 동서 최승희
동서 지간 아니고 선생과 제자사이 월북이 아니고 공연가서 잡혀서 억류' 최승희씨 남편은 이교우씨 사이에 는 딸들 셋을 두었습니다가짜들의 얘기가 넘많네요,
63년 일차 부산탈출 여수에서 밀고들어가 다시 돌아가 67년 중국 으로탈츨 76년 전남광주에서 세째딸 마나고 다시 중국으로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 배려로 딸 만나고 중국으로 돌아갈수 박에 없었던 국가간 약속이라고함.
남편은 카프시인 안막의 동생 안제승은 뭐죠?
김백봉의 남편 안제승(安濟承·1922~1998)과 최승희의 남편 안막(본명 安弼承·1910~미상)은 숙명의 대칭관계였다.
안제승의 형이 최승희의 남편 안막이다. 안막은 일제시대 프롤레타리아 시인이자 평론가로 문필을 날렸던 월북작가다. 그는 1931년 10월 조선공산당 재건공작 사건에 연루돼 작품활동을 못하게 되자 이후 최승희의 매니저로 활동했다.
안제승은 경성제1고보(현 경기중)를 중퇴하고 니혼대 영화과에 입학해 2년간 수학하며 형과 형수의 공연을 도왔다. 요즘으로 치면 공연 스태프로 일했다. 그 시절, 김백봉은 ‘하늘 같았던’ 최승희의 제자였으나 1944년 안제승과 결혼하며 최승희와 동서지간이 됐다.
안제승·김백봉은 1951년 1·4후퇴 당시 월남행을 택한다
@@조윤래-g6s 김백봉 남편으로 알고있지만 직결 관계가 아니무로 노코맨트.
부채춤의 기원이 최승희씨였군요,..... 지금 현대의 부채춤과 기교면에서나, 프레임이 크게 다르지 않네요..헌데,. 어째서 제자인 김백봉씨의 창작무로 평가되는지,,,.
춤뿐만 아니라 동서까지 만들어버렸죠'안막은 최승희 오빠도 죽이고 육이오 전쟁 서울입성후 가회동집에서 딸기다리고있는 친정엄마 와 첫째딸 총으로 쏴죽었음'당시 중학생 이었던 동네 사람에게서 직접확인함
제자이자 동서인 김백봉이 그래도 부채춤을 남한에 알린거만으로 다행
최승희선생님의이라는 영상자료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워낙 희귀 자료라 신기하긴한데 별 감흥이
나만 없는건가
당대 같은 무용가 이름은 잊었고 그분에 대한 시기 질투 경쟁심이 좀 있었던것 같던데.
아...! 그럴 수도 있군요 ㅎ^
옛날에는
연예인없기에
이사람 잘한다
생각했게지요
무당신들린것처럼
보이네요
그런 춤을 누구는 사칭해서 자기것으로 만들려고 했을까요?
그냥 남한에 있었으면 천수를 누리며 살았을텐데,, 너무 안타깝다
조선말기 할머니 시대에 모습이....
우리나라 유교사상만 좀 아니얐음 엄청나게 유명해질수 있었고 한국무용 창작이 좀 더 유명해질 수 있었는데 아쉽다
헐 이거 1년 동안 취재하면서 본인이 편집한거네요
진실만 취재하세요
또 이승희의 친일활동 부분을 말하자면 일제취하아래 무용수로 활동하기에 압력이 많았다고 한다, 남편 안막은 사회주의활동가였는데 최승희는 친일적 활동을 하면서도 남편 안막을 통해 대한광복운동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뭐 물론 이게 자기변호에 불과할수 있겠지만 스스로의 안위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최승희의 이런 행동은 이해가 가기도한다
신영재 최측근의 증언들이고 실제 제자들증언은 남북이념에 관심자체가 없고 굉장히 이기적이며 북으로 넘어간이유자체도 친일행적이 계속 파해쳐져 남측에서 입지가 점점없어지자 결국 남편의 설득으로 월북을합니다 첨에는 김일성의 비호아래 승승장구하다가 안하무인격 처세로 김일성에게 미움을 받고 숙청을 당햇다는게 현재 가장 유력한 설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인간문화재셧던 공옥진여사가 최승희의 몸종으로 몇년를 보냇는데 굉장히 고생을 햇다고합니다. 그냥 전형적인 나르시스트입니다. 춤으로 남긴 업적은 인정하나, 사람자체는 주변에서 좋은소리를 못듣는 악인이었습니다.
최승희씨 남편은 당시가수였던 본명 이교우 딸들은 세명' 안막은 최승희씨 오빠 최승호 독침으로 사망케하고 김일성과 서울입성후 안막은 친정엄마 이재원씨 와 딸승자 당시나이 5세 총으로쏴 죽인 사람과 결혼했겠어요? 당신이라면!!!!!!!
잘알지도 모르면서 이런식으로 막말하면 이익 생기나요'후세들 넘 막가파네요' 최승희씨 직접 만나봤나요' 예의을 갖춘것이 인성에 도움.
실제 제자는 스승의명예를 이용해 실력은 없으면서 이익 갈취하는 가짜 제자도있지 않을까요? 최승희 딸 보살펴준 어느 여인은 제자라고 행세한 여자도 있다는 얘기도 있었네요.
글쎄~~~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여지며... 사실이라 해도 또... 어떤 일부분이거나... 그것마저 와전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시대에 세계 공연을 다니려면...;;) 공짜로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여튼, 그러하다 해도...
최승희는 최승희입니다!!♡
공옥진여사가 최승희 집에서 식모살이 할때 그렇게 최승희가 구박하고 못됐다고 함.
한 성질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북한에서 김일성에게도 대들고 했다던데 사실 여부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ᆢ
@@modugasarang4988 최승희는 나중에 김일성에게 숙청당했다고 하던데 최승희가 사망한 이후에도 딸이 북한에서 잘나갔던걸 보면 확실히 전설적인 무용가인건 확실
일평생을 지체장애인 묘사하는 춤으로 사신분의 인성이 좋을지는 의문이 드네요.
@@shinwoori84 공씨 아들이 장애인이라고 알고 있는데, 함부로 말하지 않으셔야 할듯. 공옥진 본인은 병신춤이라고 부르는 걸 싫어했다고 하고요.
서보석 과연 이름이 그 이름인것만 장애인혐오일까요??
1:44 - 2:03 사이 흘러나오는 음악이 한국 음악이 아니라 중국 음악인거 같네요. 앞부분은 얼후+삼현+중국 북의 장단이고(한국 장구의 장단은 아님), 뒷부분은 고쟁의 음색과 기법이네요. 한국의 가야금은 농현을 그렇게 잦게 하지 않거든요.
북한 가야금은 또 다르던걸요. 중국은 저런 뚜당 뚜당 소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짙은 띠용 띠용 소리가 주입니다.
동양무용은 그닥어렵지 않음....부채들고 몇바퀴 우아하게 돌고 팔 덩실덩실하면 끝
분단이여 어서 가라
죄없는 사람을 그리 많이 숙청당하게하다니,,, 소시오야! ㅉ,ㅉ
최승희씨는 월북이 아닌 억류 었기에 언제든지 탈출하려했으나 안막감시 때문에 늦어져 탈출뒤 일어난 일이니 최승희는 죄가없음.
가짜 김영순 인가.
@@이영희-n6d2l 무용하세요?
@@이토순-i7c 북한 정치에 항히 하시지요, 개인에 책임 아니지요, 상식을 알고 글을 쓰셨으면 합니다^^
@la_callastar9852 최승희 탈북으로 숙청?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정치 책임!
일본의 당대 신진무용가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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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아가 훨 더
잘하는것같음 ㅎ
나이드신 영상모습이라 별루 ㅋ
시바 일제강점기에 그렇게 전설적인 춤꾼이라는데 조또 암것도 안느껴디는데.. 요듬사람이라 그런가 암것도 안느껴짐...
브금계정 그때시절에는 춤이란 문화가생소하고예술창조하기어려운거죠. 지금은 뭐 춤은보편화인데그시절엔 무에서유를창조해야함 그때 이렇게춤을추는거자체가 사회에점점 무용을발전시키는기초가됐던거지 알고서나까세요
원래 예술은 지식인들과 상류층에서 향유하던 문화라 학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잘하는지 못하는지 이게 예술사적으로 왜 의미가 있는지 알죠. 조선시대만해도 춤은 양반들이나 보고 즐기는거였어요
말투로 봐선 ᆢ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게 설득력 있어보임.
@@바스테트-w3d ㅋㅋㅋ 말투로 봐선...
난 느껴지는뎁 ㅜㅜ
빨게이 남편을 만난거이 불행의 시작
안막 남편아니고 익권을 위해가짜로 만든 그들의 수작.
남편 따라 북에 갔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클락 게이블이 나하고 같이 공연하자 했을떄 이를 받아 들이고 미국에 있었으면 세계적 명성을 더 날렸을 것..
북한 무용가를 한국 무용가로 소개했네요.러시아인을 우크라이나인으로 소개하는 것 ..
최승희씨는 사실 확인후 억울함을 정부에서 풀어주어 한국을빛넨백인 에 올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