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송나라 사신이 본 고려 국경 - 서긍의 《고려도경》 봉경 편 3,790 리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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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 фе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55

  • @패미박멸
    @패미박멸 Год назад +16

    거기가 어떻게 송나라 수도였던 임안입니까? 천하고금대총편람도에 정자로 “임안“이 표기되어있는데 그 위치가 영상의 위치 보다 훨씬 서쪽에 있습니다. 명나라 멸망 이후 건국된 청나라 때 만들어진 대청광여도에도 똑같은 위치에 임안이 언급되있거든요? 이런 부분은 거두절미해버리고 명나라 건국 이후에 조작된 송나라 수도 임안의 위치를 근거로 놓고 주장을 하시니 이 영상의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당신의 주장은 허구입니다.

    • @mvkuri
      @mvkuri  Год назад +4

      「천하고금대총편람도」는 17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인문지리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명일통지》와 《통전》의 인문·지리 정보를 바탕하여 제작된 것으로서
      그 지명은 명대 지명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천하고금대총편람도」에서 지명을 네모칸으로 구분한 것과 구분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 여부는 대체로 명대 지명을 기준합니다
      임안(臨安)은 두 곳이 있(었)습니다
      항주(抗州)에 있었던 임안과 명대에 운남(雲南)에 설치된 임안이 그것입니다
      항주의 임안은 남송이 그곳에 천도하면서 임안으로 승격시켜 개명한 곳으로서, 항주는 북송 양절로(兩浙路) 관할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남송 때에 임안이 되었으며, 원나라가 그곳을 차지한 후에는 다시 항주로 고치고 양절로도독부를 두어 치성(治城)으로 삼았습니다
      운남의 임안은, 본래 운남 지역은 대리국(大理國)과의 인접지로서 대리계 부족의 귀부와 이반 등이 빈번했던 곳입니다
      송나라(북송·남송) 떄에 수산군(秀山郡)과 통해군(通海郡) 등으로 불렸던 곳이며 원나라가 들어선 후에는 이 지역이 원나라에 귀부함에 따라서 아북부만호(阿僰部萬戸)를 두었다가 원 세조 쿠빌라이칸 재위 때에 남로(南路)로 고치고, 다시 이를 임안로(臨安路)로 고쳐서 존속시킵니다
      원나라 때의 이 임안로를 근거하여 명나라 때에 운남 지역에 설치한 것이 바로 강신우님이 「천하고금대총편람도(17세기 말, 조선)」와 「대청광여도(18세기 말, 청)」에 현 운남 지역에 표시돼 있다 한 그 임안부(臨安府)입니다
      강신우님은 저에게 댓글로써
      "거기가 어떻게 송나라 수도였던 임안입니까? 천하고금대총편람도에 정자로 “임안“이 표기되어있는데 그 위치가 영상의 위치 보다 훨씬 서쪽에 있습니다. " 하시면서
      「천하고금대총편람도(17세기 말, 조선)」와 「대청광여도(18세기 말, 청)」를 근거로 드셨지만
      이 두 지도에 그 운남지역뿐만 아니라 항주 부근에도 臨安이 분명히 표기돼 있는 사실을 거론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르셨습니까? 아니면 외면하셨습니까?
      남송 대에 제작된 「구주산천실증총도(1177)」와 「여지도(남송, 1265~1266)」에도 현 항주시 임안에 臨安이 표기돼 있습니다 반면에 운남 지역에는 臨安이 표기돼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운남 지역에 임안 지명이 등장한 때는 13세기 말 원나라 때이며, 임안부가 설치된 때는 명나라 때이니까요
      따라서 당연히 명나라 이후 지도에서는 두 곳에 臨安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강신우님이 언급하신 「천하고금대총편람도(17세기 말, 조선)」와 「대청광여도(18세기 말, 청)」에 현 운남 지역과 현 항주 두 곳 모두 臨安이 표시돼 있는 곡절이 이와 같습니다
      다른 이의 주장을 비판하고자 하신다면
      "명나라 건국 이후에 조작된 송나라 수도 임안의 위치를 근거로 놓고 주장을 하시니 이 영상의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당신의 주장은 허구입니다."
      이런 소리 삼가시고 우선 그 사람의 공력을 판단한 후에 다시 신중하게 본인의 그 앎을 검토하세요
      그런 후에 매우 신중하게, 예의를 갖추어서 의견을 내시길 바랍니다

    • @ishindle
      @ishindle Год назад

      무쿠리님 실제로 뭐하시는 분인지 궁금합니다. 역사학과나 국사편찬위원회랑 친하실 것 같긴한데...누군지는 안밝히시겠죠?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Год назад +1

      @@mvkuri 송사 고려 도경, 고려사에 서북으로는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으로는 고구려를 넘어섰다고 해석하고 있구요... 중국의 남경(양주)에 수도를 세우면 36개국이 조공한다고 고려사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고려사를 제대로 해석하고 그 지명의 한자를 그대로 중국 동북 지역에 구글로 검색해 보시죠.... 당신이 영상에서 보여주는 한반도로 국한된 고려는 조선사 편수회 쓰다 쇼키치가 그려준 천리장성 국경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몽고(원)이 침입하여 고려 임금을 심양왕이라고 한 부분에서도 지금 당신이 그려서 보여주는 영토는 조선사 편수회가 그려준 영토를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 @정론득
      @정론득 Год назад +1

      @@mvkuri 원나라가 남송을 정벌하고 바로 교주로 나아가서 베트남을 칩니다. 임안을 항복시키고 바로 교주로 가기는 어렵죠? 항주에서 교주는 엄청나게 먼 거리입니다.

    • @mvkuri
      @mvkuri  Год назад

      @@정론득
      몽골의 남송 침공은 단일경로를 통한
      선행적 진격이 아니었습니다
      동서의 여러 경로로 침공하였으며
      반격과 재반격, 전진과 퇴축, 교착 등 장기간에 걸친 전쟁이었습니다
      남송과 몽골 전쟁 과정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바다무-x3i
    @바다무-x3i 8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서긍사신의 방문시 고려수도는 지금의 북경입니다.
    서긍의 북경까지 이동경로를 구글 지도 및 고지도로 명괘하게 설영한 방송이 있습니다. 책보고 방송을 보시면 나옵니다.

    • @내가알고싶은이야기
      @내가알고싶은이야기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영상 '북경반점'이 반박영상 올렸는데 대륙에서 찾았다는 뱃길 지명들 전부 말도안되는 말장난이었다는거 아시나요?
      당신들 문제가 유튜버들 허무맹랑 주장 그냥 의문없이 믿어버란다는 겁니다
      대륙에 고려가 있었다고 믿고 싶으니 어이없는 주장 의문없이 믿는것 아닙니까 당신들이 믿는것은 역사가 아니라 신앙생활이예요

  • @Morethananythingyouwant
    @Morethananythingyouwant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송나라사신이 천자의 나라, 35개국이 조공을 했던 고려,만리지국이라 불렸던고려 곳곳을 염탐하고, 보이는 족족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겼던, 고려도경. . . . 근데, 그림이 하나도 없습니다.
    없앴기 때문입니다. 송나라 사신은 무동력선을 타고 물살을 휘몰아치던, 지금은 서해, 그때는 동해를 건너서 산지가 80%인 한반도를 올리가 없죠.
    서경은 지금의 북경입니다. 지금도 구글에 상당한 지명들이 고려사에 언급되어있습니다. 한반도에 찾으니 모르겠고, 비정하고, 마음대로 추측했죠.
    우리나라 역사가들이 아직도 장춘의 위치를 모른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하얼빈 주변에 아직도 있는데 말이죠…

  • @User-bonjour2000
    @User-bonjour2000 Год назад +4

    서압록을 기준으로 다시 올려주시길 기다려봅니다.

  • @Yeulyeul2
    @Yeulyeul2 Год назад +1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송 입장에서 본 역사관이 어떻했는지 잘 알 수 있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hyungjoochoi
    @hyungjoochoi 2 года назад +6

    학자들이 해야할걸 시민들이 다 해주고 있네요. ㅋㅋ
    ㄱㅅㅇㄷㅋ시절 부터 봐왔는데, 지도 그래픽이 엄청 발전하셨네요 ㅋㅋ 한결보기가 편한것 같아서 좋아요

    • @mvkuri
      @mvkuri  2 года назад +3

      반갑습니다
      응원해주시니 피로가 풀리네유 ㅎㅎ

  • @김재현-z6r2e
    @김재현-z6r2e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런.

  • @정병선-e8o
    @정병선-e8o Год назад +1

    여러 사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mvkuri
      @mvkuri  Год назад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자주 찾아주세요

  • @gaebingdo18nomparkU
    @gaebingdo18nomparkU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창피하니 내립시다

  • @윤현월-x9s
    @윤현월-x9s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조선왕조실록엔 고려사를 쓰게 된 동기부터 과정 그리고 그 최종 결과까지 얼마나 많은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무려 60년이 넘게 걸렸다.
    당연히 역성혁명으로 집권한 왕조가 전 왕조를 좋게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건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 사고일 것이다. 축소는 말할 것도 없고 왜곡도 상당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모두 감안하고 보더라도 고려사에 적혀 있는 고려라는 나라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그 범위를 넘어선다.
    고려사엔
    이런 내용이 있다. 즉 수도(개경)을 중심으로 운반하는 거리에 따라 세금운반선의 운임비를 정하는 내용이다.
    이 내용엔 60개의 포구가 나온다.
    그런데 이 포구들을 찾아보면 모두 양자강을 포함한 중국의 유명 지명들 뿐이다.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거라곤 몇 개 되질 않는다.
    그런 포구들 중엔 대만(탐라)에 있는 포구도 있다. 즉 이 지역이 진짜 대만이라고 확인이 되면 대만에서도 고려는 세금을 걷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이 포구들은 어느 한 지점을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중심엔 고려의 초기 수도(개경)이 있을 것이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데이터들이 쌓이다 보면 고려의 정확한 강역도 보다 확실하게 AI가 그려주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그런 날이 도래하면 이 나라의 역사학자들은 얼마나 쪽팔릴까?

  • @davekim7777
    @davekim7777 Год назад

    00:40~ 其國, 在京師之東北, 自燕山道, 陸走渡遼, 而東之其境, 凡三千七百九十里.===>여기서 陸走渡遼 해석을 잘 못하신거 아닌가요? 당시 아직 요(遼)나라가 멸망하지 않은 상태였고, 육로로 고려국경까지 이동할 경우, 요나라는 걸어서 건너야합니다. 요수가 아니라 요나라로 해석해야 자연스럽고 합리적입니다.
    그리고,
    영토[封境]항목 내용중에, 今旣幷新羅百濟, 東北稍廣, 其西北與契丹接連. 昔以大遼爲界, 後爲所侵迫, 乃築來遠城, 以爲阻固.==> 昔以大遼爲界 대요수를 경계로 했다.고 했습니다. 대요수는 현 대릉하입니다.

    • @davekim7777
      @davekim7777 Год назад

      왜냐면, 鴨綠之西, 又有白浪黃嵓二水, 自頗利城行數里, 合流而南, 是爲遼水. ===> 대릉하는 요녕성 서부(요서)를 흐르는 큰 하천이고. 난하와 요하 사이에서 흐르고 있고. 옛날에는 백랑하(白狼河), 백랑수(白狼水)로 불렸지만 요대에 영하(靈河)로 개명되었고 금대에 능하(凌河)로 개명되었다. 원대 이후 서쪽으로 인접해 흐르는 소릉하(小凌河)와 구별하기 위해서 대릉하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 @davekim7777
      @davekim7777 Год назад

      영토[封境]항목 서두에, 高麗南隔遼海, 西距遼水, 北接契丹舊地, 東距大金.라고 써놓았습니다. 서쪽으로 대요수까지라고 해놓고, 다시 그 요수를 건너서 동쪽으로 그 국경까지 간다는 말은 모순아닌가요?

    • @mvkuri
      @mvkuri  Год назад

      안녕하세요
      질문하신 것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① 渡는 물을 건너는 것입니다. 陸走渡遼에서 走는 뭍에서의 이동, 渡는 하천이나 바다 등 물을 건너는 것입니다
      - 서긍은 1123년 5월에 명주를 떠나서 6월에 고려에 도착하여 한달여 체류한 후에 7월에 돌아가서 8월에 명주에 도착합니다
      - 고려도경은 그 이듬해인 1124년 8월에 일종의 보고서로서 작성된 것입니다
      - 송은 금의 도움을 받아서, 금의 군대가 1123년 4월에 거용관을 뚫고서 연경에 진군하여서 그 한두 달 사이에 하북성 보주 북쪽의 요나라 남경도 지역을 완전히 제압합니다
      - 그리고 본래의 약속과 달리 태행산맥 동쪽의 현 북경, 보주 등에 해당하는 지역만을 송에 넘겨주고, 그 서쪽은 금이 차지하였고, 또한 현 당산시 한성진 동쪽 10여 리 부근을 경계로 하여서 그 동쪽지역 역시 금이 차지하였습니다
      - 금나라 군대가 요나라 각 지역을 공격하여 차지할 때에 송나라 측 인사들이 종군하였고, 1123년에 요나라가 실질적으로 망한 직후에는 연경 등의 땅을 되찾게 해준 대가로서 세납을 하기 위해서 송나라에서 육로로 막대한 세납품이 금나라에 드나들었습니다
      - 송나라에서 금나라 황성으로 통하는 교통로는 제가 영상에서 소개하고 고찰한 12세기 도리 사료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② 중국 전근대 문헌의 서술 방식은 처음에 전체적인 내용을 큰 틀에서 대략적으로 서술하고, 뒤 이어서 자세하게 서술하는 형태를 띱니다.
      - 今旣幷新羅百濟, 東北稍廣, 其西北與契丹接連. 昔以大遼爲界, 後爲所侵迫, 乃築來遠城, 以爲阻固. 이 문장은 맨 앞이 아니라 중간에 나오는 문장으로서 맨 앞의 전체 큰 틀의 서술을 받아서 지금의 상황을 적은 것입니다
      - "옛 적에는 대요수를 경계로 하였다"하는 표현은 보셨으면서 어찌하여서 "後爲所侵迫, 乃築來遠城"은 간과하셨습니까?
      - 옛 적에는 대요수가 경계였는데 "침입을 받아서, 또는 침입을 받아서 줄어들어서(侵迫)" 이에 내원성을 쌓았다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乃築來遠城, 以爲阻固. 그 바로 뒤에는 然亦恃鴨綠以爲險也라고 하여서 압록강에 대한 서술이 이어집니다
      - 옛날에는 대요수를 경계로 하였는데 (침입을 받아 땅이 줄어들어서) 지금은 압록강을 경계로 하였고, 그 압록강에 내원성이 있다는 서술입니다
      ③ 대요수는 대릉하가 아닙니다
      - 대요수는 요·금 시기에 요와 송의 인식에서 현 류하와 현 요하를 대요수로 보는 인식이 잠시 혼재돼 있었으나 요하를 대요수로 보는 인식이 우세하였고, 금나라에 들어서는 요하를 대요수로 보는 인식이 완전히 굳어집니다
      ④ 白浪黃嵓二水 기술로 대릉하를 대요수로 볼 수 없습니다
      - 鴨綠之西, 又有白浪黃嵓二水, 自頗利城行數里, 合流而南, 是爲遼水. 이 기술은 647년 이세적이 요수를 건너서 남소와 신성 등을 공격하고 돌아간 사실에서 비롯한 것으로서 신당서, 자치통감 등 전대 문헌 기록을 발췌하여서 붙여넣은 것입니다
      - 대릉하를 백랑수로 보는 인식은 6세기 초 북위 사람 역도원의 수경주에서 비롯한 것(제 채널의 영상 중에서 '추리도의 대요수와 소요수', '추리도의 대요수와 장백산' 등의 영상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으로서, 이세적이 건넌 백랑과 황암 二水는 대릉하 자체가 아니라 대릉하의 지류로서 현 북표현에서 대릉하에 들어가는 망우하와 그 망우하 발원지에 거의 붙어 있는 류하, 그리고 또한 그 인근에 붙어 있어서 기원전후 시기에는 류하와 서로 통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교래하 등, 이들 망우하·류하·교래하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특히 白浪黃嵓二水는 류하의 상류 물줄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본래 고구려에 복속돼 있던 거란이 645년 이전에 당나라에 가서 붙으면서 당나라는 이 북쪽 경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⑤ "영토[封境]항목 서두에, 高麗南隔遼海, 西距遼水, 北接契丹舊地, 東距大金.라고 써놓았습니다. 서쪽으로 대요수까지라고 해놓고, 다시 그 요수를 건너서 동쪽으로 그 국경까지 간다는 말은 모순아닌가요?"
      - 반복되는 대답이 될 것입니다
      - "高麗南隔遼海, 西距遼水, 北接契丹舊地, 東距大金."은 그 뒤에서 "今旣幷新羅百濟, 東北稍廣, 其西北與契丹接連. 昔以大遼爲界, 後爲所侵迫, 乃築來遠城, 以爲阻固. 然亦恃鴨綠以爲險也." 로 받고 있습니다.

    • @mvkuri
      @mvkuri  Год назад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영상을 보지도 않고 함부로 욕설을 하면서 "고려는 만리대국 천자국인데 어디서 감히 역사왜곡을 하고 있느냐?"하며 호통(?)치는 사람들만 접하다 보니 반갑습니다
      제가 이곳에 공유한 다른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이 연구 역시 전례가 없는 새로운 연구이고, 고찰 대상이자 사료로 삼은 문헌들도 생소한 것들이라서 대부분의 분들이 영상을 제대로 보지 않고 감정만 앞세우더군요
      이 연구 '고려도경 3,790 리'는 저의 『고려 전기 서북계 연구』에서 요나라 말기부터 요·금 교체기까지 거란 동경도와 고려 서북계의 윤곽을 살펴보는 논문들이 담긴 각론집 1에 수록돼 있는 연구입니다
      고려도경 봉경편 전체의 고찰은
      각론집 3에서 다루었습니다
      각론집1에서는 요·금 교체기 거란동경도와 고려서북계의 윤곽
      각론집2에서는 거란 동경의 이치와 동경도의 변천
      각론집3에서는
      - 거란 동경도 내외 여러 종족 및 세력 집단
      - 고려 서북계의 변천
      등의 내용을 수록하였습니다
      책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2024년 중에 출간될 것입니다

    • @davekim7777
      @davekim7777 Год назад

      @@mvkuri 고려국경 인식이 기존 국사교과서와 동일한 시각이신지 우선 궁금하네요.
      그리고, 대릉하에 대한 위키 서술을 제가 요약해서 옮긴겁니다. 현 대릉하가 당시 요수로 불린게 아니라는 판단은 좀더 학술 근거를 듣고싶습니다.
      그리고,
      - 鴨綠之西, 又有白浪黃嵓二水, 自頗利城行數里, 合流而南, 是爲遼水.관련해서, 현 북한 압록강만이 고려도경의 압록이라는 반증근거로, 대명일통지 기록에 등장하는 압록강(鴨綠江) 있는데.
      그렇다면, 당시에 현 요하가 압록강이라는 별칭이 있었을수도 있는거 아닌가 싶습니다만.
      제 취지는, 현 대릉하가 요수이고 현 요하가 압록(鴨綠)이라면, "昔以大遼爲界, 後爲所侵迫, 乃築來遠城, 以爲阻固. 然亦恃鴨綠以爲險也."
      이 대목이 자연스레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서요.

  • @정광준-x2s
    @정광준-x2s 2 года назад +1

    오랫만에 영상 올리셨군요. 저도 드디어 시험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사업준비해야하는데 집에서는 취업하라고하고 하니 난감하네요. 영상 잘봤습니다. 나머지 영상도 봐야겠네요.

    • @mvkuri
      @mvkuri  2 года назад

      고생하셨습니다
      졸업 축하드립니다 ㅎㅎ

  • @강철영-m4c
    @강철영-m4c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상식적으로 1000년전에 무동력선으로 서해를 건널 수 있음?

  • @JosephLeeMr
    @JosephLeeMr Год назад +3

    그래서 결론적으로 국경이 어디라는 것인지요? 선을 그어 주세요. 강만 그리지 말구요.

  • @zerosome-h3s
    @zerosome-h3s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마이크좀 좋운걸로..

  • @박길용-n9p
    @박길용-n9p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공부좀합시다
    책보고 이내용
    믿을만합니다 한번보시고 생각해보세요.^^~

  • @강신보-c6y
    @강신보-c6y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도대체 뭔 말 하는건지

  • @poongbae4334
    @poongbae4334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푸하하하하하 제발 좀 고려사등 좀 읽고 지도 좀 ㅋㅋㅋ 고려 역사 보는데 잡 문서를

  • @박길용-n9p
    @박길용-n9p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당신은 가짜역사를 가르치고 있나요?
    좀만 연구하세요

  • @노인좌
    @노인좌 Год назад

    도로사정이 안좋으니 강따라 산따라 가다보면 지그재그 의외로 가까울수도

  • @bamas26
    @bamas26 4 месяца назад

    해로를 떠나서도 일단 서긍이 설명하는 고려는 어딜봐서도 중국이 아니에요.
    중국에는 그런 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서긍의 고려도경의 결론은
    고려는 비루하다입니다.
    그냥 찬찬히 기본적인 문해력만 있어도 이해가 됩니다.
    영토를 봐도 어디에도 대륙 고려로 이해될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어차피 한문을 이해 못하면서
    뭘 따로들 해석을 하나요?
    유사역사학을 하는 이치고 한문 해석하는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한학을 공부해서 고대 사서를 읽었다면
    기원전의 동이와 기원후의 동이가 같다고 말하는 것은
    사기를 치거나.. 쪼당거나 둘중 하나에요.
    ////
    마지막으로 고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니에요.
    고려가 독립을 유지 하고 황제국의 예를 따랐던 것은
    중국이 분열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통일되고 원이 들어서자 고려가 복속 된을 봐도 알일입니다.
    고려도경 어디에도 고려가 선진적인 강국이다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황성이 가난하여 비루하다
    시장이 없고 화폐도 없다.
    고정된 상점이 없고 보이는 것은 무당집 정도다.
    성은 방어시설도 없고 해자도 없어 그지같다.
    황성은 대단하지 않고 중국 사신을 모시는 곳만 수리를 잘해놓았다 .
    순천관과 만월대 사이에 복도를 만들어 민가를 보이지 않게 해놨다.
    뭐 이런것이 서긍이 본 그것입니다.
    즉, 별로 주목할만한 책이 아닌것입니다.
    지 꼴리는데로 쓴것이에요.

    • @Morethananythingyouwant
      @Morethananythingyouwant 4 месяца назад

      @@bamas26 처음부터 끝까지보면 앞뒤가 맞지않는 구절이 많죠.. 문화적 열등감도 표현이고.. 주변 35개국이 조공을하고 귀부했던 나라였지요.
      고려 서경이 지금 북경이고, 송악은 중경. 남부는 묵역양이라는 양자강주변 나주지역이 그리 불렸습니다.
      약했다뇨.. 화하족의 나라는 중공국에 200년이 넘는 역사가 몇이나 될까요. ?
      서희가 요나라와 담론을 펼쳐 강동6주를 회복한 지역을 구글에서 찾아보셨을까요? ..
      음… 혹시 중국분이신가요??
      고구리(려)와 고리(려)는 같은나라죠..
      세로보다 가로가 넓었던 나라.
      서북의 영토는 고구리를 능가했던 나라였답니다…^^

  • @류영걸-m8j
    @류영걸-m8j Год назад +2

    설명하는 기록은 맞는말이나 현지역 위치가 맞지않는 역사적 사실을 많은사람들에게 가자를 이야기 하면 안됩니다
    바로 일본 식민사학이나 다를바 없다는것입니다 제발 눈뜨고 속지 마십시요
    진실에 요수와 요하 그리고 요동을 모르니 아무곳이나 설정하여 설명하는것입니다

  • @류영걸-m8j
    @류영걸-m8j Год назад

    송나라는 쉘주크튀르키라 불리웠습니다
    송나라는 설명과 같이 지금중국땅에 없었는데 지금모두 속고있는것입니다
    고려의 중경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라칸트입니다 그곳이 개성입니다 부하라가 서경이고
    송나라는 지금이란지역에 있었습니다
    카스피해가 아랄해가 같은 바다로 카스피해 지금보다 5배정도의 크기 바다였으나 지금은 물이 말라 사막으로 변하여
    환경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백제가 있던 올말리크에 하북위례성이요 지자흐에 하남 위례성입니다 마한지역 사마라칸트를
    백제가 점령하며 54개국을 합병하는데 마우리왕조요 백제가 쿠산왕조를 세웁니다
    고구려는 키르기즈스탄 촐폰에 세우고 장수왕때 남하 코칸트 낙랑지역을 접수 평양성을 만들고 옆으로 흐르는 강이 시르다리아강이고 패수고 압록수입니다
    타지키스탄에 두산배는 가야 김수로왕에 나라 남쪽에는 바다와 맞닿아 있고 아무다리아강이 흐르는 지역까지 입니다
    현중국에 당나라도 송나라도 없었는데 그것을 중국땅에 갖다놓으니 우리 한국역사가 동으로 몰리게 됩니다
    이는 가짜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 요동이 어디인줄 모릅니다 요동은 우즈베키스탄 코칸트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요동이고
    그곳까지 바다가 요하요 요수가 됩니다 지금중국땅에 지명은 서쪽에서 지명이동하므로 실제 알지 못하는것입니다
    고려가 영토를 넓히며 서안에 개성이란 이름을 갖다 놓기도 합니다 우즈베키스탄에 영웅 티무르가 이성계입니다
    사마라칸트가면 티무르영웅을 기립니다 그쪽 왕조 이름과 조선왕들에 이름은 달라도 티무르제국 왕과 조선왕이 같습니다

    • @sanggubi
      @sanggubi Год назад

      대륙 고려를 지지하지만 이건 좀..
      북경일대가 우리영역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중앙아시아는 너무 나간거 같아요..

    • @류영걸-m8j
      @류영걸-m8j Год назад

      고려 중기이후 영토를 넓히며 중국서안을 개성으로 옮기며 고려후기 이성계로 하여금 요동을 공격하는데 요동이 우즈베키스탄이고
      위화도 회군후 요동을 손에 넣고 이란지역이며 인도 서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합니다 그가 이성계이며 우즈베키스탄에 영웅 티무르입니다
      몽골에서 티무르이름이 빠얀티무르이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미르티무르입니다 그곳왕조가 이씨왕조와 똑같습니다
      우리역사를 갈라치기하고 변조시켜 알아보지 못하게 하므로 그것들을 밝혀야 합니다
      참고로 요동지역을 고려정부가 서안으로 옮기며 그곳이 약해진점을 타서 명나라가 득세하였던것을 이성계가 주원장에 목을 자르며
      그명은 끝나고 대명조선 명이 영락제인 태종이방원에 나라가 명나라고 그곳에서 땅을 하사받고 그의셋째아들 세종이 중국양자강 남부땅과
      동부해안 한반도등 과 아메리카땅을 받아 통치하게 됩니다
      지금중국땅에 수나라 고대나라 당나라 모두갖다놓고 이야기 하는것은 전부거짖말입니다
      그것에 속으면 새로운 우리진실에 역사를 모릅니다
      공부를 하면 인도 역사중 절반정도가 우리역사라는것도 알게 됩니다
      아직도 스페인에 신라 라는 마을이 있고 신라 군청이 존재 하고 고려성이 존재 합니다 이것을 설명할줄알아야 합니다 @@sanggubi

  • @a7205-t1e
    @a7205-t1e Год назад +5

    가짜 역사.

  • @Morethananythingyouwant
    @Morethananythingyouwant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송나라사신이 천자의 나라, 35개국이 조공을 했던 고려,만리지국이라 불렸던고려 곳곳을 염탐하고, 보이는 족족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겼던, 고려도경. . . . 근데, 그림이 하나도 없습니다.
    없앴기 때문입니다. 송나라 사신은 무동력선을 타고 물살을 휘몰아치던, 지금은 서해, 그때는 동해를 건너서 산지가 80%인 한반도를 올리가 없죠.
    서경은 지금의 북경입니다. 지금도 구글에 상당한 지명들이 고려사에 언급되어있습니다. 한반도에 찾으니 모르겠고, 비정하고, 마음대로 추측했죠.
    우리나라 역사가들이 아직도 장춘의 위치를 모른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하얼빈 주변에 아직도 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