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림왕. 멸망직전의 나라를 되살려내고 고구려의 전성기를 연 위대한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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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9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43

  • @호로록-s7v
    @호로록-s7v 4 месяца назад

    복수보단 힘을 모아 국가미래는 후손에게 맡김.
    전반기는 고국천왕.
    중간기는 소수림왕.
    후반기는 영양왕.

  • @yorshigol85
    @yorshigol85 4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의 본체지 소수림왕 ㅋ

  • @권상호-j9i
    @권상호-j9i Год назад +3

    중화통일한 진시황도 대단하지만 그이전 그의 증조부 소양왕을 보면 알겠네요
    스스로 피를 두릅쓰고 세종에게 왕다운 왕 역할을 하게해준 태종도 대단하구요

  • @드키무티
    @드키무티 Год назад

    소수림왕이 고구려의 내실을 잘 다진 덕분에 고구려가 강대해지고 수 백 년을 더 존속될 수 있었군요. 사람들은 보통 광개토태왕이나 장수태왕처럼 나라땅을 넓히고 힘을 떨친 왕들을 좋아하는 편이죠. 성과가 가시적으로 보이니까 그런 걸 더 선호하죠.

  • @smilegalleryye
    @smilegalleryye Год назад +6

    고구려 왕 휼륭하신 분 많으셨더라구요 요즘 시대 왜 이런 분이 없으실고

    • @wagiecagie
      @wagiecagie Год назад

      국민들 99퍼가 개돼지들이어서 그럼

  • @2345pok
    @2345pok Год назад +6

    소수림왕이 고구려 다시 일으켜 세웠죠

  • @굉장허네-y6z
    @굉장허네-y6z Год назад

    대박대박

  • @danielp2399
    @danielp2399 Год назад +2

    광개토대왕 - 알렉산더
    소수림왕 - 필리포스 2세

  • @kephas7772
    @kephas7772 Год назад

    백제는 비옥한 땅인것은 인정하지만, 신라는 기후는 좋지만, 산지가 역시 많은 경상도 일대임..그것도 경상북도일대...지금이야 공업화로 인해 많은 인구가 살지만, 당시 기준으론 인구가 더 많을리는 없음...

  • @고대경-b6d
    @고대경-b6d Год назад +3

    고구려인들의 평균키가 165cm 라면 고구려 기병들이 탄 말은 등성마루, 어깨높이가 135~150cm 정도 크기의 말을 탔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네요. 오늘날로 보면 제주마와 서러브레드 사이에서 태어난 한라마 정도 크기의 말 일 것 같네요.

    • @성이름-g3z9o
      @성이름-g3z9o Год назад +2

      고구려인의 평균키가 165cm일리가 없죠. 165라면 한창 경제가 급성장하던 80년대 남성 평균키이고 영양학적으로 영양섭취가 맥시멈 찍은 90~00년대생 남성 평균키가 174정도이죠. 근데, 기원전인 고구려의 평균키가 165? 말도 안 되죠. 조선시대 남성 평균키가 155정도 될까 한데.

    • @guysyg7663
      @guysyg7663 Год назад

      @@성이름-g3z9o 조선시대 평균키는 남자 161 여자 149로 나와 있음
      15세기와 19세기의 조선시대 유골을 채취해서 만든 평균키라고 함 155는 그 당시 왜인들의 평균키임
      조선시대 남자 161cm 왜인들은 155cm임 고구려가 165cm인거는 맞을것임
      예전의 자료에서도 한반도를 기준으로 남쪽지역 사람보다 북쪽지역 사람들의 평균신장이 2~3cm정도 더 껏음

  • @sfk1031
    @sfk1031 Год назад

    조선은 왜 고구려역사를 알지 않을까? 당연하지. 당시 조선으로 보면 북한의 역사인데 고구려를 인정할까? 오랑캐의 역사인데
    발해가 망하고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10만명이 고려에 귀화했지. 오랑캐을 더 적시적으로 하게 되었지.

  • @석금최
    @석금최 Год назад

    광개토대왕 영상도 보고싶어여

  •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Год назад +10

    그랬군요... 아무래도 광개토대왕을 최고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듣고보니 소수림왕,, 명군이었네요

  • @체리피커-i6q
    @체리피커-i6q Год назад +1

    나라 새로 세우는거보다
    똥망된나라 수습하는게 몇배는
    어려울텐데 솔직히 좀 오래간다
    하는 나라들 공통점 중간에
    이런명군들이 껴있는거

  • @Yui-Myong
    @Yui-Myong Год назад

    대체 저 산밖에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한거지? 그게 궁금하다

  • @오리이-x5w
    @오리이-x5w Год назад +2

    고구려의 전성기는 진짜 너무 길다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문자명왕 안장왕 소수림왕 안장왕 뺀다고 해도 길고 이미 장수왕 하나만으로도 엄청김...

  • @고대경-b6d
    @고대경-b6d Год назад +7

    율령 반포와 태학 설립, 불교 공인으로 중앙집권 체제 정비로 왕권 강화, 국력 회복을 시킨 소수림왕이 광개토태왕, 장수왕 보다 위대한 군주죠.

    • @Sui-h1q
      @Sui-h1q Год назад +1

      개혁군주 정복군주 수성의군주 다 왕으로서의 역할과 성격이 다른거죠

    • @chosanghyeon103
      @chosanghyeon103 Год назад

      소수림왕은 국가 내부를 성장시켰고 광개토대왕 장수왕은 외부로 성장해 나갔으니 이 왕들을 비교하긴 애매하죠 물론 고구려 역대 최대 넓이 영토를 가졌던 문자왕도 있지만 그는 빼야하고요 ㅋㅋ

  • @송준호-h7v
    @송준호-h7v Год назад

    문자명왕 21대

  • @vivivi3865
    @vivivi3865 Год назад +3

    위대한 명군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솔직히 고려 현종의 하휘호환 느낌. 살아온 인생이나 군주로서의 치적이나.

  • @플레야데스
    @플레야데스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한반도 있었다는 개소리

  • @King-Jade-Iron
    @King-Jade-Iron Год назад +3

    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태왕-장수대왕 이때가 고구려전성기죠

    • @아가즈-x9k
      @아가즈-x9k Год назад +2

      ㄴㄴ 문자명왕도 껴야함 그때가 고구려 최대영토 시절임

    • @kangmingyu1377
      @kangmingyu1377 Год назад +2

      ​@@아가즈-x9k안장왕 없었으면 문자명왕은 지금 보다 평가 안좋음...

  • @크루세니크
    @크루세니크 Год назад

    소수림왕도 3분 휴지 였나요>?

  • @편한인생-c6g
    @편한인생-c6g Год назад

    자료 짜깁기 하는건 좋은데! 바람의나라 정진영은 유리왕을 열연했늠데! 그자료로 쓰시네요! 보완할 부준이라 생각됨! 자료만든데 신경더 쓰세요.

  • @달려라통키
    @달려라통키 Год назад

    그럼 고국천왕은...

  • @심해-s1i
    @심해-s1i Год назад +1

    아무리 뛰어난 군주래봤자 애초에 고구려는 지정학적 위치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서북부가 말갈, 거란부터 중국의 한족까지 온통 적이고 남부도 신라와 백제로 온통 적이고.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건 엄청난 실책.
    주적이 말갈, 거란, 중원 한족 등의 서북부에 포진이 되어 있는데 이게 골치 아프다고 남부로 내려왔으니 서북부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고, 고구려 귀족층과 군부가 북방군부와 평양귀족층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고대 귀족 사회라고는 해도 전선과 수도가 멀어지면 백퍼 망한다. 대표적으로 남쪽으로 천도한 중국 남송이 대표적.
    평양으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고구려는 잠시의 골치아픔음 잊었을지 몰라도 결국 그 용맹함과 씩씩함을 상실하고 귀족층끼리 분열만 반복하면서 패망한다.
    그렇다고 장수왕이 신라와 백제를 완전히 복속시킬 역량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장수왕이 희대의 삽질을 한 거다. 장수왕은 거품이 너무 많이 껴 있는 군주다.

    • @고대경-b6d
      @고대경-b6d Год назад +2

      장수왕의 평양천도는 광개토태왕 때 부터 추진이 되었고 장수왕 때 실행이 된 겁니다. 왕순하평양 이라고 해서 광개토태왕비문에 광개토태왕이 평양 아래를 순시했다는 기록이 있죠.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한 이유는 기후가 따뜻하고 평야 지대와 함께 대동강과 서해안이 만나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가 있는 농업 생산력과 수륙 교통의 요지 이고 고조선의 수도로 고조선의 문화, 유민을 고구려가 흡수해서 고구려가 고조선의 후계자 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죠.
      국내성의 구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 강화할려는 의도도 있었죠.

    • @심해-s1i
      @심해-s1i Год назад +3

      ​@@고대경-b6d
      더 연구를 해야 할 일이나 광개토대왕의 평양천도 계획은 북방유목민족 및 한족에 대한 대책이 완전히 수립된 후에 천도하려던 것으로 보임.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이 급사를 하면서 북방유목민족, 한족 등에 대한 전략이 사실상 다 붕괴가 되어 버린 상태에서 추진을 했기에 더 문제였던 것.
      남송도 기후 따뜻하고 많은 인구 부양가능하고 수륙교통의 요지라고 생각해서 천도를 했다가 몽골에 개박살이 났음.
      중원의 왕조 중에도 따뜻한 남쪽 찾아서 천도했다가 북방의 전선과 남쪽의 귀족이 서로 분리되는 바람에 폭망한 경우가 무진장 많음.
      남송도 그렇지만, 북위 말기 6진의 난도 좋은 예.
      따뜻한 남쪽 찾아서 천도한 나라는 중원부터 고구려까지 다 폭망했음.
      사실 엄밀히 따지면 광개토대왕도 문제가 좀 많은 사람이었고,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게 장수왕임.
      광개토대왕부터 장수왕까지 절대로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고, 고구려가 생존할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없었음.
      그나마 광개토대왕은 조금 나았는데 장수왕은 최악이었다고 봐야 됨.
      고구려가 고조선의 후계라고 딱히 자처했는지도 매우 의심스러운 부분. 고구려가 고조선의 후예를 자처한 사료가 있으면 제시하기 바람.
      결론적으로 망한거는 고조선처럼 똑같이 망했다는 점에서 그건 후계자라고도 할 수 있겠네.
      고조선 후계자 자처했으면서 지정학적으로 멸망하기 딱 좋으며 이미 한무제 시절 한번 공략이 당한 평양을 수도로 삼는 어리석음을 저질렀고, 여기에 더해 중원통일왕조의 소모전+수륙양용병진에 대한 대책이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까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이 두 군주는 거품이 너무 심한 것.
      고구려 말기의 귀족층의 분열부터 중원통일왕조의 압박.
      특히 당나라가 한무제로부터 평양 공략법을 깨달아 고구려의 수군을 하나하나 잠식하면서 고구려 연안을 차근차근 봉쇄하고 있었다는 점.
      농업, 상업을 통한 경제력을 어떻게 중원의 쏟아져나오는 쇼미더머니에 대항하도록 키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전략 부재.
      고구려의 문제는 많아도 너무 많지만 어쨌든 이러한 문제들의 대다수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두 명의 성공으로 인식되는 군주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이 문제임.
      그냥 전쟁만 잘하고 땅덩이만 넓혔다고 위대한 군주 운운, 고구려의 전성기 운운하는 건 코메디이자 국뽕 역사관일 뿐임.

    • @kimdavid9389
      @kimdavid9389 Год назад

      밑도 끝도 없는, 정말 무식한 결과론.
      니 논리 대로면 어차피 실수하고 죽을 거 넌 왜 살고 있음? ㅋㅋ

    • @심해-s1i
      @심해-s1i Год назад +1

      @@kimdavid9389
      뭔 무식한 새끼가 헛소리 처하고 자빠졌어.
      이미 역사에서도 그것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나와 있는 거고 버젓이 멸망이 예정되어 있는 길을 갔는데 그럼 그게 잘했다는 거냐.
      광개토대왕 때부터 계획된 수도 이전을 '실수'라고 말하는 네 머가리에는 뭐가 들어있는 거냐.

    • @gnus-gl3zk
      @gnus-gl3zk Год назад

      고구려가 부여 점령하고 바로 밑으로 내려갔어야 했는데 ㅠㅠ

  • @박민성-h3i
    @박민성-h3i Год назад

    중국의 대분열시기였기에 가능했음.

    • @베텔게우스-p9i
      @베텔게우스-p9i Год назад +3

      분열이 아니라 원래부터 하나가 아닌 민족들 임

    • @심해-s1i
      @심해-s1i Год назад +1

      @@베텔게우스-p9i
      민족 관점으로 역사를 그만 좀 봐라.
      애초에 중국이라는 대륙 자체가 통일을 지향할 수밖에 없고, 그건 진시황의 진나라 이후 이미 예정되어 있는 운명.
      그 시기가 언제냐가 문제일 뿐. 실제로 중원의 분열 시기는 역사가 흐르면 흐를수록 더 단축되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중국이 통일되는 순간 고구려는 언젠가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거.
      그 운명이 통일왕조 한나라의 한무제에 멸망한 고조선과 결국 같을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