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이 이사야 42장 7절로 고민을 했을것 같아요.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여쭌거보면.. 메시아가 오셨으니 육적으로 옥에 갇힌 본인을 감옥에서 이끌어냈어야 했을텐데.. 왜 주님은 이 부분은 안하셨을까요. 초대교회때는 베드로와 사울을 그렇게 하셨는데.. 목사님의 지혜의 답변이 듣고 싶습니다~ ^^;
답은 세례요한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에 있습니다.요한의 사명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데 까지입니다. 요한은 이 사명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난 나실인이었습니다. 요한이 옥에 갇히기까지 그는 사명을 다했습니다. 나실인으로서 요한의 사역은 여기까지라는 것이 옥에 갇힌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처럼 악한자들의 행위를 통해 대속을 이루고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요한에게 쉼을 주는 겁니다. 그리고 요한의 순교는 생명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의 시작이 이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님께서 그 사역을 펼치셔야 했던 겁니다.요한의 사역은 오신 주님의 사역으로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세례요한이 옥에서 죽은 것을 사람의 관점으로 판단하시면 안됩니다. 나실인으로서 그 사명을 마쳤기에 하나님께서 요한의 사역을 이 땅에서 마무리하는 단계가 옥에 갇히는 사건입니다.
19절의 이 말씀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충성된 자가 아니자)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맹인은 진짜가 아닌 가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이루는 이중적 모습입니다.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자가 자기 직무를 잊어버리고 우상에 빠지고, 세상을 본받고, 불의와 방탕에 빠져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39:00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말씀 . 최고입니다.
세례요한이 이사야 42장 7절로 고민을 했을것 같아요.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여쭌거보면.. 메시아가 오셨으니 육적으로 옥에 갇힌 본인을 감옥에서 이끌어냈어야 했을텐데.. 왜 주님은 이 부분은 안하셨을까요. 초대교회때는 베드로와 사울을 그렇게 하셨는데.. 목사님의 지혜의 답변이 듣고 싶습니다~ ^^;
답은 세례요한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에 있습니다.요한의 사명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데 까지입니다. 요한은
이 사명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난 나실인이었습니다. 요한이 옥에 갇히기까지 그는 사명을 다했습니다. 나실인으로서 요한의 사역은 여기까지라는 것이 옥에 갇힌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처럼 악한자들의 행위를 통해 대속을 이루고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요한에게 쉼을 주는 겁니다. 그리고 요한의 순교는 생명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의 시작이 이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님께서 그 사역을 펼치셔야 했던 겁니다.요한의 사역은 오신 주님의 사역으로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세례요한이 옥에서 죽은 것을 사람의 관점으로 판단하시면 안됩니다. 나실인으로서 그 사명을 마쳤기에 하나님께서 요한의 사역을 이 땅에서 마무리하는 단계가 옥에 갇히는 사건입니다.
@@Gerizim_Church 아 그렇군요. 깊은말씀 감사드립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세례요한의 모습과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은 의문이었어요. 요한 스스로도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사명을 알았지만 누군가를 또 기다려야 하나 싶은 번민을 가진듯 보여서요.
42장 19절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한글인데 해석이 안되네요..
19절의 이 말씀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충성된 자가 아니자)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맹인은 진짜가 아닌 가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이루는 이중적 모습입니다.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자가 자기 직무를 잊어버리고 우상에 빠지고, 세상을 본받고, 불의와 방탕에 빠져 살아가는 모습입니다.