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가르치니 좋은 것 같습니다. 다 듣진 못했지만, 열성과 애국심이 느껴집니다. 자막에 명 태종, 정몽부 등 오타가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정몽주가 일본에 간 것에 대한 기술은 조금 정확치 않은 것 같습니다. 가서 갇힌 것은 아니고 일본의 주장이 반란군과 싸우느라 절에 기다리며 좀 오래 머물렀습니다. 감사합니다.
ruclips.net/video/9-3pS8DPVFc/видео.html 이 영상은, 1888년생으로 조선황실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했고, 한일병합 후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기자ㆍ1913년 매일신보 편집국장을 지낸 등 일제 시대를 관통한 지식인이었던 윤백남이 세조 때 정난공신 '홍윤성'을 빗대 쓴 역사소설을 리뷰하는 영상입니다. 이 작품 '홍윤성과 절부' 역사소설은, 손자병법 36계 중 '지상매괴' 를 응용한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지상매괴'~ '뽕나무를 가르켜 회나무를 욕한다". 시어머니에게서 나무람을 들은 며느리가 부엌에 들어가 고양이를 발로 찬다는 등 유사한 속담도 많지요. 홍윤성이 정난공신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훈구대신으로 권력남용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겠지만, 이 작품 속에 언급된 정도의 난신적자였는 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홍윤성은 한명회를 통해 발탁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 속의 내용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홍윤성은 우의정ㆍ좌우정ㆍ영의정을 지냈고, 성종 때 부원군ㆍ좌리공신에 책봉된 점으로 보아, 이 작품 속의 '사실관계'는 후대에 정적들에 의해 '조작' 된 가짜뉴스일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 숙종 때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환국정치로 정치쇄신을 행하던 때, 숙종은 '단종'을 복권시키고 사육신. 생육신을 복권시키면서 기득권층을 쇄신하게 되었는데 이때 직계 조상인 세조를 폄하할 수는 없었기에, 정난공신 중 행동대장 격인 홍윤성 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방식으로 세조의 단종 죽임에 대한 비난을 피하면서 단종을 복권시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일종의 '탕평책'을 시도하는 우회전략을 쓰면서 홍윤성 등을 졸지에 파렴치한으로 전락시키기 위한 역사조작 프로젝트가 가동됐던 듯 보입니다^^ 이 작품이 나온 시대 배경은 1910년대 즉 한일합방(한일병탄) 직후, 역시 그 시대 사람들은 사실상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할 고종. 순종에게 책임을 져야한다는 추궁이나 비난을 하기는 황송했을? 당대 지식층들은 '지상매괴' 방식으로 그 책임을 이완용 등에게 돌렸을 것이고, 또 이완용 등과는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들 ㅡ 예로 이완용 등의 조카와 친구지간이라든지 등등^^ㅡ은 이완용 등 친일파들을 욕할 수도 없었을 터이기에 이 작품 마냥 과거 역사 속에서 사례를 끄집어 내어 침소봉대하거나 '환유' 등 알레고리 기법 등을 동원하여 나라 잃은 비분을 대리 폭발했던 시절에 나온 작품인 듯 보입니다. 이 작품 등이 나오던 무렵, 신숙주와는 아무 상관없는 '숙주나물'을 신숙주 때문에 '숙주' 나물이 된 듯 작품 속에 소개해 가짜뉴스를 퍼뜨려 지금도 '숙주나물'이 신숙주에서 나온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KBS 역사스페셜에서 '숙주나물'과 신숙주는 아무 상관없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정몽주 선생이 선죽교에서 죽었다는 설화도, 조광조 등장 이후 정몽주를 사림의 사표로 삼아 정몽주 복권프로젝트 차원에서 '조작'된 이야기라는 게 최근 모 한국사 교수가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기도 합니다^^ 편 선생님의 지적도 일리는 있지만, 역사적 사건을 사실대로 밝히고 약간이라도 비틀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도 곁들여 설명해 주는 게 역사가 문학이나 사이비언론과는 다르다는 거겠지요?^^ '지상매괴'~ 홍윤성을 빗대 이완용 등을 우회 비난하는 방식의 이런 작품을 쓴 것으로 보이는, 윤백남 작가는 구한말 친일파들과 친인척. 학연ㆍ지연으로 얽혀 있었으리라 추정됩니다(윤백남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자ㆍ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고 지식백과에 나옵니다)^^ 윤백남 작가는, '(자신의 조상인 줄 모르고 홍경래 난 때 항복한 자신의 조상을 욕하는 시를 지었다는) 김삿갓'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개인적 지지기반인 구한말ㆍ일제 친일파들을 직접 건들지 않고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지상매괴' 방식으로 나름 할 말은 다 하고자 이 소설을 썼던 듯 추정됩니다 ^^ 윤백남 작가는, 1932년 만주로 이주하여 가서 나름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등 활동하다 해방 후 돌아온 점으로 미루어 '처세의 달인'이기도 했던 듯 보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되었다는 기사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주변에서 '경력관리'를 해 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혹 윤백남 작가가 '홍' 씨 성을 가진 누군가와 척을 지은 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실제, 김동인 작가는 춘원 이광수를 공격하느라, 비슷한 방식으로 몇 편의 소설을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와 염상섭의 '표본실의 개구리'는 서로 비방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소설이란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발가락이 닮았다는, "염상섭은 고자라네~~" 하는 욕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 작품은, 신화로 조작하여 "테베 놈들은 지 에미와 ××할 놈들"이란 식으로 욕설을 작품으로 쓰니까, '고전'이 돼버리는 식이었죠^^ 정몽주 선생이 인품이 훌륭한 분이더라도, 선죽교에서 피살 된 것도 아니란 팩트가 밝혀진 이상, 선죽교에 붉은 페인트 칠을 해서든 철분이 많은 돌다리로 페이크하여 세상을 속이려 드는 건 정몽주 선생도 결코 원치 않을 것이고, 교육적ㆍ교훈적 효과도 없을 것이기에 팩트를 밝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오늘 강의도 명강의였습니다. 화이팅입니다 👍😅😍💓🌺
포은정몽주선생니은 최고의외교관이었고 선비였고 충신이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 👍 👍 👍 👍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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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가르치니 좋은 것 같습니다. 다 듣진 못했지만, 열성과 애국심이 느껴집니다. 자막에 명 태종, 정몽부 등 오타가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정몽주가 일본에 간 것에 대한 기술은 조금 정확치 않은 것 같습니다. 가서 갇힌 것은 아니고 일본의 주장이 반란군과 싸우느라 절에 기다리며 좀 오래 머물렀습니다. 감사합니다.
알찬 강의 잘 봤습니다👍
Good
역사를모르면 나라가망한다!!??
명강의 감사합니다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uclips.net/video/9-3pS8DPVFc/видео.html
이 영상은, 1888년생으로 조선황실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했고, 한일병합 후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기자ㆍ1913년 매일신보 편집국장을 지낸 등 일제 시대를 관통한 지식인이었던 윤백남이 세조 때 정난공신 '홍윤성'을 빗대 쓴 역사소설을 리뷰하는 영상입니다.
이 작품 '홍윤성과 절부' 역사소설은, 손자병법 36계 중 '지상매괴' 를 응용한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지상매괴'~ '뽕나무를 가르켜 회나무를 욕한다". 시어머니에게서 나무람을 들은 며느리가 부엌에 들어가 고양이를 발로 찬다는 등 유사한 속담도 많지요.
홍윤성이 정난공신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훈구대신으로 권력남용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겠지만, 이 작품 속에 언급된 정도의 난신적자였는 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홍윤성은 한명회를 통해 발탁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 속의 내용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홍윤성은 우의정ㆍ좌우정ㆍ영의정을 지냈고, 성종 때 부원군ㆍ좌리공신에 책봉된 점으로 보아, 이 작품 속의 '사실관계'는 후대에 정적들에 의해 '조작' 된 가짜뉴스일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
숙종 때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환국정치로 정치쇄신을 행하던 때, 숙종은 '단종'을 복권시키고 사육신. 생육신을 복권시키면서 기득권층을 쇄신하게 되었는데 이때 직계 조상인 세조를 폄하할 수는 없었기에, 정난공신 중 행동대장 격인 홍윤성 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방식으로 세조의 단종 죽임에 대한 비난을 피하면서 단종을 복권시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일종의 '탕평책'을 시도하는 우회전략을 쓰면서 홍윤성 등을 졸지에 파렴치한으로 전락시키기 위한 역사조작 프로젝트가 가동됐던 듯 보입니다^^
이 작품이 나온 시대 배경은 1910년대 즉 한일합방(한일병탄) 직후, 역시 그 시대 사람들은 사실상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할 고종. 순종에게 책임을 져야한다는 추궁이나 비난을 하기는 황송했을? 당대 지식층들은 '지상매괴' 방식으로 그 책임을 이완용 등에게 돌렸을 것이고, 또 이완용 등과는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들 ㅡ 예로 이완용 등의 조카와 친구지간이라든지 등등^^ㅡ은 이완용 등 친일파들을 욕할 수도 없었을 터이기에 이 작품 마냥 과거 역사 속에서 사례를 끄집어 내어 침소봉대하거나 '환유' 등 알레고리 기법 등을 동원하여 나라 잃은 비분을 대리 폭발했던 시절에 나온 작품인 듯 보입니다.
이 작품 등이 나오던 무렵, 신숙주와는 아무 상관없는 '숙주나물'을 신숙주 때문에 '숙주' 나물이 된 듯 작품 속에 소개해 가짜뉴스를 퍼뜨려 지금도 '숙주나물'이 신숙주에서 나온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KBS 역사스페셜에서 '숙주나물'과 신숙주는 아무 상관없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정몽주 선생이 선죽교에서 죽었다는 설화도, 조광조 등장 이후 정몽주를 사림의 사표로 삼아 정몽주 복권프로젝트 차원에서 '조작'된 이야기라는 게 최근 모 한국사 교수가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기도 합니다^^
편 선생님의 지적도 일리는 있지만,
역사적 사건을 사실대로 밝히고 약간이라도 비틀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도 곁들여 설명해 주는 게 역사가 문학이나 사이비언론과는 다르다는 거겠지요?^^
'지상매괴'~
홍윤성을 빗대 이완용 등을 우회 비난하는 방식의 이런 작품을 쓴 것으로 보이는, 윤백남 작가는 구한말 친일파들과 친인척. 학연ㆍ지연으로 얽혀 있었으리라 추정됩니다(윤백남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자ㆍ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고 지식백과에 나옵니다)^^
윤백남 작가는, '(자신의 조상인 줄 모르고 홍경래 난 때 항복한 자신의 조상을 욕하는 시를 지었다는) 김삿갓'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개인적 지지기반인 구한말ㆍ일제 친일파들을 직접 건들지 않고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지상매괴' 방식으로 나름 할 말은 다 하고자 이 소설을 썼던 듯 추정됩니다 ^^
윤백남 작가는, 1932년 만주로 이주하여 가서 나름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등 활동하다 해방 후 돌아온 점으로 미루어 '처세의 달인'이기도 했던 듯 보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되었다는 기사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주변에서 '경력관리'를 해 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혹 윤백남 작가가 '홍' 씨 성을 가진 누군가와 척을 지은 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실제, 김동인 작가는 춘원 이광수를 공격하느라, 비슷한 방식으로 몇 편의 소설을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와 염상섭의 '표본실의 개구리'는 서로 비방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소설이란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발가락이 닮았다는, "염상섭은 고자라네~~" 하는 욕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 작품은, 신화로 조작하여 "테베 놈들은 지 에미와 ××할 놈들"이란 식으로 욕설을 작품으로 쓰니까, '고전'이 돼버리는 식이었죠^^
정몽주 선생이 인품이 훌륭한 분이더라도, 선죽교에서 피살 된 것도 아니란 팩트가 밝혀진 이상, 선죽교에 붉은 페인트 칠을 해서든 철분이 많은 돌다리로 페이크하여 세상을 속이려 드는 건 정몽주 선생도 결코 원치 않을 것이고, 교육적ㆍ교훈적 효과도 없을 것이기에 팩트를 밝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오늘 강의도 명강의였습니다.
화이팅입니다 👍😅😍💓🌺
마음만 바꾸고 타협하면 목숨도 잃지 않고 평생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데 하지만 그랬다면 충절의 상징으로 위대한 이름을 남기지 못했겠지 근데 영정만 봐도 고생을 많이 하신듯 ㅎㅎ
포은 29대 손으로서 추천 ,,, !!
명태조(홍무제).주원장과 외교적으로 만나 정몽주를 좋아했고, 반면에 조선건국후 정도전을 싫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