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축(목장, 삶공부, 예배)과 네 기둥(성경적 교회존재목적, 성경적인 제자양성방법, 성경적인 사역분담, 성경적인 리더십)을 눈에 보이도록(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집에서 모이는 교회(목장),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공부(삶공부),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충만하고, 성령님의 만지심과 긍휼과 예수님의 왕되심을 선포하고 순종하고,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세 축의 구조를 가진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 본질 회복을 추구하는 가정교회 운동을 성경의 거대서사를 가지고 실제 신학과 목회현장을 통합하여 섬기고 계신 홍교수님의 섬김에 감사드립니다^^;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는 성령님의 임재와 은혜를 사모합니다~!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데 그런 수준을 가지고 교수직을 그렇게 오래하고 교회라는 모임으로 실험을 하고.. 이젠 가정교회라는 모델을 가지고 정착을 했다는 말이군요. 교수직을 하면서 그 밑에서 배웠다고 배출된 목사들은 홍교수님보다 더 모를텐데... 그리고 그들이 이젠 어엿한 목회자로 대부분의 교회 목사로 자리하고 있을텐데... 맹인이 맹인을 배출한 셈이였군요
가정교회의 문제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라는 외침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지만 가장 완성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움은 사도들로부터 이어지는 복음의 명확성과 능력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것은 역사 속 모든 교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교회를 심기 위해 사도를 통한 이적과 기적이 나타났고 이것이 큰 촉매제가 되어 복음을 많은 사람에게 심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초대교회도 말기로 갈 수록 이적은 사라지고 교회는 더 이상 가정 교회의 모습을 벗어나 조직교회로 변화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이 가장 작은 교회라는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문제는 자구 초대교회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회라고 근거없는 외침을 하며 교회를 가정으로 만들려는 억지 주장입니다. 교회는 조직을 갖추게 되어있었고 이를 위해 성령은 일곱집사를 세우고 목회 사역을 하던 몇은 선교사로 보내기도 하고 그들의 선교 결과를 공의회라는 조직 교회 회의체를 통해 보고 받기도 하고 회의도 하며 교회를 성숙한 모습으로 세워갔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무조건 교제 중심으로만 해석하고 가정이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 교회를 가정으로 만들려는 근거없는 시도들이 성경에서 벗어난 이상한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아름다웠지만 우리의 지향점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한 교회의 원리를 밝히 깨달아 그리스도의 직접적 통치가 임하는 성숙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오오!글을 보니 정말 박식하신분같습니다.그냥 궁금한게 있어서 여쭙습니다.교회에서 흔히 쓰이는 "십자가를 붙들라.십자가 밑에 나아가라."는 문구를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진짜 십자가를 붙들어보기도 하고.십자가 아래서 자보기도했고ㅋ그랬는데요.자주 쓰이는 문구인데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예수안에 거하라"는 문구도 그렇구요.
@@tvmotung2769 기독교의 용어는 대부분은 문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생각은 기독교는 시공간을 초월한 개념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2000년 전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십자가 사건이 2000년전에 일어났지만 오늘 믿을 때 나에게 지금 이순간에 적용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개념은 더 아리송해질 것입니다. 2000년전의 십자가 사건이 오늘 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한눈에 보시기 때문에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사건과 2000년 후에 내가 태어나 예수를 믿을 사건을 한눈에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역사 속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죠 그리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오고 오는 세대 가운데 역사 속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을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성령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적용시키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붙들라, 십자가 밑에 나아가라 라는 말은 이 2000년 전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을 오래 전 나와 상관없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오늘 지금 이순간 믿으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고 오직 예수만 날 살릴 수 있다는 것을 현재적인 의미로 믿고 붙들라는 뜻입니다.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 역시도 그 예수가 지금 이 순간 날 위해 계시기에 나의 모든 노력과 경험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향한 순전한 믿음과 신뢰로 그 분께 기대고 그 분의 품에 안기라는 뜻입니다. 신학적 용어로는 '연합'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날 다스리시고 예수님만 내 모든 결정과 선호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tvmotung2769 오 안쓰러운 성도여 주님께서 은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의지할 필요 자체를 못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가 고프면 냉장고나 배달 어플을 의지합니다. 나의 배고픔을 채워줄 것을 찾는 것이죠. 우리는 가난하면 돈 나올 구멍이나 나에게 돈을 줄 회사나 돈많은 누군가를 의지합니다. 우리가 피곤하면 소파나 편한 침대를 의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죽음 앞에 서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요? 실제로 위에서 말한 모든 갈망이 실제로는 저런 모든 것으로 채운다 할지라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급함이라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구를 의지할 수 있습니까?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온갖 광대 같은 짓을 해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들 역시도 나에게 뭔가를 얻기 위해 나를 원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진정으로 나를 품어주고 사랑할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모든 것보다 무엇보다 내가 사실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져 영원히 불에 타 고통받아야 하는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면 그 때 나는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어떻게 예수를 의지할 것인가? 예수가 의지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얼마나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또 내가 얼마나 예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는 무엇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죽고 싶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저에게 예수님은 살아야 할 이유가 되셨고 살아갈 수 있는 기쁨이 되셨습니다. 빈 손이 아니라면 그 손으로는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홍인규 교수님!! 교수님통해 배움을 가질수 있게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은퇴 후에도 자신의 앎을 나누시는 교수님의 노고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더 듣고 싶네요!
아멘! 교수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홍교수님 여기 나오셨네요. 감사합니다.
가정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 교회 현장에서 직접 가정교회 사역을 하고 계신 분의 경험담을 들으니 실감이 되고 감동이 됩니다.
세 축(목장, 삶공부, 예배)과 네 기둥(성경적 교회존재목적, 성경적인 제자양성방법, 성경적인 사역분담, 성경적인 리더십)을 눈에 보이도록(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집에서 모이는 교회(목장),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공부(삶공부),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충만하고, 성령님의 만지심과 긍휼과 예수님의 왕되심을 선포하고 순종하고,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세 축의 구조를 가진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 본질 회복을 추구하는 가정교회 운동을
성경의 거대서사를 가지고 실제 신학과 목회현장을 통합하여 섬기고 계신
홍교수님의 섬김에 감사드립니다^^;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는 성령님의 임재와 은혜를 사모합니다~!
평신도가바라는교회;예수그리스도의복음을가지고 성령으로깨어기도하며 주님사랑하심을나타내는자 영혼구원에전심할수있는목사님이교회에세워저야 주님의몸된교회가세워집니다. 계2장3장. 목회자가어떠한지가엄청중요하다믿습니다.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데 그런 수준을 가지고 교수직을 그렇게 오래하고 교회라는 모임으로 실험을 하고.. 이젠 가정교회라는 모델을 가지고 정착을 했다는 말이군요. 교수직을 하면서 그 밑에서 배웠다고 배출된 목사들은 홍교수님보다 더 모를텐데... 그리고 그들이 이젠 어엿한 목회자로 대부분의 교회 목사로 자리하고 있을텐데... 맹인이 맹인을 배출한 셈이였군요
가정교회의 문제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라는 외침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지만 가장 완성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움은 사도들로부터 이어지는 복음의 명확성과 능력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것은 역사 속 모든 교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교회를 심기 위해 사도를 통한 이적과 기적이 나타났고 이것이 큰 촉매제가 되어 복음을 많은 사람에게 심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초대교회도 말기로 갈 수록 이적은 사라지고 교회는 더 이상 가정 교회의 모습을 벗어나
조직교회로 변화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이 가장 작은 교회라는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문제는 자구 초대교회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회라고 근거없는 외침을 하며
교회를 가정으로 만들려는 억지 주장입니다.
교회는 조직을 갖추게 되어있었고
이를 위해 성령은 일곱집사를 세우고
목회 사역을 하던 몇은 선교사로 보내기도 하고
그들의 선교 결과를 공의회라는 조직 교회 회의체를 통해
보고 받기도 하고 회의도 하며 교회를 성숙한 모습으로 세워갔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무조건 교제 중심으로만 해석하고
가정이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 교회를 가정으로 만들려는
근거없는 시도들이 성경에서 벗어난 이상한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아름다웠지만 우리의 지향점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한 교회의 원리를 밝히 깨달아 그리스도의 직접적 통치가 임하는
성숙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오오!글을 보니 정말 박식하신분같습니다.그냥 궁금한게 있어서 여쭙습니다.교회에서 흔히 쓰이는 "십자가를 붙들라.십자가 밑에 나아가라."는 문구를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진짜 십자가를 붙들어보기도 하고.십자가 아래서 자보기도했고ㅋ그랬는데요.자주 쓰이는 문구인데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예수안에 거하라"는 문구도 그렇구요.
@@tvmotung2769 기독교의 용어는 대부분은 문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생각은 기독교는 시공간을 초월한 개념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2000년 전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십자가 사건이 2000년전에 일어났지만
오늘 믿을 때 나에게 지금 이순간에 적용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개념은 더 아리송해질 것입니다.
2000년전의 십자가 사건이 오늘 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한눈에 보시기 때문에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사건과
2000년 후에 내가 태어나 예수를 믿을 사건을 한눈에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역사 속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죠
그리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오고 오는 세대 가운데 역사 속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을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성령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적용시키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붙들라, 십자가 밑에 나아가라 라는 말은
이 2000년 전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을 오래 전 나와 상관없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오늘 지금 이순간 믿으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고 오직 예수만 날 살릴 수 있다는 것을
현재적인 의미로 믿고 붙들라는 뜻입니다.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 역시도
그 예수가 지금 이 순간 날 위해 계시기에
나의 모든 노력과 경험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향한 순전한 믿음과 신뢰로
그 분께 기대고 그 분의 품에 안기라는 뜻입니다.
신학적 용어로는 '연합'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날 다스리시고 예수님만 내 모든 결정과 선호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DRHOO-mi5im 답변너무 감사합니다.바보같은 질문하나만 더 드리겠습니다^^;;;쓰신글 말미에 예수님께 기대고 안기고 의지하라 하셨는데...지금 안계시잖아요?(눈에 안보이니까?)실제적으로 편안한 쇼파.은행의 잔고보다도 안락하게 든든하게 안느껴?지는데요.어떻게 기대고 안기고 의지하면 될까요?그냥 믿음으로...계시다니까 계시겠지...하고 계시다고 치고(?) 안기는 느낌으로 의지하는 느낌으로?하는건가요?^^;;;막상 돈이 없어지면 돈많은 지인이 더 의지되니까요...바보같은 질문 죄송합니다.
@@tvmotung2769 오 안쓰러운 성도여 주님께서 은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의지할 필요 자체를 못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가 고프면 냉장고나 배달 어플을 의지합니다. 나의 배고픔을 채워줄 것을 찾는 것이죠.
우리는 가난하면 돈 나올 구멍이나 나에게 돈을 줄 회사나 돈많은 누군가를 의지합니다.
우리가 피곤하면 소파나 편한 침대를 의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죽음 앞에 서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요?
실제로 위에서 말한 모든 갈망이 실제로는 저런 모든 것으로 채운다 할지라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급함이라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구를 의지할 수 있습니까?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온갖 광대 같은 짓을 해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들 역시도 나에게 뭔가를 얻기 위해 나를 원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진정으로 나를 품어주고 사랑할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모든 것보다 무엇보다 내가 사실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져 영원히 불에 타 고통받아야 하는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면 그 때 나는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어떻게 예수를 의지할 것인가? 예수가 의지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얼마나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또 내가 얼마나 예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는
무엇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죽고 싶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저에게 예수님은 살아야 할 이유가 되셨고 살아갈 수 있는 기쁨이 되셨습니다.
빈 손이 아니라면 그 손으로는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tvmotung2769 저도 이게 제일 궁금한데 거의 확실한 답은 못하시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