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매와 같은 눈에 깜짝 놀랐습니다.(집중력이..ㅎㄷㄷ) 감사합니다ㅠㅠ 두세번 확인해 보았는데도 이런 실수가 있었군요! 다만 영상을 수정하려면 아예 삭제한뒤 수정한 영상을 올려야해서... 소중한 댓글들이 날아가기에ㅜㅜ(댓글 하나하나가 소듕..) 일단 정보란에 기입하고, 자막수정하고, 댓글 고정했습니다!^^ 책을 다시 확인해보니 1858년 10월 추정이라고 나오더라구요~ 만나이로 기입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명성황후를 선량한 피해자로 여기는 몇몇 무지한인간들이많군요 특히나 여자들. 같은여자들이라그런지 많이 억울해하는입장이많은거같던데, 명성황후 업적 쳐보세요 뭐가있는지. 국가 세금을 절반 가까이 해쳐먹고 나라의 기강이 약해져서 동학농민운동에 낫들고 시위하는사람들 죽여달라고 일본 러시아 중국등에 해결해달라고 해온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이완용은 그저 파향됐던 인물일뿐이고 나라를 팔아먹은건 조선 왕실입니다. 한번에 망한게아닙니다. 고려를 쿠테타로 멸망케하고 지들끼리 호위호식하다 일본에게 나라를판겁니다. 명성황후 절대 선의의 피해자아닙니다 제대로 공부하시길바랍니다
아직도 명성황후를 선량한 피해자로 여기는 몇몇 무지한인간들이많군요 특히나 여자들. 같은여자들이라그런지 많이 억울해하는입장이많은거같던데, 명성황후 업적 쳐보세요 뭐가있는지. 국가 세금을 절반 가까이 해쳐먹고 나라의 기강이 약해져서 동학농민운동에 낫들고 시위하는사람들 죽여달라고 일본 러시아 중국등에 해결해달라고 해온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이완용은 그저 파향됐던 인물일뿐이고 나라를 팔아먹은건 조선 왕실입니다. 한번에 망한게아닙니다. 고려를 쿠테타로 멸망케하고 지들끼리 호위호식하다 일본에게 나라를판겁니다. 명성황후 절대 선의의 피해자아닙니다 제대로 공부하시길바랍니다
@@jamsil-q1n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가 중요한게 아닐텐데? 그렇다고 쳐도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과를 했잖음? 근데 일본은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대해 부정하고 있음 정작 시해범들 후손은 한국 찾아와 사과하고 있는 판국에 일본 정부는 부정하고 있고 위안부도 스스로 자원한 창녀들이라고 부정하고 있지 그걸 비난하는건데? 그것만 제대로 사과해도 이정도로 사이가 나쁠까??
다른 영상에서 봤는데 이승만대통령은 사진을 보고 정확히 명성황후라고 했다고 합니다. 덧붙여 내가 몰라볼수 있겠냐라고도 했다는데 그외 몇분들도 그리 말했다고 합니다. 그 사진은 오늘날 기생사진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선기생 사진들을 몇차례 봐왔는데 그 시대의 기생들은 무언가 교태가 묻어 나오는데 그 한장은 눈빛이 쏘아보는듯 날카롭고 다부져 보이면서 고귀해 보이는 그 얼굴이 제가 보기에도 명성황후 사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앞뒤가똑같은전화-b1w 일제의 잔상중 하나가 조선인은 맞아야 한다, 조선인은 모래알 같다 라는 말들이 있었죠. 일본넘들이 우리의 오래된 기상을 무너뜨리고 복종토록 만들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게 많다 이겁니다. 나도 명성황후 욕 많이 했었는데 그게 일제의 잔상일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만약에 그럴수 있고 그 영혼이 아직도 구천을 헤맨다면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너무 한게 아닌가하고 생각이 들었죠.
아직도 명성황후를 선량한 피해자로 여기는 몇몇 무지한인간들이많군요 특히나 여자들. 같은여자들이라그런지 많이 억울해하는입장이많은거같던데, 명성황후 업적 쳐보세요 뭐가있는지. 국가 세금을 절반 가까이 해쳐먹고 나라의 기강이 약해져서 동학농민운동에 낫들고 시위하는사람들 죽여달라고 일본 러시아 중국등에 해결해달라고 해온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이완용은 그저 파향됐던 인물일뿐이고 나라를 팔아먹은건 조선 왕실입니다. 한번에 망한게아닙니다. 고려를 쿠테타로 멸망케하고 지들끼리 호위호식하다 일본에게 나라를판겁니다. 명성황후 절대 선의의 피해자아닙니다 제대로 공부하시길바랍니다
@@앞뒤가똑같은전화-b1w 그때 구한말 사람들도 황후가 죽었다고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지. 그래도 어쨌든 자기네들 윗대가리긴 하니까. 그래서 을미의병이 일어난 거고 말이야. 쓰레기 새끼인건 나도 인정하지만 시해당한 건 좋든 나쁘든에 상관이 없음. 그저 미화만 안할 뿐이야. 사족으로 그 민비도 사실은 일본놈들이 낮춰부르는 용어임.
@@김도원-b5m '민비'가 왜 일본인들이 낮춰부르는 용어죠? 민씨 성을 가진 왕후를 뜻하는 말인데요. '대원군'은 그럼 낮춰부르는 용어가 아닌가요? 왕의 아버지이니 대원'군'이었던 것이고, 대한제국 선포 후에도 살아 있었으니 대원'왕'이라 하셔야죠. 대한제국 이후에도 살아있던 대원군은 '군'이고 왕비로 죽은 민비만 '비'가 아니다?
이게 정답임 . 당시 총리 였던 이토히로부미가 주관해서 미우라 공사와 암암리의 진행 되었고 실상 당시의 낭인들은 사무라이라기 보다는 군인 출신이 50%, 기자와 교수 학생 등등이 50% 였음 그래서 치밀하게 작전을 세웠고, 이후의 사건 파악에도 진실을 찾기가 어려웠음 다만..... 항간에 떠도는 명성왕후 생전 강간 설은 사실이 아님(그 낭인들은 명성왕후의 얼굴도 알지 못했음) 1895년 10월 밤 늦은 시간에 궁궐을 습격한 터라~ 불빛이 하나도 없어 죽인 이미 그런 테러를 대비해 같은 상궁 나인들의 옷들을 입었던 명성왕후와 몇몇의 궁인들을 죽이고 나서 자신들이 죽인 사람이 명성왕후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임신한 흔적을 찾아 보기 위해 옷을 헤어놓고 확인 한것을 가지고 강간이니 시간이니 뭐니 하는 자극적인 소재로 억측을 진실인양 매도한 몇몇의 국내외 소설가들에 의해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음.
명성황후의 호오에 대해 잠시 제쳐 두더라도 한나라의 왕비가 정규군 특수부대도 아니고 학생이나 불량배 따위에게 암살도 아니고 대놓고 궁에서 참살당한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싶다 ㅋㅋㅋ 지금으로 따지면 어디 유학생 무리가 청와대에 쳐들어가서 대놓고 영부인을 살해하고 도망치는 그런급 아닌가
영상이 너무 생생해서 바싹 긴장해서 봤어요ㅜㅜ(feat.분노로 부들부들) 결과를 아는데도 불구하고 긴박한 상황속에 제발이라고 외치게되네요. 사실 역사라면 관심이 참 없었는데 요즘 드라마속 역사논란사태를 보고 역사를 모르면 누가 자기를 욕해도 욕하는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는구나를 느꼈어요. 가슴에 때려박히는 역사교육 감사합니다ㅜㅜ넘슬프네요.. 좋은 영상 너무 감사드리고 다음 영상 너무 기다려져요 궁금궁금!
진짜 역사 무관심은 무조건 일제 탓이나 일제가 낮춰부르는 거라고 민비도 일제가 낮췄다는 개소리하거나, 미화하는 건 믿으면서 사실은 안 믿는거. 가령 조선인들은 가슴을 성적으로 안봤는 헛소리하는데 그걸 또 믿음. 몸파는 기생 따로 있는데 이패 삼패, 창기들도 연예인이 되어버림. 몸도 안 판 것만 아니라 울나라 기생들이 플라토닉한 사랑만 했다는데 부북일기에 이미 기생이랑 원나잇 기록이 존재하고 기생 머리 올려준다고 집 한 채값 정도 주고 보내기도 함. 더욱이 가슴 까는 것도 초반엔 일제의 왜곡이라고 부정했던게 울나라 주장이었음. 근데 조선 후기 그림(영조나 정조 시대 쯤)에 가슴까는 그림이 존재함. 역사를 모르는게 문제보다 본인 스스로도 왜곡하고 믿는게 얼굴에 먹칠하는 짓임. 특히 치트키 하나면 모든게 진실되는 국뽕 때문에 원래 배설은 귀선(구선 아님. 귀선임. 예전 국어사전에서 구선은 없는 말이라고 했었음.) 태우고 이순신 암살 안하고 탈영했는데 영화 "명량" 때문에 고인 능욕을 아주 잘근잘근 잘도 함. 그래놓고 슈룹같은 왜곡과 동북공정은 잘도 보고.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에 뒤떨어지는 자기중심적이고 머리나쁜 권력층들이 나중에 세대를 넘는 어떠한 결과를 만들었나 한국인은 항상 기억 하여야 한다.... 현재도 권력층의 비리나 잘못된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며 소수의 특권층이 썩은 이기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그만큼의 리스크를 만들어 주어야만 이런 역사를 만들지 않을것이다.
아직도 명성황후를 선량한 피해자로 여기는 몇몇 무지한인간들이많군요 특히나 여자들. 같은여자들이라그런지 많이 억울해하는입장이많은거같던데, 명성황후 업적 쳐보세요 뭐가있는지. 국가 세금을 절반 가까이 해쳐먹고 나라의 기강이 약해져서 동학농민운동에 낫들고 시위하는사람들 죽여달라고 일본 러시아 중국등에 해결해달라고 해온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이완용은 그저 파향됐던 인물일뿐이고 나라를 팔아먹은건 조선 왕실입니다. 한번에 망한게아닙니다. 고려를 쿠테타로 멸망케하고 지들끼리 호위호식하다 일본에게 나라를판겁니다. 명성황후 절대 선의의 피해자아닙니다 제대로 공부하시길바랍니다
어쩌면 13년전 (1882년) 임오군란 때 한번 간신히 궁궐을 빠져나온 경험이 있기에... 설마 했겠지요... 하지만.. 1882년에 창덕궁에 쳐들어온 군인들은 그래도 순박한 조선 사람이었지만... 1895년에 시퍼런 칼을 들고 들어온 낭인들은.. 참.... 혹시 그 낭인들 중에 실제로는 조선 사람인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남북이 왜 갈라졌는지 광복이후 전쟁까지 알려지지않은 5년이라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다른나라로 인해 갈라지게 되었고 왜 이런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일제이후 현근대사가 다시 쓰여진것은 얼마안된다 고로 역사를 알아야 미래의 거울이며 나아가기위한 걸음이다. 그것이 나의 미래 나의 자녀에게 건내줄 재산이란것을 나라에 관심이 없다면 나라에 탓하지마라 그모든 결과물은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명의 통치자로 인해 국정은 기울며 아무리 막는다하여도 비밀은 없으며 절대권력통치를 하여도 후대의 역사속에서 어떤 존중을 받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린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을미사변때 제일 많이 동원된 병력은 어이없게도 조선 훈련대입니다. 시위대 200명은 1시간 가까이 교전하다가 무너졌지만 경호실이라고 할 수 있는 무예청 경호무사 200명이 저항을 포기한 건 흥선대원군 때문입니다. 무예청은 대원군을 더 따랐기 때문이죠. 대원군이 없었으면 을미사변은 성공할 수 없었고 대원군이 일정정도 가담한 것도 사실입니다.
충실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든 영상을 잘 보았습니다. 을미사변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에는 원님, 포졸 복장의 병사들이 수리검에 맞아죽고 창, 칼들고 싸우는 등 고증오류가 있었죠. 역사공부는 고증이 잘 된 영상으로 해야 공부가 잘 되는 만큼 고증에 충실한 교양각님께 지지를 보냅니다.
우리는 고종을 고종이라고 부르지 광무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영상에서도 광무제라고 부르지 않는군요. 자... 그럼 영상에서 말하는 황후는 누구의 아내입니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남편은 황제가 아닌 왕으로 칭하는데 남편이 왕일 때 죽은 아내는 황후다???? 적어도 황후라고 부르려면 우린 고종이 아닌 광무제라고 칭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를 바르게 볼 수 있는데 도움이 됩니다.
광무는 묘호나 시호가 아닌 연호이기 때문에 고종태황제가 맞아요 묘호:고종 / 시호 :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 입니다. 종,조가 외왕내제에 나온 거라 고종이라 불러도 되구요. (그리고 황제라고 따라와요) 언론매체에선 통상적으로 알려진 묘호나 시호로 불러 주니까 명성황후가 맞습니다. 순종의 첫 비인 순명효황후는 심지어 태자시절에 요절했어도 황후로 불러주는 거로 예를 들 수 있겠네요.
고종은 조선과 대한제국을 모두 겪은 지도자인데 고종의 경우 조선왕조에서 즉위를 했으니 일반적으로 고종이라 부르는거고 고종황제라고 부르는것도 대한제국을 생각해보면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니 민비도 맞는거고 명성왕후도 조선에 맞는 호칭이고 대한제국을 생각하면 명성황후도 맞는겁니다. 민비가 하도 인식이 안좋으니 님처럼 굳이 명성황후라고 해야하나? 그런 부정적인 인식과 질문을 하는게 인물에 대한 역사왜곡의 시작입니다.
1. 임오군란 2. 동학농민운동 이 두 사건으로 듸졌어야 할 늙은 여우 였는데 일본이 해줬죠. 뭐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동학농민운동 때 민비가 직접 농민 백성들 역적이라고 죽여달라고 청나라, 일본 조선 내에 다 끌어들여줬고 이때부터 일본에 겁먹고 러시아 앵겨 붙다가 듸진거죠. 세금을 지 돈 마냥 사치하고 굿하고 치료비 내고 어휴 ㅠ
1. 대원군은 강제로 끌려나온게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일본인들을 만나서 이야기 듣고는 얼마간의 숙고 끝에 자발적으로 나섰음. 2. 경복궁 무력 진압의 주력은 훈련대였음. 훈련대는 1개 연대 규모였는데 대대장들의 선동에 고무되어 상당수가 흉거에 가담했음. 흉거에 가담하길 거부하고 병영에 남아있던 훈련대 병사들을 훈련대장 홍계훈이 다급히 수습해 이들을 광화문으로 이동시켜 훈련대의 경복궁 진입을 막으려 했음. 그러나 그 수가 턱도없이 부족해 홍계훈은 목숨을 잃고 나머지도 흉도들의 사격을 받고 흩어져 달아났음. 3. 한양에 주둔 중인 일본군은 공사관 수비대와 경성 수비대가 있었으나, 흉거에 가담한건 공사관 수비대였음. 공사관 수비대는 일본 공사의 통제하에 있었지만, 경성수비대는 일본 육군의 통제하에 있었고, 사건의 주도자였던 공사 미우라가 경성 수비대까지 동원할 권한은 없었음. 을미사변은 일본으로서도 극비 중의 극비로 진행되어 미우라와 그 일당들 이외에는 다른 일본 관리나 군인들 조차 모르게 진행되었음. 결국 경성 수비대는 흉거에 가담하긴 커녕 사건 끝날때까지 상황 파악도 못했음. 나중에 조선군 장교가 경성 수비대에 달려가 지원을 요청했고, 그제서야 뭔일 터졌다는걸 알고 경성 수비대 병력들이 조선군 장교들과 경복궁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상황 끝난 뒤였다고 함. 다만 훈련대의 훈련 교관을 담당했던 경성 수비대의 몇몇 장교들이 개인적으로 훈련대에 합류해 흉거에 가담했음. 4. 시위대 병력이 무력하게 무너진건 단순히 수적 열세라서가 아님. 당시 시위대는 막 창설된 부대로 무기도 탄약도 부족한 상태였음. 일본의 지원으로 창설된 훈련대는 당시 최신형이던 독일제 마우저 소총으로 무장하고 탄약도 충분했지만, 일본의 지원을 거부하고 만든 시위대는 당시로선 구형인 미제 레밍턴 롤링블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음. 그나마 이들 총들은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할때 일본군에게 노획당하지 않으려고 연못에 투기했던 것들을 다시 꺼낸 것들로서 작동 불량도 많았고 탄약 재고도 부족했음. 사변 당시 시위대 병사들은 10여발도 안되는 탄약밖에 지급받지 못했고 결국 몇번의 응사를 하며 저항하다 탄약이 곧 바닥나서 달아나버렸음. 5. 시위대가 무너졌지만 그렇다고 경복궁내 저항이 끝난건 아님. 무예청 무사들과 기타 경비병력들이 남아 저항을 계속했음. 그러나 이들 앞에 대원군이 나타나자 이들도 저항을 포기했음. 무예청 무사들은 친 흥선대원군파가 많았고 작금의 상황이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정변이라 인식한 그들은 더 이상의 저항을 그만두기로 했던 것.
저도 최근에서야 1894년 경복궁습격사건을 알게된 이후로 왜 ...을미사변때 그렇게 쉽게 궁궐이 뚫렸을까에 대한 이해가 되더군요... 그리고 드는 생각은 명성황후 본인은 저날 본인이 타켓이 되었음을 알고는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1894년에 궁궐습격을 한번 당해봤을테니.... 본인이 타겟이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대원군이 일본낭인 끌고가서 죽인겁니다. 대원군이 미우라에게 먼저 접근해서, 민비 싫지? 나도 싫거든? 내 앞장 설테니 따라와서 민비 죽여라. 대원군이 궁궐앞에서 포졸들이 가로 막자, 물렀거라! 한 마디 하니깐 싹 비켜 주고 그래서 군사적 충돌 없이 미우라일행이 궁궐에 들어가 죽인겁니다
고딩때 일본낭인 몇명이 작당해서 경복궁에 침입 민비를 죽였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했는데 우범선이 내통했다고 한다. 그럼 조금 말이 되네.. 그런데 궁궐을 지키는 사람도 없나. 그냥 의문만 가지고 있다가 최근 검색해보니 그것이 대원군과 일본이 공모하여 일으킨 엄청난 사건이더만. 일본낭인을 시킨건 누구도 책임을 안지겠다는 얄팍한 수단에 불과. 이일로 인해 고종은 대원군이 죽고 장례식에도 참석 안함.
한 나라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욕을 먹는 건 필연이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 욕 안먹는 대통령이 있었나? 한국인들 종특이 지들이 그 자리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면서 그저 욕하고 씹는 것만 잘하지. 민비가 잘못한 게 많긴 하지만, 그걸 다 민비책임이고 일본놈들이 잘 죽였다고 말하는 듯한 태도에서는 혐오감까지 느껴진다. 이게 다 일본놈들 사주받은 친일 뉴라이트 역사학자와 일베충 디씨 역갤러들의 작품이지. 뭐 그래, 민비가 살아생전에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 아주 대차게 까인 건 맞지. 근데 매천야록은 야사야. 팩트도 있지만 지 꼴리는 대로 쓴 것도 많다고. 민비를 만나본 외교관들은 민비에 대해서 꽤 긍정적으로 평가했지. 그 당시 조선인들 중에서 타국 외교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만큼 외교수완이 있었고 일본에 있어 눈엣가시니까 죽였지. 강단없고 일본한테 간신배처럼 설설 기었으면 죽였을까?
민비라는 호칭은 잘못된 호칭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민비는 일제(일본 국내성)가 만든 멸칭임을 밝혔습니다. ‘민비(閔妃)’라고 불린 이유 명성황후는 1851년 9월 25일 여주(驪州) 근동면(近東面) 섬낙리(蟾樂里) 사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민치록(閔致祿)이며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생부인 민유중(閔維重)의 후손이다. 어렸을 때 이름은 자영(玆暎)이었다. 1866년 16세의 나이로 왕비에 간택되어 운현궁에서 고종과 가례를 올렸다. 명성황후라는 호칭은 그녀가 죽은 뒤 대한제국 시기에 붙여진 것이다. 황후란 황제의 부인이란 뜻이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 황후가 아니었으니 명성황후란 호칭도 있을 수 없었다. 과거 명성황후 대신 널리 쓰인 호칭으로 민비(閔妃)를 들 수 있다. 민씨(閔氏)의 성을 가진 왕비라는 뜻이다. 하지만 민비라는 호칭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인현왕후를 비롯하여 민씨 성을 가진 왕비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사료에 민비(閔妃)라는 용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공식적으로 쓰인 용어가 아닌 셈이다. 『매천야록』을 비롯하여 명성황후가 생존했을 때의 자료들을 살펴보아도 민비란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 자료에서는 대부분 ‘왕후(王后)’, ‘중궁(中宮)’, ‘중전(中殿)’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중궁민씨(中宮閔氏)’처럼 민씨를 뒤에 붙이는 경우는 있지만 민비(閔妃)처럼 성을 앞세우는 경우는 없었다. 민비의 용례가 처음 확인되는 것은 1910년 9월 24일자 『매일신보(每日申報)』의 기사이다. 이 기사의 내용은 돌아가신 민비전하(閔妃殿下)의 육순을 맞아 이왕전하(李王殿下)께서 경효전(景孝殿)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순종 황제가 1910년 병합 이후 이왕(李王)이 되었으므로 민비(閔妃)라는 말은 이 무렵 붙여진 호칭인 셈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10년 뒤에 민비는 다시 명성황후가 되었다. 1920년 7월 10일자 『매일신보』는 돌아가신 이태왕 전하의 존호를 고종태황제로 올리면서 민비전하의 호칭도 명성황후로 승격시키기로 일본 궁내성이 내정했다고 보도하였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제는 명칭을 민비로 격하하였다가 명성황후로 원위치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후로도 격하시킨 명칭만이 그대로 통용되었다. 따라서 민비는 별로 기분 좋은 호칭이 아닌 셈이다.
역사를 공부를 해보면 그런 무지한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민비는 흥선대원군이 일본과 내통해 제거한것이고 그 이유는 민비가 러시아와 손잡으려 했기 때문.. 그 때 민비 때문에 일본 제끼고 조선이 러시아 밑으로 들어갔더라면 한반도는 지금 러시아 군사용 땅으로 쓰일거고 당신은 연해주 어딘가에서 감자나 캐고 있을거니.. 민비가 그 때 제거 된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시길...
요새 가스라이팅 이 단어가 유행하니까 음모, 조작, 왜곡 = 가스라이팅으로 생각하는 지능 낮은 애들의 글들을 자주 보게 된다. 뭔가 유행을 하면 그게 뭔지 제대로 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일단 쓰고 보는 저능아들 보면 참 안타깝다. 또한 이 글에 추천을 27명이나 되는 저능아들이 눌렀다는것... 단순히 속은것을 바보처럼 가스라이팅이라고 이해했다면 뭘 또 어렵게 가스라이팅 5글자를 쓰냐. 그냥 대대적으로 속았다고 하면 되는것을...
민비가 일본의 손에 죽은게 화가난다? 그냥 자업자득인 것..외국 군대가 무슨 자선단체인줄 아나? 임오군란때도 청군 불러들이고 갑신정변때도 청군, 동학땐 청군 불러들였다가 일본군도 같이 들어왔죠..그러고 러시아까지 끌어들이려다 저꼴 난거 아닌가? 내전을 수습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끌어들인다? 이게 제일 멍청한 짓이고 늑대 쫒으려다 호랑이 불러들이는 꼴이죠
화 있을 진 저 이사람 들 이여 가인 의 길 에 행 하였 으며 삯을 위 하여 발 람 의 어그러진 길 로 몰 려 갔 으며 고라 의 패 역 을 따라 멸 망 을 받 았 도 다 그들 은 기탄 없이 너희 와 함께 먹 으니 너희 애찬 의 암 초 요 자기몸 만 기르 는 목 자 요 바람 에 불 려 가는 물 없는 구 름 이요 죽 고 또 죽 어 뿌 리까지 뽑 힌 열 매 없는 가을 나무 요 자기 수치의 거품 을 뿜 는 바다의 거친 물 결 이요 영 원 히 예비된 캄 캄 한 흑 암 으로 돌 아 갈 유 리 하는 별 들 이라 ,,,,,,,,,,이사람들 은 원 망 하는 자 며 불 만 을 토하는 자며 그 정 욕 대로 행 하는 자 라 그 입 으로 자랑 하는 말 을 하며 이익 을 위 하 여 아첨 하느니라 ,,,,이사람들 은 무 엇 이든 지 그 알 지 못 하는 것 을 비방 하는 도 다 또 그들 은 이성 없 는 짐 승 같이 본 능 으로 아는 그것 으로 멸 망 하느 니라 유 다서
19:18 마야모토 소위 출생년도. '1895년생 당시 나이 36세' 수정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1860년이 아닌지..
헉. 매와 같은 눈에 깜짝 놀랐습니다.(집중력이..ㅎㄷㄷ) 감사합니다ㅠㅠ 두세번 확인해 보았는데도 이런 실수가 있었군요! 다만 영상을 수정하려면 아예 삭제한뒤 수정한 영상을 올려야해서... 소중한 댓글들이 날아가기에ㅜㅜ(댓글 하나하나가 소듕..) 일단 정보란에 기입하고, 자막수정하고, 댓글 고정했습니다!^^ 책을 다시 확인해보니 1858년 10월 추정이라고 나오더라구요~ 만나이로 기입한 것 같습니다.
@@culture_up 네 확인 감사드립니다!^^
@@culture_up 대국민 사과하세요..
조선은 자멸함
아직도 명성황후를 선량한 피해자로 여기는 몇몇 무지한인간들이많군요 특히나 여자들. 같은여자들이라그런지 많이 억울해하는입장이많은거같던데, 명성황후 업적 쳐보세요 뭐가있는지. 국가 세금을 절반 가까이 해쳐먹고 나라의 기강이 약해져서 동학농민운동에 낫들고 시위하는사람들 죽여달라고 일본 러시아 중국등에 해결해달라고 해온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이완용은 그저 파향됐던 인물일뿐이고 나라를 팔아먹은건 조선 왕실입니다. 한번에 망한게아닙니다. 고려를 쿠테타로 멸망케하고 지들끼리 호위호식하다 일본에게 나라를판겁니다. 명성황후 절대 선의의 피해자아닙니다 제대로 공부하시길바랍니다
나라가 약해빠지면 별의별 더러운 꼴을 당한다는.임란때는 귀와 코가 짤리고 병자호란때는 환향녀라는 문제가 생겻고...나라가 국방이 약하면은 엄청난 수모를 당한다.
아직도 명성황후를 선량한 피해자로 여기는 몇몇 무지한인간들이많군요 특히나 여자들. 같은여자들이라그런지 많이 억울해하는입장이많은거같던데, 명성황후 업적 쳐보세요 뭐가있는지. 국가 세금을 절반 가까이 해쳐먹고 나라의 기강이 약해져서 동학농민운동에 낫들고 시위하는사람들 죽여달라고 일본 러시아 중국등에 해결해달라고 해온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이완용은 그저 파향됐던 인물일뿐이고 나라를 팔아먹은건 조선 왕실입니다. 한번에 망한게아닙니다. 고려를 쿠테타로 멸망케하고 지들끼리 호위호식하다 일본에게 나라를판겁니다. 명성황후 절대 선의의 피해자아닙니다 제대로 공부하시길바랍니다
@@user-xh8tw9su8f 맞음 명성왕후 이미지세탁 씨게 됐지 ㅋㅋㅋ
그렇게 만든게 민비년
세도정치가 나라 망쳐놓은거예요
국방튼튼.경제도 튼튼하고
교육도 제대로 가야. 지켜낼수 있다는 것.동감.
우리나라 왕비가 무참히 일본낭인들에게 살해당한건 정말 치욕스럽다
하지만 민비가 죽은거에 대한건 1도 안뿔상하며, 죽여도 우리가 죽여서 끌어내리던가 했었야 했는데 그건 정말 아쉬움
인정합니다
황후임
@@박동욱-p3t 그럼 님은 평소에 고종을 광무제라고 부릅니까????????
물론 치욕이죠 근데 군인들 월급 손대는건 아니죠
@@백강호-h3z 원술이 생각납니다 ㅋㅋㅋ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능력을 갖추지못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거지요. 임금의 아버지가 끌려다니고 왕후가 외국인에게 살해당하는.... 이런일은 그 악명높았던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당시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죠ㅠ
뭐... 아버지한테 끌려다닌 것 뿐아니라 자기 와이파한테도 끌려다닌 게 팩트죠. 아무튼 여러모로 한심한 왕
이건 먼 정신나간 소리냐?? 일본을 욕해야지
역사에 대한 깊은 해박한 통찰과 조예가 느껴지는, 역사를 음미 할 수 있는 채널이네요. 역시나 많은 참고서적들! 이 좋은 채널을 이제야 보다니. 잘 감상했습니다.
명성황후를 시해 할 수 있게 궁문을 열어준 사람이 우범선이라는 사람이죠.. 우장춘 박사의 아빠...
명성황후가 악녀라고 해도 그걸 처단하던 안하던 그 몫은 조선과 조선인의 몫이었음
일국의 왕비를 타국 군대가 궁궐에 무단 침임해서 살해한건 비난받아 마땅함
비난만 할줄 알지 결국 힘없어서 지배당했지? 열심히 아웅한다고 세상이 알아줌?
@@seanlee9235
바보인가? 그래서 독일은 사과 왜함? 미국은 일본에 원폭 떨군거 왜 배상함?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모르면 싸물어 떠들지말고
@@킹세종-u3f 독일은 유대인학살 홀로코스트에대한 사과임 식민지배에대한 사과는 없음 이탈리아 벨기에 영국 미국 프랑스 어느나라도 식민지배에대한 사과없음...그게 정상임
@@jamsil-q1n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가 중요한게 아닐텐데? 그렇다고 쳐도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과를 했잖음? 근데 일본은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대해 부정하고 있음 정작 시해범들 후손은 한국 찾아와 사과하고 있는 판국에 일본 정부는 부정하고 있고 위안부도 스스로 자원한 창녀들이라고 부정하고 있지 그걸 비난하는건데? 그것만 제대로 사과해도 이정도로 사이가 나쁠까??
@@jamsil-q1n
그게 정상은 뭔 그게 정상이라는건지 참 ㅋㅋ
사진은 많은데 정녕 명성황후 사진은 없다. 황후가 사진 찍는걸 싫어했다고는 하지만 이승만도 그렇고 덕혜옹주도 살아계실적 이분이 그분사진이다 라고만 했어도 아직까지 헷갈리지는 않을텐데...
다른 영상에서 봤는데 이승만대통령은 사진을 보고 정확히 명성황후라고 했다고 합니다. 덧붙여 내가 몰라볼수 있겠냐라고도 했다는데 그외 몇분들도 그리 말했다고 합니다. 그 사진은 오늘날 기생사진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선기생 사진들을 몇차례 봐왔는데 그 시대의 기생들은 무언가 교태가 묻어 나오는데 그 한장은 눈빛이 쏘아보는듯 날카롭고 다부져 보이면서 고귀해 보이는 그 얼굴이 제가 보기에도 명성황후 사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진있어여...
살짝 로제느낌?
얼굴은 가름한대 오른쪽눈이 살짝사시
@@로폼 그렇게 다부져서 나라를 다부지게 말아 쳐먹었나보네요
@@앞뒤가똑같은전화-b1w 일제의 잔상중 하나가 조선인은 맞아야 한다, 조선인은 모래알 같다 라는 말들이 있었죠. 일본넘들이 우리의 오래된 기상을 무너뜨리고 복종토록 만들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게 많다 이겁니다. 나도 명성황후 욕 많이 했었는데 그게 일제의 잔상일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만약에 그럴수 있고 그 영혼이 아직도 구천을 헤맨다면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너무 한게 아닌가하고 생각이 들었죠.
@@로폼 / 민자경은 그냥 악녀입니다,,,매관매직+단기간에국고탕진+청나라 끌어들임 > 일본 끌어들임 > 러시아끌어들임 > 결국 나라뺏김,,,,나라를 망치게만든 주 원인인데, 어떻게 좋은 평가를 내릴수 있을까요?
일제+민자경 둘다 나쁘죠
잘 보고 가요. 역사를 바로 아는데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혹시 브금은 어떤 거 사용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차라리 임오군란때 민황후가 그 명을 다 했다면 이런 치욕은 없었겠죠
@@Ruka77-e2x 여흥민씨 집안들이 명성황후 집안이라 그런듯
@@Ruka77-e2x 명성황후 자녀 4남1녀인데? 왕에 순종있다고 걔 피 이어받는거 아니면 끊기는거냐?
여흥민씨 집안이 친일파 최고봉임
민비지 황후는 무슨
@@uiochgh905 솔직히 황후라는 표현은 너무 과하기는 하죠
와, 기대 안하고 봤는데 진짜 잘 만들었네요. 화이팅
아직도 명성황후를 선량한 피해자로 여기는 몇몇 무지한인간들이많군요 특히나 여자들. 같은여자들이라그런지 많이 억울해하는입장이많은거같던데, 명성황후 업적 쳐보세요 뭐가있는지. 국가 세금을 절반 가까이 해쳐먹고 나라의 기강이 약해져서 동학농민운동에 낫들고 시위하는사람들 죽여달라고 일본 러시아 중국등에 해결해달라고 해온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이완용은 그저 파향됐던 인물일뿐이고 나라를 팔아먹은건 조선 왕실입니다. 한번에 망한게아닙니다. 고려를 쿠테타로 멸망케하고 지들끼리 호위호식하다 일본에게 나라를판겁니다. 명성황후 절대 선의의 피해자아닙니다 제대로 공부하시길바랍니다
좋은 놈 나쁜 놈을 떠나, 황후를 죽인 짓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짓입니다. 하지만 과가 있기에 미화를 할 순 없습니다. 그저 시해당했다는 사실에 공감할 뿐.
민비는 뒤지는게 답이었음 일본이 그거 하난 잘했음 일본이 안죽였음 국민들 손에 뒤졌음
@@앞뒤가똑같은전화-b1w 그때 구한말 사람들도 황후가 죽었다고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지. 그래도 어쨌든 자기네들 윗대가리긴 하니까. 그래서 을미의병이 일어난 거고 말이야. 쓰레기 새끼인건 나도 인정하지만 시해당한 건 좋든 나쁘든에 상관이 없음. 그저 미화만 안할 뿐이야. 사족으로 그 민비도 사실은 일본놈들이 낮춰부르는 용어임.
@@김도원-b5m '민비'가 왜 일본인들이 낮춰부르는 용어죠? 민씨 성을 가진 왕후를 뜻하는 말인데요. '대원군'은 그럼 낮춰부르는 용어가 아닌가요? 왕의 아버지이니 대원'군'이었던 것이고, 대한제국 선포 후에도 살아 있었으니 대원'왕'이라 하셔야죠. 대한제국 이후에도 살아있던 대원군은 '군'이고 왕비로 죽은 민비만 '비'가 아니다?
@@dwarf3322 그걸 이용한 거임. 민씨니까 그렇게 낮춰부른 거지. 정상적으론 다 싸잡아서 황제 또는 황후라 부름. 근데 호칭에 관해선 나도 상관관계는 잘은 모르겠더라. 경우에 따라 다르게 부르다보니.
@@dwarf3322 그것들이 티 안나게 식민사관 붙여넣듯이 그 민비란 호칭도 익숙한 말로 넣어버린 듯.
와 ㅎㅎㅎ 브금 선택진짜 잘하셨네요! 작곡유튜번데 우연히 영상보다가 많이 배우고 가요! 👍🏼
감사합니다.
민비를 시해한 낭인들의 실제 직업은 신문기자 의사 법관 도쿄대 대학생 대학교수 등등 초엘리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야쿠자가 아닙니다 이얘기는 일본정부의 사주가 있었다는 증거죠. 야쿠자와 무관한 사건입니다
그당시 일본인은 검도가 대중화되서 거진야쿠자급임
을미사변은 현양사라는 단체가 주도가 됐는데 현양사를 야쿠자의 전신이라고하는 역알못들이 너무 많다. 사상적인 뿌리가 있는 현양사랑 그냥 야쿠자 깡패집단이랑 어떻게 연결이 되나?
이게 정답임 . 당시 총리 였던 이토히로부미가 주관해서 미우라 공사와 암암리의 진행 되었고
실상 당시의 낭인들은 사무라이라기 보다는 군인 출신이 50%, 기자와 교수 학생 등등이 50% 였음
그래서 치밀하게 작전을 세웠고, 이후의 사건 파악에도 진실을 찾기가 어려웠음
다만..... 항간에 떠도는 명성왕후 생전 강간 설은 사실이 아님(그 낭인들은 명성왕후의 얼굴도 알지 못했음)
1895년 10월 밤 늦은 시간에 궁궐을 습격한 터라~
불빛이 하나도 없어 죽인 이미 그런 테러를 대비해 같은 상궁 나인들의 옷들을 입었던 명성왕후와 몇몇의 궁인들을
죽이고 나서 자신들이 죽인 사람이 명성왕후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임신한 흔적을
찾아 보기 위해 옷을 헤어놓고 확인 한것을 가지고
강간이니 시간이니 뭐니 하는 자극적인 소재로 억측을 진실인양 매도한
몇몇의 국내외 소설가들에 의해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음.
@@온라인신학교 실제 민비시해사건은 현양사와도 무관 하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당시 낭인들 중 현양사 조직원이 한명도 없었어요. 낭인의 실체는 전부 일본내 지식인들입니다. 현양사는 그리고 야쿠자가 맞습니다. 현양사 두목 사위가 하야시입니다.
@@edielee4551 맞습니다. 현양사와는 아무런 연계가 없습니다.
이 조선이라는 나라때 보면 중국에 아첨하며 저거들 맛있는것만 줍어 먹었습니다 저거들 배만 채우다 큰세력에 처참하게 당한거죠 무조건 일본을 욕하면 안됩니다 이시대때 고위관리직에 있던것들 죄가 많습니다
맞아요
백성은 무지한죄밖에없습니다
무지도 큰죄입니다
오. 을미사변의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었는데, 잘 모르던 내막이 있었군요. 뭔가 지식이 늘어난 느낌이네요.
저도 고등학생때는 이런건 전혀 몰랐는데, 나중 책을 보고 놀랐었기에 영상으로 전달해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성황후의 호오에 대해 잠시 제쳐 두더라도 한나라의 왕비가 정규군 특수부대도 아니고 학생이나 불량배 따위에게 암살도 아니고 대놓고 궁에서 참살당한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싶다 ㅋㅋㅋ 지금으로 따지면 어디 유학생 무리가 청와대에 쳐들어가서 대놓고 영부인을 살해하고 도망치는 그런급 아닌가
영상이 너무 생생해서 바싹 긴장해서 봤어요ㅜㅜ(feat.분노로 부들부들) 결과를 아는데도 불구하고 긴박한 상황속에 제발이라고 외치게되네요. 사실 역사라면 관심이 참 없었는데 요즘 드라마속 역사논란사태를 보고 역사를 모르면 누가 자기를 욕해도 욕하는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는구나를 느꼈어요. 가슴에 때려박히는 역사교육 감사합니다ㅜㅜ넘슬프네요.. 좋은 영상 너무 감사드리고 다음 영상 너무 기다려져요 궁금궁금!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생생한 댓글에 감동받았습니다ㅠㅠ 다음 영상도 힘내보겠습니다!
진짜 역사 무관심은 무조건 일제 탓이나 일제가 낮춰부르는 거라고 민비도 일제가 낮췄다는 개소리하거나, 미화하는 건 믿으면서 사실은 안 믿는거.
가령 조선인들은 가슴을 성적으로 안봤는 헛소리하는데 그걸 또 믿음. 몸파는 기생 따로 있는데 이패 삼패, 창기들도 연예인이 되어버림. 몸도 안 판 것만 아니라 울나라 기생들이 플라토닉한 사랑만 했다는데 부북일기에 이미 기생이랑 원나잇 기록이 존재하고 기생 머리 올려준다고 집 한 채값 정도 주고 보내기도 함.
더욱이 가슴 까는 것도 초반엔 일제의 왜곡이라고 부정했던게 울나라 주장이었음. 근데 조선 후기 그림(영조나 정조 시대 쯤)에 가슴까는 그림이 존재함.
역사를 모르는게 문제보다 본인 스스로도 왜곡하고 믿는게 얼굴에 먹칠하는 짓임.
특히 치트키 하나면 모든게 진실되는 국뽕 때문에 원래 배설은 귀선(구선 아님. 귀선임. 예전 국어사전에서 구선은 없는 말이라고 했었음.) 태우고 이순신 암살 안하고 탈영했는데 영화 "명량" 때문에 고인 능욕을 아주 잘근잘근 잘도 함.
그래놓고 슈룹같은 왜곡과 동북공정은 잘도 보고.
민비를 뭘 또 이렇게 빨라주냐!!
슬픈이야기이지만 망할때가 되어서 망한겁니다.왕은 여러 방식으로 나라를 말아먹고 있었고 왕족들은 왕조를 지키지 못 할 정신 상태와 능력이 없었습니다.
고종은 거의 정신장애인이었습니다.
아가야
대한민국 고마 더럽히고 느그 나라로 끄지라 ㅋㅋㅋ
저 훈련대장 홍계훈이 예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를 들쳐업고 나갔던 인물.
그를 소재로 조승우 수애 주연의 영화가 나왔죠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에 뒤떨어지는 자기중심적이고 머리나쁜 권력층들이 나중에 세대를 넘는 어떠한 결과를 만들었나 한국인은 항상 기억 하여야 한다....
현재도 권력층의 비리나 잘못된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며 소수의 특권층이 썩은 이기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그만큼의 리스크를 만들어 주어야만 이런 역사를 만들지 않을것이다.
아직도 명성황후를 선량한 피해자로 여기는 몇몇 무지한인간들이많군요 특히나 여자들. 같은여자들이라그런지 많이 억울해하는입장이많은거같던데, 명성황후 업적 쳐보세요 뭐가있는지. 국가 세금을 절반 가까이 해쳐먹고 나라의 기강이 약해져서 동학농민운동에 낫들고 시위하는사람들 죽여달라고 일본 러시아 중국등에 해결해달라고 해온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이완용은 그저 파향됐던 인물일뿐이고 나라를 팔아먹은건 조선 왕실입니다. 한번에 망한게아닙니다. 고려를 쿠테타로 멸망케하고 지들끼리 호위호식하다 일본에게 나라를판겁니다. 명성황후 절대 선의의 피해자아닙니다 제대로 공부하시길바랍니다
@@user-xh8tw9su8f ??? 누가 누구를 보고 공부 하라는거요??? 하고싶은 말이 머요?? 내 댓글에 딴지거는 건가요??
Hello Jackie! I'm Teacher Jury
Thank you, Jury^^ you are so kind:)
일본이 극악하긴하나... 민비가 아닌 명성황후라 부르는것도 맘에 안듭니다. 민비의 족적을 확인하면 좋은 왕비는 아닌것을 어찌 황후라....ㅠㅠ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저지른 범죄가 잘했단건 더더욱 아님! 민비의 악행도 돌아보길
그럼 일제가 애국했네.
올소...민비도 민폐를 많이 끼쳤지..
맞아요 악행 저지른 여자는 맞죠
그 논리로 따지면 못잖았던 문정왕후도 윤비라 했어야 함.
@@jihyun8748 일제로 인해 양반들이 천것들 하는것부터 없어져버린게 좋긴좋음
어쩌면 13년전 (1882년) 임오군란 때 한번 간신히 궁궐을 빠져나온 경험이 있기에... 설마 했겠지요... 하지만.. 1882년에 창덕궁에 쳐들어온 군인들은 그래도 순박한 조선 사람이었지만... 1895년에 시퍼런 칼을 들고 들어온 낭인들은.. 참.... 혹시 그 낭인들 중에 실제로는 조선 사람인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재사람들혹시칼경험들참빈각시노총각문턱큰집맛없재
20:59 왕비가 숨 막혀서 죽었겠다 ㅋㅋ
영상만드시느라 고생했겠네요. 굿영상
감사합니다. 틈틈히 4개월동안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일본이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한건 아주 큰 잘못입니다 그러나 왜 일본이 굳이 남의나라 왕비를 죽이기까지 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공부를 더 해야할것 같습니다 일본의 목적이 조선을 일본화 시키는 거라고는 하지만 명성황후가 조선에서 권력을 잡고 저지른 일들도 알려주세요
한국인 유학생들과 건달들이 지금 천황 와이프 시간해도 일본인들은 당연히 이해하고 넘어가 주겠죠?
우리도 함해야죠 당연히. 언젠가 분명히 똑같은 일이 도쿄에서 벌어질겁니다
@@riankal 오~본인이 실행하시는 건가요??
국제법과 국제여론이 전무한 시절, 강대국의 논리(조약)대로 움직였던 세상, 그때의 조선은 강대국들간 사고 팔고 하는 노예의 처지, 힘없고 가난하고 망국의 길로 가고 있었던 조선이 그 첫번째 잘못이다. 다시는 이런 아픔의 역사를 겪지 않게 국력을 키워야 한다.
남북이 왜 갈라졌는지 광복이후 전쟁까지 알려지지않은 5년이라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다른나라로 인해 갈라지게 되었고 왜 이런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일제이후 현근대사가 다시 쓰여진것은 얼마안된다 고로 역사를 알아야 미래의 거울이며 나아가기위한 걸음이다. 그것이 나의 미래 나의 자녀에게 건내줄 재산이란것을 나라에 관심이 없다면 나라에 탓하지마라 그모든 결과물은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명의 통치자로 인해 국정은 기울며 아무리 막는다하여도 비밀은 없으며 절대권력통치를 하여도 후대의 역사속에서 어떤 존중을 받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린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을미사변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 으로 표현 함 오떨꺼요? 을미사변 이야기할째마다 일본. 명성황후. 시해. 암살. 기억 하게 말이죠. 😊❤
우리백성이 벌을내려 끌어내 사형시키는거랑
남의나라에게 국모가 살해당하는건 하늘과 땅차이
용서못할일이지
국모는 무슨 얼어죽을 국모?
그저 조선을 끝장내버린 계집일뿐.
을미사변때 제일 많이 동원된 병력은 어이없게도 조선 훈련대입니다. 시위대 200명은 1시간 가까이 교전하다가 무너졌지만 경호실이라고 할 수 있는 무예청 경호무사 200명이 저항을 포기한 건 흥선대원군 때문입니다. 무예청은 대원군을 더 따랐기 때문이죠. 대원군이 없었으면 을미사변은 성공할 수 없었고 대원군이 일정정도 가담한 것도 사실입니다.
근거자료가 있나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이로스-y9h 이런 역사적 정황이 하나의 사료에 다 나오는게 아니어서 한 번 찾아보시는게 좋을겁니다.
@@닿닿 여러 사료라도 괜찮으니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이로스-y9h 이런건 사실 여러 사료를 본다는 말로는 정확히 표현이 안되는게 수십개 혹은 수백개(1차 자료) + 연구들(2차 자료)까지를 봐야될 수도 있는 경우라.. 게다가 제가 역사연구를 안해서요 아는게 없네요 바로바로 말씀드릴수가 없네요..
흥선대원군은 자발적으로 가담한 것이 아니고 이용당했다고 봐야 됩니다.
재밌네요 역사공부도 되고 일석2조이네용 쌤 목소리도 너무좋으시고 힐링되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같이 죽임을 당하거나 치욕를 당한 궁인들이 불쌍하다
그건 인정
충실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든 영상을 잘 보았습니다. 을미사변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에는 원님, 포졸 복장의 병사들이 수리검에 맞아죽고 창, 칼들고 싸우는 등 고증오류가 있었죠. 역사공부는 고증이 잘 된 영상으로 해야 공부가 잘 되는 만큼 고증에 충실한 교양각님께 지지를 보냅니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님, 감사합니다^^ 많은 힘이 나는 댓글입니다~
충실고증? 근래 드러난 고증은 민비 옹호할 이유 하나도 없어요 일본이 잘한건없지만 불쌍해서 민비 옹호할건 있슴? 여자라서? 정치잘해서? 고증은 개뿔
@@시크릿가이-w1f죄를 묻는것은 자국민이 했어야 한다!
내 조국 국모가 시해당했음에도 어찌 이런생각을 가질수 있는것인지! 내 조국국민이 이러하니 일본은 여전히 저리도 뻔뻔함으로 일관하는것이다!
그 어떠한 사과도 그어떠한 반성도 적반하장 독도가 다케시마라 짖기는 이유겠지!
민중에 손에 죽었어야 하는데 일본에 죽어서 미화되는구나....
If one of the killers had a picture of the queen why doesn’t it exist anymore and why can we see it .
우리는 고종을 고종이라고 부르지 광무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영상에서도 광무제라고 부르지 않는군요.
자... 그럼 영상에서 말하는 황후는 누구의 아내입니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남편은 황제가 아닌 왕으로 칭하는데 남편이 왕일 때 죽은 아내는 황후다????
적어도 황후라고 부르려면 우린 고종이 아닌 광무제라고 칭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를 바르게 볼 수 있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왕의 묘호또한 국왕의 승하후 공덕을 기리는 이름이며 황제도 묘호로 칭할수 있습니다 고종도 고종 태황제라고 하며 명청의 황제들도 묘호로 칭할수 있습니다
대한제국은 황국입니다.
고종이 선언 후 광무제가 되었지요.
따라서 민비도 황후가 되었구요
일제강점기로 흐려졌지만 사실입니다.
현시대에들어 명성황후의 추악한 실태가 들어나고 민비라 불러지는것이지
그 당시엔 황후가 맞아요
@@GIZO- 오 정확한 사실이네요.
감사합니다.
광무는 묘호나 시호가 아닌 연호이기 때문에 고종태황제가 맞아요 묘호:고종 / 시호 :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 입니다. 종,조가 외왕내제에 나온 거라 고종이라 불러도 되구요. (그리고 황제라고 따라와요) 언론매체에선 통상적으로 알려진 묘호나 시호로 불러 주니까 명성황후가 맞습니다. 순종의 첫 비인 순명효황후는 심지어 태자시절에 요절했어도 황후로 불러주는 거로 예를 들 수 있겠네요.
고종은 조선과 대한제국을 모두 겪은 지도자인데
고종의 경우 조선왕조에서 즉위를 했으니 일반적으로 고종이라 부르는거고 고종황제라고 부르는것도 대한제국을 생각해보면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니 민비도 맞는거고 명성왕후도 조선에 맞는 호칭이고 대한제국을 생각하면 명성황후도 맞는겁니다. 민비가 하도 인식이 안좋으니 님처럼 굳이 명성황후라고 해야하나? 그런 부정적인 인식과 질문을 하는게 인물에 대한 역사왜곡의 시작입니다.
이토히로부미가 경성수비대 통수권을 위임해줬다는 기록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미우라 공사가 주한 수비대 파견을 통지하면 언제든지 출병할 수 있도록 하라”(방위 연구소, 「메이지 28년 밀대일기 密大日記」, 아시아 역사자료센터 C03023051300) 입니다.
팩트 를 제대로 하셨네요 구독 좋아요 했습니다
백성을 쥐어짜고 왕의 두눈을가리고 외세의 힘에 자신의 안위만 걱정한 명성왕후., 당연한 결과이다..다만 한나라의 왕후라는 이유로 안타까워하는데..차라리 우리백성의 손으로 끝냈어야 한다..하늘에서 백성들 우리불쌍한 백성들에게 잘못을 비시길.,
재칼명성백성로그녀빈각시노총각문턱큰집맛없재
몇번을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은 결코 일본은 용서받을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어릴 때 이와같은 사실을 보고 엄처나게 충격을 받았었다. 세월이 지나 어언 오십대 중반인 데도 그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와사비떡꼬치 퉤~
1. 임오군란 2. 동학농민운동 이 두 사건으로 듸졌어야 할 늙은 여우 였는데 일본이 해줬죠.
뭐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동학농민운동 때 민비가 직접 농민 백성들 역적이라고 죽여달라고
청나라, 일본 조선 내에 다 끌어들여줬고 이때부터 일본에 겁먹고 러시아 앵겨 붙다가 듸진거죠.
세금을 지 돈 마냥 사치하고 굿하고 치료비 내고 어휴 ㅠ
명성황후편 언제 업로드 되는지요?
7월 중순에 업로드 예정입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ㅠ
@@culture_up 감사합니다. 깊이 있는 내용 너무 좋아요
국방 더욱 튼튼하게 두번다시 치욕스런 일나지 않기를!
그 자국민 군인들을 황후손에 죽었조
민비는 이미 조선백성들 사이에서도 불신을 받던 인물이였죠 ... 아마 백성들은 그녀의 죽음에 일말의 미련도 없었을 겁니다 요즘 왠지 그녀가 일본인들 손에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훌륭한 국모로 탈바꿈 되었지만.. 반일감정이 극도로 팽배해진 요즘에...
민비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허무하게 일본에게 나라를 내주진 않았을듯. 하지만 조선 민중이 아니라 일본낭인들에게 살해당한 건 열받는 일임.
잘 들었습니다 나라가 국력이 약하면 생기는 일입니다 항상 국방을튼튼히 해야겠지요 또한 지도자를 잘 뽑아야 이런일을 안당하겠고요
세상은 잔인한것
남의 나라가 왕비를 죽일때까지 정치는 쌈박질만 하고
정권 유지에만 급급했지요
강력하고 정의로운 지도자가 답이지요
1. 대원군은 강제로 끌려나온게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일본인들을 만나서 이야기 듣고는 얼마간의 숙고 끝에 자발적으로 나섰음.
2. 경복궁 무력 진압의 주력은 훈련대였음. 훈련대는 1개 연대 규모였는데 대대장들의 선동에 고무되어 상당수가 흉거에 가담했음. 흉거에 가담하길 거부하고 병영에 남아있던 훈련대 병사들을 훈련대장 홍계훈이 다급히 수습해 이들을 광화문으로 이동시켜 훈련대의 경복궁 진입을 막으려 했음. 그러나 그 수가 턱도없이 부족해 홍계훈은 목숨을 잃고 나머지도 흉도들의 사격을 받고 흩어져 달아났음.
3. 한양에 주둔 중인 일본군은 공사관 수비대와 경성 수비대가 있었으나, 흉거에 가담한건 공사관 수비대였음. 공사관 수비대는 일본 공사의 통제하에 있었지만, 경성수비대는 일본 육군의 통제하에 있었고, 사건의 주도자였던 공사 미우라가 경성 수비대까지 동원할 권한은 없었음. 을미사변은 일본으로서도 극비 중의 극비로 진행되어 미우라와 그 일당들 이외에는 다른 일본 관리나 군인들 조차 모르게 진행되었음. 결국 경성 수비대는 흉거에 가담하긴 커녕 사건 끝날때까지 상황 파악도 못했음. 나중에 조선군 장교가 경성 수비대에 달려가 지원을 요청했고, 그제서야 뭔일 터졌다는걸 알고 경성 수비대 병력들이 조선군 장교들과 경복궁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상황 끝난 뒤였다고 함. 다만 훈련대의 훈련 교관을 담당했던 경성 수비대의 몇몇 장교들이 개인적으로 훈련대에 합류해 흉거에 가담했음.
4. 시위대 병력이 무력하게 무너진건 단순히 수적 열세라서가 아님. 당시 시위대는 막 창설된 부대로 무기도 탄약도 부족한 상태였음. 일본의 지원으로 창설된 훈련대는 당시 최신형이던 독일제 마우저 소총으로 무장하고 탄약도 충분했지만, 일본의 지원을 거부하고 만든 시위대는 당시로선 구형인 미제 레밍턴 롤링블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음. 그나마 이들 총들은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할때 일본군에게 노획당하지 않으려고 연못에 투기했던 것들을 다시 꺼낸 것들로서 작동 불량도 많았고 탄약 재고도 부족했음. 사변 당시 시위대 병사들은 10여발도 안되는 탄약밖에 지급받지 못했고 결국 몇번의 응사를 하며 저항하다 탄약이 곧 바닥나서 달아나버렸음.
5. 시위대가 무너졌지만 그렇다고 경복궁내 저항이 끝난건 아님. 무예청 무사들과 기타 경비병력들이 남아 저항을 계속했음. 그러나 이들 앞에 대원군이 나타나자 이들도 저항을 포기했음. 무예청 무사들은 친 흥선대원군파가 많았고 작금의 상황이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정변이라 인식한 그들은 더 이상의 저항을 그만두기로 했던 것.
저도 최근에서야 1894년 경복궁습격사건을 알게된 이후로 왜 ...을미사변때 그렇게 쉽게 궁궐이 뚫렸을까에 대한 이해가 되더군요... 그리고 드는 생각은 명성황후 본인은 저날 본인이 타켓이 되었음을 알고는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1894년에 궁궐습격을 한번 당해봤을테니.... 본인이 타겟이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해박하신 지식에 감탄합니다.
내부에 매국노가 없었다면 을미사변은 없었다!
숱한 내전과 전쟁국에 역사를 본다면 항상 내부에 매국노가 있었다!
국민이 분열하면 안됨을
역사로 증명됨에도 반복한다.
우리는 뺏길지라도 내어주면 안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매국노가 민비입니다 😅😅😅
역사인식이 빵점이네요
고종과 민비가 매관매직하며 재정을 파탄내고
그것도 모자라 각종 광업, 어업권까지 해외에 팔아먹다가 군란과 민란이 일어났는데..
국민이 분열하면 안되?
국민이 힘을 합쳐서 동학이 일어났고 그거 막으려고 일본군이 한반도로 들어온거 알아요 몰라요?
그게 민비다 역사를 바로알자 쪽팔리다
민비가 러시아랑 붙어먹으니까 일본이 시해한거임
을미사변의 배후는 흥선대원군이다
무슨 일본 사무라이가 궁에 난입을 해서 죽이나
말도 안되지
명성황후 시해 참여 낭인의 말...너무 쉬웠다
백성, 민중이 민비를 죽였다면 한층 더 잔혹했을 것이다.
저건 상대도 안될정도로...
뭔 개소리
븅
잘 듣고갑니다.
구독 좋아요 😀콕
이 치욕스런 일들을 생각하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백배로 이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에혀 예수뽕
ㅋㅋㅋㅋ기도하면 느그 하나님이 복수해주노?? ㅌㅋㅋㅋㅋ
그럼 저쪽에서 복수막아달라 기도하면 우째되노?ㅋㅋㅋ
민비 살아있었으면 백성삥뜯고 매관매직해서 진령군과 푸닥거리나 하고 있었을텐데요.
고종은 민비죽자마자 늙은 엄상궁 불러다 민비장례도 치르기도 전에 다음해인 96년에 영친왕낳고.완전 유교 성리학 충효예를 가르치는 나라가 콩가루니.
망하는것도 무리는 아닌듯하네요.
민비가 뭐라고 ㅋㅋㅋㅋㅋ
1:30 여기 그림만 봐도 역사왜곡을 알 수 있음
그림에서 마치 왕은 졸아서 엉거주춤 앉아있고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게 보이고
일본인은 왕 바로 앞에서 아래로 내려깔아 보고있네요
이렇듯 한국역사 다루는 컨탠츠는 왜곡이 엄청 많음 내 기준 한 90%는 왜곡임 조심하셈
명성황후가 아무리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해도 어찌됐건 조선의 왕비였다. 범궐하여 일국의 왕비를 무참히 시해한 일본의 만행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것이다.
대원군이 일본낭인 끌고가서 죽인겁니다.
대원군이 미우라에게 먼저 접근해서, 민비 싫지? 나도 싫거든? 내 앞장 설테니 따라와서 민비 죽여라.
대원군이 궁궐앞에서 포졸들이 가로 막자, 물렀거라! 한 마디 하니깐 싹 비켜 주고
그래서 군사적 충돌 없이 미우라일행이 궁궐에 들어가 죽인겁니다
그래도 호언적으로
일본으로 대우했으면
이꼴 안난거 사실이지
고종이 너무 치마폭 둘러싸여
외국쪽에 힘실어준 결과
중국마냥 버려지는
열세로 여기는
생각을 외면하여
일본 멸시한 부분도 있잖어
나라 말아먹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ㄴ을 처단했지
민씨가 악녀라는 평가가 있어도.
엄연히 일국 국가원수의 영부인 입니다.
외국인이 국가원수의 영부인을 암살하는 것은 엄연히 중대한 범죄 입니다~?🤫
정조이후 안동김씨 60년 흥선대원군 10년 고종비 민씨 10년 위정자들의 사리사욕과 부정부패등의 잘못으로 조선의 백성들도
대한민국의 후손들도 온갖 치욕과 아품을 감내 하였죠
민씨 시해 사건도 하나의 과정이랄까
민비의 씀씀이(세금과 매관매직으로 벌어들인 돈)는 마리 앙투아네트(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도 검소한 여인으로 보였다는.!
그래서 시해당한게 옳다는거냐
@@꽁깜딱 옳다고 했냐.? 사치가 심했다는거지.! 새대갈아
마리 앙투아네트는 지금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2찍이새끼들은 이런거 신경안써
매천야록내용 + 거짓 정보 (마리앙투아네트의 빵 발언) 댓글 ㅋㅋㅋ 진짜 혼란스럽네. 어설프게 배워서 댓 달지마요...
이런 귀중한 영상을 ㅋ
잘 보고 가용
20:59 숨막혀 죽을거 같은데..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에조보고서나 베베르보고서도 참고하시죠
봉기한 농민들을 살피고 좋은 민비가 되었다면 개죽음은 안당했을듯
이건 내가아는 사실과 다른데요?
지금은 흥선대원군이 일본낭인을 시켜서 정적을 친것으로 결론내려지고 있고, 실제 흥선대원군의 출사표가 있는데 천하의 악녀를 처단하려한다고 했답니다.
일본 낭인이 죽이기 전에 이미 '임오군란'때 구식군대 병사들이 잡아 죽일려고 팀까지 짜서 추적 했는데...
자국 백성 손에 죽지 않고 외국 자객한테 죽은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명예는 지킨거다!
민비를 죽이고 불에태워죽였는데 다 타지 않아 남은신체일부를 연못에 던져버렸는데, 다음날 떠올라서 민비시신을 다른곳에 파 묻어버렸다. 의 내용은 없네. 제대로 알고 좀더 세밀히 해라.
지금부터라도 역사는 바로잡고. 되풀이안돼게해야는대 아직도 우리나라는. 친일세력이 기득권 세력이라 먼얘기인듯
친일세력보다 친중세력이 문제임ㅋㅋㅋ
인생이 뭘까요? 결국 한 줌 재가 되고 마는것을...저들은 무얼 가지고자.그렇게 탐욕에 눈멀어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간 걸까요?
자주나오는 남자사진분 인상 진짜 기세게생겼다ㅡ
아쉽게도 더이상 업로드가 안되고있네요🥰 여기서 순국하신분중 한분에 피가 제게 흐르고 있어서 더 아쉽네요
7월 중순에 업로드 예정입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ㅜ
민비야 백번 천번 잘 쳐죽었는데.. 안타까운건 더 일찍 죽지 않은거와 일본에 의해 죽은거
먼 진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또 벌어질 일이다.
군대가 이미 넘어갔으니 어찌보면 당연히 쉬웠겠지요.
재어찌군대그녀빈각시노총각문턱큰집맛없재
아무리 잘못이 많은 왕비라도 그렇게 보내고 조소하는것은 설사 100 년 지난 세대라도 자존심도 수치도 모르는 짓이다. 왕비로써 그렇게 죽은 한은 누가 풀어주나
왕비 한 보다는 그 왕비한테
고혈 빨아먹혀 굶어죽은 97% 조선백성들의 한이 먼저
저칼 혹시 후쿠오카 캐널시티 시장입구에있는 신사에 있나요? 거기한국인들 ㅈㄴ많던데 ㅋㅋ
고딩때 일본낭인 몇명이 작당해서 경복궁에 침입 민비를 죽였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했는데 우범선이 내통했다고 한다. 그럼 조금 말이 되네.. 그런데 궁궐을 지키는 사람도 없나. 그냥 의문만 가지고 있다가 최근 검색해보니 그것이 대원군과 일본이 공모하여 일으킨 엄청난 사건이더만. 일본낭인을 시킨건 누구도 책임을 안지겠다는 얄팍한 수단에 불과. 이일로 인해 고종은 대원군이 죽고 장례식에도 참석 안함.
그 당시 조선인들 중에 민비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백성이 없었음
@@HNL-uf5le 민비가 시아버지를 몰아냈다는게 더 큰 이유였을거라.. 500년간 유교에 쩔은 머리로는 도저히 용납할수 없었겠지.
내통이 아니지
영상을 보고도 모르나?
대원군이 앞장섰잖아
대원군이 길을 열어준거야. 즉 대원군의 쿠데타였다
@@dowoonu 드라마 보고 역사를 배우지는 말자..
@@hmjeon8609 누구한테 하는 소리냐?
흥선대원군이 일으킨 쿠데타 맞다
을미사변은 일본에게 너무나 두려운사건이될것이다 한국인은 치욕을 잊지않는 민족이다
민자영은 임오군란때 우리 동족에게 죽어야 했다 ㅡ 밉지만 조선의 황후가 일본 낭인에게 죽은게 좀
뭐 ㅡ대원군 우범선등 많은 조선인도 가담하긴 했지만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닛본낭인을 동원해서 민자영을 죽였다고 보는 것이 맞음....개항이후 흥선과 민씨의 싸움이 일상이었던 나라....이런 음모론은 역사가 아님.
남의 나라 왕비를 남의 나라 사람이 죽인거 자체가 이해가 안감
답답
민비 죽었을때 국민들이 기뻐서 난리였다고 알고있는데...
이래서 사람이 배워야함
모르고 맹신하는건 죄임
@@grx1988매천야록에 기록이 있지요.
웃음님 알고좀 까시죠 알지도 못하고 아니다 불쌍하다 ㅠㅠ
흥선대원군이 독박썼네요 이때 훈련대 대대장 우범선 우장춘박사 아버지
명성황후ㄴㄴ 민비지
ㄴㄴ 민자영 이지요
@@이동연-c6d 이 여자는 그냥 이름 부르기도 아깝죠... 역사왜곡이 심한 사람 중에 한 명...
드라마 명성황후나 뮤지컬 명성황후도 그렇고 민비를 너무 미화시켰어
한 나라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욕을 먹는 건 필연이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 욕 안먹는 대통령이 있었나? 한국인들 종특이 지들이 그 자리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면서 그저 욕하고 씹는 것만 잘하지. 민비가 잘못한 게 많긴 하지만, 그걸 다 민비책임이고 일본놈들이 잘 죽였다고 말하는 듯한 태도에서는 혐오감까지 느껴진다. 이게 다 일본놈들 사주받은 친일 뉴라이트 역사학자와 일베충 디씨 역갤러들의 작품이지. 뭐 그래, 민비가 살아생전에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 아주 대차게 까인 건 맞지. 근데 매천야록은 야사야. 팩트도 있지만 지 꼴리는 대로 쓴 것도 많다고.
민비를 만나본 외교관들은 민비에 대해서 꽤 긍정적으로 평가했지. 그 당시 조선인들 중에서 타국 외교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만큼 외교수완이 있었고 일본에 있어 눈엣가시니까 죽였지. 강단없고 일본한테 간신배처럼 설설 기었으면 죽였을까?
@@Ruka77-e2x 근데 무당 진령군에게 홀린건 카바 못하지. ㅋㅋㅋ
거짓과 외곡으로 도배된 우리역사관 후대를 위해서라도 바로 잡아야합니다
민비라는 호칭은 잘못된 호칭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민비는 일제(일본 국내성)가 만든 멸칭임을 밝혔습니다.
‘민비(閔妃)’라고 불린 이유
명성황후는 1851년 9월 25일 여주(驪州) 근동면(近東面) 섬낙리(蟾樂里) 사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민치록(閔致祿)이며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생부인 민유중(閔維重)의 후손이다. 어렸을 때 이름은 자영(玆暎)이었다. 1866년 16세의 나이로 왕비에 간택되어 운현궁에서 고종과 가례를 올렸다.
명성황후라는 호칭은 그녀가 죽은 뒤 대한제국 시기에 붙여진 것이다. 황후란 황제의 부인이란 뜻이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 황후가 아니었으니 명성황후란 호칭도 있을 수 없었다. 과거 명성황후 대신 널리 쓰인 호칭으로 민비(閔妃)를 들 수 있다. 민씨(閔氏)의 성을 가진 왕비라는 뜻이다.
하지만 민비라는 호칭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인현왕후를 비롯하여 민씨 성을 가진 왕비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사료에 민비(閔妃)라는 용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공식적으로 쓰인 용어가 아닌 셈이다. 『매천야록』을 비롯하여 명성황후가 생존했을 때의 자료들을 살펴보아도 민비란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 자료에서는 대부분 ‘왕후(王后)’, ‘중궁(中宮)’, ‘중전(中殿)’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중궁민씨(中宮閔氏)’처럼 민씨를 뒤에 붙이는 경우는 있지만 민비(閔妃)처럼 성을 앞세우는 경우는 없었다.
민비의 용례가 처음 확인되는 것은 1910년 9월 24일자 『매일신보(每日申報)』의 기사이다. 이 기사의 내용은 돌아가신 민비전하(閔妃殿下)의 육순을 맞아 이왕전하(李王殿下)께서 경효전(景孝殿)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순종 황제가 1910년 병합 이후 이왕(李王)이 되었으므로 민비(閔妃)라는 말은 이 무렵 붙여진 호칭인 셈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10년 뒤에 민비는 다시 명성황후가 되었다. 1920년 7월 10일자 『매일신보』는 돌아가신 이태왕 전하의 존호를 고종태황제로 올리면서 민비전하의 호칭도 명성황후로 승격시키기로 일본 궁내성이 내정했다고 보도하였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제는 명칭을 민비로 격하하였다가 명성황후로 원위치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후로도 격하시킨 명칭만이 그대로 통용되었다. 따라서 민비는 별로 기분 좋은 호칭이 아닌 셈이다.
맞는 말이요...좋은 지식을 알려줘 고맙수.
역사왜곡이 심하네요. 낭인이라고 자꾸 표현는데 그건 일본측 제국주의자들이나 하는 말이고 역사왜곡입니다. 낭인은 커녕 일본최고 엘리트집단입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겐조나 신문사사장등 다 그런 사람들로만 구성해놓고서 낭인이라며 일본에서 시킨게 아니라며 책임회피하는거죠. 용어 당장 수정하시는게 좋겠네요
을미사변을 얘기하면서 일본이아닌 명성황후를 먼저까는댓글들은 진심제정신인가? 소름끼친다
역사를 공부를 해보면 그런 무지한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민비는 흥선대원군이 일본과 내통해 제거한것이고 그 이유는 민비가 러시아와 손잡으려 했기 때문..
그 때 민비 때문에 일본 제끼고 조선이 러시아 밑으로 들어갔더라면 한반도는 지금 러시아 군사용 땅으로 쓰일거고 당신은 연해주 어딘가에서 감자나 캐고 있을거니.. 민비가 그 때 제거 된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시길...
@@flight0412 역사공부같은 소리하고 계시네요ㅋㅋㅋㅋㅋ
뭐 일본역사책인가요?
댓글 달지마시고 갈길 가세요~
@@D-day_Only7 모르면 배우세요.. 모르면 할 수 있는게 지금처럼 우기기, 떼쓰기 밖엔 없답니다.
@@flight0412 ㅋㅋㅋㅋㅋㅋ난독증있으세요?
떼쓴적도 우긴적도 남한테 강요한적도 없이 오롯이 내생각만있는데요?
계속 선 넘으면서 입털지 말고 님갈길가라고요
어디와서 꼰대질이세요ㅋㅋㅋㅋㅋ
말귀못알아쳐드시네
@@D-day_Only7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팩트를 얘기 해줘도 일본역사책이냐고 비아냥 거리는 무식함을 두고 한 말입니다. 무식한건 부끄러운게 아닙니다. 괜한 자존심 피우지 마시고 공부해서 자존감을 높이시길 바랍니다.
시간될때에 이어서 듣겠습니다 죄송해요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들 손에 처벌을 받았어야 하는데..국고비닥내고 외척이 심했죠 드라마에 의해 가장 미화된 인물이죠 드라마,영화,뮤지컬로 많이 다뤄지지만 진짜 미화 심합니다
참 일본 프레임이 잘 놀아나네~~
누가 죽였냐가 아니고
누가 시켰냐가 맞는거 아닌가~?
일본에 짜 놓은 프레임에 놀아 나지 말고
일본의 교활함을 잊지 맙시다
만화로근현대사를했는대잼있겠어요
명성황후사건은 진짜 대국민 대대적 가스라이팅이네..ㅋㅋㅋㅋㅋㅋㅋ
나라팔고 벼슬팔아먹은건 민비다 ㅎㅎ
요새 가스라이팅 이 단어가 유행하니까 음모, 조작, 왜곡 = 가스라이팅으로 생각하는 지능 낮은 애들의 글들을 자주 보게 된다.
뭔가 유행을 하면 그게 뭔지 제대로 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일단 쓰고 보는 저능아들 보면 참 안타깝다. 또한 이 글에 추천을 27명이나 되는 저능아들이 눌렀다는것...
단순히 속은것을 바보처럼 가스라이팅이라고 이해했다면 뭘 또 어렵게 가스라이팅 5글자를 쓰냐. 그냥 대대적으로 속았다고 하면 되는것을...
아무리 그래도 국모잖아
국모쇼. 뮤지컬로 ㅋㅋ
@@이이-s5d 개나소나국모다
백성들 피빨아먹는 거머리다
아무리 명성황후가 악녀라고 해도 엄연히 우리나라 국모인데 그런 그녀를 일제가 죽였다. 이걸 누가 용서하랴 더군다나 이런일을 꾸미고 진행했던 놈들은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본인들의 추앙까지 받고 있다.
정치10단쯤 되는 간교한 이노우에의 조치들을 무력으로 만들정도면 엄청나게 똑똑한 인물인데 이런 황후가 어리석은 무당에게 휩쓸려 다녔다고...
무당만 매수하면 훨씬 쉽게 자기들 목적으로 끌어들일수 있는데 굳이 욕먹으면서까지 자객들로 무리수를 둔다?
전 세계 수천년 역사를 통틀어 이렇게 비열하고 저급한 짓거릴 한 나라는 없을거야. 똑같이 해줘야하는데 언제할 수 있을래나...
이제 좀 솔찍해 집시다.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빼앗기 위해 꾸민 일로 둔갑했다???
진짜 역사를 취사선택하시는 군요.
민비가 일본의 손에 죽은게 화가난다? 그냥 자업자득인 것..외국 군대가 무슨 자선단체인줄 아나? 임오군란때도 청군 불러들이고 갑신정변때도 청군, 동학땐 청군 불러들였다가 일본군도 같이 들어왔죠..그러고 러시아까지 끌어들이려다 저꼴 난거 아닌가? 내전을 수습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끌어들인다? 이게 제일 멍청한 짓이고 늑대 쫒으려다 호랑이 불러들이는 꼴이죠
너무나도 치욕적인 우리의 과거... 이게 과연 눈물 몇 방울과 사과 몇 마디로 잊혀질 수 있을런가.........???
살인범 놈이 "죽인 민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라고 증언할 정도로 참담한 사건이거늘......ㅜㅜㅜ
우덜 백성들한테 맞아 죽었어야 했는데 일본에게 뺏긴게 참으로 원톰하다 ㅠㅠ
정말 빌어먹을 상황이었네요 울화통이 터질지경
화 있을 진 저 이사람 들 이여
가인 의 길 에 행 하였 으며 삯을 위 하여 발 람 의 어그러진 길 로 몰 려 갔 으며 고라 의 패 역 을 따라 멸 망 을 받 았 도 다
그들 은 기탄 없이 너희 와 함께 먹 으니 너희 애찬 의 암 초 요 자기몸 만 기르 는 목 자 요 바람 에 불 려 가는 물 없는 구 름 이요 죽 고 또 죽 어 뿌 리까지 뽑 힌 열 매 없는 가을 나무 요
자기 수치의 거품 을 뿜 는 바다의 거친 물 결 이요 영 원 히 예비된 캄 캄 한 흑 암 으로 돌 아 갈 유 리 하는 별 들 이라
,,,,,,,,,,이사람들 은 원 망 하는 자 며 불 만 을 토하는 자며 그 정 욕 대로 행 하는 자 라 그 입 으로 자랑 하는 말 을 하며 이익 을 위 하 여 아첨 하느니라
,,,,이사람들 은 무 엇 이든 지 그 알 지 못 하는 것 을 비방 하는 도 다 또 그들 은 이성 없 는 짐 승 같이 본 능 으로 아는 그것 으로 멸 망 하느 니라
유 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