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부소산성 밑에 금성산성이 현재 부여박물관 뒷산 같은데 그곳에 외조부모 묘소가 있어서 자주 가봤습니다만 산성터인줄 전혀 몰랐네요. 사실 성벽 흔적 같은게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부소산 왼쪽의 부산성도 한번 가봤는데 그냥 강변의 야산이고 정상부에는 운동기구 몇개만 있는 공터만 있고 역시 성벽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론 백제의 마지막 수도는 '익산'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백제의 수도 하면 한성 백제를 빼 놓을 수 없구요.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제하면 웅진, 사비 시기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물론 이 채널에서 백제의 역사적 기록이나 여러 곳 탐방을 해 주셔서 너무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항상 응원드립니다.
언제고 한번 일본 규슈를 방문해주셨으면 하네요. 오노죠 산성을 렌터카로 잠깐 가봤지만 지식이 부족해 백제유민의 한에 묵념하는 수준이었을뿐 입니다. 또한 미야자키현의 백제촌을 가봤는데 별 관광의 요소는 없었으나 한반도 남부보다 훨씬 더 험준한 벽지까지 왜 백제인들이 숨어들어갔는가 생각이 들더군요. 일본서기의 기록이라지만 그 험한 현해탄의 바닷길과 주고쿠 산세를 뚫어내며 명석포까지 진출한 신라군이나 신라인 천일창 추적도 해보실수 있을지도 모르시구요. 일본을 돌아다니며 백제가 더 지속됬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삼국시대에는 이런 정취였을까 생각이 들곤 합니다. 좀 더 지식이 있었으면 좋았을것을.
백제가 망한 것은 의자왕의 주지육림 때문도 아니고 김춘추의 복수심 때문도 아니죠. 외교의 실패 때문입니다. 백제는 원래 중국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데 고구려 연개소문과 손을 잡으면서 중국의 적이 되었지요. 지금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미국에 가까워지면서 러시아의 분노를 샀죠. 백제의 패망을 보면서 위정자의 책임을 생각해 봅니다.
의자왕은 분명 설마하니 당나라가 바다건너 대군을 보내겠어? 하고 방심한것 같습니다. 그게 마냥 아쉽습니다. 또한 실제로 그런 일을 예견한듯 성충의 간언대로 신라군이 논산평야로 나오지 못하게 막고 당군이 금강 하구에 상륙하지 못하게 했더라면 나라를 보전할 가능성이 높았을텐데 그렇게 하지도 않죠.
@@사적돌 개로왕이 북위에 고구려를 쳐달라고 요청한 게 고구려를 자극했을 수도 있겠군요. 북위는 고구려가 오랜 기간 조공을 하며 우호 관계를 다져왔고 북위가 고구려를 압도할 만큼의 힘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북위의 입장을 확인하자마자 고구려가 백제를 쳤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 측면도 있습니다.
@@미제드론 양사이드에서 쳐들어온거라 백제혼자 막기에는 무리였긴 했는데 웅진성에서 예식진이 배신안하고 의자왕이 잘 버텼다면 지방군,고구려군, 왜군이 지원왔을거기에 망하진 않았을거 같습니다 흑치상지가 충청도 서부로가서 군사를 모았을때 한달여만에 3만명이 모였을정도니 좀만 버텼다면 안망하고 역으로 신라가 큰 타격을 입었을거 같은데 아쉽습니다
항상 거친 산성지를 도시다가 정비된 장소를 의미있게 알려주심이 뜻깊어보입니다. 불에 탄 말안장 급하게 묻은 최고급 향로, 전시는 항상 예측보다 급작스러웠을테고 기록되지 못한 역사를 의미있게 언급해주시는 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잘 안알려진곳을 더 가려고합니다, 모쪼록 많은 분들의 관심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가본 유적지 보다
그렇지 못한 유적지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날이 갈수록 깨닫게 됩니다.
작년 가을에 방문했던
부소산성ㆍ낙화암 등등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근처에 수없이 많은 유적지가 있었네요~
다음엔 더 자세하게 다녀오고 싶어집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부여도 발굴작업에 탄력이 붙은만큼 더 많은 유적이 드러날것 같습니다.. 당장 몇년 뒤 얼마나 많은 사실이 밝혀질지 궁금하네요😌
역사를 좋아해서 두루보다가 오늘 구독ㆍ좋아요ㆍ알림하고갑니다 ᆢ영상자료와 설명에 진심가득한 열정이 보입니다 ᆢ 건승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내용 부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제작하겠습니다😄
실제로 성곽을 걸어다니는 것도 좋지만, 역시 항공촬영이 더 눈에 잘 보이는군요. 영상보니 오랜만에 부소산성 보고 싶기도 합니다.
저도 정작 부소산성 가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나네요🤔 돌아오는봄은 백제여행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완연한 봄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산성길도 좋고~ 꽃구경도 좋고~ 좋은 영상 항상 감사합니다!
봄비도 내렸고 이제 4월이니 점점더 푸르러 지겠지요, 시청 감사드립니다😌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며,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같이 답사하는 분위기를 더 내보고자 이번에 카메라도 한대 더 장만했습니다😄
지형과 역할이 울산왜성을 떠올리게 하네요. 사적돌님 영상을 본 후로 곧이곧대로 보지 않고 과거에는 물길이 이랬겠지, 해안선이 어디까지였늘까 보게되네요 😊
빙하기가 끝나 해안선이 올라오고 아직 침식과 퇴적이 덜 되었던 시절이라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지요.
지금은 물에 잠긴 서해 바다 밑이 과거에는 주된 세거지였을텐데 나중에 물이 빠진다면 어떤것을 보게될지 궁금해집니다😄
저 청산성 앞 하우스가 옛 북포자리로 보이네요
위성지도로 봤을때는 높이가 얼마안되어 보였는데 상당히 높아보이고 경치도 좋네요 ㅎㅎ
오 여기 경치 좋습니다, 청마산성 부소산성, 왕흥사잠성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목소리 듣자마자 좋아요 누르고 즐감 중
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0:53 부소산성 밑에 금성산성이 현재 부여박물관 뒷산 같은데 그곳에 외조부모 묘소가 있어서 자주 가봤습니다만 산성터인줄 전혀 몰랐네요. 사실 성벽 흔적 같은게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부소산 왼쪽의 부산성도 한번 가봤는데 그냥 강변의 야산이고 정상부에는 운동기구 몇개만 있는 공터만 있고 역시 성벽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 현재 조왕사 뒷편입니다, 퇴락이 심한데다 토석혼축이라 판별이 어려운곳이네요
부소산성도 판축토성이라 퇴락이 심한듯하지요, 그래도 발굴로 신라발해시기의 성벽과 구분되는 판축이 나왔으니 다행입니다😌
최고입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아 너무 좋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백제영상이 였서흥미롭겟보왔 습니다
좀 흥민로운점은 신라와백제모든 수도
에가까울 수록산성이 규모가더욱더 견곤했지
는지 하는지생각이 들곤합니다
또한 회랑지에발굴되 유물들은왕도를 지키던 백제의
군사들이 있지요. 백제의찬란한문화를 흠수한신라가 발전
할수있는 계기가되었다는점이 우리역사의 묘미라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부여답사오신길에. 백제멸망관련이 있는 백마강과
낙하암유적도 부탁드립니다😊
오 다음 부여 갈때는 낙화암에도 들리겠습니다😌
신라는 소백산맥과 남한강을 따라 강력한 요새들을 건설했고요 백제는 말기로 갈수록 산성이 험준하고 높은 곳에 대규모로 석성으로 변해갑니다.
와...😢
시청 감사드립니다😌
매번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알게 되서 감탄하면서 보게 되는 1인입니다~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하시나요? 역사 전공 이신가요?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그냥 단순하게 구할수 있는 모든 자료를 구해서 찾아보고있습니다 소수의견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되겠네요😅
저 개인적으론 백제의 마지막 수도는 '익산'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백제의 수도 하면 한성 백제를 빼 놓을 수 없구요.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제하면 웅진, 사비 시기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물론 이 채널에서 백제의 역사적 기록이나 여러 곳 탐방을 해 주셔서 너무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항상 응원드립니다.
익산도 사랑하는 곳이지요, 갈때마다 새로운사실들을 알게됩니다😄
부안...?
익산에는 화장실 유적이 많아
분뇨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되기도 하고
고대인들의 식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했지요.
아마 사택씨 아닐까 싶어요 백씨나
진짜 공중파 방송 퀄리티... 잘보고 갑니다
퀄리티를 더 높이기위해 고심중입니다, 어렵네요😌
부여여고가 이전하면 더욱 왕궁의실체가 드러날겁니다
그 이전하려고 부지마련한곳에서도 유적이 나왔다지요😅 부여도 땅만 파면..
@@사적돌 그래도 풍납토성만큼 하겠나요..ㅎ 서울 잠실 송파일대도 땅만파면 문화재
언제고 한번 일본 규슈를 방문해주셨으면 하네요. 오노죠 산성을 렌터카로 잠깐 가봤지만 지식이 부족해 백제유민의 한에 묵념하는 수준이었을뿐 입니다.
또한 미야자키현의 백제촌을 가봤는데 별 관광의 요소는 없었으나 한반도 남부보다 훨씬 더 험준한 벽지까지 왜 백제인들이 숨어들어갔는가 생각이 들더군요.
일본서기의 기록이라지만 그 험한 현해탄의 바닷길과 주고쿠 산세를 뚫어내며 명석포까지 진출한 신라군이나 신라인 천일창 추적도 해보실수 있을지도 모르시구요.
일본을 돌아다니며 백제가 더 지속됬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삼국시대에는 이런 정취였을까 생각이 들곤 합니다. 좀 더 지식이 있었으면 좋았을것을.
나중에 여건이 된다면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선조님들 얼이 깃든곳이라면 다 다녀오고 싶습니다😌
백제가 망한 것은 의자왕의 주지육림 때문도 아니고 김춘추의 복수심 때문도 아니죠.
외교의 실패 때문입니다.
백제는 원래 중국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데 고구려 연개소문과 손을 잡으면서 중국의 적이 되었지요.
지금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미국에 가까워지면서 러시아의 분노를 샀죠.
백제의 패망을 보면서 위정자의 책임을 생각해 봅니다.
개로왕 때도 외교적으로 문제가 있었지요,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사적돌
개로왕이 북위에 접근한 것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북위가 수나 당과 달리 통일 국가가 아니라서 고구려를 제어할 능력이 없었다는 거죠.
의자왕은 분명 설마하니 당나라가 바다건너 대군을 보내겠어? 하고 방심한것 같습니다. 그게 마냥 아쉽습니다. 또한 실제로 그런 일을 예견한듯 성충의 간언대로 신라군이 논산평야로 나오지 못하게 막고 당군이 금강 하구에 상륙하지 못하게 했더라면 나라를 보전할 가능성이 높았을텐데 그렇게 하지도 않죠.
@@사적돌
개로왕이 북위에 고구려를 쳐달라고 요청한 게 고구려를 자극했을 수도 있겠군요.
북위는 고구려가 오랜 기간 조공을 하며 우호 관계를 다져왔고 북위가 고구려를 압도할 만큼의 힘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북위의 입장을 확인하자마자 고구려가 백제를 쳤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 측면도 있습니다.
@@미제드론 양사이드에서 쳐들어온거라 백제혼자 막기에는 무리였긴 했는데 웅진성에서 예식진이 배신안하고 의자왕이 잘 버텼다면 지방군,고구려군, 왜군이 지원왔을거기에 망하진 않았을거 같습니다 흑치상지가 충청도 서부로가서 군사를 모았을때 한달여만에 3만명이 모였을정도니 좀만 버텼다면 안망하고 역으로 신라가 큰 타격을 입었을거 같은데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