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여(1987/유심초)’노래에 담긴 사연 ▶그는 부잣집 외동아들이었습니다.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몸 일부가 자유롭지 못했대요. 그렇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K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이었답니다. 그런데 매일 학교 가는 버스에서 여차장과 낯이 익어 눈인사를 나누게 됐어요. 80년대는 그랬잖아요.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여차장은 자리도 잡아주고 간혹 부축도 해주고 그랬나 봐요. 둘은 어느덧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고. 청년은 행복했어요. 몸이 불편한 자신을 보듬어주는 여인이 생겼으니 차장도 행복했어요. 배움이 부족한 자신에게 대학생 애인이 생겼으니까. 둘은 휴일이면 데이트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사랑을 키워갔대요. ►아, 그런데 청년 집에서 이를 알아버린 거예요. 난리가 났지요. 아무리 장애가 있더라도 큰 부잣집 외동아들이었거든요. 부모가 버스회사로 찾아가서 난리를 치고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을 줬어요. 어디 가난하고 무식한 촌년이 감히 남의 귀한 아들을 넘보느냐고.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대요. 시골에서 올라와 고된 차장 일을 하며 가난하나마 보랏빛 장래를 꿈꿔왔는데, 그런 수모를 겪다니... 그 이후로 그녀는 차장 일을 그만 두고 종적을 감췄어요. ►청년은 근 한 달간 집에 갇혔대요. 부모에게 다시는 그녀를 안 만나겠다고 맹세를 하고 겨우 집 밖으로 나온 첫날, 한달음에 그녀가 일하던 버스회사로 갔대요. 거기서 사정사정해 그녀의 시골집 주소를 알아내곤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그녀는 부모님은 돌아가셔서 오빠 집에 얹혀살았나 봅니다. 오빠가 말없이 가리키는 뒷산 중턱에는 그녀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집에 와 일주일을 몸져누웠던 그녀는 농약을 마셨던 거예요. 가난하고 부모 없이 고생하며 배움도 짧았건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사랑이 수모로 끝나자 더 이상 세상을 버틸 기력이 없었나 봅니다. ►청년은 절규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울부짖었지요. 그리고 어느 날 그도 그녀의 무덤가에서 약을 먹고 그녀 뒤를 따랐습니다. 그의 점퍼 주머니에는 그녀를 그리는,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애달프고 구구절절한 유시(遺詩)가 있었습니다. ★국문학과 출신인 그 총각이 남긴 유시(遺詩)에, 곡을 붙여서 80년대에 대 히트를 친 노래가, 유심초가 부른 ‘사랑이여’란 노래랍니다. ●사랑이여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머물고 간 바람처럼 기약 없이 멀어져간 내 사랑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지지 않는 사랑의 꽃으로 다시 한 번 내 가슴에 돌아오라 사랑이여 내 사랑아. 아 사랑은 타 버린 불꽃 아 아 사랑은 한 줄기 바람인 것을 아 아 까맣게 잊으려 해도 왜 나는 너를 잊지 못 하나.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영원토록 못 잊어, 못 잊어.
참 아련하고 애틋한 사랑으로 맺어진 사랑을 가로막는 부모들의 무조건적인 내자식 귀한줄만 아는 고착화된 잘못된 사고로 양가의 귀한 아들딸이 죽음으로 사랑의 한맺힌 사연으로 유심초가 부르는 사랑이여가 한시대의 최고의 명곡으로 사랑을 받았군요 지금 이시대에도 많은이들이 애창하는곡이죠
엄마. 엄마... 우리 모두 ..엄마 내 엄마는 1916년 ~ 2017년 본향으로.. 미치도록 아쉬운데.. 엄마 그리워서. 열심히 사세요. 엄마가 내려다 보시고 계십니다. 때로는 소리내서 우세요. 엄마 엄마 보고 싶고 그립고.. 나 5진9제대 포항역에서 흰 소복으로 ..엄마 Atlanta GA 해병 206기
81년 이노래가 한참 인기 있읉때
군시절 여자 친구로 부터
편지가 오면은
철모속에 편지를 넣고서
훈련하고, 경계근무 하던
시절이 생각 납니다^^~
저희 엄마 는 늘 좋은 노래인데 제가 초등학교 시절6학년때 천국으로 😢 늘 곁에 있는것 같아요 다시 보고 싶고 못한말도 많이많이 있고 엄마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엄마 ❤❤❤❤❤❤❤❤
오 신이시여..
얼마나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으실까 ㅠㅜ
댓글을 읽는데 울컥 하네요.
님 힘내시고 늘 평강이 함께 하는 나날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항상 건강하고
엄마와의 좋은 추억 생각하면서 행복 하길 바라요
파이팅!!!!!!
대단히 감사합니다 ~~~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줄 모르고 유심초 두분의 아름다운 화음과 가사가 너무 좋아 어린 시절 좋아했던 노래에요
중년을 훌쩍 넘겨버린 어른들이 되어버렸지만
유심초는 우리를 영원히 청춘에 머물게 합니다!!!
유심초 좋은노래 좋은곡 많은대
이노래도 엄청 많이 들엇네 그때가 그립다
7080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때 듣는 노래예요
아하 정말로 휼륭한 따님이세요.감사합니다
가슴아픈사연이
담긴노래
그부모님도
듣고계시겠지
얼마나가슴아플까~~
어쩜 그 옛날 그 노래를 이리도 똑같이 부르실 수가..
목소리 하늘이 낸 목소리~~~
유심초 최고의 가수이십니다!!!!
영원히 최고의 가수이십니다!!!
우와~~~!!!
유심초~~~~~~!!!!!!!!!!!!!!!!!!!!!!!!!!!!!!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좋아요~~~!!!!!!!
내가 이등병때 소대장님 부르시던 가슴 울린 노래
공영방송에서 다시 부활하면 좋겠습니다😅😅
삶에서
나이들수록 소중한 것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감정을 안온히 지키는 것
책을 읽고
글쓰기ㆍ그림그리기도 좋아하던 학창시절의 감정을 갖기 위해
나이 69세
74학번이라도
평생을 매일 일기 쓰고 하루를 반성하며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요
좋은 말씀이세요
과일에 씨가 있듯..그런 추억들이 씨처럼 가슴에 영글어 있죠...공감합니다.
81학번 이지만 아직도 희망을 갖고살아요 같이 힘내요 오빤지 아닌지 몰라도 .ㅎ
참좋은노래입니다 아름답고 슬픈노래가 아닌가샆습니다
가수가 이처럼 남너노가 애창하는 노래하나쯤 갖고있으니 당신들을 존경 합니다
정말 멋진 화음... 벌써 60이 넘어
다시 들어봐도 역시 멋져요~~
이우중 형님 유심초 사랑이여 노래
좋아 합니다
국민학교 때 아버지가 즐겨부르셨던 노래였는데... 아버지, 극락세계에서 잘 사세요.
명곡 중에 명곡..🩵🩵🩵👍👍👍👍
이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그때 그 사람이 있어요.
가슴 저리고 눈물나네요.
영혼의노래입니다❤❤❤
명곡입니다..... 가슴을 후벼내는 설음이 밀려오네요....
중2때 하루에 수백번씩 들었어요~
시그널이 너무좋아요~노래도 너무좋구요~
이런가슴아픈
사연이깊이
있는줄
몰랐어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요동치고있는 태양계에서 ,그리고 기후변화로 어두운 그림자가 내리는 지구가 언제까지 우리 인류를 보전해 줄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사랑이여는 우리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줄 유일한 희망입니다. 고맙습니다
최고!
そうなんさー!
사연이 있는 슬픈 노래네요 사랑이여
사랑해요.
사랑의노래중
잊어지은는곡..😮❤
평소에 아버지가 제일 좋아 하신 노래이예요
1981년 중3때 힛트했던노래😊
역시 오리지널 버전이 제일 좋음
사랑이여(1987/유심초)’노래에 담긴 사연
▶그는 부잣집 외동아들이었습니다.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몸 일부가 자유롭지 못했대요. 그렇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K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이었답니다. 그런데 매일 학교 가는 버스에서 여차장과 낯이 익어 눈인사를 나누게 됐어요.
80년대는 그랬잖아요.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여차장은 자리도 잡아주고 간혹 부축도 해주고 그랬나 봐요.
둘은 어느덧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고. 청년은 행복했어요. 몸이 불편한 자신을 보듬어주는 여인이 생겼으니 차장도 행복했어요. 배움이 부족한 자신에게 대학생 애인이 생겼으니까. 둘은 휴일이면 데이트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사랑을 키워갔대요.
►아, 그런데 청년 집에서 이를 알아버린 거예요. 난리가 났지요. 아무리 장애가 있더라도 큰 부잣집 외동아들이었거든요.
부모가 버스회사로 찾아가서 난리를 치고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을 줬어요. 어디 가난하고 무식한 촌년이 감히 남의 귀한 아들을 넘보느냐고.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대요. 시골에서 올라와 고된 차장 일을 하며 가난하나마 보랏빛 장래를 꿈꿔왔는데, 그런 수모를 겪다니... 그 이후로 그녀는 차장 일을 그만 두고 종적을 감췄어요.
►청년은 근 한 달간 집에 갇혔대요.
부모에게 다시는 그녀를 안 만나겠다고 맹세를 하고 겨우 집 밖으로 나온 첫날, 한달음에 그녀가 일하던 버스회사로 갔대요.
거기서 사정사정해 그녀의 시골집 주소를 알아내곤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그녀는 부모님은 돌아가셔서 오빠 집에 얹혀살았나 봅니다.
오빠가 말없이 가리키는 뒷산 중턱에는 그녀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집에 와 일주일을 몸져누웠던 그녀는 농약을 마셨던 거예요. 가난하고 부모 없이 고생하며 배움도 짧았건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사랑이 수모로 끝나자 더 이상 세상을 버틸 기력이 없었나 봅니다.
►청년은 절규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울부짖었지요. 그리고 어느 날 그도 그녀의 무덤가에서 약을 먹고 그녀 뒤를 따랐습니다.
그의 점퍼 주머니에는 그녀를 그리는,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애달프고 구구절절한 유시(遺詩)가 있었습니다.
★국문학과 출신인 그 총각이 남긴 유시(遺詩)에, 곡을 붙여서 80년대에 대 히트를 친 노래가, 유심초가 부른 ‘사랑이여’란 노래랍니다.
●사랑이여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머물고 간 바람처럼
기약 없이 멀어져간 내 사랑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지지 않는 사랑의 꽃으로
다시 한 번 내 가슴에
돌아오라 사랑이여 내 사랑아.
아 사랑은 타 버린 불꽃
아 아 사랑은 한 줄기 바람인 것을
아 아 까맣게 잊으려 해도
왜 나는 너를 잊지 못 하나.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영원토록 못 잊어, 못 잊어.
참 아련하고 애틋한 사랑으로 맺어진 사랑을 가로막는 부모들의 무조건적인 내자식 귀한줄만 아는 고착화된 잘못된 사고로 양가의 귀한 아들딸이 죽음으로 사랑의 한맺힌 사연으로 유심초가 부르는 사랑이여가 한시대의 최고의 명곡으로
사랑을 받았군요 지금 이시대에도 많은이들이 애창하는곡이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이야기
슬픈사연
잘읽고갑니다
진짜요?
아아 그 노래의 사연을 듣자니 가슴이 메어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주 귀한 자료입니다 고맙습니다
1984年時点における、私の若かった日々を想起させました。
🎉🎉🎉
한번도 싸우지 않고 지냈을 형제의 달콤한 세레나데. 우리 집 형들은 이틀에 한번 싸우고 나는 구경만.
❤
할아버지들인데 수와 진하고 좀 햇갈림
엄마.
엄마...
우리 모두 ..엄마
내 엄마는 1916년 ~
2017년 본향으로..
미치도록 아쉬운데..
엄마 그리워서.
열심히 사세요.
엄마가 내려다 보시고 계십니다.
때로는 소리내서 우세요. 엄마 엄마 보고 싶고 그립고..
나 5진9제대 포항역에서 흰 소복으로 ..엄마
Atlanta GA
해병 206기
너무나 슬픈 노래, 너무 아름다운 노래. 사랑한 여인이 남자 부모의 결혼반대에 자살하자 나중에사 연인을 찾아 무덤가에 이글을 남기고 같이 하늘로 간노래
목숨버릴각오로오신ㄱㅈㅇ아저씨께
예수님 꼭 잘 믿으시면
반드시 엄마를 만나실 것입니다
봉화 사람들 심보가 왜 그 모양인가?
부모의 욕심이 자식을 버렸네 ㅠㅠ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
보다도 인기가 좋았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