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시성 시안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본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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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7 янв 2025
  •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39년 11월 대장 나월환, 부대장 김동수, 군사조장 박기성, 정치조장 이하유, 선전조장 이해평 등 30여 명의 무정부주의 계열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중경에서 조직되었다. 전지공작대는 결성과정에서 김구의 승인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와는 별도의 독자적 조직체였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결성 직후 이름 그대로 전지공작을 위하여 16명이 먼저 중국군 제10전구 사령부가 있는 서안으로 이동하여 이부가 29호에 자리를 잡았다. 전지공작대는 이곳의 중국군 제34집단군 사령관 호종남과 교섭하여 한국청년훈련반을 설치하였다. 그들은 태항산 남쪽 기슭, 일본군 36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노성ㆍ능천ㆍ초작ㆍ신행 등지에서 초모 공작을 전개하여 47명의 병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초모된 한인청년들은 서안의 한국청년훈련반에 입교하여 훈련을 마친 뒤 전지 공작 대원으로 편입되면서 1940년 말에는 100여 명의 부대로 성장하였다. 이와 같이 전지공작대의 명성이 올라가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의용대는 경쟁적으로 포섭 공작을 벌였다.
    1940년 초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군사특파단을 서안에 파견했으며, 같은 무렵에 조선의용대도 김학무를 서안에 파견하였다. 이에 무정부주의자로 이뤄진 전지공작대는 강소성 상요에 있는 무정부주의자 정화암ㆍ유수인 등과 논의하여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1941년 1월 1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광복군의 제5지대로 편입하였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본부가 사용했던 건물의 원형은 없어지고, 중급인민법원이 들어서 있다가 최근에는 비어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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