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도 중 사마리아여인에 대해 저에게 새롭게 열어 주신 생각과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계속해서 버림받았던... 그런 삶의 허무함에 진정한 예배가 갈급했던 여인.. 그런 여인의 갈급함을 아시고 먼저 가셔서 기다리시고 만나주셨던 예수님♡ 그래서 사마리아여인이 천국에서 참 억울했겠다라는 생각 들었답니다^^
시골에 살때 의외로 몇번 결혼한 경우를 봤습니다. 남편과 사별후 경제적 이유로 결혼했는데 또 사별 3번까지 봤죠. 저도 습관적으로 창녀라고 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확실한 것은 창녀는 아니겠구나 싶어요. 다시 생각하게 해 주시어 고맙습니다.그리고 첫번째 결혼해서 애기를 낳지 못해 이혼하고 충무로 영락교회 앞에서 장사하다 그 교회 장로님과 재혼해서 애기 낳은 경우도 봤어요.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확장된 열린생각이 떠오르겠어요. 주변에서 많이 봤는데 그냥 스치다니...... 놀라울뿐입니다. 분명한건 창녀가 아니라는것을 알게된것 고맙습니다.
저도 고정관념을 깨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처음보는 구절처럼 아주 천천히 읽습니다. 무조건 성경 통독 몇번했다고 성경의 내용까지 파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성경이 정확하게 이 사마라아 여인에 대하여 어떤 여인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추정하는 것입니다. 다만 누가 더 합리적으로 추정하는가 입니다. 지금까지는 창녀라고 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 또는 남편과 사별한 여인 이라고 많이 해석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어떤 편견도 없이 이 내용을 읽으면 사마리아 여인은 굉장히 영적인 여인임을 알 수 있다. 이 여인의 갈급함을 아시고 일부러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이란 구절에서 창녀로서의 삶보다 다섯 남편과 연관 돼 기구한 운명에 맞선 이 여인의 남다른 삶이 연상이 된다. 아마도 연이은 남편 또는 남편의 역할을 하는 남자의 의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인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는 가르침을 예수께서 이 여인을 통해 주실 정도로 참된 예배와 진리를 갈구하는 영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석같다.
남편이라고 표현한 헬라어를 알고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사마리아여인은 믿음이 신실한 즉 사마리아에서 평판도 좋은 여인이라고 봅니다 주님도 참되다고 칭찬하시고 유대인들보다 더 훌륭하게 몇마디 대화하고 그리스도를 알아볼 정도로 사마리아땅에서 그리스도를 사모한 여인 같습니다 남편은 오늘날 대부분 목사처럼 회개와 심판을 전하지 않고 교회생활을 강조하다가 정작 죽을때 두려워 떠는 거짓목사를 지칭하는 것 같아요 진짜 생명의 말씀에 목마른 여인
안녕하세요..질문이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고향이 갈릴리..즉 북이스라엘 땅이어서 앗수르에게 멸망당했던 곳이었을텐데요.. 왜 제자들조차도 같은 사마리아 지역 사람들을 차별한 것인가요? 당시 유대지역(바벨론 멸망) 외에 갈릴리 지역 사람들도 사마리아지역과 같은 역사 아닌지요.
좋은 질문이십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도 같은 북이스라엘이 맞습니다. 하지만 포로기때 사마리아에 남겨진 백성들은 이방인과 결혼하여 혼혈 민족이 되었습니다. 또 우상을 섬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왔을때 예루살렘 재건을 방해하면서 깊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지역에 남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같은 민족으로 받아 들이지 않았고 이방인 보다 못한 타 민족으로 취급했습니다.
@@김문경-w9k 혼혈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혼혈을 통하여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방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있습니다. 혼혈 자체가 문제라면 예수님도 혼혈이 되고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포로기에 사마리아 인들과 갈릴리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혼혈 문제가 아니라 민족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으며 또 포로기 이후 정착할때 방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과 갈등이 있는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정착했고 경건한 유대인들는 사마리아 지역을 피하여 거주하고 생활 했습니다. 이러한 지역적 갈등도 예수님 시대 이후에는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형사취수제로 인해 시동생들과 결혼했다는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도 남편이 죽고 시동생과 결혼했는데 하나님이 이시동생의 행동(밖에다 사정)때문에 죽이시고 아직 성년이 못된 막내차례를 기다리다가 막내를 주지않아서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을 하게 된거죠. 당시에 일부다처제이므로 비슷한나이의 형제가 여럿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고 여섯번째는 아직 성년이 못되어서 남편이라 할 수 없었다고 보는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질병외에도 여러 전쟁과 열심당등 갖은 전투가 있었다는건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로마에 반대하는 반란 때문에 갈릴리지역이 피바다가 되었다는 건 역사적 사실입니다. 억지로 논리를 맞추는것보다 역사적 배경을 아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모르겠다 싶은건 여러견해가 있다라고만 하시지 같이 알아보자든지 알아보겠다는 분들이 드물더군요. 밑에 댓글에 좋은 지적을 하셨든데 다른 공관복음들과 다르게 사도요한은 로마식 시간으로 기록 했다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정오에 우물가에 가신게 아니라 해질녁에 가신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물길러 온 시각이 정오라고 해석하셨고, 여러 목사님들도 모두 그 해석을 적용해서 사마리아 여인 = 창녀 로 못박는 경우가 전통적 해석 방법인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은 이스라엘 멸망후 로마식 시간으로 썼다고 봐야 맞을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앉은 이유가 요4장 6절에 피곤하여...로 보아서 보아서 저녁 6시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19장 14절에 제육시라 했던것을 오전 6시로 본다면 요한복음 시간대가 딱 들어 맞습니다. 영적으로 음란한 상태의 사마리아인들도 구약에서 말씀하신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여인이 여러 우상을 섬겼지만 채워지지않는 목마름이 있었는데 영원한 생명수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영적 고갈이 해결된것을 말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이 유대인 대상으로 쓴 성경이기 때문에 '하나님나라' 대신 '천국'이라고 표기하고, 마가복음은 로마인 누가복음은 이방인에게 요한복음은 태초부터 말세까지에 대한 내용으로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된 AD 70년 이후, 95년 이전에 쓰여진 성경이기 때문에 읽는 대상이 그 후의 모든 사람을 대상이 썼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요한복음 전체를 읽으며 우물가에 여인이 나온 시간대는 오후 6시, 예수님이 빌라도앞에선 시간은 요18:28절 새벽이라 하셨으니 요19:14의 제육시는 아침 6시가 맞다고 봅니다. 그래야 수가성 여인의 이야기가 몸의 음란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갈급함인것이 설명된다고 봅니다.
흔히들 설교하고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간 시간은 정오가 아닙니다. 다른 복음서들에 나오는 6시는 유대시간으로 정오를 말하지만, 요한복음의 6시는 정오가 아니라 로마시간인 저녁 6시를 가리킵니다. 요19장14절의 육시를 보면 정오가 아니라 새벽6시임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웃의 시선을 피해서 아무도 물길러 가지 않는 정오에 우물가에 간 것이 아닙니다. 비평적 접근 방법도 좋고 설교 내용 중 많은 면에서 공감되는 부분도 보이나 시간적인 부분에서는 오해를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간 시간이 이웃의 시선을 피해서 간 것이 아닌 부분부터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지금의 해석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시게 될 것입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이 시간에 대하여서는 많은 논쟁이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유대시간이냐, 로마시간이냐 이런 농쟁 뿐아니라 당시 로마 시간과 유대 시간은 차이가 없다는 논쟁까지 다양합니다. 정황상 저녁 6시라는 해석도 많은 공감대가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저녁 먹을 시간에 음식을 구하러 간것과 점심을 잘 먹지 않는 유대인의 관습과도 일치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저녁시간 이라면 또 유대 관습상 숙박할 곳을 찾아 마을로 함께 들어가했다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또 여인은 마을로 혼자 뛰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숙박을 제공하거나 예수님의 숙박에 신경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시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것입니다.
@@BibleTV 그래서 제가 요한복음 19장을 보시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19장의 육시라는 시간이 새벽 6시고 요4장의 육시가 정오라면 요한복음을 두 명의 저자가 쓴 것이 됩니다. 19장의 시간 육시를 요4장처럼 정오라고 본다면 예수님 십자가에 달린 아침 9시보다 늦은 정오가 되는 것이기에 복음서 자체가 오류를 갖게 됩니다. 요한복음서가 로마시간을 따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고, 유대시간으로 해석한 정통 해석은 신학자들의 오해와 긴 시간에 걸쳐서 내려온 오류입니다. 19장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시면 이것은 고민과 묵상이 필요한 어려운 문제가 아닌 더하기 빼기 같은 아주 단순한 산수와도 같은 쉬운 문제였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jhpark8943 지금까지 시간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최근에 로마식 시간이라는 주장이 많아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시간이 총 5회 나타나는데 님의 말씀처럼 로마식으로 해석해야 합당하다고 인정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BibleTV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하여 아무도 물길러 가지 않는 시간에 우물가에 갔었던 것이 아니었었다면,,, 이 여인은 어떤 수치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요... 여러 다른 관점에서 본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을 기대해봅니다.
@@jhpark8943 제 해석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봅니다. 현재 남편이 없고, 전 남편이 많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역에서 여자가 결혼을 많이 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나와 같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가 가장 합당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 외에 여자가 결혼을 여러번 할 이유는 거의 없다고 확신합니다. 한나도 이 문제를 예배와 기도에서 찾으려 했고,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이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제일 먼제 물어본 것이 참된 예배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사마리아 여인이 창녀가 아니고 아이를 갖지 못하여 여러번 결혼한 비운의 여인이고, 현재 경제적 문제 때문에 한 남자와 살고 있는 여인으로 추론하고 있습니다. 또 여인들이 모여 있어야할 시간에 우물가에 혼자였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너무감사합니다
목사님의 강의는 정말최고입니다
이시대에 우리에게 너무나 유익한강의라는걸 정말정말 최고입니다❤❤❤
계속해서 시청해주시고 좋게 평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명쾌하게 설명을 해줘서
성경을 바라보는 안목이
틔어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가진 선입견을 조금 내려 놓으면 많은 것이 보입니다. 열심히 연구하셔서 더 좋은 안목을 나누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넘 많은 고정관념이 깨집니다
힘내세요 !
감사합니다.
오~~ 요즘 사마리아를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 귀한 자료를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또 다른 관점으로 해석했습니다.
어제 기도 중 사마리아여인에 대해 저에게 새롭게 열어 주신 생각과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계속해서 버림받았던...
그런 삶의 허무함에 진정한 예배가 갈급했던 여인.. 그런 여인의 갈급함을 아시고 먼저 가셔서 기다리시고 만나주셨던 예수님♡
그래서 사마리아여인이 천국에서 참 억울했겠다라는 생각 들었답니다^^
오해 받는 사람은 항상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 오해에도 하나님과의 진정한 예배를 갈망했던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공감해 주시고 댓글 달아 주신것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올바른깨달음허락하소허
감사합니다
시골에 살때 의외로 몇번 결혼한 경우를 봤습니다. 남편과 사별후 경제적 이유로 결혼했는데 또 사별 3번까지 봤죠. 저도 습관적으로 창녀라고 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확실한 것은 창녀는 아니겠구나 싶어요. 다시 생각하게 해 주시어 고맙습니다.그리고 첫번째 결혼해서 애기를 낳지 못해 이혼하고 충무로 영락교회 앞에서 장사하다 그 교회 장로님과 재혼해서 애기 낳은 경우도 봤어요.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확장된 열린생각이 떠오르겠어요. 주변에서 많이 봤는데 그냥 스치다니...... 놀라울뿐입니다. 분명한건 창녀가 아니라는것을 알게된것 고맙습니다.
저도 고정관념을 깨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처음보는 구절처럼 아주 천천히 읽습니다. 무조건 성경 통독 몇번했다고 성경의 내용까지 파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성경이 정확하게 이 사마라아 여인에 대하여 어떤 여인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추정하는 것입니다. 다만 누가 더 합리적으로 추정하는가 입니다. 지금까지는 창녀라고 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 또는 남편과 사별한 여인 이라고 많이 해석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정말 은헤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목사님의 추론에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설교 땡큐.
어떤 편견도 없이 이 내용을 읽으면 사마리아 여인은 굉장히 영적인 여인임을 알 수 있다. 이 여인의 갈급함을 아시고 일부러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이란 구절에서 창녀로서의 삶보다 다섯 남편과 연관 돼 기구한 운명에 맞선 이 여인의 남다른 삶이 연상이 된다. 아마도 연이은 남편 또는 남편의 역할을 하는 남자의 의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인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는 가르침을 예수께서 이 여인을 통해 주실 정도로 참된 예배와 진리를 갈구하는 영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석같다.
좋은 의견이십니다. 우리의 선입견이 이 여인을 너무 무시한 것 같습니다. 예배에 갈급했던 여인,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싶었던 갈급함이 있었던 여인이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울나라 500여년전애도 여자가 남자를 버릴수 없는 사회엿는데 그당시에 여자가 어떤 선택의 권한이 잇엇을까요 저도 어떤이유로 버림받앗던 여자엿다거 생각됩니다
좋은 의견이십니다. 어떤 이유이건 버림받은 여자가 가장 유력합니다.
남편이라고 표현한 헬라어를 알고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사마리아여인은 믿음이 신실한 즉 사마리아에서 평판도 좋은 여인이라고 봅니다 주님도 참되다고 칭찬하시고 유대인들보다 더 훌륭하게 몇마디 대화하고 그리스도를 알아볼 정도로 사마리아땅에서 그리스도를 사모한 여인 같습니다 남편은 오늘날 대부분 목사처럼 회개와 심판을 전하지 않고 교회생활을 강조하다가 정작 죽을때 두려워 떠는 거짓목사를 지칭하는 것 같아요 진짜 생명의 말씀에 목마른 여인
아이라오
안녕하세요..질문이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고향이 갈릴리..즉 북이스라엘 땅이어서 앗수르에게 멸망당했던 곳이었을텐데요..
왜 제자들조차도 같은 사마리아 지역 사람들을 차별한 것인가요?
당시 유대지역(바벨론 멸망) 외에 갈릴리 지역 사람들도 사마리아지역과 같은 역사 아닌지요.
좋은 질문이십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도 같은 북이스라엘이 맞습니다. 하지만 포로기때 사마리아에 남겨진 백성들은 이방인과 결혼하여 혼혈 민족이 되었습니다. 또 우상을 섬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왔을때 예루살렘 재건을 방해하면서 깊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지역에 남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같은 민족으로 받아 들이지 않았고 이방인 보다 못한 타 민족으로 취급했습니다.
@@BibleTV 답변 감사드립니다.
갈릴리도 앗수르에 같이 망했지만, 사라미아 지역인들같은 나쁜 행동들을 유대민족들에게 하지 않았었군요.
그런데, 갈릴리도 앗수르 식민지 정책으로 사마리아처럼 혼혈민족이 되지 않았었나요?
@@김문경-w9k 혼혈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혼혈을 통하여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방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있습니다. 혼혈 자체가 문제라면 예수님도 혼혈이 되고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포로기에 사마리아 인들과 갈릴리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혼혈 문제가 아니라 민족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으며 또 포로기 이후 정착할때 방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과 갈등이 있는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정착했고 경건한 유대인들는 사마리아 지역을 피하여 거주하고 생활 했습니다.
이러한 지역적 갈등도 예수님 시대 이후에는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BibleTV 정말 감사드립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 입니다
형사취수제로 인해 시동생들과 결혼했다는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도 남편이 죽고 시동생과 결혼했는데 하나님이 이시동생의 행동(밖에다 사정)때문에 죽이시고
아직 성년이 못된 막내차례를 기다리다가 막내를 주지않아서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을 하게 된거죠.
당시에 일부다처제이므로 비슷한나이의 형제가 여럿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고
여섯번째는 아직 성년이 못되어서 남편이라 할 수 없었다고 보는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질병외에도 여러 전쟁과 열심당등 갖은 전투가 있었다는건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로마에 반대하는 반란 때문에 갈릴리지역이 피바다가 되었다는 건 역사적 사실입니다.
억지로 논리를 맞추는것보다 역사적 배경을 아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모르겠다 싶은건 여러견해가 있다라고만 하시지
같이 알아보자든지 알아보겠다는 분들이 드물더군요.
밑에 댓글에 좋은 지적을 하셨든데
다른 공관복음들과 다르게 사도요한은 로마식 시간으로 기록 했다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정오에 우물가에 가신게 아니라 해질녁에 가신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예수님이 그 여인에 대하여 죄에 관한 말을 한 적이 없음에도 거의 모든 교회들이 사마리아 여인을 죄인으로 정죄한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죄 없는 여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죄악을 교회에서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죄인으로 또 창녀로 폄하하고 정죄한다는 것에는 동의 합니다. 교회가 이 여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심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물길러 온 시각이 정오라고 해석하셨고, 여러 목사님들도 모두 그 해석을 적용해서 사마리아 여인 = 창녀 로 못박는 경우가 전통적 해석 방법인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은 이스라엘 멸망후 로마식 시간으로 썼다고 봐야 맞을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앉은 이유가 요4장 6절에 피곤하여...로 보아서 보아서 저녁 6시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19장 14절에 제육시라 했던것을 오전 6시로 본다면 요한복음 시간대가 딱 들어 맞습니다.
영적으로 음란한 상태의 사마리아인들도 구약에서 말씀하신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여인이 여러 우상을 섬겼지만 채워지지않는 목마름이 있었는데
영원한 생명수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영적 고갈이 해결된것을 말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이 유대인 대상으로 쓴 성경이기 때문에 '하나님나라' 대신 '천국'이라고 표기하고,
마가복음은 로마인
누가복음은 이방인에게
요한복음은 태초부터 말세까지에 대한 내용으로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된 AD 70년 이후, 95년 이전에 쓰여진 성경이기 때문에 읽는 대상이 그 후의 모든 사람을 대상이 썼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요한복음 전체를 읽으며
우물가에 여인이 나온 시간대는 오후 6시,
예수님이 빌라도앞에선 시간은 요18:28절 새벽이라 하셨으니 요19:14의 제육시는 아침 6시가 맞다고 봅니다.
그래야 수가성 여인의 이야기가 몸의 음란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갈급함인것이 설명된다고 봅니다.
동의합니다. 저도 얼마전 요한복음의 시간에 대한 해석들을 살펴보다가 로마식 시간 표시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최근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이정원 목사님.
유태교와 기독교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 부탁합니다.
다들 흐릿하게 말씀하시니...(말씀하는분도 잘모르는듯한 느낌적 느낌! ㅎㅎㅎ)
더 모르겠더라구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떡배님께서 먼저 질문하신 그 종교간 관계성을 out put 하시지요
유다와 유대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본인 부터 밑밥을 던지고 또 까시고 나서
낛시대
챔!질을 하신다면.. 손맛이 더욱 클텐데요
감나무밑에 누워서 입은 고마 벌리심이..
흔히들 설교하고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간 시간은 정오가 아닙니다. 다른 복음서들에 나오는 6시는 유대시간으로 정오를 말하지만, 요한복음의 6시는 정오가 아니라 로마시간인 저녁 6시를 가리킵니다. 요19장14절의 육시를 보면 정오가 아니라 새벽6시임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웃의 시선을 피해서 아무도 물길러 가지 않는 정오에 우물가에 간 것이 아닙니다.
비평적 접근 방법도 좋고 설교 내용 중 많은 면에서 공감되는 부분도 보이나
시간적인 부분에서는 오해를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간 시간이 이웃의 시선을 피해서 간 것이 아닌 부분부터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지금의 해석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시게 될 것입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이 시간에 대하여서는 많은 논쟁이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유대시간이냐, 로마시간이냐 이런 농쟁 뿐아니라 당시 로마 시간과 유대 시간은 차이가 없다는 논쟁까지 다양합니다.
정황상 저녁 6시라는 해석도 많은 공감대가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저녁 먹을 시간에 음식을 구하러 간것과 점심을 잘 먹지 않는 유대인의 관습과도 일치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저녁시간 이라면 또 유대 관습상 숙박할 곳을 찾아 마을로 함께 들어가했다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또 여인은 마을로 혼자 뛰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숙박을 제공하거나 예수님의 숙박에 신경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시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것입니다.
@@BibleTV 그래서 제가 요한복음 19장을 보시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19장의 육시라는 시간이 새벽 6시고 요4장의 육시가 정오라면 요한복음을 두 명의 저자가 쓴 것이 됩니다. 19장의 시간 육시를 요4장처럼 정오라고 본다면 예수님 십자가에 달린 아침 9시보다 늦은 정오가 되는 것이기에 복음서 자체가 오류를 갖게 됩니다.
요한복음서가 로마시간을 따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고, 유대시간으로 해석한 정통 해석은 신학자들의 오해와 긴 시간에 걸쳐서 내려온 오류입니다.
19장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시면 이것은 고민과 묵상이 필요한 어려운 문제가 아닌 더하기 빼기 같은 아주 단순한 산수와도 같은 쉬운 문제였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jhpark8943 지금까지 시간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최근에 로마식 시간이라는 주장이 많아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시간이 총 5회 나타나는데 님의 말씀처럼 로마식으로 해석해야 합당하다고 인정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BibleTV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하여 아무도 물길러 가지 않는 시간에 우물가에 갔었던 것이 아니었었다면,,,
이 여인은 어떤 수치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요...
여러 다른 관점에서 본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을 기대해봅니다.
@@jhpark8943 제 해석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봅니다. 현재 남편이 없고, 전 남편이 많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역에서 여자가 결혼을 많이 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나와 같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가 가장 합당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 외에 여자가 결혼을 여러번 할 이유는 거의 없다고 확신합니다. 한나도 이 문제를 예배와 기도에서 찾으려 했고,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이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제일 먼제 물어본 것이 참된 예배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사마리아 여인이 창녀가 아니고 아이를 갖지 못하여 여러번 결혼한 비운의 여인이고, 현재 경제적 문제 때문에 한 남자와 살고 있는 여인으로 추론하고 있습니다. 또 여인들이 모여 있어야할 시간에 우물가에 혼자였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