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님의 주장은 이덕일씨가 주장한 주장과 동일한 내용의 주장이고, 그에 따른 반박들도 이곳( namu.wiki/w/왜인%20한반도%20남부%20지배설 )에 적혀있으며, 해당 댓글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므로 따로 사족을 덧붙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제 댓글에 역사를 특정 인물의 의견대로 받아들이고 댓글을 다는 것은 사실의 왜곡과 생각의 일원화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이렇게 댓글을 추가합니다.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자신의 의견이 맞다면 제가 올린 글을 읽고 그에 대한 반박을 해야할 텐데 제가 올린 글도 읽지 않고 댓글을 다신 것이 분명하군요. 제가 올린 사이트의 글은 상당히 긴데 그에 반해 댓글을 다는 시간은 매우 짧았으니까요. 이처럼 상대의 의견을 들어볼 생각도 없고, 자신의 글을 조리있게 작성하여 상대의 이해를 돕고자 하지도 않는 데다가 댓글을 보면 자신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반말을 하고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교만하게 ‘숙제를 내준다’라 말하고 있네요. 이런 말이 죄송스럽지만 당신은 제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없습니다. 물론, 그 가치를 0으로 만든 것은 당신 스스로의 언행이지만 말이죠. 그러니 여기까지 하죠.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사십시오.
일본이 우리보고 왜곡 날조어쩌고 지랄떨면 고고학날조로 되받아쳐주면 됨...내가 일본에 있을때 터볐던 사건인데 웃긴게 그 사건 터지고 nhk교양프로에 잉카문명 소개하는데 그 문명의 기원이 된게 고대 일본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였을지도 모른다...이따구 소리를 해댐...진짜 무슨 컴플렉스가 그렇게 심한지..ㅋㅋㅋ
좀 더 추가를 하자면 저 문제의 사학자가 날조하려고 했던 부분은 바로 일본의 구석기 문화가 있다. 고 주장하기 위함이었음... 지금도 그렇지만 저 당시엔 한반도에는 구석기 문화가 있는데,일본에는 구석기 유물은 없고 신석기 유물만 있어 당시 일본의 나름 컴플렉스에 가까웠는데 그런데 그 컴플렉스를 지울만한 증거를 냈었던 게 저 후지무라 신이치였음,그런데 그게 날조로 들어나고 일본 고고학계를 심해 깊은 곳으로 떨어뜨렸지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ㅋㅋㅋ유튜브랑 인터넷 블로그가 진실 알지 넌?ㅋㅋㅋ 일본? 우리 외가가 일본이다 새꺄ㅋㅋ 지금도 사이타마 산다 일본 문화 역사 니가 뭘 아냐ㅋㅋ 스키타이인? 웃기고 있네 아리아인?ㅋㅋ 왜 외계인 이라 그러지ㅋㅋ 유전자 검사하면 다 나온다 애초에 인간이 호모사피엔스 한종인데ㅋ 유전자로 누가 누구 후손이네 이거? 같다 붙일려면 다나온다고 나도 예수랑 형제고 부처랑 부자지간 이라 우길수도 있다ㅋ 말같은 소릴해라 바이킹이뭐?ㅋㅋ 일본이 항해술이 발달했어? 아닌데? 바이킹 시절 일본은 돌도끼 들고다녔다ㅋㅋ 일뽕 일뽕 진짜 이것들은 답이없네ㅋ
저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팩트는 일본에서만 출토되던 무덤양식이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었고 우리나라도 저걸 되받아치지 못해서 일본 사학자들이 임나일본부를 정당화 하였는데 이후 일본에서만 출토되던 무덤양식 보다 몇세기 앞선 양식이 다시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었고 그 결과 북방에서 내려온 백제 때문에 기존 한반도 남부에 살던 마한 변한 계통이 일본으로 넘어가 지배계층에 있었다라고 합니다
@@FairfaxSpears1216 그렇게 해석해도 되고요 ㅋㅋㅋ 대충 요약하자면 원래 한반도 남부에 한민족과는 다른 문화권의 일본어족(추측)? 을 사용하는 부족이 있었는데 한반도 삼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반도 남부에 잔존하던 일본어족 계통의 원주민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한국 삼국과는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면서 지금의 일본을 형성하게 됬다 라는게 반도 일본어족 설과 임나일본부설 입니다. 물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있는 임나일본부설은 완전 낭설이고요 ㅋㅋ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었다나 뭐라나...)
백제 곳곳 들어선 日‘열쇠구멍 무덤’ 수수께끼[이한상의 비밀의 열쇠] 1983년 이래 언론 지상에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는 생소한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일본 고훈 시대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왜 우리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걸까. 봉분의 외형이 열쇠구멍처럼 생긴 왜계(倭系) 무덤이 우리나라에서 차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접한 일본 학계는 반색했고 우리 학계는 당혹했다. 임나일본부설 부활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가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왔다. 우리 학계에선 새로 발견된 무덤이 왜의 전방후원분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을 장고분이나 전방후원형고분으로 바꿔 부르거나 일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40년 동안 15기의 전방후원분이 확인되었고 그 가운데 10기가 발굴되었지만 여전히 무덤 주인공을 둘러싼 열띤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1983년 영남대 강인구 교수는 대학신문에 깜짝 놀랄 만한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한반도 곳곳에 일본보다 이른 시기의 전방후원분이 분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지목한 무덤 가운데 고성 송학동 1호분이 포함됐다. 그는 1985년에는 해남 방산리 장고분, 그 이듬해에는 해남 용두리고분의 측량도를 작성한 다음 그것을 근거로 두 무덤 모두 전형적인 전방후원분임을 역설했다. 그의 견해는 크게 주목받았지만 발굴로 이어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걸렸다. 송학동 1호분의 경우 2000년에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조사 결과 전방후원분이 아니었고 3기의 무덤이 연접해 축조되었기에 외형이 전방후원분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기의 무덤에서는 소가야, 대가야, 신라, 왜 등 여러 곳의 토기가 함께 출토되었고 1B호분으로 명명된 무덤의 석실은 전형적인 일본 규슈 스타일이었다. 이와 달리 방산리 장고분은 2000년, 용두리고분은 2008년의 조사에서 전방후원분임이 밝혀졌다. 아쉬운 것은 정식 조사 이전에 이미 도굴의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었다. 두 무덤 모두 6세기를 전후해 축조된 것임이 밝혀져 이 무덤들이 일본 전방후원분의 기원이 되었을 것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전방후원분을 찾아 전국 각지를 누빈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호남 지역 전방후원분에 대한 조사 및 연구가 일찍부터 이루어질 수 있었다.
지금 전북에서는 남원과 장수가 가야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의 지명인 기문이 남원이었고, 반파가 장수였다는 것입니다 식민사관에 놀아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관광상품화하고 문화재로 지정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역사와 나라를 팔아먹고 있습니다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의 지명들은 원래 가야가 큐슈 지역에 진출해서 세운 분국들입니다 그런데 일제의 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모르면 문맹이라고 하듯이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국민들을 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가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고 주장을 하고 식민사학의 내용대로 가야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를 연구하라고 역사학자들에게 부탁을 한것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한 결과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전시한 내용을 보면 ‘일본의 역사박물관인가?’라고 착각을 할 정도입니다 물론 유물들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런데 게시된 가야의 연표를 보면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주류 역사 학자들은 일제때 일본인 식민 사학자들이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추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로는 “일제 식민 사관을 극복했다”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가야사를 복원해달라”라고 우리 역사 학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일제의 설을 그대로 추종한 연구 결과를 반영해서 박물관에 전시했습니다 현재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자체장들이 식민 사학자들에게 속아서 가야 문화를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중입니다 예를 들어서 식민 사학자들이 “전북의 남원이 이고, 경남의 합천이 이다”라고 주장하니까 전북 지사와 남원 시장, 그리고 경남 지사와 합천 군수가 자신들의 치적을 남기기 위해 가야의 유적을 발굴하고 유네스코에 남원시와 합천군을 으로 등록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인 식민 사학자들은 “일본의 신공왕후가 백제와 신라를 정벌하고 한반도 남부에 라는 식민통치 기관을 설치했고, 과 는 의 지명중 하나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신공왕후가 백제와 신라를 정벌했다고 하는 시기가 백제의 근초고왕때입니다 근초고왕이 어떠한 왕입니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황색 깃발을 휘두르며 군대를 사열한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인 식민 사학자들은 근초고왕이 신공왕후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만약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나 [신라본기]에 그러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어야 하는데 삼국사기에는 그러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일본서기]는 연대조차도 맞지 않는 역사서라서 120년을 끌어 내려야 연대가 맞을 정도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책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서기] 이외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를 끌어다가 는 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의 지명들을 한반도의 남부 지역들로 비정해서 유네스코에 등재하겠다고 하니 일본이 볼때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한반도의 남부는 고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한국의 역사학자들과 지자체장들이 알아서 인정해주는 꼴입니다 그러나 북한 역사학계가 ‘는 가야가 큐슈 지역에 세운 분국’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일본 역사학계가 초토화되었습니다 또한 남한의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북한의 학설에 동의하거나 ‘는 ’라는 설을 주장합니다 따라서 과 는 한반도의 남원과 합천이 아니라 가야가 일본에 세운 분국인 의 소국인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일제의 식민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의 지명들은 절대로 큐슈나 대마도에 있으면 안되고, 오로지 한반도의 남부 지역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임나는 가야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했다”라고 주장하면서 국민들과 대통령, 지자체장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정치가 혼란스러운 이유가 바로 국민들이 역사를 잘 모르고,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배워서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잘못된 역사관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큰 위기에 직면할 것입니다
사대주의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스님의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지금의 반일종족주의와 같은 책이므로, 일제는 소각 또는 수거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또한, 중국과 일본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과거의 역사는 남기지 않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C19바이러스 감염자수,사망자수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는 것과 같지요.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삼국유사에서 건질 것 딱 하나있지요. 昔有桓國요건 중요하죠.어쨋든 한반도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있었다는 식민지 반도사관에 매여 있어서는 눈뜬장님이지요. 일본에는 金光、金田、金山、金岡、金川、金城、金木등등 이름만봐도 도래인들이 많으니 유전적으로도 같은 사람들이 많지요. 그리고, 왜인들의 무덤이 전라도에 있는게 아니구요. 일본 나라현 다카마츠 고분에 고구려 천문도가 공개되었지요. 15세 응신왕릉과 16세 인덕왕릉의 대표적인 대형고분은 천원지방 왕릉이라고 하지요. 천원지방은 한민족의 하늘땅 사상을 땅에 표시한 것이구요.
일단 고대의 한반도 남부와 일본 서부지역인 규슈지역의 인구이동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활발했던 것은 확실한 것같아요. 서로 오고 가고 문화를 교류하고 정착하고... 다만 당시의 일본의 역량을 생각해봐서는 일본의 고대왕국이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등이 치열하게 박터지고 싸우던 한반도에 스스로 바다를 건너서 임라일본부라는 해외식민통치세력을 만들고 유지할수 있느냐? 그런 의문은 당연히 생길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한반도와 가까운 왜계세력이 마한이나 백제, 가야등지의 호족, 지방세력과 무역등을 통해 서로 결탁해서 혼인관계나 무력을 제공하는 등 우호관계를 맺으며 정착하는 경우는 충분히 있다고 봐요.
@@감사합니다잘보겠습니 나라전체가 개박살이 나고 점령당한건 아니지않나? 서양사 쪽은 잘몰라서 기억이 잘안남. 그런데 당시 왜랑 한반도는 수준차이가 너무 심해서 청동기도 우왕하던 왜랑 한반도 있던 국가랑 비교하기는 좀그럼 그러고 임나일본부설은 지금 일본사학자도 개소리라고 인정한거라
@@Ross6437-k2w일본의 고대사 컴플렉스랑 일본서기 시절의 일본의 신라에 대한 원망은 다름. 일본서기편찬시기의 일본 왕족은 백제왕족이고, 도읍에는 백제 이주자가 많았음. 백제계가 신라를 원망한거지. 일본의 고대 일본어를 쓰는 일반 백성과 지역호적은 그다지 상관없음. 그리고, 전라도 지역의 호족들은 백제왕가를 별로 안좋아했음.
@@KrMorgan12 일본이 고대 컴플렉스가 심한건 나라가 망할때마다 이주했었기 때문임 물론 망하기 이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아니지만 일본은 피난민들의 안식처 같은 느낌 고조선이 망하니 넘어가고 가야 백제가 망하니 넘어가고 일본도 어떻게 보면 이주민의 나라라고 볼수있음
김유신 말이 술집으로 향하자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가있음. 1 자신의 방탕한생활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지지 않고 남탓 동물탓을 하는 인성.자기가 키운 생명에 대한 책임감도 측은함도 없음 단순히 자기 죄를 남에게 덮어씌우기 위해서는 살인도 저지를 사람임. 2 도대체 얼마나 제집 드나들듯이 다녔으면 동물이 그리로 향했을까? 3 이런 잔인한 성격은 평민 노비 수없이 죽였을듯함. 4 그 시대는 미디어가 없기에 모든 악행이 퍼지지않음...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로 이루 말할수 없는 악행을 벌이고 다녔을것으로 추정됨.
가야만이 아니라 옥저, 동예, 부여등 많은 나라들이 고구려, 신라, 백제와 함께 상당기간 공존했었죠. 그중에서 가장 역사가 짧은 신라가 외세(당)의 힘을 빌어 통일했기 때문에 통합과정에서 다른 나라들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어버린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야 사람들은 신라의 지배층과 동화되어 스스로 구분을 적게 한 점도 있구요.
상식적으로 섬나라가 어떻게 대륙에 문화를 전파할 수 있나요...섬나라가 스스로 얼마나 위대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길래....섬나라가 대륙을 지배하고 문화를 전파한다...그냥 상식에도 벗어나는 횡설수설을 왜 우리 학계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자기 마음대로 책에 기술하면 그것이 역사가 되는 상식밖의 나라...
최근에는 한반도 남반부에 살던 일본계통의 민족을 4-5000년 전쯤에 위에서부터 내려가며 밀어내서 쫓아내서 섬으로 쫓겨냈다는 이론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일본이라는 명칭이 일본국 건국 이전에 한반도에서 사용된 점과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에 문법만 유사하고 나머지가 완전히 다른 점이 해명이 된다고 하더군요
참 답답하네요 일본인선조가 힌국사람인데 동계어지 멉니까 외국나가면 말이 바뀌나? 다만 일본어의 원형은 백제어고 한국어는 신라어가 원형입니다 그차이는 사투리정도에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고대어가 많이 바뀌었을뿐이지 언어의 조상은 같단말임 그래서 문법도 같고 유사언어도 많고 똑같은 발음과 뜻도 같습니다
구석기문화도 없이 도래인이 기술 문명 문자 농업 목축 전수하고 그곳의 지배층으로 군림했는데 야금술 광업 제련술이 어느정도 발전 했을지는 모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저질 사철로 만든 조잡한 무기류가 만주지방 질높은 철이랑 버금가는 변한지방 철이랑 싸울때 누가 이기고 또한 항해하기에 극한 환경인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군대보내고 관리할수 있게 보급품 지속적으로 보낼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미련하다 ㅅㅂ
좋은 내용인데 이제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으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은 애교로 느껴짐. 중국은 몇조 단위로 공정하고 80년대부터 역사 공정 해왔는데 그것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한복,김치,온돌,태극 등 셀수 없는 중국 공산당의 공정에 중국인에 대해서도 한족지배층의 역대 왕조의 문화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이상인가? 치가 떨림. 한푸 한족문화를 띄우려하지만 다 의심스러움. 중국에서 공부한 역사학자 글보면 중국 한족의 역사는 꼽을 정도... 중국문화의 정수라던 것도 이제 동이문화로 인정하고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있음.
중국 수서에 따르면 일본에서 글자를 쓰기 시작한 건 백제에서 불교를 도입하면서 부터라고 합니다 ㅋ 그 전에는 줄을 묶어서 표시 했다고 하네요 ㅋ 백제는 불교를 침류왕 때 비로소 공인해서 성왕 때 일본에 전수합니다 그 때 감사의 표시로 만든 성왕상이 아직도 전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ㅋ 그런데 그 이전에 무슨 재주로 기록을 남긴 것일까요 ㅋ 그 기록이 조금이나마 신뢰성이 있을까요 ㅋ
일본뿐아니라 지나도 한국과 한국고대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지... 한국의 고대사를 인정하게되면 두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게되니 인정할 수가 없는거고... 그러다보니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고... 차라리 솔직히 인정하고, 고대사를 공유하는 방법을 찾는게 동북아 평화와 심신안정에 도움이 될 듯...ㅋㅋㅋ
내가 일본이었다면 우리나라 역사가 실제로 보면 참 ㅈ같은 나라다. 구석기 시대 유물도 나오지 않고, 독일 나치와 같은 짓도 하고 역사적 사실들은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 참 수준이하 국가지만으로 시작하지만 현재는 전세가 역전된지 오래다. 등 과거와 비교해서 현재의 우월성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한다.
임나일본설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베트남에 파월을 했다고 하지만 베트남이나 미국에서나 모두 그냥 용병이었다는 인식이다 즉 자원이 없는 일본에서는 김해지역의 철을 수입하고 대신에 넓은 김해평야를 경작할 인력을 주고, 그 인력은 담로가 되어 전시에는 병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 신라와도 싸웠고 백제와도 전투를 하였고 고구려와도 전투를 하였다는 기록은 백제의 담로가 일본이었는데 어떻게 전투가 일어나나?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가야의 용병이라는 것 이외에는 설명이 불가능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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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일본은 십세키들이 조작으로인생을사는 족속들이네
저 마지막 일본유물조작사건 이후 일본 고고학계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세계고고학계에서도 배척당해서, 현재까지 일본의 고고학적 유물에 대한 감정 및 의뢰는 한국 및 중국고고학자들과 함께 진행한다고 하네요.
ㅋㅋㅋ꼴좋다 ㅋㅋ
뭔 개망신인지 ㅋㅋㅋ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님의 주장은 이덕일씨가 주장한 주장과 동일한 내용의 주장이고, 그에 따른 반박들도 이곳( namu.wiki/w/왜인%20한반도%20남부%20지배설 )에 적혀있으며, 해당 댓글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므로 따로 사족을 덧붙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제 댓글에 역사를 특정 인물의 의견대로 받아들이고 댓글을 다는 것은 사실의 왜곡과 생각의 일원화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이렇게 댓글을 추가합니다.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자신의 의견이 맞다면 제가 올린 글을 읽고 그에 대한 반박을 해야할 텐데 제가 올린 글도 읽지 않고 댓글을 다신 것이 분명하군요. 제가 올린 사이트의 글은 상당히 긴데 그에 반해 댓글을 다는 시간은 매우 짧았으니까요. 이처럼 상대의 의견을 들어볼 생각도 없고, 자신의 글을 조리있게 작성하여 상대의 이해를 돕고자 하지도 않는 데다가 댓글을 보면 자신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반말을 하고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교만하게 ‘숙제를 내준다’라 말하고 있네요. 이런 말이 죄송스럽지만 당신은 제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없습니다. 물론, 그 가치를 0으로 만든 것은 당신 스스로의 언행이지만 말이죠. 그러니 여기까지 하죠.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사십시오.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WLS
임나일본부설이 말이 안되는게
저때 일본은 뭐가 있어야지.. 제대로 된 나라도 없고 백제한테 겨우 기술 받아서 그나마 좀 사람다운 삶 살기 시작할 쯔음일텐데
맞습니다. 당시 제대로된 문자도 없었다 하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어 주입시켜 된것을 요즘 한국어에 일본어 많다고 일본에 감사하라는등 시발 너무 화나네요 에초 일본어도 한국에 국가들이 문화전파하며 한자를 넘겨주었기 때문인데... 아주 역사 날로 쳐배우나
@@하늘잉 말이되냐? 당시에 언어가 없었다는게? 역사를 날로 쳐 배운건 너 같은데ㅋㅋㅋ
@윤여름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자연어인 언어와 문자를 실수로 반대로 써버린거 같네요 3개월 전이라 기억은 잘 안나지만요
+ 사실 제가 경제가지고 댓글달때도 GDP를 GPS 라고 쓴적이 있습니다. 제가 정신이 없나봐요
@@PrettyT-rex 위에 댓글 참고해주세요
@@하늘잉 ㅇㅈ 조선술도 우리나라가 전해줬다는데
일본이 우리보고 왜곡 날조어쩌고 지랄떨면 고고학날조로 되받아쳐주면 됨...내가 일본에 있을때 터볐던 사건인데 웃긴게 그 사건 터지고 nhk교양프로에 잉카문명 소개하는데 그 문명의 기원이 된게 고대 일본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였을지도 모른다...이따구 소리를 해댐...진짜 무슨 컴플렉스가 그렇게 심한지..ㅋㅋㅋ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가보고 역사 연대기에 한반도 역사를 일본보다 뒤로 그려논 표 보고 뒷목잡고 쓰러질 뻔,
K T 국립박물관에서 그런다구요...??!!!
와 이정도면 단체로 돌았네라는 말을 써도 무방할 수준이다ㅋㅋㅋㅋ
@@KT-zy8yy 걍 노답이네. 뚝배기 대 일본아
진짜 와우라는 소리밖에 안 나오는 선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저번에 일본 애랑 싸웠는데 걔가 진짜 자기 나라 역사서가 사기니까 우리 것도 사기래요 ㅋㅋㅋ
무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12월3일부터 오는 3월1일까지 했던 '가야 특별전시회'에서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가져와 전시했었죠. 진짜 기함을 했습니다.
좀 더 추가를 하자면 저 문제의 사학자가 날조하려고 했던 부분은 바로 일본의 구석기 문화가 있다. 고 주장하기 위함이었음...
지금도 그렇지만 저 당시엔 한반도에는 구석기 문화가 있는데,일본에는 구석기 유물은 없고 신석기 유물만 있어 당시 일본의 나름 컴플렉스에 가까웠는데
그런데 그 컴플렉스를 지울만한 증거를 냈었던 게 저 후지무라 신이치였음,그런데 그게 날조로 들어나고 일본 고고학계를 심해 깊은 곳으로 떨어뜨렸지
어휴...대체 한국엔 있고 일본엔 없다는게 왜 그렇게 콤플렉스와 열등감인지...그렇다치더라도 저렇게 대대적으로 조작까지 해야 할 일인지 이해가 안 가네요. 일본의 오랜 짝사랑 정말 지긋지긋하네요ㅋㅋㅋㅋ
1:51 올바른 자세로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이런 것이다의 표본
ㅋㅋㅋ 명절때 친인척들 다모이면 좀 잘나가거나 학창시절에 공부좀 하시고 평소에 글좀 읽으시는 삼촌들이 주도해서 이야기 해주는데 겁나재밌음 근데 그런 사람중에 으뜸인 사람들을 모아놨으니 ㅋㅋ 흥미로울수밖에 유시민 김영하 ㅎㄷㄷ ㅋㅋㅋ
대학 다니던 시절 사학과 교수님이 후지무라 신이치의 유물조작사건 이후 한동안 일본 역사학자들을 학회에서 봤을때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던 것이 떠오르네요.
요즘 백제문화권인 전북에서도 대규모 가야 고분이나 유물이 발견되면서 가야가 생각보다 큰 세력이었다는게 밝혀지고 있는데, 호남과 영남사이의 소규모 세력이 아닐수도 있다고 봅니다
와 진짜요??? 어디서볼수있나여
송창현 전북 장수 가야 로 검색하시면 나올거예요.
가야의 모든 국가들의 영역을 합친 것이 클 수는 있지만 결국 가야는 하나의 국가가 아닌 여러 소국의 집합이기에 소규모 세력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땅이 100만큼의 연합체제보다 10만큼의 중앙집권체제가 훨씬 강력함
그러니깐 백제 가야 융합으로 백제는 겁나 시끄러웠죠. 실제 충청 경기 전라권 세력끼리 다툼으로 왕도 암살 당하고 반면 신라는 지배층으로 빠르게 흡수하고 화랑제로 묶어서 삼국통일에 이용했죠.
애초에 아들이 아빠를 낳았다는 식의 앞뒤 순서가 맞지도 않는 소리임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그게 가야지 일본이니?ㅋㅋ 전라 라는 말은 고려때부터 쓴건데..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호태왕비 에는 임나 라는 단어와 종발성이 나옴 가라 그런말 안나오고 정으로 찍어서 몇글자는 발견한 일본상사가 지웠지 왜 지웠을까 써넣어도 모자랄판에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뭔 스키타이ㅋㅋㅋㅋ 이스키가 진짜ㅋㅋ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그래서?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ㅋㅋㅋ유튜브랑 인터넷 블로그가 진실 알지 넌?ㅋㅋㅋ 일본? 우리 외가가 일본이다 새꺄ㅋㅋ 지금도 사이타마 산다 일본 문화 역사 니가 뭘 아냐ㅋㅋ 스키타이인? 웃기고 있네 아리아인?ㅋㅋ 왜 외계인 이라 그러지ㅋㅋ 유전자 검사하면 다 나온다 애초에 인간이 호모사피엔스 한종인데ㅋ 유전자로 누가 누구 후손이네 이거? 같다 붙일려면 다나온다고 나도 예수랑 형제고 부처랑 부자지간 이라 우길수도 있다ㅋ 말같은 소릴해라 바이킹이뭐?ㅋㅋ 일본이 항해술이 발달했어? 아닌데? 바이킹 시절 일본은 돌도끼 들고다녔다ㅋㅋ 일뽕 일뽕 진짜 이것들은 답이없네ㅋ
일본이라는 단어도 없는 시기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니...
백만번 양보해서 있었다는 환타지를 쓰더라도 그건 임나왜부여야지...ㅋㅋㅋ
@버거킹 일본이라는 단어가 없었으니 그 당시 이름으로 하려면 왜구의 왜 라고
2021년 일본인 유전자를 분석한결과, 일본인은 조몬인,야요이인,한반도인의 후손임이 밝혀졌습니다
ruclips.net/video/nKZ1Txln2S4/видео.html
@@Black_Dove99 어디서 사이비 같은 영상을 들고 온거임?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을 야요이인, 그전부터 있던 토착민들을 죠몬인이라고 함. 야요이인과 한반도인은 유전적으로 같은 사람들인데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부터 이미 사이비.
일본은 고대사에 대한 컴플렉스가 진짜 어마어마한거 같음
저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팩트는 일본에서만 출토되던 무덤양식이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었고 우리나라도 저걸 되받아치지 못해서 일본 사학자들이 임나일본부를 정당화 하였는데 이후 일본에서만 출토되던 무덤양식 보다 몇세기 앞선 양식이 다시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었고 그 결과 북방에서 내려온 백제 때문에 기존 한반도 남부에 살던 마한 변한 계통이 일본으로 넘어가 지배계층에 있었다라고 합니다
그니까 일본애들이 한반도에 영향을 끼친 줄 알았는데 그 일본애들조차 항반도 출신이었다 이런 말씀이신건가요?
@@FairfaxSpears1216 한반도 출신 아닌 일본인이 어딧나요
걔들 dna 검사해보면 90프로는 한국인하고 똑같음;
@@FairfaxSpears1216
그렇게 해석해도 되고요 ㅋㅋㅋ
대충 요약하자면
원래 한반도 남부에 한민족과는 다른 문화권의 일본어족(추측)? 을 사용하는 부족이 있었는데 한반도 삼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반도 남부에 잔존하던 일본어족 계통의 원주민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한국 삼국과는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면서 지금의 일본을 형성하게 됬다 라는게 반도 일본어족 설과 임나일본부설 입니다.
물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있는 임나일본부설은 완전 낭설이고요 ㅋㅋ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었다나 뭐라나...)
백제 곳곳 들어선 日‘열쇠구멍 무덤’ 수수께끼[이한상의 비밀의 열쇠]
1983년 이래 언론 지상에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는 생소한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일본 고훈 시대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왜 우리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걸까. 봉분의 외형이 열쇠구멍처럼 생긴 왜계(倭系) 무덤이 우리나라에서 차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접한 일본 학계는 반색했고 우리 학계는 당혹했다. 임나일본부설 부활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가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왔다.
우리 학계에선 새로 발견된 무덤이 왜의 전방후원분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을 장고분이나 전방후원형고분으로 바꿔 부르거나 일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40년 동안 15기의 전방후원분이 확인되었고 그 가운데 10기가 발굴되었지만 여전히 무덤 주인공을 둘러싼 열띤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1983년 영남대 강인구 교수는 대학신문에 깜짝 놀랄 만한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한반도 곳곳에 일본보다 이른 시기의 전방후원분이 분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지목한 무덤 가운데 고성 송학동 1호분이 포함됐다. 그는 1985년에는 해남 방산리 장고분, 그 이듬해에는 해남 용두리고분의 측량도를 작성한 다음 그것을 근거로 두 무덤 모두 전형적인 전방후원분임을 역설했다. 그의 견해는 크게 주목받았지만 발굴로 이어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걸렸다.
송학동 1호분의 경우 2000년에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조사 결과 전방후원분이 아니었고 3기의 무덤이 연접해 축조되었기에 외형이 전방후원분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기의 무덤에서는 소가야, 대가야, 신라, 왜 등 여러 곳의 토기가 함께 출토되었고 1B호분으로 명명된 무덤의 석실은 전형적인 일본 규슈 스타일이었다.
이와 달리 방산리 장고분은 2000년, 용두리고분은 2008년의 조사에서 전방후원분임이 밝혀졌다. 아쉬운 것은 정식 조사 이전에 이미 도굴의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었다. 두 무덤 모두 6세기를 전후해 축조된 것임이 밝혀져 이 무덤들이 일본 전방후원분의 기원이 되었을 것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전방후원분을 찾아 전국 각지를 누빈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호남 지역 전방후원분에 대한 조사 및 연구가 일찍부터 이루어질 수 있었다.
훌륭한 방송입니다
지금 전북에서는 남원과 장수가 가야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의 지명인 기문이 남원이었고, 반파가 장수였다는 것입니다 식민사관에 놀아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관광상품화하고 문화재로 지정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역사와 나라를 팔아먹고 있습니다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의 지명들은 원래 가야가 큐슈 지역에 진출해서 세운 분국들입니다 그런데 일제의 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모르면 문맹이라고 하듯이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국민들을 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가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고 주장을 하고 식민사학의 내용대로 가야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를 연구하라고 역사학자들에게 부탁을 한것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한 결과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전시한 내용을 보면 ‘일본의 역사박물관인가?’라고 착각을 할 정도입니다 물론 유물들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런데 게시된 가야의 연표를 보면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주류 역사 학자들은 일제때 일본인 식민 사학자들이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추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로는 “일제 식민 사관을 극복했다”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가야사를 복원해달라”라고 우리 역사 학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일제의 설을 그대로 추종한 연구 결과를 반영해서 박물관에 전시했습니다
현재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자체장들이 식민 사학자들에게 속아서 가야 문화를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중입니다 예를 들어서 식민 사학자들이 “전북의 남원이 이고, 경남의 합천이 이다”라고 주장하니까 전북 지사와 남원 시장, 그리고 경남 지사와 합천 군수가 자신들의 치적을 남기기 위해 가야의 유적을 발굴하고 유네스코에 남원시와 합천군을 으로 등록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인 식민 사학자들은 “일본의 신공왕후가 백제와 신라를 정벌하고 한반도 남부에 라는 식민통치 기관을 설치했고, 과 는 의 지명중 하나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신공왕후가 백제와 신라를 정벌했다고 하는 시기가 백제의 근초고왕때입니다 근초고왕이 어떠한 왕입니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황색 깃발을 휘두르며 군대를 사열한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인 식민 사학자들은 근초고왕이 신공왕후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만약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나 [신라본기]에 그러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어야 하는데 삼국사기에는 그러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일본서기]는 연대조차도 맞지 않는 역사서라서 120년을 끌어 내려야 연대가 맞을 정도로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책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서기] 이외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를 끌어다가 는 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의 지명들을 한반도의 남부 지역들로 비정해서 유네스코에 등재하겠다고 하니 일본이 볼때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한반도의 남부는 고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한국의 역사학자들과 지자체장들이 알아서 인정해주는 꼴입니다
그러나 북한 역사학계가 ‘는 가야가 큐슈 지역에 세운 분국’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일본 역사학계가 초토화되었습니다 또한 남한의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북한의 학설에 동의하거나 ‘는 ’라는 설을 주장합니다 따라서 과 는 한반도의 남원과 합천이 아니라 가야가 일본에 세운 분국인 의 소국인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일제의 식민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의 지명들은 절대로 큐슈나 대마도에 있으면 안되고, 오로지 한반도의 남부 지역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임나는 가야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했다”라고 주장하면서 국민들과 대통령, 지자체장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정치가 혼란스러운 이유가 바로 국민들이 역사를 잘 모르고,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배워서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잘못된 역사관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큰 위기에 직면할 것입니다
유시민은 언제 고대사 전문가가 된 거냐
일왕외가가 백제후손인거는 일왕이 공식발표했으니 아실태고 일왕친가가 가야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기를 쓰고 가야기록을 식민지시절에 싹쓸히 해서 일왕전용사고에 넣어두었지요.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신라와 당나라가 손잡고 고구려,백제를 친 이유는 뭘까요? 신라는 한민족이 아닙니다.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님의 역사인식을 듣고 보니 한민족은 중국과 일본에 지배받았다는 일본회의 역사관과 똑같네요. 1930년 조선사편찬위원회였던 이마니시 류와 그의 수제자이며, 초대문교부장관였던 이병도의 식민지 반도사관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사대주의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스님의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지금의 반일종족주의와 같은 책이므로, 일제는 소각 또는 수거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또한, 중국과 일본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과거의 역사는 남기지 않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C19바이러스 감염자수,사망자수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는 것과 같지요.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삼국유사에서 건질 것 딱 하나있지요.
昔有桓國요건 중요하죠.어쨋든
한반도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있었다는 식민지 반도사관에 매여 있어서는 눈뜬장님이지요. 일본에는 金光、金田、金山、金岡、金川、金城、金木등등 이름만봐도 도래인들이 많으니 유전적으로도 같은 사람들이 많지요. 그리고, 왜인들의 무덤이 전라도에 있는게 아니구요. 일본 나라현 다카마츠 고분에 고구려 천문도가 공개되었지요. 15세 응신왕릉과 16세 인덕왕릉의 대표적인 대형고분은 천원지방 왕릉이라고 하지요. 천원지방은 한민족의 하늘땅 사상을 땅에 표시한 것이구요.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님의 전체글을 봐 보세요. 얼빠져서 실성한 걸로 보입니다. ㅋㅋㅋ를 몇번을 쓰시는지요. 글은 마음의 자취라 하였습니다. 멘탈 클리닉을 추천합니다.
헐 가야가 낯설다니..
백제 신라 덕에 글자 옷 가구 집이 그나마 사람쓰는걸로 바꼈는데 누가 누굴 점령 해 ㅋㅋㅋㅋ
가야도 포함해야 합니다. 가야풍 신라풍 백제풍이 고대 일본에서 유행을 상류 층에서 심하게 왔고 그중일부가 지금까지 전해지는게 지금의 일본 전통복장입니다. 디자인적으로 변경된건 있어도 베이스는 안변했다고 함
볼때마다 느낀건데 유시민 선생님은 말할때나 들을때 모든사람이랑 눈을 마주치면서 말하는거같다
해외에서도 그렇고 토론의 기본자세
참고로 신이치 저사람 별명이 신의손입니다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촉새가 조잘대는 순간 품질이 격하한다.
나무위키를 보면 역사기록이 안맞는다고 규원사화나 단군세기는 위서라고 해놓고 일본서기는 언급이없음 즉 진서라함 나무위키 참 문제다
가야는 기록이나 유물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까닭에 약간 한반도에 존재했던 마야 문명같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가..ㅎㅎ
임나일본부는 반박하더라도, 반도 일본어족에 대해선 부정 못함ㅋ
일본넘들.. 고구려 건국할 때 부족사회에 신석시 시대아니었누??
임라일본부를 반박하면서 ..우리가 일본을 건설하고 지배했다고 주장해야한다..
영어 subtitles 붙여주세요; 외국인 친구들 볼 수 있도록...
백제랑 가야로 인해서 현재 일본인들이 문화적, 유전적으로 사실상 우리의 사촌 동생이나 다름없는데, 일제강점기 때 그 만행을 했으니 .....
가락국 시대면 일본이 아직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했던 시기 아닌가요!
일본은 훗카이도 땅도 훔쳐놓고 눈 많이 오는 지역의 향토문화인척하는거 얼척없음ㅋㅋㅋㅋㅋ 아이누인들 중에서도 일본한테 복수하고싶다는 사람도 꽤 있었고
일단 고대의 한반도 남부와 일본 서부지역인 규슈지역의 인구이동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활발했던 것은 확실한 것같아요. 서로 오고 가고 문화를 교류하고 정착하고... 다만 당시의 일본의 역량을 생각해봐서는 일본의 고대왕국이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등이 치열하게 박터지고 싸우던 한반도에 스스로 바다를 건너서 임라일본부라는 해외식민통치세력을 만들고 유지할수 있느냐? 그런 의문은 당연히 생길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한반도와 가까운 왜계세력이 마한이나 백제, 가야등지의 호족, 지방세력과 무역등을 통해 서로 결탁해서 혼인관계나 무력을 제공하는 등 우호관계를 맺으며 정착하는 경우는 충분히 있다고 봐요.
야만인과는 문화를 교류를 할 수 없고 야만인한테 문화는 전수되는 것이 순리니라.
일본서부지역도 통합시키지 못한 왜가...철기생산도 못했던 왜가 어떻게 철기문화로 유명한 가야를 점령할수있나...일본이 제대된 철생산이 가능했던건 고구려유민들이 넘어와 전역을 돌아다니며 철광산을 발견한 후인데...임나일본부설은 인류역사에서도 불가능한 주장임.
그럼 로마는 게르만한테 왜 털림? ㅋㅋ
@@감사합니다잘보겠습니 나라전체가 개박살이 나고 점령당한건 아니지않나?
서양사 쪽은 잘몰라서 기억이 잘안남.
그런데 당시 왜랑 한반도는 수준차이가 너무 심해서 청동기도 우왕하던 왜랑 한반도 있던 국가랑 비교하기는 좀그럼
그러고 임나일본부설은 지금 일본사학자도 개소리라고 인정한거라
@@tuna572 누가 개소리래~ 잘 모르면서 맨날 카더라~ 하고 마니까 이런거 믿지 ㅋㅋㅋ
@@감사합니다잘보겠습니 일본 사학계도 임나일본부설은 말도안되는거라고 이미 폐기된지 12년이나 지났는데 왜그러는지.... 그러고 그들이 주장하는 시대에 일본은 부족국가였음.
@@감사합니다잘보겠습니 카더라가 아니고 니가 1분정도 검색해봐 아직도 그딴 개쌉소리를 믿는 사람이있는게 웃김
이런 일본역사서 일본서기를 한국 역사학자들이 신봉하고 있다 식민사학자들이
이놈들 처단이 바로 역사 바로 세우기다
우리나라도 콤플렉스 있어서 대륙설 믿잖아ㅋㅋ 일본 비정상 취급하기전에 우리나보고 말해라
하튼 쟤네들은 주작이 없으면 일상이 불가한건가?
고증 (증거)가 부족해서가아니라 오늘날까지도 한국역사학계가 임나일본부설을 신봉하는 책을 폐내고 아마존에서도 판매중이라 심각한거죠.
? 먼소리임
책 제목이 뭐임?
1:51 소총 쓸때 기관총 들고 온 수준 차이 정도?
옆 섬나라는 문화와 문물이 대륙에서 섬으로 전파되는 초딩도 아는 이치를 부인하고 섬에서 대륙으로 또는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우기는 애들임.
그럼 한국은 중국에서 온거네
@@musiccafe8895 조상이 다른데 멍청한건가 ㅋㅋ일본은 왕족이 백제 가야출신 신하들이 토착민아녀 우리나라 왕족이 중국출신이냐?
어렸을때 허씨인데 조상이 김씨라 애들이 신기해 했었는데 막상 가야 시조라 하니까 잘 몰라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설마 허왕후가 시조?????
@@빵지-t3b 김수로왕 아들중 몇명이 어머니의 성인 허씨를 따른걸로 알고 있어요 ㅎㅎ
@@허태규-e9y 오홍 새로운사실알아갑니다
김해 허씨, 양천 허씨, 하양 허씨, 태인 허씨 이 중에 하나시구나
@@cra_shin2521 허씨는 원래 하나이고 나중에 지파가 갈라진거라고 하더군요.그리고 김수로왕의 김해김씨와 허황후의 허씨는 한 조상이니까 결혼을 못하게 했다고 하네요.결국 같은뿌리니까요
이 사람은 뭘 안다고 여기저기 다 끼어드는 건지..
한국은 근현대사 콤플렉스가 격하게 극심하지.
일본은 고대사 컴플렉스가 졸라심하지 그래서 일본서기에 신라원망이 가득한 임나본부설 같은 날조도하고,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편찬한 오노야스마로는 백제명 안만려 일본역사를 왜 백제인이 썼을까? ㅋㅋㅋㅋ
근데 그거아나? 오진천황 어머니 신공황후는 신라사람이고 그녀의 조상은 신라왕자 천일창이란걸? 공부좀하자
@@Ross6437-k2w일본의 고대사 컴플렉스랑 일본서기 시절의 일본의 신라에 대한 원망은 다름. 일본서기편찬시기의 일본 왕족은 백제왕족이고, 도읍에는 백제 이주자가 많았음. 백제계가 신라를 원망한거지. 일본의 고대 일본어를 쓰는 일반 백성과 지역호적은 그다지 상관없음. 그리고, 전라도 지역의 호족들은 백제왕가를 별로 안좋아했음.
@@KrMorgan12 일본이 고대 컴플렉스가 심한건 나라가 망할때마다 이주했었기 때문임 물론 망하기 이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아니지만 일본은 피난민들의 안식처 같은 느낌 고조선이 망하니 넘어가고 가야 백제가 망하니 넘어가고 일본도 어떻게 보면 이주민의 나라라고 볼수있음
@@KrMorgan12 일본은 확실히 고대사 컴플렉스가 있음
아하 이해했어
경제학자가 역사까지 진출했군. 아마추어가 프로의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군.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이나 낙랑군 평양설 같은게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학계 정설로 자리잡고 있고 있습니다.
정리 좀 해주세요
몽골 갑옷이 송나라 보다 좋아서 송나라를 삼켰을까요? 유럽을 이겼을까요? 임나일본부는 여러 정황상 잠시 있기는 한 듯...
애초에 가야=임나라는 게 식민사관의 도식이다. 가야는 가야고 임나는 임나다. 한반도에 있었던 건 가야고 임나는 대마도에 있었다.
그냥 간단히 요약하면..
물이 아래로 흐르는게 아니라 언제나 위로 역류한다는게 일본 고고학의 정의임.아이누족같은 얘기임.
김유신
말이 술집으로 향하자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가있음.
1 자신의 방탕한생활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지지 않고 남탓 동물탓을 하는 인성.자기가 키운 생명에 대한 책임감도 측은함도 없음 단순히 자기 죄를 남에게 덮어씌우기 위해서는 살인도 저지를 사람임.
2 도대체 얼마나 제집 드나들듯이 다녔으면 동물이 그리로 향했을까?
3 이런 잔인한 성격은 평민 노비 수없이 죽였을듯함.
4 그 시대는 미디어가 없기에 모든 악행이 퍼지지않음...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로 이루 말할수 없는 악행을 벌이고 다녔을것으로 추정됨.
이런 인간은 위인이라 할수 없음.
저 유물조작사건이 하도 어이가 없던 게 그동안 동아시아 고고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연구기관이 도쿄대였는데 저거 한 방에 신뢰성 잃고 서울대가 됐다고
가야만이 아니라 옥저, 동예, 부여등 많은 나라들이 고구려, 신라, 백제와 함께 상당기간 공존했었죠. 그중에서 가장 역사가 짧은 신라가 외세(당)의 힘을 빌어 통일했기 때문에 통합과정에서 다른 나라들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어버린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야 사람들은 신라의 지배층과 동화되어 스스로 구분을 적게 한 점도 있구요.
신라가 가장역사가 깁니다...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로의 통합이 가장늦었을뿐, 고구려 백제보다 사로국 부족국가형태로 가장먼저 등장했습니다.
무력과 경제력 문화력이 뒤처진 집단이 훨씬 우월한 집단을 어떻게 점령할 수 있냐
말이되는 소리를 해야지
임나일본부설이야 뭐 그렇다 치고 젤 문제인것이 신라 고려 조선초기까지의 국경선이 친일역사학자들로 인해 매우 왜곡되고 축소 되었다는 점,,, 동북공정이 그걸 바탕으로 역사날조를 하고 있죠,,,
서울대 민간인 폭행사건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시민씨? 그렇게 고문 폭행하고 자랑스럽게 항소이유서 쓰면 잘 사는 건가요??? 항소이유서 하늘아래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는지??? 진짜??
임나는 가야 내부에 백제,가야,왜 연합군 주둔지 였음
상식적으로 섬나라가 어떻게 대륙에 문화를 전파할 수 있나요...섬나라가 스스로 얼마나 위대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길래....섬나라가 대륙을 지배하고 문화를 전파한다...그냥 상식에도 벗어나는 횡설수설을 왜 우리 학계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자기 마음대로 책에 기술하면 그것이 역사가 되는 상식밖의 나라...
반일은 해도 반중은 절대 못하는 분탕종자
제일 중요한 내용이 빠졌네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국민들눈치못채게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고있다"
고대사로 엎으면 일본은 한국의 자회사 급으로 전락하죠.
한민족이 당나라와 맞장뜰때 일본은 아포칼립토 찍고 있었지요.
역사를 안가르치는 이유. 결국 한국(가야, 빅제, 신라)가 세운 사실이 드러나는걸 두려워하지.
최근에는 한반도 남반부에 살던 일본계통의 민족을 4-5000년 전쯤에 위에서부터 내려가며 밀어내서 쫓아내서 섬으로 쫓겨냈다는 이론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일본이라는 명칭이 일본국 건국 이전에 한반도에서 사용된 점과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에 문법만 유사하고 나머지가 완전히 다른 점이 해명이 된다고 하더군요
한국어와 일본어는 동계언데 무슨 뚱단지같은소리?
@@Ross6437-k2w 비슷한 뜻을 가진 비슷한 발음의 단어가 거의 없는데 문법만 유사한 특이한 점이요
@@전태현-s9q 우리말이랑 일본어 발음 비슷한거 많은데? 뭔 소리여?
참 답답하네요 일본인선조가 힌국사람인데 동계어지 멉니까
외국나가면 말이 바뀌나? 다만 일본어의 원형은 백제어고 한국어는 신라어가 원형입니다 그차이는 사투리정도에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고대어가 많이 바뀌었을뿐이지 언어의 조상은 같단말임 그래서 문법도 같고
유사언어도 많고 똑같은 발음과 뜻도 같습니다
@@Ross6437-k2w 일본인선조가 전부 북방계가 아님.. 남방계가 다수올라온게 일본이라서 백제는 일부이고
필리핀쪽을 타고올라온계층이 반이넘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남방계이다보나 눈이큰사람이많고 북방계한국은 눈작은사람이 겁나리많죠
임나일본부설 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용되는 위만조선과 같은 개념임
즉 없는 역사라는것.
걍 단순히 용역받아서 하청 온 수준임. 돈받고 와서 집안일 해주는 고용인이 집주인 행세하는 꼴.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학계 내에서조차 진작에 사장됐음.
일본은 고대사 컴플렉스가 크고, 우리나라는 근.현대사 컴플렉스가 크죠.
중국역사왜곡이 단어가 뭐였지 그거랑 임나일본부설 합치면 우리나라 없던데 ㅋㅋㅋㅋ
동북공정
티벳같은 경우는 서북공정. 고구려 발해는 공북공정.
@@대한민국시민-w9k 서북공정 동북공정 서남공정
삼국시대도 전에 바다건너 땅을 식민지화 시켜서 통치한다? 그 시대 기술력과 경제력이 받쳐주질 않을텐데 ㅋㅋㅋㅋㅋ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거?
구석기문화도 없이 도래인이 기술 문명 문자 농업 목축 전수하고 그곳의 지배층으로 군림했는데 야금술 광업 제련술이 어느정도 발전 했을지는 모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저질 사철로 만든 조잡한 무기류가 만주지방 질높은 철이랑 버금가는 변한지방 철이랑 싸울때 누가 이기고
또한 항해하기에 극한 환경인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군대보내고 관리할수 있게 보급품 지속적으로 보낼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미련하다 ㅅㅂ
그래서 요즘은 가야지역이 아니라 마한, 즉 전라도지역에 임나일본부가 세워졌다고 하더라고요. 일본계무덤인 전방후원분이 많이 나와서...
20년동안 일본유물 조작사기친거면 이건... 언론 정치 합작으로 한통속아니면
불가능하지않냐??? 일반상식적으로.....
금마가 곡갱이만대면 막나오고 ㅋㅋㅋㅋㅋㅋㅋ
에라이...
가야 후손으로 씹어 죽여도 분이 안풀립니다
기록에 다나오는데 백제가 왜에 가서 기술전파해주고 칠지도와 일본 지도층이 백제인이었다는거까지
백제한테서 문화 전수받고 겨우사람처럼 살게해줬구만 지들이 뭘 지배해
김유신 무덤을 김유신 장군릉 이라고 하는 이유가 가야왕족 출신이라고 시호를 받아서 왕릉이됨 시호는 흥무대왕
그래서 김유신장군묘가 아니라
흥무대왕릉 이 바른 표현
좋은 내용인데 이제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으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은 애교로 느껴짐.
중국은 몇조 단위로 공정하고 80년대부터 역사 공정 해왔는데 그것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한복,김치,온돌,태극 등 셀수 없는 중국 공산당의 공정에 중국인에 대해서도 한족지배층의 역대 왕조의 문화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이상인가? 치가 떨림.
한푸 한족문화를 띄우려하지만 다 의심스러움. 중국에서 공부한 역사학자 글보면 중국 한족의 역사는 꼽을 정도... 중국문화의 정수라던 것도 이제 동이문화로 인정하고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있음.
기술 수준이 넘사벽이라 임나일본부는 말 자체가 안된다. 철도 못만들어 내는 한 낯 잘 봐줘야 해상무뢰배들이나 될 수준들의 기술로 넘사벽의 기술을 가진 상대를 무슨 수로 200년간 분국 통치하겠는가?
그럼 뭐 대마도도 우리나라꺼 되야하는거아닌가?
그건 아님
결정적 근거가 뭐라는 건가요?
일본 전국신사에 가서 정신집중하고 마음의 눈으로 보세요.
일본은 이악물고 까고 동북공정은 그러려니~
김진명 사건 이후로 광개토태왕릉비는 다시는 언급안하는걸로 알고있는데 임나일본부를 아직도 주장하는가요
가야지역에서 야마토일본갑옷들 많이 출토된다는데 더 증거가 필요한가
다맞는 이야긴데 가야시대 일본땅으로 엄청갔어요 거기살던 북방 유럽계 아오이족 쫒아냄 지금일본인 도래인..어디서..한반도 아니 어디서 오래나눠서 말이 변해서 조상읔동일
김유신 할아버지 김무력 때 신라에 항복하지...아버지가 아니고
왜구역사는 억지지 철기시대도 우리가 전파
농경도 우리가 직접이주해서 농사했는데
무슨 임나본부설 염병떠네
4000년전엔가 존나 잘나가던 이집트는 지금은 그냥 그런나라고
역사 300년된 미국이킹왕짱임
저딴걸로 자부심느끼는사람은 역사를 알면서도 부정하는거임?
중국과 일본은 한국 없었으면 어쩔뻔
중국 수서에 따르면 일본에서 글자를 쓰기 시작한 건 백제에서 불교를 도입하면서 부터라고 합니다 ㅋ 그 전에는 줄을 묶어서 표시 했다고 하네요 ㅋ 백제는 불교를 침류왕 때 비로소 공인해서 성왕 때 일본에 전수합니다 그 때 감사의 표시로 만든 성왕상이 아직도 전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ㅋ 그런데 그 이전에 무슨 재주로 기록을 남긴 것일까요 ㅋ 그 기록이 조금이나마 신뢰성이 있을까요 ㅋ
장신구나 금속공예가 16세기나 되서야 나온 일본이 저길 점령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은 마을이나 털어가는 해적질을 그런식으로 믿고싶어나보지?
한때 일본국왕이 자신들이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한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야.
이미 죠몽시대때부터 한반도와 중국대륙으로부터 인구 유입이 있었고
야요이시대땐 백제,가야,신라등에서도 건너갔지.
도토리나 저장해놓고 먹고살던 놈들이 저런 말하는건 진짜 웃기는 거야.
일본뿐아니라 지나도 한국과 한국고대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지... 한국의 고대사를 인정하게되면 두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게되니 인정할 수가 없는거고... 그러다보니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고... 차라리 솔직히 인정하고, 고대사를 공유하는 방법을 찾는게 동북아 평화와 심신안정에 도움이 될 듯...ㅋㅋㅋ
너무 발굴을 잘해. 곡괭이만 대면 막 나와.... ㅋㅋㅋ
진주에 고려가야?......상주시 함창읍에 고령가야 왕릉이 있는데
그래서 그 두 곳끼리 서로 싸움 중이죠.. 서로 발상지라고
내가 일본이었다면 우리나라 역사가 실제로 보면 참 ㅈ같은 나라다. 구석기 시대 유물도 나오지 않고, 독일 나치와 같은 짓도 하고 역사적 사실들은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 참 수준이하 국가지만으로 시작하지만 현재는 전세가 역전된지 오래다. 등 과거와 비교해서 현재의 우월성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한다.
임나일본설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베트남에 파월을 했다고 하지만 베트남이나 미국에서나 모두 그냥 용병이었다는 인식이다
즉 자원이 없는 일본에서는 김해지역의 철을 수입하고 대신에 넓은 김해평야를 경작할 인력을 주고, 그 인력은 담로가 되어 전시에는 병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 신라와도 싸웠고 백제와도 전투를 하였고 고구려와도 전투를 하였다는 기록은
백제의 담로가 일본이었는데 어떻게 전투가 일어나나?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가야의 용병이라는 것 이외에는 설명이 불가능 하다.
강단사학자보다 훨씬 낫네
그때 일본에 한반도 삼국만큼 체계적인 국가가 있긴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