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을 다... 거느릴 솔... 옛날에는 다솔사가 스님들이 엄청 많이 계셔서 식구를 많이 거느린다하여 거느릴 "솔"의 다솔사로 알고있습니다. 얼마나 스님들이 많았으면, 해우소도 워낙 크고 깊어서 만우절의 일화로도 유명한 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항시 수행과 정진으로 바르게 행하시다가 만우절만큼은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날이라 전국 사찰의 스님들끼리 거짓말 대회가 열렸답니다. 그때에 한 분의 스님께서 다솔사는 해우소가 얼마나 크고 깊은 지 오늘 볼 일을 보면 3년뒤에 바닥에 닿는 소리가 통~~하고 난다고하여서 거짓말 대회에서 일등을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고하는 방송을 들었던 적이 있을만큼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웃자고하는 이야기지만, 그 의미를 충분히 짐작케 합니다. 등신불의 실제 모티브가 되었던 관계인들이 아직은 다솔사 인근에 살아있는 역사로 현존하십니다. 다솔사의 의미와 역사가 와전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등신불의 모티브는 지금 현존하고 계시는 어느 스님의 집안에 아주 참한 양반 댁 규수가 시집을 왔었는 데,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문둥병에 걸려, 친정과 시댁의 가문에 누가 될까봐 마을에서 떨어 진 한적한 곳에 장작더미를 쌓아 불을 지핀 후에 올라 앉아 타 죽었다는 것 입니다. 그 분의 신랑이 재가하여 자녀를 두었고, 그의 손자가 현존한다는 그의 친척이 계십니다. 그 친척 분이 스님이 되시어 생활하시면서 제게 직접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후반부터 6.25를 겪으며 살아 온 다솔사 주변의 살아있는 증인들이 아직은 몇 분이 현존하고 계십니다.
사천 다솔사.. 덕분에 잘 봤어요.
명본스님과 유니크맘님 감사합니다. 🙏
나무 석가모니불 🙏🙏🙏 나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해설 보살님 다솔사가 소나무가 많아 다솔사 란 말씀은 잘 못 된 말씀이시구요.많을 多.거느릴 率.절 寺😅입니다.됫 산이 장군 혈 이라.군사를 많이 거느린 다는 뜻 입니다~
다솔사 경내를 차근차근 산책하고, 적멸보궁 계단을 토닥토닥 함께 걸어올라가는 기분이 드는 영상이에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연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들 수고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연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을 다해주시네요~
리포터분은 아, 네,
뭐 뭘 하시는건지...
스님 수고하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사천 다솔사
참 좋으네요.
부산에서는 가까운 곳인데
저도 꼭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고 좋은날되세요😊😊😊
감사합니다^^ 인연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uniqmam
꼭 다시 뵙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일들이 항상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안녕하세요,수진스님은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수진스님은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십니다. 지금 통도사에 과장으로 계시니 언제든 뵈실 수 있고요.
감사합니다^^
다솔사 입구부터 청송이 쫘악
적멸보궁 뒤로는 녹차밭
아름다운 절집
곤양읍 서포면 입구 좌편에
유명한 어탕국수집 있습니다
서포면 000분께 요청하면
배타고 나가 직접 잡은 전어도 먹을수 있는뎅
수고했슴다
감사합니다^^ 그런 곳도 있군요
많을 다...
거느릴 솔...
옛날에는 다솔사가 스님들이 엄청 많이 계셔서 식구를 많이 거느린다하여 거느릴 "솔"의 다솔사로 알고있습니다.
얼마나 스님들이 많았으면, 해우소도 워낙 크고 깊어서 만우절의 일화로도 유명한 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항시 수행과 정진으로 바르게 행하시다가 만우절만큼은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날이라 전국 사찰의 스님들끼리 거짓말 대회가 열렸답니다.
그때에 한 분의 스님께서 다솔사는 해우소가 얼마나 크고 깊은 지 오늘 볼 일을 보면 3년뒤에 바닥에 닿는 소리가 통~~하고 난다고하여서 거짓말 대회에서 일등을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고하는 방송을 들었던 적이 있을만큼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웃자고하는 이야기지만, 그 의미를 충분히 짐작케 합니다.
등신불의 실제 모티브가 되었던 관계인들이 아직은 다솔사 인근에 살아있는 역사로 현존하십니다.
다솔사의 의미와 역사가 와전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등신불의 모티브는 지금 현존하고 계시는 어느 스님의 집안에 아주 참한 양반 댁 규수가 시집을 왔었는 데,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문둥병에 걸려, 친정과 시댁의 가문에 누가 될까봐 마을에서 떨어 진 한적한 곳에 장작더미를 쌓아 불을 지핀 후에 올라 앉아 타 죽었다는 것 입니다.
그 분의 신랑이 재가하여 자녀를 두었고, 그의 손자가 현존한다는 그의 친척이 계십니다.
그 친척 분이 스님이 되시어 생활하시면서 제게 직접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후반부터 6.25를 겪으며 살아 온 다솔사 주변의 살아있는 증인들이 아직은 몇 분이 현존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