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빠지면 안 돼" 1970년~90년대 대구의 반상회 | 백투더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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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8 фев 2025
- [대구MBC뉴스]
반상회의 유래는 조선 시대 오가작통법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15세기 호패법과 연계되면서 중앙정부와 사림, 백성을 연계시키기 위한 제도였는데요,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조선을 통제하기 위한 '반' 조직으로 이어졌고, 제1공화국 이후에는 향보단, 민보단, 국민반, 국민방 등의 이름으로 운영되다가 1961년 5.16 군사 반란 이후에는 재건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1967년부터 공식적으로 반상회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는데요, 새마을운동 이후 반상회는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정부 주도의 반상회 기능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고 참여율도 점차 떨어졌습니다. 요즘은 주민 자치회, 공동체 활성화 모임,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 모임 등 자발적인 자치 모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대구의 반상회 모습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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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반원의 정기적 모임으로 반상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가, 유신 이후인 1976년 5월 말부터 관주도로 본격적으로 반상회가 운영되면서 전국적인 정례 반상회의 날(매월 25일)이 제정되었다.
1977년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반상회는 1976년 한해 동안 전국 25만 8,821개 반에 설치, 매달 평균 579만 1,600가구가 참석(참석율 85.8%)하였고, 총 42만 2,000건의 접수된 민원 중 28만 9,000건이 시책에 반영되어 건의사항의 68.5%가 해결되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저 당시에는 정말 반상회가 성행했다 동네 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의논하고 어릴 때에는 동네 반장님이라는 것도 굉장히 인지도 있는 나름 감투였다 지금은 통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어도 뭐하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시대지만 저 땐 함께 모여서 다과 나누고 담소도 나누고 그냥 동네가 항상 활기차고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