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성호사설인지 어디서인가 고려의 행정체계의 방만함을 비판하면서, 고려는 북쪽을 (몽골, 여진 등)을 포괄하지 못하였는데도, 주현이 너무 많았다면서, 조선은 그 북쪽을 다 포괄했는데도 행정체계를 줄여 운영했다면서 비교하는 문구를 보았는데, 어느 문헌인지는 못찾겠네요. 결과로 보면, 조선이 고려보다 더 컸다는 얘기지요.
지천태님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성호사설에서 조선은 예조선 즉, 고조선을 의미하니.. 고려보다 더 컸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를 들자면, 高麗肅宗時 金謂磾…又引神誌秘詞曰 如秤錘極器 秤幹扶疎 梁錘者五德地 極器百牙岡 此以秤諭三京也 松嶽爲中 木覓爲南 平壤爲西也 極器者首也 錘者尾也 秤幹者提綱之處也 松岳爲扶疎 以諭秤幹 西京爲白牙岡 以諭秤首 三角山南爲五德丘 以諭秤錘… [성호사설 천지문 고려비기] 고려 숙중때 김위신이 올린 상소에도 神誌秘詞를 인용하여 국토의 크기를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책사님 신지혁덕이 쓴 사서입니다.
@@user-31TV 글쎄요. 고조선과의 비교는 아니었던 것으로 아는데, 출처를 못찾겠네요. 생여진, 숙여진도 지금 청나라 시대 지도나 이런 것을 보면 한반도 이북으로 그려져 있는데, 권덕규 선생의 글을 보면 음산남북으로 숙생이부가 생겼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숙생이부의 위치와는 전혀 다르며, 만몽대륙도 이곳과 그 이북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여지더라고요. 화령도 마찬가지로 더 고찰해 보야 할 지명으로 생각되고요.
@@user-31TV 제가 말씀드린 내용의 책의 제목은 찾지 못했네요.. 계산기정의 산천 부분에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어서 압록강 이후 노상에서 본 바로는, 가까운 산은 구련성의 송골산(松鶻山)과 금석산(金石山), 봉황성의 봉황산, 계주(薊州)의 공동산(崆峒山)과 반룡산(盤龍山)인데, 이 8산은 모두 돌산이고, 그 먼 산은 창려현(昌黎縣)의 문필봉(文筆峯), 요동의 천산(千山)이 가장 빼어나고, 서북변 장성(長城) 일대에도 기이한 봉우리가 많았으나 이름을 알 수 없다. (중략) 봉황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다만 여러 개의 봉우리가 우뚝하게 빼어났을 뿐이더니, 산 아래 와서 보니, 100개, 1000개 바위 봉우리가 마치 창을 벌여 세우고 병풍을 둘러친 듯, 층층 겹겹 기이하고 험한 것은 도봉산(道峯山)ㆍ수락산(水落山)과 흡사하나 기세는 못 미쳤다. 안시성(安市城)은 봉황산의 동남 기슭에 있는데, 봉우리가 철옹산성처럼 둘러싸고 있으니, 그 천연 요새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까닭이 있다. (중략) 효람(曉嵐) 기균(紀昀)이 일찍이 하수의 근원을 찾아가 보고 《하원기(河源記)》를 지어 바쳤는데, 그 기(記)에는 대략, “곤륜산(崑崙山)은 즉 지금 화전(和闐)의 남산인데 하수가 나온다. 원 세조(元世祖)가 도십(都什)을 보내어 하수 근원을 찾아보게 하였더니, 겨우 성수해(星宿海)에 이르고 말았었는데, 지금은 발원(發源)한 곳에 곧장 이르러 그곳을 직접 보았다.” 하였다. 장건(張騫)이 이른 곳은 서역(西域) 36개국으로 무릇 연무(延袤)가 2만 리인데, 지금 8개 군현으로 합병하여 신강(新彊)이라 부르니, 지역이 넓기로는 전고에 없던 바다. 서쪽으로는 돌궐(突厥)을 지나고 서남쪽으로는 토번(吐蕃) 바깥 20리 신독(身毒)을 나가니, 곧 인도(印度)이다. 그리고 현도(懸度 국명)는 피산(皮山) 팔첩도(八牒圖)에 있고, 감숙(甘肅)은 오래도록 내지(內地)가 되었으며, 약수(弱水)ㆍ흑수(黑水)도 모두 감숙 내지에 있다. 압록강이 어디인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 논란이 많은 내용이지요. 계산기정의 내용을 보면 압록강과 봉황성은 가깝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안시성은 봉황성 인근에 있다고 하지요. 중국고금지명 사전에 보면 봉황성은 안읍 서남의 가까운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잇지요. 영국에 도서관에 있는 청일전쟁기념관(Sino-Japanese War Prints in the British Library)에 보면, 관련 그림들이 많이 나오는데, 구련성 전투, 봉황성 매복 등의 그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압록강구(鴨綠江口)라는 강줄기가 나오고, 문자로 그렇게 적었더라고요. 봉황성에 대하여 검색해보니 여러군데가 나오지만, 그 지역 근처에 압록강이 될만한 곳은 없고, 바로 봉황성에서 보여야 되기 때문이지요. 안읍 바로 남쪽이 봉황성이고, 황하의 지류인데, 구글로 검색해보니, 이 유역만 유난히 압록의 색깔을 가지고 있더군요. 흑수말갈이라고 우리가 부르는데, 과연 흑수는 어디인가? 지금의 흑룡강인가? 계산기정에서는 약수와 흑수가 다 감숙성 내지에 있다고 하는 것을 보아서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흑룡강은 결코 흑수가 될 수가 없지요. 말갈이나 여진은 다 중국 대륙 음산 남북에 있던 사람들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성계가 몽골군을 제압하는 과정(나하추 등)과 여진부족들이 다 이성계에게 복속하는 과정들도 조선왕조에 나와 있는 내용이지요.
쌤~열공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로즈님 언제나 감사올립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헤밍웨이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큰 성취를 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엄청난 사실들
깊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시니 행복합니다.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성호사설인지 어디서인가 고려의 행정체계의 방만함을 비판하면서, 고려는 북쪽을 (몽골, 여진 등)을 포괄하지 못하였는데도, 주현이 너무 많았다면서, 조선은 그 북쪽을 다 포괄했는데도 행정체계를 줄여 운영했다면서 비교하는 문구를 보았는데, 어느 문헌인지는 못찾겠네요. 결과로 보면, 조선이 고려보다 더 컸다는 얘기지요.
지천태님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성호사설에서 조선은 예조선 즉, 고조선을 의미하니.. 고려보다 더 컸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를 들자면,
高麗肅宗時 金謂磾…又引神誌秘詞曰 如秤錘極器 秤幹扶疎 梁錘者五德地 極器百牙岡 此以秤諭三京也 松嶽爲中 木覓爲南 平壤爲西也 極器者首也 錘者尾也 秤幹者提綱之處也 松岳爲扶疎 以諭秤幹 西京爲白牙岡 以諭秤首 三角山南爲五德丘 以諭秤錘… [성호사설 천지문 고려비기]
고려 숙중때 김위신이 올린 상소에도 神誌秘詞를 인용하여 국토의 크기를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책사님 신지혁덕이 쓴 사서입니다.
@@user-31TV 글쎄요. 고조선과의 비교는 아니었던 것으로 아는데, 출처를 못찾겠네요. 생여진, 숙여진도 지금 청나라 시대 지도나 이런 것을 보면 한반도 이북으로 그려져 있는데, 권덕규 선생의 글을 보면 음산남북으로 숙생이부가 생겼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숙생이부의 위치와는 전혀 다르며, 만몽대륙도 이곳과 그 이북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여지더라고요. 화령도 마찬가지로 더 고찰해 보야 할 지명으로 생각되고요.
@@user-31TV
제가 말씀드린 내용의 책의 제목은 찾지 못했네요..
계산기정의 산천 부분에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어서
압록강 이후 노상에서 본 바로는, 가까운 산은 구련성의 송골산(松鶻山)과 금석산(金石山), 봉황성의 봉황산, 계주(薊州)의 공동산(崆峒山)과 반룡산(盤龍山)인데, 이 8산은 모두 돌산이고, 그 먼 산은 창려현(昌黎縣)의 문필봉(文筆峯), 요동의 천산(千山)이 가장 빼어나고, 서북변 장성(長城) 일대에도 기이한 봉우리가 많았으나 이름을 알 수 없다.
(중략)
봉황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다만 여러 개의 봉우리가 우뚝하게 빼어났을 뿐이더니, 산 아래 와서 보니, 100개, 1000개 바위 봉우리가 마치 창을 벌여 세우고 병풍을 둘러친 듯, 층층 겹겹 기이하고 험한 것은 도봉산(道峯山)ㆍ수락산(水落山)과 흡사하나 기세는 못 미쳤다. 안시성(安市城)은 봉황산의 동남 기슭에 있는데, 봉우리가 철옹산성처럼 둘러싸고 있으니, 그 천연 요새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까닭이 있다.
(중략)
효람(曉嵐) 기균(紀昀)이 일찍이 하수의 근원을 찾아가 보고 《하원기(河源記)》를 지어 바쳤는데, 그 기(記)에는 대략,
“곤륜산(崑崙山)은 즉 지금 화전(和闐)의 남산인데 하수가 나온다. 원 세조(元世祖)가 도십(都什)을 보내어 하수 근원을 찾아보게 하였더니, 겨우 성수해(星宿海)에 이르고 말았었는데, 지금은 발원(發源)한 곳에 곧장 이르러 그곳을 직접 보았다.”
하였다. 장건(張騫)이 이른 곳은 서역(西域) 36개국으로 무릇 연무(延袤)가 2만 리인데, 지금 8개 군현으로 합병하여 신강(新彊)이라 부르니, 지역이 넓기로는 전고에 없던 바다. 서쪽으로는 돌궐(突厥)을 지나고 서남쪽으로는 토번(吐蕃) 바깥 20리 신독(身毒)을 나가니, 곧 인도(印度)이다. 그리고 현도(懸度 국명)는 피산(皮山) 팔첩도(八牒圖)에 있고, 감숙(甘肅)은 오래도록 내지(內地)가 되었으며, 약수(弱水)ㆍ흑수(黑水)도 모두 감숙 내지에 있다.
압록강이 어디인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 논란이 많은 내용이지요.
계산기정의 내용을 보면 압록강과 봉황성은 가깝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안시성은 봉황성 인근에 있다고 하지요.
중국고금지명 사전에 보면 봉황성은 안읍 서남의 가까운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잇지요.
영국에 도서관에 있는 청일전쟁기념관(Sino-Japanese War Prints in the British Library)에 보면, 관련 그림들이 많이 나오는데,
구련성 전투, 봉황성 매복 등의 그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압록강구(鴨綠江口)라는 강줄기가 나오고, 문자로 그렇게 적었더라고요. 봉황성에 대하여 검색해보니 여러군데가 나오지만, 그 지역 근처에 압록강이 될만한 곳은 없고, 바로 봉황성에서 보여야 되기 때문이지요.
안읍 바로 남쪽이 봉황성이고, 황하의 지류인데, 구글로 검색해보니, 이 유역만 유난히 압록의 색깔을 가지고 있더군요.
흑수말갈이라고 우리가 부르는데, 과연 흑수는 어디인가? 지금의 흑룡강인가? 계산기정에서는 약수와 흑수가 다 감숙성 내지에 있다고 하는 것을 보아서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흑룡강은 결코 흑수가 될 수가 없지요. 말갈이나 여진은 다 중국 대륙 음산 남북에 있던 사람들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성계가 몽골군을 제압하는 과정(나하추 등)과 여진부족들이 다 이성계에게 복속하는 과정들도 조선왕조에 나와 있는 내용이지요.
아 네.. 조선초는 과도기적 상황이니 혼제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이 됩니다.
이는 저의 방송에서도 동일하게 다루어 지고 있습니다.
정성어린 답글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지천태와엑셀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