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못 배우는 세종대왕의 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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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8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6

  • @pletos6398
    @pletos6398 2 года назад +1

    1. 명나라에 납작 엎드렸던 건 세종대왕만이 아니다. 조공무역은 그 당시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때부터도 아니, 그 이전부터도 행해졌던 것이고, 그것을 특수한 외교관계라는 이름으로 한국사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그렇다면 명나라에 납작 엎드리지 않고 명나라의 말을 듣지 않고 세종대왕이 주체적으로 그럼 전쟁을 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폐해는 고려 뿐 아니라 조선의 여러 선례에서도 드러난다.
    2. 사민정책의 경우는 태종시절부터 있었던 것이며, 영토에는 국민이 있어야 실제 그 영토가 그 나라에 편입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4군 6진 개척하고 강제로라도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자해까지 하면서 가기 싫어하는 백성들이 4군 6진 지역에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은 영토로서 실효적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더불어 사민정책의 강제성 부분만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 세종은 범죄자가 4군 6진 지역으로 가면 방면해준다던가(그래서 4군 6진 지역 백성에 대한 인식이 안 좋기도 했음) 소작농을 자영농으로 만들어주는 등 여러 유화정책을 병행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성만을 언급하는 건 다분한 의도가 엿보임. 그렇다면 4군 6진 지역에는 가기 싫어하는 백성들 보내지 말고 군사들만 배치했어야 한다는 논리인가?
    3. 부민고소금지법의 초점은 일반 백성의 수령 고발 금지가 아님. 조선의 지방 통치 정책에 불만을 품은 지방 향리(힘있는 토착 세력)들의 악의적 고발 방지를 위한 정책이었음. 그 당시의 힘있는 향리들이 계속 중앙정부에서 내려보낸 수령들을 고소해서 작살을 내놓으니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임. 지방 향리 세력의 억제를 통한 완벽한 중앙집권화를 위한 것이었음. 그러면 지방수령들이 일반 백성들 괴롭히는 건?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관찰사를 두고 포폄, 고과제를 통해 감시하였던 것임. 물론 그것이 조선중, 후기로 넘어가면 폐해가 생기게 되지만 적어도 조선 초기에는 시스템적으로 잘 돌아갔었음. 또한 감찰관(찰방)이라고 암행어사도 틈틈히 내려보내서 수령의 횡포와 부정부패를 감시함.
    4. 이것도 2번과 같은 논리임. 그렇다면 영상 제작자는 조선이 계속 물물교환하며 살았어야 한다는 건가? 시기상조였더라도 우선은 화폐를 제조하여 경제 개혁을 시도하는 건 당연한 거임. 실제로 최초의 화폐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시대 때도 화폐 개혁을 여러 차례 시도함. 그럼 그 시대의 고려 시대 때 화폐를 주조한 임금들도 정책 실패인가? 결과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그것이 악행이라고까지 붙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한국사에서는 세종의 화폐개혁을 오히려 업적 중 하나로 꼽거나 주요 시책 중 하나로 가르치는 것이다.
    5. 물론 황희와 맹사성을 많이 봐준 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황희가 사위의 행위를 숨기는 걸 세종이 방조했다? 오히려 세종은 맹사성까지 도와줘서 조작한 한 장의 상주문을 읽어보는 것만으로 이상하다며 바로 의금부에 직접 조사를 명했다. 이 일로 황희와 맹사성, 그와 관련된 벼슬아치들 전부 곤장 맞고 유배를 갔으며, 원래 서달이 사형이지만 곤장 100대 3천리 유배, 3년 노역으로 끝난 건(그것도 잘 보면 절대 작은 처벌이 아니다) 서달이 '독자'였기 때문이다. 이후 황희의 아들들이 공금횡령 관련해서 처벌을 받는 내용도 있다. 문제라면 청백리라는 황희의 이면인 것이지, 그것마저 세종의 악행(? 그게 그리고 악행이라고 불릴 정도의 일인가?)? 황희 사위 에피소드에서 비판 받을 건 황희지. 세종은 의금부까지 동원해서 조사를 지시했었다. 또한 맹사성의 뇌물을 봐줬다? 물론 주변에서는 사형에 처하자고 했는데, 유배로 감형을 한 건 있다.(그것도 2년 후에는 형을 면해주었지만) 하지만 분명 처벌을 하긴 했다.
    6. 이걸로 세종을 까는 사람들이 많은데, 악행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정책은 고려 충렬왕 시기의 '일천즉천'이라고 해서 부모 중 한 쪽이 천인이면 자식도 천인이 되는 제도임. 이걸 악용해서 여자 노비로 양인 남성을 꼬시거나 하는 방법으로 천인의 수를 불법적으로 늘리니, 그래서 태종이 노비종부법을 시행함. 그러자 시간이 흘러 여자 노비들은 자기 자식을 노비로 만들기 싫으니 임신하면 양반 남자나 양인 남성을 꼬셔서 관계를 맺는 등 천륜을 어기는 일들이 발생함. 그래서 당시 맹사성과 허조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어미는 자식이 누군지 아니 노비종모법을 시행하는데, 이걸 통해 노비가 늘었다는 사료적 증거가 없음. 더불어 세종은 노비종모법과 함께 양천교혼(양인과 천인의 교혼)을 금지시켜서 노비 수를 증가하지 않도록 함. 오히려 성종 시기에 '일천즉천'으로 돌아가면서 노비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늘어남. 그래서 오히려 영조 시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비종모법으로 돌아가며, 당시 정말 좋은 법이라고 영조의 업적으로 거론될 정도임. 그런데 세종의 노비종모법만 비판을 하는 이유는 뭐임?
    그래, 조회수 좋고, 구독자 늘리고 싶은 것도 다 알겠는데, 진짜 양심적으로 세종은 건들지 말자. 그리고 역사 공부도 더 하고. 영상 만들 때, 좀 더 조사하고 고민하면서. 솔직히 세종대왕님 굳이 안 까도 조회수 늘리거나 구독자 늘릴 수 있잖아. 적어도 역사 관련 영상을 만들 때는 그 영상의 파급력까지 생각해야지.
    ruclips.net/video/PmlHyYD9ZxI/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kgVO41XdCyE/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eyZ3lEzVwUs/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5MoA_s_rPVM/видео.html

    • @korea_history
      @korea_history  2 года назад

      선생님 말씀중에 아는 내용도 있고 몰랐던 내용들도 있습니다. 높으신 지식의 공유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왕이나 어느 대통령이나 정책을 시행하는것엔 명분이 따릅니다. 물론 명분은 좋은 뜻만 보여지지요. 최근으로 봐도 전두환 노태우등 군사정권시절에도 명분은 확실하지만 국민들은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분들이 세종대왕이 시행했던 제도와 정책에 긍정적인 부분들만을 보시는거 같아 당시의 백성들이 힘들고 죽어나갔던 부분에 대해 초점을 맞춰서 영상을 만들어 본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도 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 말이 틀린것도 아닙니다. 좋은면이 있으면 이면에는 안좋은면도 있을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그 어떠한 왕이나 대통령도 확실하고 긍정적인 명분을 갖고 시행하는 정책이기에 백성들이 국민들이 당장 힘들고 희생당해도 아무도 비판할수없을겁니다. 한가지 부분만 보지 말아주세요. 아마 선생님이 선생님의 가족이 저런 정책으로 희생되었다면 지금처럼 선생님은 말씀하실수없을겁니다.

    • @korea_history
      @korea_history  2 года назад

      대부분의 국민들이 선생님과 같은 생각일꺼고 저를 욕할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너무 좋은 양질의 글을 써주셔서 고정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잘보겠습니
      @감사합니다잘보겠습니 Год назад

      세종, 이순신 -> 미화된 영웅

  • @오승혁-x6j
    @오승혁-x6j 2 года назад +1

    어쩔라고 악행보다 선행이 많다 요놈아!!!

    • @korea_history
      @korea_history  2 года назад

      학교에선 잘한것만 보여주니깐.. 못한것도 알려줘야죠.. 예를들어 범죄자가 기부 많이 하고 착한일을 더 많이했다고 착한사람인건 아니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