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오르는 담쟁이, 이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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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29 дек 2024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가운데)
이용섭, 그는 담쟁이를 닮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 가진 것이라곤 소박한 꿈 하나가 전부였던 한 시골소년은
30여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는 큰 인물이 됩니다.
1951년, 전남 함평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이용섭,
주경야독 하던 젊은 날, 이 학다리 학생 농사꾼에게는
남몰래 꿈꾸던 희망찬 내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가난한 내 이웃들,
선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는,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꿈이었습니다.
그런 간절한 바람과 절실함으로 행정고시에 도전한 그는
22살의 젊은 나이에 합격하며 공직자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가 바로 건설교통부 장관 이용섭입니다.
이용섭 장관, 그는 타고난 공직자였습니다.
공직생활 내내 청렴과 명예, 봉사를 신념으로 알고 실천해왔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3번이나 통과한 것은 그가 사상 최초입니다.
깨끗한 공직자, 유능한 공직자임이 완벽하게 검증된 것입니다.
그는 그 누구도 깨기 힘든 다양한 공직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설교통부 장관, 행정자치부 장관, 청와대 혁신관리수석, 국세청장을 거치면서
경제사회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국세청장, 관세청장, 세제실장, 국세심판원장 등
4개 분야를 거친 세금 경력은 그가 유일하고
이를 두고 사람들은 세금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변화와 혁신을 중시하는 새 시대의 리더입니다.
국가혁신 없이 선진한국, 초일류 대한민국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오랜 관습과 틀을 깨기 위한 창의와 도전.
그에게 혁신 전도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도,
그의 하루하루가 변화와 혁신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이 불편해야 국민이 편합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된 개혁의 발걸음.
그 첫 걸음은 항상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고,
이는 33년 공직생활 내내 변함이 없었습니다.
“원칙은 내 삶의 생명줄..”
이용섭, 그에게는 감성과 인간애가 묻어납니다.
어렵고 힘든 일에는 그 자신이 먼저 앞장서서 모범이 되어 왔고,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눈을 돌려
힘없는 이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 왔습니다.
이런 나눔의 실천은 그가 어렵고 힘들 때 항상 힘이 되어주었던
고향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이용섭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성과가 창출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도전정신은 알찬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국세청장 시절에는
접대비 실명제와 현금영수증 제도 등 굵직굵직한 혁신 조치를 시행하였습니다.
아울러 권력기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국세청을
국민에게 봉사하는 서비스기관으로 탈바꿈시켜
2년 연속 혁신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혁신관리수석비서관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인터넷 민원서비스 확대와 같은 국민이 체감하는 정부혁신을 통하여
전자정부 평가 세계 1위, UN 특별공공행정상 수상 등의
성과를 창출하였습니다.
건설교통부에서는 폭등하던 집값을 확실히 잡아
참여정부 집값 안정의 마지막 구원투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착공 등
국가균형발전 사업도 차질 없이 추진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 7위권의 경쟁력 있는 국가, 국민이 행복한 나라,
이른바 초일류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선하고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강해지는 사회,
원칙과 기준을 지키는 사람들이 우대받는 사회,
변화와 혁신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혜택 받는 사회,
바로 그가 바라는 사회입니다.
그는 학생농사꾼 생활의 제1막,
오랜 공직생활의 제2막을 마무리하고
이제 초일류 대한민국을 향한 인생 제3막 1장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궁불실의 달불이도(窮不失義 達不離道)
궁해도 의로움을 잃지 않고 잘 되어도 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비의 자세를
지켜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