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와 나 (0:17~1:50) -2월의 죽음 미리 밝혀둘 것도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 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 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의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신기한 일이 아니라 쓸쓸한 일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 반 녹아 더 차가운 흙 속 그의 손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파란 돌 (1:51~3:31)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괜찮아 (3:32~5:06)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울 저편의 겨울 3 (5:07~7:18) -J에게 조용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면서 더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너, 요즘은 아주 빠르게 걷는구나 학교 다닐 때 너는 아주 빠르게 걷거나 아주 느리게 걷는 아이였는데 졸업하고서 한참 뒤에 내가 아주 느리게 걸을 때 너를 보고 싶었던 건 네가 아주 느리게 걷던 아이였기 때문이었는데 그때 만일 갑자기 너를 만난다면 네가 아주 빠르게 걷고 있었으면 했는데 그건 네가 아주 느리게 걸었던 몸으로 아주 빠르게 나에게 걸어올 수 있었을 테니까 내가 정말 너를 우연히 거리에서 보았을 때 너는 정말 그렇게 빨리 걸어오고 있었는데 나는 아주 느리게, 거의 멈춘 채로 걷고 있었는데 네가 내 이름을 부른 순간 나는 입술이 일그러졌는데 그건 울기 위해서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글썽이기 시작했는데 그건 단지 내가 아주 느리게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단지 너는 아주 빠르게 걷는 사람의 팔로 짧게 나를 안아주었는데 나는 그걸 잊을 수 없었는데 어느 날 내가 물었을 때 너는 그날을 기억 못하겠다고 했고 그때 나는 생각했는데 그건 네가 아주, 아주 빠르게 걷던 때였기 때문일 거라고 왜 이렇게 춥지, 네가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꽤 춥구나. 서시 (7:19~9:00)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서울의 겨울 12 (9:01~9:46)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뺨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한강 시가 궁금했었는데 잘 들었습니다. 서랍 여는 소리 저녁이 들어가는 소리, 소년이 와서 차가운 몸을 흰 이불 속에 누웠습니다. 한강 살얼음판을 조심스레 밟고 엄동설한 2월 언 몸을 조금씩 따스레 녹여주었네요. 시어로 짠 털실 목도리 보고 있는듯 한강 시적화자 손이 목에 칭칭 감기네요. 감사합니다. ^^
서정도 서사도 시어마다 문장마다 음악마다 그림마다 영롱한 언어미 있다. 칠곡 시인할매들도 래퍼가 되어 그중 한 분 임종하신 영정 앞 장례식장에서 래 이런 시구, 이런 노래 " 무섭이가 없으면 랩이 아니지. 무섭이가 없으면 랩이 아니지. 무섭이가 없으면 시가 아니지...." 래퍼 몸짓, 장단에 반복 추임새가 영혼을 위로하고 죽음의 두려운 공포를 함께 나누는 황혼에 번진 구슬프고도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보았다. 이승과 저승 고개길에서 만난 장승처럼 무섭지 않더라... 시 속에 음악도 있고 그림도 있고 깊은 의미를 우려낼대로 우려낸 함축적인 시어가 녹아나서 차맛처럼 쟁반에도 담겨있다. 가끔씩 기호에 따라 각종 음료와 별색 차맛을 음미하기 바란다. 나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이런 발상 생각조차 부끄럽지만 감히 용기내어 본다. "한강이 없으면 시가 아니지, 또 하나 한강이 없으면 소설이 아니지, 한강이 없으면 노벨이 아니지... 한강이 없으면 한국이 아니지..."
마크 로스코와 나 (0:17~1:50)
-2월의 죽음
미리 밝혀둘 것도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 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 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의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신기한 일이 아니라
쓸쓸한 일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
반 녹아 더 차가운 흙 속
그의 손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파란 돌 (1:51~3:31)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괜찮아 (3:32~5:06)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울 저편의 겨울 3 (5:07~7:18)
-J에게
조용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면서
더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너, 요즘은 아주 빠르게 걷는구나 학교 다닐 때 너는 아주 빠르게 걷거나 아주 느리게 걷는 아이였는데 졸업하고서 한참 뒤에 내가 아주 느리게 걸을 때 너를 보고 싶었던 건 네가 아주 느리게 걷던 아이였기 때문이었는데 그때 만일 갑자기 너를 만난다면 네가 아주 빠르게 걷고 있었으면 했는데 그건 네가 아주 느리게 걸었던 몸으로 아주 빠르게 나에게 걸어올 수 있었을 테니까 내가 정말 너를 우연히 거리에서 보았을 때 너는 정말 그렇게 빨리 걸어오고 있었는데 나는 아주 느리게, 거의 멈춘 채로 걷고 있었는데 네가 내 이름을 부른 순간 나는 입술이 일그러졌는데 그건 울기 위해서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글썽이기 시작했는데 그건 단지 내가 아주 느리게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단지 너는 아주 빠르게 걷는 사람의 팔로 짧게 나를 안아주었는데 나는 그걸 잊을 수 없었는데 어느 날 내가 물었을 때 너는 그날을 기억 못하겠다고 했고 그때 나는 생각했는데 그건 네가 아주, 아주 빠르게 걷던 때였기 때문일 거라고
왜 이렇게 춥지,
네가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꽤 춥구나.
서시 (7:19~9:00)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서울의 겨울 12 (9:01~9:46)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뺨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잠오는,목소리ㅜㅜ
한강 시가
궁금했었는데
잘 들었습니다.
서랍 여는 소리
저녁이 들어가는 소리,
소년이 와서
차가운 몸을 흰 이불 속에 누웠습니다.
한강 살얼음판을
조심스레 밟고
엄동설한 2월
언 몸을
조금씩 따스레 녹여주었네요.
시어로 짠 털실 목도리 보고 있는듯
한강 시적화자 손이
목에 칭칭 감기네요.
감사합니다. ^^
잘 들었어요
노벨문학상 덕분에 한강님이
시인임을 알았네요😂😂
전 채식주의자 소설부터 읽었거든요 구독합니다😊
음악도 없고 잔잔하고 또렷해서 좋아여
시집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바램입니다..ㅎ
서정도
서사도
시어마다
문장마다
음악마다
그림마다
영롱한 언어미 있다.
칠곡 시인할매들도
래퍼가 되어 그중 한 분 임종하신 영정 앞
장례식장에서 래
이런 시구, 이런 노래
" 무섭이가 없으면 랩이 아니지.
무섭이가 없으면
랩이 아니지.
무섭이가 없으면
시가 아니지...."
래퍼 몸짓, 장단에
반복 추임새가
영혼을 위로하고
죽음의 두려운 공포를 함께 나누는
황혼에 번진 구슬프고도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보았다.
이승과 저승 고개길에서 만난
장승처럼 무섭지 않더라...
시 속에 음악도 있고
그림도 있고 깊은 의미를 우려낼대로 우려낸 함축적인 시어가 녹아나서
차맛처럼 쟁반에도
담겨있다. 가끔씩
기호에 따라 각종 음료와 별색 차맛을 음미하기 바란다.
나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이런 발상 생각조차 부끄럽지만
감히 용기내어 본다.
"한강이 없으면 시가 아니지, 또 하나 한강이 없으면 소설이 아니지,
한강이 없으면
노벨이 아니지...
한강이 없으면
한국이 아니지..."
목소리 무스버예😢😢😢
제가 넘 좋아하는 한강님 👍
책라디오북튜버체크 한강님은 시집도 좋지만 소설이 정말 👍🏻
눈으로 읽기만 하다 들으니 시의 느낌이 다르다. 눈으로 읽을 때는 솔직이 의미 없는 말장난 같았는데 소리로 들으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시가 산문화 되는것이 당연한과정이 되어버린 아쉬움
시의 영역에선 언어의 조탁으로 가장 함축적인 단어로 읽는이의 심정을 울려야 되는데 요즘작가들은 그부분이 너무 부족한건지 아님 능력부족인지...
유행인듯요😊 저도 조금 썼었고 삼십대에 조병화문학관에서 불러서
다녀오기도 했지만😢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간혹 그냥 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