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건국지는 요서였다"ㅣ대륙백제 건국사 총정리ㅣ여왕소서노ㅣ대한사랑 안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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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2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68

  • @서청산-n4t
    @서청산-n4t 4 месяца назад +21

    당시의 요서, 요동의 정의를 다시 봐야하지 않을까요?

  • @user-pinetree100
    @user-pinetree100 3 месяца назад +4

    감사합니다. 복잡다기한 역사의 실타래를 많은 자료와 분석을 통해 명쾌히 설명해주셔서, 역사 진실의 빛을 만난 느낌입니다. 15년전 중국 난하를 갔었는데, 허물어진 성터, 멀리 갈석산, 특이하게도 백이숙제 사당과 우물, 수양산등 익숙한 지명들이 있었어요.

    • @김용재-p5y
      @김용재-p5y 2 месяца назад

      저도 창리에 있는 갈석산도 올라가 봤는데요...... 최근 청나라 시절 역사를 대거 왜곡하여 하북성에 있는 지명들이 이동한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김기홍 역사퍼즐"을 참고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명 비정이 아주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지린 박사와 윤내현 교수의 지명 비정보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 @sekeilu
    @sekeilu 4 месяца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 @02loveu_G
    @02loveu_G 2 месяца назад +4

    🌿🇰🇷🌿좀더 자세한 북부여사,고구려,백제 건국사를 알았습니다! 공감합니다👏👏💦

  • @jaeikshim9248
    @jaeikshim9248 3 месяца назад +6

    이건 대륙 백제와 반도 백제를 연결하는 아주 의미 있는 연구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4 месяца назад +17

    요동의 기준도 틀렸고 중국 구당서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 왜, 일본을 동이라고 하고 있고 왜를 대만과 하이난 섬쪽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이 뭔 풀 뜯어먹는 소리냐???

  • @김재현-z6r2e
    @김재현-z6r2e 4 месяца назад +16

    요서는 거기가 아님.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месяца назад +6

    1388년 이전의 현재의 만주와 한반도는
    그저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고려의 안전지대.

  • @안영식-k4s
    @안영식-k4s 4 месяца назад +6

    교수님강의 잘들었습니다
    그러데 갈석산과 장성의기점이 지금의 산해관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제생각 으로는 아닌것 같습니다 왜냐면 지금의 산해관은 명나라장성의 기점으로 알고있는데요 갈석과 장성기점은 북경지나서 서남쪽으로 수백리 더 가야 하지 않을까요?

  • @매일터진다
    @매일터진다 4 месяца назад +22

    대륙사관입장에서는 요동은 황하이북지역(산서성
    요산은 태행산맥. 요서는 태행산맥 서쪽지역.

    • @팀킬-w1q
      @팀킬-w1q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요동은 시대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말씀하신 황하 이북 일대가 요동인 때는 전국시대 후기입니다. 이후에 고구려 시대에는 지금의 대릉하, 요하, 난하를 기준으로 동쪽이 요동이었죠. 고구려의 팽창과 위축에 따라 요동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이후 발해 시대에는 지금의 대릉하 동쪽이 요동이었고 그런 인식은 발해가 망하고 고려 시대에도 있었지만 요나라에 의해 지금의 요하 동쪽으로 굳어졌습니다

    • @김용재-p5y
      @김용재-p5y 2 месяца назад

      유튜브에 "김기홍 역사퍼즐"을 참고 바랍니다~ 지명 비정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실 겁니다!

  • @lodinechris
    @lodinechris 4 месяца назад +7

    영토만 '대륙동부=동이본토'였음을 인식하여 제대로 확립하면 더욱 완벽한 강의가 되리라 믿습니다.

    • @lodinechris
      @lodinechris 4 месяца назад

      60갑자와 사서들을 맞춰봄으로써, 백제 실제 건국이 BC31년이라고 본 것, 그래서 "15년만에 궁실을 세웠다."라는 해석을 제대로 해낸 점은 경탄할 만합니다~
      영토는 책보고, 눈이멀었다, 장두구고리사, 이용훈박사 찐삼국사 를 참조해서 바꿔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역사 진실을 향해서~~

  • @davidjeong7675
    @davidjeong7675 23 дня назад +1

    대한사랑은 그나마 식민사관에서 탈피하는데 어느정도 자리잡았지만
    아직 멀었다~ 좀더 공부해서 고구려를 대륙고구려로 빨리 받아들이길 바란다
    은근쓸쩍 고구려를 반쪽역사로만 한정질려고 하는 움직이 보여서 하는말이다

  • @정재성-c1l
    @정재성-c1l 4 месяца назад +7

    부여도 가야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국가개념이 아닌 여러 국가군일 가능성이 큽니다. 단순히 동부여 북부여 이렇게만 나눌것이 아니라 만주 및 요동각지에 여러 부여권 국가들이 존재했슬 것입니다.

  • @오늘도꽝-n1s
    @오늘도꽝-n1s 4 месяца назад +3

    현재 산해관은 명나라때 만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장 답사는 못해봤지만 산해관의 현판 방향이 어딘지가 궁급합니다.

  • @현광장-l1c
    @현광장-l1c 4 месяца назад +4

    부여사(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를 잘 정리해주셨네요~^^

  • @singsket2778
    @singsket2778 4 месяца назад +11

    요동요서의 기준을 왜 난하로 정한건지?
    기록으로보나 지명으로보나
    역사흐름으로보나
    태행산맥에 위치한 요 지역이
    요동,요서의 기준인데
    제발 추정만으로 단정짓지마라

    • @gn.l3762
      @gn.l3762 4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본기 영양왕 23년조에 수나라 양광이 渤碣 즉 발해와 갈석 사이에 고구려군이 모여 遼濊 즉 요동과 예맥의 땅을 차지 하여 왔다, 발해와 갈석산 난하동쪽.ㅡ

    • @무쵸-g5f
      @무쵸-g5f 3 месяца назад

      하남은 한국떵에도 북경옆에도 황하이남에도 있으이 여러 시대적 변천과정의 주변역사등 감안하여 해석하여야 할듯요 유연제노오월. 동이열전도 참조하여 위치를 비동하여야 할듯요

    • @김용재-p5y
      @김용재-p5y 2 месяца назад

      유튜브에 "김기홍 역사퍼즐"을 참고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명 비정에 새로운 세계를 만나실 겁니다~

  • @오마이갇
    @오마이갇 4 месяца назад +4

    평양은 연나라 수도인데..조선시대 북경을 연경이라 했으니 연나라 수도가 북경에 있었고 그곳을 그당시 평양이라 불렀을겁니다.
    또한 연나라 망하고 고구려로 귀화할때 모여산곳이 지금의 평양이라 지금의 평양지명이 된겁니다.

  • @망상대황
    @망상대황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댓글들을 보니 역사관이 바른 분들이 많으시네요. 다행입니다.
    사학자라는 자들이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시민들이 이를 바로 잡고 있는 거꾸로된 상황입니다.
    강단사학자들과 이에 버금가는 민족사학자들의 역사왜곡은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댓글로 요서지역을 바로잡고 계신 시민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김용재-p5y
      @김용재-p5y 2 месяца назад

      유튜브에서 "김기홍 역사퍼즐"을 참고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명 비정에 새로운 세계를 만나실 겁니다.

  • @c.s.m3013
    @c.s.m3013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우리 진짜 역사는 민중들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민족 식민 강단 사학자들이 설수 없는 토양을 만들기위해 민중에게 진짜 역사를 많이 알려야합니다

  • @장현식-b7d
    @장현식-b7d 4 месяца назад +6

    백제초기건국지는화북북경지역에서건국됀걸로아는데

  • @youngman5202
    @youngman5202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요서가 여기다 저기다 하는 것은 모두 추측이지 확실한 팩트는 아니다.
    학자들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니 거기는 아니다라고 콕 집어 말하는 것도 큰 실례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요서는 티벳과 신강이다.
    왜냐하면 요서는 거란의 본거지인데, 거란은 주로 말과 낙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 @이살구-x5m
    @이살구-x5m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송나라이후 요서를 가지고와
    요서라하는데 1000년전 지명은 어디일까요?
    한무제때 번조선 오적이 받은 봉지를 기준으로.해야하지않을까요...

  • @예언자-c9z
    @예언자-c9z 4 месяца назад +4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디랄 발광하는 연넘들이 너무나 많은 암울한 현쉴.

  • @오마이갇
    @오마이갇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서남의 큰바다는 거대호수 발해를 의미하는듯 합니다.
    참고로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김제평야와 김해평야는 바다였습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역사는 해석이 되어야 역사 대한사랑의 한계 종교사학 철령 요동 국경이라고 하면 요동정벌은 어디를 하겠다는 것인가요 아시는분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месяца назад +1

    ~ 공민왕 중반기 까지의 대동강
    大河가 흘러서 同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6600리 ). ~ 대명여지도 초중본까지는 大河, 이후부터 황하로 표기.
    ~ 공민왕 후반기 '우왕대의 大同江
    大江이 흘러서 洞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5500리 ). ~ 대명여지도 중중초본까지는 大江, 이후부터 양자강,장강으로 표기.

  • @정재성-c1l
    @정재성-c1l 8 дней назад

    요서지역의 백제를 일명 대륙백제라고도 부를수 있는데 이 지역 영토는 이미 늦어도 5세기 경 광개토왕 시기에 상실되었슬수밖에 없습니다, 당시에 요서는 이미 고구려와 후연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정황상 백제가 그 지역을 유지한다라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죠.

  • @soluasnaturesongbongkyu2720
    @soluasnaturesongbongkyu2720 4 месяца назад +26

    이강의는 20여년전에 햇다면 대단히 진보적인 역사관인데~~ 현재는 정보도 많고 역사공부한 사람도 많고 요서.요동 태행산맥기준으로 구분하는데~~ 그 당시는 거기가 요동이에요~~ 대한사랑은 이제 역사관을 바꿔야~~ 바꾸지않으면 또다른 역사 기득권이 아닌가 싶네요~~ 강단사학 비판하기전에 자기부터 바꿔야~~

    • @isjoo6501
      @isjoo6501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고사서에 대한 다각적인 고찰없이 몇몇 기사를 확대 해석하여 역사를 보는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히 일부 특정 지명을 가지고 진실이냥 결론 짓고 민족사학을 비판하고 과하게 표현하는 것은 편향된 대륙사과자나 민족사학자들에게 도움이 되지않고 식민사학자 들의 공격의 꼬투리가 됩니다
      사서기록 유물 유적 지명등을 교차 검증하여 비판의 여지를 차단해야 민족사학이든 대륙사학이든 사는길입니다.

    • @김형민-v7j
      @김형민-v7j 3 месяца назад

      책보고 검색 ㄱㄱ

    • @정국봉-h7s
      @정국봉-h7s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학문은 여러 이론들이 치열하게 논쟁하며 발전하는 것이니 서로다른 주장도 존중해줘야

    • @usseusseussewa
      @usseusseussewa 16 дней назад

      무슨 ㅋㅋㅋ

    • @김경우-r1n
      @김경우-r1n 9 дней назад

      그래도 친일사학자나 중국역사관 종속된 사학자보다는 민족성향의
      역사관의 알아줘야할듯요

  • @HagSun-x3x
    @HagSun-x3x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드라마 작가가 어울릴듯 하네요

  • @전하이-u9h
    @전하이-u9h 2 месяца назад

    81 년도에 봉우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ymkk1747
    @ymkk1747 Месяц назад

    요서 요동 위치부터 재확인 하셔야할듯

  • @kb-nd5mf
    @kb-nd5mf 4 месяца назад +2

    고대에서 요동 요서의 기준은 요하가 아닙니다...요주가 중심입니다...요주는 현 중공의 태행산맥입니다..요동은 북결지역입니다...왜 요하룰 기준으로 보는지요?

  • @은나라가고조선
    @은나라가고조선 3 месяца назад

    삼국사기는 1905년 일본동경대삭에서 출간햇다고합니다

  • @휴림-f3n
    @휴림-f3n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저는 구태의 마한이 백제의 중심이라고 봅니다.
    서소노, 온조, 비류가 건국한 십제는 일부이구요....
    그리고 건국연대는 BC296년 이전이라고 생각합니다....

    • @mjK-q5g
      @mjK-q5g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춘주전국 제나라가 딱 산동이고 거거가 백제 아닐까요 그 제나라가 확장한
      나라가 백제

  • @김종준-g1g
    @김종준-g1g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정리 잘하셨어요
    굿 따봉😅

  • @SeonghuanCynn
    @SeonghuanCynn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미추홀은 지금의 인천이란게 억측이다, 그당시 육지를 따라내려가는게 순탄 할것인디, 배를 타고 그 멀리 갔겠나? 해안선을 다라갔더라도 바로 아래가 아닌 우리쪽으로 왔겄남?

  • @hmjeon8609
    @hmjeon8609 4 месяца назад +1

    가능한거 같으네.. 중국에서 고구려 거치지 않고 배를 타고 왔다.. 흉노일족도 배를 타고와 신라 건국.

  • @skysoszzang
    @skysoszzang 4 месяца назад +4

    중국은 한국 문화 역사다 중국은 한국의 소국이다 😂

  • @이진호-i5l
    @이진호-i5l 2 месяца назад

    요서에서 건국된게 합리적 입니다
    그 후 온조에 의해 일부가 미추홀로
    이주한 거로 봐야죠

  • @남성송기준-m5w
    @남성송기준-m5w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연구 다시해보시길

  • @오마이갇
    @오마이갇 4 месяца назад

    황하의 강줄기는 엄청나게 변화무쌍인데...때때로 요로 불리었을지도. 황하나 양자강정도 혹은 산동지방 주변의 습지대 규모큰 산맥 등등은 자연적장애물은 인적 이동을 어렵게 하므로 문화습속을 구별하게 하므로 국경이 될 확률이 높다 봅니다.

  • @EAST2MABBK
    @EAST2MABBK 11 дней назад +1

    요가 어디지도 모르고 영토지도도 엉망이네요.
    요는 태행산맥입니다.
    황가 ㄴ자로 꺽인곳의 북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맥이 요이고 태행산맥입니다.
    출처ㅡ 1000년전비석지도 우적도 , 대청광여도 , 1927년 1949년 중공공산당지도, 1964년 대만군사지도 ㅡ
    이 요를 적용해서 사서를 해석하면 이해가 잘 됩니다ㅡ

  • @소계-x7p
    @소계-x7p 3 месяца назад

    요서지역이 어디냐 하는 것은 본 동영상에서 말하는 핵심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요동과 요서는 기준이 요하인데 요하가 시대에 따라서 변천이 있었기 때문에 요서라는 말에 매달리기 보다는 백제가 처음 건국된 지역이 지금 하북성 난하유역이라는 것이 중요한 메세지라고 생각됩니다.

  • @cry185ininin
    @cry185ininin 3 месяца назад

    반도백제는 왕성이 아니고 담로 ,백제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대륙에 있었습니다. 대한사랑이 재야사학으로서 존치하려면 북경과 요서요동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더불어 한반도를 어떻게든 끌어다가 연결 지으려는 모호한 사관에서 벗어 나야 할것입니다.
    한반도는 이방원이 천도하던 때에 비로소 지명이 확정되고 본격 개발이 시작된 곳입니다.

  • @임진영-m3o
    @임진영-m3o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침략 왜구에 간교하게 감춰진 우리 역사를 하루 빨리 정상적으로 복워되야 합니다. 강추드립니다.

  • @문창훈-w5e
    @문창훈-w5e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북쪽에말갈 동쪽에 낙랑이 있고
    목책을 세우니
    낙랑태수가 항의하여
    천도하였다

  • @뉴밧데리
    @뉴밧데리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요서는 태행산맥 서쪽

  • @sunghunkim333
    @sunghunkim333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반도 약간 넘는 수준 좀 벗어나시오
    대륙 동부로 좀 갑시다

  • @lodinechris
    @lodinechris 4 месяца назад

    "15년만에 궁실을 세웠다."
    이것은 BC31년(경인) 소서노가 백제를 세우고, 13년째인 BC19년(임인) 이주를 하고 세운 백제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봐야 맞다. 그러므로 BC18년(온조1) 도읍을 하남 위례로 옮긴 것이고, BC17년(온조2) 궁실을 세운 것이다.

  • @오마이갇
    @오마이갇 4 месяца назад

    帶(대)라는 한자가 허리띠의 뜻이므로 대방이라함은 허리띠모양의 땅으로 생각되는데....태산 북쪽 황하하류 일대가 거대한 호수가 있었던거로 압니다.
    그 호수 주변의 지대가 남과 서로는 산악에 막히고 동으로는 창해(서해)로 막히니 땅의 모양이 허리띠 모양이 되었을것이고....호수가 말라가면서 새로생긴 토지에는 거주인이 없었을것이므로
    주인없는 땅이 되었을 것이므로 선점하기에 좋을것입니다. 그 호수의 이름이 발해라고 하는듯....

  • @sekeilu
    @sekeilu 3 месяца назад

    가설이 정설로 될려면 기록과 유적이 뒷바침 되어야 한다. 기록은 그렇다 치고 유적 발굴은?

  • @이은석-n9d
    @이은석-n9d 2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왜 중국이 백제를 동북공정에 넣을까

  • @lodinechris
    @lodinechris 4 месяца назад

    고주몽도, 소서노도 생몰 BC79년~BC19 (60세 사망)로 똑같음.. BC19년(임인년) 죽음..
    재위는 BC58~BC19..

  • @jgh-r9s
    @jgh-r9s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백 제 성이중국에있으니 거기도한국 :,

  • @기섭김-y9g
    @기섭김-y9g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드라마 예기듣는거같아
    대학교수박사님한테 ~거참

  • @정국봉-h7s
    @정국봉-h7s 2 месяца назад

    졸본부여(고두막한) = 동명국 = 북부여 = 고구려(고주몽)

  • @단기4357-l8f
    @단기4357-l8f 4 месяца назад

    🙌🙌🙌🙌🙌

  • @문창훈-w5e
    @문창훈-w5e 4 месяца назад

    삼국사기
    온조13년에 요서에서 천도했다고
    기록되었다
    온조13년까지 기록은 소서노치세 기간을
    온조 치세기간으로
    편입했다고 본다

    • @gn.l3762
      @gn.l3762 4 месяца назад

      정반대 입니다.ㅡ 기원전 6년에 비류국의 비류가 일찍 죽고 소서노 마져 죽자 그 신민들이 백제를 기원전 18년 건국한 온조를 漢山 위례성에서 요서의 漢城으로 모셔가면서 요서백제가 시작된겁니다. 소서노의 비류국부터 치면 서기전 31년이 맞고요.

  • @인정하고좀배우자
    @인정하고좀배우자 3 месяца назад

    나는 왜 요즘 이런사람들이 많아지는지 모르겟다 중국에서 책봉받고 제후로 잇다가 싸움에서 밀려 한반도에 도망와 건국햇다는 예기잔아 이러다가 마지막에 신라 백제 다 중국사람들이 와서 건국햇다는 예기 아닌가 아니면 먼저 밑바닥 깔아놓고 미국과 중국이 전쟁하기를 기다리겟다가 주서먹으려고 하는것인가 참이상하네

  • @해달별아리랑OSBA
    @해달별아리랑OSBA 4 месяца назад

    같은 견해입니다~~~~~~~~~~~~~~~!!!!!!!!!!!!!!!

  • @goindol-eu1yo
    @goindol-eu1yo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요서는 그곳이 아닙니다. 요의 위치가 산서성에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 @삶바른
    @삶바른 3 месяца назад

    2:10 북부여

  • @eileenchang749
    @eileenchang749 4 месяца назад +5

    역사학자라는 탈만쓰면 함부로 떠들고 너도나도 엉뚱한 고대사를 만들어 떠드니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과거부터 정립한 역사를 존중하고 만일 새로운 증거가 나왓으면 역사확회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저 혼자들 잘났다고 떠드니 한심하다.

    • @성승렬-d7v
      @성승렬-d7v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일본 학자가 확립하고 그 추종 답습 학자가 가르킨
      후학들이 아직도 일제의
      행패를 답습하고 있어요.
      새로운 것을 받아 드리기 보다는 왕따를 시키는 학회
      우물안에서 벗어나면 학위를 주지 않으니 벗어나려하지 않음

  • @anjel7588
    @anjel7588 4 месяца назад

    이건 아닌거잖아요
    일본 왕실이 백제 후손이잖아요
    빌드업하지말아요

  • @ironman6071
    @ironman6071 4 месяца назад +1

    태행산맥 동쪽 동평호옆이 미추홀인것도 모르는 한심한 역사학자들

    • @김용재-p5y
      @김용재-p5y 2 месяца назад

      동평호 주소좀 알려주세요~

  • @sekeilu
    @sekeilu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삼국사기를 비판 할려면 그 근거를 제시하고 비판해야 옳습니다. 근거 없이 김부식이 사대주의자 라는 프레임을 씌어 삼국사기를 부정하는 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 @JeongGwangHee310
    @JeongGwangHee310 4 месяца назад +2

    고대의 요동은 현대의 요동과 달리 난하를 기점으로 요동과 요서로 나뉜걸로 알고있습니다만…

    • @김용재-p5y
      @김용재-p5y 2 месяца назад

      유튜브에서 "김기홍 역사퍼즐"을 참고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명 비정에 새로운 세계를 만나실 겁니다.

  • @성승렬-d7v
    @성승렬-d7v 4 месяца назад

    황하의 남쪽 하남

  • @hanhan4980
    @hanhan4980 4 месяца назад

    한국인은 알제를 좋아해서 역서도 일제를 쓴다

  • @최강수-z3x
    @최강수-z3x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역사왜곡의 선구자로구나 고구려 시조는 고주몽이고 당신이 말하듯 졸곤부여에서 왕위를 이었다 하더라도 새로 고구려를 건국 하였다는것은 국호변경으로 건국자가 되는게 아니던가 우리 역사학자 모두 개같은 사관을 가지고 있다

  • @하웅박-i4o
    @하웅박-i4o 4 месяца назад

    요서가 현 요하의 서쪽으로 지도를 그렸네,
    아니지 만리장성과 갈석산이 있는 강이 그때의 요하라고요.
    기왕이면 제대로좀 해보세요

  • @jgh-r9s
    @jgh-r9s 4 месяца назад +4

    왜정신나간사람이많나

  • @문성철-r4g
    @문성철-r4g 4 месяца назад

    유리가 동부여에서 졸본부여로 온것을 bc20년경 으로 보더라도 그 10여년전에 소서노가 딴살림을 차렸다고 ?
    수긍이 안간다.

  • @정재성-c1l
    @정재성-c1l 4 месяца назад

    주몽 소서노 비류 온조 이들 가정관계는 전부 후대에 각색한 소설일뿐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백제역시 고구려왕실과 마찬가지로 부여계라는 공통점이 있서서 서로간의 경쟁의식에서 후대에 각색된 소설이라고 봅니다.

    • @mooyook2
      @mooyook2 4 месяца назад

      저도 과거 역사에서 실질적인 증거유물이 없는 고구려,백제 형제에 대한 것은 후대에 각색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 @안병우-y3i
      @안병우-y3i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지요?

  • @박명식-h8l
    @박명식-h8l 3 месяца назад

    어케 역사학자마다 위치가 다틀리냐 이러니 학생들은 누구말을 믿어야 할지 참 답답하네

  • @오마이갇
    @오마이갇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런데 국뽕을 하기에 앞서 우리를 살펴야 합니다.
    한강유역의 지명이 왜 죄다 한나라 한자 일가요? 한강 한양 한산 북한산 남한산성 등등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인데....신체특징상으로 장비는 왜인입니다. 관우는 키크고 잘생겼다하니 동이족 혹은 한반도인으로 생각되는데...
    한나라가 다민족국가였다라고 생각되게 하지요. 그러하면 한나라 건국초기에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어려웠을것이고...이를 해결하기위해서 기존의 한자를 정비해서 소통했을것인데
    이것이 문자로써의 소통으로 그친게 아니고 언어영역까지 잠식해서 아예 통용언어로 정착하니 그말은 그냥 한자를 읽는것에 불과하고 한자만으로 소통이 불편하니 성조가 발달하고..
    이것이 전승되서 현재의 중국말이 되었다고 보는바...즉 중국어는 뿌리가 없는 언어다...이말인데.....
    한강유역의 언어는 지방사투리에 없는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는바 만약 한나라의 코어세력이 은거하다가 한강유역으로 복귀했다라고 보면...그들이 만약 중국어를 했었다면
    중국어가 남아있거나 한국말에 동화됬다면 사투리를 할것인데 모두 아니니 그들은 중국에 살면서도 한국말을 했다라고 볼수 있고.
    한강유역의 지명으로 추론하건데 원래 한강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세력이 중국으로 이주해서 세력규합해서 한나라를 세웠다고 추론할수 있습니다.

    • @김종현-u1x
      @김종현-u1x 3 месяца назад

      삼국지는 나관중이 쓴 소설입니다.그걸 역사라고 하는건 아니지요

  • @서병인-h9h
    @서병인-h9h 4 месяца назад

    식민사학을 강의하시네요.

  • @good5402
    @good5402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걸 볼때마다. 서해는 바다가 아니고 육지가 아니었을까,..아니면 나룻배 타고 건널수 있는 한강 정도였거나,
    백제가 중국대륙에 있었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은데 지리적으로 바다가 가로막고 있단 말이지,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 @isjoo6501
      @isjoo6501 4 месяца назад +1

      2만년전 고래를 사냥하는건 어떻게 설명할건지
      발해만에서 등주 또는 대련 앞바다를 거쳐 압록강코스 대동강코스 경기만 코스등
      풍량이 그리 심하지 않는 연안항로라 바다를 건너는건 그리 어려운건 아니다
      조선시대에 물고기 강치를 잡으러 경상도에서 울릉도 독도도까지 가는데
      잔잔한 바다인 발해 황해는 내해나 마찬가지

    • @늘푸름-d8b
      @늘푸름-d8b 4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가 중국대륙에 있었다는 증거는 사이비 역사가 들이 하는 괘변이며 조작해낸 상상 소설 일 뿐입니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 동쪽으로는 높은 산을 의지하였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벌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막혀 있습니다
      =東據髙岳, 南望沃澤, 西阻大海,
      마침내 강역을 구획하여 정하였다. 북쪽으로는 패하(浿河)에 이르고, 남쪽은 웅천(熊川)을 경계로 삼으며,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닿고, 동쪽으로는 주양(走壤)에 이르렀다.
      =遂畫定疆埸. 北至浿河, 南限熊川, 西窮大海, 東極走壤.
      *주(周)서-이역열전-백제 그 땅의 경계는 동쪽으로 新羅에 닿고 북쪽으로 高句麗와 인접하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모두 큰 바다로 경계 지어져 있다.
      =其地界東極新羅, 北接高句麗, 西南俱限大海
      *북사-열전-백제 동쪽으로는 新羅에 닿고 북쪽으로는 高句麗와 접한다. 서남쪽으로는 모두 大海로 경계지어져 있고
      小海의 남쪽에 위치하는데, 동서의 거리는 450리이며 남북의 거리는 900여리이다
      =其國東極新羅, 北接高句麗校勘 北接高句麗  西南俱限大海, 處小海南, 東西四百五十里, 南北九百餘里.
      대륙에 서쪽이 큰바다 인 곳 없습니다. 대륙에 백제가 있다는 소리는 거짓 말이죠
      위 사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한반도 공주,부여에 백제의 유물,유적이 물적 증거로 존재 합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대륙 존재설은 우리의 역사를 대륙중국땅의 역사로 만들어 중국에 가져다 받치는 짓 입니다.

    • @늘푸름-d8b
      @늘푸름-d8b 4 месяца назад

      @@isjoo6501 2만년 전에는 국가,나라 라고 하는 것 이 존재 하지도 않았습니다.

    • @soluasnaturesongbongkyu2720
      @soluasnaturesongbongkyu2720 4 месяца назад

      ​@@isjoo6501😂

    • @isjoo6501
      @isjoo6501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늘푸름-d8b석기 시대에도 웬만한 바다는 건너거나 고래를 잡을수 있을만큼 항해술과 선박기술이 있었다는 이야기지 아를 어라고 하니 ㅠ

  • @usseusseussewa
    @usseusseussewa 16 дней назад

    태백일사 ㅋㅋㅋㅋ

  • @jumun11
    @jumun11 4 месяца назад

    내족보 내역사를 기준으로 가르쳐라ㅡ허구헌날 25사ㆍ뙷놈들 족보로 그만 가르쳐라

  • @이상학-f2d
    @이상학-f2d 3 месяца назад

    요서가 거기 아님 헛다리 짚지마시고요

  • @user-koreahisto
    @user-koreahisto 4 месяца назад

    요서지역이 틀렸읍니다
    그만두시죠

  • @5lofbread2fishes81
    @5lofbread2fishes81 3 месяца назад

    미추홀이 인천인가? 헛소리~

  • @lyongduc9361
    @lyongduc9361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엉터리임 고구려는 의무려산 서쪽에 백재는 산동성하단에서 건국되엇습니다 부여 북부여를 모두 만주북부로비정하는데 아니고 지금내몽골자치지역 대흥안령서쪽입니다

  • @그굴구글
    @그굴구글 4 месяца назад

    뭐래는겨

  • @박경원-s1u2u
    @박경원-s1u2u 4 месяца назад

    사기꾼들

  • @천지인-j6d
    @천지인-j6d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게 교수인가? 욕 나오내요 백제 건국초 요서가 어디인가 요 는 거란족이세운 나라고 지역중심강이 요하이고 그 전에는 더 다를거고 강릉이 강원도 중국에도 강릉이 있으면 이곳이 중국땅인가

  • @bsk990
    @bsk990 2 месяца назад

    아즈텍도 다 우리민족이죠

  • @gyounghyunbae7122
    @gyounghyunbae7122 3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는 산동반도에 건국. 산동반도는 뽈쏙 서울 쪽으로 뻣쳐있고, 원래 제나라가 있던 땅. 제나라 땅 전체를 의미하는 온-제, 즉 백제.

  • @이슬처럼-b6w
    @이슬처럼-b6w 2 месяца назад

    지리 공부좀 하세요.

  • @kim-ik7re
    @kim-ik7re 4 месяца назад

    바뀐,조작된 근세역사를 복원하지 않으면 고대역사는 소설에 불과할 뿐이다~~
    고대어와 문자부터 공부하고 역사 강의 하시라~~

  • @블루오션-r4j
    @블루오션-r4j 3 месяца назад

    안병우님의 강의를 보고...불편한 표현이 있어서 댓글을 올립니다...병우님은 학문을 하시는 분이 표현이 좀 거칠군요...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을 문제가 많다는 주장, 사대주의자이다....는 표현 병우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인 것 같은 데...그렇다면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부정하는 학설인데...그렇다면 기존 역사교육에서 삼국사기를 학교에서 가르치면 안되겠네요...정말 그런가요??
    본인의 학설이 "백세 건국지는 요셔였다"는 학설은 옳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틀렸다는 그런 말인가요?
    학문을 다루시는 분의 태도로는 옳지 않는 태도입니다....

  • @jin1191
    @jin1191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지맘대로 해석하고 소설쓰네

  • @오마이갇
    @오마이갇 4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가 요서를 차지하고 요동을 고구려가 차지했으면 요는 누가차지했을까요? 요는 차지할수 없는땅....즉 거대 호수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수상민족의 거주지에요.
    그래서 충청을 호서라 하고 전라지방을 호남이라 하는듯.

    • @안병우-y3i
      @안병우-y3i 4 месяца назад

      요는 땅이 아니고 요수 또는 요하라고 하는 강입니다. 그 강을 기준으로 요서 요동 하는 식으로 구분하는데 문제는 요하라는 강이 시대에 따라서 약간씩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요동과 요서의 지리가지고 갑론을박을 하는데 결론적으로 약간씩의 변동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 @jkim949
    @jkim949 4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왕가들은 중국계인들인데 뭘 그리 좋아하는지...

  • @월여상
    @월여상 4 месяца назад

    왜 자꾸 우리 한반도의 한민족을 중국인으로 몰아가는 자들이 설치는지 모르겄다. 공자학원에서 돈뭇나?

  • @이병환-u9h
    @이병환-u9h 4 месяца назад

    어리석은 강의네요. 요서라면 바로 황하의 서쪽을 의미합니다. 산서성 맞은 편이지요.

  • @안병우-y3i
    @안병우-y3i 4 месяца назад

    태행산맥은 태항산맥이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태항산맥은 중원대륙의 내부를 동서로 가르는 큰 산맥으로 동쪽은 평원지대이고 서쪽은 산악지형으로 매우 험준합니다. 태항산맥의 서쪽은 산이 많아서 가기에도 매우 어렵고 사람살 곳이 못되는 곳인데 그중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 바로 장안지역입니다. 주나라가 태동한 빈기의 땅이 그곳이며, 천하의 중심이라고 하화족이 주장하는 낙양이 있는 곳이고, 유비의 촉나라가 있는 곳입니다. 하화족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고, 하화족은 주나라 이후 끊임없이 동쪽으로 진출하려고 투쟁한 것이 하화족의 역사이죠. 그런 척박한 곳이 어째서 요서라는 것인지 어디에 그런 게 나오는지 제발 좀 알려주세요. 유튜브에 엉뚱한 주장을 하는 채널이 많은데 그런 곳에서 주장하는 근거없는 이야기에 현혹되시면 안됩니다. 역사를 바르게 보셔야 합니다. 요동과 요서는 시대에 따라 약간씩 위치가 달라지는 면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요하를 그 기준으로 봅니다. 요하가 어디냐를 두고 약간씩 견해가 시대에 따라 다른 것은 있지만 대부분의 사서에 나오는 것을 종합하면 지금의 난하가 있는 대륙의 동북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 @레오의꿈
    @레오의꿈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백제 건국지가 대륙이고 한반도는 백제가 없었다
    고구려 밑에 백제고 백제 남쪽에 신라다
    참고로 래이가 백제고 래이는 산동반도에 있었다
    한반도에선 백제의 정동에 신라있고 대륙에선 남쪽이다 어떤게 이야기가 되냐? 제 사서에는 백제남쪽에 신라로 기록되있다 알간!!

  • @davidyoo5466
    @davidyoo5466 3 месяца назад

    한국인이 착각하는 것.... 2500년 전에도 왕조나 나라 개념을 구획된 영토국가로 생각 한다는 것임...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도시들의 집합인 세력권 국가였음 ... 따라서 서해를 사이에 두고 만주 요동 요서 산동 한만도에 거점형태로 살아가는 모습이 고구려 신라 백제 부여 등등의 세력권이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