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당시는 지금과 달리 공부 잘하면 무조건 서울대만 가던 시절이어서, 서울대 최하위권이 연고대 최상위권의 점수와 거의 같고,, 또 후기 명문대의 점수가 무지하게 높았어.. 왜냐하면 최상위권의 서울대를 떨어진 학생들이 후기대 한양대 공대나 의대, 그리고 문과는 성균관대 법학과, 한양대 법학과, 외대 영어과등을 갔었거든..
점수가 조금 이상한데....저때는는 예비고사(340점만점,체력장시험 20점포함)+ 본고사( 400점만점)로 국,영,수,과학(물리,화학,생묵,지학)인데..서울대는 우수학생만 뽑으려 과별이 아닌 계열(사회대,인문대,사대,공대,자연대..기타)로 뽑고 79년에 법대(윤석렬 대통령 당선자)를 분리하여 법대,사회대(경제,신문,사회.심리),인문대(국문,국사학과등)공대,자연계..농대,약대,사법대,음대...무조건 서울대빼찌만보고 가는 시기입니다...지금도 의대빼고는 서울대 낮은과가 타대학 최고 학과와 비슷한 점수아닙니까?보통 고고때 서울대 본고사 수준의 국어,영어,수학 시험봐서 평균 60점이면 서울공대합격수준으로 봤고,서울대 수석하던 수준은 평균 90점이상이었읍니다.. 수석합격자와 겨우 커트라인 합격자의 시험성적차도 엄청났는데..타대학이야... 76년까지인가? 친척누나가 짝사랑 하던 경기고다니던 같은교회 남학생때문에 서울대 합격자명단이 난 국내신문을 보고 확인한 기억이 납니다...마치 사시합격자처럼... 서울대수석합격자는 KBS에서 대담회까지 했었지요!!
서울대 78학번으로 당시 사회계열에 합격하였습니다. 78년 당시 입시는 예비고사(340점 만점)와 대학별 본고사로 나누어져 있었으므로 수험생들은 먼저 예비고사를 친 후 다시 대학별 본고사를 쳐야 했습니다.(즉 시험을 2번 쳐야 했음) 서울대의 경우 본고사는 430점 만점(국어 100점, 영어 100점, 수학 100점, 사회 4과목 합계 130점)이었고, 예비고사 성적은 단지 30%만 본고사에 반영했으므로(340 * 0.3 = 102점) 결국 서울대 본고사 총점은 542점(430 + 102 = 542점)이 되는데, 당시 서울대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았던 사회계열의 경우 커트라인이 542점 만점에 405.6점이었습니다.(즉 당시는 계열별 모집이었으므로 법.상대 커트라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고, 법.상대가 포함되어 있던 사회계열의 커트라인이 405.6점이었습니다. 입학후 서울대 신문에서 공식적으로 각 계열별 커트라인을 발표했으므로 위 점수는 아주 정확합니다.)
삼촌이 성룰데 상대 63 학번인데, 차이 별루 없는데 그당시 초;고는 서울 ㅅ강대 라고 그러심. 긍데 고려대 나온 아버지가 전 88 학번인데, 법대가 최고 아니냐구 하니? 그당시는 서울대 상대가 최고라함. 법데보다 유명히ㅏㄴ 사람 더많음. 한승수도 서울상대, 김문수 서울상대, 유시민 서울상대, 대한민국 공무언 최 고위는 다 서울상대임.1990년대 아버지가 대기업 전무이사인데, 면접 봐도 꽉막힌 법대는 고시 공부하다 망하고, 문과는 서울 상대, 법대 하고는 차원이 틀림. 고시는 거의다 경제기획감, 특히 한국은행은 90 프로 이상 서울 상대.. 보시면암. 서욹사ㅇ데 동문화 따로 있음. 대한민국은 공무원 다 서울상대가 이끔. 국무총리중에 서울법대 하고 상대 보면 알음, 상대는 법대 좃밥으로 암, 대모도 안하고 출새하갰다고 도서관 짱박힌다함, 서울법대보다 성루 상대 보면 후덜덜
저 당시는 지금과 달리 공부 잘하면 무조건 서울대만 가던 시절이어서, 서울대 최하위권이 연고대 최상위권의 점수와 거의 같고,, 또 후기 명문대의 점수가 무지하게 높았어.. 왜냐하면 최상위권의 서울대를 떨어진 학생들이 후기대 한양대 공대나 의대, 그리고 문과는 성균관대 법학과, 한양대 법학과, 외대 영어과등을 갔었거든..
이 정도 점수차면 아예 다른 대학 수준이네.
점수가 조금 이상한데....저때는는 예비고사(340점만점,체력장시험 20점포함)+ 본고사( 400점만점)로 국,영,수,과학(물리,화학,생묵,지학)인데..서울대는 우수학생만 뽑으려 과별이 아닌 계열(사회대,인문대,사대,공대,자연대..기타)로 뽑고 79년에 법대(윤석렬 대통령 당선자)를 분리하여 법대,사회대(경제,신문,사회.심리),인문대(국문,국사학과등)공대,자연계..농대,약대,사법대,음대...무조건 서울대빼찌만보고 가는 시기입니다...지금도 의대빼고는 서울대 낮은과가 타대학 최고 학과와 비슷한 점수아닙니까?보통 고고때 서울대 본고사 수준의 국어,영어,수학 시험봐서 평균 60점이면 서울공대합격수준으로 봤고,서울대 수석하던 수준은 평균 90점이상이었읍니다..
수석합격자와 겨우 커트라인 합격자의 시험성적차도 엄청났는데..타대학이야...
76년까지인가? 친척누나가 짝사랑 하던 경기고다니던 같은교회 남학생때문에 서울대 합격자명단이 난 국내신문을 보고 확인한 기억이 납니다...마치 사시합격자처럼...
서울대수석합격자는 KBS에서 대담회까지 했었지요!!
566점 만점 입니다.
예비고사 반영율은 일부만 되었고 79학번부터 50%상 반영 되었습니다
서울대 78학번으로 당시 사회계열에 합격하였습니다. 78년 당시 입시는 예비고사(340점 만점)와 대학별 본고사로 나누어져 있었으므로 수험생들은 먼저 예비고사를 친 후 다시 대학별 본고사를 쳐야 했습니다.(즉 시험을 2번 쳐야 했음) 서울대의 경우 본고사는 430점 만점(국어 100점, 영어 100점, 수학 100점, 사회 4과목 합계 130점)이었고, 예비고사 성적은 단지 30%만 본고사에 반영했으므로(340 * 0.3 = 102점) 결국 서울대 본고사 총점은 542점(430 + 102 = 542점)이 되는데, 당시 서울대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았던 사회계열의 경우 커트라인이 542점 만점에 405.6점이었습니다.(즉 당시는 계열별 모집이었으므로 법.상대 커트라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고, 법.상대가 포함되어 있던 사회계열의 커트라인이 405.6점이었습니다. 입학후 서울대 신문에서 공식적으로 각 계열별 커트라인을 발표했으므로 위 점수는 아주 정확합니다.)
뭔 커트라인인지요? 예비고사 보고 나서 본고사야 당시 학교마다 문제가 다른데...
서울대 자체 본고사전형 커트라인 입니다
즉자연, 인문계열 합격 최저점 입니다
서울대에서 어느 계열,학과가 인기가 있었는지 비교 자료 입니다
삼촌이 성룰데 상대 63 학번인데, 차이 별루 없는데 그당시 초;고는 서울 ㅅ강대 라고 그러심. 긍데 고려대 나온 아버지가 전 88 학번인데, 법대가 최고 아니냐구 하니? 그당시는 서울대 상대가 최고라함. 법데보다 유명히ㅏㄴ 사람 더많음. 한승수도 서울상대, 김문수 서울상대, 유시민 서울상대, 대한민국 공무언 최 고위는 다 서울상대임.1990년대 아버지가 대기업 전무이사인데, 면접 봐도 꽉막힌 법대는 고시 공부하다 망하고, 문과는 서울 상대, 법대 하고는 차원이 틀림. 고시는 거의다 경제기획감, 특히 한국은행은 90 프로 이상 서울 상대.. 보시면암. 서욹사ㅇ데 동문화 따로 있음. 대한민국은 공무원 다 서울상대가 이끔. 국무총리중에 서울법대 하고 상대 보면 알음, 상대는 법대 좃밥으로 암, 대모도 안하고 출새하갰다고 도서관 짱박힌다함, 서울법대보다 성루 상대 보면 후덜덜
60대 뇌썩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