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말, 그 많았던 노비들 같은 경우에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그들로 인해 신분제도가 일단은 없어졌거든요. 독립운동가 분들의 무장투쟁은 정말 대단하고 그 정신 또한 존경할만 하지만.. 그들의 활동으로 조선인 모두가 들고 일어날 거라는 발상은 너무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독립운동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김일성의 남침에 가담한 건 부분적으로 외면하고 그걸 정권에서 미화시키는 건 좀 우려됨. 그냥 그 시대의 인물이니 그의 선택이나 활동에 대한걸 담담히 다루면 좋을텐데 비슷한 사례가 홍범도. 덕분에 요 몇년에 다룬 인물에 대해서는 생각없이 위인이구나...라고 생각하는게 안되고 있음.
김원봉 해방 직후 귀국하여 집에 돌아가던 길에 친일 고문경찰 노덕술을 보고 노덕술 왜 여기에 있느냐! 라고 소리지르다 노덕술이 휘하 경찰들에게 빨갱이니 잡아오라 하여 며칠간 끌려가 고문과 수치를 당하고 집에 돌아와서 며칠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 뒤 이북으로 넘어갔으니 그 마음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라고봄
@@shinshin- 근데 김원봉이 노덕술에게 뺨을 맞았다거나 고문을 당한 설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1987년 월간 경향에 수록된 기사 말고는 확실한 증거나 증인은 없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노덕술이 아무리 막 나가는 악질 친일파 새끼라도 경찰 총 책임자급 인물은 아니었고 김원봉은 당시 상당한 거물급 인사였기 때문에 대놓고 고문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원봉 역시 이후 대화나 증원에서 "굴욕"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는데 고문이나 뺨을 맞은 이야기를 김원봉 본인이 직접적으로 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좌파와 우파의 전쟁터입니다. 저는 무작정 좌파편을 들지도 않고, 무작정 우파편을 들지도 않습니다.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며 살아 갑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는 그 위인이 살아간 시대적 맥락, 그 위인의 개인사적인 맥락, 그 위인의 행동의 동기,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입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장님 코끼리 만지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점만 내세우고 있어요. 당연히 상대는 반발하구요. 역사돋보기 채널에서 우매한 대중들에게 사실을 전달해 주시고, 각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는데 감사드립니다.
@@박계원-r5y 저 이제 중도 포기하고 우파로 굳혔어요. ㅋ 아니죠. 우파 커밍아웃이죠. 생각해보니까 원래부터 우파였는데 그냥 관심이 없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저쪽에서 보면 그 뭐냐 뉴 라이또? 하긴 뭐 저쪽에서 보면 친일 극우 매국노 뉴라이트겠네요. 여러 계기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가다 보니 뻥역사가들에 의해 양념쳐진 역사로 인해 우리나라가 이렇게 곯아 버린 게 화가 나서 그냥 극우소리 듣더라도 목소리 내려고 합니다.
@@gustave7223공산주의는 나쁘고 민족주의는 좋은거라는 것은 현대에 중국 북한등이 공산주의를 독재로 이끌어가기때문이지 애당초 공산주의의 의미는 자본가들에 대항한 하층민노동자들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었음이고, 김원봉이 김일성같은 독재자의 나라를 꿈꾸며 독립운동을 한것은 아닐꺼라 생각합니다. 단지 최초에 유럽에서 공산주의 이념이 나왔을때 하층민들이 환영했듯이 그당시 이념에 편승한것이지 지금의 중국 공산당이나 북한의 체제를 꿈꾼것은 아니고, 그당시의 민족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에는 선과 악은 없었을것입니다. 이념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이 일제에 맞서 싸운것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를 악용하는것이 나쁜것이지 최초 마르크스,레닌등이 만들려고 했던 공산주의 이념은 대중을 위한것이었습니다.
@@gustave7223 김원봉 해방 직후 귀국하여 집에 돌아가던 길에 친일 고문경찰 노덕술을 보고 노덕술 왜 여기에 있느냐! 라고 소리지르다 노덕술이 휘하 경찰들에게 빨갱이니 잡아오라 하여 며칠간 끌려가 고문과 수치를 당하고 집에 돌아와서 며칠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 뒤 이북으로 넘어갔으니 그 마음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라고봄 잘못한건 좌파가 아닌 사람을 좌파로 만들어버린 친일파정부임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참 어려운 사안이기는 합니다. 실제 625 당시 북한군의 장교급이라면 대부분이 독립 활동을 한 사람들일겁니다. 일본은 독립군보다 공산주의자들을 더 탄압했다고 하니, 공산주의자들이 일제에 항거하였을 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는 곧 독립 활동으로 여겨졌을테니까요. 시리아 독재자에 항거한 IS가 독재에 항거한 혁명가들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독재 권력을 꿈꾸던 그저 같은 독재자 부류들인지에 대한 논리와 비슷하다고 보여집니다. IS를 국가와 민중을 위한 혁명가들이라고 칭할 사람들은 없겠죠. 같은 논리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거짓된 정보에 속는 사람이 여기 또 있네요. 하긴 김원봉 경찰이 좇았으니 무조건 범죄자! 이러는 골빈 것도 있으니... 해방 후 이승만이 정권을 잡고 그 후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면서 이념논쟁은 권력을 위한 국민통제의 수단이 됩니다.. 그때 자신들의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이 공산당 굴레 씌우는 거였습니다. 이승만의 탄압에 월북한 경우는 굳이 뭘 조작할 필요도 없었고, 한국에 남은 사람도 그런 식으로 탄압을 하죠. 그리고 님 주장대로면 공산주의자들만이 진정 나라를 위해 들고 일제히 일어난 거네요. 그럼 공산주의자 아니었던 사람들은 뭘까요? 또 님 주장의 아주 무서운 점은 그런 식으로 공산주의자들의 항거를 말한다면 김일성이 항일운동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거네요. 혹시 북한 사람인가요?
말하는 투가 본일들만 잘난줄 아는 요즘 세대의 누군가들과 비슷하군요.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뿐만 아니라 김구 선생도 김원봉은 진정한 독립군이 아니라면서 만나주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 김원봉은 덕망이 있는 장준하선생을 포섭하기 위해 만남을 요청하였으나 장준하선생은 절대 김원봉과 만나기를 거부했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도 했다고 하는 것이 당시 주변분들의 증언이라고 합니다. 역사는 보는 사람들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어떠한 관점에 대하여 거짓이니 하는 이런 외통수적인 표현은 쓰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니가춤을잘추는지몰랐 저 내용에서도 나오죠. 독립운동가들에게도 말 들었다고.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달랐을 뿐이죠. 당시는 주변의 여러 상황으로, 방법으로, 수단으로 독립운동가들끼리도 반목하게 되고 이념적으로도 나뉘었는데요. 김구선생이 인정 안 했다면 도립운동가가 아니란 건가요? 정말 본인만 잘난 줄 아는 건 제가 아닌 것 같네요.
@@니가춤을잘추는지몰랐 증언과 회고는 주의해서 다뤄야할 사료들 중 하나입니다. 김구가 김원봉을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김구는 김원봉의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 생도 15명을 김원봉과 거래를 통해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자신의 옆에 도움을 줄 이들로 양성하기 위해 데려갔던 이력이 있을만큼 서로를 인지하고 있었고 독립운동의 방향은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가 갔다는 것을 인정했었습니다. 그리고 광복군 시절에는 조선의용대가 화북지역으로 북상항일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막지도 않았고 김원봉, 윤세주, 이정호 등이 김구를 만나 팔로군과 연계활동할 것을 고했을 때도 이를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전부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도 올라와 있는 사료를 기반으로 하는 역사적 사실 내용을 말하는 것이니 시간이 난다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중국 관내지역, 관외지역 어디서든지간에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은 서로 싸우고 비판하고 했을지언정 각자의 활동이 독립운동이 아니라고 힐난하진 않았습니다. 장준하, 김구 등 민족주의 계열 운동가들이 증언, 회고할 때 시기와 역사적 상황을 잘 보셔야 합니다. 실제로 김구는 민족주의자였지만 이화림과 같이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를 비서로 오래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김구는 이화림과 서로 다른 노선을 걷게 된 이후 회고록에는 이화림의 흔적 자체를 없앴습니다. 증언과 회고는 결국 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고 그 기억은 그 당시 상황에 맞게 불러오는게 아니라 자신의 현재 처지에 맞게 불러오게 되는겁니다. 실제 예로 김승곤지사의 회고록도 마찬가지로 실제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교차검증했을 대 거짓인 내용을 여럿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다른 독립운동가들도 마찬가집니다.
김원봉이가 대한민국의 영웅이면 김일성이도 영웅이고 북한이 쳐들어오면 전부 두손들고 환영해야 맞는거냐?? 나라의 뿌리가 어디고 조상이 어딘지는 당연히 알아야지 .. 근데 대한민국이랑 북한이 다른 나라이듯 대한민국이랑 조선도 엄연히 다른 나라다.. 우리가 지켜야할것은 대한민국이지 조선이 아니란 사실을 잊지말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도 홍범도 장군처럼 해방 이전에 돌아가셨다면, 그래서 북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민족의 영웅으로 남았을텐데.... 제 말은 만약에 해방 이전에 돌아가셔서 북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을 전제로 한겁니다. 오해마세요. 너무나 속상하고 안타깝습니다. 그 시절의 역사가.
테클은 아니구.. 9:32 약산이 여자들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의 부인 박차정 여사는 매독에 자주 걸렸다는 기록이 있죠... 약산과의 관계만 하셨을텐데 기록과 증언은 다각도로 알고 있는게 좋을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해방이전 약산을 좋아하고 해방이후 약산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거 일부러 그렇게 말하고 다닌거예요 매독 아니고 부인께서 일제에 잡혀서 고문을 심하게 당하셔서 심한 질염을 얻으셨는데 그렇게 말할 수없어서 자기가 기생집어디 놀러 갔다 부인한테 병을 옮겼다라고 했다 합니다 당시 중국의 근현대사를 주물렀다하는 송씨 자매 송미령여사의 언니인 송경령여사도 전투중 정글에 떨어졌다가 같은병을 얻으셨는데 고치질 못하셨습니다 그 사연이 계기가 되어 조선 독립을 지원하셨죠
@@hamtolyoon6610 선생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제가 실수를 했군요. 궁금한점 여쭙니다. 독립운동 하다가 잡혀서 받은 고문으로 생긴 병이라면 독립군 결속력, 결집등 사실을 말하는게 옳았을텐데 굳이 일제가 한 고문의 후유증을 남편인 약산이 스스로 기생집에서 얻은 병을 부인에게 옮겼다?!? 라고 할만큼 약산이 일제의 만행을 덮어 줘야했던 이유는 어떤것이 있었는지 여쭙니다.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잘모르거든요
@@dreamjing1 매독에 자주 걸렸다는 기록이 어디있죠? 병원에서 치료 받은 진료 기록이 있나요?? 아님 사망 후 부검을 통해 밝혀진 건 가요?? 공식적인 사망 원인은 곤륜산 전투 중 어깨 총상으로 인해 극심한 후유증을 앓다가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김원봉 빨갱이 맞고..기회주의자 라고 생각하여 저도 좋아하지 않지만... 박차정 의사가 성병에 걸려 죽었다는 거는 김원봉을 싫어하는 세력들이 일부러 비하하고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 낸 근거 없는 얘기 라고 생각합니다.
김원봉이는 중국에서 기생집에서 살다 시피했고...돈때문에(장개석이 조선 1개 단체만 돈지원한다고 했음) 40명 거느리고 김구와 합류...김구입장에서도 40명+40명 .....김구와 티격태격 싸웠음....김원봉이는 중국에서 장가 여러번 들었고 .매독에 걸렸고...박차정이도 김원봉이한테 매독걸려 사망......장개석이는 반공주의자인데 (송미령도 마찬가지) 매독쟁이 공산주의자 김원봉이를 지원했다고?....당시 공산주의자 송경령이 무슨 힘이 있어 조선독립을 지원하냐?....송경령이 쏘련에 도망가있을때이고 중국공산당도 아무런 힘이 없을때인데.....(송경령이 조선독립을 위해 뭘 지원해 주었지?)
매독 이야기는 학계에서도 다루지 않는 낭설입니다만 매독과 여성편력을 회고한 사람은 정화암 선생의 돌배게에서 처음 나오고 그 이전에는 나오지도 않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정화암 선생은 1944년도에나 일본군에서 탈출한 사람으로 관내 지역 독립운동의 양상도 몰랐고 그 곳 사람들 이력도 잘 모르는 자였어요. 김원봉과 대척하던 이들도 그딴 소리 한번 하지 않았는데 흩고 지나간 사람이 한 이야기만 가지고 판단하는건 말도 안되죠 모든 역사적 사실과 자료는 교차검증과 사료비판이 필수입니다. 특정인물이 하는 증언, 회고 같은 경우 신빙성 있다고 하는데 사학계에서는 오히려 증언, 회고를 더 조심해서 다룹니다.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이기에 자신에게 유리하게 남을 불리하게 말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니까요
의열단의 투철한 독립정신과 의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감한 행동, 숭고한 희생 등 분명히 인정받아야 함. 하지만 희생에 따른 성과는 윤봉길 의사 한분만도 못했다는 거. 윤의사님의 거사 한방으로 중국 국민당과 동맹을 체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 즉 일본 패망 후 조선의 독립을 장제스가 적극 밀게 되었음
이승만 때문입니다. 이승만이 권력을 잡은 후 한 짓 잘 알죠?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일제강점기 일본에 충성을 바치며 같은 동포 괴롭히고 독립투사 때려잡던 친일매국노들 대거 등용하죠. 그리고 독립투사들 탄압하고요. 그 때문에 월북하게 된 사람들 많아요. 김원봉도 그들 중 한 명이고요.
정신들 차려야 합니다. 독립운동은 무슨 얼어죽을!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독립인가? 독립이 된 현실이 일제강정기 보다 못하다면 독립이 더 최악이다. 자유와 민주를 위한 독립이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조선왕정복구와 신분제 복귀를 위한 독립이던지, 공산당 1당 독재를 하여 전 국민의 노예화를 위한 독립은 그냥 안하는 것이 1000.... 배 더 나은 것임.
독립운동이 없었던 민족을 승전국들이 독립시켜주었을지 의문이네요.. 일제가 항복하면서 한만국경(압록강-두만강라인)까지 영토를 끝까지 유지하려 협상하였고.. 만약 승전국들이 일제의 요구를 묵살하고 한반도를 점령했다해도 큰 피해를 입은 중화민국(혹은 중화인민공화국)이나 막판에 참전한 소련에 의해 전리품취급을 받고 지금은 이런 한글 대신 간자체나 키릴문자로 댓글을 쓰고있겠지요.. 전범취급은 덤이고..
@@dltmdwls 맥락 이해는 니가 못하고 있단다. 니가 해방 후에 무장투쟁 해야한다고 말했다는게 아니라 애초에 니 주장이 무장투쟁>외교 라면 무장투쟁이 외교에 비해 독립에 더 큰 역할을 했다는 근거가 있어야되는데 그게 있냐는거 아니냐. 무식하니까 더 쉽게 설명하자면 '해방 전 무장투쟁을 한 그 사실이 우리의 독립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그걸 지적하는거라고. 강대국에 대한 외교는 해방 전이든 후든 어떤식으로든 우리나라가 주권을 찾는데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거였지만 무장투쟁은?? 무장투쟁해서 일본으로부터 되찾은 영토가 단 한평이라도 있음??
김원봉.. 무정부 독립운동 아나키스트의 선두주자이죠. 뭐 화암선생도 있지만..(후에 이 화암선생이 독립운동가 기록에 큰 영향을 주었죠.) 좌우에서도 환영받지 못한인물.. 하지만 일제가 싫어한 인물.. 이것만으로도 설명이 충분 하겠죠? Feat. 김익상의 화려한 사격술은 일제 군인과 경찰도 감탄했을 정도라고 하죠..
약산 선생의 끝은 참... 그렇게 죽이고 싶은 친일파 경찰에게 수모를 당하시고 몇 날 몇 일을 서러움에 우셨다지요... 그렇게 예뻐하시던 막내 동생을 뒤로하고 북으로 가셔서 활동하시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디 한 쪽에서도 제대로된 대우를 못 받으셨고 몇 년 전까지도 북으로 갔다고해서 교과서에도 볼수 없었던 인물...
@@니가춤을잘추는지몰랐 카더라... 카더라라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는지요? 실제 노덕술에게 잡혀 고문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는걸로 알고 있으며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많은 동지를 잃으며 약산 선생도 목숨을 바친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 경찰에 체포되었다... 고문은 둘째 치고서라도 나같아도 화가 날것 같네요. 카더라라는 소리 확실하지 않으면 함부로 안쓰셨으면 좋겠네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본인 죽인수 보다 한국죽인 수가많은 사람을 위인이라 하기엔 뭔가 꺼림직 합니다 물론 목숨을 던져 독립운동을 한것은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6.25가 너무 큰 나라의 상쳐를 준것도 사실 이니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늙으면 일찍 가는게 애국이지요.
@@안녕-y3l9n맞는 말이죠 586, 아니 이젠 686 되신 분들도 일찍 가는 게 애국이라고 생각합니다 ㅋ
김원봉은 조선의 독립운동가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가 아님ㅋㅋㅋ
대한민국에서 영웅 대우를 해주고 싶어 안달난 걸 6.25 때 전사한 군인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음?
정답인듯!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에 대한
모욕이죠!
진영논리로 인해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꼬라지는 변한게 없는듯!
그렇죠. 저게 팩트라해도 김원봉이 북한공산당에 가담해 한국인을 쏴죽인건 팩트니까요.
내친구도 독립운동 했으면 다 훈장받아야 한다더라
대가리 깰뻔
조선시대 말, 그 많았던 노비들 같은 경우에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그들로 인해 신분제도가 일단은 없어졌거든요. 독립운동가 분들의 무장투쟁은 정말 대단하고 그 정신 또한 존경할만 하지만.. 그들의 활동으로 조선인 모두가 들고 일어날 거라는 발상은 너무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신분제도는 고종의 갑오개혁때 사라졌고, 노비라해서 일제의 삶이 윤택했던것도 아니며 나라의 주인이 바꼈을 뿐
갑오개혁때 없어지고 6.25때 완전히 없어짐 일제는 신분제도를 교묘하게 이옹함 조선의 지주가 그대로 일제때도 지주했음
독립운동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김일성의 남침에 가담한 건 부분적으로 외면하고 그걸 정권에서 미화시키는 건 좀 우려됨. 그냥 그 시대의 인물이니 그의 선택이나 활동에 대한걸 담담히 다루면 좋을텐데 비슷한 사례가 홍범도. 덕분에 요 몇년에 다룬 인물에 대해서는 생각없이 위인이구나...라고 생각하는게 안되고 있음.
최고의 독립운동자이자 사회주의자죠. 독립에 힘쓴것도 맞지만 이념이 달라 6.25전쟁에 대한 책임도 져야합니다. 박정희대통령과 비슷하죠,만주군장교활동을 했고 해방후 남로당이였지만 대통령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낸
공은 공이고 과는 과인데 생각없이 위인이구나는 좀
@@잠깐잠들었네 독립운동가은 아니지 항일투쟁가 정도가 정확한 표현이지. 본질적인 목표가 사회주의 국가건설이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북한에서 주요직책을 한 사람임.
@@AF-qk8ty 이념은 선택의 문제고. 항일운동이 독립운동이지 뭔
@@잠깐잠들었네 결국 민족이냐 국가냐의 문제. 이념은 국가와 직결되니까.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민족을 우선시함. 10%의 느낌과 90%의 감성으로 살아가기 때문.^^
김일성도 독립운동 했는데
독립군이라 미화시키는것은 아닌듯요 그후 대한민국을 괴롭게한 남파 간첩의 수장이되었고 나중 숙청되었지만 적의 총칼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이땅을 슬픔으로 가득차게만든 전범중 하나인 김원봉은 북한의 영웅이지 남한의 영웅은 아닙니다..
김일성은 독립운동이 아닌 중국 동북항일연군 소속이었습니다
그동안 김원봉과 의열단 관련 영상 중에서 그나마 가장 낫네요 님웨일스를 언급하는 영상을 보게될줄은...
존경합니다...
육이오 전쟁 원흉 김원봉은 지탄받아 마땅하지. 그 죄는 씻을수없어
김원봉 해방 직후 귀국하여 집에 돌아가던 길에 친일 고문경찰 노덕술을 보고
노덕술 왜 여기에 있느냐! 라고 소리지르다 노덕술이 휘하 경찰들에게 빨갱이니 잡아오라 하여 며칠간 끌려가 고문과 수치를 당하고 집에 돌아와서 며칠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 뒤 이북으로 넘어갔으니 그 마음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라고봄
@@shinshin- 근데 김원봉이 노덕술에게 뺨을 맞았다거나 고문을 당한 설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1987년 월간 경향에 수록된 기사 말고는 확실한 증거나 증인은 없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노덕술이 아무리 막 나가는 악질 친일파 새끼라도 경찰 총 책임자급 인물은 아니었고 김원봉은 당시 상당한 거물급 인사였기 때문에 대놓고 고문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원봉 역시 이후 대화나 증원에서 "굴욕"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는데 고문이나 뺨을 맞은 이야기를 김원봉 본인이 직접적으로 한 적은 없습니다
@@shinshin- 증거도 없는 헛소리 상식적으로 노덕술 따위가 김원봉에게 그리 할 상황도 아니고 사실부분이 있다해도 과정됐다고 보는게 맞으며 그말이 다 사실이라고해도 북한으로 넘어가 6.25전쟁에 가담한건 쉴드가 안됨
@@정팩이 친일파 쉴드도 감당이 안되는데요
@@이승현-d6r 그러니까 더 어이가 없는거지 친일파로 부역해서 민족팔아먹던 놈이 평생을 독립운동하면서 죽을 고비 넘겨가며 독립군에서 전투하던 사람이 귀국했는데 빨갱이라고 부하들 시켜서 잡아다가 패니까 ㅋㅋ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써왔는데 앞잡이 놈들의 세상이 되었으니 얼마나 화가날까
공산당 활동에 남침 주장을 관철시킨 건 그래 뭐 차치하자. 헌데 활동자금 모은다고 민간인들 약탈 살해하고 밀고했다 의심해 동네주민을 학살했다는 정황도 있는데 김원봉.. 이 사람을 과연 어떻게 봐야할까
김일성과 손잡고 대한민국국민 수십만을 죽인 영웅이군요!
레퍼런스를 써주세요!
나중에 공산으로 들어가서 625전쟁에서 적국이었던 얘기는 왜 안하시는지
일제 경찰 출신 경찰이 모욕적으로 심문하여 약산선생이 울분으로 월북했다는 사실은 아시는지. 댁같은 분들 없었다면 밀양 출신인 약산선생이 월북할 일도 없었습니다.
@@hkoo3205 댁같은 분들이 없었다면 북한이 공산국가론 되지 않았겠죠
@@hkoo3205 제가 뭘 했는데요? 경찰에서 심문받으면 공산당으로 가나요? 범죄자들이 원래 자기보다는 세상탓 남탓이죠
그러게요. 살짝 아쉽습니다.
@@박태화니 댁같은 분이 없었으면 무고한 사람들이 빨갱이로 모여서 죽진않았겠지요
우리나라는 좌파와 우파의 전쟁터입니다. 저는 무작정 좌파편을 들지도 않고, 무작정 우파편을 들지도 않습니다.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며 살아 갑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는 그 위인이 살아간 시대적 맥락, 그 위인의 개인사적인 맥락, 그 위인의 행동의 동기,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입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장님 코끼리 만지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점만 내세우고 있어요. 당연히 상대는 반발하구요. 역사돋보기 채널에서 우매한 대중들에게 사실을 전달해 주시고, 각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는데 감사드립니다.
중도가 최고죠
@@박계원-r5y 저 이제 중도 포기하고 우파로 굳혔어요. ㅋ 아니죠. 우파 커밍아웃이죠. 생각해보니까 원래부터 우파였는데 그냥 관심이 없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저쪽에서 보면 그 뭐냐 뉴 라이또? 하긴 뭐 저쪽에서 보면 친일 극우 매국노 뉴라이트겠네요. 여러 계기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가다 보니 뻥역사가들에 의해 양념쳐진 역사로 인해 우리나라가 이렇게 곯아 버린 게 화가 나서 그냥 극우소리 듣더라도 목소리 내려고 합니다.
현상금은 날조도😊
북한같은 나라 만들자고 독립투쟁했냐?
나라를 조선시대로 되찾으려했던 미친 독립운동가들....
어떻게 수준이 낮으면 그렇게밖에 생각못하냐
한국에선 좌파든 우파든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인물,,,
좌파들은 김원봉이 북한 장성 출신이라 좋아하던데요. 현충일에 6.25 전쟁 전사자 가족들 앞에서 북한 장성 김원봉 찬양하던데 ㅋㅋ
@@gustave7223공산주의는 나쁘고 민족주의는 좋은거라는 것은 현대에 중국 북한등이 공산주의를 독재로 이끌어가기때문이지 애당초 공산주의의 의미는 자본가들에 대항한 하층민노동자들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었음이고, 김원봉이 김일성같은 독재자의 나라를 꿈꾸며 독립운동을 한것은 아닐꺼라 생각합니다. 단지 최초에 유럽에서 공산주의 이념이 나왔을때 하층민들이 환영했듯이 그당시 이념에 편승한것이지 지금의 중국 공산당이나 북한의 체제를 꿈꾼것은 아니고, 그당시의 민족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에는 선과 악은 없었을것입니다. 이념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이 일제에 맞서 싸운것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를 악용하는것이 나쁜것이지 최초 마르크스,레닌등이 만들려고 했던 공산주의 이념은 대중을 위한것이었습니다.
@@rocky202081 김원봉이 독재국가를 꿈꾸고 독립운동 한 건 아니겠지만 독재자 김일성에 부역하였고 북한군 장성의 신분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침략하는데 일조 했다는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gustave7223 김원봉 해방 직후 귀국하여 집에 돌아가던 길에 친일 고문경찰 노덕술을 보고
노덕술 왜 여기에 있느냐! 라고 소리지르다 노덕술이 휘하 경찰들에게 빨갱이니 잡아오라 하여 며칠간 끌려가 고문과 수치를 당하고 집에 돌아와서 며칠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 뒤 이북으로 넘어갔으니 그 마음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라고봄
잘못한건 좌파가 아닌 사람을 좌파로 만들어버린 친일파정부임
@@shinshin- 아~ 그래서 남한에 서운해서 동족상잔 민족학살에 이바지했군요. 아 김원봉 입장에선 조선인민해방 전쟁이겠네요.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참 어려운 사안이기는 합니다. 실제 625 당시 북한군의 장교급이라면 대부분이 독립 활동을 한 사람들일겁니다. 일본은 독립군보다 공산주의자들을 더 탄압했다고 하니, 공산주의자들이 일제에 항거하였을 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는 곧 독립 활동으로 여겨졌을테니까요. 시리아 독재자에 항거한 IS가 독재에 항거한 혁명가들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독재 권력을 꿈꾸던 그저 같은 독재자 부류들인지에 대한 논리와 비슷하다고 보여집니다. IS를 국가와 민중을 위한 혁명가들이라고 칭할 사람들은 없겠죠. 같은 논리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거짓된 정보에 속는 사람이 여기 또 있네요. 하긴 김원봉 경찰이 좇았으니 무조건 범죄자! 이러는 골빈 것도 있으니...
해방 후 이승만이 정권을 잡고 그 후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면서 이념논쟁은 권력을 위한 국민통제의 수단이 됩니다.. 그때 자신들의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이 공산당 굴레 씌우는 거였습니다. 이승만의 탄압에 월북한 경우는 굳이 뭘 조작할 필요도 없었고, 한국에 남은 사람도 그런 식으로 탄압을 하죠.
그리고 님 주장대로면 공산주의자들만이 진정 나라를 위해 들고 일제히 일어난 거네요. 그럼 공산주의자 아니었던 사람들은 뭘까요? 또 님 주장의 아주 무서운 점은 그런 식으로 공산주의자들의 항거를 말한다면 김일성이 항일운동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거네요. 혹시 북한 사람인가요?
말하는 투가 본일들만 잘난줄 아는 요즘 세대의 누군가들과 비슷하군요.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뿐만 아니라 김구 선생도 김원봉은 진정한 독립군이 아니라면서 만나주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 김원봉은 덕망이 있는 장준하선생을 포섭하기 위해 만남을 요청하였으나 장준하선생은 절대 김원봉과 만나기를 거부했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도 했다고 하는 것이 당시 주변분들의 증언이라고 합니다. 역사는 보는 사람들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어떠한 관점에 대하여 거짓이니 하는 이런 외통수적인 표현은 쓰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니가춤을잘추는지몰랐 요즘세대의 누군가가 혹시 누군가요? 궁금하네요!
@@니가춤을잘추는지몰랐
저 내용에서도 나오죠. 독립운동가들에게도 말 들었다고.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달랐을 뿐이죠. 당시는 주변의 여러 상황으로, 방법으로, 수단으로 독립운동가들끼리도 반목하게 되고 이념적으로도 나뉘었는데요.
김구선생이 인정 안 했다면 도립운동가가 아니란 건가요?
정말 본인만 잘난 줄 아는 건 제가 아닌 것 같네요.
@@니가춤을잘추는지몰랐 증언과 회고는 주의해서 다뤄야할 사료들 중 하나입니다. 김구가 김원봉을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김구는 김원봉의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 생도 15명을 김원봉과 거래를 통해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자신의 옆에 도움을 줄 이들로 양성하기 위해 데려갔던 이력이 있을만큼 서로를 인지하고 있었고 독립운동의 방향은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가 갔다는 것을 인정했었습니다. 그리고 광복군 시절에는 조선의용대가 화북지역으로 북상항일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막지도 않았고 김원봉, 윤세주, 이정호 등이 김구를 만나 팔로군과 연계활동할 것을 고했을 때도 이를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전부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도 올라와 있는 사료를 기반으로 하는 역사적 사실 내용을 말하는 것이니 시간이 난다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중국 관내지역, 관외지역 어디서든지간에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은 서로 싸우고 비판하고 했을지언정 각자의 활동이 독립운동이 아니라고 힐난하진 않았습니다. 장준하, 김구 등 민족주의 계열 운동가들이 증언, 회고할 때 시기와 역사적 상황을 잘 보셔야 합니다. 실제로 김구는 민족주의자였지만 이화림과 같이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를 비서로 오래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김구는 이화림과 서로 다른 노선을 걷게 된 이후 회고록에는 이화림의 흔적 자체를 없앴습니다. 증언과 회고는 결국 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고 그 기억은 그 당시 상황에 맞게 불러오는게 아니라 자신의 현재 처지에 맞게 불러오게 되는겁니다.
실제 예로 김승곤지사의 회고록도 마찬가지로 실제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교차검증했을 대 거짓인 내용을 여럿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다른 독립운동가들도 마찬가집니다.
김원봉에 대해서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김원봉이란 존재를 영화 을 통해서 알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 씁쓸하기만합니다.
영화에서 엄청 미화시켜서 영화만들어 놓으니 이새끼가 625때 어떤짓을 햇는지도 모르고 빨고 앉아잇으니 ~!!!!ㅉㅉ
영상 감사합니다
김원봉이가 대한민국의 영웅이면 김일성이도 영웅이고 북한이 쳐들어오면 전부 두손들고 환영해야 맞는거냐??
나라의 뿌리가 어디고 조상이 어딘지는 당연히 알아야지 ..
근데 대한민국이랑 북한이 다른 나라이듯 대한민국이랑 조선도 엄연히 다른 나라다..
우리가 지켜야할것은 대한민국이지 조선이 아니란 사실을 잊지말자.
김원봉이 항일무장투쟁으로 독립운동을 한 과거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해방이후, 김원봉이 수많은 국군들과 서울시민들을 죽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북한에서나 독립운동가이지
한국입장에서는 6.25의 주동자 중의 하나일 뿐이지
북한에선 기록말살형이라 언급도 안할텐데요 뭐
김원봉은 재평가되어야할 인물이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런 논리라면 김구나 김일성도 연금줘야하지 않겠나..역사는 항상 양면이 있고 선도 악도 없는것이다 조선은 부패해서 멸망한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은 분단국가로써 역사적 아픔을 이용해 정치적이용하는 세력이 많아 피곤할뿐 100년후 알게되겠지
항상 영상 잘 보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도 홍범도 장군처럼 해방 이전에 돌아가셨다면, 그래서 북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민족의 영웅으로 남았을텐데.... 제 말은 만약에 해방 이전에 돌아가셔서 북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을 전제로 한겁니다. 오해마세요.
너무나 속상하고 안타깝습니다. 그 시절의 역사가.
뭐가 안타까움? 님할배할매엄마아빠 총맞고 안죽어서 본인이 태어난게 안타까움?
@@MediciSaladin 그럼 그 손녀는 안태어났겠네
안타깝네
김원봉은 해방후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승만세력 특히 노덕술에 의해 고향에서 잡혀 고문받은 일은 유명합니다.
@@kigdoms3 별 관심없는 사람들이지만 공산주의자가 기어들어왔으면 조지는게 맞다고 봅니다. 남한에 있어봤자 남로당이나 되었겠지 고향에 조용히? ㅋㅋ 웃고 갑니다.
@@kigdoms3 1980년대 추종자들이 그렇게 변호하는거지 증거가 없음. 팩트는 6.25때 밀고와서 한반도 전체를 사회주의화 하려했고 그때 죽은 사람이 일제시대 36년보다 많은데 독립운동가라고 면제부를 준다? 공이 1이면 과가 9인 사람임
테클은 아니구..
9:32 약산이 여자들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의 부인 박차정 여사는
매독에 자주 걸렸다는 기록이 있죠...
약산과의 관계만 하셨을텐데
기록과 증언은 다각도로 알고 있는게 좋을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해방이전 약산을 좋아하고
해방이후 약산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거 일부러 그렇게 말하고 다닌거예요 매독 아니고 부인께서 일제에 잡혀서 고문을 심하게 당하셔서 심한 질염을 얻으셨는데 그렇게 말할 수없어서 자기가 기생집어디 놀러 갔다 부인한테 병을 옮겼다라고 했다 합니다 당시 중국의 근현대사를 주물렀다하는 송씨 자매 송미령여사의 언니인 송경령여사도 전투중 정글에 떨어졌다가 같은병을 얻으셨는데 고치질 못하셨습니다 그 사연이 계기가 되어 조선 독립을 지원하셨죠
@@hamtolyoon6610 선생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제가 실수를 했군요.
궁금한점 여쭙니다.
독립운동 하다가 잡혀서 받은
고문으로 생긴 병이라면
독립군 결속력, 결집등
사실을 말하는게 옳았을텐데
굳이 일제가 한 고문의 후유증을
남편인 약산이 스스로 기생집에서
얻은 병을 부인에게 옮겼다?!? 라고 할만큼
약산이 일제의 만행을 덮어 줘야했던
이유는 어떤것이 있었는지 여쭙니다.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잘모르거든요
@@dreamjing1 매독에 자주 걸렸다는 기록이 어디있죠?
병원에서 치료 받은 진료 기록이 있나요?? 아님 사망 후 부검을 통해 밝혀진 건 가요??
공식적인 사망 원인은 곤륜산 전투 중 어깨 총상으로 인해 극심한 후유증을 앓다가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김원봉 빨갱이 맞고..기회주의자 라고 생각하여 저도 좋아하지 않지만...
박차정 의사가 성병에 걸려 죽었다는 거는 김원봉을 싫어하는 세력들이 일부러
비하하고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 낸 근거 없는 얘기 라고 생각합니다.
김원봉이는 중국에서 기생집에서 살다 시피했고...돈때문에(장개석이 조선 1개 단체만 돈지원한다고 했음) 40명 거느리고 김구와 합류...김구입장에서도 40명+40명 .....김구와 티격태격 싸웠음....김원봉이는 중국에서 장가 여러번 들었고 .매독에 걸렸고...박차정이도 김원봉이한테 매독걸려 사망......장개석이는 반공주의자인데 (송미령도 마찬가지) 매독쟁이 공산주의자 김원봉이를 지원했다고?....당시 공산주의자 송경령이 무슨 힘이 있어 조선독립을 지원하냐?....송경령이 쏘련에 도망가있을때이고 중국공산당도 아무런 힘이 없을때인데.....(송경령이 조선독립을 위해 뭘 지원해 주었지?)
매독 이야기는 학계에서도 다루지 않는 낭설입니다만 매독과 여성편력을 회고한 사람은 정화암 선생의 돌배게에서 처음 나오고 그 이전에는 나오지도 않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정화암 선생은 1944년도에나 일본군에서 탈출한 사람으로 관내 지역 독립운동의 양상도 몰랐고 그 곳 사람들 이력도 잘 모르는 자였어요. 김원봉과 대척하던 이들도 그딴 소리 한번 하지 않았는데 흩고 지나간 사람이 한 이야기만 가지고 판단하는건 말도 안되죠 모든 역사적 사실과 자료는 교차검증과 사료비판이 필수입니다. 특정인물이 하는 증언, 회고 같은 경우 신빙성 있다고 하는데 사학계에서는 오히려 증언, 회고를 더 조심해서 다룹니다.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이기에 자신에게 유리하게 남을 불리하게 말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니까요
의열단의 투철한 독립정신과 의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감한 행동, 숭고한 희생 등 분명히 인정받아야 함. 하지만 희생에 따른 성과는 윤봉길 의사 한분만도 못했다는 거. 윤의사님의 거사 한방으로 중국 국민당과 동맹을 체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 즉 일본 패망 후 조선의 독립을 장제스가 적극 밀게 되었음
5:07 소지섭...?
구독받ㄱ갑니다 흥하길 !!
뜬금 없지만 브금 뭔가요?? 영상 내용과 너무너무 잘 어을리네요
님이 잘못 알고 있는거 아니예요? 왜 북한으로 넘어가서 625참전한건 쏙 빼놓고 얘기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노답이네
결국은 공산주의자..
김구보다 현상금이 더 높았던
김원봉이 공산당에도 환멸을 느꼈다고 했는데 어쩌다가 월북을 하고 한국전쟁때도 참전하게 되었나요 ?
결과적으로 보면 너무많은 희생을 치른 전쟁을 일으킨 주축세력이라서 이들의 독립운동의 공로를 추켜세우는건 안된다고 봅니다.
이승만 때문입니다. 이승만이 권력을 잡은 후 한 짓 잘 알죠?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일제강점기 일본에 충성을 바치며 같은 동포 괴롭히고 독립투사 때려잡던 친일매국노들 대거 등용하죠. 그리고 독립투사들 탄압하고요. 그 때문에 월북하게 된 사람들 많아요. 김원봉도 그들 중 한 명이고요.
@@treepark1783
미쳤구나. 역사에 대한 무지가 괴물을 낳았네.
@@헐헐-m4x 이승만에 의한 개인적인 원한 치고는 북한에서 너무 많은 것을 하지 않았나요 ?
@@Turn-Off
그럼 북한가서 그냥 낙향해 시골 들어가 숨어 살아야 했을까요? 더욱이 그렇게 월북한 사람들 눈에는 남한이 제대로 독립한 것으로도 안 보였을 텐데요.
북한 공산당 들어나서
남북전쟁 일으킨 주범 얘기 왜뺌?
좌파세요?
김원봉 미화 시키는 영상 잘 보았습니다
앞이런 영상 사실확인 안하고 올리지 마세요
어디서도 환영 받지 못했다던 자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서열 5위가 된 건 어떻게 설명하시려는지.
팔레스타인의 공격은 팔레스타인 독립운동 이스라엘이 보기엔 테러 하지만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은 악의테러
테러면 테러지 보복을 안하면 맞고 있어란 소리임?
2천년 전에 살던 땅이 지들 땅이라고 빼앗는 클라스.. 지렸죠 이스라엘.. 돈 있으면 다 되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ㅠㅠ
@@marctheduffer4043 네다음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팔레스타인으로 꺼지시고요
@@msh6239 ㅋㅋㅋㅋㅋㅋㅋ 먼 잼민이가 댓글을 다노
기계떡 조심하라니까 방앗간 무엇가 유도하는것같다 침착히 움직이고 생각할문제 소리는 위급한것같지만 무엇가 만드는것같다 앞에 말은 악당 둿 말은 줄거리
정신들 차려야 합니다. 독립운동은 무슨 얼어죽을!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독립인가? 독립이 된 현실이 일제강정기 보다 못하다면 독립이 더 최악이다. 자유와 민주를 위한 독립이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조선왕정복구와 신분제 복귀를 위한 독립이던지, 공산당 1당 독재를 하여 전 국민의 노예화를 위한 독립은 그냥 안하는 것이 1000.... 배 더 나은 것임.
뭐? 일제 식민지가 낫다고? 이런 ㅁㅊ
독립운동이 없었던 민족을 승전국들이 독립시켜주었을지 의문이네요..
일제가 항복하면서 한만국경(압록강-두만강라인)까지 영토를 끝까지 유지하려 협상하였고..
만약 승전국들이 일제의 요구를 묵살하고 한반도를 점령했다해도 큰 피해를 입은 중화민국(혹은 중화인민공화국)이나 막판에 참전한 소련에 의해 전리품취급을 받고 지금은 이런 한글 대신 간자체나 키릴문자로 댓글을 쓰고있겠지요.. 전범취급은 덤이고..
@@기형근-s2t
일제식민지에서 독립하고 북한에서 살 거면 뭐하러 독립함?
이상한 궤변도 잘 주절거렸네, 어디아픈가? 일제에 태어났더라면 나좀 봐달라며 일본인한테 빌빌거리다 무시당할놈이 이상한 논리를 믿고 그걸 정당화하면서 짓껄이는 걸 봐선 얼마나 현생이 꼬였으면 저런 글을 써서 관심을 받고 싶었겠니
일제강점기때는 독립투사중엔 사회주의자도있었고 민족주의자도 존재했죠!다른 민족을억압하고 지배하니까강력히 저항하는것
이승만을 제외한 대부분은
소련중국발 공산주의자임.
그러나 625 때 했던 만행은...
역시 외교론 보다는 무장투쟁이지
그래서 일본 박살낸게 독립군임 미국임?? 생각좀 하고살자 그냥 멋있다고 빨지말고
@@jhc5281 미국이 일본 박살낸게 조선인들 외교 덕분이냐 태평양 전쟁 때문이냐?? 생각좀 더 하고 살자 무조건 빨지 말고 좀
@@dltmdwls 내가 외교로 일본 박살냈댔냐?? 미국이 일본 박살낸 이후에 우리 실리를 챙기려면 무장투쟁이 답이겠냐 외교가 답이겠냐?? ㅈㄴ 1차원적인 생각밖에 못하네
@@jhc5281 일본이 패망했는데 대일 무장투쟁을 왜 함?? 내가 언제 왜정시대 해방후에도 무장 투쟁해야 한다고 했었나? 이건 뭐 맥락도 없고 중심도 없도 1차원적인 생각도 못하는 놈이네.
@@dltmdwls 맥락 이해는 니가 못하고 있단다. 니가 해방 후에 무장투쟁 해야한다고 말했다는게 아니라 애초에 니 주장이 무장투쟁>외교 라면 무장투쟁이 외교에 비해 독립에 더 큰 역할을 했다는 근거가 있어야되는데 그게 있냐는거 아니냐.
무식하니까 더 쉽게 설명하자면 '해방 전 무장투쟁을 한 그 사실이 우리의 독립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그걸 지적하는거라고.
강대국에 대한 외교는 해방 전이든 후든 어떤식으로든 우리나라가 주권을 찾는데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거였지만 무장투쟁은?? 무장투쟁해서 일본으로부터 되찾은 영토가 단 한평이라도 있음??
의열단원들 의외로 암울한 상황에서도 욜로인생을 즐기셨네요
답답하다
공.산.주.의.자
민족의 역적을 미화하고 정권에 아부했던
유튜브.. .
참판공파는 안경공파 양자보낸 자손이다. 따라서 김원봉은 안경공파라규
김원봉.. 무정부 독립운동 아나키스트의 선두주자이죠. 뭐 화암선생도 있지만..(후에 이 화암선생이 독립운동가 기록에 큰 영향을 주었죠.)
좌우에서도 환영받지 못한인물..
하지만 일제가 싫어한 인물..
이것만으로도 설명이 충분 하겠죠?
Feat. 김익상의 화려한 사격술은 일제 군인과 경찰도 감탄했을 정도라고 하죠..
하지만 한국을 북한으로 만들려고 한 인물.
김일성이 밑으로 기어들어가 충성하고 625전쟁을 일으킨 인간 말종 끝
@@AF-qk8ty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상금 기록을 깬건 오사마빈라덴..
일제가 의열단과김원봉님을 얼마나 무서워 했는지 알수있는 대목
무장투쟁론보다는 확실히 외교론이지
테러리스트 빼곤 다 해당되는 인물
의열단 수가 전체 독립군의 수 보다 훠~얼씬 많네.
사상이 어찌하여 민족보다 더 높다 할 수 있을까? 공산주의인 점을 먼저 따지기 보단 우리 민족을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에 대해 존경해야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결과론적이라.. 결국은 625 일으킨 빨갱이임
625일으켜서 결국 같은민족 2천만명이 죽었지
김일성도 독립운동했어 존경해야하나
반공이 먼저인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역사이긴 하지만
윤봉길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간 것이 아니라
의열단에 가게 되었다면
의열단 위상을 더 높아졌을 듯 하다.
윤봉길의사의 의거로 인해
김구 선생님도
지원을 많이 받게 된 케이스 였으니까.
왜 선생인지 이해불가
@@glory78245
왜 대깨왜구인지
100 % 이해 되노 ㅋ
@@의열단박재혁의사 정신병 있삼?
@@신동건-p5d ㅋㅋㅋ
대깨구나
@@신동건-p5d
핏떵이
불발이 많네
계란
주적 김원봉
김일성 김원봉이 없었다면 6.25전쟁도 안 일어났을지도
모든 독립운동가들은 다 존중받고 나라에서 대우해줘야함. 나중에야 이념대결로 한국전쟁이 터졌지만
독립운동 할 때 당시에는 자기목숨+가족들목숨까지 다 버리고 언제 올지 모르는 독립을 위해 운동을 했으니 우선적으로 다 대우 해줘야 함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라는 책을 보세요
이분이 누구신지 아슈?
설명해주잖아
안중근 김원봉등은 군인이지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그들은 군인이었고 전시에 상대 수괴를 척살한것이지
오늘날 테러리스트처럼 무작위의 무고한 민간을을 죽임으로서 공포를 심는게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약산 선생의 끝은 참... 그렇게 죽이고 싶은 친일파 경찰에게 수모를 당하시고 몇 날 몇 일을 서러움에 우셨다지요... 그렇게 예뻐하시던 막내 동생을 뒤로하고 북으로 가셔서 활동하시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디 한 쪽에서도 제대로된 대우를 못 받으셨고 몇 년 전까지도 북으로 갔다고해서 교과서에도 볼수 없었던 인물...
노덕술에게 잡힌 것은 맞지만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노덕술에게 수모를 당했다는 증명되지 않은 카더라를 퍼트렸다고 합니다. 남조선에서의 로동당 활동이 이제는 쉽지 않겠다 판단되어 어쩔 수 없이 동료들이 많은 북으로 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카더라에 빠지지 마세요.
@@니가춤을잘추는지몰랐 카더라... 카더라라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는지요? 실제 노덕술에게 잡혀 고문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는걸로 알고 있으며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많은 동지를 잃으며 약산 선생도 목숨을 바친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 경찰에 체포되었다... 고문은 둘째 치고서라도 나같아도 화가 날것 같네요.
카더라라는 소리 확실하지 않으면 함부로 안쓰셨으면 좋겠네요
@@니가춤을잘추는지몰랐 근데 님께서 쓰신 여러 글보니 오히려 님께서 카더라 통신을 만들어내시는것 같네요...
@@니가춤을잘추는지몰랐 1. 약산이 잇던 인민공화당은 일절 조선로동당하고 연관 없음 친했던건 사실
2.약산이 북으로 가게 된건 연안파 때문은 맞음 다만 북조선에서도 연안파하고는 크게 통일하진 않음
대한민국의 최고의 영웅
어떻게 올라오는 내용이 하나 같이 빨갱이들 쉴드 치는거 밖에 없냐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