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이제 왜곡된 역사와 선동에서 깨어나 사실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려고 한 것은 당연히 우리 입장에서는 나쁜 것이 맞지요. 하지만 일본의 저런 온건적 한국 병합의 수법이 그 당시에 왜 먹혔고, 그에 그 당시 국민들 중에 이러한 이토의 수작을 왜 선호하게 되었는지를 근본적으로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도 자랑스러워 하던 조선은 전국민의 대부분이 평민과 노비였고, 몇 퍼센트의 양반이 세상을 지배하며 착취하는 악독한 사회였습니다. 하다못해 양반은 군역과 세금도 면제였죠. 지금은 자유민주주의에 따라 국민의 나라의 주인이 되어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세상이지만, 조선 시대를 지금의 관점에서 찬란한 우리의 문화 유산의 시대라고 잘 못 보는 오류는 더이상 범하면 안됩니다. 그 당시는 tv에서 보는 고풍스럽고 멋진 시대가 아닌, 일부 양반을 제외한 국민들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먹고 살기위해 죽도록 일하며 이를 통해 일부 양반을 먹여살렸던 비참한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조선의 말 경에 고종의 쇄국정책으로 근대화가 늦어지면서 가뜩이나 썩어있던 조선의 관료주의 사회는 스스로의 힘으로 개혁되지 못하고(조선의 근대화 과정에서 근대화 세력은 결국 죄다 씨가 마르게 되어 버리죠) 일본에 의해 강제 근대화가 되어 버립니다. 이토는 강경파 위주였던 일본 내부 상황에 끝까지 반대하며 온건주의를 내세우며 조선을 스스로 클수 있게 발전시켜 앞으로 함께 나아가며 상호 성장해 나가자고 외치며 한국에서 통감으로서 한국의 근대화를 주도했죠. 물론 이는 다분히 일본인의 입장이었기에 한국을 무력으로 강제로 지배하며 문제를 만들지 않고 온건한 방법으로 한국을 자연스럽게 일본에 흡수되도록 유화정책을 펼친 것이지요. 대만이 아직도 일본에 우호적인 나라이고 개념들을 갖고 있는게 좋은 예시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무능하고 자신의 안위와 사리사욕에 눈이 먼 고종이 자신의 안위와 나라를 바꿔 일본과 조약을 체결한 것이고, 이후에 떵떵거리며 일본의 보호아래 호의호식하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죠. 물론 나중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후에 이를 다 몰수했지요. 당시 조선은 일본에 합병 된 후 노예와 같았던 일반 국민들은 이제는 한마디로 사람 대접을 받으며 먹고 사는데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졌었고, 이는 곳 이토의 온건한 정책에 호응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 당시 국민들에게 과연 국가란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고종 밑에서 착취만 당하고 고생하면서 살았는데, 일본 병합후에는 사람답게 살게 세상을 통채로 순식간에 바꿔줬는데.....이들이 과연 지금과 같은 국가관을 갖고 일본에 맞서려는 마음이 있었을까요? 지긋지긋한 조선에서 벗어나 일본의 지배아래서 사람답게 사는 새 세상에 환호하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고 이를 명백히 인식해야 뭐가 문제고 앞으로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저 그 동안 역사학자들이 왜곡해온대로 일본에 의해 강제로 나라를 뺏겼교,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었으며, 그렇게 조선은 일본에게 당하고만 살았다는....정말로 단순하고 1차적인 선동에 놀아나며 반일을 주장하고 유니클로를 안입고...하는 우매한 행동들을 제발 좀 이제는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들 하죠. 반일하지말고 극일 하자고. 근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이는 맨날 일어나는 반일 선동에 놀아날 뿐.....극일은 택도 없습니다. 책 한권 읽은 사람이 가장 용감하다고 하죠? 무식해서든, 관심이 없어서였든 ....선동에 놀아났던 과거를 씻고 사실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역사인식이 있어야만 미래를 위한 발전도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그럼 이만....... 첨언 하자면, 안중근 의사를 과연 영웅으로 보는게 맞는 지에 대해서는 명암이 엇갈립니다. 안의사가 이토를 죽이지 않았다면........온건한 방식으로 점점 일본의 실질적인 지배에 완전이 잠식 당했을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일본 내 한국 강제 병합의 강경파가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었던 상황이라, 아무리 이토가 온건주의로 진행을 했더라도 결국은 강경파에 의해 강제 합병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되었을 확률도 있고요. 그 당시 온건한 지배로 인한 혜택을 직접적으로 누리던 일반 국민들에게는 이토 살해로 인한 강경파의 한국 강제 합병으로, 공포통치가 시작된 것이 오히려 나쁜 세상으로 변한 것에 안의사의 의거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노예와 같던 삶에서 벗어난 일반 국민들이 갖던 국가관과 안의사가 갖고 있던 자주적인 독립 국가관 자체가 서로 다른 개념이라 누가 맞다 틀리다를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이토가 살해되지 않고 그렇게 온건하게 점점 일본의 실질적 지배로 빠져버렸다면, 나라를 지키겠다는 저항의식 자체가 소멸되어 자주독립은 분명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단지 이토를 죽임으로써 일본의 강경파에 의한 강제 합병이 급속히 진행되었고 그렇게 일본의 철저한 식민지배를 받으며, 저항의식이 희미해지며 소멸되지 않고 불씨를 살렸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를 통해 상해임시정부를 기반으로 독립군의 투쟁이 지속되었으나, 그마저 결국 러시아와 일본의 협상으로 인해 발생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 및 저항은 괴멸되어 실질적으로 사라져 버렸죠. 이후 더이상의 실질적인 독립 투쟁없이 일본에 완전 종속되어 먹혀버려가던 상황에 더이상의 자주 독립의 희망을 전혀 없었지요. 그러다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인해 기적과 같이(실질적인 우리의 독립 투쟁의 영향은 없이 거의 공짜로) 독립해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남쪽에서라도 단독 자유민주정부가 세워지게 된 것이지요. 김구 선생이 어떤 사람이었고, 얼마나 우리나라 역사에 피해를 끼쳤었는지는..... 정말 할 말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만.....
이토에만 집중해서 이토중심의 역사를 이야기 하느라 당시 조선의정치... 조선이 열강들에 갈대처럼 휘둘리는 이유는 누구도 정확하게 집어내는 한국의 역사학자를 본적이 없다.아픈역사를 가감없이 이야기하면 돌아올 불편과 수모들이 두려워서일거라 짐작된다. 우리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볼 자신이 없는것같다. 국뽕에 취하지말자는 이유가 외곡된 역사속에 사는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며 우리끼리 다투는 좀생이가 되지말자는 이야기다.지금의 국회의원들처럼....경제발전을 이룩했을지언정 우리의 머리는 깨어나지 못한거같다. 선진국 같지만 국제정치에서 세계적지도자가 한국에 나타나지않는 원인, 정상들모임에선 그리 호의적이지 못한 이유 아닐런지.
대학교 논문에서는 이렇게 써 있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존황양이’론 및 대외팽창론에 다대한 영향을 받으며 조선인식을 형성시켰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은 이토는 물론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 메이지정부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제자들의 대외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이토 히로부미는 주로 '서양통'으로 구미 각국과의 외교 관계와 문명개화정책에 관여했으며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에는 직접 관여할 기회는 적었다. 1873년의 ‘정한론’ 정변에서 이토는 ‘내치’를 주장해 ‘정한파’로부터 정권을 주도권을 빼앗는데 공헌했으나 ‘정한론’ 자체에 반대했다기 보다는 보류하자는 입장이었다. 1875년의 운요호 사건에도 이토가 관여했으나 그 역할은 한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 대외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는데 반대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으나 정부의 정책이 결정된 이상 자신의 견해와 다르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반박하지 않고 따랐다.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 여름 이토는 유럽에 체재하고 있었다. 임오군란 처리에 대해 이토 히로부미는 적극론을 전개했다. 이토는 이노우에 외무경의 질문에 답해 조선의 독립은 긴급한 필요가 있으므로 그 희망에 따라 보조를 해주고 조선으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독립은 선언하고 조선이 청의 번속국임을 성명한 조회를 철회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1884년의 갑신정변 과정에 이토는 적극 관여했다. 그는 청국과의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강경론을 배제하고 청일 공동철병을 통해 조선의 '독립'을 공인받으려는 정책을 취했다. 이토는 메이지 초기 이래 안정적인 동아시아질서를 모색하는 가운데 조선이 국제법상 독립국으로서의 위치를 갖는 것을 추구해왔다. 이토가 체결한 텐진조약에서 청․일 사이에 조선 보전에 대한 합의가 성립한 것은 메이지 초기 이후 일본의 조선정책의 하나의 도달점이었으며 그것을 주도한 이토의 대조선 구상이 실현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청일전쟁 시기 이토는 국내정치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외분쟁을 활용하였고 이노우에 가오루를 조선의 내정개혁에 적극 관여시킴으로써 조선을 보호국화하려는 노선을 취했다. 그러나 삼국간섭의 결과 형세가 완전히 바뀌자 조선정책에 대해 가급적 간섭하지 않고 조선을 자립시키는 방침, 즉 불간섭 정책을 취하기에 이른다. 조선정부와 열강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토는 지금까지의 일본의 조선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모로코, 베트남, 인도의 사례와 같이 제국주의 시대에는 직접 합병뿐만 아니라 여러 식민지배 방식이 있었다. 외교권 박탈과 보호국화가 그 중 하나로 사실상 식민지로 간주된다. 가령 영국의 번국이었던 마이소르 왕국 또한 결론적으로는 식민지로 간주되며, 프랑스의 보호국이었던 응우옌 왕조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관점에서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진 시점에서 이미 한국은 일본의 영향권에 속한 사실상 식민지였던 셈이다. 결국 이토는 한국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 맞다
이토는 유학하면서 현대 식민지론을 가지고 있던 사람임. 강제적인 식민지 지배가 후유증이 크다는것과 드는 비용면에서 크다는것을 알고 현지인을 동화시키는 식민지론을 펼친것임. 그런데 보통은 지금의 동남아처럼 발전에 감사하며 동화되는것에 비해 한국은 국민성 때문에 그게 통하지 않았고 사실상 통감을 그만둠. 일부 사람들이 이토를 죽이니까 강경병합했다며 이토가 방패막처럼 여기는데 이토 저격이 아니더라도 강제합병은 예정된 수순이었음. 왜냐 만주 러시아와 전쟁시 후방이 교란되면 참 곤란했거든. 이토는 조선의 지배층에게 사기 협박 회유를 한것이고 그게 안먹히니 강경으로 나선거지 이토 분칠은 맙시다
@@TheKillerme11 그거 헛소리입니다. 동의도 하지 않구요. 그것은 박정희 서거후에 어떤일이 있었나를 보면 압니다.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그자리를 차지 했습니다. 30년이 빨라졌다면 그 후엔 군부 독재가 없었어야죠. 거대한 사회가 이룬 시스템은 누가 죽는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누군가는 채워지기 때문이죠. 민주주의를 앞당긴건 순수한 서민들의 희생정신입니다.
아니 어이가 없네 ,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상상의 영역인거고 겉으로라도 조선인들에게 잘보이려고 한 거라면 칭찬해줘야지 뭘 검은속내를 갖고있는 처럼 비난하는건가요? 나참 ㅡㅡ 진짜 역사왜곡 너무 심하다 우리가 백화점에 갔을때 점원이 겉으로라도 싹싸하고 친절하게하면 그것이 손님에게는 좋은거지 속으로 어떤 속내를 하고 있는지가 중요할까요? 어휴... 답답이들
이토 히로부미의 최종 목적이 무엇이었든, 그는 한국인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왔다. 이토 히로부미가 당시 세계 최고 정치인 중 하나였는데 한국인들을 때려죽이고 재산이나 빼앗아서 커리어 망칠 일이 있겠나. 약탈과 살인이 목적이었다면 일본 정부는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무식한 군인을 한국에 보냈을 거다.
와~ 저때는 무슨 국제 정세나 세계에 UN같은 국제 기구도 없을때인데... (1차세계대전 전이고...) 그냥 한국에 대해 강대국들이 관심 있어도 크게 신경안쓰거나 같이 뜯어먹을라했던 시기고.. (식민지 쟁탈 시대) 병합 안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한국이란 나라를 인정하고 위해주는 척 하고 정신부터 아주 철저하게 일본으로 합병 아닌 합병으로 계획을 진행했구만.. 이토 히로부미가 진짜 철저한 나쁜 놈이네... 질렸다. 안중근 의사께서 안죽였으면 큰일날뻔.
조선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한 인물을 가지고 또 보여주기식이니 뭐니 제대로 된 역사적 근거도 없이 지들 멋대로 또 생각하고 싶은대로 참 쉽게 역사 왜곡해버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흔한 반일정서의 수준… 그래도 점점 더 옛날에 비해 진짜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예로 윤서인 작가 윤튜브 채널만 봐도 희망이 보인다.
일본에 통치권이 넘어간 한반도는.. 일제시대에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죠. 우리는 그냥 살았죠. 어떻게 할지 몰라서. 문화통치 이토히로부미는 일본에서 온사람인데.. 막무가내로 했던 사람이 아니고.. 살살 했던사람임. 안중근이... 한방으로 그냥.. 정의심판한거죠. 일본에서 엄청나게 분노했고.. 그다음에 온사람이 한민족 말살통치를 했네요. 조선인으로 살기를 바라면 죽거나.. 공산당이되서 일본군과 전쟁을 하거나 그랬죠.
물론 이토가 굳이 구태어 친한을 한 이유는 없을거임 다 이익계산해서 한 방안일거임 그렇다고해도 아예 한반도 침략해서 합병하자는 정한론자들에게 먹힐빠엔 이토가 한 말 처럼 협력국정도로만 남기는게 가장 베스트임 근대 그걸 모르고 쏴 죽여버린 안중근이 막 지금와서 한국을 구한 위인이다 하기엔 너무 억지아닌가?? 현실적으로 애국한 서재필,김옥균,박영효 이런사람들은 그냥 교과서에 한줄 쓰고 달랑 사진 한장 첨부하고 끝 반면에 그냥 분노로만 표출해버린 안중근은 교과서 한장에 수두룩 빽빽하게 사진도 여러장 첨부하고 이러니까 역사왜곡이 안끝나지 일본,중국 역사왜곡에 대해 뭐라할때 우리나라 역사왜곡에대해서도 얘기해봐라
이토 히로부미는 그냥 아시아를 전부 일본이 지배하고 싶었을뿐.. 서구 근대화를 받은 일본은..옛것을 치우고 일본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중국까지 통일했지만.. 일본 망하고 공산당들이 한국까지 내려온거죠. 전쟁이죠. 중국 만주까지 가지말고 그냥 조선까지 였다고 하면.. 지금 통일 평화상태였겠죠.
모로코, 베트남, 인도의 사례와 같이 제국주의 시대에는 직접 합병뿐만 아니라 여러 식민지배 방식이 있었다. 외교권 박탈과 보호국화가 그 중 하나로 사실상 식민지로 간주된다. 가령 영국의 번국이었던 마이소르 왕국 또한 결론적으로는 식민지로 간주되며, 프랑스의 보호국이었던 응우옌 왕조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관점에서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진 시점에서 이미 한국은 일본의 영향권에 속한 사실상 식민지였던 셈이다. 결국 이토는 한국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 맞다
우리 우매한 조선인들은 이영상을 보고도. 느끼는게 없냐? 자 다시 생각해봐 여기서. 우리의 bts랑 오징어게임이 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게되었을까?!!! 좀 생각을해라 우매한 조선인들아 우리가 잘해서 한류가 인기가 있는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거다!! 다른나라사람들도 다 그만큼 만들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조선군은 솔직히 있으나 마나 수준 이였다 주력 제식 소총이 16세기 수준의 조총 이고 각국에 소총 여기저기서 긁어 모아서 체계 도 안잡혀있었고 순수 알보병 육군 이였다 보병을 보호 할 탱크 전투기 이 딴 것도 없고 해군도 존재 하지 않아서 일본은 바다길 하이패스 해서 다이렉트 상육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을사조약 서류 로 나라 먹었다고 생각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어차피 일본 이랑 맞다이 까봐야 이길 수 있다 라는 보장이 없으니 을사조약은 그냥 무족건 항복문서 이다 생각 해보자 일본이 미국한테 을사조약 서류 드리밀면 미국이 싸인 할것 같나?
조선이 못했던 부패척결을 일본이 해줬다는거 부터가 ㅆㅂ ㅈㄴ 문제 아니냐? ㅋㅋㅋ 건물도 세워줘, 철도도 깔아줘, 탐관오리 척결도 해줘, 진의야 어찌됐든, 이건 조선에 도움이 됐던건 맞지.
친한파가 아니라면 한복을 입을 이유가 없다. 일본총리를 4번이나 연임한 이토는 완벽한 친한파였다.
우리가 그렇게 욕하는 이토히로부미나 이완용은 해외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동양의 최고 정치인으로 평가 받았다.적어도 욕하기 전에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와... 이건 뭔 선동질이냐ㅅㅂㅋㅋㅋㅋ
제발 좀 이제 왜곡된 역사와 선동에서 깨어나 사실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려고 한 것은 당연히 우리 입장에서는 나쁜 것이 맞지요. 하지만 일본의 저런 온건적 한국 병합의 수법이 그 당시에 왜 먹혔고, 그에 그 당시 국민들 중에 이러한 이토의 수작을 왜 선호하게 되었는지를 근본적으로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도 자랑스러워 하던 조선은 전국민의 대부분이 평민과 노비였고, 몇 퍼센트의 양반이 세상을 지배하며 착취하는 악독한 사회였습니다. 하다못해 양반은 군역과 세금도 면제였죠. 지금은 자유민주주의에 따라 국민의 나라의 주인이 되어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세상이지만, 조선 시대를 지금의 관점에서 찬란한 우리의 문화 유산의 시대라고 잘 못 보는 오류는 더이상 범하면 안됩니다. 그 당시는 tv에서 보는 고풍스럽고 멋진 시대가 아닌, 일부 양반을 제외한 국민들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먹고 살기위해 죽도록 일하며 이를 통해 일부 양반을 먹여살렸던 비참한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조선의 말 경에 고종의 쇄국정책으로 근대화가 늦어지면서 가뜩이나 썩어있던 조선의 관료주의 사회는 스스로의 힘으로 개혁되지 못하고(조선의 근대화 과정에서 근대화 세력은 결국 죄다 씨가 마르게 되어 버리죠) 일본에 의해 강제 근대화가 되어 버립니다. 이토는 강경파 위주였던 일본 내부 상황에 끝까지 반대하며 온건주의를 내세우며 조선을 스스로 클수 있게 발전시켜 앞으로 함께 나아가며 상호 성장해 나가자고 외치며 한국에서 통감으로서 한국의 근대화를 주도했죠. 물론 이는 다분히 일본인의 입장이었기에 한국을 무력으로 강제로 지배하며 문제를 만들지 않고 온건한 방법으로 한국을 자연스럽게 일본에 흡수되도록 유화정책을 펼친 것이지요. 대만이 아직도 일본에 우호적인 나라이고 개념들을 갖고 있는게 좋은 예시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무능하고 자신의 안위와 사리사욕에 눈이 먼 고종이 자신의 안위와 나라를 바꿔 일본과 조약을 체결한 것이고, 이후에 떵떵거리며 일본의 보호아래 호의호식하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죠. 물론 나중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후에 이를 다 몰수했지요. 당시 조선은 일본에 합병 된 후 노예와 같았던 일반 국민들은 이제는 한마디로 사람 대접을 받으며 먹고 사는데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졌었고, 이는 곳 이토의 온건한 정책에 호응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 당시 국민들에게 과연 국가란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고종 밑에서 착취만 당하고 고생하면서 살았는데, 일본 병합후에는 사람답게 살게 세상을 통채로 순식간에 바꿔줬는데.....이들이 과연 지금과 같은 국가관을 갖고 일본에 맞서려는 마음이 있었을까요? 지긋지긋한 조선에서 벗어나 일본의 지배아래서 사람답게 사는 새 세상에 환호하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고 이를 명백히 인식해야 뭐가 문제고 앞으로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저 그 동안 역사학자들이 왜곡해온대로 일본에 의해 강제로 나라를 뺏겼교,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었으며, 그렇게 조선은 일본에게 당하고만 살았다는....정말로 단순하고 1차적인 선동에 놀아나며 반일을 주장하고 유니클로를 안입고...하는 우매한 행동들을 제발 좀 이제는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들 하죠. 반일하지말고 극일 하자고. 근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이는 맨날 일어나는 반일 선동에 놀아날 뿐.....극일은 택도 없습니다. 책 한권 읽은 사람이 가장 용감하다고 하죠? 무식해서든, 관심이 없어서였든 ....선동에 놀아났던 과거를 씻고 사실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역사인식이 있어야만 미래를 위한 발전도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그럼 이만.......
첨언 하자면, 안중근 의사를 과연 영웅으로 보는게 맞는 지에 대해서는 명암이 엇갈립니다. 안의사가 이토를 죽이지 않았다면........온건한 방식으로 점점 일본의 실질적인
지배에 완전이 잠식 당했을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일본 내 한국 강제 병합의 강경파가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었던 상황이라, 아무리 이토가 온건주의로 진행을 했더라도 결국은 강경파에 의해 강제 합병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되었을 확률도 있고요. 그 당시 온건한 지배로 인한 혜택을 직접적으로 누리던 일반 국민들에게는 이토 살해로 인한 강경파의 한국 강제 합병으로, 공포통치가 시작된 것이 오히려 나쁜 세상으로 변한 것에 안의사의 의거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노예와 같던 삶에서 벗어난 일반 국민들이 갖던 국가관과 안의사가 갖고 있던 자주적인 독립 국가관 자체가 서로 다른 개념이라 누가 맞다 틀리다를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이토가 살해되지 않고 그렇게 온건하게 점점 일본의 실질적 지배로 빠져버렸다면, 나라를 지키겠다는 저항의식 자체가 소멸되어 자주독립은 분명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단지 이토를 죽임으로써 일본의 강경파에 의한 강제 합병이 급속히 진행되었고 그렇게 일본의 철저한 식민지배를 받으며, 저항의식이 희미해지며 소멸되지 않고 불씨를 살렸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를 통해 상해임시정부를 기반으로 독립군의 투쟁이 지속되었으나, 그마저 결국 러시아와 일본의 협상으로 인해 발생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 및 저항은 괴멸되어 실질적으로 사라져 버렸죠. 이후 더이상의 실질적인 독립 투쟁없이 일본에 완전 종속되어 먹혀버려가던 상황에 더이상의 자주 독립의 희망을 전혀 없었지요. 그러다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인해 기적과 같이(실질적인 우리의 독립 투쟁의 영향은 없이 거의 공짜로) 독립해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남쪽에서라도 단독 자유민주정부가 세워지게 된 것이지요. 김구 선생이 어떤 사람이었고, 얼마나 우리나라 역사에 피해를 끼쳤었는지는..... 정말 할 말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만.....
굿
고종은 쇄국정치 안했는데
당시 식민지국가는 수탈당하는게 기본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봐라!! 기득권유지를위해 근대화를 하지 못한 조선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본에서 자꾸 역사왜곡한다하는데 우리나라도 역사왜곡 엄청나게 심하죠.. 안중근 의사는 한민족으로서 할일을 한거고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토가 죽고나서 강경파들이 들어올 빌미를 가져와 우리나라 국민들이 짖밟힌겁니다. 역사를 감정에 따라 해석하는게 참..
이토는 조선식민지배 반대파 엿음
한국인들의 역사왜곡
그냥 역사의 흐름이다.. 천년의 신라가 고려에 빼앗겼을때, 고구려, 백제가 신라에 빼앗겼을때 그 당시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 이었더라면 아싸 우리나라 합병이다 했겠냐 나라뺏은 원수들이지
이토히로부미 사임이 예정되어 있었고. 결국 강경파. 일본 군부가 들어와서 통치하는데. 이미 몇개년 계획으로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는 다 짜여진 상황
결과적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오히려 이토를 일찍죽인것이 국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졌네.
외부요인을 찾기전에 내부요인을 먼저 찾는 시각도 필요합니다.
일본의 악행을 알만큼 우리 사대부들의 당시 악행을 알아야 다시 올지 모르는 외세의 침략에 맞설 수 있는겁니다.
그럴 때 국내 관리들과 고종은 무엇을 했을까요? 역사는 잘 정리해 보는 것이 중요할 둣 합니다. 국뽕으로 가면 안되죠
고종은 황당햇겟죠 느닷없이 우리땅 쳐들어와서 지들이 주인이라고햇으니 일본은 정말 용서가안돼네 영국은 다 식민지 홍콩등 돌려준것아닌가
매관매직. 연회 굿판 사치 국고 거덜냄...
왕권이 무너지는게 두려워 청나라에 S.O.S!
이토에만 집중해서 이토중심의 역사를 이야기 하느라 당시 조선의정치... 조선이 열강들에 갈대처럼 휘둘리는 이유는 누구도 정확하게 집어내는 한국의 역사학자를 본적이 없다.아픈역사를 가감없이 이야기하면 돌아올 불편과 수모들이 두려워서일거라 짐작된다. 우리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볼 자신이 없는것같다. 국뽕에 취하지말자는 이유가 외곡된 역사속에 사는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며 우리끼리 다투는 좀생이가 되지말자는 이야기다.지금의 국회의원들처럼....경제발전을 이룩했을지언정 우리의 머리는 깨어나지 못한거같다. 선진국 같지만 국제정치에서 세계적지도자가 한국에 나타나지않는 원인, 정상들모임에선 그리 호의적이지 못한 이유 아닐런지.
대학교 논문에서는 이렇게 써 있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존황양이’론 및 대외팽창론에 다대한 영향을 받으며 조선인식을 형성시켰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은 이토는 물론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 메이지정부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제자들의 대외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이토 히로부미는 주로 '서양통'으로 구미 각국과의 외교 관계와 문명개화정책에 관여했으며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에는 직접 관여할 기회는 적었다. 1873년의 ‘정한론’ 정변에서 이토는 ‘내치’를 주장해 ‘정한파’로부터 정권을 주도권을 빼앗는데 공헌했으나 ‘정한론’ 자체에 반대했다기 보다는 보류하자는 입장이었다. 1875년의 운요호 사건에도 이토가 관여했으나 그 역할은 한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 대외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는데 반대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으나 정부의 정책이 결정된 이상 자신의 견해와 다르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반박하지 않고 따랐다.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 여름 이토는 유럽에 체재하고 있었다. 임오군란 처리에 대해 이토 히로부미는 적극론을 전개했다. 이토는 이노우에 외무경의 질문에 답해 조선의 독립은 긴급한 필요가 있으므로 그 희망에 따라 보조를 해주고 조선으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독립은 선언하고 조선이 청의 번속국임을 성명한 조회를 철회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1884년의 갑신정변 과정에 이토는 적극 관여했다. 그는 청국과의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강경론을 배제하고 청일 공동철병을 통해 조선의 '독립'을 공인받으려는 정책을 취했다. 이토는 메이지 초기 이래 안정적인 동아시아질서를 모색하는 가운데 조선이 국제법상 독립국으로서의 위치를 갖는 것을 추구해왔다. 이토가 체결한 텐진조약에서 청․일 사이에 조선 보전에 대한 합의가 성립한 것은 메이지 초기 이후 일본의 조선정책의 하나의 도달점이었으며 그것을 주도한 이토의 대조선 구상이 실현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청일전쟁 시기 이토는 국내정치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외분쟁을 활용하였고 이노우에 가오루를 조선의 내정개혁에 적극 관여시킴으로써 조선을 보호국화하려는 노선을 취했다. 그러나 삼국간섭의 결과 형세가 완전히 바뀌자 조선정책에 대해 가급적 간섭하지 않고 조선을 자립시키는 방침, 즉 불간섭 정책을 취하기에 이른다. 조선정부와 열강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토는 지금까지의 일본의 조선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2:54 그럼 지금까지 증거도없이 오로지 국뽕으로 역사를….
이토 히로부미가 한복을 입은 사진을 보고도 다양하게ㅡ해석이 가능하구나
확실한건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이후에 일본의 고압적인 통치가 강화해서 조선인이 더 고통받았다는게 팩트라는점.... 그리고 미국이라는 강력한 물리력이 아니였으면 독립은 불가능했다는 피할수 없는 사실
@@jujoo202 이토는 보기와는 다르게 조선을 집어삼키는데 급진적이지 않았음, 정한론에는 반대하던 인물이였는데 이런 사람을 죽였으니 일본이 꼭지가 돌만함
이토가 안죽었어도 결론은 핵폭탄 두방 맞고 해방
모로코, 베트남, 인도의 사례와 같이 제국주의 시대에는 직접 합병뿐만 아니라 여러 식민지배 방식이 있었다. 외교권 박탈과 보호국화가 그 중 하나로 사실상 식민지로 간주된다. 가령 영국의 번국이었던 마이소르 왕국 또한 결론적으로는 식민지로 간주되며, 프랑스의 보호국이었던 응우옌 왕조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관점에서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진 시점에서 이미 한국은 일본의 영향권에 속한 사실상 식민지였던 셈이다. 결국 이토는 한국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 맞다
저때 한국이란 나라는 없었는데 계속 한국이라하시네..... 역사를 아는건 좋지만 조선=한국으로 계속 가져가시네...
이토히로부미의 비밀은 원래 혈통이 조선인이야. 임춘모가 조선이름임.
전주이씨임 이 토히로부미
@@hoho2945 일본 성씨도 모르면서..
이토는 유학하면서 현대 식민지론을 가지고 있던 사람임.
강제적인 식민지 지배가 후유증이 크다는것과 드는 비용면에서 크다는것을 알고 현지인을 동화시키는 식민지론을 펼친것임. 그런데 보통은 지금의 동남아처럼 발전에 감사하며 동화되는것에 비해 한국은 국민성 때문에 그게 통하지 않았고 사실상 통감을 그만둠.
일부 사람들이 이토를 죽이니까 강경병합했다며 이토가 방패막처럼 여기는데 이토 저격이 아니더라도 강제합병은 예정된 수순이었음.
왜냐 만주 러시아와 전쟁시 후방이 교란되면 참 곤란했거든.
이토는 조선의 지배층에게 사기 협박 회유를 한것이고 그게 안먹히니 강경으로 나선거지 이토 분칠은 맙시다
그런말 들어보셧는지요? 김재규의 혁명으로 민주화가 30년은 빨라졌다. 동의하세요? 그렇다면 님의 글에대한 답변도 이미되었겠지요.
@@TheKillerme11 그거 헛소리입니다.
동의도 하지 않구요.
그것은 박정희 서거후에 어떤일이 있었나를 보면 압니다.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그자리를 차지 했습니다.
30년이 빨라졌다면 그 후엔 군부 독재가 없었어야죠.
거대한 사회가 이룬 시스템은 누가 죽는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누군가는 채워지기 때문이죠.
민주주의를 앞당긴건 순수한 서민들의 희생정신입니다.
@@jym4119 헛소리가 아니라 김재규가 한 행위는 민주화와 아무상관없고 시민이 만든게 아니라 북한 중국식 독재가아니면 박정희가 하던 전두환이 하던 노무현이 하던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잘굴러 갑니다. 지금의 재앙이 같이 지꼴리는데로 하는 인간만 아니고선요.
이토가 죽었든 안죽었거든 조선에 대한 합병은 포기하지 않았죠 이미 합병은 을사늑약 이후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TheKillerme11 뭔 말을 하고싶은거임?
아니 어이가 없네 ,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상상의 영역인거고 겉으로라도 조선인들에게 잘보이려고 한 거라면 칭찬해줘야지
뭘 검은속내를 갖고있는 처럼 비난하는건가요? 나참 ㅡㅡ 진짜 역사왜곡 너무 심하다
우리가 백화점에 갔을때 점원이 겉으로라도 싹싸하고 친절하게하면 그것이 손님에게는 좋은거지
속으로 어떤 속내를 하고 있는지가 중요할까요? 어휴... 답답이들
그리고 나라가 먹혔는데 뭔 백화점 손님이랑 비유를 하고 있노? 50~60대 같은데 생각은 5~6세 수준이노
강경이든 온건이든 우리나라 먹을려고 한 인물인데 걍 양아치 처럼 대놓고 폭력적으로 하느냐, 기생오라비처럼 살살 구슬려서 가식적으로 하느냐의 차이일 뿐 속셈은 똑같잖아;
@@T1_pengu 아니 그럼 일본한테 뭘 할수있는데? 저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저 상황에서 일본이랑 맞서 싸울수 있음? 어짜피 전의 상실하고 빼앗길거면 온건파가 좋지
뭔소리를 하는거야 도대체...
@@이석호-q5y 누가 니 성추행 할려 하는데 강제로 추행하는 놈 보다 살살 구슬려서 추행하는 놈이 더 낫다는 거임? 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네
@@이석호-q5y 온건파가 좋은데 칭찬해줘야한다 ㅇㅈㄹ하니까 그러지
이토 히로부미의 최종 목적이 무엇이었든, 그는 한국인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왔다. 이토 히로부미가 당시 세계 최고 정치인 중 하나였는데 한국인들을 때려죽이고 재산이나 빼앗아서 커리어 망칠 일이 있겠나. 약탈과 살인이 목적이었다면 일본 정부는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무식한 군인을 한국에 보냈을 거다.
너무 대단한 인물이라 반드시 죽어야했습니다.
맞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2개의 큰 전쟁에서 다 이겼는데,
총과 칼이 아닌 펜과 종이를 들고와서 조약을 맺자하니 분명 우호적인 태도였다.
@@dychannel3797 맞습니다.
그 시절에 대한 역사는
그 시절 시점에서 비춰보아야하는것이다
후대 샛기가 지금와서 지맘대로 처 해석하는게 아니라
안중근같은 독립군이없었다면 니샛긴 지금 일장기 욱일기 흔들고 좋아하고 있었겠네 ㅋㅋ
지옥에 가서 안중근앞에서 그 딴소리 지껄여봐라 ㅋㅋ
남의땅 넘보는것 자체가 못됀짓이지
역사왜곡이 버젓이 공중파에서 참 한국의 역사는 왜곡천지가
와~ 저때는 무슨 국제 정세나 세계에 UN같은 국제 기구도 없을때인데... (1차세계대전 전이고...)
그냥 한국에 대해 강대국들이 관심 있어도 크게 신경안쓰거나 같이 뜯어먹을라했던 시기고.. (식민지 쟁탈 시대)
병합 안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한국이란 나라를 인정하고 위해주는 척 하고
정신부터 아주 철저하게 일본으로 합병 아닌 합병으로 계획을 진행했구만..
이토 히로부미가 진짜 철저한 나쁜 놈이네... 질렸다. 안중근 의사께서 안죽였으면 큰일날뻔.
조선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한 인물을 가지고 또 보여주기식이니 뭐니 제대로 된 역사적 근거도 없이 지들 멋대로 또 생각하고 싶은대로 참 쉽게 역사 왜곡해버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흔한 반일정서의 수준… 그래도 점점 더 옛날에 비해 진짜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예로 윤서인 작가 윤튜브 채널만 봐도 희망이 보인다.
일본에 통치권이 넘어간 한반도는.. 일제시대에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죠.
우리는 그냥 살았죠. 어떻게 할지 몰라서.
문화통치 이토히로부미는 일본에서 온사람인데.. 막무가내로 했던 사람이 아니고.. 살살 했던사람임.
안중근이... 한방으로 그냥.. 정의심판한거죠.
일본에서 엄청나게 분노했고.. 그다음에 온사람이 한민족 말살통치를 했네요.
조선인으로 살기를 바라면 죽거나.. 공산당이되서 일본군과 전쟁을 하거나 그랬죠.
그사람이 이토 다음으로 총독된 데라우치져
아직도 식민사학 배운게 전부인줄 착각하는
불쌍한 조선인들.. 이토는 조선인으로 림씨다.
물론 이토가 굳이 구태어 친한을 한 이유는 없을거임 다 이익계산해서 한 방안일거임 그렇다고해도 아예 한반도 침략해서 합병하자는 정한론자들에게 먹힐빠엔 이토가 한 말 처럼 협력국정도로만 남기는게 가장 베스트임 근대 그걸 모르고
쏴 죽여버린 안중근이 막 지금와서 한국을 구한 위인이다 하기엔 너무 억지아닌가??
현실적으로 애국한 서재필,김옥균,박영효 이런사람들은 그냥 교과서에 한줄 쓰고 달랑 사진 한장 첨부하고 끝 반면에 그냥 분노로만 표출해버린 안중근은 교과서 한장에 수두룩 빽빽하게 사진도 여러장 첨부하고 이러니까 역사왜곡이 안끝나지
일본,중국 역사왜곡에 대해 뭐라할때 우리나라 역사왜곡에대해서도 얘기해봐라
이토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
한국을 근대화로 발전 시키기 위한것이고
좀더 나은 생활을 만들어 주기 위한
더 나아가 일본과 한국이 함께 하기 위한게
아니였을까?
선과 악이 존재한다면 이토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였을거라고 본다
@jim kerry 걍 영국 비슷하게 다스리려는 그거지. 영국은 강압적이긴 ㅇㅇ 근데 식민지에 투자를 많이해서 오히려 식민지인들이 영국을 좋아하기도 했었지 근데 죽은건 싸다고봄
김정민박사 유튜브 내용을보면 식민지배를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식민지를 발전시켜야 하기때문 일본 본토를 발전시켜야 하기에 반대함
이토 히로부미는 그냥 아시아를 전부 일본이 지배하고 싶었을뿐..
서구 근대화를 받은 일본은..옛것을 치우고 일본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중국까지 통일했지만.. 일본 망하고 공산당들이 한국까지 내려온거죠.
전쟁이죠.
중국 만주까지 가지말고 그냥 조선까지 였다고 하면.. 지금 통일 평화상태였겠죠.
@@오-m9g 박사? 어디에 박사?
모로코, 베트남, 인도의 사례와 같이 제국주의 시대에는 직접 합병뿐만 아니라 여러 식민지배 방식이 있었다. 외교권 박탈과 보호국화가 그 중 하나로 사실상 식민지로 간주된다. 가령 영국의 번국이었던 마이소르 왕국 또한 결론적으로는 식민지로 간주되며, 프랑스의 보호국이었던 응우옌 왕조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관점에서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진 시점에서 이미 한국은 일본의 영향권에 속한 사실상 식민지였던 셈이다. 결국 이토는 한국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 맞다
나라흘 위해 목숨을 바치는 한국인의 의지? ㅋㅋㅋ 나라를 싸움한번 없이 일본에 넘긴 이완용 및 을사오적은 한국인이 아니었던가?
싸우면 이겼을거 같냐?? 일본이 아니였음 러시아가 먹었어 우리나라는 시대 못따라가고 명백히 후진국이 얐는데
조선
음.....글쌔...
이토가 한국 계 인데 일본압잡이 개노릇해서 총쏜건데 먼 말이 만어
우리 우매한 조선인들은 이영상을 보고도. 느끼는게 없냐? 자 다시 생각해봐 여기서. 우리의 bts랑 오징어게임이 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게되었을까?!!! 좀 생각을해라 우매한 조선인들아 우리가 잘해서 한류가 인기가 있는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거다!! 다른나라사람들도 다 그만큼 만들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나라를 위해 목숨 받치는 의지...? 이런 나라가 군대도 없이 서류로 나라 먹히냐 ?
역사 안배우셨나요 군대가 없었던게 아니고 강제해산 됩니다 싸우다 돌아가신분도 많고 해산된후 의병으로 합류하죠 그리고 남한대토벌을 하고 남부지역의병들은 산화합니다
공부는 하자 ㅋ 한일신협약으로 인해 군대가 해산당한거고 그래서 정미의병 그리고 13도 창의군 서울진공작전 남한대토벌 들어는 봣지?
청일전쟁 러일전쟁 카프밀약 영일동맹 포츠머스조약 베베르 고무라 각서 텐진조약 유기적으로 역사 흐름이 있었던거지 그냥 서류한장이 아니다 수많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 ㅉㅉㅉ
조선군은 솔직히 있으나 마나 수준 이였다 주력 제식 소총이 16세기 수준의 조총 이고 각국에 소총 여기저기서 긁어 모아서 체계 도 안잡혀있었고 순수 알보병 육군 이였다 보병을 보호 할 탱크 전투기 이 딴 것도 없고 해군도 존재 하지 않아서 일본은 바다길 하이패스 해서 다이렉트 상육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을사조약 서류 로 나라 먹었다고 생각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어차피 일본 이랑 맞다이 까봐야 이길 수 있다 라는 보장이 없으니 을사조약은 그냥 무족건 항복문서 이다 생각 해보자
일본이 미국한테 을사조약 서류 드리밀면 미국이 싸인 할것 같나?
@@안녕봄안녕 공부하자 그래도 조선은 멍청했고 나라뺏겨서 조선은 지도상에서 일본이되어있었다 패자들은 조용히 지내자
순종과 이토의 사진은 개성 만월대터 사진이군요... 가슴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