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15/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충주빛의숲교회 민준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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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6 фев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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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라는 감정은 인간의 본능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당할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복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자기가 당한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복수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서운 복수심을 아셨습니다. 그렇기에 복수에 대해 한계를 정하셔서 함부로 복수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해보상법’입니다. 38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언뜻보면 이 법은 굉장히 잔인하고 무서운 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법은 남에게 피해를 입힌 정도를 결코 넘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주어진 법입니다.
    그런데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 법의 취지를 무시하고, 내가 당한만큼은 무조건 복수해도 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보복을 정당화(합법화)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법의 진정한 정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곧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법한 4가지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것입니다(39절).
    실제로 오른편 뺨을 맞았다는 것은 상대가 왼손 잡이라면 손바닥으로 맞겠지만, 오른손 잡이에게 손등으로 맞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서 손등으로 남의 뺨을 치는 것은 인격을 2배로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른 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모욕을 당하면 그대로 받으라는 말입니다.
    굳이 뺨 맞는 일까진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말로 모욕을 주고 억울한 소리를 할 때 우리 역시 흥분하고, 화를 내고,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 하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은 왼뺨도 돌려대는 모범을 실제로 보이셨습니다.
    사50:6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벧전2:22-23절,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모욕이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면, 그 모욕을 받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 그들이 우리를 다르게 볼 것입니다. ‘저 사람 속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 무엇이 정말 있구나’
    2.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도 주라는 것입니다(40절).
    여기서 속옷과 겉옷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이며, 자기 몸을 위해 마지막까지 내놓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속옷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겉옷마저도 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자신의 권리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온통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내면에는 바로 인간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죄의 속성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세상과 똑같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세상과 다르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창26장에 보면 이삭이 세 번씩이나 우물을 파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적들이 와서 빼앗자 이삭은 자기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양보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후에 대적들이 이삭을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26:28-29)
    이런 놀라운 고백을 대적들의 입술을 통해서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삭으로 하여금 100배의 축복을 받게 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복이며,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이것입니다.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3.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41절).
    골고다를 오르시던 예수님이 십자가를 더 이상 지고 가실 수가 없자, 로마 군병이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명합니다. 시몬은 무장한 로마 군병의 압력에 아무 말도 못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갔습니다.
    바로 이런 식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리(2km)를 가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가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럴 때 십리(4km)까지도 가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부당한 의무를 강요받을 때가 있습니다.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그래서 억울하고 속이 상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이럴 때 우리가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특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4.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를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42절).
    여기서 ‘구하는 자’란 자기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당연히 아깝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구하는 사람을 모른척 하자니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마음을 깨뜨려 버릴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또 ‘네게 꾸고자 하는 자’도 거절하지 말고 꾸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꾸어줄 때에는 받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그것을 받음으로 더 악해질 가능성이 분명하다면, 그것은 주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내가 잠시 맡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데, 우리 옆에서 가난한 사람이 울고 있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소유는 필요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치이고,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태도인 것입니다.
    복수는 사람의 강력한 본성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본성대로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지배하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마저도 똑같이 복수하고 앙갚음하기 시작한다면, 이 세상은 도무지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 자녀와 달라야 합니다.
    롬12:17절,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12:21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벧전3:9절,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우리가 이렇게 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릴 더욱 존귀하게 여겨주시고, 악한 자가 득세하는 이 세상을 반드시 변화시켜 내실 것입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 1

  • @충주빛의숲교회
    @충주빛의숲교회  26 дней назад

    하나님 아버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에게도 복수하고 싶은 분노의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세상은 악을 악으로 대적할 것을 말해도, 우리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소서. 그럴 때 세상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도록, 오직 성경 말씀의 가치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성령님,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