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휘 이렇게 생각하는거 부터가 이때 시도조차하지 못했기때문에 부정적인거임 고구려가 처음부터강했을까? 소수림왕때 근초고왕때문에 멸망직전까지 갔음 그리고 백제만 고구려의 적이였을까? 흔들리는 등불속에서 소수림왕의 결단이 광개토를 만들고 장수왕을 만들고 후에 대고구려의 영광을 만들며 수 당나라가 쳐들어와도 백만대군 앞에서 당당할수있는 정신을 만들었음 고로 내가 하고싶은말은 당신의 고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저때 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봄
예전에는 김부식만 죽일놈이라고 했지만 요와 전쟁 그리고 여진족과 전쟁 후유증에 , 이자겸의 난으로 국력이 쇠한 고려가 과연 최 전성기를 누리던 금과 전쟁 하는 것이 옳았던 것인지 모르겠네요 금도 지들 땅 통치 힘들어 굳이 고려를 침략 안 하고 사대 예만 취하면 전쟁을 안 할 수 있었눈데 말이죠
승자의 역사니 뭐니 하는데 승자의 역사라는건 역사 기록에 있어서 어떤 "사건"에 대한 본인들의 "해석"이나 "평가"에 불과하지 어떤 "사건"자체를 부풀리진 않았죠 그 이유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훗날 시대가 바뀌면 "해석"이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집필자의 의도죠. 이는 고려 조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이어집니다. 그래서 조선때도 실록을 수정해서 "수정실록"을 정파의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더라도 실록집필의 바탕이 되는 "원본"도 함께 남겨두는 방식으로 기록이 이루어지죠
뭐든 하나씩 차분히 진행하지 않고, 갖은 꼼수와 무리수를 두어 반대파들을 결집시키는 결과가 나오게 됨. 결국 금나라와 싸우기는 커녕 내분으로 국력만 소모하는 결과만 나오게 됨. 좋은 목적이 있었는데 묘청이 다 말아먹음....김부식의 아들도 무신정변 일어나는데 한 몫 제대로 함..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지역감정에서 나온 프로파간다이지, 객관적 주장은 아니었죠. 당시 서경과 개경의 대립은 지금의 경상도와 전라도, 대구와 광주 같은 지역감정과 정치적 대립이 혼합된 형국이었다고 판단하시면 될듯합니다. 고려는 초창기 고구려계 호족들이 중심이 돼서 건설된 국가였으나, 성종 시기부터 신라계가 개경과 중앙관직을 장악하게 되며 고구려계는 신라계에게 정치적 헤게모니를 뺏기게 됩니다. 즉, 이러한 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서경과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계 서경파와 개경과 경기지방을 중심으로 한 신라계 개경파가 정치적 대립을 하며 지역감정이 탄생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신라계의 득세 속에 중앙에서 점차 힘을 잃어가던 고구려계 귀족들이 본인들의 근거지인 서경으로 천도하여 신라계 귀족들을 제압하고 다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주장한 프로파간다가 서경천도론입니다. 서경에 왕기가 서렸다는 것은 그저 천도를 위한 구호였을 뿐 사실은 중앙정치의 정쟁이 핵심인 사건인 것이죠. 이와 같은 경기와 서북지방의 대립, 지역감정은 고려시대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 그리고 남북한의 대립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홍경래의 난 역시 이런 배경으로 발생한 사건이죠.
애초에 농경민족 군대 20만으로는 기마궁병 3만 이기기도 힘들 듯......상대방이 용병술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면 고려군의 진형이 좋고 기세등등할 때는 크게 안싸우고 도망가며 거리를 벌리다가, 토벌을 위해 행군을 계속하고 물자를 소모하면서 힘이 빠지면 치고 빠지고.......기동력의 차이가 전략과 전술의 차이를 만들어버릴 듯.
@@younunam959 원래 농경민족 왕조는 끊임없이 유목민족의 습격을 염려해여 했습니다. 한나라는 흉노를, 동진은 5호 16국을, 당나라는 북방이 아니라도 토번을, 송나라는 거란 여진에 시달리다 몽골에 망하고, 명은 청에 당하고.......천자를 지칭하며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던 사람들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게 전근대시대의 기마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농경민은 기름진 땅이 재산이고 목축민은 건강한 가축이 재산입니다. 땅은 움직이지 않으니 그 땅에 정착해서 밭을 일구고 물을 대고 부지런히 잡초도 뽑아주어야 작물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가축은 움직이니 비록 땅에 있는 풀을 뜯게 하더라도 풀을 줄어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풀밭을 찾아야 합니다. 짐승들이 뜯을 풀과 마실 물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가는 게 목축민입니다. 중요한 건 풀 뜯을 가축을 얼마큼 갖고 있느냐죠. 유목민은 말을 타고 농경지를 헤집고 집을 불태우고 달아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농경민에게는 말보다 소가 더 중요하고 소는 말과 달리 빨리 달리기에는 어렵습니다. 말은 군사용으로 이용되어서 농부가 갖기 어렵습니다. 있더라도 군사용 준마로 차출되기 때문이죠. 이런 차이 때문에 농경민은 기동성에서 목축민에게 뒤처집니다. 그리고 농경권에서 20만을 차출하는 것은 생산력에 차질을 주기 때문에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들을 또 먹여 살려야 하니 생산량은 떨어지고 소비량은 느는 악영향만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힘들게 차출한 군대가 전투에서 패배하여 궤멸되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전쟁은 어떤 이득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무작정 역사 감정이나 자존심만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주제 모르고 깝치다가 삼배구고두례를 해야 했던 능양군의 경우를 상기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나마 요나라와는 고려가 싸워서 이겼으니 요나라도 국력 소모로 더이상 전쟁 수행이 어려워졌죠. 금나라와는 싸우지 않았지만 금나라 건국 전에 여진 정벌로 인해 여진족에게 불가침 협상을 이끌어냈기에 금나라 건국 후에 고려가 서경 반란으로 위태로울 때조차 함부로 넘보지 않았고 게다가 고려는 전례에 요나라와 싸워서 승리했기에 금으로서도 고려를 마냥 얕볼 수 없었습니다. 고려가 반드시 요나 금을 정벌해야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려로서는 풍속을 유지하고 내정 간섭을 받거나 무리한 공물 요구나 공녀 요구를 받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분수를 망각하고 조선 유자들처럼 처신하면 나라가 풍비박산 나는데 고려가 묘청 뜻대로 했으면 고려는 지도에서 지워졌을 겁니다. 그리고 금나라가 고려에게 그렇게 강압적일 이유도 없었구요. 요나 금이나 고려를 얕볼 수도 없었고 송나라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해서 조공으로 떄우던 나라입니다. 중원이 완전히 통일됐으면 요 금 송 어느 나라든 고려에 고자세로 나왔을 테지만 다행히 중원이 이분 삼분되어 있던 덕분에 고려 같은 작은 나라가 조금이라도 허리를 펼 수 있었던 겁니다. 몽골처럼 거란 여진 한 탕구트 위구르 페르시아 다 박살내고 다니면서 정복하는 애들이었으면 금처럼 절대 하지 않습니다. 고려가 적절히 대처한 거죠.
근데요..이 영상 김부식에 대해 은근히 호의적인 늬앙스가 풍기는건 저만의 느낌인가요..? 이씨 조선의 미치광이 같은 사대의 뿌리가 김부식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는 현 시대인뎅 또한 민족 역사상 가장 천재적이였던 역사학자 및 언어학자 단재 선생님도 김부식을 거의 민족 반역자급으로 서술했는데..
설명 잘 해주시네요
왜 서경일까요. 북경이라 하는 게 더 받아들이기 편할텐데
그냥 사이비 땡중의 현실 모르는 헛소뤼임.. 만약에 서경으로 천도 했다면 괜히 금한테 깝쳤다가 고려판 삼전도 굴욕 당했을듯
역사랑놀자는 고려국경을 왜 저렇게 그렸늠가요?
지금 국경이랑 저때랑은 달라요
현 덕 정 문 순 선 헌 숙 예 이렇게 전성기
진짜 최고입니다..!!
개경이 쇠하였다는 말은 미신이 아니었다
잘 보고 갑니다
정지상 같은 휼륭한 문인이 죽어서 안타깝네요
발해가 망한것도 자연 재해 서경천도 운동도 자연재해 하늘은 두번다시 만주를 한민족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ㅠㅠ
묘청은 왠지 태조왕건의 아지태 비슷한 인물 아니었을까 싶네요 과대망상에 일 안하면 불안한 사람
묘청과 김부식을 통합하고 서경으로 천도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고구려의 유지를 이어 인종이 빌드업하고 다음왕이 만주로 출정할수있는 기반을 닦았더라면 역사엔 이프가 없지만 이후로 민족의 무대가 한반도로 국한된게 너무 아쉽다ㅠ
@유재휘 이렇게 생각하는거 부터가 이때 시도조차하지 못했기때문에 부정적인거임 고구려가 처음부터강했을까? 소수림왕때 근초고왕때문에 멸망직전까지 갔음 그리고 백제만 고구려의 적이였을까? 흔들리는 등불속에서 소수림왕의 결단이 광개토를 만들고 장수왕을 만들고 후에 대고구려의 영광을 만들며 수 당나라가 쳐들어와도 백만대군 앞에서 당당할수있는 정신을 만들었음 고로 내가 하고싶은말은 당신의 고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저때 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봄
@유재휘 소수림왕때는 멸망직전이였다니까 먼소리냐 뜬금없이 주변소국정리한게 먼소리야 망국의 길을 가고있는걸 개혁군주 하나가 다시일으켰다고 논리에 벗어나지말고 내가 한말 잘 생각해봐 소수림왕이 국가기강 정비하고 귀족이랑 백성을 모으는 시대정신을 제시했기 때문에 3대만에 전성기를 이끌었고 그걸 했었으면 좋았겠다라고 말하는데 왠 부족국가 통합하는소리가 나와
@유재휘 금이랑 내가 언제 처음부터 전면전하자고 그랬냐 진짜 이새끼는 지할말만하고 글도 제대로 안읽고 어그로 존나끄네ㅋㅋㅋㅋ
목소리 너무 좋아요 구독 쿡 하고 갑니다
참 하늘이 안 도왔구나
예전에는 김부식만 죽일놈이라고 했지만
요와 전쟁 그리고 여진족과 전쟁 후유증에 , 이자겸의 난으로 국력이 쇠한 고려가 과연 최 전성기를 누리던 금과 전쟁 하는 것이 옳았던 것인지 모르겠네요
금도 지들 땅 통치 힘들어 굳이 고려를 침략 안 하고 사대 예만 취하면 전쟁을 안 할 수 있었눈데 말이죠
김부식잡앙.요나라 황제에게 보내부러야한다.
저거보면 단채신채호가 한민족역사상 최고의 안타까운장면이라던묘청의난의진실을보면 정말 얼마나 황당하고 허황된 사람인지알겠다
목소리가 포근하고좋아요
묘청은 일단 방법부터가 잘못되었음 온갖 요설과 속임수로 여론을 선동했으니 그동안 멀쩡히 제2수도와 국방의 요충으로 제ㅡ역할을 다 하던 서경만 초토화가 되어 엄청난 국력손실을 초래하였음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기 때문에 보수쪽 김부식이 부풀려서 기록했을게 뻔합니다.
승자의 역사니 뭐니 하는데 승자의 역사라는건 역사 기록에 있어서 어떤 "사건"에 대한 본인들의 "해석"이나 "평가"에 불과하지 어떤 "사건"자체를 부풀리진 않았죠 그 이유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훗날 시대가 바뀌면 "해석"이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집필자의 의도죠. 이는 고려 조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이어집니다. 그래서 조선때도 실록을 수정해서 "수정실록"을 정파의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더라도 실록집필의 바탕이 되는 "원본"도 함께 남겨두는 방식으로 기록이 이루어지죠
@@soridaizin79 묘청이 온갖 요설과 속임수을 써서 여론을 선동했다라는 당신글 자체가 부풀린 사건에 대한 해석이지.
감정은 요설과 속임수로 선동질한건 실제 있었던 일 맞음
영상에도 나옴
@레모넬메실 전부다입이라고있어니까뇌피셜죽이네
김부식의삼국사기가삼국을 황제의본기로출발하고서술하고중국과부딪치는부분에선민족적 우위를바탕으로서술하고 황졔의명을받아국책사업으로당시최고의엘리트를모아철저한검증으로삼국을공평하게서술한것을 사대주의자라고한다면
혼자동굴같은데서 예수나무하마드처럼신의계시를받아고구려귀신들을접신해묘청을단군이래초대인물이라치켜세운신채호는미친놈아닌가?
차라리북한김일성을보천보사건에의한독립투사다라고떠드는게더낮지
역사을더만이알고싶네요.
역사를더많이알고싶네요
묘청도 간계를 쓴것 뿐 ...
서경천도운동이지 난이라는 표현은 맞지가 않네요. 묘청스님의 성급한 실수로 우리나라 고유의 낭가가 끊겨서 화랑제도나 고구려선배등 자주국방은 내팽겨치고 유교공부랑 과거급제해서 부패할 생각만 하게된 현실이 저 서경천도운동실패 이후로 확연해진건데 안타까운것을
뭐든 하나씩 차분히 진행하지 않고, 갖은 꼼수와 무리수를 두어 반대파들을 결집시키는 결과가 나오게 됨. 결국 금나라와 싸우기는 커녕 내분으로 국력만 소모하는 결과만 나오게 됨. 좋은 목적이 있었는데 묘청이 다 말아먹음....김부식의 아들도 무신정변 일어나는데 한 몫 제대로 함..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조선역사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라 하셨죠 만약 서경파인 묘청이 이겼더라면 우리나라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을지도 궁금하네요
@@정창민-c6c 신채호마저 깐 묘청...
묘청이겼으면 우린 중국말 쓰고 있었겠죠 ㅎㅎ
@@일상의지평선 금나라 정벌하고 명나라 청나라는 역사에 없었을듯...
푸하하 걍 지구정복했다고 치죠 ㅎㅎㅎ 머하러 명.청만 갑니까 ^^ 지구정복하면 되지 ㅋㅋㅋ
태평성대의 마지막 왕 예종 사후 즉위한 인종부터 뭔가 고려가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다음 왕인 의종 때, 무신정변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기울어져 가는거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드네요.
묘청 과 인종에 대한 전통사극이 한번 나왔으면 좋겠는데 요즘 전통사극이 아예 안나와서 힘들거 같네요
아..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재미있네요
인종다음이 의종이죠? 무신시대
판타스틱하네
의종 개 쓰레기,.,,
의종이 김부식아들 돈중이문신패거리하고 정중부등 무신들을 농락하다가 분기탱천한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서 정중부는 돈중이쫓아강 목을 잘라 대궐로 가져갔고 이의방은 하이방깐 의종을 쫓아가서 문신들을 척살해부럿다.그리고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새왕으로 추대했다.
환빠들 몰려온다
고조선 삼국 고려가 다 환빠야 .
넌 왜구냐
근데 상식적으로 이미 500년전에 고구려 수도 였다가 망한 곳인데 왕기가 있을 수 있나?? 당시 남경(서울)이면 몰라도ㅋ
일종의 지역감정이죠 원래 왕기라는게 따로 있는게 아니라 묘청일파의 입장에서는 서경 천도를 이루어냄으로서 기존의 개경세력을 약화시키고 주류로 올라서기 위해서 온갖 감언이설을 다 갖다바친겁니다. 결과는 괜히 서경만 박살내고 끝나버렸지만요
서경파는 서경으로 천도하여 금을 정벌하고 옛 고구려의 땅인 만주지역을 회복한다는게 그들의 주장이었으니 개경보다 북쪽으로 천도해야지 남쪽으로 천도 한다는것은 어불성설 입니다.
고구려가 망할때까지 국내성파와 평양파가대립했는데 그거와똑같군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지역감정에서 나온 프로파간다이지, 객관적 주장은 아니었죠. 당시 서경과 개경의 대립은 지금의 경상도와 전라도, 대구와 광주 같은 지역감정과 정치적 대립이 혼합된 형국이었다고 판단하시면 될듯합니다.
고려는 초창기 고구려계 호족들이 중심이 돼서 건설된 국가였으나, 성종 시기부터 신라계가 개경과 중앙관직을 장악하게 되며 고구려계는 신라계에게 정치적 헤게모니를 뺏기게 됩니다. 즉, 이러한 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서경과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계 서경파와 개경과 경기지방을 중심으로 한 신라계 개경파가 정치적 대립을 하며 지역감정이 탄생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신라계의 득세 속에 중앙에서 점차 힘을 잃어가던 고구려계 귀족들이 본인들의 근거지인 서경으로 천도하여 신라계 귀족들을 제압하고 다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주장한 프로파간다가 서경천도론입니다. 서경에 왕기가 서렸다는 것은 그저 천도를 위한 구호였을 뿐 사실은 중앙정치의 정쟁이 핵심인 사건인 것이죠.
이와 같은 경기와 서북지방의 대립, 지역감정은 고려시대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 그리고 남북한의 대립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홍경래의 난 역시 이런 배경으로 발생한 사건이죠.
역사에 모르는 부분들이 새롭고 잼나네요 ㄱㅅ합니다 ㅎㅎ
묘청은 이상주의에 전제주의자 김부식은 현실주의에 보수주의자
이번 영상을 보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 고려시대에는 피뢰침 개념의 것을 만들 생각을 못했군요.개인적으론과학쪽으로는 꽝이다보니.. 묘청의 난을 김부식이 진압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네요.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얼척없는게 제대로 된 20만정도 군사만 있었어도 그당시 쇠퇴하던 요 금 다 정벌 가능했을 건데...
그당시 고려의 국력으로 거란을 이기기는 역부족임
애초에 농경민족 군대 20만으로는 기마궁병 3만 이기기도 힘들 듯......상대방이 용병술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면 고려군의 진형이 좋고 기세등등할 때는 크게 안싸우고 도망가며 거리를 벌리다가, 토벌을 위해 행군을 계속하고 물자를 소모하면서 힘이 빠지면 치고 빠지고.......기동력의 차이가 전략과 전술의 차이를 만들어버릴 듯.
님들 고려와 조선이 대륙으로부터 강탈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자신감이 없었기때문입니다
@@younunam959 원래 농경민족 왕조는 끊임없이 유목민족의 습격을 염려해여 했습니다. 한나라는 흉노를, 동진은 5호 16국을, 당나라는 북방이 아니라도 토번을, 송나라는 거란 여진에 시달리다 몽골에 망하고, 명은 청에 당하고.......천자를 지칭하며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던 사람들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게 전근대시대의 기마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농경민은 기름진 땅이 재산이고 목축민은 건강한 가축이 재산입니다.
땅은 움직이지 않으니 그 땅에 정착해서 밭을 일구고 물을 대고 부지런히 잡초도 뽑아주어야 작물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가축은 움직이니 비록 땅에 있는 풀을 뜯게 하더라도 풀을 줄어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풀밭을 찾아야 합니다. 짐승들이 뜯을 풀과 마실 물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가는 게 목축민입니다. 중요한 건 풀 뜯을 가축을 얼마큼 갖고 있느냐죠.
유목민은 말을 타고 농경지를 헤집고 집을 불태우고 달아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농경민에게는 말보다 소가 더 중요하고 소는 말과 달리 빨리 달리기에는 어렵습니다. 말은 군사용으로 이용되어서 농부가 갖기 어렵습니다. 있더라도 군사용 준마로 차출되기 때문이죠. 이런 차이 때문에 농경민은 기동성에서 목축민에게 뒤처집니다.
그리고 농경권에서 20만을 차출하는 것은 생산력에 차질을 주기 때문에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들을 또 먹여 살려야 하니 생산량은 떨어지고 소비량은 느는 악영향만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힘들게 차출한 군대가 전투에서 패배하여 궤멸되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전쟁은 어떤 이득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무작정 역사 감정이나 자존심만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주제 모르고 깝치다가 삼배구고두례를 해야 했던 능양군의 경우를 상기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나마 요나라와는 고려가 싸워서 이겼으니 요나라도 국력 소모로 더이상 전쟁 수행이 어려워졌죠. 금나라와는 싸우지 않았지만 금나라 건국 전에 여진 정벌로 인해 여진족에게 불가침 협상을 이끌어냈기에 금나라 건국 후에 고려가 서경 반란으로 위태로울 때조차 함부로 넘보지 않았고 게다가 고려는 전례에 요나라와 싸워서 승리했기에 금으로서도 고려를 마냥 얕볼 수 없었습니다. 고려가 반드시 요나 금을 정벌해야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려로서는 풍속을 유지하고 내정 간섭을 받거나 무리한 공물 요구나 공녀 요구를 받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분수를 망각하고 조선 유자들처럼 처신하면 나라가 풍비박산 나는데 고려가 묘청 뜻대로 했으면 고려는 지도에서 지워졌을 겁니다. 그리고 금나라가 고려에게 그렇게 강압적일 이유도 없었구요. 요나 금이나 고려를 얕볼 수도 없었고 송나라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해서 조공으로 떄우던 나라입니다. 중원이 완전히 통일됐으면 요 금 송 어느 나라든 고려에 고자세로 나왔을 테지만 다행히 중원이 이분 삼분되어 있던 덕분에 고려 같은 작은 나라가 조금이라도 허리를 펼 수 있었던 겁니다. 몽골처럼 거란 여진 한 탕구트 위구르 페르시아 다 박살내고 다니면서 정복하는 애들이었으면 금처럼 절대 하지 않습니다. 고려가 적절히 대처한 거죠.
신채호가 묘청의 난을 오천년 역사중 최고의 사건이라고 칭찬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건 멍미요?ㅎ
J레옹 일제 치하라는 시대, 민족주의 사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신 것이죠.
신채호학자말이100%맞는건아닙니다.
그 분도 주관적인발언한거죠
김부식,권근,서거정,박상,정약용,안정복이 신라중심관이였다면 신채호는 고구려중심관이였고 지금 다시 평화노선이 더 이득이였다는 쪽으로 다시 지지틀 받고있습니다.
@@멍멍이-u9m 김부식은 현실주의자에충효를중시한유교주의자
묘청은 이상주의자인데다그시대상황이러니까자주적인환빠주의자에 맛이간 몽상가
근데요..이 영상 김부식에 대해 은근히 호의적인 늬앙스가 풍기는건 저만의 느낌인가요..?
이씨 조선의 미치광이 같은 사대의 뿌리가 김부식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는 현 시대인뎅
또한 민족 역사상 가장 천재적이였던 역사학자 및 언어학자 단재 선생님도 김부식을 거의 민족 반역자급으로 서술했는데..
단재는 천재 사학자라기보단 철저한 민족주의 사학자입니다 일제시대 한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역사를 가르칠 필요가 있었고 역사적 사실에 국뽕을 가미한겁니다
서경천도운동
저거 묘청놈이 꼼수 무리수만 안부렸어도 북벌하면서 서경은 떡상했을거임
고려는 더 큰 땅을 가졌을테고
지도는 많이 달라져있겠지
반대로 금나라하테 털리고 합병 당했을 지도?
@@PrettyT-rex 금나라는 동북 9성 반환건 때문에 고려에 호의적이었음.
@@SaitoCheonJun 호의 아니고 병신 이라 생각했지
김 부식 빠ㅜㅜ
신채호는묘청을칭찬하고김부식비판한걸로아는데
서경천도론의 취지를 칭찬한것이지, 묘청의 행동 자체는 '광망하다'라며 비판했습니다!
서경천도 하려는거자체가
황제버금가는 최고의세력으로 대대손손
누릴려는것도있지 나중에 자기후손들이
황제가될수도있고
신채호 선생님은 서경 천도 운동이 성공하면 우리나라도 이렇게 일제의 탄압을 받지 않았을것이다 라고 했지만 묘청을 높게 사지는 않았어요
서경 천도파와 개경고수파의 싸움이지 평양세력과 개경 경주세력의 싸움이지 최후의 승리자는 경주파가 개경 세력에 뒤통수쳐서 김부식의 승리로 끝나지 뒤통수의 끝판왕 김부식은 사마의 와 비슷해
@@역사랑놀자 말장난아님??한국사 최고의사건이자역사의 자랑이라면서묘청의행동이광망하다??무정부주의자 신채호답군
요즘 한반도 역사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어 공개하네 왜??
개땡중쉑이네
근데 서경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달라질게 있었던가?
네, 금나라를 정벌하여 진정한 대왕의 고려로 변모하였을겁니다. 그리고 무신정권도 없었을겁니다.
Youngin Yi 근데 저때 고려는 이자겸의 폭정으로 국고가 텅텅 비었고 군대 알기를 개돼지 취급해서 무신들의 불만이 늘어갔는데 설사 정벌을 한들 그 넓은 땅들은 죄다 권문세족 과 사찰의 승려들이 독차지하고 백성들의 삶은 그대로 유지됨.
@@이동연-c6d 제가 이휘재의 인생극장을 보고왔습니다. 서경천도선택이 신의 한수였습니다.
Youngin Yi 천도 한다고 한들 백성들의 삶이 달라지긴 했을까?
@@이동연-c6d 국가가 강성해지면 당연히 국민의 삶또한 좋아지는것은 당연한 이치이지요.
서경이 평양이냐.?
고려의 서경(평양)은
중국 선양(심양)바로 아래
랴오양시(요양)가 고구려
마지막 평양이었고 고려의
서경이었답니다.
유투버들 역사강의를 재미로
보더라도 기본은 알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거의 이자겸 급에 인성이누..
묘청 너 인성 문제 있어?
서경이 평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으니. . . . 서경은 시안이야, 동경은 낙양이고우리 역사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이라고. . . .낙양성 십리하에. . . .대륙이 조선이었다고. 고려였고. . .
나의 방구 냄새가 가끔 독해지고 방구횟수도 잦아지는데 이는 요플레를 비피더스로 바꿔서 그런 거 맞지? 그렇지?
환빠는좀그렇다
예전엔 조선일보같은 삼국사기를 만든 김부식이 죽일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보고나니 더 죽일 놈이라는 생각이든다.
???? 삼국사기가 없었으면 너는 국사를 중국사로 배워야 하는데???? 안금 판타지로 배우던가
삼국사기 원본은 없고, 지금 현존하는 삼국사기는 조선 중기때 개정판임....원본을 조선 성리학적 사대주의에 맞게 개정해서 출간함.....신채호도 이것을 몰랐던 것임...그래서 엄한 김부식 욕만 하게됨
삼국사기없었어면중국의동이열전이나사서에의지해야되는데.....역사소설을황망하게썼겠지 신채호는당시삼국사기를제대로연구한적없이오직일본에대한감정적인적개심을가지고 한정된사고와 단편적인지식 무조건적인 고구려빠에얕은지식으로민족이라는허명에취한자이다
지도에 울릉도는 그리면서 독도는 빠뜨리고, 내용은 초딩 역사만화 수준.
크기만 ㅈ만하니깐 뺏겠지..
우리나라 섬이 몇 천개인데 다 그릴까???
놀고있네. 역사왜곡 금지 !!!!
@3 killzon 우선 서경의 위치를 현 평양에 비정해서 그린 지도가 문제고,
어느 한쪽의 견해를 마치 그게 진실인양 못박는 태도도 문제임. 님도 다양한 시각과 견해를 접해 보세요. 역사는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쓴 뻥이란 전제를 깔고 들어가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