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스위스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여행, 화폐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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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9 дек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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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1. 개요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내륙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키르기스어 및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수도는 비슈케크이다.
    키르기스인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한다.
    한때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이었다가 1991년에 독립하였다.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과 접경하고 있으며,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어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부르기도 한다.
    1936년에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이 되었으며, 1991년 8월 독립을 선언하고 12월 CIS(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2005년까지는 혁명과 내전으로 정국 불안이 이어졌다.
    톈산산맥에 있는 산악 지역의 국가로서 기후는 매우 건조한 편이다.
    주민은 키르기스인이 약 70%, 우즈베크인이 약 15%, 러시아인이 약 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종교는 이슬람이며 의무교육은 9년이다.
    산지의 목초지가 많기 때문에 양의 이목(移牧)을 행하고 있다.
    호밀, 밀, 사탕무, 담배, 과수재배 등의 농업과, 석탄, 석유, 천연가스, 석회석, 우라늄, 목재, 제분업, 제당업, 유황, 수은 등의 공업이 있다.
    언어 : 키르기스어, 러시아어
    화폐단위 : 키르기스스탄 솜(KGS)
    면적 : 1,999만 5천 ㏊
    인구 : 약 700만 명
    기후 : 키르기스스탄은 내륙 국가이기 때문에 대륙성기후를 보인다. 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은 비교적 덜 추운 편이나, 수도 비슈케크가 위치하는 북부는 기후가 춥고 건조하다. 해발 고도에 따라 연평균 기온이 큰 변화를 나타낸다. 북부지역의 평균 해발고도 약 800m 정도에 위치한 수도 비슈케크는 연평균 기온 약 10℃를 나타낸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고지대의 경우 극지방에서 주로 나타나는 툰드라기후부터 빙설기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종교 : 이슬람교 약 80%, 러시아정교 약 15%, 개신교 등 기타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2. 주요 도시
    가. 비슈케크(Bishkek)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이자 중심 도시로 키르기스스탄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정치, 경제, 과학 및 문화 중심지이자 카자흐스탄, 러시아로 향하는 물류 허브이다.
    비슈케크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로, 특별행정구역이자 키르기스스탄의 경제적, 지리적 중요성을 지닌 도시이다.
    북쪽 키르기스산맥의 산기슭 해발고도 700~900m에 위치하며, 카자흐스탄과의 국경에서 약 25km 떨어져 있다.
    남쪽에는 알라메딘강(Alamedin river)과 알라-아르차강(Ala-Archa river)이, 북쪽에는 추강이 흐른다.
    예부터 키르기스족은 정주문화가 아닌 유목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도시의 역사가 길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19세기 군사기지로 활용되었던 기록에서부터 현재까지 약 300년의 역사만을 지니고 있다.
    비슈케크에는 키르기스스탄 인구 약 6분의 1인 1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민족 구성은 키르기스족(약 75%), 러시아인(약 15%), 위구르인(약 1.5%), 우즈베크족(약1%), 고려인(약 1%), 타타르족(약 1%), 카자흐족(약 1%)로 구성되어 있다.
    비슈케크는 키르기스스탄 교육 중심도시로, 수많은 지방에서 교육을 위해 청년들이 이주하며,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지방 도시를 벗어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도로 인구가 집중되는 등 꾸준히 인구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 증가는 분지 지형으로 형성된 비슈케크의 심각한 공해와 차량 증가로 인한 교통체증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
    비슈케크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다양한 지역 사람들과 외국인 근로자 및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으로, 다채로운 문화를 통해 다민족 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시이다.
    나. 오쉬(Osh)
    키르기스스탄 오쉬 주(州)의 주도(州都)이다.
    파미르 산계의 알타이 산맥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아크부라강이 페르가나 분지로 나오는 출구에 있으며, 안디잔에서 오는 철도 지선의 종점이다.
    또 파미르고원으로 가는 자동차 도로의 시발점이기도하다.
    9세기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인도와 중국으로 통하는 교역로로서 번영하였다.
    견직물, 면직물, 전기기구, 피혁, 식품가공 등의 다양한 공업이 이루어지고, 교육대학, 종합기술전문학교 등이 있다.
    시의 서부에 ‘솔로몬의 왕자’라는 언덕이 있어서 옛날부터 이슬람교도의 순례지이다.
    다. 촐폰 아타(Cholpoa Ata)
    키르기스스탄의 여름 휴양지인 이식쿨호(Issyk-kul湖) 부근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이식쿨호는 동서로 길이 177km, 폭은 가장 넓은 곳이 57km로 가늘고 긴 ‘눈’ 모양을 이룬 호수이다.
    호면의 표고는 약 1,609m이며 최고 수심은 702m이다.
    전체적으로 수심이 깊기 때문에 수온의 변화는 적은 편이다.
    대기가 최저 기온에 이르러도 수온은 0℃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단, 부분적으로 얕은 곳에서는 결빙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호수 중앙부의 온도는 영상 4℃ 이상이어서 한겨울에도 훈훈한 바람이 분다.
    이러한 기후 조건 때문에 이식쿨호 일대는 훌륭한 ‘피한피서(避寒避暑)’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식쿨호(Issyk-kul湖)는 중앙아시아 톈산 산맥에 있는 호수로서 키르기스공화국에 속한다.
    호의 남측 테르스케이 알라타우(Terskey Alatau) 산맥과 북측 퀸케이 알라타우(Künkey Alatau) 산맥이 호면 상에서 3,000~3,600m의 높이로 솟아 있어 북동의 한기와 서방의 열기를 막아 이식쿨 호수의 환경을 조성한다.
    이식쿨호 지역의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5,6℃, 7월은 영상 17℃이다.
    수중 20m의 흰 원판이 보일 정도로 투명도가 높다.
    이식쿨 분지는 크기가 동서로 250km, 폭이 100km로서, 만년설로 뒤덮인 산에서 계류(溪流)가 흘러내린다.
    고도에 따라 식물상(植物相)이 변할 뿐만 아니라, 서에서 동으로 이동함에 따라 경관도 달라진다.
    호수 서단(西端)의 리바테 부근은 암석이 많은 황량한 지대이지만, 동쪽으로 올수록 식물이 풍부해진다. 이것은 강우량의 차이에서 오는 현상인데, 연 강우량이 리바테는 110mm이나, 호수 동단의 브르제와리스크는 450mm에 달한다.
    이것은 기류가 서쪽으로부터 움직이다가 도중에 호상의 습기를 머금은 다음 그것을 동부로 운반하기 때문이다.
    겨울에 리바테 부근에서는 보통 눈이 내리지 않으며 호에서는 돌풍이 자주 일어나는데, 서풍을 우란, 동풍을 산티슈라고 한다.
    야간에는 육지로부터 호 방향으로, 주간에는 그와 반대의 바람이 분다.
    이식쿨호 분지의 기후 조건은 야채와 과수의 재배에 적합하며, 약용 양귀비 재배가 성행하는 곳이다.
    관개는 계곡물로 하며, 목축도 흥성하다.
    아랄해와 이식쿨호를 비교하면 면적에서는 전자가 후자의 11배이고, 수심에서는 후자가 전자의 10배 이상이다.
    옛날에 이식쿨호의 물은 봄에 계곡을 통해 흘러내렸으며, 당시 호수의 물은 담수(淡水)였는데 물 1리터당 5.6g의 염분(鹽分)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염분의 함량에 의해 호수의 연령을 약 6만 5천 년으로 추산한다.
    호수에 함유되어 있는 염분의 총량은 10억 톤에 달한다.
    이식쿨호의 고고학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에 인류가 거주한 것은 청동기시대 이후다.
    16세기에 키르기스족이 이 지역에 거주하다가 17세기 말에 중가르족(카르이크족)에 쫓겨난 후 18세기 중엽에 키르기스족이 다시 원지로 돌아왔다.
    유목민과 정주 농경민의 교체가 일어나고, 거기에 지진까지 자주 겹쳐서 호수 밑바닥에는 멸망한 고대 취락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고대 취락이 호수 밑바닥에 잠긴 이유는 수위(水位)가 높아졌기 때문이란 설과 지진 때문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다.
    유물 중에는 8~15세기에 속하는 것도 있다.
    이식쿨호 남안과 북안은 고대의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식쿨호에는 물고기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어업도 무시할 수 없다.
    ‘포렐’(곤들매기, 일명 가어(嘉魚))이라고 하는 물고기는 한 마리의 무게가 12~14kg까지 나간다.
    기타 여러가지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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