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민비를 시해하기 위해 일본 낭인들이 단독으로 궁궐을 들어와서 벌인 짓이 아닙니다. 궁궐 내 조선 군인들이 궁궐 문을 열어주었고 인천에서 한양까지 길을 안내한 조선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내용은 일절 알려주지 않지요. 당시 민비에 대한 조선 백성들의 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현시대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왕조시대,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세상에 살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역사를 바로 알아야 현재도 미래도 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조선말기 당파싸움과 양반계급의 착취, 왕의 무능이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맞습니다. 땅의 역사 프로가 없어져서 너무 안타까웠는데 유투브로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고종이 매국했다고 해서, 일본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타국의 왕비를 시해하고,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에게 화살을 돌려 학살하고, 강제동원, 위안부 등 일본이 진심 반성하고 사죄해야 할 과오들이 전혀 제대로 청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입니다. 님이 아무리 반일을 비난하여도, 국민들이 가진 대일정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허허, 나원참! 당신이 주장할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조상들을 비난하는것입니까? 그러나,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내 얼굴에 침뱉는 격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역사를 너무 자학할 필요도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도 한번쯤, 제대로 훑어보시기바랍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시킬수있었던것은아닙니다! 그 나라는,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왔었고, 또한 바다라는 지리적인 이점으로해서 옛날부터, 제한적이지만 외부세계와는 쭉 소통해왔던것입니다! 그래서 조선보다는, 한 발 앞서서 일찍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으로인하여 근대화를 이룰수가있었습니다!
허허, 나원참! 당신이 주장할려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조상들을 비난하는것입니까? 당신이, 설령 그 시대에 살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내 얼굴에 침뱉는 격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도 한번쯤, 제대로 훑어보시기바랍니다. 그러니, 우리의 역사를 너무 자학할 필요도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시킬수있었던것도아닙니다! 그 나라는,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왔었고, 또한 바다라는 지리적인 이점으로해서 옛날부터, 제한적이지만 나름대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쭉 해왔기때문에,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으로 조선보다도, 한 발 앞서 근대화를 이룰수가있었던것입니다.
허허, 나원참! 당신이 주장할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조상들을 비난하는것입니까? 설령,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내 얼굴에 침뱉는 격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한번쯤 제대로 훑어보시기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역사를, 너무 자학적으로 바라볼 필요도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할수있었던것도아닙니다! 그러니까 근대화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내전때문에, 엄청난 사람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일본은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하여왔으며, 바다라는 지리적으로 이점이있어서 옛날부터, 외부세계와 제한적이지만 나름대로 쭉 소통을해왔던관계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이, 조선보다도 한 발 앞서 성공하여서 근대화라는 시대적인 과업을 이룩할수있었던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이 왕조국가였던관계로 그 당시 근대화라는 물결에 합류하지못하였지만 일본이나 러시아가 조선의 국권을 침탈하지만않았으면 조선도 얼마든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내부 스스로, 즉 자주적으로 근대화를할수있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없었나요? 다시 말씀드려서 제2, 제3의 갑신정변 또는 제2의 제3의 동학농민혁명같은 시대적인 흐름이 나올수가있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시킬수있었던것도아닙니다! 그 나라도, 많은 시행 착오와 내전까지 벌여, 수많은 피를 흘려가면서 겨우 근대국가라는 기틀을 마련할수있었답니다. 그리고, 또 그 나라는,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왔었고 바다라는 지리적인 이점때문에 옛날부터, 제한적이지만 나름대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계속해서 해왔었던관계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으로 조선보다도, 한 발 앞서 일찍 근대화를 이룰수가있었습니다! ㅡㅡㅡ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시킬수있었던것도아닙니다! 그 나라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내전까지 겪으면서 많은 피를 흘려가면서 겨우 근대국가라는 기틀을 세울수있었답니다! 그리고 일본은,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왔었고, 바다라는 지리적인 이점때문에 옛날부터, 제한적이지만 나름대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쭉 해왔던관계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이 성공하였으며, 조선보다도 한 발 앞서 근대화를 이룰수가있었습니다! ㅡㅡㅡ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대원군의 개혁, 개방에서 쇄국으로 간 스토리 부분에서... 이렇게 쉽게 쇄국으로 간다고? 라고 처음엔 의아했지만, 조금 생각해 보니, 다 이해가 되네요. 대원군은 개혁가가 아니고, 왕권강화자였다고 보면... 개혁에서 쇄국으로, 경복궁 중건, 세게 개혁, 서원 철폐, 남,북인 등용 등이 다 이해가 됩니다. 강의 첫 부분에 부국강병이라고 대주제를 놓으셨지만, 권력 주변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듯. 부국강병은 개나 돼지들을 속이기 위한 캐치프레이즈일 뿐이고, 권력들은 언제나 자신의 권력강화에만 관심이 있었던 거죠. 대원군이 섭정을 끝낸 후에도 끊임없이 민비, 고종과 권력투쟁을 한 행위들로 봤을 때, 이 논지가 설득력이 더 높아지는 듯. 왕권 주변의 근대사를 보면 거의 대원군이 물러난 후, 민비와 대원군의 권력투쟁으로 묘사되어 있고, 민비가 시해된 후에야 고종의 이름이 전면으로 등장하는 걸로 봐서, 저는 고종이 민비의 치마아래 숨은 소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클립으로 그게 아님을 알겠습니다. 많은 민비 비평가들이, 대원군이 국고를 채워 놓았고, 그걸 민비가 다 낭비한 듯이 욕해 대더니, 결국 고종이 결단을 낸 거 였네요. 그동안 민비가 조선을 망해먹은 주요 범인인 듯이 욕하는 주장들을 많이 봤는데... 민비도 칭찬을 받은 인사는 아니었겠습니다만, 저로써는 대원군이나 고종에 비해 더 나빴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 지네요. 그래도 고종이 망국의 주요 범인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이 클립으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난다. 무식한 조상들이 결국 이 나라를 망하게 했구나. 작금의 대한민국은 몆년을 갈것인가. 내 죽기전에 망국의 슬픔없길 바란다. 몽테스키위의 삼권분립론은 이 땅에서 맞지 않는다. 사법과 행정으로도 충분히 잘 돌아가지 않는가. 선거제도를 국회의원 지방의원 뽑는 걸로는 개혁을 할수 없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국기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태극기부대라고 프레임씌우면서 국민들이 자국의 국기를 혐오하게 만드는데 동조하는것이 과연 국민으로서 옳은길인가요? 태극기에대해 혐오감생기도록 하는발언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뱉는 행위아닙니까 대한민국 국민임이 부끄러운가봅니다 내국의 문제라고만 단정지우시는것은 국제사회의 현실을 너무 모르시는군요
박종인대기자님 최근에 "만엽집" 해독하시는 분이 계셔서 신라 향가를 해독한 것을 보니까 한글이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것이라고 하는데. 해독한 향가를 읽어보면 옛 부터 신라 이전부터 전해저 내려오는 고유의 문자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세종왕이 10여 종류의 우리의 문자를 간단하게 체계화 시켰다는 감을 상당히 느끼게 되는데 학식이 깊고 널으신 분들이 한번 연구해 보시면 합니다... 체계회 시켰을 가능성 多 多 多 . . . . . . .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1900년도 전후해서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가 일본과 한반도를 39도선으로 분할통치하는 협의를 하기도 했죠. 공산주의자들이 공산 활동한 걸 항일투쟁으로 물타기 하고, 반공 인사들을 친일로 몰아 제거하기 위해 1945년 9월 소련군정사령부가 조선공산당 박헌영에게 "반공=친일매국 & 공산주의=항일독립" 선동의 지령을 내렸고...
그렇지. 1900년 경 러일이 39도선으로 조선반도 분할 논의도 했었고, 공산주의자들이 공산 활동한 걸 항일투쟁으로 물타기 하고, 반공 인사들을 친일로 몰아 제거하기 위해 1945년 9월 소련군정사령부가 조선공산당 박헌영에게 "반공=친일매국 & 공산주의=항일독립" 선동의 지령을 내렸죠.
고맙습니다 박종인기자님 건강하세요 계속 우릴 깨우처주세요
감사합니다.
많은걸 깨우치고 공부하고있습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무지한 국민들을 많이 깨우처주세요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쵝오 강의
이 강의는 전국민 필독 강의로 틀어줘야한다...
항상 역사를 국뽕으로만 배우니
명성황후라는 말이 나오는거임
이 왕가 자체가 매국이죠😂
ㅎㅎㅎㅎ 민자영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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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국뽕 없는 조선사 연구네요. 감사합니다. 암울한 구한말 이였군요. 명성황후 시해는 안타깝지만 뮤지컬로 치켜세울 위인은 아니셨네요.
민비 입니다. 죽고 나서 고종이 황제 된 후에..
민비를 시해하기 위해 일본 낭인들이 단독으로 궁궐을 들어와서 벌인 짓이 아닙니다. 궁궐 내 조선 군인들이 궁궐 문을 열어주었고 인천에서 한양까지 길을 안내한 조선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내용은 일절 알려주지 않지요. 당시 민비에 대한 조선 백성들의 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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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시대가 지금의 북한과 똑같았네요. 북한이 조선인민공화국인데 제도도 그대로 답습했네요.
항상 사골처럼 우려내며 몇번싹 챙겨 듣고있어요^^
지랄,종교냐?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알고 있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나니 먹먹해 집니다. 정말로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깨우쳤으면 합니다. 박종인기자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렇죠 우리나라는 역사를 드라마와 영화로 배우는 희안한 나라죠
고종 덕혜옹주 일본 왕실가족에 입적 하려고 총독에게 애원하고 나라를 일본에 넘기는것도 신하들이 알아서 하라 사실 나라를 일본에 주었습니다
14:43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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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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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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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감사합니다~~
박종인 선임기자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영친왕은 일본 백작으로 최고의 풍요를 누리고... 기가막힌게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둥, 명성황후 뮤지컬 환타지 등 민족주의를 거짓사관으로 부풀리고 교묘하게 북한식 역사관을 주입하려 한다는 거...
매국노를 개혁군주라고?
빨강놈들 천벌이 기까워온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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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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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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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jeonggeunkim6002친일파 냄새가 팍팍나네
@@김해용-v5v 니 수준에 뭘 배우겠니
책을 사서 봤는데 강의를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그리고 오늘날을 생각하게 됩니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기자님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추가로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은 이미 망국의 길을 가고 있었고 영 정조 개혁도 사실은 많이 미화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영 정조의 개혁은 조선의 중국화가 맞죠
정조의 개혁도 미화된 면이 있었다? 글세요? 그보다 확실한 것은 그당시 지배계급이면서 지식인인 양반들이 한계를 넘지 못하면서 실학파류의 지식인 소멸하고 근대화기초를 만들지 못한 거죠.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대단하십니다..더 많은 근현대사를 기대합니다..
박기자님 응원 합니다.
고등학교 이후 굳이 열심히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던 답을 들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명강의!!! 기자님 출연 유튜브는 늘 찾아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속에 행복' 운영진입니다.
박종인 기자님께서 '강의' 방식의 내용 전달은 처음이라 걱정을 하셨는데
강의가 시작되자 영화를 보는 듯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저희 채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구독' '좋아요' '지인추천~^^'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많이알고있는 내용인데 선생님 강의를 들으니 더어마어마한 잡놈들이었네요
세 글자 요약 : 조선인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이 강의는 한국사람들이 다 봐야하는데. 안타깝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잘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구독~! ^^ 지인 추천까지요~
너무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어요.
조선사람이 깨어나지 못한 당시의 죄보다, 지금의 한국사람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죄가 될 것이네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그래서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조선의 국호를 버리고 국왕 제도에 대한 언급도 없었군요 평소에도 전 심정적으로 대원군이였습니다 ㅠㅠㅠ
현시대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왕조시대,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세상에 살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역사를 바로 알아야 현재도 미래도 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조선말기 당파싸움과 양반계급의 착취, 왕의 무능이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맞습니다.
땅의 역사 프로가 없어져서 너무 안타까웠는데 유투브로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진짜 역사학자 입니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역사왜곡에 맞서 진실을 전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책속에행복 구독하고갑니다. 박종인선임기자님.
수고많으십니다.
안녕하세요. 책속에 행복 운영진입니다.
구독신청과 칭찬댓글 감사합니다.
아래의 링크와 같이 학술대회가 개최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 자유와 시장 석학들에게 답을 얻다 *
강연 현장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ruclips.net/video/H8Tr32D0okU/видео.html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아관파천 하나면 고종을 설명할 수 있죠.
일본에팔까 러시아에팔까 고민중 러시어손
최근에야 책을 사서 읽고 있습니다.
이 책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는데 유튜브 강의까지 나왔네요 ㅊㅊ
눈물난다 너무 듣기가 힘들다 남의 역사 같으면 걍 그렇구나 하고 아무생각 없는대 내나라니까..갑갑하고 눈물난다
오히려 일본이 고맙게 느껴 진다
조선 망해도 백번 망해야 한다
후세들 위해 한반도 미래들 위해
연남생, 선조,인조,고종,민비 야그만 나오면 혈압오름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 감사합니다
伊藤博文 전기를 읽어보면 박종인기자님 학문 깊이 경의에 경의를 더 드립니다
국민들 스마폰 들고 놀지마시고 공부좀 합시다 국민이 나라를 지킵시다
이토오히로부미(이등박문)
박종인 👍👍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14개월만에 국고탕진.. 고종 부관참시하자
@gchung3249윤석열이 병신이라고해서 고종이 매국노인게 변하진 않음
5년간 400조 빚 만든 문재인도 고종 비스므리..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여흥 민씨의 시대 의 부패로 임오군란을 초래 함.
지금도 반일과 죽창가를 외치며 권력을 향유하는 무리가 있다
고종이 매국했다고 해서, 일본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타국의 왕비를 시해하고,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에게 화살을 돌려 학살하고, 강제동원, 위안부 등 일본이 진심 반성하고 사죄해야 할 과오들이 전혀 제대로 청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입니다. 님이 아무리 반일을 비난하여도, 국민들이 가진 대일정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식민지 되면서 왕과 직계 왕족이
독립운동 한게 아니라 일본 귀족 작위 받음 즉 지들 직위 받는 조건으로 싸인하고 국가 한반도를 완전히 넘김
조선후기는 선조 인조 문조(한국)라는 말이 있지만 임진왜란 을 전후해서 부터 조선은 부패가 지구상 최악이고 지금의 아프리카는 저리가라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시대 보다도 못한 나라였죠 물론 인구는 더많고 영토도 더넓었지만 .. 지방호족들이 힘을 쓰며 다스리고 통치하던 삼국시대나 고려 보다도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들이 더악랄하고 부패했습니다 어떤 체제든 아무리 좋은 제도나 체재라도 운영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정권이 섞어
있다면 민0당 정권처럼 온갖 폐악과 나라를 망치는 일들이 솓아지는 것입니다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고 무능한 고종과 사악한 민비 그리고 낡은 쇄국
정책을 밀어부치던 흥선의 실정과 모든것이 맞아들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러시아나 다른 서방국가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아더라도 스스로 무너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북한같은 시대에 맞지않는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성문앞에 늘상 수백명 수천명씩
있었다는 서양선교사들의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들가 위정자들은 제발 진실이 아닌 국뽕에 빠져서 조선이 대단한 나라인양 왜곡포장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성이 없는 거짓역사로는 발전할수 없습니다 조선말 1200만명 인구가 일제시대 단36년만에 3000만명으로 늘어난것만 봐도 알수 있
지 않을까요? 일제가 조선보다 식량수탈과 핍박만 했다면 조선인들이 미쳤다고 애를 많이 낳아서 인구가 그짧은시기에 미친듯이 늘어났을까요?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조선은 서양선교사들이 만든 건물들과 일본인들에 의해 지은 일부건물 빼고는 한양은 극소수 기와집과 수많은 초가집들들만 있었습니다 그초가
집들에는 빈대 벼룩 쥐며느리(공벌레) 땅강아지 바퀴벌레 개미 뱀 지네 여름에는 모기와 파리 등 수십가지 해충들이 우글거려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집밖에서 모
기에게 뜯기면서 살았습니다 청나라에서 한양성 까지 오는길외에는 전국에 폭이1.5미터가 넘는길은 없었습니다 길을 놓으려고 해도 수많은 산소(묘지)를 지나가야 해서
유교만 신봉하던 문중과 지역민들에게 막혀서 길하나 만들기 어려웠고 조정은 지방반란군이나 일본 또는 청이나 외세들의 침략을 막는 다는 구실로 못만들게 하였습니다
지금의 국도(신작로 라고 당시불림)는 그기반이 일제시대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물론 나중에 포장되거나 추가로 만들어졌지만 ... 부산 포항 마산 진해 삼천포 여수 목포
군산 인천 남포 강릉 원산 청진 나진등 수많은 항구와 작은 어촌항구가 일제시대때 만들어졌고 지금보다 더많은 전국의 비행장들이 일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사라졌
으나 일제시대때 비행기들은 프로펠러기라서 200미터면 이륙할수 있었기에 .. 통신 사법제도 경찰 군사제도 수많은 초중고 학교들 방직공장 비료공장 광산개발 등 무수한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들 및 제도들이 일제시대때 만들어진것이며 조선 같았으면 300년이 걸려도 못할 변화가 일제시대 36년만에 이루어졌으나 수많은 교량과 공장및 건
물 발전소와 댐 농업용 저수지 등이 북괴군이 일으킨 6.25로 엄청나게 파괴되어 후퇴를 하였죠
허허, 나원참! 당신이 주장할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조상들을 비난하는것입니까?
그러나,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내 얼굴에 침뱉는 격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역사를 너무
자학할 필요도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도
한번쯤, 제대로 훑어보시기바랍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시킬수있었던것은아닙니다!
그 나라는,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왔었고, 또한 바다라는
지리적인 이점으로해서
옛날부터, 제한적이지만 외부세계와는
쭉 소통해왔던것입니다! 그래서
조선보다는, 한 발 앞서서
일찍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으로인하여
근대화를 이룰수가있었습니다!
허허, 나원참! 당신이 주장할려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조상들을 비난하는것입니까?
당신이, 설령 그 시대에
살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내 얼굴에 침뱉는 격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도
한번쯤, 제대로 훑어보시기바랍니다.
그러니, 우리의 역사를
너무 자학할 필요도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시킬수있었던것도아닙니다!
그 나라는,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왔었고, 또한 바다라는
지리적인 이점으로해서
옛날부터, 제한적이지만 나름대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쭉 해왔기때문에,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으로
조선보다도, 한 발 앞서
근대화를 이룰수가있었던것입니다.
허허, 나원참! 당신이 주장할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조상들을 비난하는것입니까?
설령,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내 얼굴에 침뱉는 격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한번쯤 제대로
훑어보시기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역사를, 너무 자학적으로
바라볼 필요도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할수있었던것도아닙니다! 그러니까
근대화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내전때문에, 엄청난 사람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일본은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하여왔으며, 바다라는
지리적으로 이점이있어서
옛날부터, 외부세계와 제한적이지만
나름대로 쭉 소통을해왔던관계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이, 조선보다도
한 발 앞서 성공하여서
근대화라는 시대적인 과업을
이룩할수있었던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이 왕조국가였던관계로
그 당시 근대화라는 물결에
합류하지못하였지만 일본이나 러시아가
조선의 국권을 침탈하지만않았으면
조선도 얼마든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내부 스스로, 즉
자주적으로 근대화를할수있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없었나요?
다시 말씀드려서
제2, 제3의 갑신정변 또는
제2의
제3의 동학농민혁명같은
시대적인 흐름이 나올수가있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시킬수있었던것도아닙니다!
그 나라도, 많은 시행 착오와
내전까지 벌여, 수많은 피를 흘려가면서
겨우 근대국가라는 기틀을
마련할수있었답니다. 그리고, 또
그 나라는,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왔었고
바다라는 지리적인 이점때문에
옛날부터, 제한적이지만 나름대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계속해서 해왔었던관계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으로
조선보다도, 한 발 앞서 일찍
근대화를 이룰수가있었습니다! ㅡㅡㅡ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가
두부 자르듯이 간단하게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화를
성공시킬수있었던것도아닙니다!
그 나라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내전까지 겪으면서
많은 피를 흘려가면서
겨우 근대국가라는 기틀을
세울수있었답니다! 그리고
일본은, 근본적으로 조선과 다른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왔었고, 바다라는 지리적인
이점때문에
옛날부터, 제한적이지만 나름대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쭉 해왔던관계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인
하급 사무라이들의 혁명이
성공하였으며, 조선보다도 한 발 앞서
근대화를 이룰수가있었습니다! ㅡㅡㅡ
그러니까요
요즘 안나오셔서 섭섭합니다
조선일보는 안봐도 티비도
딱 선생님꺼만 골라보고 있어요 ~^^
얄미워요~?
전 좋습니다요
실재로 당시에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말했다.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이 한반도땅을 경영하는 것은 조선과 조선인을 위해서 좋은 일이다.'
그리고 중국의 지식인 양계초는 말했다.
'조선이 망해도 그것은 그들의 업보이니 하나도 슬퍼할 것이 없다.'
루즈벨트는 조선은 일본이먹고 미국은 필리핀을 먹는다 에 비밀협약을 한 나쁜대통령 입니다 (사까스밀약)
조선이 일본에 병합이 된후 조선의 왕가들은 일본천황가와 여러건의 결혼으로 혼맥을 맺었으며 왕이나 공주들이 모두 일본왕가와 결혼하였고 무슨왕 무슨왕 이런식
의 칭호를 받았으며 민씨들과 이씨왕족 친척들은 서양식 백작 공작 남작 자작 이런식의 귀족작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여흥민씨들은 조선건국시 이성계의 반란에 가담
하고 적극도와서 조선을 건국하였고 태조이방원은 삼한최고호족 이라던 민제의 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1차 2차 왕자의 난때 민씨일족들은 이방원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러나 후일 태조이방원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을때 외가의 세력이 강해서 부담이 될까봐 이방원은 그렇게 공이크고 권력도 있던 자기의 부인(원경왕후) 오빠들인 민
무구 민무질 형제와 그의 세력들을 처형하여 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방원에게 충성을 바치던 핵심 공신들입니다 민씨들이 조선건국에 지대한 역활을 하였고 조
선의 마지막도 민비가 심어둔 민씨들이 망하도록 한것입니다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대원군의 개혁, 개방에서 쇄국으로 간 스토리 부분에서... 이렇게 쉽게 쇄국으로 간다고? 라고 처음엔 의아했지만, 조금 생각해 보니, 다 이해가 되네요. 대원군은 개혁가가 아니고, 왕권강화자였다고 보면... 개혁에서 쇄국으로, 경복궁 중건, 세게 개혁, 서원 철폐, 남,북인 등용 등이 다 이해가 됩니다. 강의 첫 부분에 부국강병이라고 대주제를 놓으셨지만, 권력 주변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듯. 부국강병은 개나 돼지들을 속이기 위한 캐치프레이즈일 뿐이고, 권력들은 언제나 자신의 권력강화에만 관심이 있었던 거죠. 대원군이 섭정을 끝낸 후에도 끊임없이 민비, 고종과 권력투쟁을 한 행위들로 봤을 때, 이 논지가 설득력이 더 높아지는 듯.
왕권 주변의 근대사를 보면 거의 대원군이 물러난 후, 민비와 대원군의 권력투쟁으로 묘사되어 있고, 민비가 시해된 후에야 고종의 이름이 전면으로 등장하는 걸로 봐서, 저는 고종이 민비의 치마아래 숨은 소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클립으로 그게 아님을 알겠습니다.
많은 민비 비평가들이, 대원군이 국고를 채워 놓았고, 그걸 민비가 다 낭비한 듯이 욕해 대더니, 결국 고종이 결단을 낸 거 였네요.
그동안 민비가 조선을 망해먹은 주요 범인인 듯이 욕하는 주장들을 많이 봤는데... 민비도 칭찬을 받은 인사는 아니었겠습니다만, 저로써는 대원군이나 고종에 비해 더 나빴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 지네요.
그래도 고종이 망국의 주요 범인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이 클립으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말, 6.25 실사진 보고 놀랐어요. 아프리카 원주민보다 몇배는 불쌍한 백성.
조선인 < 토인
박종인기자님 강의는 아는 내용인데도 재미가 있는
친구들 치열하게 살 때, 하루 술 먹고, 하루 돌 던진 게 자랑이냐. 시대를 고민하고, 여러 책도 읽고, 돌도 던지고 ~
2:18:57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마지막 전투에서 희생하셨던 망국의 대한제국 군인들께 명복을 ㅠ
햇갈리고 요점만 찿저서 빨리알수있게말해주셔요
👍👍👍👍👍👍👍👍👍👍👍
선조 인조 고종은 군으로 강등시켜함이 마땅한줄 아뢰오...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주제파악 못하고 황제를 칭한거 너무 웃김
느게미뽕이다
@@kimstone2147너 고종 후손임?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조선 노비 500년 영화 보고싶어요.
인조가 정묘호란때 강화도에 숨어 후금과 협상하고 전쟁하지 말자고 한게 기억나네..
군대도 오지 말라하고.. 그래도 고종은 정말 클라스가 남달랐네.
무능함이 대역죄다!
나라들의 패망 사례도 올려주세요
이 내용으로 영화 한편 찍어야 겠네.. 좌파들의 환상을 깨어줘야..
나는 요즘 세상에서
냬가 제일 총명한 줄 알았다.
人外有人
天外有天
박선생님의 박학다식
존경합니다
조선은 아주 잘 망했다...북한과 비슷한 나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난다. 무식한 조상들이 결국 이 나라를 망하게 했구나. 작금의 대한민국은 몆년을 갈것인가. 내 죽기전에 망국의 슬픔없길 바란다. 몽테스키위의 삼권분립론은 이 땅에서 맞지 않는다. 사법과 행정으로도 충분히 잘 돌아가지 않는가. 선거제도를 국회의원 지방의원 뽑는 걸로는 개혁을 할수 없다.
500년 해먹었으면 평균이상이다.
@gchung3249 뭔소리하는겨 빨개야
이위종이 헤이그에 가서 한말이 지금우리 태극기가 미국에 기대하고 있는것과 비슷 한듯(내국의 문제를 강대국에 기대는것)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국기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태극기부대라고 프레임씌우면서 국민들이 자국의 국기를 혐오하게 만드는데 동조하는것이 과연 국민으로서 옳은길인가요?
태극기에대해 혐오감생기도록 하는발언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뱉는 행위아닙니까
대한민국 국민임이 부끄러운가봅니다
내국의 문제라고만 단정지우시는것은 국제사회의 현실을 너무 모르시는군요
개쌉 명강연이다
조선 서인, 북한, 중국 =민주당 및 좌파(결국 북한, 중국 사대), 개화파 = 보수, 국민의 힘 이렇게 이해가 되는 거 같습니다.
대원군은고종을왕위에올렸는데어찌생각하나요
박종인선임기자님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은 진정 애국자입니다.
매국노, 친일파라는 말은 이제는 조심해야 합니다
종북이라는 말도 하지 말아야지요
박종인대기자님
최근에 "만엽집" 해독하시는 분이 계셔서
신라 향가를 해독한 것을 보니까
한글이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것이라고 하는데.
해독한 향가를 읽어보면
옛 부터 신라 이전부터 전해저 내려오는
고유의 문자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세종왕이 10여 종류의 우리의 문자를
간단하게 체계화 시켰다는 감을
상당히 느끼게 되는데
학식이 깊고 널으신 분들이
한번 연구해 보시면 합니다...
체계회 시켰을 가능성 多 多 多 . . .
.
.
.
.
편건이 아니길 바립니다 있는 그대로 나타나길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사는 우리세대가 그들을위해 무었을했고
조국을위해 어떠한일을 했느냐고 물을때 우리는 서슴치않고
조국근대화와 신앙을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수 있게합시다
1967년 1월 17일 대통령 박 정 희
조선이 망했어야 할 이유는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 핍박등 이루헤아릴수도 없었지만 수백년 같은땅에서 살아온 같은 민족이된 사람들을 지금의 인도의 발목을
잡고 발전을 가로막는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농 공상 제도 왕 아래 선비들(양반)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이 정해져서 이어져 갔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조선말
기 기준 1000년전에 사라진 제도인 노비(노예)제도 더군다나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인 고대서양에서는 없는 제도로 사람을 사고파는 제도 입니다 황희 정승도
노비 5천명을 거느렸고 자식들에게 500명씩 결혼할때 나눠주며 상속을 했습니다 청렴하다는 자가 그게 가능할까요? 조선은 그냥 양반들을 위한 나라였을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2000년정도 이전 고대에나 적합할 제도를 현대 까지 이어온 나라였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공노비 사노비 였는데 노예들이 왜군이 쳐들어오던 말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하면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신분해방에 귀족이나 권문세가가 될수도 있는데 ... 그러니 신분을 억압해서 고정시켜 붙들어 매고 원시적인 억압
으로 이어져온 조선은 좀더 일찍 망했어야 한민족이 발전할수 있었을텐데 ...
난 이런 역사를 배우지 않았다
교과서, 영화, 드라마, 다큐까지..
왜 나에게 왜곡역사를 알려주었는가
누구인가? 누가 역사왜곡 소리를 내었어
역사는 우리도 잘못배웠고...
강사님
구한말은 언제를 구한말 입니다
구한말이 아니라 대한제국
시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제국이 12년 밖에 ㅡㅡㅡ😢😢😢😢😮
📚 📖 📚 책속의 행복 😸 😺 조선일보사 근무자 😊😊
🙇♀️🙇♀️🙇♀️🙇♀️ 박종인씨 👅 👅 입질론자 👅 👅
조선오백년동안 중국에 갔다바친
이땅의 딸들을 버린
중국식민지 이조오백년
그수를 헤아릴수 없는 이땅 조선처녀들. 그분들 위로와 명에회복 이후에나 위안부 문제
따지기를 ㅎ.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공감하시는 분들 1도 안계시겠지만!!??
노비들만 보낸거 인가요
@@waitaoyuanshi5081 사대부 양반집 딸들은 제외
유학사상,삼강오륜 등을 주시한 우물안 개구리격?
이런 강의가 학교에서 이뤄져야합니다.
잡아 먹었다기보다
줏어 먹었다
가
더 어울리는 말이죠ㅡㅡ
좃선은 임진년에 새로 리셋 됫엇어야함.. 이순신 장군으로
리더쉽부패무능~~을사늑약~치욕
영상 반 정도 보고 장바구니에 있던 책 구입.
조선을식민디화하려는일몬의간악함을세계에알린들당시의세계는조선을두둔하게될까..의문이다..
웃기고 있네.ㅎ
부패가 만연한 북조선은 안망하나요?😊
고종 말하는 투가 뭉개버린하고 비슷하네요.
이것도 영문병기 방송타면 좋은데. 그런 위인은 제로.
고종환생21세기
이런 주장은 기존의 역사를 비판하는 것. 국뽕 및 좌파 역사학자들이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헤이그 밀사 내용을 알려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당시 조선의 민중들은 조선을 선택했을까요? 일본을 선택했을까요?
나도 점점 친일파가 되어 갑니다.
윤완용 얘기지요
노완용 문완용 얘기네요.
족선이 있어서 망했지
일제시대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 우리는 공산치하에서 살고 있을것
1900년도 전후해서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가 일본과 한반도를 39도선으로 분할통치하는 협의를 하기도 했죠.
공산주의자들이 공산 활동한 걸 항일투쟁으로 물타기 하고, 반공 인사들을 친일로 몰아 제거하기 위해
1945년 9월 소련군정사령부가 조선공산당 박헌영에게 "반공=친일매국 & 공산주의=항일독립" 선동의 지령을 내렸고...
그건 아니지
그렇지.
1900년 경 러일이 39도선으로 조선반도 분할 논의도 했었고,
공산주의자들이 공산 활동한 걸 항일투쟁으로 물타기 하고, 반공 인사들을 친일로 몰아 제거하기 위해
1945년 9월 소련군정사령부가 조선공산당 박헌영에게 "반공=친일매국 & 공산주의=항일독립" 선동의 지령을 내렸죠.
그거지!
맞는 소리! 연해주, 두만강까지 다다른 러시아가 노리고 있었으니 러제시대, 러시아 공산화로 자연스레...
문고종생각
안종덕 저런 사람이 진짜 충신이지
이그젝클 리
족선이 있어서 망랬지
박종인은 유튜브에서 최고로 유익한 크리에이터다.
만동요 진무영 ᆢ 세금징수를 개혁자 😊 당백전 발행 😊
화양동 서원철폐 ᆢ 신부 👰♂️ 천주교 이하응 🇫🇷 신부교류
처가쪽 병인박해 ᆢ 부인도 기독교 ✝️ ᆢ 최익현 등장하다
😊😊 부赴다다르다 방防방패생활 길拮의무兵永😊😊
❤❤ 조선시대 무武호반 관官벼슬 부방길입니다 ❤❤
조선인민공화국 😮 조선중앙티비 😮 양무진 장영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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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帆돛대 ㆍ선船배 국민의힘당 김기현 ➡️ 선택입니다
이승도 2000.11.23일 해병대 사령관
기습 도발한 북한군13분만에 자주곡사포 대응사격
80여발 날려 보냈다고요 Aneterna Victrix 아에떼르나
채명신 장군을 닮은 꼴들이 되어라 ᆢ 빅트리스
B1B 새만금 방조제 상공에서 미국 🇺🇸 ✈️ 전략폭격기 출격하다
대한민국 군인들의 정신줄 잡아라 👍김관진 선배님 👍
K - 21 🇰🇷 선제타격 항공우주 °°현무5°°나갑시다 🇰🇷
40KM 자주포 K9 통보30초후 🚀 선제타격 가능하다 🚀
현궁 9cm 똟고서 줌월트 🇺🇸 미국 구축함 🇺🇸
김승겸 육사42기 합참의장
안병석 육사45기 연합사 부사령관
전동진 육사45기 지상작전 사령관
신의현 학군출신 2작전 사령관
박정환 육군사관학교 44기 참모총장
이종호 해군사관학교 42기 참모총장
정상화 공군사관학교 36기 참모총장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합니다..
오천년 중국 황제의 제후 봉건국인데...그 끝이 나라를 팔아 망햇다가..정확한 역사 인식인듯 합니다.
천사 두 명인 수운 해월을 혹세무민 누명으로 교수형시켰다
멸망은 인과응보
식민지후 분단 내전 냉전 북한고립에 의한 한민족 종자보전
남한 산업화에의한 발전과 한류리드 이 모든것에는 천지대섭리가 내존한다
이씨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